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얼이 뭐 어때서?
며칠 전에 모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에 '공지영 생얼' 이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우스갯소리로 고백하자면 '공지영 쌩얼'이라는 단어를 맨 처음 본 순간, '공지영'을 '공서영'으로 착각했다. '공서영'은 KBS N 스포츠 채널에서 활약하고 있는 미모의 여성 아나운서이다. 이쁜 외모를 뽑내는 아나운서가 생얼을 공개했나 싶어서 무심코 클릭해서 확인해봤는데 뒤늦게서야 소설가 '공지영'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여성 소설가의 생얼이 무슨 연유로 인해서 인기 검색 순위 상위권에 위치했는지 궁금했었는데 알고보니 지난 4월 대선에 자신의 트위터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투표 인증샷을 찍은 것에 대해 미디어워치 변희재 대표가 막말을 한 것이 네티즌들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변희재 대표는 공 작가의 투표 인증샷과 관련하여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50 먹은 여자가 생얼을 올린 것을 보고 진짜 토할 뻔했다' 라고 글을 남긴 것이 논란이 되었다. 그러자 일부 누리꾼들은 여성의 외모를 비하하는 듯한 발언이라는 반응을 보이자 그는 공 작가의 외모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얼 인증샷으로 투표 독려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정신상태를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변희재는 공 작가의 외모를 겨냥해서 '50 먹은 여자의 생얼'이 역겹다고 표현했다. 자신의 트위터에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써도 좋지만 외모를 비하하는 그의 발언은 내가 생각해봐도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토할 뻔 했다는 여자의 생얼'이 '생얼로 투표 독려 인증샷을 찍는 50살 먹은 여자의 정신 상태'라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를 분병히 밝혀두었지만 만약에 공 작가 말고도 평범한 50살 여자가 생얼로 투표 독려 인증샷을 찍었다면 그런 발언을 할 수 있을까? 50살이 아니더라도 40살, 30살 그리고 20살의 여자들도 생얼로 투표 인증샷을 찍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몇 몇 여자 연예인들도 쌩얼과 소탈한 옷차림으로 투표 독려의 의미를 담은 인증샷을 찍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들이 '생얼'을 공개한다는 것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에 꽁꽁 숨겨두었던 몸매를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드러내는 것과 비슷하다. 그만큼 화장기 없는 정직한(?) 맨얼굴을 공개한다는 것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가 없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여성들은 연예인들처럼 화장 없이도 화장한 것처럼 하얀 꿀피부를 유지하면서도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외모를 추구한다. 그리고 화장술이란 여성의 외모룰 한층 더 돋보이게 해주는 일종의 '패션'이다. 요즘에는 외모의 단점을 보완해주기 위해서 '성형 화장술'도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많은 비용이 드는 성형 수술 대신에 간단히 화장술 한 번으로 외모 콤플렉스 극복은 물론이고 전보다 더 아름다운 미모를 가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다보니 TV에서는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여성 연예인이 화장기 없는 생얼을 공개했다가 네티즌들로부터 망신살을 받기 쉽상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연예인들의 미모가 다 '화장빨'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이다.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다양한 화장술의 유행 그리고 생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결국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 낸 문화적 유행이면서도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만들어지게 되는 일종의 '금기'라고 볼 수 있다. 화장기 없는 생얼은 곧 외모가 뒤떨어진다고 인삭하게 되며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친구라도 화장하는 모습과 전혀 다른 자신의 생얼을 공개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프로필에 사진을 올리지 않는 이유
'공지영 쌩얼에 대한 변희재 막말' 논란에 대한 네티즌들의 공방전이 뜨거웠던 그 날에 나는 처음으로(!) 페이스북을 하게 되었다. 올해 들어서부터 별 별 새로운 경험을 다 하게 된다. 카카오스토리를 하게 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갸 페이스북도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사실 페이스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조별 과제 때문에 하게 된 것이지 자발적으로 하게 된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특정 과제와 관련된 자료 및 정보들을 조원들과 원활하게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카카오스토리를 미리 경험했기 때문에 처음에 페이스북의 다양한 기능들이 낯설지 않았지만 문제는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만나게 되었다.
