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교양 수업 - 내 힘으로 터득하는 진짜 인문학 (리버럴아츠)
세기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이런, 또 인문학 타령인가?”

 

출판사가 보내준 신작 도서의 제목을 보자마자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책 제목은 이렇다. 《나를 위한 교양 수업》. 우리나라는 정말 인문학을 사랑하는가 보다. 독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아예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이라는 문구를 달았다. 책 뒤표지에 리버럴 아츠(Liberal Arts)와 기술의 교차를 강조하는 잡스의 말까지 책의 추천사처럼 나와 있다. 잡스로부터 시작된 인문학 열풍이 지난 지가 언젠데 잡스의 터틀넥 티셔츠 옷자락을 붙잡고 인문학 ‘장사’를 한다. 인문학을 논할 때 잡스를 추켜세우는 일은 곤란하다. 그가 죽어서도 생전에 남긴 아이디어 유전자는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 아이팟, 아이폰 등이 꾸준히 팔려나가고 있다. 잡스의 위대한 유산을 깎아내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잡스의 이름에 기대는 인문학은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준다. 잡스처럼 ‘성공한 장사꾼’이 되려면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삶을 성숙하게 해주는 인문학의 의미는 사라지고, 부를 거머쥐게 하는 인문학이 강조된다. 성공 지상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은 성공과 명예를 끌어모으는 마법의 자석이 된다.

 

잡스의 성공 신화가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그런지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성공을 위한 인문학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리버럴 아츠를 소개하는 책의 앞표지에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저자 혹은 출판사의 의중이 심히 의심스럽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면 스티브 잡스의 이름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혹시 이 책에 스티브 잡스가 나오는 문장을 발견한 분이 있다면 댓글로 쪽수를 알려주시라. 확인되면 잘못된 내용을 삭제하고 바로 잡겠다) 리버럴 아츠는 원래 고대 그리스 귀족들이 배우는 기초 교양 과목을 의미했다. 오늘날에는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갈고 닦는 데 도움이 되는 폭넓은 교양을 의미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자연과학, 철학, 문학, 음악 등 경계를 두지 않는 전방위로 분야를 이해하는 것이다.

 

책을 쓴 사람은 법관을 지낸 적이 있는 세기 히로시다. 현재 메이지대학 법과대학원 전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많다. 그는 칠순을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오프스프링(The Offspring)의 펑크 록을 즐겨 듣는다. 그래서 책에 드러내는 저자의 생각에 꼰대 느낌이 나지 않는다. 저자는 교양을 어렵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너그러이 이해해주기도 한다. 교양을 난해한 용어를 써가면서 가르치는 학자와 미디어를 비판하면서 교양이 남에게 과시하는 수단을 전락해버린 상황을 안타깝게 여긴다. 이런 현상이 젊은이들이 교양을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저자는 권위에 속박되지 않으려면 무경계의 분야를 다루는 리버럴 아츠를 몸에 익혀 구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카를 만하임의 ‘지식과 사상의 존재 피구속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틀에 박힌 사상이나 사고방식에 갇힌 협소한 시야가 아닌 자유롭게 수정과 보완을 실행하는 전체적인 시야를 가진 지식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책의 2부는 자연과학(생물학, 뇌신경과학, 정신의학), 3부는 철학, 인문사회, 논픽션, 4부는 예술(문학, SF, 영화, 음악) 등으로 구성되어 살아가면서 알아두면 좋은 리버럴 아츠 분야를 소개하고 있다. 각 분야의 기초적인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각각의 장이 끝나면 저자가 추천하는 도서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저자의 관심사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3부에서 저자가 추천하는 역사학자는 필립 아리에스뿐이었고, 정신의학을 설명하는 장에 칼 융을 소개하는 비중이 프로이트와 아들러보다 너무 적다. 저자의 소개만으로 지적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리 독자 스스로 해갈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책 제목이 ‘나를 위한 교양 수업’이다. 독자가 직접 교양(culture)이라는 이름의 밭을 경작할 줄 알아야 한다.

