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중고 품질판정 고객위원회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 기간은 4월 30일까지다. 그런데 ‘선착순 1만 명’이 투표를 완료하면 그 이후로 투표를 해도 적립금을 받지 못한다. 알라딘 홈페이지로 접속해서 온라인 중고샵을 클릭하면 해당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얼른 투표하시라.
투표 실시간 결과가 나와 있다. 이걸 확인하면서 헌책에 대한 내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알았다.

헌책방에 가면 대여점 스티커 혹은 도서관 스티커가 있는 책을 많이 발견한다. 경북대학교 북문으로 향하는 도로 근처에 있는 헌책방 합동북에는 경북대학교 도서관 스티커가 붙여진 책들이 널려 있다. 아마도 학부생들이 학교 도서관 책을 반납하지 않고 책방에 팔았을 것이다. 공공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었던 연도가 많은 책 또한 책방에 온다. 대구 수성도서관의 옛 이름은 효목도서관이었다. 2008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가끔 책방에 효목도서관 스티커나 직인이 있는 책을 만나기도 한다. 출간연도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도서관 스티커가 있는 책이 책방에 있다면, 책을 빌린 사람이 반납하지 않고 책방에 팔았던 것일 수도 있다. 멀쩡한 도서관 책이 손님을 잘못 만나면 나이 많은 책들이 사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이곳에서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는 주인을 만날 확률은 희박하다. 스티커와 도장 자국은 책방 손님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낙인이다. 새것을 선호하는 손님들은 스티커와 도장 자국 하나라도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스티커와 도장이 있는 책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책을 ‘판매 불가’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긴 도서관에 있어야 할 책이 알라딘 중고매장에 있으면 책을 고르는 손님 입장에서는 께름칙하다. 도서관용 흔적이 남아있는 책을 가지고 있으면 도서관에서 훔쳐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을 인간의 노화 과정으로 비유하자면, 종이가 누렇게 된 상태는 흑발이 백발로 변하는 과정이다. 책배에 남아있는 얼룩은 주근깨 또는 기미와 같다. 종이는 물과 습기에 엄청나게 약하다. 주근깨와 기미가 햇빛에 많이 노출되면 생기는 반점이라면 책배의 얼룩은 습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자연 현상이다. 물에 젖은 종이를 제대로 건조하지 않으면 물기 자국이 그대로 남는다. 물과 습기에 심하게 노출되면 종이에 곰팡이가 생긴다. 이건 책과 책 주인 모두가 원하지 않는 종이의 질병이다. 책 곰팡이는 무좀 같은 녀석이다. 곰팡이로 인해 하얗던 종이 표면이 보기 흉해진다. 책 주인은 곰팡이가 있는 부분에 손을 대기가 꺼려진다. 책 곰팡이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방법은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믿고 약품을 사용했다간 종이 상태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 얼룩 흔적,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한 책은 서점에서는 늙고 병든 사람처럼 취급받는다. 젊고 파릇파릇하고 깨끗한 새 책들 사이에 도저히 낄 수가 없다. ‘젊은 헌책방’을 표방하는 알라딘 중고매장 또한 얼룩과 곰팡이가 있는 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병든 책들이 향하는 안식처가 바로 어두컴컴한 지하실의 헌책방이다. 이들은 주인을 기다리면서 편안히 잠든다. 운 좋은 녀석은 주인을 잘 만나서 따뜻한 서재 안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낸다.

나이가 많은 책은 서럽다. 젊었던 시절의 순백 피부는 누렇게 변했고, 온몸에 난 얼룩과 곰팡이가 세월의 변화를 말해준다. 또한, 냄새가 많이 난다. 헌책방 내부로 들어서면서 이상한 냄새가 코를 확 건드린다. 눅눅한 이불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 이 냄새는 지하실의 습기에 숙성된 늙은 책들에서 난다. 그러나 오래 맡아도 속이 매슥거리는 일이 없다. 헌책방 방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헌책 냄새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 냄새를 많이 맡는다고 해서 신체나 코 감각 기관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다. 헌책 수백 권이 쌓여 있고, 폐쇄된 공간인 책방에서는 헌책 냄새가 유독 강하게 날 뿐이지, 헌책 한 권이 서재에 있으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코를 책에 가까이 가서 맡아보면 희미한 냄새의 흔적이 느껴진다.

책을 샀으면 인간적으로 자신의 서명을 크게 쓰지 말자. 분실하기 쉬운 대학 강의 교재나 교과서에 서명을 남기는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에고(ego)와 소유욕이 과다 분비하는 사람들은 책에 글씨체를 크게 서명한다. 다. 책이 아주 귀한 상품으로 대우받았던 시절에 책 소유자는 책에 장서인(藏書印)을 찍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 책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내 손에 있던 책이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갈 수 있다. 쓸데없이 서명이 많은 책은 다른 책 주인에게 이양하는 데 불리하다. 그 책을 원하는 사람들은 뚜렷하게 남아 있는 전 책 주인의 흔적을 부담스러워 한다. 전 책 주인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책의 운명이 꼬여버린다.
당연한 말이지만, 책은 종이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요즘 세상에 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지만, 책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종이는 쉽게 구하기 힘든 귀한 자원이다. 사람이 자신의 몸을 함부로 쓰면 질병에 쉽게 노출되고 건강이 나빠진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을 험하게 다루면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었어도 끝내 파손되고 만다. 책의 운명은 책 주인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