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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평점 :
눈이 부시게 푸른 오후. 평화롭게만 보이는 그 날 학교 풍경도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었다. 운동장에선 학생들이 미식축구를 하고, 옆 교실에는 수업이 한창이다. 분주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미국 한 고등학교의 풍경이다. 순간 ‘철컥’하는 차가운 금속음. 그리고 이어지는 총성. 평화로운 학교 전체가 한순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사건은 미국 최악의 교내 총기참사 사건이 되었다. 2명의 재학생이 총알을 무차별로 난사, 13명이 죽고 23명이 다쳤다. 사건을 일으킨 2명의 소년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산 자들이 할 일은 분명하다. 비극이 또 다른 비극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제 학교 총기사건은 매우 흔한 일이 됐다.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학교에서 자꾸 폭력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매번 같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무도 답을 해주지 않는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미국 사회 그 자체에 있다. 각계 전문가와 언론 들은 총기 난사의 원인으로 마릴린 맨슨의 록음악, 폭력성 짙은 비디오게임, 잘못된 가정환경 등 일상의 탓으로 돌렸다. 미국 아카데미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작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를 만든 마이클 무어는 ‘총의 천국’인 미국인의 총기 집착증에서 원인을 찾았다. 하지만 누구도 총기를 난사한 두 명의 가해자의 범인동기에 대해서 명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언론은 피해 상황을 보도하는 데만 주력했고, 사건을 확대 해석하면서까지 가해자들을 비정상적인 인물로 묘사했다.
가해자의 잔인한 면이 밝혀질수록 가해자는 극악무도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한다. 언론의 시선에 따라 총기 사건을 바라본 대중은 대량살인의 가해자를 ‘무시무시한 괴물’이라고 비난한다. 과연 괴물을 낳아 키운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콜럼바인 사건의 범인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 수 클리볼드는 죽은 아들을 흉측한 모습으로 묘사한 언론 보도를 듣는 일이 고통스러웠다고 밝혔다. [주1] 상실과 비난과 자책. 클리볼드 부부는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고통을 겪었다. 사랑으로 키운 아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가해자의 어머니를 괴롭힌 건 ‘살인 괴물의 부모’라는 낙인보다는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과 괴로움이었다. 수 클리볼드는 자신의 책 《A Mother's Reckoning》에서 아들의 죽음과 비극 이후의 삶을 고백했다. [주2]
딜런은 중학교 때 영재 코스에 들어갈 정도로 똑똑한 아이였다. 그러나 수는 딜런이 술을 마시고 종종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아들의 비행과 우울증을 미리 알았으면 끔찍한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이 책이 가해자의 어머니가 썼다는 사실만으로 불편한 감정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의 범죄를 사죄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살인 괴물’이 된 아들을 모성으로 감싸 안은 변명이 아니다. 수는 이성적인 판단을 유지하면서 아들이 일으킨 사건을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인간의 근원적인 폭력성을 설명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 책을 썼다.
범죄 심리학자들과 법의학자들은 대량살인에 관해 적지 않은 연구를 내놓았지만, 유발 원인에 대해서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생전 행동을 관찰 분석할 수 있을 뿐이다. 수는 딜런의 성장기를 되돌아보면서 그가 어떻게 분노를 키웠는지 스스로 되짚어 보고 있다. 그녀는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고 털어놓는다. 딜런은 분명 평범한 소년이었다. 다만 속에서는 분노가 끊어 넘치고 있었고, 사건 2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이런 데서 딜런의 깊은 좌절과 분노를 읽을 수 있다. 누적된 부정적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해소할 수 없으면 극단적인 충동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타인이 저지른 행위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행동을 개인의 특성이나 기질적인 성향에 귀인(歸因)하는 인지적 오류다. 언론은 총기 난사 사건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사안을 과대평가하면서 보도했다. 선정적인 보도는 범인이 극한 상황으로까지 몰고 갔을 법한 여러 가지 외부적인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데 방해한다. 사건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환경적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발생원인은 바로 주인공의 성격이나 기질 때문이라고 황급히 간주해버린다. 이러한 현상이 무릇 미국에서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증오범죄 사건의 가해자를 우발 범행을 일으킨 괴물로 몰아가는 일관된 시선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가해자가 왜 증오심을 가지게 되고 그 증오심을 범죄로 표출하는지 찾아야 한다.
이 책을 읽은 부모라면 자녀들이 과연 행복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분노 표출을 억압당하며 살아온 아이들은 언젠가 그 쌓아둔 분노를 한꺼번에 터트린다고 한다. 흔하게는 사춘기 시절 반항으로 나타나지만 심각하게는 범죄를 저지르는 등 억압된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터지고 있다. 감정 조절이 성숙한 어른도 화를 냈다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질 수 없다. 하물며 어른보다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어떻게 갑자기 화를 풀 수 있겠는가. 어른들은 ‘어린 게 뭘 알겠어’라며 아이들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아이가 화를 낼 땐 분명 나름 타당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의 감정을 바라보지 말고 아이와 같은 눈높이로 바라봐야 한다. 아이의 숨은 마음을 이해하는 첫 단추는 공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1]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81~82쪽
[주2] 원제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어머니의 심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