 

책 구성면에서 부족한 점이 역력하지만(스티브 잡스를 끌어들이는 홍보 문구가 아니었으면 심심한 책인데도 더 좋게 봐줄 수 있었다), 리버럴 아츠를 배우면서 얻게 되는 진짜 가치를 아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리버럴 아츠를 통해서 자신만의 사고방식을 관철해 나아가는 힘, 그리고 살아가면서 생각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성공에 초점을 맞춘 인문학 풍조가 팽배한 우리 사회에 충고하는 말처럼 들려진다. 리버럴 아츠를 배우려는 방법은 간단하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면 된다. 고전 한 권을 독파해서 베껴 쓰는 방법만 인문학을 깊이 이해하는 방법이 아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부리는 인문학 장사꾼들이야말로 세기 히로시가 경계하는 ‘지식과 사상의 존재 피구속성’의 함정에 빠진 자들이다. 이들은 인문학을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한 선전으로 활용한다. 리버럴아츠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천재들만 배우는 교양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천재들도 생전에 악평을 받았으며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한다. 천재들이 만든 고전을 권위 있는 글로 이해하는 순간, 그걸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너무 어렵게 생각한다. 천재들의 특별 공부법을 그대로 따라 할 것을 요구하고, 자신이 진짜 ‘생각하는 인문학’이라고 강조하는 이 모 작가와 무척 비교된다. 인문학을 왜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이 모 작가의 책이 아닌 세기 히로시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

 

그리고 이 모 작가에게 세기 히로시의 인문학을 권한다.

 

 

 

 

 

P.s 1) 88쪽에 올리버 색스의 사망 연도를 표기하지 않았다. 2쇄를 만들 때 반영했으면 좋겠다.

 

 

P.s 2) 출판사가 제공하는 서평 도서가 새로 만들어진 출판법(도서정가제와 관련되어 있음)으로 인해 사라진다는 비보를 접했다. 아마도 이 책이 마지막 출판사 서평 도서가 될 것 같다. 출판사가 서평 도서를 무료로 준다고 해서 그에 대한 답례로 무조건 칭찬 일색으로 쓰는 건 옳지 못하다. 책을 읽다가 잘못된 점이 있으면 서평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출판사 서평 도서 제공이 금지된 원인을 무조건 도서정가제로만 돌릴 수 없다. 출판사가 선호하는 홍보용 독자 서평이 쓰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작지 않은 책임이 있다. 서평은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을 위해 쓰는 것이지 책 만드는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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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11-05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아니, 어제 <코파기의 즐거움>보다 별점이 낮습니다. 그럼 이 책은 대체...^^
2. 이 모 작가가 누군지 급 궁금해집니다. 비밀댓글로 부탁드려요. ^^
3. 출판사 제공 서평 도서 제도가 사라진다는 비보에 저도 많이 아쉽습니다.
4. 오늘도 독자를 위한 서평...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2015-11-08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11-05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자를 위한 서평. 감사합니다~
인문학을 이야기하는데.. 누가 저 혼자만을 위한 인문학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이기적으로 보이나봐요 ㅎㅎ
그런걸보면 인문학의 남발이 좋은것만은 아니지 싶습니다~

cyrus 2015-11-08 16:33   좋아요 0 | URL
인문학이 좋다고만 열심히 말한 뿐, 현실은 시궁창에요.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푸대접하는 열악한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요즘 인문학은 그냥 개인의 감정을 달래고, 맞추기 위한 사탕에 불과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11-08 16:43   좋아요 1 | URL
달래고 위안하기 위한 그런것을 인문학이라고 할수는 없죠~ 인문학의 가면을 쓰고 있을뿐.. 인문학의 쓴 맛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책 많이 읽는다고 인문학을 한다고 할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요즘은 책 많이 읽으면 인문학한다고 하더군요~
다독은 그저 다독일뿐..

