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언어 -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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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이 쓰는 신조어 중에 ‘창렬스럽다’, ‘혜자스럽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궁금하면 검색어에 ‘김창렬’을 쳐보시라.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넣으면 왕년의 인기 그룹 가수 DJ DOC에 관한 사진과 내용보다는 음식 사진이 더 많이 나온다. 연관 검색어를 보면 ‘창렬푸드’라는 단어도 있다. ‘창렬푸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김창렬은 각종 폭력사건에 연루되어 연예계의 사고뭉치로 알려졌다. 합의금으로 가수 활동을 하면서 벌여놓은 수입을 다 쓴다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도 전해진다. 그랬던 그가 식품업계에 뛰어들면서 2009년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건 편의점 음식상품을 내놓았다. 세븐일레븐은 꼬치, 순대, 미니족발 등 야식 위주의 메뉴를 판매했다. 그런데 해당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격대비 품질이 좋지 않다는 불만이 나왔다. 포장 속 사진과 비교하면 실제 내용물 구성이 너무 부실해서 과대 포장 의혹이 불거졌다. 누리꾼들은 ‘창렬스럽다’, ‘창렬푸드’ 등의 용어를 만들어 과대포장을 비아냥대기에 이르렀다. 과대 포장 과자를 ‘창렬스럽다’라거나 ‘창렬 과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세븐일레븐은 부랴부랴 음식의 양을 늘렸지만, 이미 돌아선 소비자의 마음마저 잡을 수 없었다. 김창렬은 자신의 이름을 빗댄 신조어가 부실한 내용물이 담긴 과대포장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것에 분노를 드러내어 식품업체를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반대로 ‘혜자스럽다’는 도시락 상품의 양과 질이 모두 뛰어나면서 생긴 말이다. GS25는 2010년에 ‘김혜자 도시락’을 선보였다. 김혜자 도시락은 속이 꽉 찬 구성의 품질로 소비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았다. 가격대비 만족스러운 품질의 상품을 두고 ‘혜자푸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스럽다’는 어떠한 성질이 있음을 의미하는 형용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우리는 음식의 맛을 더 실감 나게 표현하려고 단순하게 ‘맛있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더 맛있어 보이려는 표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음식의 맛을 형용사로 표현하는 경향이 많다. 미국 스탠퍼드대 언어학 교수 댄 주래프스키는 맛집 리뷰와 후기를 분석한 결과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맛있는 음식을 관능을 자극하는 성적 표현이 난무했고, ‘대단한’, ‘놀라운’ 같은 형용사는 ‘평범한’, ‘나쁜’, ‘끔찍한’에 비해 더 자주 쓰였다. 음식에 대한 호평이 악평보다 많은 사실에 대해서 댄은 먹기 좋고 맛있는 음식을 찾으려는 인간의 욕구가 음식의 맛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든다고 봤다. 맛깔나게 먹는 행위를 표현하는 문장은 읽는 것만으로 침을 삼키게 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사용하는 일상의 단어 속에 음식 섭취의 욕망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국어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창렬스럽다’와 ‘혜자스럽다’ 같은 신조어는 식욕 취향이 반영된 요리의 문법의 또 다른 사례가 된다. 이름에 접미사를 붙여 꼬집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누리꾼들의 기대와 그 기대를 저버린 행동으로 인한 실망감을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빗댄 ‘놈현스럽다’는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감을 주는 데가 있는 사람이란 뜻이 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의미하는 ‘명박스럽다’도 명명백백한 사실이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 사람,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을 지칭한다. 이처럼 ‘창렬스럽다’는 기대를 저버린 질 나쁜 음식에 대한 실망감을 표현한 말이다.

