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크(baroque)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바로크란 무엇인가》(한국문화사, 2015)를 먼저 보는 게 효과적이다. 이 책은 바로크가 어떤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책의 저자는 르네상스(Renaissance)와 종교개혁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바로크가 출현한 과정과 이를 문학과 예술 등 각각 장르가 어떻게 수용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바로크에 대한 예술사가들의 비평을 조망하면서 다양한 정의와 특징을 가진 바로크의 무궁무진한 힘을 보여준다.

 

 

 

 

 

 

 

 

 

 

 

 

 

 

 

 

 

 

 

* 앙리에트 르빌랭 《바로크란 무엇인가》(한국문화사, 2015)

* 한명식 《바로크, 바로크적인》(연암서가, 2018)

* 프레데릭 다사스 《바로크의 꿈 : 1600-1750년 사이의 건축》(시공사, 2000)

 

 

 

바로크는 르네상스와 약간 결을 달리한다. 둘 다 인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르네상스가 이성과 조화를 지향한다면 바로크는 감성과 직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던 유럽에서 어떻게 찌그러지고 과장된 바로크 예술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종교개혁에서 찾을 수 있다.

 

 

 

 

 

 

 

 

 

 

 

 

 

 

 

 

 

 

* 올리비에 크리스텡 《종교개혁 : 루터와 칼뱅, 프로테스탄트의 탄생》(시공사, 1998)

* 이동희 《꺼지지 않는 불, 종교개혁가들》(넥서스CROSS, 2015)

 

 

 

종교개혁이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장 칼뱅(Jean Calvin)을 위시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개신교)가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종교 개혁은 새로운 신앙 원리에 바탕을 둔 시도였으나 결과적으로 가톨릭교회를 분열시키고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수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개혁 운동은 칼뱅이 등장하면서 철저하게 가톨릭과 결별했고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칼뱅은 신도들도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신앙과 윤리를 결합하였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미술도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되었다.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의 공세에 대항하고, 기독교 미술의 부흥을 위해 반종교개혁 운동을 일으켰다. 가톨릭 성직자들은 예술 작품이야말로 신도들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매체라고 여겼다. 이 과정에 이용된 게 바로크 미술이다. 바로크 미술은 반종교개혁에 앞장섰던 미술이다. 가톨릭은 신 중심의 전통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교회와 성당뿐만 아니라 궁전과 예배당을 세웠다. 이 모두는 현세와 내세, 생활과 믿음을 하나로 결합하려는 종교적 신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17~18세기 프랑스로 건너간 바로크 미술은 절대주의의 영향 속에서 왕권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화려한 장식으로 가득한 사치스러운 건축물이 등장했다. 바로크 미술은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웅장한 규모의 작품을 통해 격정적이고 감성적인 양식을 추구했다. 그래서 낯설고, 과장된 바로크에 대해 과거에는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여겨진 적도 있었다. ‘비뚤어진(찌그러진, 울퉁불퉁한) 진주’를 뜻하는 바로크는 처음부터 썩 좋은 의미의 용어는 아니었다.

 

 

 

 

 

 

 

 

 

 

 

 

 

 

 

 

 

 

* [No Image] 하인리히 뵐플린 《미술사의 기초 개념》(시공사, 1994)

* 빅토르 L. 타피에 《바로크와 고전주의》(까치, 2008)

 

 

 

19세기 말까지 바로크는 르네상스 예술의 쇠퇴를 보여주는 사조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스위스의 예술사가 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ölfflin)은 바로크 미술과 르네상스 미술의 양식적 형태를 비교하여 두 예술을 구분 짓는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르네상스 미술의 공간성을 폐쇄적 구조로 보고, 바로크 미술의 개방성과 대립시켜 설명했다. 그리고 르네상스 미술은 선적이어서 윤곽이 뚜렷한 특징이지만, 바로크 미술은 색채의 효과를 위해 윤곽의 명료함을 포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뵐플린은 두 예술의 특징을 대조하면서 설명했지만,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관계를 ‘대립’ 또는 ‘단절’로 보지 않는다. 그는 바로크를 르네상스의 ‘변형’으로 평가했다.

 

스페인의 철학자 에우헤니오 도르스(Eugenio D’ors)는 1935년에 발표한 《바로크론》에서 바로크를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보편적인 상수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바로크론》은 바로크의 정의를 설명하는 개론서로 보기 어렵다. 바로크에 대한 도르스의 애정이 듬뿍 담은 ‘바로크 예찬론’ 정도로 봐야 한다.