페이스북 프로필에 자신의 얼굴이 있는 사진을 업로드해서 올리는 것이었다. 현재 친구 추가를 통해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프로필에는 거의 자신의 얼굴이 있는 사진이 많았다. 이렇다보니 나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 맞춰 증명사진이라도 올림으로써 '나 자신'을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너는 취업 준비나 국가공인기관에서 주관하는 시험 접수 등이 아닌 이상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 같은 SNS에는 내 증명사진을 올리는 것을 꺼려하는 편이다. 나 역시 내 평범한 외모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외모를 극복할 수 있는 셀카 찍는 방법도 잘 모른다.
사실 예전에 한 번은 내 얼굴이 사진에 찍히면 어떻게 나오는지 너무 궁금해서 혼자서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는 시도를 해본 적이 있었다. 그 때 두 세번 정도 찍었는데 사진 속 내 모습에 나 스스로 충격을 받았다. 평소에 거울을 볼 땐 모르고 있었는데 근접 셀카로 찍은 내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양쪽 눈의 형태가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짝눈인 것이다. 평상시에 생활할 때는 자세히 보지 않는 한 짝눈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다지만, 점점 발달하고 있는 고성능 사진기술 덕분에 얼굴에 드러나 있는 콤플렉스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르네 마그리트 「교장」 1955년
르네 마그리트 「사람의 아들」1964년
그래서 처음에 카카오스토리를 시작할 때도 그렇고, 최근에 페이스북을 개설했을 때 프로필에 내 얼굴 대신에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이미지를 업로드했다. 카카오스토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 프로필 사진이 예전에 알라딘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 메인사진으로 사용했던 마그리트의 「교장」이었고 현재 내 페이스북 계정의 프로필 사진에는 마그리트의 「사람의 아들」이미지로 되어 있다.
그러자 카카오스토리에서 자주 댓글로 대화를 나누는 모 교수님께서는 남들과는 차별화(?)된 프로필 사진에 대해서 유독 궁금해하셨고 남들과 달리 자신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 내가 특이했나보다. 오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 마그리트의 「사람의 아들」이미지를 업로드하자마자 1분도 채 안 되어 모 교수님은 내 페이스북에 이렇게 댓글을 남기셨다. '잘 생긴 얼굴 좀 공개해라'
못 생겨서 슬픈 자화상
외모에 대한 자신감 결여 그리고 자조적인 비하는 대중매체에 의해 미(美)의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는 오늘날 사회구조에 살고 있는 개인에만 인식하는 건 아니다. 인류가 등장하게 되는 원시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본다면 미의 기준이 시대 및 지역에 따라서 달라지고 변화되었을 뿐 그러한 미의 기준을 통해서 인간은 자신 스스로 외모에 대해서 생각해봤을 것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무척이나 외모를 강조하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서구의 신식 문화가 유행하게 되는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여성의 외모 가꾸기가 점차 강조되기 시작했다. 1920년대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화장품인 박가분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여성들은 전통적인 한복 대신에 서구 여인들처럼 원피스를 입으면서 신식 교육을 받고 자란 '모던 걸(Modern Girl)'로 변신했다. '모던 걸'이 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신식 교육을 받지 않고서도 서양식 드레스를 입고 구두를 신고, 얼굴에 화장을 하면 나름 '모던 걸'로 보일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점점 여성의 외모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견디다못한 어느 여성 시인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불만을 시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자화상
노천명
5척 1촌 5푼 키에 2촌이 부족한 불만이 있다. 부얼부얼한 맛은 전혀 잊어버린 얼굴이다. 몹시 차 보여서 좀체로 가까이하기 어려워한다.
그린 듯 숱한 눈썹도 큼직한 눈에는 어울리는 듯도 싶다마는...
