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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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읽는 책과 소장하는 책이다. 책은 그 속에 담긴 내용이 중요하고 또 그것이 존재가치가 된다. 흔하지는 않지만, 책이라는 물체 자체가 소유주의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애서가’와 구별해 이처럼 소장가치 높은 책을 모으는 사람을 ‘장서가’라고 한다. 책의 역사는 애서가와 장서가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는 책을 좋아하여 자주 서점에 들르는 편이지만 장서가는 못 된다. 장서가는 애서가와 달리 많은 장서와 함께 고서, 초판본, 저자 서명본 등 진귀한 책들을 갖고 있게 마련이니 말이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사들이는 버릇으로부터 지금도 자유롭지 못하다. 어렸을 때부터 멋진 서가를 가졌으면 하는 꿈을 꾸었다. 책이 좋아 책을 사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이 쌓여가고 쌓여있는 책들을 바라보면서 그다음은 멋진 서가를 한 번쯤 그려보는 것이다. 사실 책이란 그 주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면 한순간에 천덕꾸러기로 변해버리고 만다. 집에 책이 많다 보면 이사를 해야 할 때가 가장 고역이다. 그래도 책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책이 전해주는 말할 수 없는 큰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애서가라면 책꽂이에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터다.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한마디로 책에 미친 사람이다. 하도 책을 많이 사는 바람에 아예 책만을 보관하는 ‘고양이 빌딩’을 따로 지었다. 부러운 이야기지만 모두가 다치바나처럼 살 수는 없다. 또한, 멋진 서가를 갖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서가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가란 단순히 책이 놓여 있는 곳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인의 모습이 투영된 책의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치바나는 서가를 들여다보면 서가 주인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보인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문장가 키케로는 ‘책 없는 방 안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고 말했다. 다치바나는 키케로처럼 서재를 정리하고 나면, 자신의 집에 새로운 정신이 깃든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그의 영혼이 지식을 충만하지 못해 홀쭉했더라면 그의 서재는 살아 숨 쉬지 못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애서가와 장서가들을 매료시킬 만한 멋진 정보로 가득 찬, 책에 대한 책이다. 흔히 책에 관한 책은 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저자들은 바른 독서법을 알려주겠다며 속독법과 슬로 리딩, 초병렬 독서법 등 다양한 기술을 판매한다. 명문대 진입을 대비해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야 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0.1%의 비밀을 알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고 현혹하기도 한다. 이런 책에 관한 책을 쓰는 사람은 대체로 유명한 사람이자, 화려한 애서가들이다. 책을 다룬 책들은 대개 점잔을 부리는 경우가 많은데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전혀 그렇지 않다. 다치바나는 사소한 자기 고백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몸으로 체득한 지적 자산들과 어디 가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책 뒷담화를 두루 섞어 냈다.

 

다치바나는 처음 문학에 관심을 두었으나 세계에 대한 철학적 인식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독서의 방향이 바뀌었으며 그것이 결국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등 전방위적으로 넓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문학을 거의 읽지 않는다. 국내에 다치바나의 존재감을 알리게 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 그 이유가 자세히 나온다. 잡지사 초년 시절 선배에 의해 문학만을 읽는 독서 행태를 지적받고 나서 논픽션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픽션의 세계가 논픽션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없는 지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을 좋아하는 애서가 입장에서는 인간의 감정과 고뇌, 사랑을 다룬 문학을 외면하는(?) 그의 독서 편력을 잘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읽어보면 그의 지적 열망이 어린 시절의 문학 독서에서 내공이 쌓여 폭발하기 시작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관심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간 것뿐이다. 그는 예전에 읽은 소설책도 고양이 빌딩 서재에 보관해두었다. 최신 보고서 속에 담긴 지식도 중요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되풀이하여 새롭게 읽는 책의 존재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삶 자체가 ‘독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다치바나도 약간 허술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호기심과 지적 욕구가 넘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고양이 빌딩 서재의 책 배열 방식이 체계적으로 되어 있을 거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가끔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책이 서재에 꽂힌 경우가 있다. 다치바나는 그런 경우를 애서가의 결점이라고 보지 않는다. 분류가 잘못된 책이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그 책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딘지를 언급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분야를 솔직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저는 소쉬르에 대해서는 그다지 소상히 알지 못합니다. 편의적으로 모아두었을 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요컨대 서가는 그 소유자의 지적 편력의 단면이라는 점입니다. (416쪽)

 