 

과거에는 음식은 생존의 의미 그 자체였다. 살기 위해서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이제 음식은 탐닉과 즐거움의 대상으로 변모하고 있다. 사람들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 산다. 이러한 심리적 성향을 잘 반영한 것이 고급 레스토랑이다. 외식업소에서 메뉴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메뉴에 의해 식당 하나가 흥하기도, 또 망하기도 한다. 메뉴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물론 ‘맛’이다. 그러나 오늘날 복잡해진 외식시장에서 ‘맛’만으로 모든 것을 승부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다. 메뉴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만약에 레스토랑을 운영할 계획이 있는 분이라면 댄 주래프스키 교수가 쓴 책 《음식의 언어》 제1장 ‘메뉴 고르기 : 메뉴판 앞에서 당황하지 않는 네 가지 방법’을 참고하시길.

 

식당을 찾는 고객을 영화관에 온 관객으로 가정해본다면, 메뉴는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주인공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타로 만들 수 있을까? 우선 인상적인 이름을 지어주어 관객의 시선을 붙들고 식당을 ‘훌륭한 음식을 만드는 값비싼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도록 만든다. 또 근사한 느낌이 드는 고급스러운 단어도 넣어도 좋다. 그러면 고객은 음식물을 입으로 삼켜서 먹는 것이 아니라 음미를 한다.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는 행위 자체에 남보다 더 잘나 보이고 싶은 욕망이 스며 있다. 실제로 요리를 설명하는 단어가 하나씩 늘수록 음식 가격이 높다. 음식의 출처 즉 음식을 만들면서 사용된 원재료의 출처를 밝혀준다면 고객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식당은 시골에서 재배한 채소로 음식을 만듭니다’ 대신 ‘어머님이 경기도 이천에서 직접 농사지으신, 땀이 깃든 채소로 정성스레 음식을 만듭니다’라는 문구를 메뉴에 표기하면 레스토랑 음식에 대한 신뢰도 높아진다.

 

음식의 문법은 우리가 미처 알아내지 못할 정도로 큰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그 힘에 의해서 음식을 고르고, 주문하고, 먹는다. 감자 스낵(포테이토칩)은 아이들이 자주 먹는 식품 중 하나다. 밀가루를 주원료로 색소나 향료, 맛 페이스트 등을 첨가하는 다른 과자들에 비해 생감자를 그대로 잘라 튀겼기 때문에 트랜스지방이나 식품첨가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믿기 쉽다. 포장지에 적힌 ‘트랜스지방 제로’, ‘저지방’, ‘몸에 좋은 국내산 감자’라는 홍보 문구를 믿고 감자 스낵을 아이에게 사주는 부모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구들은 감자 스낵이 건강에 좋은 식품으로 믿게 하게끔 하는 광고업자의 전략이다. 특히 가격이 비싼 감자 스낵일수록 트랜스지방이 없는 건강 감자 스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듯 음식의 문법은 식품 혹은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게 하지만, 때론 맹신이 되어 성분 확인을 소홀히 하는 부정적 효과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음식에 대한 집착과 관심이 있다. 풍요 속 빈곤이라 했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 먹거리는 넘친다. 미각 경험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과 집착이 커질수록 미각을 최대한 확장해 문화적으로 상업화하려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TV와 인터넷, 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는 단연 ‘맛있는 음식’이다. 매일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고, 사람들은 SNS에 보란 듯이 음식 사진을 올리면서 음식의 맛을 평가한 것을 여러 사람에게 공개한다. 본래 우리 문화는 남들이 밥 먹는 것을 지켜보지 않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먹방 전문 채널마저 생겨나 인기를 끈다. 식탐을 자랑하고, 서로 지켜보는 걸 즐기며 욕망의 해방을 부추기는 현상 속에 요리를 매개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고 알리고 싶은 인간의 과시 성향을 엿볼 수 있다. 현실 불만족에 비롯된 심리적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지금도 사람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 사진을 대량으로 올린다. 24시간 미각에 열려 있는 소비자들은 입으로만 음식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시청각 등의 오감으로 음식을 즐기며 새로운 미각 경험을 쌓길 원할 것이다. 내년에도 다른 이들의 식탐에 행복해할지, 또 다른 욕망의 관음이 판칠지는 미지수다. 음식의 문법과 먹방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 음식을 주문하고 먹는 우리, 심리적 허기를 의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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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6-08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모론을 좋아하는 제갠 요즘 넘쳐나는 먹방과 셰프 프로는 우연이 아니라고 봅니다. ㅎㅎ

