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할까 - 성취 중독 사회, 이유 없이 즐거운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고쿠분 고이치로 철학 강의 시리즈
고쿠분 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 유유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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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하다 보면 종종 만나게 되느니. 머리를 세게 한대 맞은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책을.


고쿠분 고이치로의 ˝우리는 왜 그냥 즐기지 못할까˝는 우리가 뭔가를 그냥 즐기지 못하고 쫓기듯 살아가는 병리적 상황을, 무려 칸트의 철학을 빌어 분석하는 책이다. 칸트. 칸트라.


무려 칸트의 철학이 인용되기 때문에 마냥 쉽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무척 잘 읽히는 수려하게 잘 빠진 책이 되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 스쳐 지나간 ‘그냥 좋아서‘, ‘그냥 재미있어서‘ 뭔가를 즐겼던 시간들을 잠시 추억할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해야 되니까, ~를 위해라는 명목으로 더 이상 안 하고 참아버리게 되었거나, 그 명목에 옭아매어 빛이 바래버린 나의 즐거움들이여.

마냥 목적 없이 살아버릴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 또는 과정으로 만들어버리는 삶은 숨이 막힌다. 사람을 소진시킨다. 더 이상 어떻게든 힘내볼 수 없을 정도로 몰아세운다. 그러다가 어느새 나 스스로가 수단 자체가 되어버린 건 아니었을까?

아무튼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늦게까지 일하다 들어와서는 이 책 때문에 뭔가 들떠버린 것 같기도 하다. 잃어버린 것들을 가끔씩은 다시 찾아보자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쓸데없고 쓸모없고 덧없다는 생각에 저 뒤 안 보이는 곳에 밀어놓아버린 것들을 다시 꺼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이를테면 만화방에 가서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있는다던가, 밤늦게 어딘가 먼 곳을 내비로 찍어놓고 심야 드라이브를 쏘고 온다던가, 저녁에 좋아하는 미드를 틀어놓고 앉아 그린라벨을 아낌없이 홀짝인다던가. 담배는 끊은지 오래지만 심호흡이라도 하면서 쓸데없이 바깥에서 멍 때리기 같은 걸 한다던가. 아무튼 그런 감각들 말이지. 아.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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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조금은 칸트와 친해진 것 같기도 하다. 마냥 꼬장꼬장한 루틴쟁이 딸깍발이인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다정한 면도 있었을 줄이야.


삶이 갑갑하다면, 막다른 길에 몰린 것 같다면, 이를테면 안경에 뜨거운 김이 올라올 정도로 힘겹게 느껴진다면. 그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어느새 삶의 모든 것을 목적 달성을 위한 과정에 바치고 있지는 않은지.


그냥 즐겁고, 그냥 좋고, 아무 이득이나 목적 없이 즐길 수 있는, 나만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 ‘제4사분면‘을 사수해야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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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열린책들 세계문학 24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박우수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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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의 흐름:

(초반) 음... 예스럽다
(중반) 오 뭐야 좀 웃기네?
(절정) 오우야. 개판이네. 난리도 아니야.
(결말) 좋은 시간이었다.


결론: 셰익스피어는 역시 셰익스피어. 예스러움을 참고 읽으면 재미가 온다.


첨언: 번역이 좋다. 무엇보다도 ˝~로다˝ 하는 투가 아니라서 참 좋다. 등장인물들이 싸우면서 디스를 참 찰지게도 하는 게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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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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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진즉에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갈 무렵, 주변에서 하도 유명하다기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2권을 잠깐 읽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 책을 굳이 읽어볼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았기에 책 서두에 나오는 플라톤의 파이돈 이야기만 읽고 덮었다. 입시 공부에 지쳐있었던 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더 알아보고 싶지는 않았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만 읽었으면 됐지 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참 아쉽다.



