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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품격 -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 빌 게이츠 선정 올해의 추천도서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11월
평점 :
우리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가진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인성교육을 의무로 가르치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 유일하게 딱 하나 있다. 그곳이 어딘지 아시는가. 바로 여기 대한민국이다. 2014년 12월 국회에서 인성교육진흥법이 통과되었다. 이 법이 제정된 목적은 이렇다.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을 육성하는 것. 이 법안은 작년 7월부터 발효되었다. 정부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학교에 인성교육 의무를 부과했다. 그리고 인성교육진흥위원회를 설립하여 5년마다 인성교육계획 및 방침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게 된다. 전국의 초 · 중 · 고교는 매년 초 인성교육계획서를 교육감에게 제출하여 보고해야 한다.
이 법을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일단 학생들이 부담스러워 한다. 학교 수업량을 따라가기가 벅찬 마당에 이제는 참된 인성을 기르는 법까지 배우게 생겼다. 인성교육을 위한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것이다. 인성도 사교육으로 가르치는 시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인성은 한 가지로만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이 평범한 단어 안에 다면적인 의미가 가득하다. 그런데 교육부는 인성을 자가진단으로 평가하겠단다. 여러분이 직접 자신의 인성이 어떤지 스스로 평가해보시라. 단순하기 짝이 없는 평가 문항들 모두 교육부가 만든 인성평가 자가 진단법에 포함되어 있다.
* 나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자기존중)
*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존중)
* 나는 나의 목표를 위해 현재의 유혹을 잘 참는다. (성실)
* 나는 다른 사람을 잘 도와준다. (배려, 소통)
* 나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도 이야기를 잘 한다. (배려, 소통)
* 주변 어른들은 나에게 예의가 바르다고 말씀하신다. (예의)
* 나는 내 감정과 행동을 잘 조절한다. (자기조절)
* 나는 내 생각이나 판단이 늘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자기조절)
* 나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내 잘못이라고 솔직히 말한다. (정직, 용기)
* 나는 진실하고 솔직하다. (정직, 용기)
* 나는 태극기, 무궁화, 애국가 등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시민성)
* 나는 다문화 친구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시민성)
잠깐만! 인성이 애국심과 무슨 상관? 우리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강조하는 것은 국민의례로 충분하다. 나는 3.1절이나 광복절 같은 국경일이면 집 앞에 태극기를 달지 않는다. 그렇군, 나는 시민성이 부족해서 인성이 좋지 않았어.
세계 최초이자 지구상 유일하게 의무교육을 하는 이 땅에 《인간의 품격》 같은 책이 독자들에게 높은 평점을 받고, 추천도서로 소개되는 상황이 이상하다. 아이들은 인성교육을 학교에서 배우게 되니까 이런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자녀를 애지중지 여기는 강남 어머님들에게 당부한다. 아이가 이런 책을 읽으면 따끔하게 혼내주세요. 교과서나 문제집이 아닌 책은 그냥 쓸데없는 종이 덩어리일 뿐, 자식들 수능 성적을 향상하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인간의 품격》을 짧은 문장으로 축약하면 이렇다. “여러분, 우린 결함이 많은 ‘뒤틀린 목재’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페이스북에 자랑질 그만하고, 겸손하면서 도덕적으로 성숙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하십시오. 인간다운 성품을 지닙시다!” 끝. 이게 전부다. 내가 요약한 문장 안에 교육부의 인성 자가 진단법 문항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내 생각이나 판단이 늘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자기조절)’, ‘나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내 잘못이라고 솔직히 말한다. (정직, 용기)’.
《인간의 품격》의 저자 데이비드 브룩스도 우리에게 자신의 성품을 스스로 평가해보라고 당부한다. 브룩스가 우리 앞에 마련한 평가 문항은 간단하다. 아담 I과 아담 II. 아담 I는 야망에 충실한 인간이다. 자신의 성취를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아담 II는 도덕적 자질을 구현하는 올바른 인간이다. 교육부의 자가 평가 문항과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뒤틀린 목재로 비유되는 인간은 자신의 결함을 잘 알기에 내적 성숙을 위한 ‘목표를 위해 현재의 유혹을 잘 참는다.’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 되려면 외부 유혹에 흔들리는 내면의 자아와 맞붙어 싸워야 한다. 그래서 아담 II는 ‘감정과 행동을 잘 조절한다.’
그러나 교육부의 문항 내용 모두 아담 II가 되려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문항은 아담 I에 가깝다. 브룩스는 능력주의 체제가 발달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서 고집부리거나 자기 과시에 흠뻑 취한 사람들이 많아진 ‘빅 미(Big me)’의 시대로 변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겸손과 절제를 몸에 지닌 사람들이 많았던 ‘리틀 미(Little me)’의 시대였다. 우리 사회도 자신을 24시간 공개하고, 과시하는 ‘빅 미’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자신의 능력과 성취를 남들에게 공개해야 비로소 만족감을 느낀다. 이처럼 능력주의 체제가 작동되는 이 사회는 개인의 성공이 손쉽게 찬양받을 수 있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6/0226/pimg_7365531661371910.png)
(이미지 출처 : 영화 '픽셀' 포스터)
자기과시에 열을 올리는 이 사회 속에서 아담 II가 아담 I로 완전히 탈바꿈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능력주의는 너무나도 비대해진 상태다. 말 그대로 ‘빅 미’다. 그것은 도덕적 성품을 지닌 ‘리틀 미’마저 집어삼켰다. 성숙한 인성을 가진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 자신의 결함을 인정하고, 개선하려는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 그런데 타인의 기준으로 도덕심을 평가받으면 인성이 올바른 사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 된다. 능력주의 체제가 개입된 인성 평가는 사회가 원하는 성과(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시민 육성)에 맞춰 그럴듯하게 흉내를 내는 부작용이 생긴다. 우리는 능력주의 체제가 부여한 인성을 하나의 능력으로 과시한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자신의 선한 행동을 공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아담 I와 아담 II 중 어느 쪽으로 봐야 하는가? 이러면 진짜로 성품이 뛰어난 사람이 누군지 분간하지 못한다.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짝퉁' 인간들만 생길 것이다.
《인간의 품격》은 우리 삶을 성찰하게 하는 유익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빌 게이츠가 이 책을 추천한 이유를 이해한다. 하지만 이 책은 기본적인 도덕심이 부재한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준은 아니다. ‘빌 게이츠 추천 도서’를 강조하면서 광고하는 언론과 찬양 일색의 서평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학교에서 인성을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이상한 나라에 이 책의 핵심 내용이 제대로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학교에서 인성의 중요성을 가르쳐주는데 혼자 끙끙거리면서 삶의 내적 투쟁을 실행하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솔직히 정직하게 삶의 내적 투쟁을 실행할 수 있는 의지력이 없다. 나 또한 ‘뒤틀린 목재’ 같은 인간이며 아담 II에 가깝다. 만년필 한 자루 받으려고 《인간의 품격》 서평을 쓰고 있다. 그렇다. 이 글은 이벤트용 서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