전시대(前時代) 같으면 환영을 받았을 삼단 같은 머리는 클럼지한 손에 예술품답지 않게 얹혀져 가냘픈 몸에 무게를 준다. 조그마한 거리낌에도 밤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는 성격은 살이 머물지 못하게 학대를 했을 게다.
꼭 다문 입은 괴로움을 내뿜기보다 흔히는 혼자 삼켜 버리는 서글픈 버릇이 있다. 세 온스의 '살'만 더 있어도 무척 생색나게 내 얼굴에 쓸 데가 있는 것을 잘 알건만 무디지 못한 성격과는 타협하기가 어렵다.
처신을 하는 데는 산도야지처럼 대담하지 못하고 조그만 유언비어에도 비겁하게 삼간다. 대[竹]처럼 꺾어는 질망정
구리[銅]처럼 휘어지며 구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시인은 작은 키, 복스럽지 못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짙은 눈썹 등 조화를 이루지 못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대표작 '사슴'에서는 갸날프고 여린 동물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고 표현했건만 '자화상'에서는 자신의 부족한 외모에서 드러나는 성격에 대해서 서글퍼하고 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게 된다고 직설적으로 고뇌를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외모로 인한 열등감이 짙은 성격 탓에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는 고뇌를 표현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인은 '언어적 자화상'에 자신의 부족한 외모만 표현하지 않는다. '자화상' 속에는 외모나 성격의 일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세상에 대한 거부감도 담겨 있다. 즉, 그러한 세상과의 부조화를 인정한 채 살아가겠다는 곧은 의지의 자존심 역시 드러나 있다.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
얼굴이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얼굴이 잘났으면 앞줄에 섰을텐데
풍채라도 좋았으면 어깨라도 폈을텐데
그래도 남자라고 울지도 못하고
가슴에 쌓인 한을 풀기 위해서
이제는 조용히 조용히
뭔가 보여주고 싶습니다.
뭔가 보여주고 싶습니다. ♩♪
- 이주일 노래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 1절 -
코미디의 황제 故 이주일 씨의 수많은 인기 유행어 중에 '얼굴이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유행어의 인기를 힘입어 동명 유행어을 제목으로 딴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이주일 씨는 20여년의 무명시절을 보낸 뒤에 본격적으로 방송에 데뷔하여 MBC '웃으면 복이 와요'로 늦깍이 인기를 얻게 된다. 못 생긴 얼굴로 인해 정상적인 방송의 데뷔가 어려웠던 그는 자신의 외모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끌어내 80년대를 주릅잡는 코미디의 황제로 군림하게 된다. 사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못 생긴 외모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따돌림과 멸시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노래 가사처럼 '남자라고 울지도 못하고 가슴 속에 쌓인 한을 풀기 위해서'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고 세상을 떠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를 최고의 코미디언으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외모의 단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사실 어렵지가 않다. 간단하게 성형수술로 보완하면 된다. 아름다운 외모를 돋보일 수 있다면 성형수술에 투자하는 비용에 높더러다도 개의치 않는다. 이뻐질 수 있다면 수술하고 난 뒤 며칠동안 얼굴에 감도는 진통을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모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 역시 중요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꽃은 피어도 열흘을 못 넘긴다. 꽃이 금방 지게 되는 것처럼 그 아름다운 외모라도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내면 속 아름다움은 무한하며 이를 가꾸기 위해서 굳이 비싼 비용이 들지 않을 뿐더러 간단하기까지 하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내면적 아름다움'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관념적인 대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자신과는 다른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고, 사회적 약자를 무시하기 보다는 항상 겸허한 자세로 임하여 거리낌없이 손을 내밀 줄 아는 선(善)의 마음이야말로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행동이다.
나는 이주일 씨처럼 못 생긴 외모를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만의 개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을 자신있게는 못하겠다. 하지만 진정한 내면적 자아의 아름다움을 조용히 보여주고 싶다. 얼굴이 좀 못 생겨서 그렇지 마음만은 잘 생기고 성품이 좋은 훈남이자 꽃미남이다. '꽃미남'이 아니라 '곧미남'이 될 사람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훈남'이 될 '흔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