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격투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리스타 오브레임'을 절대로 모를 리 없다. K-1, 프라이드 FC, UFC 등 입식과 종합격투기를 오가면 종횡무진 활약하여 '육식 두더지'라는 별명으로 팬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한창 절정기에 오르던 2011에 약물 복용이 적발되면서 '약물 두더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오브레임은 9개월 출장 정지 이후 UFC에 복귀전을 치렀으나 '육식 두더지'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근육질 몸매와 폭발적인 펀치력은 찾아볼 수 없었고, 상대를 힘으로 압도하는 모습은 사라졌다. 결국, 복귀전에서 상대 선수의 공격에 실신 당하는 굴욕적인 패배를 맛보았다. 다음 경기에서는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예전의 기량은 나오지 않았다. 속사포 펀치로 초반에 상대방을 압박하는 모습은 좋았으나 결국 체력이 떨어져서 일격을 당해 KO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예전보다 약해진 오브레임의 모습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던 과거 라이트헤비급 시절을 떠올리게 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에 오브레임의 체격은 헤비급 선수에 가까운 근육질 몸매가 아니었다. 원래는 헤비급 선수 옆에 서면 왜소하게 보이는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프라이드 FC 미들급(UFC 기준에서는 라이트헤비급) 디비전에 데뷔했는데, 이때 그가 상대한 선수들은 마우리시오 쇼군, 퀸튼 잭슨,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 등이었다. 당시 프라이드 FC 미들급 챔피언으로 군림하던 반더레이 실바의 호적수로 평가받았지만, 오브레임은 챔피언이 되기에 2%가 부족했다. 어떤 강자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는 초반 페이스와 달리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체력이 고갈되는 문제점이 드러났다. 그래서 다 이긴 경기를 놓친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상대의 펀치에 등을 돌리고 도망을 가는 장면을 연출한 적도 있다. 국내 이종격투기 팬들은 5분이면 바닥나는 오브레임의 저질 체력을 조롱하는 의미로 '5분의 힘', '5분계왕권'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5분의 힘'은 오브레임이라는 이름에서('오브레임'을 빠르게 발음해보라), '5분계왕권'은 만화 <드래곤볼>에서 따왔다. 계왕권의 위력은 강하지만 쓸수록 에너지를 과하게 소모하는 단점이 있다.
필자는 2권 이상의 책을 완독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초반에 1권을 읽기 시작할 때는 좋다. 1권은 금방 다 읽을 수 있다. 그런데 2권을 읽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1권을 읽었을 때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이야기에 몰입하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엉뚱하게 다른 책이 읽고 싶어진다. 500쪽이 넘는 두꺼운 책도 마찬가지다. 300쪽 이상 읽고 난 다음부터 후달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필자가 속독 능력이 좋아서, 한 달에 십 권 정도는 거뜬히 읽는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한 달에 십 권 이상의 책을 덤비듯이 읽기 시작하지만, 정작 다 읽어본 책은 고작 두세 권에 불과하다. 2권을 읽기 시작하면 집중력이 저하되는 필자의 독서 패턴은 '2권계왕권'이다. 그래서 2권 이상의 대하소설이나 600쪽 이상의 책은 잘 읽지 않는다.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 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렸을 때 한 번이라도 읽어봤다는 《삼국지》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필자가 초등학생 시절에 남자아이들은 이문열 삼국지를 즐겨 읽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필자는 《삼국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초등학교 친구 중에 《삼국지》를 정말 열심히 읽었던 녀석이 있었다. 입만 열면 삼국지 내용과 각종 인물을 줄줄이 소환해내는, 대단한 친구였다. 그런데 필자는 《삼국지》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친구가 하는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면 친구는 필자에게 삼국지 마니아라면 정말 질리게 들어본 말로 훈계했다.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자와는 이야기하지 말고, 삼국지를 열 번 이상 읽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필자는 그 친구와 정말 친했지만, 삼국지를 읽지 않는 필자를 무시하면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삼국지》를 읽어야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그 거만한 자세. 정말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삼국지 마니아 친구와 단 한 번도 주먹 다툼을 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삼국지》를 안 읽은 사실을 남들에게 드러내기를 꺼리게 되면서 필자에게 《삼국지》라는 책은 감히 오를 수 없는 거대한 산맥처럼 여겨졌다. 중학생 때 이문열 삼국지 1권을 읽어봤지만, 재미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삼국지》가 재미없다고 해서 책의 가치를 절대로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책을 읽을 때 별 재미를 느끼지 않는다면 억지로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삼국지》를 어린이 추천도서 목록에 빠지지 않은 단골 도서라서 그런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삼국지》를 무조건 읽으라고 권한다. 필자는 '아 몰랑, 사람들이 이 책이 좋다니까 너는 닥치고 읽기나 해!'라는 식으로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독서를 명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필자의 부모님도 책을 잔뜩 사서 필자에게 읽으라고 떠미는 스타일이었는데 다행히 《삼국지》를 읽으라고는 하지 않았다. 필자의 서재에는 이문열 삼국지가 없다. 삼국지에 관련된 책으로 이마니 리츠코의 《삼국지 깊이 읽기》(작가정신, 2007)만 소장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필자도 삼국지를 읽게 되는 날이 올 거로 생각했기 때문에 리츠코의 책을 구입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2권계왕권'을 극복했던 책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열린책들)가 유일하다. 이야기의 전개가 얼마나 흥미진진했으면 《개미》를 3주 만에 다 읽는 데 성공했다. 완독은 아니지만, 고등학생 때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구판)을 4권까지는 읽은 적이 있다. 이때 당시에 원작을 기반으로 만든 동명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남학생들이 얼마나 《불멸의 이순신》을 즐겨 읽었느냐면 학교 도서실에서 빌린 《불멸의 이순신》을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읽을 정도였다. 1권을 다 읽고, 2권을 읽기 위해서 도서실에 가면 2권은 항상 '대출 중'이었다. 이 책을 고등학생 1학년 때 읽기 시작했다면 완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생 2년은 수능시험의 압박감이 본격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고등학생 1년처럼 느긋하게 책 읽을 여유가 없다. 한편으로는 《불멸의 이순신》을 완독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학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분명히 끝까지 다 읽었고, '2권계왕권'을 극복한 최고의 독서 경험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다시 처음부터 《불멸의 이순신》을 읽으려고 해도 예전 그 느낌이 나지 않는다. 아, 슬프도다!
필자는 '2권 계왕권'을 극복하고 싶다. 《삼국지》뿐만 아니라 《수호지》, 《태백산맥》, 《토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대망》 등 죽기 전에 대하소설을 읽어보고 싶다. 죽을 때까지는 고질적인 편식 독서를 쉽게 고치지 못할 듯하다. 한 달 전에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라비안나이트》를 열심히 읽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으니까.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고 일어나면 읽고 싶은 책이 필자의 눈앞에 아른거린다. 내 안에 있는 악마의 유혹도 물리쳐야 한다. 이 악마는 똑똑한 척 하고 싶어한다. 제목만 아는 책을 읽은 척 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