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대학교 축제의 모습

어제 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맨스필드의 단편선집을 읽게 되었다.  제목은 그녀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의 동명제목인 '가든파티' 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제는 학교 축제가 시작되는 첫 날이었다.  축제와 파티는 의미에만 조금 차이가 있을뿐 공통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술을 마시면서(?) 노는 것이다.  

원래 학교 축제가 있는 날이면 대부분 수업은 휴강을 하게 된다.  학생들이 축제를 마음껏 즐기기 위한 교수님의 배려(?)도 있지만 실제로 축제 기간에 수업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강의실 안까지 들려올 정도로 엠프에서 울려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흥겨운 노랫소리에다가 축제의 즐거운 분위기에 취해 고성방가하는 청춘남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수업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정말로 참기 힘들 정도로 고역이다.    교수님이 열심히 칠판에 써가는 내용은 안중에 없다. 그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는 생각만 들게 된다.

하필이면 어제 들은 수업은...      '정치학' 이었다.    

안그래도 원래 수업도 지루한 마당에 어제 같은 날은 나뿐만 아니라 출석한 모든 학생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리라.  ^^;;

 

아직 축제 첫날인지 모르겠지만 올해 우리 학교 축제는 예전에 비해 간소화하게 진행되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뿐만 아니라 최근 대학 축제들은 24시간 하루종일 술만 마시고 유명한 가수들을 초청하는 그저 먹고 놀기만 하는 축제에서 탈피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요즘 '반값 등록금' 에다가 대학 구조조정 등과 같은 대학교와 대학생들에게는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이슈가 거론되고 있기에 예전과는 다르게 대학교 축제는 '경제적' 이면서도 한편 학생들에게 유익한 취업 및 문화 관련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취업' 과 '진로 선택' 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보니 축제를 즐길 여유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어제 잠깐 학교 도서관에 들리게 되었는데 축제 기간 속에서도 열람실에서 공부에 열중한 학생들이 많았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펙을 쌓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에 도서관 입구를 나오는 순간,  자신의 몸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술에 떡이 된(?)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축제 기간이 되면 대학 캠퍼스 안에는 같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남이 무엇을 하든 간에 관심이 없으며 남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저 자신들이 마주하고 있는 익숙한 현실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을뿐이다.

 

    

 Scene #2   인생이라는게... 그런 것이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땅 위에 살아가면서도 인간은 자신의 삶과 상반되는 현실을 목도하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낯선 환경을 이해하고 그 분위기에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번에 처음으로 읽는 맨스필드의 단편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여성 작가의 단편소설이라서 많은 기대감을 안은채 읽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했던만큼은 강렬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과거에 오 헨리와 체호프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얻게 된 인상의 여운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성 작가답게 인물 심리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 일상의 깨달음으로 전환하는 이야기 전개는 읽는 내내 결말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특히 그녀의 대표작인 '가든파티' 는 주인공 로라가 끝내 말하지 못한, 형용할 수 없는 여운으로만 남겨진 그녀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초여름의 어느 날, 주인공 로라는 노동자들이 푸른 잔디밭 위에서 천막을 치고 밴드를 옮기며 파티를 준비하는 것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빈촌인 아랫 마을의 스콧이라는
젊은 짐 마차꾼이 교통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파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빠 로리만 제외하고, 모두 가든파티와 죽음은 별개의 문제라며 예정대로 파티를 연다. 끝내, 로라는 한 쪽에선 사람이 죽었는데도 파티를 계속한다는 것은 비정하다면서 사치스러운 파티를 떠난다.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죽은 짐 마차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어둡고 누추한 집을 찾은 로라는 마치 잠을 자듯 평화롭게 누워 있는 짐 마차꾼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난 후, 흐느끼며 집을 나오게 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서 오빠 로리를 만나게 되는데 로라는 오빠에게 수수께끼와 같은 의미의 말을 하게 된다.

 

“무서웠어?”
 
“아니.” 

로라가 흐느꼈다.

 "그저 대단했어. 하지만 오빠..."   

그녀는 말을 멈추고 오빠를 바라보았다.

“인생이, 인생이...”

그녀가 더듬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정말, 그렇지?”

로리가 말했다.                  