cyrus 2015-11-08 16:50   좋아요 0 | URL
저랑 생각이 비슷합니다. 인문학을 강조한답시고 독서를 권하는 상황이 불편해요. 인문학 열풍에 기댄다고 해서 평소에 책을 멀리 하던 사람들이 책을 읽을까요? 읽는다고 해도 유명 저자의 책만 찾아 읽을 겁니다. 우리 사회는 베스트셀러 몇 권 읽어주면 나름 책 좀 읽는 사람으로 둔갑하기 쉬워요.

2015-11-05 1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1-08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5-11-05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잡스가 에플폰을 인문학에서 도출했다고 하니....돈벌이를 위한 인문학이 불같이 일어 났던..동기가 참 씁슬한 인문학바람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지금 인문학이 진짜 인..사람을 위한 건지..속내는 돈을 위한 사람학문인지..분간하기도 어렵더군요,,

cyrus 2015-11-08 16:38   좋아요 0 | URL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돈을 위한 인문학이라면 곧 기업, 혹은 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을 위한 학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어요. 기업을 위한 인문학과, 또 다른 한쪽에 노동자를 위한 인문학(얼 쇼리스 식 인문학)이 따로 갈라져 있는 현실도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는 제 개인적 생각이지만, 인문학에도 계급 갈등으로 나눠지면 볼만 하겠습니다. 그러면 기득권자(대졸)들은 노동자를 위한 인문학을 ‘종북’ 딱지를 붙이려고 할 겁니다.

인디언밥 2015-11-05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첫인상이 중요하군요. 흐~

그나저나 이xx님이 누군지 궁금해지네요. ㅋㅋ 저도 이씨인데 뜨끔.. ㅎ_ㅎ

정성듬뿍서평 잘 읽고 갑니당

cyrus 2015-11-08 16:39   좋아요 0 | URL
많이 궁금하셨을 텐데, 답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XX
X지X
XX성

fledgling 2015-11-05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결혼했죠~ 그분이 맞는듯..ㅎ

cyrus 2015-11-08 16:39   좋아요 0 | URL
잘 아시네요. ^^

stella.K 2015-11-0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당구 선수와 결혼했다는...!ㅋ
그런데 이 책 그 사람한테 권할 정도라면 평점이 높아야하는 것 아냐?
별 두 개 가지고 그 사람이 읽을까...?

cyrus 2015-11-08 16:46   좋아요 0 | URL
“이 모 작가에게 세기 히로시의 인문학을 권한다.”

이 멘트는 이지성 작가의 드립을 패러디한 겁니다. 개드립인거죠. 이지성 작가의 글 제목이 <지 드래곤에게 인문학을 권한다>(링크: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935#)거든요. 이지성 작가 비판론자들이 이 글을 페이스북에 공유하면서 깐 적 있었어요. 제가 링크한 글의 댓글 한 번 보십시오. 댓글이 더 재미있을 겁니다.

페크pek0501 2015-11-0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삶을 성숙하게 해주는 인문학의 의미는 사라지고, 부를 거머쥐게 하는 인문학이 강조된다. 성공 지상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은 성공과 명예를 끌어모으는 마법의 자석이 된다.˝
기억해 놓겠습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cyrus 2015-11-08 16:47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yamoo 2015-11-0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을 보니 막 짜증나려고 합니다...ㅋㅋ
계속 이런 책들이 나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인문학자들은 죽어나가는데 말이죠..

근데 이 모작가 보고 바로 이지성 떠올렸더랬습니다..ㅎ

cyrus 2015-11-16 21:17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 소위 본인 입으로 인문학을 한다는 사람으로 강 씨와 이 씨가 제일 유명하죠. 이 두 사람이 많이 알려지니까 시류에 편승해서 아류작들을 만드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어요. 씁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