사놓고도 한 번도 펼치지 못한 책들이 아주 많다. 그를 동경하면서 책을 사 모았던 독자 입장에서는 그의 말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지적 욕구가 넘쳐도 어떤 주제건 아는 게 없어 뭘 읽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다치바나도 그런 상황을 한 번쯤은 겪었으리라. 그래서 그의 서재는 독서를 통해 자신의 관심사를 좁히고,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 있다. 이 책들을 사기 위해 지불했던 돈은 땀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그가 책을 접하면서 공부한 노력이 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치바나의 서재에는 ‘의심스러운 책’들도 가득하다. 여기서 ‘의심스러운 책’이란 오컬트, 신비주의, 유사 과학 등 일반적으로 황당하면서도 거짓말 같은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심지어 지하철 독가스 테러로 세계를 경악시킨 옴 진리교 관련 서적도 고양이 빌딩에 보관되어 있다. 그렇지만 다치바나는 ‘의심스러운 책’들을 그냥 재미로 읽을 뿐이다.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과도한 믿음에 빠지지 않는다. 비록 그 책들이 지적 영양분을 제공하기에 너무 부족한 것들이지만, 다치바나는 이런 책들도 거대하고도 복잡한 세상을 보여주는 일종의 지표로 여긴다. 종종 다치바나가 언급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서두처럼 ‘인간은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다치바나는 이런 인간의 본능이 남아 있는 책의 세계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거로 장담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소수의 애서가와 장서가를 위한 책이다. 책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고자 하는, 책 욕심이 넘치는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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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부인 2017-02-18 21: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가끔 저에게 책을 잔뜩 넘기겠다고 하시는 지인들이 있는데..그럴때마다 전, 아파트 한 평을 늘여주신다면.. 기꺼이 받겠다고 말하곤 하죠. 책욕심은 늘 나지만, 이제 40을 넘기고나니 한편 소소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긴 하고요. 그리고 암만 생각해도 서울이나 서울 근교를 떠날 용기도 나지않고 그렇다고 아파트 평수를 늘릴수도 없겠단 생각에 그저 도서관 옆 작은 평수의 아파트에서 사는 게 가장 좋을듯 합니다..ㅋ 제 한국집은 두개의 시립도서관을 옆 옆으로 끼고 있는 이유가 바로...여기에...ㅋㅋ

cyrus 2017-02-19 08:49   좋아요 1 | URL
이제 책 보관할 공간이 부족하니까 서평단 신청을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저도 이사를 하게 되면 도서관과 거리가 가까운 곳으로 정하고 싶어요. ^^

꼬마요정 2017-02-18 2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책 놓을 공간과 책을 살 수 있는 능력이 갖고 싶었답니다... 책을 빨리 읽고 소화할 능력은 덤으로 갖고 싶구요. 이 생에서는 힘들 듯 합니다만. ㅜㅜ

cyrus 2017-02-19 08:50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 책을 빨리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7-02-18 23: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욕심은 많지만
소장은 되도록이면 적게 추리고 싶네요
서재는 간소하고 단촐하게~
책 읽는 공간을 편의성이나 분위기를 중점적으로 제 색을 입히고 싶은 게 저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단 소장책은 그 누구보다 깊은 사유를 통해
수시로 집어들어 내 것으로 만들고 싶네요^^

cyrus 2017-02-19 08:52   좋아요 0 | URL
미래에 이런 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책을 소박하게 보관하는 법을 소개하는 책이요. ^^

2017-02-19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9 09:25   좋아요 1 | URL
이제 정신 차리고 치열하게 읽으려고요. 만약 제가 20대였을 때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를 읽었으면, 넓은 서재를 갖추고 싶은 부러운 마음이 들었을거예요. 그런데 저도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동경보다는 남은 생에 책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

잠자냥 2017-02-19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픽션의 세계가 논픽션의 세계에 비해 보잘것없다는 지은이의 의견에 저는 반대합니다! ㅎㅎㅎ

cyrus 2017-02-19 16:31   좋아요 3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치바나를 좋아해도 그 주장만큼은 반대합니다. 논픽션의 세계가 픽션의 세계보다 재미있고, 상상 초월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아주 불쾌한 기억이지만, 최순실과 박근혜 게이트가 그런 경우죠. 그렇지만, 이것만 가지고 논픽션의 세계가 픽션의 세계보다 흥미롭다고 볼 수 없습니다. 픽션의 세계가 먼 훗날에 논픽션의 세계가 되곤 하는데, 전 두 가지 세계를 대립하는 관계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상호 연결하는 관계로 보고 싶어요. 아서 C. 클라크의 소설 속 내용이 현실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듯이 픽션의 세계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픽션의 세계를 존중합니다. ^^

쉽싸리 2017-02-19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빌려다 놨는데요, 고양이 빌딩 전면 모습이 없어서 대실망했어요...

cyrus 2017-02-19 23:46   좋아요 0 | URL
저도 컬러로 된 건물 전체 사진이 있을 줄 알았어요.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 건물 전면 모습 사진 한 장이 있는데 흑백 사진입니다. 구글에 고양이 빌딩을 검색하면 사진이 나옵니다. ^^

꼼쥐 2017-03-02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등 수상을 축하드려요~~^^

cyrus 2017-03-02 16:3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꼼쥐님은 교보문고에 리뷰를 작성하셔서 3등 수상하셨던데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