중요한 건 신화에 대한 지식을 머리에 욱여넣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느끼고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를 내 안에 간직하는 것이었다. 이윤기의 책이 이런저런 내용의 오류 시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신화를 학문적으로 깊이 연구할 게 아니라면 그게 뭐가 중요할까? 중요한 건 얼마나 정확한 내용인가가 아니라 그 안에서 마음을 쾅 하고 때리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윤기는 참으로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흑해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먼 길을 가자면 높은 산도 넘고 깊은 물도 건너야 한다. 이 장애물들은 바로 개인의 흑해, 개인의 쉼플게가데스다. 이것이 두려워 길을 떠나지 못한다면, 난바다로 배를 띄우지 못한다면 우리 개개인에게 금양모피는 없다.˝

-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권 서문 중에서



내가 이십 대 때 이 글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20년이 지나 사십 대에 읽는 이 책에 가슴이 문득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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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의 글쓰기 - ‘좋아하는 마음’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문장 수업
미야케 카호 지음, 신찬 옮김 / 더페이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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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안 하고 집어 든 책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괜찮았던 책. ‘최애‘를 좋아하는 마음을 어떻게 글로 공유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인데 사실 글쓰기 일반론으로 받아들여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모든 글은 좋아하고 아끼는 무언가에 대한 기록이니까.



‘독자를 정확히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지를 잊지 말라‘는 내용과 ‘중요한 건 어휘력이 아니라 세분화하는 능력‘이라는 내용이 특히 도움이 된다. 작가가 말하는 세분화라는 것은 ‘그냥 좋다‘가 아니라 왜 좋은가를 구체적으로 이것저것 언어화해보라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모든 글쓰기의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취향이 내가 누구인가를 말해준다고 할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성실하게 언어화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곧 나를 찾고 단단하게 만드는 일로 이어질 것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문득 스레드 같은 SNS에 툭툭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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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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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났다. 꾸역꾸역 어려운 산을 오르는 것 같은 책을. 등산을 지레 포기하게 할 만큼 무섭고 험한 산은 아니다. 적당히 쉬운 길이 섞여 있어서 재미있게 오를 수 있다. 마침내 선 정상에서는 상상 못할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면 생각이 많아진다. 인간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회에 대해, 그리고 관계에 대해. 물음표가 많아지는 책은 좋은 책이리니.

이 책은 아주 단순한 문제 제기에서 시작한다.
‘인간과 사람은 다르다. 그러니까 양자를 혼동하지 말자.‘
저자 혼자의 생각이 아니다. 저 짤막한 문제의식을 풀어내기 위해 인류학과 사회학, 그 외 다양한 분야의 지성이 소환된다.

생물학적인 인간이라는 것은 종으로서 모두 동일하고 동등하게 타고 태어나는 기본값이다. 그러나 사람은 아니다. 사람은 ‘되어지는‘ 것이다. 사람은 서로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집단 안에서 자기 장소를 갖고 환대 받아야 사람이다. 그래야 사람으로 살 수 있다. 그래서 인간으로 태어나지만,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의 리그 안에 들면 사람이고, 들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일이 있어왔다. 왜냐하면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예든, 이방인이든, 여성이든.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건 서로를 사람으로 인정하고 챙기는 것이다. 환대 받고 환대하는 것이다. 설자리를 받고 설자리를 주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좀 더 인간다워지는, 아니 ‘사람다워‘ 지는 길은 서로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범위를 갈수록 더 넓혀가는 상상력을 키우고 발휘하는 것일 테다. 그것이 근대정신이고, 현대 시민 사회가 전제하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 왔고, 발전해갈 것이다.
물론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우리는 여전히 비좁은 마음과 좁다란 시야를 갖고 있으니까. 여전히 같은 나라나 인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등급의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격에 맞는 아파트 단지나 동네에 살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작은 차를 탄다는 이유로, 같은 급의 인간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타 등등 이처럼 저열한 이유로 상대를 ‘사람‘으로 보지 않으려 든다. 그러나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우리도 앞으로 어떻게든 나아갈 것이다. 나아가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읽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좋은 책이었다. 한 번쯤 깊이 읽어보기를 격하게 추천하고 또 추천한다.


** 안전하고 평화로운 교실을 만들기 위해 교사로서 많이 고민해왔다. 그 모든 일은 결국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사람으로 환대 받고 자리를 잡으며 살게 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리라. 그렇게 하지 않으려 드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하고, 장기적으로는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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