cyrus 2015-06-09 18:51   좋아요 0 | URL
음식을 먹으면 모든 걸 잊게 만들죠. 그만큼 먹방이 대중을 쉽게 유혹할 정도로 중독성 있는 정신 건강에 그리 좋지 않은 방송이에요. ^^

AgalmA 2015-06-08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스럽다 -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논의를 펼친다. 현재까지 배탈난 사람은 없는 걸로 보고되었다. 비공식적으로 시샘난 사람들은 있을 걸로 추측한다 [알라딘 서재 야매 백과사전]

cyrus 2015-06-09 18:53   좋아요 0 | URL
지식이 부족해서 북플 서평이나 댓글을 읽으면서 새로운 걸 배우려고 합니다. ㅎㅎㅎ 백과사전 내용에 수정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

fledgling 2015-06-08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신조어인가 보군요~ 알아두고 신세대 애들과 놀 때 써먹어주는 센스!
신조어 2단어로 이렇게 글을 풀어쓸수 있다니..!

cyrus 2015-06-09 18:54   좋아요 1 | URL
`창렬스럽다`라는 말은 되도록 안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운 없으면 김창렬 씨에게 고소 먹을 수 있습니다. ^^

수이 2015-06-08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장 캬하_ 좋다. :)

cyrus 2015-06-09 18:54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

세실 2015-06-09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렬스럽다, 혜자스럽다가 그런 뜻이군요^^ 또 하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15-06-09 18:54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조어를 기막히게 잘 만들어요. ㅎㅎㅎ

narr77 2015-06-09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감으로 먹는 음식~~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5-06-09 18:55   좋아요 0 | URL
긴 글인데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돌궐 2015-06-09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침 김사인 시인의 `먹는다는 것`을 읽었던 참입니다.
몇 줄 안되니 한번 옮겨보겠습니다.

먹는다는 것
김사인

내 안을 허락한다는 것.
너에게 내 몸을 열고 싶다는 것 내 혀와 이빨과 목구멍과 대장과 항문을 열어준다는 것 그렇게 음탕한 생각.
또한 지금의 내가 아니고 싶다는 것 지금의 죽음이고 싶은 것 다른 나이고 싶다는 것 사랑을 느낀다는 것.
너를 내 안에 넣고 싶다는 것 네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 너이고 싶다는 생각 네가 아닌 나를 더는 견디지 않겠다는 의욕.
너를 먹네
포충식물처럼 끈끈하게, 세포 하나하나까지 활짝 열어 너를 맞네 세포 하나하나까지 너에게 내주네.
그러므로 허락이 있어야 하는 일 모든 구애가 그렇듯이
밥이건 고기건 사람이건
먹는다는 것은 먹힌다는 것 죽음처럼 아찔한 것 길고 황홀한 키스 먹는다는 것은 갖고 싶다는 것 새 자동차를 장화를 장미를 새끼 고양이를 향해 눈이 빛나는 것 같이 있고 싶다는 것 한 몸이 되고 싶다는 것.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랜 식욕의 역사
몸 너머 영혼 속에까지 너를 들이고 싶은 것 네가 되겠다는 것 기어이
먹는다는 것은.

- <어린 당나귀 곁에서>, 52-53쪽



cyrus 2015-06-10 22:58   좋아요 0 | URL
돌궐님, 좋은 시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자본주의보다 훨씬 오랜 식욕의 역사’라는 문장을 보는 순간, 갑자기 식욕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