 

1950~1960년대에 ‘바로크 재평가’ 붐이 일어났고, 1957년에 나온 토르 뤼시앵 타피에(Victor Lucien Tapie) 《바로크와 고전주의》(까치, 2008)는 그간 부정적인 뉘앙스로 평가받던 바로크를 복권한 책이다. 타피에는 16~18세기 유럽 시대의 상황을 주목하면서, 종교개혁 이후에 바로크가 태동하는 과정을 강조했다. 그는 또 군주의 절대 권력이 강화되었던 17세기 프랑스가 바로크를 수용하는 과정을 살핀다. 바로크를 바라보는 타피에의 관점은 이미 앞서 언급했다. 즉, 바로크는 종교개혁과 절대 왕정 시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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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바로크적인
한명식 지음 / 연암서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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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중반의 문화 양식을 지칭하는 ‘바로크(baroque)는 ‘비뚤어진 모양의 진주’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온 말이다. 바로크 시대 이전은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였다. 이 시기의 예술가들은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과 문학, 인체와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를 함으로써 자연의 형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했다. 완전한 원형(圓形)을 그리는 것이 르네상스 미술이라고 하면, 윤곽선이 뭉개진 원형을 그리고자 하는 것은 바로크 미술이다.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그림에 우주의 질서를 새겨 넣었다. 특히 그가 그린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른 인체 비례도』는 수학과 기하학 지식을 동원해 사람의 몸을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서 표현된 비례는 바로 고대와 중세 때 이상적인 건축물을 짓는데 적용돼 왔다. 특히 미켈란젤로(Michelangelo)가 만든 조각상 『다비드』는 비례와 균형의 아름다움의 정점을 보여준 걸작이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의 그림 속 인물들은 윤곽 전체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다.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프란스 반닝코크 대장과 빌렘 반 로이텐부르그의 민방위대』(‘야간 순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그림)에 나온 몇몇 순찰대원들은 어둠 속에 묻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뭔가 완벽하지 않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단체 초상화는 인물들을 줄지어 세우거나 탁자를 중심으로 질서 정연하게 배열해 그리는 것이 전통이었다. 렘브란트는 이를 무시하고, 명암 대비를 사용해 인물의 표정이나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 렘브란트가 활동하기 이전에 이미 명암법(Tenebrism)을 그림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화가는 카라바조(Caravaggio)이다. 그는 이 명암법을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와 고뇌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르네상스보다 바로크의 미(美)는 한참 뒤떨어진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게 바로 ‘바로크’다운 아름다움이고, ‘바로크적’이다.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그림 속에는 바로크의 특징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바로크는 불필요한 것을 버릴 줄 알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걸 묘사하고 형상을 겹치지 않게 다 드러내는 것이 항상 더 큰 효과를 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바로크는 질서 정연한 완벽함보다는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삶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세계관을 지향한다. 지나치게 화려할 것만 같은 바로크 양식 속에 바로크 시대 사람들 특유의 우울함과 진중함이 은밀하게 스며들어 있다. 이 바로크적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바로크적 아름다움의 참된 가치를 알아낼 수 없다.

 

《바로크, 바로크적인》은 ‘과장된 아름다움’의 시대로 알려진 바로크를 예술적인 관점으로만 분석하여 소개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인 한명식 대구한의대 건축디자인학부 교수는 바로크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과 삶의 진실을 찾으려는 성찰이 공존한 시대’라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크의 특징은 ‘과장된 장식성’과 ‘귀족적인 화려함’이다. 그러나 바로크 인들은 외양적인 아름다움에 만족하지 않았다. 바로크가 보여준 화려함은 바로크 인들의 자신감에 대한 표현이라기보다는 혼란과 격변의 시기에 사는 바로크 인들의 고독과 우울감이 만들어 낸 문화적 산물이다. 바로크 시대의 유럽은 혼돈의 절정이었다. 곳곳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종교개혁으로 교황의 권위는 쇠퇴해가고 있었다. 지동설을 중심으로 한 우주론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지구와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로써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를 직면하게 됐다. 이러한 시대적 혼란은 바로크 시대의 문학, 철학,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

 

