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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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소설을 완성하고 나면 이제 그 소설은 작가의 손을 떠나 오롯이 독자의 것이 된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이 되어 그들이 처한 배경 속에서 유영하며, 그 인물에 감정이입하여 자신의 삶을 투영한다.

나폴리 4부작은 유달리 나의 유년 삶도 나의 청년기와 결혼 이후 중년기의 삶까지 들여다보게 해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레누의 화자 편에서 들었던 레누와 릴라의 이야기..

1부에서는 릴라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로 서막을 열었고,

4부에서는 릴라가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끝내 의문으로 남겼다.

어쩌면 릴라는 주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겨진 것은 아닐까.

언어든 뭐든 쉽게 다루는 재능을 타고난 릴라와

릴라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노력파가 될 수밖에 없었던 레누는

성격도 대비되는 만큼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줄곧 비교하고 비교당했다.

확연히 차이나는 길을 걸으면서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다시 끈끈하게 다가섰다가도 틀어지기를 반복했다. 


4부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에서 레누는 남편을 버리고 니노와 동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레누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릴라를 멀리하고 이제 릴라의 영향을 받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여자를 너무 밝히는 니노의 실체를 알고는 니노를 떠나 릴라의 집과 한 건물 내로 이사하게 되고,

둘이 비슷한 시기에 임신하고 둘 다 딸을 낳으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진다.

결국 레누는 릴라와의 대화에서 자극을 받고 사유의 원천이 되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작가로 처음 발을 내디딘 것도 작가로서의 성공도 릴라 덕분이었다는 것을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다.


릴라가 레누에겐 영감을 주는 뮤즈였듯이,

릴라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유명 인사였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나폴리를 떠났던 레누와 달리 나폴리를 지킨 릴라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자연스럽게 해결방안에 도달하게 만들어주었다.

릴라와 함께 하면 그 알 수 없는 기운에서 사람들은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정작 릴라는 자신의 비범함을 자신의 명성에는 이용하지 않았다.

자신은 자신이길 원치 않았고 아무것도 아닌 무가 되고 싶어 했다.

말년에는 정말 그것을 실현하기라도 하듯이 고향 동네를 떠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주변 사람들의 머릿속에 중요한 존재로 남은 채 말이다.


에필로그에서처럼, 릴라와 레누의 영원히 끝내지 못할 것 같은 이야기가 드디어 끝났다.

60여 년에 달하는 서사이다 보니

소설 속에는 이탈리아의 사회상에서부터, 경제, 정치 등 혼란스러웠던 이탈리아의 현대사가 담겨 있다.

이탈리아 나폴리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은 그 시대와 장소라는 환경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인간 보편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막장 드라마와도 같은 인물들의 사랑이 정말 보편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너무나 복잡한 인물들의 러브라인을 따라기기가 힘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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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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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며 아 그래서 내가 나폴리 4부작에 빠져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폴리 4부작은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들..  살아오며 느꼈던 순간의 복잡다단했던 미묘한 감성들을

일상을 통해 풀어서 예시해 주는 듯하다.

독자는 보통 소설 속 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하는 재미로 읽기는 한다.

이 소설은 특히 인물의 감정과 행동의 묘사가 정교하고, 일상적인 감성의 변화가 구체적이어서 그런지

가까운 누군가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 문득문득 발견하게 된다.

특히 대학생이었던 나, 사회에서의 나,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나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면서

나의 자아와 정체성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책이 술술 재미있게 읽는다는 점은

이 소설을 좋아할 수밖에 없이 만드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1부 <나의 눈부신 친구>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성장과 우정이었고,

2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청년기의 사랑과 애증이었다면,

3부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중년기의 일과 결혼,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이다.

중년기라고 하기엔 레누와 릴라의 나이가 많지는 않다.

고작 30살 즈음의 이야기이지만, 

릴라는 별거 중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에서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레누는 작가로서 성공한 이후 대학교수와의 결혼으로 신분이 상승한 시기를 중년기로 보았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4부는 1부 첫 도입부에서 65세의 나이에서 시작했듯이, 30세에서 65세까지 장년기와 노년기라는 가장 긴 세월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 레누와 릴라는 터널을 지나 마을을 벗어난 적이 있었다.

