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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성과 무한 -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 ㅣ 레비나스 선집 3
에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김도형 외 옮김 / 그린비 / 2018년 11월
평점 :
평점
3.5점 ★★★☆ B+
레비나스 읽기 모임 두 번째 도서
(총 4회 진행: 8월 18일, 9월 1일, 9월 29일, 10월 13일)
철학은 오랫동안 ‘나’라는 존재를 따라다닌 학문이다. ‘나’는 철학자들을 귀찮게 하는 질문 유발자다. ‘나’는 무엇인가? ‘나’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누군지 궁금해.’ 심오한 말이지만, 여기서 철학이 시작되었고 철학자가 태어났다.
소크라테스(Socrates)는 아테네에서 자신이 가장 현명하다는 신탁의 메시지를 믿지 않았다. 본인이 정말로 현명한 사람이 맞는지 궁금했다. 그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대화(산파술)를 주고받은 끝에, 결국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소크라테스는 본인 또한 무지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세상물정을 모르고 속 편안하게 사는 알키비아데스(Alkibiades)에게 델피(Delphi)의 신전에 있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충고했다. “너 자신을 알라(gnôthi sauton).”[주1]
몽테뉴(Montaigne)는 무시로 ‘나’를 물고 늘어지는 철학과 한평생 함께 살았다. 그는 ‘나’를 알고 싶은 철학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본다.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책 속에서 발효된 지식은 몽테뉴가 자신의 서재에서 혼자 마시는 술이다. 하지만 몽테뉴는 진짜 ‘나’를 찾을 때면 술 한 모금 눈에 대지 않는다. 그는 책 속에서 ‘나’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혼자서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Que sais-je)?”[주2]
데카르트(Descartes)도 몽테뉴처럼 책과 지식에 기대지 않은 상태에서 철학을 만났다. 그의 서재는 침대였다. 질문하는 철학과 함께 침대에 누운 데카르트는 졸음을 참아가면서 자신이 누군지 생각했다. ‘생각하는 나’는 데카르트가 그토록 찾고 싶어 했던 철학의 제1 원리다. 그는 생각하는 자신을 절대로 의심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주3]
‘나’를 향한 질문은 철학자가 되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할 관문이다. 그런데 이 오래된 관문을 비켜서 지나간 철학자가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다. 그는 오로지 ‘나’에게만 관심이 쏠린 철학의 질문을 의심한다. 그리고 거꾸로 철학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타자(他者)는 누구야? 나는 타자가 누군지 궁금해.” 타자를 알고 싶은 욕망. 여기서 레비나스의 철학이 시작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를 알기 위한 철학은 ‘주체(subject)’를 이해하기 위한 철학으로 성장한다. 철학자들은 저마다 주체의 정의를 내렸다. 주체는 단순하게 말하면, 의식을 가진 인간 또는 자발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실체다.[주4] 데카르트가 의심하지 않은 ‘생각하는 나’는 ‘의식을 가진 인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나’는 정신 또는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지 자아 또는 주체와 같은 의미의 개념이 아니다. 철학 개념은 수많은 철학자의 머리를 통과하면 의미가 확장되거나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철학 개념을 한 가지 의미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나’와 ‘주체’도 마찬가지다. 철학자들이 개인, 자아, 주체에 대해 논의할수록 철학은 타자에 눈길을 주지 않는다.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한 철학이 오만해지면, 자기중심적 철학으로 변질된다. 오만한 철학의 ‘나’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이성적 주체’인 인간이다. 인간의 지식은 자연을 이용하기 위한 무기가 된다. 오만한 철학은 권력을 가진 정치인을 따라다니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에 충성한다.
레비나스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참상과 전체주의 국가(독일의 나치, 이탈리아의 국가 파시스트당)의 등장을 목격했다. 그는 ‘나’와 ‘주체’를 인식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철학은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힘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권력에 무기력한 철학은 폭력으로 타자의 소중한 삶과 자유를 짓밟는다. 레비나스는 자신의 책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 독일어판 서문에서 ‘존재의 자기 보존 경향’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주5] ‘존재’를 ‘나’로 대입하면, 자기 보존 경향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의미한다.
《전체성과 무한》은 기존 철학자들이 주장해 온 자기중심적 철학을 비판하면서 ‘타자’가 누군지 묻는 철학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레비나스는 타자를 ‘무한’에 비유한다. 타자는 나보다 더 높은 무한한 곳에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타자는 나와 동일시할 수 없다. 레비나스 철학의 타자는 ‘내가 직접 얼굴을 마주 보면서 말을 건네는 사람’이다. 타자를 알고 싶은 욕망은 상대방이 누군지 알고 싶어하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타자의 고통을 알고 싶어하는 마음이다. 타자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우리는 타자를 도와주어야 한다. 나와 타자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관계는 타자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윤리적 행위’다. 따라서 레비나스는 윤리를 ‘제1 철학’으로 삼는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거나 철학자가 되지 않아도 우리 각자가 ‘나’를 향해 질문할 수 있다. 그리고 진짜 ‘나’를 만나야 한다. 내가 누군지 알았으면 나는 타자와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나’를 따라다니면서 계속 나에 대해서 질문하는 철학의 얼굴은 우리 각자의 얼굴이다. 우리가 만나야 할 타자가 누군지 질문하는 레비나스 철학의 얼굴은 ‘얼굴들’이다. 여기에 내 얼굴과 타자의 얼굴이 함께 있다.
[주1] 플라톤, 《알키비아데스 I · II》 124d.
(김주일 · 정준영 옮김, 아카넷, 2020년, 81쪽)
[주2] 몽테뉴, 《에세 2》 12장 「레몽 스봉을 위한 변명」
(심민화 옮김, 민음사, 2022년, 327쪽)
[주3] 데카르트,
《방법서설: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4부
(이재훈 옮김, 휴머니스트, 2024년, 82쪽)
[주4] 「주체 · 주체성」, 철학사전편찬위원회, 《철학사전》
(중원문화, 2023년)
[주5] 《전체성과 무한: 외재성에 대한 에세이》, 「독일어판 서문」, 4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