([가든파티] 중에서, pp 114)

  

이 소설은 파티에 들뜬 부유한 사람들과 교통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비참함을 비교하며 인생의 한 단면을 펼친다. 하지만 그 방법이 결코 작위적이지 않다. 그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소녀가 하층 계급 노동자의 죽음을 접한 후 겪는 심리 변화만 따라간다. 사건 뒤에 담긴 의미들은 로라가 마지막에 오빠에게 하는 말, `인생이라는게... 그런 것이다` 라는 말에 모두 압축된다.

 

  

 Scene #3  '현실' 이라는 익숙한 동굴에 갇혀버린 인간

 

피터르 브뤼헐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1555~1558년경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를 읽으면서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이다.   

이카로스는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최초로 하늘을 날게 된 인간 1호이면서도 비행을 하다 추락사를 하게 된 불명예스러운 인간 1호이기도 하다.   이카로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잊은 채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버려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카로스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제목과는 다르게 목가적인 풍경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 오른편 커다란 배 앞에 바다 속에서 허우적대는 두 개의 다리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추락하는 이카로스의 최후 모습이다. 너무도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이카로스의 발버둥은 그 비극적 상황에도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주의를 끌지 못한다. 농부는 여전히 밭을 가는 데 여념이 없고, 배는 자신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낚시꾼도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저 고기잡이에만 열중하고 있다. 양치기만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브뤼헐은 '이상' 을 좇는 이카로스보다 열심히 '현실' 을 살아가는 이름 모르는 민중들을 그림의 중심에 놓았다. 더불어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이카로스의 욕망을 무모하고 어리석은 의미로 그렸다.   

하지만 그림 속 민중들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매진하는 현실주의적 삶도 부작용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삶의 환경에 익숙해지고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은 자칫 '현실 안주' 라는 문제점으로 발전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익숙하게 되면 전혀 새로운 미지의 상황 앞에서는 두려움으로 인해 움츠려들게 된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제시한 '동굴의 우상' 처럼 동굴에 오랫동안 생활한 인간은 동굴 밖에 펼쳐져 있는 넓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결국에는 현실에 대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편견을 낳게 된다.

   

 

 Scene #4   하나의 세상, 두 가지 현실

베이컨은 다른 사람의 감정, 정서 및 경험과 비교함으로써 동굴의 우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로라가 하층민 가족이 겪은 죽음과 그로 인한 슬픔을 접 목격함으로써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듯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잠깐이마나 고개를 돌려본다면 전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의 이면을 발견할 수 있다.   

며칠 전부터 조세희의 <난쏘공>을 읽고나서부터 항상 느낀 것이지만 하나의 세상 속에는 안과 밖이 서로 다른 모순적인 현실이 공존하고 있다.  '난쏘공' 과 '가든파티' 속 시대적 배경의 모습처럼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상반된 인생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쪽에서는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공장 노동자들은 24시간 투쟁을 벌이고 있고, 정부와 기업의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사회적 약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호화로운 아파트에 살면서 골프를 하고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뒤안길에는 실직으로 인한 가난과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권에서는 민생 대책에 고심하기보다는 곧 치뤄질 대선의 승리라는 현실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세계적 금융 위기라는 찬 바람이 슬슬 불어 오고 있는데도 정부는 경제적 혹한에 취약한 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따뜻한 옷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 서민들은 올해의 겨울은 지난해처럼, 아니 이보다 더한 혹독한 계절을 맞이하지도 모른다.    

정치권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권력형 비리로 인해 잡음이 일어나고 있고 각 정당들은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해서 발빠르게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우리 사회의 그늘 진 곳에서는 또 다른 어느 누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로라의 애정이 새삼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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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9-2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선거철만 되면 인간 대접을 받으니 다행이죠. 개인적으로는 매일 선거였으면 좋겠습니다.

cyrus 2011-09-29 19:21   좋아요 0 | URL
선거철이 지나도 정말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어요 ^^

stella.K 2011-09-28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제 때 수업을 하는 교수님이 어딨니?
축제를 간소화 할 필요는 있지만 축제는 축제대로 놀아줘야 하는데
그 기간에도 스펙을 쌓기위해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니 좀 그러네.
울나라 대학생은 가면 갈수록 불쌍해지는 것 같아.
대학의 낭만이란 게 없는가 보다.ㅠㅠ

cyrus 2011-09-29 19:23   좋아요 0 | URL
원래는 축제 기간 때는 수업을 안 하는데 이틀 전 수업 같은 경우에는
교수님이 다음주에 출장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한거예요.
2학기 같은 경우에는 축제 기간에다가 공휴일이 있어서 1학기보다는
수업 일수가 적거든요.

