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회의론자 - 신경과학과 심리학으로 들여다본 희망의 과학
자밀 자키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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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4점  ★★★★  A-





바이러스는 혼자서 살지 못한다. 세포를 만나야 살 수 있다. 바이러스는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더 큰 세포에 빌붙는다. 세포를 장악한 바이러스는 혼자 있을 때보다 활발하게 움직인다. 바이러스는 자신과 똑같은 바이러스를 계속 만든다. 이때 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 바이러스가 증식하면 세포는 죽는다.


냉소주의(Cynicism)는 성격이 쌀쌀한 바이러스다. 냉소주의가 좋아하는 먹잇감은 마음이 가냘픈 사람이다. 마음이 가냘프면 외로움을 더 잘 느낀다. 그리고 세상이 더 어둡게 보인다교활한 냉소주의는 마음이 가냘픈 사람에게 다가가서 귀띔한다. “나만 믿고 따라오면 잘 살 수 있어.” 마음이 가냘픈 사람은 냉소주의자가 된다. 냉소주의자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며 정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냉소주의적 처세술에는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잘 일으키듯이 냉소주의자는 능수능란하게 변장한다냉소주의자는 음모론자로 변신해서 사람들을 이간질하여 갈등과 싸움을 부추긴다.


교활한 냉소주의에 속지 않으려면 백신(vaccine)을 접종해야 한다. 냉소주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최고의 백신은 회의주의(skepticism)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회의주의를 냉소주의의 동의어로 오해한다. 냉소주의에 이미 감염된 사람은 회의주의 백신 접종을 거부한다. 간사한 냉소주의자는 가짜 회의주의자로 변신해서 냉소주의에 감염된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희망찬 회의론자과학적으로 증명된 냉소주의의 위험성회의주의 백신을 꼭 맞아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회의주의자는 지식을 의심한다. 지식을 의심하는 태도는 지식을 완전히 믿지 않아서 거부하는 냉소주의와 다르다. 회의주의자는 냉소주의자처럼 상대방의 견해를 매몰차게 대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자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상대방을 존중한다. 그런 다음에 상대방의 견해가 확실한지 아닌지 판단한다. 냉소주의자는 똑똑한 척한다. 그래야 자신의 결점을 철저히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회의주의자는 자신 또한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한다.


이 책의 저자는 신경과학을 연구한 심리학자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을 똑똑하지 않은 전문가라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책을 썼다희망찬 회의론자는 회의주의자의 고백록이다. 저자는 과거에 냉소주의자로 살아왔고, 지금도 가끔 냉소주의의 유혹에 흔들릴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 생기면 고인이 된 신경과학자이자 친구인 에밀 브루노(Emile Bruneau, 1972~2020)를 생각한다고 말한다. 에밀 브루노는 이 책이 태어나게 해준 산파이자 희망찬 회의주의자. 에밀은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마음속에 희망을 품고 있지만 않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사회 운동에 참여했다자신의 생각과 다른 상대방을 만나면 먼저 다가와서 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회의주의적 태도를 유지하면서 최악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저자는 에밀을 만난 이후로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속이는 냉소주의를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냉소주의자는 공감과 연대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할 뿐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 냉소주의자의 이중성을 잘 모르는 사람은 상대방의 약점을 집요하게 찾아내는 냉소주의자가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겉멋이 든 냉소주의자는 자기만족을 위해 지금도 요리조리 변신한다. 사이버 폭력(Cyber Bullying)을 주도하는 익명의 개인, 음모론을 퍼 나르는 정치인, 사이비 종교의 교주, 이해타산이 빠른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어리석다고 비웃는 사람들희망찬 회의론자는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냉소주의자들의 허울을 벗긴다.


백신 거부론자들은 백신을 치료제라고 우긴다. 그들의 거짓 논리를 믿는 사람들은 백신 접종자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뉴스를 꺼림칙하게 느낀다. 백신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계속 들리기 시작한다. 백신은 치료제가 아니다. 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는 약이다회의주의 백신은 우리의 마음 주변을 기웃거리는 냉소주의를 예방하는 삶의 태도다. 회의주의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면 회의주의로 둔갑한 냉소주의를 파악할 수 있다.


거짓 정보와 냉소주의는 끈질긴 불치병이다.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회의주의 백신은 죽을 때까지 계속 맞아야 한다우리는 끊임없이 정확한 정보를 만날 수 있도록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회의주의 백신의 주요 성분은 희망이다. 희망찬 회의주의자는 어려운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다. 회의주의자 사전에 냉소라는 단어는 없다. 회의주의자 사전에 있는 희망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상대방의 생각을 신뢰하면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진하는 마음이다. 회의주의 백신을 맞으면 상대방의 마음에서 나오는 정직한 온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회의주의자는 따뜻하다. 다정한 회의주의자는 상대방의 차가운 손을 감싸안을 수 있다.