비가 왔고 마을에서 멀어지자 두려움에 먼저 돌아가자고 했었던 쪽은 의외로 릴라였다.

레누는 무엇인가 되고 싶었고, 고향과 가족을 떠나고 싶었기에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자아를 찾고 행복해했다.

릴라는 남편에게서 벗어나 아이를 키우기 위해 햄 공장에서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이 소설 3부는 고향을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두 사람의 삶은 대비해서 보여주고 있다.  


레누는 68혁명이라는 사회 전반에 흐르는 변화의 기류에서 복잡하기만 하다.

대학에서 공부한 지식인로서 뭔가 해보고 싶었지만 열정이 없었고, 방법도 몰랐다. 

결혼과 안정적인 생활에 안주하면서 기존의 질서 체계 속에 깊게 자라잡아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은 생각같지 않았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찾아 갈등하고 방황하게 된다.

릴라는 남편을 떠나 아들을 홀로 키우기 위해서 햄 공장에서 일하면서

부조리한 노동 환경를 직접 목격하고, 이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동 운동의 선봉에 섰다.

릴라는 엔초의 컴퓨터 공부에 도움을 주다가 오히려 자신이 컴퓨터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다.


레누는 릴라가 어려서 썼던 글을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로 각색한 책을 써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결혼후 새 글은 쉽게 써지지 않았다. 

레누의 남편 피에트로는 대학교수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레누에겐 과분하다며 칭찬받는 인물이지만, 정작 레누에겐 너무나 보편적인, 이름뿐인 남편이었다.

레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원치 않았고,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만 있어주기를 바랐다.  

육아도 혼자만의 전쟁이었기에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들었다.

보통의 기혼 여성이라면 겪게 되는 일인데도, 왜 레누에게서는 한 여성의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읽히게 된다.


 

 "나는 어머니이자 유부녀인 현재 나 자신의 상황에 불만이 가득 차 침대에 누워 괴로워했다. 죽을 때까지 부엌데기처럼 매일 똑같은 집안일을 하고 침대에서 부부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시들어갈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  릴라는 원래 과감한 면이 있었다. 한번 마음먹으면 정당한 이유를 가진 자 특유의 관대한 잔혹함으로 결연하게 일을 밀어붙였다. (...)  릴라는 릴라대로 나를 전형적으로 성공한 지식인자 머릿속에는 온통 아이들과 책 생각밖에 없고 학구적인 남편과 해박한 대화나 나누는 교양 있고 부유한 사모님이라는 두 가지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실체감을 회복해야 했지만 너무나 멀어져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낙후한 나폴리를 떠나 대단한 삶을 살고 싶었고, 끊임없이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적인 삶을 사는 레누..

나폴리를 거의 벗어나 본적이 없지만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아는 듯 역동적인 삶을 사는 릴라..

레누는 릴라가 자기만의 계획에 따라 완벽하게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고, 직접 몸으로 느끼고 참여하는 열정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레누의 릴라에 대한 이런 끊임없는 생각은 릴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릴라에게서 벗어나 성숙한 인격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부에서 릴라가 레누에게 <나의 눈부신 친구>가 되어주길 바랬던 만큼이나. 

이번 소설 3부에서도 그런 마음을 잘 나타내는 대사가 있다. 

두 사람의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졌지만, 서로에 대한 생각과 기대 영향력은 더 강해진 듯하다.


"난 네가 항상 최고였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이보다 훨씬 뛰어난 글을 쓸 수 있다고 확신해. 네가 더 잘하기를 원해. 그게 내 가장 큰 소망이야. 네가 뛰어나지 못하면 내 존재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3부의 후반부는 4부에서의 얽히고 설키게 될 관계들을 미리 예고한다.

레누의 죄책감마저 들지 않는 과감한 행동은

릴라였다면 감정에 충실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가능했던 것일까.

릴라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올까.  혹시 그 남자는 아닐까. 

무엇보다 1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릴라가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유와

어디로 사라졌는지.. 등등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다.  