바로크 인들은 세상을 ‘거대한 연극’으로 인식했고, 연극 무대 위에 오른 자신의 삶이 시시각각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물질적 욕망과 쾌락을 누릴 수 있지만,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언젠가는 죽는다.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은 세상살이에 대한 자기 생각을 작품에 담아냈다. 그래서 바로크 시대의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한한 삶에 대한 바로크 인들의 진지한 사유와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게 바로 바로크적 세계관이 반영된 바로크의 아름다움이다. 바로크 인들은 완벽한 질서 속에 아름다움을 찾는 르네상스 양식을 저버리고, 어둡고 불안정한 심연 속에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 화려한 바로크 예술의 이면에는 영혼 깊은 곳에서 울리고 터지는 심연이 숨어 있다. 그러나 바로크 인들은 심연의 나락 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들에게 심연은 불완전한 자신, 즉 ‘나’라는 인간을 돌아보게 해주는 거울이다. 인간에게 누구나 있는 내면의 심연은 몸과 정신을 병들게 하지만, 그 심연의 실체를 직시하고 심연으로부터 나오는 자신의 진실한 목소리를 들으면 삶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바로크적 성찰이 성과주의에 고통스러워하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신이라고 단언한다. 세상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변하는데 자기 마음속 심연이 주는 쓰라린 고통을 혼자서 감당하면 결국 자신만 괴로울 뿐이다.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가는 생활이야말로 지옥이다. 일생을 그렇게 보낸다면 삶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덧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과 욕망에서 몇 걸음 물러나 자기 자신 속에 침잠할 줄 아는 ‘바로크적 성찰’이 필요하다.

 

 

 

 

※ Trivia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색인’과 ‘참고문헌’이 없으면 ‘쓰다 만 듯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책 71쪽에 오류가 있다.

 

 

 그의 저서 ‘독일 국민에게 고함’은 루터가 처음으로 독일인으로서의 국민의식적 차원에서 로마 교황 세력에 의한 재정적 수탈이나 성직매매, 그 외에 국민생활을 압박하고 올바른 신앙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악폐를 열거하며, 통치 권력을 신에게 위임받은 귀족에게 교회생활 전반의 개혁을 돕도록 호소하는 내용을 같이 담고 있다.

 

 

내가 인용한 71쪽의 문장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에 대한 설명의 일부이다. 저자는 교회 개혁을 촉구하는 루터의 ‘독일 민족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 고함’《독일 국민에게 고함》으로 잘못 썼다. 이 책은 독일의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가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침체된 독일의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쓴 것이다.

 

 

 

 

102쪽에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의 그림 도판이 있다. 책에는 그림 제목을 ‘합성된 머리’라고 적혀 있는데, 널리 알려진 제목은 ‘여름’이다.

 

340쪽에 있는 오자 ‘호심탐탐’을 ‘호시탐탐’으로 고쳐야 한다.

 

2쇄가 나올 때 오류와 오자를 고치고, 색인과 참고문헌이 추가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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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18-10-04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크적인 표현 방식은 ‘시‘와 비슷했군요.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았다는 점에서. .

cyrus 2018-10-04 12:16   좋아요 1 | URL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바로크 시대의 시인들은 시를 간결하게 쓰지 않았어요. 그들이 쓴 시 대부분은 내용이 길어요.. ㅎㅎㅎㅎ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 (반양장) -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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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상. 확실해. 내가 인상을 받았으니 그 안에 틀림없이 인상이 들어 있을 거라 혼잣말을 했지. 그림 참 쉽게 그리네! 벽지 문양을 위한 초벌 드로잉이 차라리 이 바다 풍경보다는 완성도가 더 높을 거야.”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는 그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작품들을 선보인다. 모네(Monet), 드가(De Gas), 르누아르(Renoir), 세잔(Cezanne) 등 화가들이 기존의 미술계에서 받아주지 않던 자신들의 그림을 전시한 것이다. 그러나 전시는 호응을 얻지 못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당시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평론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는 「인상주의자들의 전시」라는 글을 통해 “벽지 문양 그림이 모네의 그림보다 더 낫다”라고 혹평했다. 그리고는 이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인상주의자’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인상주의’라는 명칭은 바로 이 글에서 비롯됐다.

