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가 하나입니다. 각자가 다른 환경 속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 모두 같은 기억, 같은 경험, 같은 행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 지금부터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걸 이 자리에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지금부터 다음 말에 ‘맞아 맞아’면 댓글에 Yes를, ‘에이, 저게 뭐야!’면 No라고 댓글을 달면 되겠습니다. 댓글을 달아! Yes or No!”
어렸을 때 외판원이 집집마다 책을 팔러 다니던 모습을 봤다. 여러분들 중에 집에 갑자기 찾아온 외판원 때문에 부모님이 할부로 전집류를 사준 적이 있다.
Yes or No?
앞부분은 개콘(개그콘서트) ‘말해 Yes or No’ 코너에 나오는 대사를 살짝 바꿔봤다. 옛날에 서점 등 매장에 직접 가서 책을 사기보다는 외판원의 반강제식 방문으로 전집류를 포함한 동화전집을 사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여자 외판원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 책을 사달라고 어머니에게 간곡하게 홍보하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머니는 제 자식 똑똑하라는 마음에 비싼 돈을 들이면서까지 ‘학생대백과사전’과 40권에 이르는 위인전집을 구매했다. 거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나는 장난감 대신에 어머니가 사준 책을 읽었다. 그때 당시에는 중역 또는 축약으로 제맛을 살리지 못한 외국 명작 모음집이나 획일적 전집류가 판을 쳤다. 웬만한 어느 집에 가면 거실에 있는 전집류 책이 꽂힌 책장을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계몽사, 삼성당, 금성출판사에서 만든 전집류가 많았다.
그래도 7080세대라면 추억의 전집으로 학원문학출판공사의 ‘에이브(ABE) 문고’를 많이 기억한다.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좋아하도록 애서가를 키운 건 팔 할이 에이브 문고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도 총 88권으로 이루어진 에이브 문고를 구하기 위해 헌책방이나 온라인 헌책방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헌책방에 가면 외롭게 책장에 꽂힌 낱권의 에이브 전집을 만날 수 있다. 헌책방 한 곳에 88권 모두 판매되는 경우는 확률적으로 희박하다. 에이브 전집 전권을 한 번에 사려면 온라인 중고장터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에이브 전집이 시중에 구하기 힘든 오래되고 진귀한 책이라서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다.
나는 에이브 문고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다만 초등학교 독서실에 에이브 문고가 꽂힌 것은 기억한다. 책 뒤표지에 큼지막하게 찍힌 검은색 알파벳 대문자 ‘ABE’가 있었다. 이때 나는 동서문화사에 나온 셜록 홈즈, 뤼팽 전집을 탐독했다. 한창 추리소설에 푹 빠졌던 시절이다. 이 전집에 ‘브레인스쿨’이라는 브랜드명이 붙여졌는데, 소설이 끝나는 책 뒤편에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능훈련’이라는 제목의 추리퀴즈가 실려 있었다. 요즘은 ‘아르센 뤼팽’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는 ‘아르쎈 뤼뺑’으로 표기했다. 사실 나는 ‘루팡’이라는 이름이 친숙해서 악센트가 심하게 나는 ‘뤼뺑’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았다. 활자가 너무 작고, 삽화는 거의 사라질 정도로 출판 상태가 조악했지만, 그래도 홈즈와 뤼팽 전집을 다 읽을 수 있어서 너무나도 좋았다. 이 전집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학교 도서관을 담당하는 선생님에게 전집을 달라고 부탁했다. 책 상태가 좋지 않아서 나 말고 읽을 사람이 없다는 식으로 말하니까 선생님은 뜻밖에 흔쾌히 나의 부탁을 수락해줬다. 지금도 우리 집 창고 안에 동서문화사판 홈즈, 뤼팽 전집을 보관하고 있다. 몇 년 뒤에야 내가 가지고 있는 전집이 전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그래도 초등학생 시절을 즐겁게 만든 최고의 책이기에 지금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오래된 새 책》(박균호, 바이북스)에 부록으로 에이브 문고 목록이 실려 있다. 이 책 덕분에 에이브 문고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나는 에이브 전집을 읽었던 세대가 아니라서 아직은 에이브 문고를 가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래도 에이브 문고 중에 재출간된 책은 읽어보고 싶다. 혹시 에이브 문고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서 에이브 문고 목록을 새로 만들어봤다. 《오래된 새 책》에 있는 전집 목록을 바탕으로 하여 재출간된 책 제목과 출판사명을 써 넣었다. 아동문학 쪽에 문외한이라서 하나하나 작가와 책 제목을 대조해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잘못되었거나 무지에 의해서 누락된 내용이 있을 수 있다. 내가 몰랐던 정보를 댓글로 알려주신다면 목록을 고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