나폴리 4부작은 항상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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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5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림스네 2018-01-31 00:25   좋아요 0 | URL
이제서야 글을 보았네요.
저도 글을 올리고 나서 삭제해서 얼마나 무례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건방지기까지하다고 하시니..
나름 예의를 갖추어서 올린다고 올렸는데 기분을 나쁘게 했나보네요.

몇줄짜리 답글에도 기분 나빠하시면서
님의 글을 본 당사자 작가는 얼마나 기분 나쁠지는 생각해 보셨는지요.
제 서평도 쓸데없이 주절주절 쓴 글이라고 하셨네요.

말씀 안드리려했지만, 작가의 글을 읽었거든요. 리뷰를 삭제하고 다시 맨 위에 리뷰글을 올려놓았다면서 씁쓸하다고요.
그래서 들어가보니 평이 좀 너무 직접적이더라구요.
작가와는 친분도 없고 책도 아직 읽지 않았지만요.
삭제되어서 다시 올렸다는 것은 지금 알았네요.

세상에 읽을만한 가치가 1도 없는 책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작가에게 괜히 감정이입해서는 글까지 쓰고나서는
뭐이렇게까지 싶어서 삭제하고 잊고 있었는데 메일로 가는지는 몰랐어요.
기분 푸시고요.
그런 사정으로 글을 올린거라고 말씀드리려고 늦게라도 글올립니다.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나폴리 4부작 2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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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4부작 1권 <나의 눈부신 친구> 에서 레누는 진학하고 릴라는 학업을 포기하면서 둘의 삶은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릴라는 고리대금업자 집안의 스테파노와 결혼하면서 더 차이를 보이는데, 결혼 당일에 스테파노의 본모습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막을 내리면서 2권에서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을 안겨줬다.


2권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에서 역시나 스테파노는 본색을 드러내고 릴라는 잘못된 결혼의 선택으로 자신을 잃은 채 매 맞는 아내로 전락했다. 레누는 릴라의 그늘 안에 머물면서 더 강하고 안전하게 느꼈기에 릴라의 결혼에 무력함을 느끼고 방황했다. 릴라가 독학으로 중학교 공부에 레누에게 도움을 주었듯이 고등학교 공부에도 조용히 공부할 공간을 마련해 주고 자극을 주는 등 도움을 주었다. 레누는 언제나 그렇듯이 릴라 덕분에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결혼 후 릴라가 환경에 굴복해 가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그녀가 공부하거나 책을 읽는다고 하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긴장하게 된다. 


"릴라가 사투리로 말을 할까 봐도 두려웠다. 뭔가 천박한 말을 해서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것을 드러낼까 봐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릴라가 입을 여는 순간 모두 그녀의 명석함에 매료될까 봐 두려웠다. 갈리아니 선생님까지 빠져들게 될까 봐 두려웠다."(205페이지)


릴라는 피사의 노르말레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드디어 나폴리를 벗어났다. 불안한 경계심과 해방감이 교차했다. 릴리가 없는 도시에서도 레누는 릴라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릴라의 결단력, 과감함, 진정한 사랑에 대한 깨우침 등을 생각하며 릴라의 삶을 자신의 삶에 투영해 본다. 다른 계층의 사람들도 만나면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해 인식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인지하며 성숙해갔다. 


결혼 후 자신을 잃고 죽어가던 릴라는 니노를 만나 새로 태어났다. 니노가 누구던가. 바로 레누가 짝사랑하던 상대가 아닌가. 릴라가 집을 나와 니노와 살림을 차리고 임신까지 하지만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니노는 학교도 그만둔 채 낙오자가 되었고, 릴라는 다시 스테파노에게 돌아가 니노의 아기를 낳고 힘든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모든 것이 아슬아슬하다. 위험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이들은 삶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평생을 구석에 처박혀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불현듯 왜 내가 아닌 릴라가 니노를 차지하게 됐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감정에 몸을 내맡길 줄 모른다. 감정에 이끌려 틀을 깨뜨릴 줄 모른다. 내겐 니노와 단 하루를 즐기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릴라와 같은 강인함이 없었다. 나는 항상 한 발짝 뒤에서 기다리기만 했다."(404페이지) 


니노와의 관계에서 레누와 릴라의 성격차가 확연히 드러나는 듯하다. 릴라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원하는 것은 망설임 없이 취할 줄도 알지만 레누는 감정을 숨기고 한 발짝 뒤에서 관망했다. 릴라는 격정적인 삶을 살지만 레누는 안정적인 삶을 산다. 