 

당시에는 그림의 대상을 뚜렷하게 묘사하지 않는 인상주의 화풍에 많은 사람이 낯설어했다. 그동안 그들이 익숙하게 접해 왔던 고전적인 회화와는 전혀 딴판의 그림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고전미술의 목표는 ‘자연의 모방’을 넘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고전미술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것은 한때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것, 즉 고대 그리스 · 로마의 고상한 미적 가치를 재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상주의자들은 원근법, 비례 등의 전통적 관습을 거부하고 색채와 빛을 통하여 찰나의 감각을 표현하려 했다. 고전미술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 인상주의 화풍의 가장 큰 특징은 빛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사물을 찍는 것처럼 정지된 풍경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실체를 화폭에 옮기는 기법이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휴머니스트, 2018)은 인상주의가 싹틀 무렵인 쿠르베(Courbet)사실주의부터 아르누보(Art Nouveau)까지의 전개상을 따라간다. 예술을 몇 마디로 정의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19세기 미술 또한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범주일 것이다. 예컨대 19세기 미술이 파리에서 일어난 인상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인상주의 편》은 19세기 미술을 8개 범주로 분류한다. ‘프랑스 사실주의’, ‘프랑스 밖 사실주의’, ‘프랑스 인상주의’, ‘라파엘 전파’, ‘신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아르누보’ 등 8개 범주가 19세기 미술의 중심 사조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 책 한 권으로 19세기 중후반에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운동의 여러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마네(Manet), 모네, 피사로(Pissarro), 시슬레(Sisley), 르누아르, 드가, 쇠라(Seurat), 고흐(Gogh), 고갱(Gauguin), 세잔 등이 활동한 이 시기는 고전미술의 시대를 마감시키고 모더니즘 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인상주의의 등장은 서양미술사에 있어 엄청난 사건이다. 고흐, 고갱으로 이어지는 후기 인상주의를 낳았을 뿐 아니라 20세기 초반 다양한 미술 사조의 뿌리가 돼 현대미술의 태동에 영향을 끼쳤다. 입체파, 야수파, 추상파, 표현주의 등으로 분화되는 20세기 미술의 원천이 된 것이다. 저자는 당대 상황의 변화에 대한 세세한 스케치를 놓치지 않는다. 그는 사진술의 발명일본 판화 우키요에의 유입을 과거보다 훨씬 유동적인 19세기 미술에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 꼽는다. 19세기 중반 사진기의 보급은 사진의 특성을 회화에 도입하는 계기가 되어 인상주의로 비롯된 새로운 회화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 인상주의자들은 우키요에의 강렬한 색채, 과감한 시점 처리, 현대적인 화면구성에 매료됐다. 모네는 방안을 우키요에로 가득 채울 정도로 열렬한 수집광이었고, 고흐는 우키요에를 모사한 그림을 제작했다. 우키요에가 불러일으킨 열풍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자포니슴(Japonism)이라고 하는 문화적 경향으로 확산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시기는 모더니즘 미술의 여명기이자 현대미술의 서막이다. 세계관의 변화는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화가들은 실물 그리기를 포기했고, 실제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필요했던 원근법과 명암법마저도 과감하게 버렸다. 형태 묘사보다는 빛의 변화에 주목했던 인상주의 화법에서도 탈피해 작가 자신의 감각과 주관에 의존하는 미술작업이 새로운 기류를 형성해 나갔다. 입체파, 야수파, 표현주의 등이 20세기 초의 새로운 미술을 주도해 나갔다. 50여 년 동안 과거 예술과 구별되는 새로운 예술들이 연쇄적으로 탄생했다. 이 시기에 활동한 어떤 화가가 어느 회화 유파에 속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미술운동의 연쇄적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파(派)’, ‘-주의(ism)’는 후대 학자들이 편의상 규정해 붙인 이름일 뿐이다. 마네는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많이 언급되지만, 실제로 자기 스스로 인상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피카소(Picasso)를 입체파 화가로 알려졌으나 야수파, 표현주의에도 속한다. 고흐 역시 분할주의(점묘로 대상을 표현하는 신인상주의의 기법), 표현주의 등 다양한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다. 따라서 《인상주의 편》은 19세기 미술의 성과를 인상주의에만 초점을 맞춰 보려는 협소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적 · 문화적 연계 하에 고전미술을 탈피한 새로운 예술 언어들을 살펴보려는 거시적인 관점이 돋보인다.

