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적 아름다움 - 언캐니로 다시 읽는 초현실주의
핼 포스터 지음, 조주연 옮김 / 아트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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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서구 지식인들은 과연 자신들이 신뢰했던 인간의 이성에 근거한 진보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인가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구 문명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반동적 미술을 추구한 이들이 ‘초현실주의자’들이다. 이 움직임의 중심에서 살바도르 달리는 꿈과 환상의 세계를 회화로 재현하는 데 몰두했다. 그는 이성적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무의식을 파헤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매료되어 그의 개념과 용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을 남겼다. 그러나 정작 프로이트는 초현실주의자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초현실주의 운동의 중심적 인물이었던 앙드레 브르통은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의 조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꿈과 현실의 관계 및 예술의 의미를 둘러싼 프로이트와 브르통의 견해가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리와 브르통, 두 사람은 각각 실제로 프로이트를 만난 적이 있다. 두 초현실주의자는 프로이트가 초현실주의에 대해 뭔가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이성과 합리성을 부정하는 초현실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의 세계, 꿈의 세계를 지향하는 사조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초현실주의와 정신분석학은 서로 밀어내는 상극의 관계인가? 미국의 미술사학자 핼 포스터는 두 진영의 입장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 초현실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그는 이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프로이트가 제시한 ‘언캐니(uncanny)’라는 개념을 선보인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언캐니는 익숙한 대상에게서 어느 한순간 감지되는 낯선 불안감을 의미한다.

 

프로이트는 《쾌락원리 너머》(부북스, 2013)라는 책에서 리비도(Libido, 성 욕동) 탐구에만 집중됐던 자신의 기존 정신분석학 이론을 뒤엎고 ‘죽음 욕동’ 개념을 도입한다. 따라서 인간은 리비도가 포함된 삶 욕동뿐만 아니라 죽음 욕동, 즉 자신을 스스로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삶 욕동과 죽음 욕동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서로 맞닿아 있다. 언캐니는 죽음 욕동과 관련 있는 필연적 요소이다. 프로이트는 거세와 죽음을 떠오르게 하는 억압 상태를 언캐니의 형태로 봤다. 즉, 불안은 거세와 죽음의 위협에 대한 반응이고, 억압의 형태로 나타난다. 내적 불안과 두려움이 일상의 친숙한 사물들을 낯설게 느껴지는 공포(언캐니)로 돌변하는 상황으로 만든다.

 

초현실주의자들은 프로이트의 죽음 욕동 개념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핼 포스터는 초현실주의자들도 죽음 욕동 개념을 감지했으며 언캐니가 몇몇 초현실주의 작품(앙드레 브르통, 조르조 데 키리코, 막스 에른스트, 자코메티 등) 속에 녹아들었다고 주장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사랑과 죽음, 쾌락과 고통과 같은 주제에 몰두했다. 자살과 사디즘(Sadism)은 각각 자신과 타인을 죽음으로 이르는 행위다. 이 두 가지 행위는 억압을 해소하려는 과격한 분출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살 또는 사디즘의 형태로 발현된 죽음 욕동을 직감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자연계 질서에 일어난 파열을 ‘경이’라고 표현했다. 자연계 질서, 즉 기존 현실이 파괴되면 혼란이 극에 달하고, 혼란에 빠진 세계가 향하는 파멸의 길은 곧 죽음의 길이다. 여기서 초현실주의자들은 ‘경이로운 과정’ 속에서 억압된 것(죽음)이 주는 섬뜩한 것(언캐니)에 아름다움을 반복적으로 느낀다. 핼 포스터는 언캐니가 일으키는 반복적이고 강박적 성질‘강박적 아름다움(또는 발작적 아름다움)’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초현실주의자들이 남긴 텍스트와 각종 미술작품을 분석하면서 그 속에 함축된 죽음 욕동, 외상, 강박적 아름다움 등을 찾아내고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언캐니의 공포를 '강박적 아름다움'으로 변주하여 죽음에 대한 외상을 다스리려고 했다

 

핼 포스터는 초현실주의의 지도를 다시 그리기 위해 세 가지 나침반을 준비한다. 세 가지 나침반이란 앞서 언급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 문화론, 그리고 초기 인류학이다. 이 세 가지 나침반은 초현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준 담론이다. 예술을 좋아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현대미술은 여전히 어렵다. 특히 현대미술로 분류되는 초현실주의 미술은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초현실주의 미술을 새로 해석한 핼 포스터의 책은 어렵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초현실주의 미술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브르통이 ‘우연히 발견된 오브제’로 명명한 골동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을 설명한 2장, 관절 인형을 소재로 작품을 제작한 한스 벨머를 분석한 4장의 주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 주는 글(『벼룩시장에서 태어나다: 마티스의 ‘영감’에서 네자르의 ‘작품’까지』, 『죽음과 사랑: 벨머의 인형과 섹슈얼리티』)이 《진중권 미학 에세이》(씨네21북스, 2013)에 수록되어 있으니 참고가 될 것이다. 이번에 나온 《강박적 아름다움》은 십여 년 전에 나온 《욕망, 죽음 그리고 아름다움》(아트북스, 2005)의 개정판이다. 새롭게 번역한 개정판은 읽기 쉽지 않은데, 오역이 있는 구판 번역본을 읽었던 독자들은 오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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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8-04-0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어려워요. ㅜㅜ; 역시 cyrus님.@_@; (슬그머니 도망-_-;;;;;)

cyrus 2018-04-04 12:22   좋아요 0 | URL
리뷰를 썼을 때 머리에 쥐가 났습니다... ㅎㅎㅎ

sprenown 2018-04-03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 미술평론 수준의 고급진 글. 좋아요. 초현실주의 하면 르네 마그리트를 빼놓을 순 없죠^^ .

cyrus 2018-04-04 12:23   좋아요 0 | URL
미술평론 수준까진 아니에요.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건데요. 이 책은 정말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