이 책의 제목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는 책의 후반부에 가서야 드러났다. 릴라의 글쓰기에 매료된 레누는 문학적으로도 릴라의 영향을 받았다.  (너무 많은 것은 스포가 되므로 얘기하지 않겠다.) 레누는 릴라에 대한 열등감과 한계를 자주 느꼈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성적을 내고 능력도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뛰어난 누군가와 가까워도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지도 영향을 받지도 못할 것이다. 레누가 화자라서 릴라의 속마음은 직접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레누에게 눈부신 친구라고 얘기하는 장면이나 레누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장면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나폴리 4부작은 두 여인이 66살이 되어서 릴라가 사라지고 레누가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시작했다. 6살에 만나 60년에 걸친 두 여인의 우정사.. 1권에서는 레누와 릴라의 유년의 성장이, 2권에서는 사랑과 공부와 일 사이에서 방황하고 생각하는 청춘의 자화상을 볼 수 있었다. 사랑은 엇갈리게 마련이고 상처받고 또 다른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했다. 2권이 끝날 때의 나이가 이제 20대 초반이다. 20대 초반인데도 그동안 두 여인의 서사가 얼마나 장황하던지.. 3권에서 두 여인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발전시킬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궁금하다. 3권도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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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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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 유년의 바다가 떠오르는 소설이다.  재밌으면서도 독서에 힘이 필요한 소설이 있다면, 이 소설은 바닷가 썬 베드에 누워서 힘을 쏙 뺀 채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재미가 있지만, 단순히 재미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감동과 눈부심이 있는 소설이다.


나폴리 4부작 중 1부인 <나의 눈부신 친구>는 1950년대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는 시골 마을 아이들의 성장기 얘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기까지의 서사가 빽빽하다. 2부와 3부까지 번역 출간되어 있다.

인물의 캐릭터가 줄거리를 끌고 간다고 한다. '성격은 곧 운명'이어서, 특정한 성격 안에는 이미 특정한 이야기가 잠재되어 있다고들 말한다. 두 중심인물인 여자아이 릴라와 레누는 성격도 생김새도 너무다 다른 인물이고, 이들의 성격은 줄곧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대비되는 만큼 상호의존적이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릴라는 타고난 지능으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났지만, 공부를 포기해야 했고,

레누는 평범하지만 끊임 없는 노력형으로 릴라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했기에 많은 변화를 겪고 성장했다. 둘은 중학교에 진학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향성이 완전 갈라졌다.

 

소설은 레누가 화자가 되어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들의 이야기이다. 아이들은 마냥 순수하지만은 않았고 폭력적이었고 가난이 싫어 부자가 되고만 싶었다. 어른의 세계가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도 많았다. 소설은 이들이 나이가 먹어가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전후 나폴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모두 가난하고 돈벌이가 급했기에 특히 여자아이들이라서 중학교 진학은 특별한 것이었다. 릴라는 중학교 진학을 허락받지 못했지만, 레누는 아버지 덕분에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릴라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하며 열정을 보이기도 레누의 공부를 봐주기도 했다. 

릴라의 학교에 대한 꿈은 아버지의 구둣방에서 새 구두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무리 발악을 해도 혼자의 힘으로 가난을 극복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책도 멀리하고 무기력해졌다. 정신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이제 선정적인 육체만 남았다. 빛을 발하는 외모로 뭇남성들의 주목을 받고 동네 고리대금업 남자와 결혼하면서 1부는 끝나게 된다.

