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의 비밀 - 미각은 어떻게 인간 진화를 이끌어왔나
존 매퀘이드 지음, 이충호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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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싫어한다. 그래서 순대를 잘 먹지 않는다. 그나마 냄새가 덜 나는 순대국밥은 먹을 수 있다. 어린 시절 순대 냄새만 맡으면 속이 울렁거렸다. 순대를 씹을 때 느껴지는 질긴 식감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씹을수록 비린 맛이 확 퍼지는 삶은 간은 질색이다. 삶은 간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면 비린 맛이 덜 느껴진다. 음식의 냄새는 식욕을 돋을 뿐만 아니라 잊었던 미각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가 어린 시절 해주시던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의 맛을 잊지 못한다. 사람의 식성이란 성장하면서 변할 수 있다. 그렇지만 특정 음식에 대한 안 좋은 맛 그리고 기억을 떨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먹지 못한다. 순대의 맛이 좋지 않아서 순대를 먹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후각과 질감이 불쾌한 느낌을 환기한다. 뇌는 순대를 불쾌한 음식으로 인식하고, 뇌의 명령을 받은 미각은 순대를 강하게 거부한다.

 

아이들은 어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특이한 맛 취향이 있다. 《미각의 비밀》을 쓴 존 매퀘이드(John McQuade)의 큰아들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엄청 매운맛을 내는 할라페뇨(jalapeno) 고추를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름에는 소금을 뿌린 레몬이나 라임을 먹는다. 이 친구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매운맛과 신맛을 좋아한다. 이 친구가 대견스러워 보인다. 왜냐하면, 나도 매운맛과 신맛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중에 불닭볶음면과 레몬주스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 아버지는 오래 묵어서 신맛이 강한 김치를 먹을 정도로 신맛을 좋아하지만,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반대로 어머니와 동생은 신맛보다 매운맛을 좋아한다. 나는 매퀘이드의 아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매운맛과 신맛을 즐긴 것은 아니다. 어른들이 먹는 음식에 호기심이 많았던 나는 뭣도 모르고 청양고추를 한 입 베어 물다가 극한의 고통을 느낀 적이 있다. 매운맛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이다. 그 때 좋지 않은 경험을 생각하면, 혀를 따끔거리는 매운맛에 거부감을 느껴야 한다. 그런데 성장하면서 매운맛을 좋아하게 되었다. 음식이 싱겁다 싶으면 소금을 넣는 대신 캡사이신(capsaicin) 소스를 첨가한다.

 

미각의 진화 이론에 따르면 매운맛의 고통을 잊지 못해 매운 음식을 입에 대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땀을 뻘뻘 흘리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며 그 자극성에 아주 고통스러워한다. 그런 고통스러운 맛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다시 매운 음식을 찾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은 매운맛을 내는 화학물질이다. 이 물질은 통증 완화에 효과적이다. 캡사이신은 초반에 혀에 자극을 주지만 나중에는 통증을 억제하는 진통제 역할을 한다. 매운맛으로부터 일어난 통증이 대뇌로 전달되면 뇌는 반사적으로 자연 진통제인 엔도르핀(endorphin)을 분비해 진화작업을 시도한다. 그 엔도르핀이 마치 마약에 취한 것과 같은 순간적 도취감에 빠져드는 부분적 환각 상태를 초래한다. 즉, 빨갛게 익은 불닭볶음면의 면발을 후루룩 넘길 때마다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급기야는 그 혀끝이 얼얼한 통각도 잊은 채 자극 뒤의 행복감을 즐기게 된다.

