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시행 이후로 중고서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가 할인 폭이 없는 책값에 있다. 사람들은 새 책보다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중고 책을 더 선호한다. 여기에 맞춰 인터넷 서점들이 중고서점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예스24는 다음 달에 중고서점을 개장한다. 출판계는 표정이 어둡다. 중고서점의 확장세가 커질수록 새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신간 유통이 정체되면 출판사의 수익이 저조해진다. 실적 부진으로 인해 새 책을 만들려는 투자 심리가 위축된다.
중고서점의 등장에 출판사 직원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지만, 헌책방 주인들은 울상을 짓는다. 손님들이 찾는 책들은 거의 중고서점에 몰려 있다. 중고서점은 하루에 엄청난 양의 책을 확보해도 재고 문제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중고서점에 책을 구매하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에 헌책방은 재고가 많아도 너무 많다. 헌책방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다. 헌책을 사는 손님은 팍 줄어들고 있고, 손님이 파는 책들만 계속 많아진다. 판매되지 않은 책들이 점점 쌓일수록 책방 공간이 협소해진다. 헌책들을 애지중지하게 여기던 책방 주인들도 너무 많아진 책들을 혼자 관리하지 못한다. 책방에 오래 방치되어 있고, 판매 가치가 떨어진 책들은 폐품으로 처분한다.
요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술 마시는 책방’ 유행이 불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책방에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광경들 볼 수 있다. 책방이 직접 유명 작가를 초빙해서 강연이나 사인회를 열기도 한다. 그러면 책방을 널리 알릴 수 있고, 책을 구매하는 손님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중소 책방들은 손님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책만 보는 서점’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다. 서점도 ‘투 잡(Two job)’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투 잡’하는 헌책방의 현실은 초라하다. 책방 운영하면서 얻는 수입만으로 근근이 살아가기가 어렵다. 내가 자주 찾는 헌책방은 담배도 판다. 담배 사러 오는 손님이 책 찾는 손님보다 더 많다. 책과 골동품을 같이 파는 헌책방도 있다. 그런데 말은 골동품이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낡은 잡동사니다. 가끔 알람시계, 소형 라디오 같은 물건도 있다. 이 중에 하나만 팔아도 감지덕지하다.
허름한 헌책방은 세련된 분위기를 유지하는 중고서점을 절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로 인해 헌책방에 대한 편견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헌책방에는 아무도 사지 않는 책들만 잔뜩 있고,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생각한다. 중고서점은 ‘젊은 헌책방’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워서 책을 멀리하는 젊은 층들을 끌어모은다. 그렇지만 중고서점이 헌책방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고서점과 헌책방 모두 애용하면서 확실하게 느낀 것이 딱 하나 있다. 점점 늘어나기만 하는 중고서점은 ‘레몬 마켓(lemon market)’으로 전락한다. 영어에서 레몬은 속어로 ‘불량품’이라는 뜻이다. 레몬 마켓에 가격은 저렴하지만 시고 맛없는 레몬만 널려 있다. 그래서 레몬 마켓은 구입해서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품질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불량한 시장을 의미한다.
중고서점에는 불량 레몬 같은 책들이 너무 많다. 팔지 못해서 출판사 창고에 썩혀 있던 책들이 대량으로 중고서점으로 들어온다. 대부분 출간 연도가 좀 지난 구간 도서다. 책 상태만 좋은 헌책이다. 책 보는 눈이 남다른 독자는 오랫동안 읽고 보관할 수 있는 좋은 책들을 잘 골라낸다. 반면에 좋은 책을 고를 줄 모르는 독자들은 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그래서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많은 책을 고를 가능성이 커진다. 중고서점의 등장은 독자들이 즐거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중고서점이 많아진다고 해서 값싸고 좋은 책들을 더 많이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가 원하는 책들은 다른 독자들도 갖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좋은 책을 가지게 되면 팔지 않고 소유하려는 심리가 강해진다. 이렇게 되면 중고서점에 품질이 더욱 떨어지는 책만 넘쳐날 수밖에 없다. 중고서점을 ‘헌책방의 진화’, ‘책의 보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과하게 소개하는 뉴스를 발견하면 일단 의심하자. 중고서점을 취재한 기자가 무식하거나 중고서점 확장에 대한 야심이 큰 온라인 서점의 언론 플레이일 수 있다. 중고서점을 애용하는 것도 좋지만, 화려한 내부 분위기에 현혹되지 마시라. 그러다가 호구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