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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ㅣ 나폴리 4부작 3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5월
평점 :
이 소설을 읽으며 아 그래서 내가 나폴리 4부작에 빠져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폴리 4부작은 인간의 복합적인 감정들.. 살아오며 느꼈던 순간의 복잡다단했던 미묘한 감성들을
일상을 통해 풀어서 예시해 주는 듯하다.
독자는 보통 소설 속 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하는 재미로 읽기는 한다.
이 소설은 특히 인물의 감정과 행동의 묘사가 정교하고, 일상적인 감성의 변화가 구체적이어서 그런지
가까운 누군가의 모습을 소설 속에서 문득문득 발견하게 된다.
특히 대학생이었던 나, 사회에서의 나,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나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면서
나의 자아와 정체성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책이 술술 재미있게 읽는다는 점은
이 소설을 좋아할 수밖에 없이 만드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1부 <나의 눈부신 친구>가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성장과 우정이었고,
2부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는 청년기의 사랑과 애증이었다면,
3부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는 중년기의 일과 결혼, 사랑과 배신의 이야기이다.
중년기라고 하기엔 레누와 릴라의 나이가 많지는 않다.
고작 30살 즈음의 이야기이지만,
릴라는 별거 중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에서 컴퓨터 관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레누는 작가로서 성공한 이후 대학교수와의 결혼으로 신분이 상승한 시기를 중년기로 보았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4부는 1부 첫 도입부에서 65세의 나이에서 시작했듯이, 30세에서 65세까지 장년기와 노년기라는 가장 긴 세월을 다룰 것으로 보인다.
어릴 적 레누와 릴라는 터널을 지나 마을을 벗어난 적이 있었다.
비가 왔고 마을에서 멀어지자 두려움에 먼저 돌아가자고 했었던 쪽은 의외로 릴라였다.
레누는 무엇인가 되고 싶었고, 고향과 가족을 떠나고 싶었기에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자아를 찾고 행복해했다.
릴라는 남편에게서 벗어나 아이를 키우기 위해 햄 공장에서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이 소설 3부는 고향을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두 사람의 삶은 대비해서 보여주고 있다.
레누는 68혁명이라는 사회 전반에 흐르는 변화의 기류에서 복잡하기만 하다.
대학에서 공부한 지식인로서 뭔가 해보고 싶었지만 열정이 없었고, 방법도 몰랐다.
결혼과 안정적인 생활에 안주하면서 기존의 질서 체계 속에 깊게 자라잡아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은 생각같지 않았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찾아 갈등하고 방황하게 된다.
릴라는 남편을 떠나 아들을 홀로 키우기 위해서 햄 공장에서 일하면서
부조리한 노동 환경를 직접 목격하고, 이에 맞서 싸우기 위해 노동 운동의 선봉에 섰다.
릴라는 엔초의 컴퓨터 공부에 도움을 주다가 오히려 자신이 컴퓨터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다.
레누는 릴라가 어려서 썼던 글을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로 각색한 책을 써서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결혼후 새 글은 쉽게 써지지 않았다.
레누의 남편 피에트로는 대학교수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레누에겐 과분하다며 칭찬받는 인물이지만, 정작 레누에겐 너무나 보편적인, 이름뿐인 남편이었다.
레누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원치 않았고,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만 있어주기를 바랐다.
육아도 혼자만의 전쟁이었기에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들었다.
보통의 기혼 여성이라면 겪게 되는 일인데도, 왜 레누에게서는 한 여성의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도 읽히게 된다.
"나는 어머니이자 유부녀인 현재 나 자신의 상황에 불만이 가득 차 침대에 누워 괴로워했다. 죽을 때까지 부엌데기처럼 매일 똑같은 집안일을 하고 침대에서 부부의 의무를 수행하면서 시들어갈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했다. (...) 릴라는 원래 과감한 면이 있었다. 한번 마음먹으면 정당한 이유를 가진 자 특유의 관대한 잔혹함으로 결연하게 일을 밀어붙였다. (...) 릴라는 릴라대로 나를 전형적으로 성공한 지식인자 머릿속에는 온통 아이들과 책 생각밖에 없고 학구적인 남편과 해박한 대화나 나누는 교양 있고 부유한 사모님이라는 두 가지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실체감을 회복해야 했지만 너무나 멀어져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낙후한 나폴리를 떠나 대단한 삶을 살고 싶었고, 끊임없이 무엇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적인 삶을 사는 레누..
나폴리를 거의 벗어나 본적이 없지만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아는 듯 역동적인 삶을 사는 릴라..
레누는 릴라가 자기만의 계획에 따라 완벽하게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고, 직접 몸으로 느끼고 참여하는 열정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레누의 릴라에 대한 이런 끊임없는 생각은 릴라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릴라에게서 벗어나 성숙한 인격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부에서 릴라가 레누에게 <나의 눈부신 친구>가 되어주길 바랬던 만큼이나.
이번 소설 3부에서도 그런 마음을 잘 나타내는 대사가 있다.
두 사람의 물리적인 거리는 멀어졌지만, 서로에 대한 생각과 기대 영향력은 더 강해진 듯하다.
"난 네가 항상 최고였으면 좋겠어. 나는 네가 이보다 훨씬 뛰어난 글을 쓸 수 있다고 확신해. 네가 더 잘하기를 원해. 그게 내 가장 큰 소망이야. 네가 뛰어나지 못하면 내 존재는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까"
3부의 후반부는 4부에서의 얽히고 설키게 될 관계들을 미리 예고한다.
레누의 죄책감마저 들지 않는 과감한 행동은
릴라였다면 감정에 충실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가능했던 것일까.
릴라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올까. 혹시 그 남자는 아닐까.
무엇보다 1부 프롤로그에서 밝혔듯 릴라가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유와
어디로 사라졌는지.. 등등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다.
나폴리 4부작은 항상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