 

 

 

 

 

* Trivia

 

1955년 쿠르베는 또 하나의 사실주의 걸작 <화가의 작업실>을 그린다. (49쪽)

 

→ 1855년을 ‘1955년’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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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5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5 15:17   좋아요 1 | URL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2년에 ‘난 알아요‘로 데뷔했을 때 신인 가수를 소개하고 평가받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현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작사가, 작곡가(하광훈 씨라고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작곡한 사람)들이 서태지의 노래를 가혹하게 평가했어요. 그런데 전영록은 ‘노래를 듣는 대중 의 판단에 맡기겠다‘라면서 서태지의 노래에 낮은 점수를 주지 않았어요. 전영록의 평가가 옳았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가요계는 확 달라졌어요. 비평가들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볼 수 없어요.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
 
강박적 아름다움 - 언캐니로 다시 읽는 초현실주의
핼 포스터 지음, 조주연 옮김 / 아트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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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서구 지식인들은 과연 자신들이 신뢰했던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진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구 문명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반동적 미술을 추구한 이들이 ‘초현실주의자’들이다. 이 움직임의 중심에서 살바도르 달리는 꿈과 환상의 세계를 회화로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 그는 이성적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무의식을 파헤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매료되어 그의 개념과 용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정작 프로이트는 초현실주의자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초현실주의 운동의 중심적 인물이었던 앙드레 브르통은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의 조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꿈과 현실의 관계 및 예술의 의미를 둘러싼 프로이트와 브르통의 견해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리와 브르통, 두 사람은 각각 실제로 프로이트를 만난 적이 있다. 두 초현실주의자는 프로이트가 초현실주의에 대해 뭔가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이성과 합리성을 부정하는 초현실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꿈의 세계를 지향하는 사조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초현실주의와 정신분석학은 서로 밀어내는 상극의 관계인가? 미국의 미술사학자 핼 포스터는 두 진영의 입장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 초현실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그는 이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프로이트가 제시한 ‘언캐니(uncanny)’라는 개념을 선보인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언캐니는 익숙한 대상에게서 어느 한순간 감지되는 낯선 불안감을 의미한다.

 

프로이트는 《쾌락원리 너머》(부북스, 2013)라는 책에서 리비도(Libido, 성 욕동) 탐구에만 집중됐던 자신의 기존 정신분석학 이론을 뒤엎고 ‘죽음 욕동’ 개념을 도입한다. 따라서 인간은 리비도가 포함된 삶 욕동뿐만 아니라 죽음 욕동, 즉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삶 욕동과 죽음 욕동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서로 맞닿아 있다. 언캐니는 죽음 욕동과 관련 있는 필연적 요소이다. 프로이트는 거세와 죽음을 떠오르게 하는 억압 상태를 언캐니의 형태로 봤다. 즉, 불안은 거세와 죽음의 위협에 대한 반응이고, 억압의 형태로 나타난다. 내적 불안과 두려움이 일상의 친숙한 사물들을 낯설게 느껴지는 공포(언캐니)로 돌변하는 상황으로 만든다.

 

초현실주의자들은 프로이트의 죽음 욕동 개념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핼 포스터는 초현실주의자들도 죽음 욕동 개념을 감지했으며 언캐니가 몇몇 초현실주의 작품(앙드레 브르통, 조르조 데 키리코, 막스 에른스트, 자코메티 등) 속에 녹아들었다고 주장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사랑과 죽음, 쾌락과 고통과 같은 주제에 몰두했다. 자살과 사디즘(Sadism)은 각각 자신과 타인을 죽음으로 이르는 행위다. 이 두 가지 행위는 억압을 해소하려는 과격한 분출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살 또는 사디즘의 형태로 발현된 죽음 욕동을 직감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자연계 질서에 일어난 파열을 ‘경이’라고 표현했다. 자연계 질서, 즉 기존 현실이 파괴되면 혼란이 극에 달하고, 혼란에 빠진 세계가 향하는 파멸의 길은 곧 죽음의 길이다. 여기서 초현실주의자들은 ‘경이로운 과정’ 속에서 억압된 것(죽음)이 주는 섬뜩한 것(언캐니)에 아름다움을 반복적으로 느낀다. 핼 포스터는 언캐니가 일으키는 반복적이고 강박적 성질‘강박적 아름다움(또는 발작적 아름다움)’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초현실주의자들이 남긴 텍스트와 각종 미술작품을 분석하면서 그 속에 함축된 죽음 욕동, 외상, 강박적 아름다움 등을 찾아내고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언캐니의 공포를 '강박적 아름다움'으로 변주하여 죽음에 대한 외상을 다스리려고 했다

 

