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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임주혜 지음 / 행복우물 / 2024년 10월
평점 :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4.5점 ★★★★☆ A
브론테 자매는 영국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자매다. 큰언니 샬럿(Charlotte Brontë)의 대표작은 《제인 에어》다. 둘째 언니 에밀리(Emily Brontë)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Wuthering Heights》를 썼다. 《폭풍의 언덕》은 그녀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소설이다. 막내 앤(Anne Brontë)은 두 편의 소설을 썼다. 두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샬럿은 앤의 첫 번째 소설 《아그네스 그레이》를 다시 펴내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앤의 두 번째 소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다시 출간하고 싶지 않은 작품이라고 혹평했다. 20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앤의 소설들은 두 언니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이지만, 드라마와 연극으로 각색될 정도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앤의 대표작이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가정교사의 사회적 지위가 잘 묘사된 소설이다. 가정교사는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들이 선호한 직업이다. 소설의 주인공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는 가정교사로 일했던 작가의 삶이 반영된 인물이다. 아그네스는 가정교사를 하찮게 대하는 귀족의 집에 생활하면서 귀족의 자녀들을 가르친다. 그녀가 가르치는 톰 블룸필드(Tom Bloomfield)는 예의범절을 모르는 소년이다. 톰은 아주 못된 버릇이 있다. 정원에 있는 새를 잡아서 잔인하게 죽인다. 아그네스는 동물을 괴롭히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면서 꾸짖지만, 톰의 어머니와 삼촌은 톰의 행동을 옹호한다. 톰의 삼촌은 조카의 동물 학대를 지켜보는 것을 즐긴다. 아그네스는 새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톰의 어머니는 모든 생명체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창조’되었다면서 동물 학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오히려 톰의 어머니는 동물 학대를 지적하는 아그네스의 지도 방식에 문제가 있다면서 비난한다. 아그네스는 ‘인간의 쾌락을 위해 동물을 고문할 권리가 없다(We have no right to torment them for our amusement)’고 맞받아친다.
우리는 동물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처럼 소중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일에 서툴다. 왜냐하면 동물을 위한 권리의 필요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물권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 우리는 마음으로 아그네스를 지지하지만, 우리의 입은 톰의 어머니가 된다. 인간은 언어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이다. 무언가를 생각하고 감정을 느낀 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일에 익숙한 우리는 종종 착각에 빠진다. 말하지 않는 동물은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으며 감정이 없다고 생각한다.
임주혜 작가의 두 번째 책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생명 존중과 동물권 그리고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유》는 우리의 언어가 동물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우리의 입은 ‘듣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동물’에게 말을 걸 수 있다. 당연히 동물은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행위가 부질없는 것은 아니다. 동물을 존중하는 자세다. 저자는 우리의 언어가 동물의 목소리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동물과의 대화는 인간과 동물을 같은 위치에서 마주 바라보게 만들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생 관계를 잊지 않게 해준다.
작가는 책에 실린 모든 글을 거의 혼자 쓰지 않았다. 작가와 함께 사는 반려견 ‘고동이(책 앞표지의 모델)’가 언급된 글은 작가와 고동이와 함께 쓴 글이다. 고동이는 눈빛과 몸짓으로 작가에게 말을 걸고, 작가는 고동이의 마음을 읽는다. ‘인간과 동물’이 아닌 ‘생명과 생명’으로 교감하는 일상은 귀엽다.
동물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그래도 동물 철학―대표적인 학자가 피터 싱어(Peter Singer)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다―을 공부하지 않고도, 동물권을 지키기 위한 비건(vegan)이 되지 않아도, 동물권 운동 단체에 가입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간에게 무참히 짓밟힌 동물들의 실태를 가까이서 본 동물권 운동가들은 저자가 불편한 실상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동물권 문제를 천천히 고민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저자는 비건 중심의 세상을 조급하게 바꾸려는 실천이 때론 ‘나의 것(생각)이 가장 옳다’라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느리면서도 세밀한 고민이 빠진 동물권 운동은 다른 동물 또는 타자를 차별하고 혐오를 생산할 수 있다. 저자가 강조한 대로 동물의 삶에 대한 통찰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동물권을 어떻게 확보해야 할지 고민하는 일을 멈추는 태도는 동물과의 공생 관계를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와 입은 내 생각을 지키기 위한 무기가 되어선 안 된다.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입은 꾹 다문 상태였다가 나와 다른 목소리를 만나면 세게 때릴 자세로 돌변한다. 타자를 위협하는 언어는 포악하다. 반면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입은 계속 움직인다. 늘 열려 있다. 동물에 대해 생각하고 느낀 점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의 무지함과 오류를 정직하게 인정한다. 우리가 가져야 할 입은 공생의 의미를 천천히 알아가면서 진정한 공생을 말하는 입이다. 이런 입에서 나온 언어는 포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