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리라이팅 클래식 15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동의보감'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한국인치고 '동의보감'을 모르는 이는 없을 거다. 무수한 건강보조식품 광고와 수많은 한의학적 처방에는 꼭 '동의보감에 의하면...'이라는 식으로 단서가 붙여져 있다. 그만큼 <동의보감>은 건강한 삶을 위한 비결이 담겨져 있는 책으로 인식되어져 있다. 
 그런데 정작 동의보감이 다루고 있는 게 무엇인지 혹은 그 책을 단 한 번이라도 읽어본 적이 있냐고 물으면 답변이 궁색해진다. 가장 대중적인 의학서이면서도 우리나라가 자랑할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도 자리잡은 동의보감이 한국인의 일상과 동떨어진 의학서로 전락한 셈이다. 이는 곧 귀에 쏙 들어오도록 동의보감을 쉽게 풀어 쓴 책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들 대다수는 <동의보감>에 나온 치료법이라는 말에 쉽게 믿어버린다. 
 필자의 어머니는 건강을 위한 식이요법, 식생활, 약초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요즘은 일 하시느라 많이 덜해졌는데 작년처럼 가사 생활을 하셨을 때만 해도 건강 관련 책 두 세 권을 구입해서 읽고 그 내용을 따로 메모하곤 했다. 이렇게 독학으로 공부를 하다보니 어머니는 책에서 언급되는 '동의보감'에 대해서 지적 호기심(?)을 가지셨나 보다. 
 한 번은 필자에게 시중에 구할 수 있는 <동의보감>을 책을 구입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알라딘 서지검색으로 '동의보감'을 검색해봤다. 생각보다 '동의보감'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의학 관련 책이 꽤 많았다. 그런 책들 대부분은 실제 '동의보감' 속 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동의보감' 속 내용을 국역한 책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책을 구입하기에는 조금은 망설였다. <동의보감>의 구성은 내과에 관한 내경편, 외과에 관한 외경편, 각종 질병을 소개하는 잡병편 등으로 세부적으로 분류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 국역한 내경편만 해도 페이지 수가 1000페이지를 넘기 때문이다. (가격은 6만 원 정도인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방대한 분량 속에서 과연 생활하는 데 있어서 적합한 건강을 위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런지 실효성에 대해서 의문을 품기도 했다. 결국 필자의 설득 끝에 어머니는 그 책을 구입하지 않았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동의보감>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몰랐고 <동의보감>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했기에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리라이팅'한 <동의보감>에 눈길이 갔다. 우리 어머니 아니었으면 이런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동의보감>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너무나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지만 필자의 어머니처럼 건강하기 위한 비결을 알기 위해서 이 책을 골랐다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6만원 상당의 <동의보감> 내경편을 구입할 것을 권한다. 저자의 이력을 알고 있다면 이 책에 대해서 적잖이 실망하지 않으며 오해하지 않을테지만 단순히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건강 비결 방법의 핵심을 정리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동의보감> 텍스트를 통해서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사유의 방식을 찾고자 한다.  

 

 


 사람의 몸이 곧 '자연'이다 

 

 

 

 

 

 

<동의보감> 첫 장 '내경편'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신형장부도] (pp 15)

 

 

천지에서 존재하는 것 가운데 사람이 가장 귀중하다. 둥근 머리는 한르을 닮았고 네모난 발은 땅을 닮았다. 하늘에 사시(四時)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四肢)가 있고, 하늘에 오행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이 있다. (중략) 하늘엑 이십사기(二十四氣)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24개의 수혈이 있고, 하늘에 365도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365개의 골절이 있다. (중략)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이 있다. 땅에서 풀과 나무가 자라나듯 사람에게는 모발이 생겨나고, 땅속에 금석이 묻혀 있듯이 사람에게는 차이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사대(四大)와 오상(五常)을 바탕으로 잠시 형(形)을 빚어 놓은 것이다.