<회의주의자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34




 

 은행원의 아들인 디오게네스[1]는 자기 마을의 통화를 위조한 죄로 고소당해 추방됐고 아테네 거리를 전전하며 음식을 구걸하고 큰 도자기 단지 안에서 잠을 자면서 살았다.



[1] 은행원에 해당하는 원문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환전상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디오게네스의 생애가 나오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us)의 책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6을 번역한 이정호 교수(정암학당 이사장) 환전업자로 번역했다. 당시 환전상은 돈을 빌려주거나 돈을 주조하는 일도 했는데, 은행의 원시적인 형태로 볼 수 있다. 대부분 경제사학자들은 은행의 역사가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희망찬 회의론자의 저자는 디오게네스가 화폐를 위조했다고 주장하지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디오게네스의 아버지는 나랏돈을 관리하는 일을 맡았는데 돈을 위조한 죄로 추방당했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환전업자인 디오게네스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화폐를 맡겼는데, 일에 미숙한 디오게네스가 화폐를 위조했다. 결국 아버지는 감옥에 끌려가서 죽었고, 디오게네스는 추방당했다(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 나남, 2021, 494~495).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참고한 고대 문헌들이 전부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지만,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은 고대 철학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책이다. 라에르티오스의 책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면 고대 철학사에 해당하는 내용이 빈약했을 것이다.





* 193




 

 19세기 러시아 왕자[2]이자 자연주의자(후에는 무정부주의자로 투옥됨)였던 피터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2]은 시베리아를 여행하며 야생을 관찰했다. 그는 저서 상호 원조에서 경쟁이 아닌 협력이 생명의 기본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 194




 

 오드리 로드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손에서 자기 돌봄은 공동체와 결속에 그 뿌리를 둔다. 이 현상은 크로프트킨[2]이 목격한 생명의 본성과 심리학 및 뇌과학이 인간에 대해 알려주는 사실과 일치한다.

 


[2] 왕자의 원문이 ‘prince’로 추정한다면, ‘prince’를 왕족 출신의 왕자가 아니라 군주나 귀족의 칭호로 번역해야 한다. 굳이 원문을 확인할 필요 없이 러시아 왕자는 오역이다. 왜냐하면 크로포트킨은 왕족 출신이 아니며 많은 영지와 농노를 소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크로포트킨의 이름 ‘Peter’를 러시아식으로 표기하면 표트르194쪽에 크로프트킨이라는 오자가 있다.





* 301, 302






 

프러포절 프로포절(proposal)

포르포절 프로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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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02-18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시루스님의 글에서는 주석과 정오가 제일 재미있어요. 자밀 자키라는 사람이 영어로 쓴 책인지, 혹시 다른 언어로 쓴 글을 영어로 옮긴 책을 중역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요즘은 중역하는 일이 드물지만, 예전에는 제법 많았었죠.

시루스님이 지적하는 다양한 오류들을 번역자가 놓쳤다면, 편집자라도 바로 잡았어야 했는데. 현실적으로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죠. 베테랑 번역자들은 나라와 시대 상황에 따른 내용들까지 찾아보면서 일하는 경우들도 있지만, 그냥 원문을 우리 말로 옮기기만 하는 선에서 끝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오래전 제가 편집을 맡았던 역사책 번역자도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었는데, 번역 초고가 정말 형편없었어요. 글도 비문이 많아서 아예 고쳐써야했고, 시루스님이 주로 지적하시는 이름 표기법이나 유명한 사람이나 사건의 실제 상황들이 많이 잘못되어 있었어요. 원서가 독일어 책이었는데, 나중에는 제가 아예 원서와 독일어 사전을 놓고 한 문장씩 다 검증해야 했어요. 역사적 상황들도 많이 찾아보고, 번역된 글이 검색이 안되면 영문으로 찾아보기도 했구요. 그렇게 열심히 작업했는데, 당시 번역자는 제가 뭘 얼마나 고쳤는지 알지도 못하더라구요.

cyrus 2025-02-20 09:21   좋아요 0 | URL
주석과 정오표가 많은 저의 서평은 ‘배꼽이 큰 배’라고 할 수 있어요.. ㅎㅎㅎ
번역자와 편집자들이 보라고 만든 건데 실제로 댓글로 반응을 해주신 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번역을 해본 적이 없지만, 번역을 잘하려면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상식과 표기법이 시간이 지나면 달라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