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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 여림 유고 전집
여림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5월
평점 :
고독하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상태다. 고독하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소속감이다. 소속감에서 자부심이 생기고, 자부심에서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데 소속된 공동체로부터 멀리 떨어진 상황은 존재의 뿌리가 흔들리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그것은 방황의 시작이요, 고독의 시작이다.
고독은 내적 밝음의 고독과 외적 어두움의 고독이 있다.
내적 밝음의 고독은 자기성숙을 의미하지만
외적 어두움의 고독은 자기 상실을 의미한다.
선택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고독』, 96쪽)
고독. 누구나 이걸 잘 이겨 열정을 바치면 뭐든 이루고, 지면 병이 된다. 각오가 필요하다. 외로움을 이겨내는 고통을 잘 알기 때문에, 고독에 질 준비를 먼저 할지도 모른다. 고독에 진 사람은 적막한 고독과 자기소멸의 공포에 시달리면서 살아간다. 반면 피하고 싶은 징글징글한 고독감도 나의 일부로 여기면 훨씬 살기 편해질 수도 있다. 고독은 더 깊은 사랑을 주고 더 깊은 인연을 맺기 위한 자기 성찰과 성장을 위한 탐구가 된다.
고독은 시인 여림이 고집스럽게 추구하는 가치이다. 어찌 보면 가장 상투적인 감정이다. 이를테면 사랑, 진정한 소통 같은 것. 그렇지만 단순히 타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것 정도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절대고독을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들을 통해 시인의 주된 관심사가 존재의 고독에 대한 성찰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전화는 언제나 불통이었다
사람들은 늘 나를 배경으로 지나가고
어두워진 하늘에는 대형네온이
달처럼 황망했었다. 비상구마다 환하게 잠궈진
고립이 눈부셨고 나의 탈출은 그때마다 목발을 짚고 서 있었다.
살아있는 날들이 징그러웠다. 어디서나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고
목발을 쥔 나의 손은 수전증을 앓았다.
(『계단의 끝은 벼랑이었다』, 77쪽)
이 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빛이 아닌 어둠이다. 그곳은 절망과 좌절의 세상이다. 시의 화자는 사람의 관계에 거리를 두고 있다. 고독은 완벽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못한 인간들이기에 가까워질수록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고독을 느낀다. 대부분 혼자인 채로 남겨져 있거나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고독에 몸을 떠는 후유증 속에서 치유의 방법을 발견해 내는 것 또한 우리의 몫이다.
몇 번이나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햇살에도 걸리고 횡단보도 신호등에도 걸려
자잘한 잡품들을 길거리에 늘어놓고 초라한
눈빛으로 행인들을 응시하는 잡상인처럼
나는 무릎을 포개고 앉아 견뎌온 생애와
버텨가야 할 생계를 간단없이 생각했다
해가 지고 구름이 떠오르고 이윽고
밥풀처럼 입술 주위로 묻어나던 싸라기눈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나는 석유 난로 그을음 자욱한 포장마차에 앉아
가락국수 한 그릇을 반찬 삼은 저녁을 먹는다
둘러보면 모두들 살붙이 같고 피붙이인 사람들
포장 틈새로 스며드는 살바람에 찬 손 가득
깨진 유리병 같은 소주 몇 잔을 털어 넣고
구겨진 지폐처럼 등이 굽어 돌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오랜 친구처럼
한두 마디 인사라도 허물없이 건네고 싶어진다
포장을 걷으면 환하고 따뜻한 길
좀 전에 내린 것은 눈이 아니라 별이었구나
옷자락에 묻어나는 별들의 사금파리
멀리 집의 불빛이 소혹성처럼 둥글다
(『나는 집으로 간다』, 27쪽)
『나는 집으로 간다』 속 세상은 사랑과 교류가 불가능한 곳이다. 그곳에서 화자는 실패한 관계의 상처와 흔적을 지워나간다. 삶의 암흑에서도 화자는 부단히 상처를 치유하고 실존적 사유를 시도할 자신만의 ‘공간’을 추구한다. 예컨대 ‘살붙이 같고 피붙이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포장마차는 바로 그러한 공간을 상징한다. 그곳에서 화자는 다시 한 번 삶에 대한 진한 감동과 전율을 경험한다.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근데 손뼉을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소포를 부치고,
빈 마음 한 줄 같이 동봉하고
돌아서 뜻모르게 뚝,
떨구어지던 누운물.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하다가 끊어버린 손목.
여러 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 줄.
손수건으로 꼭, 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그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중에서, 70쪽)
고독감이 짙게 배면서 그리움이 진드기처럼 묻어난다. 이제껏 사는 동안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고 느껴질수록 지난 시간의 냄새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삶의 고통과 고독이 우리를 숨 막히게 하고, 때로 손목을 긋는 무시무시한 충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여림의 유고시집은 우리가 가진 고독과 쓸쓸함을 확인하는 글이 아니다. 상처로 가득한 자와 상처만 주는 자, 좁은 방, 암울, 불안, 허무, 상처, 외로움. 결국은 사랑. 이것이 여림이 독자에게 세상이란 그런 것이라고 알려준다. 뻔한 것을 쫓아 달려가기도 하고 때로는 가까이 있어도 바라보기만 하지만, 결국은 정답이 없이 또 달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시인에게 완벽한 고립과 철저한 고독은 곧 완전한 자유와 정신적 성숙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시인이 생각하는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는 궁극적으로 회복과 재생에 대한 염원과 기구의 은유인지도 모른다. 존재 이유를 찾는 과정은 인간의 필연적인 의무이므로 충분히 그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삶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자기 성숙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정말이지 인생에서 오롯이 나를 이해하는 것은 나뿐이다. 지독하게도 어렵고 힘든 것이 사랑이고, 가슴 터질 만큼 외로운 것이 우리의 일상이다. 결국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선택의 문제이다. 여림, 당신이 가고 나서부터 시가 내렸다.[주석] 우리는 여림의 시를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여림의 시는 그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을 건드리고 있다. 그의 시가 소중한 것도 바로 그러한 동질감 때문일 것이다.
[주석] 여림이 쓴 시의 제목 『네가 가고 나서부터 비가 내렸다』를 오마주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