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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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충실한 하이쿠 번역서이자 해설서. 시인이 번역해서 더 좋다. 여기 소개된 짤막한 시들을 몇 번을 입속으로 곱씹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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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예술개론 눈빛시각예술선서 6
한정식 지음 / 눈빛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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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전시에 갔다가 한정식 작가의 ˝고요˝ 시리즈에 반해서 그의 교수 시절 저서를 사서 읽어봤다. 절판 된지 오래라 중고 서점을 뒤져서 구했다.


무려 ˝개론˝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옛스러운 책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잘 읽힌다. 사진 좋아하는 털보 아저씨가 ‘어이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라고 애정어린 참견을 하는 느낌을 주는 책이랄까. 아무튼 왜 이제서야 이 책을 읽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핵심을 찌르는 좋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침 흘리며 읽을 것이니.


이 책에서 얻은 가장 귀중한 배움은, 사진은 그림이라기보다 글이라는 것이다. 사진은 회화가 아니라 이야기다. 한 편의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짤막하지만 울림을 크게 주는 시 한 수가 될 수도 있다. 현실에 없는 걸 상상으로 지어낼 수 없다. 현실을 포착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주제가 있어야 한다.


나의 사진이 예술에 닿는다는 건 까마득한 일이겠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막막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나는 그저 어디선가 본듯한 근사한 그림을 흉내낸 예쁜 사진을 추구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이걸 왜 찍는 지 생각하기 전에, 그럴듯한 소재를 그럴듯한 구도와 색상으로 담으려고 덤벼들기 바빴지는 않았나.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고 사진을 보는 사람들을 어디로 데려가고 그들이 무엇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지를 고민하고 생각해보는 일은 사진이라는 즐거움을 더 깊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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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佛經)
이중표 편역 / 불광출판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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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불전인 ˝니까야˝를 모두 모아놓은 책이다. 니까야는 우리나라의 보편적인 불교인 대승불교에서 중시하는 금강경이나 화엄경 같은 대승경전이 아니다. 대승불교에서는 한역되어 ˝아함경˝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원래는 초기 불교와 남방 불교 계통의 불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걸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30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무시무시한 분량이다. 그나마 중복이나 무의미한 반복 부분은 빼고 간추린 게 이 정도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이걸 다 읽는데 두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지금은 두 번째로 읽고 있는데, 처음 읽을 때처럼 끝까지 쭉 읽어보는 건 읽다가 지쳐서 사실상 포기했다. 그냥 생각날 때 조금씩 읽어보고 있는 중.



무시무시한 분량이지만 읽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불교에서 신화나 신비주의적인 부분을 걷어내고 심플하게 철학적이고 인식론적인 내용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쪽으로 오면 된다. 그게 아니라 절에 가서 불경 외고 복을 빌고 싶다면 스님의 목탁 소리에 맞춰 천수경이나 소리 내어 읽으면 되겠다.



이 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굳이 요약하자면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한바탕 꿈이고 환영˝이라는 것. 부처는 그걸 알아차리고 꿈에서 깨는 방법을 살아생전 여기저기 다니며 열심히도 가르쳤고, 그 기록을 초기 형태에 가장 가깝게 모아놓은 게 ˝니까야˝다.



사성제가 무엇이고 12연기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8정도는 어떻게 닦아가는 것인지 끝없이 반복해서 알려준다. 집중력을 잃지 않고 꾸준히 읽어나갈 수만 있다면, 읽다 보면 어느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그 어떤 심리학이나 인지과학보다도 불교의 가르침이 인간 내면의 핵심에 깊이 다가가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괴롭다면, 마음이 괴로운 게 괴롭다면 시간을 내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강력히 권한다.



단, 처음부터 쉬운 부분만 찾아 읽으려 하거나 하면 다 허사다. 꼭 처음에는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꾸준히 읽어야 한다. 반복되는 이야기 같아도 계속 가야 한다. 그럼 어느새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숫나티파타 중) 살아가는 게 어떤 느낌인지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요즘엔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조금씩 펴서 읽어보고 있다. 그럼 신기하게도 위로가 된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나를 괴롭게 하는 이 모든 게 결국 환영일 뿐이라는 진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게 되기 때문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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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할까 - 성취 중독 사회, 이유 없이 즐거운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고쿠분 고이치로 철학 강의 시리즈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 유유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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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하다 보면 종종 만나게 되느니. 머리를 세게 한대 맞은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책을.


고쿠분 고이치로의 ˝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할까˝는 우리가 뭔가를 그냥 즐기지 못하고 쫓기듯 살아가는 병리적 상황을, 무려 칸트의 철학을 빌어 분석하는 책이다. 칸트. 칸트라.


무려 칸트의 철학이 인용되기 때문에 마냥 쉽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무척 잘 읽히는 수려하게 잘 빠진 책이 되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 스쳐 지나간 ‘그냥 좋아서‘, ‘그냥 재미있어서‘ 뭔가를 즐겼던 시간들을 잠시 추억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해야 되니까, ~를 위해라는 명목으로 더 이상 안 하고 참아버리게 되었거나, 그 명목에 옭아매어 빛이 바래버린 나의 즐거움들이여.

마냥 목적 없이 살아버릴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 또는 과정으로 만들어버리는 삶은 숨이 막힌다. 사람을 소진시킨다. 더 이상 어떻게든 힘내볼 수 없을 정도로 몰아세운다. 그러다가 어느새 나 스스로가 수단 자체가 되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아무튼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늦게까지 일하다 들어와서는 이 책 때문에 뭔가 들떠버린 것 같기도 하다. 잃어버린 것들을 가끔씩은 다시 찾아보자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쓸데없고 쓸모없고 덧없다는 생각에 저 뒤 안 보이는 곳에 밀어놓아버린 것들을 다시 꺼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이를테면 만화방에 가서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있는다던가, 밤늦게 어딘가 먼 곳을 내비로 찍어놓고 심야 드라이브를 쏘고 온다던가, 저녁에 좋아하는 미드를 틀어놓고 앉아 그린라벨을 아낌없이 홀짝인다던가. 담배는 끊은지 오래지만 심호흡이라도 하면서 쓸데없이 바깥에서 멍 때리기 같은 걸 한다던가. 아무튼 그런 감각들 말이지. 아.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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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조금은 칸트와 친해진 것 같기도 하다. 마냥 꼬장꼬장한 루틴쟁이 딸깍발이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다정한 면도 있었을 줄이야.


삶이 갑갑하다면, 막다른 길에 몰린 것 같다면, 이를테면 안경에 뜨거운 김이 올라올 정도로 힘겹게 느껴진다면. 그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어느새 삶의 모든 것을 목적 달성을 위한 과정에 바치고 있지는 않은지.


그냥 즐겁고, 그냥 좋고, 아무 이득이나 목적 없이 즐길 수 있는, 나만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 ‘제4사분면‘을 사수해야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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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열린책들 세계문학 24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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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흐름:

(초반) 음... 예스럽다
(중반) 오 뭐야 좀 웃기네?
(절정) 오우야. 개판이네. 난리도 아니야.
(결말) 좋은 시간이었다.


결론: 셰익스피어는 역시 셰익스피어. 예스러움을 참고 읽으면 재미가 온다.


첨언: 번역이 좋다. 무엇보다도 ˝~로다˝ 하는 투가 아니라서 참 좋다. 등장인물들이 싸우면서 디스를 참 찰지게도 하는 게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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