('내경편' pp 10, 고미숙 pp 20 재인용)


 <동의보감>에서는 사람의 몸에 대해 설명하면서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그림을 넣었다. 그림의 제목은 ‘신형장부도’이다. 신형에 오장육부를 함께 그려 넣은 것이다. 먼저 보이는 것은 사람의 옆모습이다. 옆으로 그려야 오장육부가 잘 보이기도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머리에서 꼬리뼈 쪽으로 이어진 구조물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몸 안을 들여다보면 횡격막을 중심으로 오장육부가 배치되어 있다. 물론 각 장기의 모양이나 위치는 근대 서양의학에서 볼 수 있는 해부도와 다르다. 이는 실제의 장기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정교함을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각 장기가 행하는 기능과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배 부분이다. 배는 마치 물결이 출렁이는 것처럼 그려졌다. 이는 호흡하며 움직이는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또한 배꼽도 실제보다 과장되게 크게 그렸다. 이는 배꼽이 우리 몸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배꼽은 단전이 위치하는 곳이어서 호흡에 중요한 부위가 된다.
 허준은 사람의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받은 것이고 발이 모난 것은 땅을 본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팔다리와 장부 등 모든 몸의 모습도 자연의 그것을 본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신체를 단지 질병과 치료를 위한 대상이 아니라 몸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생명활동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과 자연의 통일성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생김새도 자연을 본받은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몸과 삶의 참주인이 되라


편작이 병에는 6가지 치료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했다. 교만하고 방자하여 이치에 따르지 않는 것이 첫번째 경우다. 몸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재물을 중시하는 것이 두번째 경우다. 먹고 입는 것을 챙기지 않는 것이 치료할 수 없는 세번째 경우이며, 음양과 장기(藏氣)가 다 인정되지 않는 것이 네번재 경우다. 몸이 마르고 약을 먹을 수 없는 것이 다섯번째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이며, 무당을 믿고 의사를 믿지 않는 것이 여섯번째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이다, 고 하였다.

- 동의보감 [잡병편], '변증' 중에서, 고미숙 pp 62 재인용 - 



 고대 중국의 유명한 명의(名醫)로 알려진 편작이 말한 불치의 이유는 질병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새겨들을만한 충언이다.
 지금도 의학 기술이 발달하고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신약이 탄생되고 있지만 여전히 치료하기가 수쉽지 않은 질병들은 약의 내성에 견딜 수 있도록 진화하고 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연장될 것이라는 미래의 전망도 있지만 지극히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치료와 약이 많다고 해도 제 몸 제 스스로 몸을 돌보지 못하고 건강을 관리하지 못하게 된다면 신체와 정신을 위협하는 질병의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질병을 마주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식습관과 생활패턴이 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당연히 살아가면서 온갖 병을 앓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몸이 아프면 어느 병원 무슨 과에 가서 진찰받을 것인가만 생각한 뒤 이후의 과정은 전문가에게 맡겨 버린다. 자신의 병이 뭔지 알기 귀찮고, 무섭고, 짜증난다. 그저 후딱 처방받으면 고쳐지겠거니 생각하고 만다.
 이 책의 저자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주하는 질병을 두려워하지 말고 '내 안의 치유본능을 깨울 수 있는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책에서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신체에 대한 서양의 담폰을 짚어가며 동양의학 담론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을 부각시킨다. 저자에 따르면 동양의학에선 질병과 죽음을 통해 자신의 몸과 인생, 그리고 우주로 연결되는 가르침을 터득할 수 있는 데 반해 서양의학에선 삶에 필수적인 질병과 죽음을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간주해 성찰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이 의사들을 위한 어려운 의학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직결돼 있으며, 모두가 의학적 지식을 누리게 하자는 뜻이 담겨져 있는 우리나라 의서의 '종결자'라고 볼 수 있다. 선조는 허준에게 <동의보감> 편찬을 명하면서 우리나라 백성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약재들의 명칭과 분류를 널리 보급할 것을 당부했다. 이것은 모든 백성들이 의술의 힘에 기댈 수 있기를 바라는 선조의 민본사상이 내포되어 있는 동시에 더 나아가서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동의보감을 통해 자신의 몸을 보다 정확히 바라보고, 자신에게 잠재해 있는 치유본능을 일깨우며, 나아가 자기 삶의 주인공이자 연구자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동양의학의 우수함만을 고집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의사'와 같은 의술 전문가들에게 의학의 영역을 넘겨주어 자기 몸과 감정을 스스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없는 것이 서양의 의학 담론이라면 동양의 의학 담론에서 추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몸과 감정을 컨트롤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무지의 늪'과 질병이 만들어내는 정신적 공포에서 벗어난다면 '앎에 대한 열정'으로 불치병을 극복하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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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1-1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경편에 있는 이야기가 아주 흥미롭네요. 저도 이 책을 보관함에 넣어둡니다. 좋은 책 소개감사!

