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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 처음 듣는 이야기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유유 / 2024년 4월
평점 :
평점
4점 ★★★★ A-
이상하다. 분명히 예전에 빌려 읽은 책인데, 왜 없을까? 도서관은 내가 찾으려는 책이 없다고 말한다. “찾으시는 자료가 없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서 내가 책 제목을 잘못 알고 있나? 다시 한번 책 제목을 입력한다. “찾으시는 자료가 없습니다.”
책 제목의 띄어쓰기가 틀렸나? 붙어 있어야 할 두 글자 사이에 일부러 틈을 만든다. 억지로 띄어쓰기한 제목을 한 번 더 입력. “찾으시는 자료가 없습니다.” 도서관은 똑같은 답변을 반복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책의 저자 이름과 출판사 이름을 같이 입력한다. “저기요, 찾으시는 자료가 없다니까요.”
도서관의 무성의한 답변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도서 대출 이력을 뒤적였다. 도서관에서 행방불명된 책은 찾으러. 눈을 크게 뜨면서 대출 도서 목록을 살펴봤다. 드디어 책 제목을 찾았다. 도서관이 없다고 했던 그 책을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데려온 도서관 책들은 짧게는 이틀, 길게는 2주 정도 우리 집 책상에서 지냈다. 내가 책상에 앉으면 책은 온몸을 펼쳐서 그 속에 가득 담긴 이야기를 보여줬다. 한 번도 펼치지 못하고 도서관으로 돌려보낸 책들도 많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제대로 만나지 못한 책을 다시 데려왔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도서관을 내 집 드나들 듯이 했다.
우치다 다쓰루(内田樹)는 도서관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활자 중독자’다. 우치다 선생이라면 있어야 할 책들이 사라지는 도서관에 일침을 가했을 것이다. 기업을 닮고 싶은 도서관은 ‘사람’이 책보다 더 많다. 민간 업체는 성과를 중시한다. 도서관을 관리하는 민간 업체의 목표는 도서관에 사람들을 많이 오게 할 것. 민간 업자는 베스트셀러를 잔뜩 구매한다. 베스트셀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빌려 보는 인기 도서다. 독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기 도서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면 자리가 있어야 한다. 딱 봐도 재미없어 보이는 학술서, 사람들의 눈길과 손길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조용한 책들. 이런 책들은 대출 횟수가 적어서 깨끗한 편이다. 하지만 퇴출 대상 일 순위다. 새로운 책들이 들어오면 나이 많고 인기 없는 책들은 수용소 같은 서고에 보관된다. 서고에도 자리가 없으면 상태가 좋지 못한 낡은 책들은 ‘헌책’으로 분류되어 쫓겨난다. 쓰레기로 취급받아 무더기로 버려지고 폐기물 처리장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어쩌면 내가 찾지 못한 책도 그런 운명에 휘말렸으리라.
우치다 선생은 도서관에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서관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책과 독서의 가치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선생은 사람 소리 한 점 없는 한적한 도서관에 있으면 제일 먼저 책이 눈에 들어온다고 말한다. 그는 수많은 장서를 바라볼 때마다 자신의 무지함을 깨닫는다. ‘내가 몰랐던 책들이 엄청 많구나. 이 책들 다 읽을 수 있으려나?’ 선생이 좋아하는 도서관은 그곳에 책을 보러 온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편안하지 않은 도서관’은 사람들의 무지함을 넌지시 알려 준다. ‘넌 모르는 게 아주 많아.’ 도서관의 따끔한 목소리가 귀에 꽂힌 사람은 각성해서 ‘진정한 독자’가 된다. 무지한 독자는 알고 싶은 새로운 정보를 머릿속에 채우기 위해 책을 읽는다. 죽을 때까지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전부 다 읽을 수 없다. 그렇지만 애서가는 피할 수 없는 삶의 한계를 알면서도 도서관으로 직진한다. 그곳에서 닥치는 대로 읽는다.
책을 상품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도서관에 절대로 들어올 수 없다. 그들은 상품성이 있는 책들, 즉 잘 팔리는 책이나 실생활에 쓸모 있는 책들을 고른다. 도서관에 이런 사람이 너무 많으면 책은 도서관 방문자를 유혹하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내용이 좋은데도 인기 없는 책은 도서관이 자랑하고 싶은 상품이 아니다. 조용한 책은 독자를 만나지 못하고 어느 순간 사라진다. 좋은 책을 내다 버린 도서관은 나쁘다. 심지어 머리도 나쁘다.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책을 기억 못하다니. “저기요, 내가 찾으려는 자료가 있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