 

맛 취향은 진화의 산물이다. 미각은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이 부족했던 원시시대부터 오랜 기간 진화됐다. 단맛은 믿고 먹을 수 있다는 음식을 접할 때 일어나는 신호라면, 매운맛과 쓴맛은 독이 들어간 음식을 뱉으라는 경고의 신호다. 태초의 미각은 인류의 입속으로 들어오는 모든 음식을 식별하는 ‘일종의 파수꾼’ 역할을 했다. 인류의 조상은 단맛을 선호하고, 매운맛과 쓴맛을 싫어한다. 현대인들은 과거의 맛 취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맛은 다른 감각과 달리 학습이 큰 영향을 미친다. 인류의 조상 중 일부는 맛에 대한 호기심이 강했다. 존 매퀘이드의 아들처럼 말이다. 그들은 용기 있게 고추를 베어 물었고, 그걸 먹고도 몸의 거부반응을 느끼지 않게 되면서 고추를 계속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매운맛과 쓴맛에 대한 본능의 거부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 맛에 대한 반응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다양한 맛을 감지하는 미각 수용체 유전자의 차이 때문에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맛 취향이 다르다. 우리는 자기만의 맛의 세계를 갖고 있다. 인류의 진화는 완료됐다고 믿고 싶겠지만, 여전히 진행 중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그게 바로 ‘미각’이다. 진화의 관점에서 인간이 다양한 맛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맛의 세계에서 살아가는데, 이 세계는 어린 시절에 형성되어 살아가는 동안 계속 진화한다. 이 세계는 오래된 진화적 명령들이 한평생에 걸친 고열량 가공 식품과 문화적 단서, 상업적 메시지와 만나면서 일어나는 충돌을 통해 생겨난다.” (27쪽)

 

미각은 늘 새로움을 갈망한다. 미각의 진화적 명령은 다양한 맛의 세계를 넘나드는 미식가에게 도전과 용기를 심어준다. 프랑스의 음식 평론가인 브라야 사바랭(Brillat-Savarin)은 무엇을 먹는지를 알면 어떤 사람인지 안다고 말했다. 그가 일찍 미각의 비밀을 이해했다면, 자신이 했던 말을 이렇게 수정했을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보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살고 있는 ‘맛의 세계’가 무엇인지 말하겠다.”

 

 

 

 

 

 

※ Trivia

 

* 정글 환경에서 열매를 발견하는 것은 ‘왈도를 찾아라’와 비슷하게 어려운 과제이다. (49쪽)

 

 

 

 

⇒ 왈도(Waldo)는 그 유명한 어린이 그림책 ‘월리를 찾아라’의 주인공 월리(Wally)가 미국에서 나왔을 때 사용한 이름이다.

 

 

 

* 올즈는 “새로운 것과 아이디어, 신나는 일, 맛 좋은 음식을 추구하는 생물에게 추동 감소 이론은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와 같다”라고 썼다. (178쪽)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도둑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를 ‘프로크루테스’로 잘못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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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5-19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은 날 떡볶이같은 매운 음식이 먹고 싶은 걸까요. 과일 쥬스랑 같이 먹으면 맛있고 우유와 같이 먹으면 매운 맛이 적어서 좋은데, 갑자기 먹고 싶어지네요.
cyrus님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cyrus 2017-05-21 15:47   좋아요 1 | URL
매운 음식은 우유와 같이 먹는 게 좋습니다. 혀의 매운 맛을 줄어들게 하거든요. 오늘 같이 더운 날에는 냉면이 당깁니다. ^^

yureka01 2017-05-19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요즘 밥 한끼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김치 한조각에 밥한공기라도 느껴지는 포만감...