cyrus 2012-01-25 20:37   좋아요 0 | URL
책의 내용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재미있답니다. ^^

굿바이 2012-01-19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미숙씨가 공부를 하면서도 몸을 쓰는 일(요가)에 참 열심이다 싶었는데
이 책을 쓰셨군요. 정말 <동의보감>이야말로 저자의 삶의 방식(정신이든 육체든 스스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과 직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책 소개 잘 봤어요~!

cyrus 2012-01-25 20:42   좋아요 0 | URL
동의보감은 단순히 신체 건강을 위한 책이 아니라 정신 건강을 강조하는
책이라는 것을 고미숙 씨의 책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되었어요. 이 책으로
동의보감의 진면목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으면 좋겠어요. ^^

saint236 2012-01-1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잘못봤나요? 어제 밤에만 해도 동의고감이라고 적으셨던 것 같았는데. 그래서 심오한 뜻을 헤아리기 위해서 고민을...

cyrus 2012-01-25 20:43   좋아요 0 | URL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목에 오타가 있길래 바로 스마트폰으로
고쳤답니다 ㅎㅎ

잘잘라 2012-01-19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료할 수 없는 병 여섯가지, 정말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마지막에 정리해주신 <동의보감>의 의의에 대해서도,
정말이지 추천 추천 백만번 추천합니다.

cyrus 2012-01-25 20:44   좋아요 0 | URL
건강에 관심이 많으신 포핀스님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에요.
내용도 그렇게 어렵지 않고요,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된 책이라 좋아요 ^^

차트랑 2012-01-1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미숙님의 글발은 대책이 없을 정도로 좋더군요 ㅠ.ㅠ
동의보감에서는 또 그 어떤 언어의 마술을 보여줄런지...

우주의 이치와 인간의 몸을 따로 분리하지 않은 동양의 생각을
많이 이해하고 있을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건강검진의 결과에는 이상이 없는데
몸은 엉망으로 아픕니다.

저 말고도 아와 같은 경험을 하시고 계신분들 계실듯 합니다.
동의보감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리뷰들을 정말 잘써주셔서 장바구니에 허리 휩니다요 ㅠ.ㅠ
좋은 리뷰 고맙습니다.

cyrus 2012-01-25 20:47   좋아요 0 | URL
고미숙 씨의 글은 어려운 고전의 내용을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좋아요. 벌써부터 다음에 나올 책이 기대되네요 ^^

꽃도둑 2012-01-26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부산 인디고서원을 아시는지요?
전에 고미숙 샘께서 강의차 오셨는데 저는 그 분을 가까이게서 뵈었답니다.
유연하신 분이었어요. 정신적으로 건강하신 게 눈에 보였지요.
몸과 삶의 참주인이 되어라! 는 말은 아주 감각적으로 들리는데요?..^^
고미숙 샘께서는 아무래도...몸의 철학에 깊이 경도된 듯 하네요...ㅎㅎ(농담 반,진담 반)
서양의학은 부분부분을 면밀히 관찰하고 치료하는 반면, 동양의학은 전체를 유기적 관계로 본다는 관점에서 어떤 의도로 책을 쓰셨는지 알 것 같기도 하네요.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사람의 몸이 곧 자연이다 라는 말에 수긍이 가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cyrus 2012-01-26 21:16   좋아요 0 | URL
부산 인디고 이름은 들어봤어요. 고미숙 씨의 강연을 직접 보셨다니
아주 유익한 경험을 하셨네요. 저는 그 분의 강연을 TV로나마 봤어요.
참으로 열정적으로 강연을 하시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