핼 포스터는 초현실주의의 지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 세 가지 나침반을 준비한다. 세 가지 나침반이란 앞서 언급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문화론, 그리고 초기 인류학이다. 이 세 가지 나침반은 초현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준 담론이다. 예술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현대미술은 여전히 어렵다. 특히 현대미술로 분류되는 초현실주의 미술은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초현실주의 미술을 새로 해석한 핼 포스터의 책은 어렵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초현실주의 미술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브르통이 ‘우연히 발견된 오브제’로 명명한 골동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을 설명한 2장, 관절 인형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한 한스 벨머를 분석한 4장의 주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 주는 글(『벼룩시장에서 태어나다: 마티스의 ‘영감’에서 네자르의 ‘작품’까지』, 『죽음과 사랑: 벨머의 인형과 섹슈얼리티』)이 《진중권 미학 에세이》(씨네21북스, 2013)에 수록되어 있으니 참고가 될 것이다. 이번에 나온 《강박적 아름다움》은 십여 년 전에 나온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아트북스, 2005)의 개정판이다. 새롭게 번역한 개정판은 읽기 쉽지 않은데, 오역이 있는 구판 번역본을 읽었던 독자들은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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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8-04-0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어려워요. ㅜㅜ; 역시 cyrus님.@_@; (슬그머니 도망-_-;;;;;)

cyrus 2018-04-04 12:22   좋아요 0 | URL
리뷰를 썼을 때 머리에 쥐가 났습니다... ㅎㅎㅎ

sprenown 2018-04-03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 미술평론 수준의 고급진 글. 좋아요. 초현실주의 하면 르네 마그리트를 빼놓을 순 없죠^^ .

cyrus 2018-04-04 12:23   좋아요 0 | URL
미술평론 수준까진 아니에요.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건데요. 이 책은 정말 어렵습니다. ^^;;
 

 

 

 

사진.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죽은 뒤에도 후세에 전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발명이다. 사진술(Photography)은 그리스어의 ‘photos(빛)’와 ‘graphien(그리다)’를 합친 단어다. ‘빛으로 대상을 그리는’ 사진의 재현성은 기계가 침범할 수 없을 것 같던 인간의 정신적 표현영역인 예술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 보먼트 뉴홀 《사진의 역사》 (열화당, 2003)

* [절판, No Image] 보먼트 뉴홀 《잠상》 (해뜸, 1995)

* 장 뤽 다발 《사진예술의 역사》 (미진사, 1991)

 

 

 

 

다게르(Daguerre)가 발명한 은판사진이 1839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으면서 사진의 역사가 시작됐다. 1839년은 사진이 공식적으로 탄생한 해로 인정받고 있다. 다게르 이전에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라는 장치를 이용해 사진을 찍듯이 그림을 그린 화가들이 있었고, 프랑스의 조지프 니엡스(Joseph Niépce)는 1827년에 자신의 집 창밖으로 내다본 풍경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문제는 니엡스의 사진기는 노출 시간이 무려 8시간이나 소요돼 인물사진을 찍기에는 매우 부적합했다. 니엡스는 다게르와 함께 사진술을 개발하기로 협의했으나 동업 계약에 서명한 지 4년 후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홀로 남은 다게르는 연구에 매진해 국가가 공인한 사진 발명가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다게르의 이름을 딴 사진기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은 장시간 노출을 해야 했기 때문에 풍경이 아닌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해선 20분 동안 사람이 움직일 수 없었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다게레오타입은 ‘상품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특징지어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적합한 발명품이다.

 

에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의 《서양미술사》가 서양미술사의 고전이라면, 보먼트 뉴홀(Beaumont Newhall)《사진의 역사》서양 사진예술사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뉴홀은 1908년 미국에서 태어났고, 곰브리치는 이듬해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1947년에 영국 국적을 취득했고 1950년에 《서양미술사》를 발표했다). 뉴홀은 하버드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지만, 뉴욕 현대미술관(MOMA) 사서 및 사진 분야 전문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사진의 역사》 초판은 1937년 뉴욕 현대미술관이 주최한 전시회 <사진 1839~1937> 카탈로그를 통해 발표되었다. 뉴홀은 1982년에 개정, 증보한 5판을 발표했는데, 국역본은 제5판을 저본으로 삼았다. 부제가 말하는 ‘현재’는 1980년대를 가리킨다. 2003년에 출간된 중판 번역본부터 부제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편집 방식, 외국어 표기법이 달라졌을 뿐 초판 번역본과 내용이 같다. 뉴홀은 1993년에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현재 구할 수 있는 《사진의 역사》 국역본에는 1990년대 사진예술에 대한 내용이 없다.