결핍이 만들어 주는 밥을 즐겨요~ㅋ

cyrus 2017-05-21 15:48   좋아요 1 | URL
시험 다 치고 먹는 음식, 술은 꿀맛입니다. ^^

stella.K 2017-05-19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의외네. 순대를 못 먹다니...!ㅋㅋ
하긴 사실 나도 어렸을 땐 순대를 먹지 않았다.
엄마가 그런 건 불량식품이라고 해서 엄단하셨지.
근데 순댓국은 예전에 한 번 먹어봤는데 생각 보다 맛이 없더라구.
간은 좀 퍽퍽해서 맛이 없는 것도 사실이야.
오돌뼈가 맛있지. 순대도 먹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데.
서울 신림동인가 가면 순대타운이라는 곳이 있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가 본지가 하도 오래돼서.
거기선 각종 야채넣고 볶아 주는데 맛도 맛이지만 추억인 것 같아.
누구와 먹었느냐는.ㅋ

jeje 2017-05-21 00:45   좋아요 1 | URL
신림동에 아직 있습니다^^
‘백순대‘가 인기 있는거 같아요. 양념보다. ㅎㅎ

cyrus 2017-05-21 15:50   좋아요 0 | URL
오징어순대는 먹을 수 있어요. 한 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비린내가 나지 않아서 좋았어요. 대형마트에 파는 냉동 순대를 집에서 해먹으면요, 비린내가 진동합니다... ^^;;

AgalmA 2017-05-20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크루스테스는 저도 쓸 때마다 검색 한 번 합니다. 매번 뭐하나 틀려요ㅎ;

자극적인 맛에 대한 애호는 쾌감에 대한 중독도 있지만 맛을 못 느끼는 질병일 때도 더러 있죠. 위장 장애 상태인데도 매운 걸 계속 먹던 사람이나 상한 음식만 먹던 사람 진료해보니 그게 맛으로 느껴지지 때문에 먹은 거라는 방송도 여럿 소개되기도 했고요.

cyrus 2017-05-21 15:54   좋아요 0 | URL
예전에 서재에 쓴 글에 ‘프로크루스테스’를 잘못 써서 어느 분이 댓글로 알려준 적이 있어요. 그 날 실수를 겪은 이후로 ‘프로크루스테스’를 쓸 때 여러 번 확인해요. 막 쓰다 보면 철자를 틀려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매운 맛을 느끼지 못해서 매운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죠. 저는 매운 맛을 잘 참는 편입니다. 제 몸이 차가운 편이라서 뜨거운 음식을 좋아해요. 그래서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는데, 그럴 때 기분이 좋아져요. ^^;;

:Dora 2017-05-2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식을 하면서 순대를 아예 안먹게 됨...미각이 가장 떨어지는 감각이네요 저는...

cyrus 2017-05-21 15:55   좋아요 0 | URL
특정 음식을 싫어하고, 먹지 못한다고 해서 미각이 이상한 게 아닙니다. 음식 못 먹는다고 놀리거나 억지로 강요하는 사람을 싫어해요. ^^;;

jeje 2017-05-21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싫어하는 맛이 있죠. 저는 싫어하는(선호하지 않는?) 맛이 있는데...신기하게도 그걸 먹을때 맛있음을 느껴요..;; 분명 싫어하기 때문에 절대 먼저 찾아먹지 않지만, 골라내지 못하거나 먹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아 이 맛때문에 사람들이 이걸 좋아하는구나. 를 느끼며 잘 먹긴하죠. 하하.
매운맛과 레몬의 신맛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맛들입니다. ㅎㅎ

cyrus 2017-05-21 15:58   좋아요 0 | URL
저는 싫어하는 음식 몇 번 먹으면 적응할 줄 알았는데, 끝내 못 먹게 되더라고요. 사람들이 자꾸 권유해서 순대 먹기를 시도해봤어요. 그런데 정말 맛있는 순대 아니면 못 먹어요. 싫어하는 음식 억지로 먹는 것도 스트레스 생겨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7-05-23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에선 제대로 된 순대를 먹기 힘듭니다. 저는 순대만 좋아하고 부속이나 간은 싫어합니다. 갑자기 순대가 먹고싶어지네요.ㅎ

cyrus 2017-05-23 12:01   좋아요 0 | URL
돼지 비린내 나지 않게 잘 만든 순대국밥이라면 어느 부위든 먹을 수 있어요. 그래도 돼지국밥과 순대국밥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돼지 국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