 

청소년기는 가치 체계가 형성되고 해체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자질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가정 환경이나 주변 환경, 특히 친구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레누는 릴라가 자신에게 자극을 주었고 극복 대상이었으며 지성에서나 외모에서나 눈부신 친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릴라가 결혼전 레누에게 말하는 대사를 읽는 순간엔 가슴이 뭉클하면서 생각의 전환을 가져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너는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  절대로 멈추지마. 필요한 돈은 내가 줄게. 넌 항상 공부해야 해. ...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416페이지)  


릴라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공부를 계속하는 레누가 자신을 대신하여 꿈을 이루어주길 바랬기에 눈부신 친구였던 것이다. 레누와 릴라는 서로가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새로운 세계로의 시야를 터주고, 자극을 주고, 그렇게 그 자극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 더 크게 성장하게 해주었다. 서로에게 눈부신 친구, 자극과 열정이 되는 친구인 것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이 책은 나도 자라면서 자아의 틀이 만들어지고 가치 체계가 형성되고 파괴되는 시기를 겪으면서 성장했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도 작은 마을을 벗어나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경계도, 선한 세계에서 악의 세계를 훔쳐보고 넘어가는 경계도, 인간의 본성을 깨닫는 경계도 넘어서면서 더 큰 나를 찾고 더 큰 세상에 적응했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나의 유년 시절과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게 할 만큼 서사와 감동이 가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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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비행공포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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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안정..

자유와 친밀감..

여성의 삶에서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이사도라는 감정에 솔직하고 개방적인 삶을 살라는 에이드리언의 유혹에 주저한다.

즉흥적인 도피와 자유는 언제나 이사도라의 욕망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남편 베넷과의 결혼 생활은 안정되지만 따분하고 자유가 없었다. 

일상을 박차고 뭔가 자유로움과 열정을 누리고픈 환상은 에이드리언을 만나면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남편이라는 안정적인 삶을 살 것인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열정 넘치는 삶을 살 것인지

순간적인 선택 앞에서 망설였지만,

끝내, 건실한 남편 베넷을 뒤로하고 에이드리언과 사랑의 도피를 떠나버렸다.

에이드리언과 열정과 자유의 삶을 지속될 수 있을까.


이사도라는 평범한 여성보다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자신과 그 힘을 완전히 믿지는 못했다.엄마의 조언대로 성공하기 위해서 아기를 낳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단 결혼하면 다른 남자를 원하면 안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성적 판타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남자에게서 저 남자에게는 가는 식이 아니라 혼자 힘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두 남자를 다 가지고도 싶었다.

그러면서 착한 아내, 행복한 미국인 엄마가 되고도 싶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이처럼 위선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모순 속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여성 해방적인 사유는 사유에 그칠 뿐 현실적으로 실행되기엔 요원해 보인다.

우리의 본질적인 삶과 완전히 동떨어져 보이기에 일관성도 없어 보인다.

내가 주부로서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얘기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작가 "아니 에르노"의 글들을 읽고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에 놀랐었다. 특히, <단순한 열정>은 강박적이고 선정적인 표현까지 서슴없이 써 내려가고 있지 않나.

이 소설 <비행 공포>도 저자 "에리카 종"의 자전적인 얘기로 솔직하고 노골적이며 선정적인 표현은 물론이거니와, 여성으로서 은밀하고 수치스러운 부분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민망함함은 읽는 독자의 몫이다.  

미국에서 1973년도에 출간되었는데, 출간 당시에도 평이 극과 극으로 갈릴 정도로 문제작이었다고 한다. 

국내 번역본은 1978년도 이후 여러 번 다른 제목으로 출간되었지만, 자극적이고 민망한 단어들은 희석하여 번역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에선 지난 시간 동안 그런 단어를 사용해서는 출간하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책이 원문 그대로의 최초의 정식 한국어판 출간이라고 한다. 

 

출간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소설이 울림이 있는 것은 여성이 성적으로 자유로운가, 여성의 지위는 존중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반증이라고 하겠다.  

여성의 욕망에 좀 더 솔직해지고 자유롭고 싶지만, 그 자리에 맴돌 뿐이다. 

구속은 싫지만 혼자인 것은 두렵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싶지만 죄책감은 갖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성적 해방은 이렇게 사유에서 그치고, 돌고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닐는지..

사회 시스템 안에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이 정해져 있는 한, 

구조 안에 닫혀 있는 그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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