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년(丙申年) 첫 주말이 다가왔지만, ‘응답하라 1988’(약칭 ‘응팔’)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없는 주말을 아쉬워한다. 어제에 이어 이틀간 ‘응답하라 1988’(약칭 ‘응팔’)이 결방했다. 지난주 방송에 결방을 예고했음에도 지금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응답하라 1988 결방’이 올랐다. 오늘부터 새로운 에피소드가 방송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검색했을 것이다. 17회는 다음 주 금요일에 방송된다.

 

오늘 같은 날 응팔이 시작되는 시간에 텔레비전을 끄고, 책을 읽어보는 게 어떤가. MBC 드라마 ‘내 딸 금사월’을 시청하는 분이라면 독서를 권한다. 응팔은 9시 20~25분에 끝이 난다. ‘내 딸 금사월’은 10시에 시작한다. 방송 광고 시간을 고려하면 MBC 드라마는 10시 5분, 10시 10분부터 시작한다. 그러면 9시 25분부터 10시 10분 사이에 황금 같은 시간이 생긴다. 그러나 리모컨의 노예가 된 우리는 뉴스를 보거나 다른 방송 채널로 돌린다. 만약 그 시간에 시청해야 할 방송이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책을 읽는 것이 좋다. 50분은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데 있어서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50분 동안 넉넉히 읽을 수 있는 책이 없다면,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오랜만에 재회하는 것도 좋다. 책을 반기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감명 깊게 읽은 구절이 있는 쪽수를 위주로 읽어도 좋고, 책에 필기한 쪽수를 확인해도 된다. 과거의 책을 펼치는 순간, 오랫동안 그 속에 보관되어왔던 추억이 소환된다. 우리도 우리만의 ‘응팔’이 있다. ‘응팔’에 나왔던 책들이 여러분들의 책장에 꽂혀 있는지 확인해보시라. 당신이 브라운관에 비친 추억을 감상하고 있을 때, 깊은 잠에서 깨어난 추억의 책들이 당신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을 수도 있으니까.

 

 

 


Scene #1 응팔 6회(‘첫 눈이 온다구요’)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성자가 된 청소부》 

 

 

 

 

 

이문열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1987년 제11회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덕선(혜리 역)은 이상문학상 작품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문학사상사, 1987년 초판 발행)을, 선우는 바바 하라 다스의 《성자가 된 청소부》(정신세계사, 1988년 초판 발행)를 읽고 있다. 그 와중에 덕선은 자신이 짝사랑하는 선우를 바라본다. 누군가는 책 읽는 남자가 특별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덕선은 책에 푹 빠진 선우가 마음에 드는지 애정이 넘치는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덕선의 달콤한 짝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직 드라마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이유는 설명하지 않겠다)


 

 

 

Scene #2 응팔 13회(‘슈퍼맨이 돌아왔다’) - 《죽음의 천사》

 

 

 

 

 

덕선이네 집의 텔레비전 옆에 의문의 책 한 권이 있다. 책 제목이 불길하다. 그러나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 책의 등장이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정건섭은 제1회 한국추리문학상을 받았고, 지금도 꾸준히 추리소설을 집필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86년 9월 경향신문 광고 (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스릴러'의 옛말 '드릴러'

 

 

 

정건섭의 《죽음의 천사》는 1986년 행림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책은 정건섭의 여섯 번째 작품이자 유럽과 극동 지역을 배경으로 한 첩보소설이다. ‘죽음의 천사’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 근무한 악명 높은 의사 요제프 멩겔레의 별명이다. 1986년 당시 매일경제의 보도에 의하면 《죽음의 천사》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첩보소설로 소개했다. 우리나라 추리문학이 외국 추리문학의 위상에 밀려 외면받는 현실을 생각하면 《죽음의 천사》의 문학적 가치가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울 따름이다.

 

디시인사이드 ‘응팔 갤러리’에 어떤 회원은 《죽음의 천사》가 소품으로 나온 장면을 두고 슬픈 줄거리가 예상되는 복선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응팔 13회에서 덕선의 어머니 일화 여사(이일화 역)가 조직검사를 받다가 몸 안에 종양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담당의는 종양의 형태가 좋지 않다며 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화 여사는 안 좋은 결과나 나올까 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청자들은 일화 여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줄거리가 나올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13회를 봤을 것이다. 그러나 《죽음의 천사》 소품은 맥거핀(MacGuffin)으로 판명되었다.

