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서설 - 이성을 잘 인도하고 학문에서 진리를 찾기 위한
르네 데카르트 지음, 이재훈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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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데카르트(Descartes)침대에 누워서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허약했다. 그러나 공부하기 시작하면 생기가 돌았다피로감이 몰려오면 책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그는 책 없이 공부했다. 데카르트는 자신이 읽었던 모든 책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그가 본 책들 대부분은 오류가 넘쳐났다데카르트는 타인의 편견과 오류가 섞여 있는 책을 멀리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한 권의 책으로 여기고 침대에 누워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라는 책속에 어떤 내용이 있을까? 그것은 바로 라는 존재가 살아가면서 바라보고, 경험한 세계다라는 거대한 책을 활짝 열어서 보는 일은 를 제대로 알기 위한 여행이다. 데카르트의 침대 여행은 책에 적힌 진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가 거리를 둔 지식에 중세 기독교 신학도 포함된다. 중세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규정한다. 중세 신학자들이 바라보는 인간은 유혹에 약해서 타락하기 쉬운 불완전한 존재다하지만 데카르트는 진리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명하려고 생각하는 나를 만났다생각하는 나는 중세 기독교적인 인간이 아닌 철학을 하는 인간이다데카르트는 신학과 철학을 구분한다. 그는 더 나아가 모든 인간에게 참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 이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방법서설생각하는 나를 만난 데카르트가 직접 쓴 자기 자신에 대한 주석서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를 절대로 의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방법서설4부에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선언한다생각하는 나는 철학의 제1 원리그는 오류를 피할 수 있는 인간의 이성을 본성으로 이해하고 신뢰한다. 생각하기를 멈추는 는 살아있다고 볼 수 없다.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영혼(방법서설4, 83)’이 없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인식한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영혼은 자아 또는 주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나’를 종종 자아와 주체의 동의어로 해석한다. 이에 따라 데카르트 철학은 이성적 인간을 찬양하는 사상으로 알려지기도 했다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정신이 인간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영혼이라고 주장했다. 데카르트가 보기에 동물은 생각하지 않는 존재이며 영혼 없는 기계. 그가 산 채로 동물을 해부했다는 일화까지 알려지면서 데카르트는 피도 눈물도 없는 철학자’ 또는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을 옹호한 철학자로 비판받았다.


방법서설5부에 데카르트는 자신이 동물과 식물, 그리고 무생물이 어떻게 발생하는지 충분한 지식을 가지지못했다고 밝힌다(114). 그는 자연학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데카르트는 동물과 식물의 활동이 영혼(정신)의 개입과 무관하다는 잠정적 결론을 내린다. 방법서설발표 이후에 데카르트는 동물과 식물의 생명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싶어 했다하지만 당시에 알려진 자연학 지식으로는 동물과 식물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동물을 영혼 없는 기계로 규정했다고 해서 유독 그에게만 전근대적 학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데카르트가 자연을 이용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면서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실천적인 철학을 통해 불 · · 공기 · · 하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다른 모든 것의 힘과 작용을 우리 장인들의 다양한 기예를 인식하는 것만큼이나 판명하게 인식하면서 이 힘과 작용을 장인들이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것들이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는 목적을 위해 사용하고 우리를 자연의 주인과 소유자처럼 만들 것이다.


(방법서설6144~145)



데카르트는 허약한 체질이라서 건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인간이 건강해야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인간이 건강하게 살려면 자연을 이해하고, 이를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연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데카르트는 앞서 동물과 식물에 대한 자연학 지식을 충분히 습득하지 않았다면서 본인의 한계를 인정했다. 그의 겸손한 고백은 생각하는 나는 자연의 법칙 전부를 인식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영혼을 가진 인간을 긍정했다. 하지만 이성을 가진 인간을 완전무결한 신적 존재 또는 자연을 지배하는 주체로 인식하지 않았다.


생각하는 나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진리 탐구에 전념한다데카르트는 이 세계에 확실한 진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모든 만물이나 자연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여기 수많은 의견 중에 편견과 오류가 있다데카르트가 이해한 세계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큰 차이가 없다. 지금, 이 세계가 가짜 뉴스들이 득실거리는 책이라면,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자기주장이 너무 강한 사람은 ‘고집이 센 오류투성이 책이다잘못된 책들에 둘러싸인 우리는 가짜 뉴스와 유사 학문(과학, 역사학)에 지쳐서 정신이 축 늘어진 상태다. 우리가 방심한 사이에 교조주의와 극단주의가 대중으로부터 열렬히 환영받는다. 이제는 누구나 선동가가 될 수 있다방법서설은 책과 진리를 의심하는 삶(회의주의적 태도의 삶)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의심하는 행위는 곧 생각하는 행위다.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다혼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가 참인 척하는 거짓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생각하기를 절대로 멈추지 않아야 한다.






<cyrus의 정오표>

 


* 145, 옮긴이 각주 4

 




 이 표현은 인간의 자연에 대한 무제약적 지배와 자연의 인간에로의 종속을 정당화지 않는다.



정당화지 정당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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