 

 

 

 

 

《사진의 역사》 국역본 초판(구판)은 ‘열화당 미술선서’ 60번째 책으로 선보였다. 정가는 9,500원. 구판이 나온 지 이십 년이 흘렀는데, 그 사이에 책값이 28,500원 인상되었다. 부담스러운 책값 때문에 헌책방에 전전하면서 구판을 구하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구판에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구판의 오류를 한 번에 알아보며 스스로 고칠 자신이 없으면 중판을 사는 게 낫다.

 

《잠상 : 사진술의 발견》 은 잘 알려지지 않은 뉴홀의 또 다른 저서이다. 1983년에 발표된 책의 원제는 <Latent Image>다. 잠상(潛像)이란 사진이 인화되기 전 필름 안에 있는 상을 말한다. 잠상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영국의 윌리엄 헨리 폭스 탤벗(William Henry Fox Talbot)이 발명한 칼로타입(calotype)은 잠상을 이용한 사진술이다. 뉴홀은 서문에서 《잠상 : 사진술의 발견》이 ‘사진을 연구한 과학자들의 역사’를 다뤘다고 말했다. 이 책은 다게르, 니엡스, 탤벗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시작된 초기 사진술의 발전 과정을 다루고 있다. 사진 초창기 역사를 심도 있게 설명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알라딘에서 이 책을 검색하기가 쉽지 않다. ‘보먼트 뉴홀’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잠상 : 사진술의 발견》의 저자명이 영문(BEAUMONT NEWHALL)으로 입력되어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명인 ‘해뜸’과 책 제목 ‘잠상’을 함께 검색하면(‘해뜸 잠상’으로) ‘표지 없는 책’이 나온다.

 

 

 

 

 

장 뤽 다발(Jean Luc Daval)《사진예술의 역사》도 예술매체로서 사용된 사진의 역사를 풍부한 도판과 함께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의 원서 역시 나온 지 꽤 오래됐지만(1973년에 초판 발표, 국역본 저본은 1982년에 나온 제4판이다), 사진술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 [절판] 최인진 《한국사진사 1631~1945》 (눈빛, 1999)

* 최인진, 박주석, 한국사진연구소 《한국사진의 한 세기》 (시각, 2015)

 

 

 

故 최인진 씨는 1978년에 한국사진사연구소를 설립하여 한국 사진 역사 관련 자료를 발굴하는 데 힘써왔다. 그는 2016년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1999년에 쓴 《한국사진사 1631~1945》는 한국 근현대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희귀 사진 자료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이다. 최 씨는 한국사진연구소 소속 회원들과 함께 《한국사진의 한 세기》를 2001년에 출간했고, 2015년에 개정증보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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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3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3 17:42   좋아요 2 | URL
유레카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저는 죽을 때까지 사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예요. 사진이 ‘예술’의 한 장르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사진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어요. 청소년을 위한 서양미술사 책이 나오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사진의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저조합니다.

레삭매냐 2018-01-24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직접 필카 시절에 사진을 찍고
그럴 적에 열화당에서 나온 유명 작가 시리즈를
하나씩 사서 모으던 시절 생각이 나네요.

역시 대가의 사진을 보면 사진 찍는데 도움이
되긴 하는 것 같더군요.

지금은 필카와 다른 디카 그리고 더 진화한
폰카 시절이라 그 때와 비교하기가 그러네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숨도 멈춰 가며 찍던
시절이었네요. 현상 인화까지 배웠을 땐 더더
욱 재밌었군요.

cyrus 2018-01-24 16:35   좋아요 1 | URL
혹시 래샥매냐님은 열화당 전설의 절판본 <카메라 루시다>를 가지고 계십니까? 저는 사진을 찍을 줄 모르지만, 사진을 감상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사진 책을 모으게 됐어요. ^^

레삭매냐 2018-01-24 16:41   좋아요 0 | URL
그 전설의 책은 저도 실물도 보지 못했네요 :>
없답니다 -

아마 사진 감상하시는 걸 알게 되시면 직접
사진을 찍게 되실 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cyrus 2018-01-24 18:03   좋아요 0 | URL
한 달에 한번씩 yureka01님을 만납니다. 그 분 따라 다니다보면 저도 사진 찍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