저뿐만 아니레 제 주변에도 대학의 낭만을 점점 잃어버리는거 같아서
씁쓸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2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제때 수업이라뇨..ㅎㅎㅎ 요샌 정말 분위기가 좀 다르네요.
저희 학교는 축제가 재미없어서 그런지 남학생들이 여학교로 다 놀러가는 바람에
학교에 여학생들만 득실댔었던 안좋은(!) 기억도 있어요.ㅎㅎㅎ
그래도 그때만큼은 공부하는 학생들은 없었는데 정말 세월이 다르네요.

cyrus 2011-09-29 19:24   좋아요 0 | URL
글 쓰면서 언급을 안 했는데,, 교수님이 다음주에 출장이 있어서
학습 진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거예요. ^^;;

blanca 2011-09-28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새 축제 분위기는 사뭇 다르군요. 다른 학교 축제 원정 가는 일도 이젠 드문 풍경이 되었겠어요. 아, 저도 요새 양극화 풍경을 절감합니다. 인생이라는 게 때로 참 잔혹한 것 같아요. 저 그림에서 이카루스를 한참 찾다 보고 웃었어요^^;; 재미있는 그림이네요.

cyrus 2011-09-29 19: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 역시 다른 학교 축제 원정이라고 갈려고 했었는데,,
2학기 때는 축제를 안 하는 학교도 있었어요. ^^;;

잘잘라 2011-09-2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쪽에서는 축제 한 쪽에서는 수업이라니.. 허어어 우째 그런 일이..
인생이.. 시절이.. 참....

cyrus 2011-09-29 19:27   좋아요 0 | URL
ㅎㅎ 교수님이 다음주에 출장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했던거에요 ^^;;
야간 수업 같은 경우에는 휴강인데 주간에 강의가 있는 몇 몇 교수님은
축제 기간에도 수업을 하기도 한답니다.

맥거핀 2011-09-2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글이 참 좋아요. 맨스필드의 단편으로부터 학교 축제, 그리고 이카로스의 그림, 사회의 조망...(개인적으로는 그냥 쓸데없는 생각들이 드네요. 그때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시끄러운 축제를 원망하는 학생이었으면 지금 좀 나으려나? - 축제 때, 늘 술에 떡이 된 몰골로 본부앞 잔디밭을 굴러다니던 1人이 하는 한탄..;;)

cyrus 2011-09-29 19:29   좋아요 0 | URL
저도 4년 전, 1학기 때 이틀동안 잠 안 자면서 술 마셨어요. ^^;;
특히 3일동안 축제 기간하면 절대로 집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ㅎㅎ

노이에자이트 2011-10-0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라 정도의 적당한 감상주의가 사회안정에 좋지요.거기서 계급간 갈등 운운 하다가 혁명을 해야겠다고 선동하면 글쎄요...혁명 좋아하는 자칭 정통 혁명주의자에겐 이 단편이 불철저한 감상주의를 전파하는 유해한 반혁명적 작품이겠지요.

cyrus 2011-10-01 21:18   좋아요 0 | URL
ㅎㅎ 혁명론자들에게는 소설이 그렇게도 볼 수도 있겠네요 ^^

노이에자이트 2011-10-0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대학이 제대로 된 낭만을 즐기던 때가 있었나요.1985년 신동아에선가 본 기사인데 요즘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된다는 내용이었어요.축제기간에도 도서관에서 취직공부하는 대학생들이 요즘에만 있는 게 아니고...그리고 그렇잖아도 방학도 긴데 축제기간까지 강의를 안 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죠.시간이 모자라면 축제기간에라도 수업해야죠.

cyrus 2011-10-01 21:19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실업의 역사를 정리한 강준만의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최근에 일어난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노자님이 언급하신 80년대 중후반에도 대학생 취업난이
거론되었더군요.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80년대의 대학생들은
졸업만 하면 다 취업이 되는줄만 알았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1-10-01 22:38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고학력자를 많이 흡수할 수 있는 시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보면 일제시대에도 고학력자들은 실업자기 많았다는 내용이 있고요.

지금의 50대 전후 나이들도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