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 - 미학의 눈으로 보는 현대미술의 태동 진중권의 서양 미술사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상. 확실해. 내가 인상을 받았으니 그 안에 틀림없이 인상이 들어 있을 거라 혼잣말을 했지. 그림 참 쉽게 그리네! 벽지 문양을 위한 초벌 드로잉이 차라리 이 바다 풍경보다는 완성도가 더 높을 거야.”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에서는 그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작품들을 선보인다. 모네(Monet), 드가(De Gas), 르누아르(Renoir), 세잔(Cezanne) 등 화가들이 기존의 미술계에서 받아주지 않던 자신들의 그림을 전시한 것이다. 그러나 전시는 호응을 얻지 못했다. 모네의 『인상, 해돋이』는 당시에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평론가 루이 르루아(Louis Leroy)는 「인상주의자들의 전시」라는 글을 통해 “벽지 문양 그림이 모네의 그림보다 더 낫다”라고 혹평했다. 그리고는 이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을 ‘인상주의자’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인상주의’라는 명칭은 바로 이 글에서 비롯됐다.

 

당시에는 그림의 대상을 뚜렷하게 묘사하지 않는 인상주의 화풍에 많은 사람이 낯설어했다. 그동안 그들이 익숙하게 접해 왔던 고전적인 회화와는 전혀 딴판의 그림이 전시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고전미술의 목표는 ‘자연의 모방’을 넘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고전미술에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것은 한때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것, 즉 고대 그리스 · 로마의 고상한 미적 가치를 재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인상주의자들은 원근법, 비례 등의 전통적 관습을 거부하고 색채와 빛을 통하여 찰나의 감각을 표현하려 했다. 고전미술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 인상주의 화풍의 가장 큰 특징은 빛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사물을 찍는 것처럼 정지된 풍경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실체를 화폭에 옮기는 기법이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인상주의 편》(휴머니스트, 2018)은 인상주의가 싹틀 무렵인 쿠르베(Courbet)사실주의부터 아르누보(Art Nouveau)까지의 전개상을 따라간다. 예술을 몇 마디로 정의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19세기 미술 또한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범주일 것이다. 예컨대 19세기 미술이 파리에서 일어난 인상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인상주의 편》은 19세기 미술을 8개 범주로 분류한다. ‘프랑스 사실주의’, ‘프랑스 밖 사실주의’, ‘프랑스 인상주의’, ‘라파엘 전파’, ‘신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아르누보’ 등 8개 범주가 19세기 미술의 중심 사조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 책 한 권으로 19세기 중후반에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운동의 여러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마네(Manet), 모네, 피사로(Pissarro), 시슬레(Sisley), 르누아르, 드가, 쇠라(Seurat), 고흐(Gogh), 고갱(Gauguin), 세잔 등이 활동한 이 시기는 고전미술의 시대를 마감시키고 모더니즘 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인상주의의 등장은 서양미술사에 있어 엄청난 사건이다. 고흐, 고갱으로 이어지는 후기 인상주의를 낳았을 뿐 아니라 20세기 초반 다양한 미술 사조의 뿌리가 돼 현대미술의 태동에 영향을 끼쳤다. 입체파, 야수파, 추상파, 표현주의 등으로 분화되는 20세기 미술의 원천이 된 것이다. 저자는 당대 상황의 변화에 대한 세세한 스케치를 놓치지 않는다. 그는 사진술의 발명일본 판화 우키요에의 유입을 과거보다 훨씬 유동적인 19세기 미술에 영향을 끼친 요인으로 꼽는다. 19세기 중반 사진기의 보급은 사진의 특성을 회화에 도입하는 계기가 되어 인상주의로 비롯된 새로운 회화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 인상주의자들은 우키요에의 강렬한 색채, 과감한 시점 처리, 현대적인 화면구성에 매료됐다. 모네는 방안을 우키요에로 가득 채울 정도로 열렬한 수집광이었고, 고흐는 우키요에를 모사한 그림을 제작했다. 우키요에가 불러일으킨 열풍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자포니슴(Japonism)이라고 하는 문화적 경향으로 확산했다.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시기는 모더니즘 미술의 여명기이자 현대미술의 서막이다. 세계관의 변화는 미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화가들은 실물 그리기를 포기했고, 실제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필요했던 원근법과 명암법마저도 과감하게 버렸다. 형태 묘사보다는 빛의 변화에 주목했던 인상주의 화법에서도 탈피해 작가 자신의 감각과 주관에 의존하는 미술작업이 새로운 기류를 형성해 나갔다. 입체파, 야수파, 표현주의 등이 20세기 초의 새로운 미술을 주도해 나갔다. 50여 년 동안 과거 예술과 구별되는 새로운 예술들이 연쇄적으로 탄생했다. 이 시기에 활동한 어떤 화가가 어느 회화 유파에 속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미술운동의 연쇄적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파(派)’, ‘-주의(ism)’는 후대 학자들이 편의상 규정해 붙인 이름일 뿐이다. 마네는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많이 언급되지만, 실제로 자기 스스로 인상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피카소(Picasso)를 입체파 화가로 알려졌으나 야수파, 표현주의에도 속한다. 고흐 역시 분할주의(점묘로 대상을 표현하는 신인상주의의 기법), 표현주의 등 다양한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다. 따라서 《인상주의 편》은 19세기 미술의 성과를 인상주의에만 초점을 맞춰 보려는 협소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사회적 · 문화적 연계 하에 고전미술을 탈피한 새로운 예술 언어들을 살펴보려는 거시적인 관점이 돋보인다.

 

 

 

 

 

* Trivia

 

1955년 쿠르베는 또 하나의 사실주의 걸작 <화가의 작업실>을 그린다. (49쪽)

 

→ 1855년을 ‘1955년’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6-25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6-25 15:17   좋아요 1 | URL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2년에 ‘난 알아요‘로 데뷔했을 때 신인 가수를 소개하고 평가받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현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작사가, 작곡가(하광훈 씨라고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작곡한 사람)들이 서태지의 노래를 가혹하게 평가했어요. 그런데 전영록은 ‘노래를 듣는 대중 의 판단에 맡기겠다‘라면서 서태지의 노래에 낮은 점수를 주지 않았어요. 전영록의 평가가 옳았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나라 가요계는 확 달라졌어요. 비평가들의 말이 무조건 맞다고 볼 수 없어요.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