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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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던 날이여. 두고 온 시간들이여. 그때 열중했던 일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의 얼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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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과업을 완수하려고 여러 사람이 모여 지내며 밥을 같이 먹고 일을 같이 한다. 그냥 과업이 아니라 굉장히 멋있는 과업을 위해. 서로의 마음이 맞을 때 일은 그냥 일이 아니라 그 순간의 삶 자체가 된다. 소설의 프로젝트를 보며 나에게도 있었던 옛날의 어떤 단면 하나 두 개가 스쳐 지나간다. 다들 어디 갔을까? 그 시간의 그 밤들은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하고 살살 아파지기도.


귀에는 풀벌레 소리. 눈에는 반딧불이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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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쓰기가 참 좋다. 무척 잘 읽혀서 하루하고 반나절만에 한 권을 다 읽었다. 푹 빠졌달까.

그렇다고 가벼운 책은 아니다. 사료가 그득히 들었다. 그걸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솜씨가 빼어나서 잘 읽히는 것일 따름. 궁궐을 보러 이리저리 휙휙 돌아다니는 것처럼 이야기도 흐름에 따라 이리 휙 저리 휙. 하지만 중요한 줄기에서 절대로 벗어나는 법이 없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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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경복궁을 깊이 돌아봤다. 그것도 세종 시대의 경복궁을. 청기와가 덮인 근정전과 나무 울타리가 쳐진,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기둥 위에 올라앉아있었을 웅장한 경회루. 때때로 웅장한 무대 장치를 설치하고 행해지던 광화문 앞의 산대놀이 공연. 군사들과 말이 뛰어다니는 휑하니 비어있는 후원의 흥미로운 언덕들. 궁궐을 넓히고 크게 다시 지으려 할 때마다 지나치게 화려한 재건축을 반대하던 꼬장꼬장한 관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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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재미있었다. 이 작가의 책을 더 찾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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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야로 읽는 반야심경 ㅣ 니까야로 읽는 대승경전 시리즈 1
이중표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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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표 교수의 책들을 연달아 읽는다. 지난번에 니까야 번역본인 ˝불경˝을 읽었다면, 이번에는 반야심경을 니까야에 나오는 설법으로 해설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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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템플스테이에 갔는데 새벽 법회에서 이 책을 권해주셨다. 정확히는 같은 이름의 유튜브를 권해주셨지만 나는 같은 내용이라면 문자로 읽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책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무척 충만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그날 법회에서 현역(?) 스님이 이중표 교수를 ‘스님들의 선생님‘이라고 표현하시는 것을 듣고 솔직히 놀랐다. 과연 그렇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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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까야를 읽은 다음에, 그 방대한 내용에서 핵심을 갈무리하여 정리해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으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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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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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이 말을 덧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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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보는 있으나 행위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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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 열반이란 도달해야 하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라고 깨달은 것을 수행하고 또 수행하다 보면 그게 삶 자체가 되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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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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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 ㅣ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15
백석 지음, 안도현 엮음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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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라서 여행 온 숙소에서 백석의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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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귀여운 시인이다. 읽다 보니 이 사람은 먹는 걸 참 좋아했구나 생각이 든다. 또한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지게 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매번 시를 쓸 때마다 고향땅의 수많은 맛있는 음식들과 그걸 함께 나누어먹었던 추억을 떠올리게 되는 외롭고 궁핍한 절을 보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읽으며 나도 숙소 천장을 잠시 응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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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평안도 사투리에 대한 각주를 찾아 읽어볼 마음만 있다면. 두고두고 한 번씩 생각날 아름다운 시와 노래들의 세계로 빠져보는 것은 어떠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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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해방과 분단 후 북한에서 썼다는 시들은 뭐랄까... 도저히 못 읽어주겠다. 당대에 북한 체제에서 살아간 지식인들의 사정이 어떠했을지 엿볼 수 있는 참고 자료 정도는 될 수 있겠다. 거기서 살아남아보려고 어거지로 당의 나팔수 역할을 해야 했지만, 결국 핍박을 받고 힘겹게 말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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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퍼키스와의 대화
막스 코즐로프 외 지음, 박태희 옮김 / 안목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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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묵묵히 사진을 진지하게 찍어온 어느 예술가와의 인터뷰집이다. 그의 작업 관점과 방식, 태도를 볼 수 있어서 좋은 책. ˝사진 강의 노트˝ 이후 퍼키스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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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하면서도 날카롭고, 한편으로 따뜻한 그가 참 좋다. 나는 아래 말이 마음에 무척 깊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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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가 사진가이므로 삶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도 모르겠어요. 우린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진정으로 삶이 경이롭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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