 

 

 


Scene #3 응팔 15회(‘사랑과 우정 사이’) -

《슬픈 우리 젊은 날》,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

 

 

 

 

 

덕선의 친구 장미옥(이민지 역, 극 중 별명이 ‘장만옥’이다)이 김정봉(안재홍 역)을 만나려고 카페에 앉아 기다리고 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이 책은 칼릴 지브과 그와 교제를 했던 메리 헤스켈이 주고받은 편지글 중에 인상 깊은 구절을 골라 짤막한 시 형식으로 편집한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분량이 얇고, 판형이 작다. 이 얇은 책 속에 숨겨진 칼릴 지브란에 관한 흥미로운 사연까지 소개하면 글이 길어진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나중에 별도로 소개하겠다.

 

 

 

 

 

 

《슬픈 우리 젊은 날》은 성보라(류혜영 역)가 읽고 있었던 책이다. 보라처럼 1988년에 대학을 다녔던 분이라면 이 책을 한 번쯤 읽어봤을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보라가 읽는 책이 어떤 건지 궁금했다. 서울에 있는 대학생들이 쓴 글이나 익명이 남긴 낙서들을 모은 책이다. 책의 편집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은 ‘사회와 문학을 사랑하는 모임’이다. 지금으로 보면 유치한 이름이지만, 그때 그 시절 시를 쓸 수 있었던 아름다운 낭만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취업이 어려운 사회에 대한 불만이 높고, 문학 대신 스펙을 열렬하게 사랑한다.

 

1988년에 1권이 출간되었고, 책의 인기에 힘입어 1991년까지 2~6권이 나왔다. 사실 나는 이 책이 나왔을 때 태어나지 않았다. 이 책에 대해서 아는 척하면서 소개하는 것은 실례다. 어른들의 추억을 어설프게 아는 척하고 싶지 않다. 그 대신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잘 설명해준 서평 한 편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판이 끊긴지 오래된 책의 서평을 찾는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애서가에게는 이런 소중한 서평 한 편이 오아시스와 같다. 서평을 작성한 분의 닉네임이 ‘진주’다. 응팔에서 선우의 여섯 살짜리 여동생 이름이 ‘진주’다. 이런 우연이 다 있다니! 진주님의 서평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진주님이 글의 공개를 원하지 않으면 삭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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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6-01-02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응팔끝나고 빈 시간에 후다닥 정리하고 애인있어요 봐요 ㅎㅎ
올해 저에게 최고의 드라마는 애인있어요 에요~^^

cyrus 2016-01-03 17:41   좋아요 0 | URL
`애인 있어요`가 그 시간에 하는군요. 저는 제가 즐겨보는 드라마 편성 시간만 정확히 기억해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6-01-0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행복한 새해가 되시길...

cyrus 2016-01-03 17:4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페크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재는재로 2016-01-0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팔이번주결방이라아쉼 성자된청소부간만에듣어보네요저도고등학생때읽었는데요3번이상읽었죠지금도생각나네요불가축민 자반 이육체는크리스마스날눈에쌓여발견될것이다라는자반의유언맞나모르겠네요 미국인의사는성자자반의진정한제자가되었죠

cyrus 2016-01-03 17:46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정확하게 기억했습니다. 미국인 의사가 자반이 피터라는 사람인 줄 알고 같이 지내게 되었어요. 그 다음 나머지 이야기는 재는재로님의 말씀대로입니다.

2016-01-02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3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6-01-03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 지난번 책 성애자라셨던 cyrus님. 같은 장면을 봐도 날카롭게 책을 찾아내시는 모습 에서 진정한 책 성애자임을 깨닫게 했어요. ㅎ

cyrus 2016-01-03 17:49   좋아요 0 | URL
제가 좀 별나요. 사소하면서도 아무나 하지 않는 일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해요. ^^

프레이야 2016-01-03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녁이 있는 삶, 좋습니다. 막간의 독서도 더욱 좋구요. 진주님이라는 반가운 닉이 호명되었네요.

cyrus 2016-01-03 17:52   좋아요 0 | URL
꽤 오래전부터 진주님이 다른 알라디너님들과 교류를 하셨더군요. 저는 처음 뵙는 분인데 닉네임이 친숙해서 그런지 진주님의 글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 무척 반가웠습니다.

수이 2016-01-03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속 볼 수 있겠지, 계속 읽을 수 있겠지_ 그 생각을 하면 좋아.
새해 복 많이 받고 건강하고_ 계속 읽고 그러자.

cyrus 2016-01-03 18:58   좋아요 0 | URL
야나문에 손님들을 위해서 구하기 어려운 책을 마련하면 좋을 것 같아요. ^^

서니데이 2016-01-03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편안한 일요일 저녁 되세요.^^

cyrus 2016-01-03 19:1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좋은 밤 보내세요. ^^

진주 2020-03-09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렇게 올리셨군요!
제 서평 공개를 원치 않다니요,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할게요 ㅎㅎ
슬픈 우리 젊은 날이 발행될 때 cyrus 님은 태어나지도 않으셨군요.
저희는(남편과 저) 대학 시절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