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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미치광이 ㅣ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1001-326] 일곱 명의 광인
용이 되지 못한 잉어, 로베르토 아를트
로베르토 아를트 (1900~1942)
' 미치광이 ' 라는 예사롭지 않은 단어가 들어가는 제목에다가 ' 로베르토 아를트(Roberto Arlt, 1900~1942) ' 라는 낯선 작가의 이름을 처음 접해본 사람들에게는 선듯 이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이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권>에 소개된 사실을 알고 있지 못했더라면 나 역시 이 소설을 읽지 못했을 것이다. (원래는 이번 주 주말에 있을 독서모임 때문에 읽게 된 것이지만)
(* 피터 박스올의 책에서는 ' 일곱 명의 광인(원제: The Seven Madmen)' 으로 소개되어 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1899~1986)
로베르토 아를트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소설가인데 현재로서는 내가 아는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로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호르헤 보르헤스와 마누엘 푸익뿐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열거하라면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 후안 룰포(멕시코), 이사벨 아옌데(칠레) 그리고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또 한번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우수성을 입증해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까지. ' 마술적 리얼리즘 ' 으로 대표되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은 이제 국내에서는 낯선 변방의 문학이 아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작가가 세 명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로베르토 아를트의 문학은 보르헤스와 마누엘 푸익의 국제적인 명성에 견줄만한 세계적인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유인 즉슨, 로베르토 아를트는 보르헤스가 추구하는 마술적 리얼리즘 문학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를트 역시 리얼리즘 문학을 표방했지만 보르헤스처럼 현실을 초월한 환상적인 세상을 그려내기보다는 범죄와 위악으로 가득찬 아르헨티나의 실상을 그려내고 있다.
독자적인 문학을 추구했던 로베르토 아를트는 세상을 떠난지 40여년이 지나서야 고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전집이 발간됨으로써 재평가되었지만 이미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상징으로 보르헤스와 마르케스을 주축으로 한 마술적 리얼리즘이 아메리카 대륙에 확고히 뿌리를 박은 탓에 아를트는 같은 출신 작가 보르헤스의 명성에 가려지게 되었고 고국에서조차 ' 아웃사이더 ' 작가로 인식되어 별다른 부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아를트에게는 운 역시 따라주지도 않았다. 불행한 유년 시절의 경험(어머니의 죽음)은 그의 삶에는 걸림돌이 되었으며 왕성한 집필 활동 중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42세라는 젋은 나이에 사망하게 됨으로써 이제 막 꽃봉오리를 피려고 하는 아를트의 문학은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그나마 그의 인생 중 황금기라면 <7인의 미치광이> 한 권으로 ' 부에노스아이레스 문학상 ' 을 수상한 이력이 유일하다.
보르헤스는 아를트보다 1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고 그 역시 아를르 못지 않게 유난히 굴곡이 많은 생애를 살다 갔다. 불우의 사고로 목숨을 잃을뻔했으며 아르헨티나를 독재 집권한 페론 정부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게다가 인생의 황혼기에 실명이 되어 문학 인생에 또 한 번 최대 위기를 겪었지만 실명된 상태에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87세의 나이로 꽤 장수를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문학가들에게는 최대의 명예인 노벨문학상 만년 후보였음에도 오늘날에도 전 세계적으로 전파된 그의 문학은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있다.
호르헤 보르헤스와 마누엘 푸익이라는 아르헨티나산 잉어는 고국의 독재 정권으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 문학 인생에서 수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현재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인 거대한 용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로베르토 아를트는 독창적인 문학을 추구한 특별한 존재의 잉어였음에도 불구하고 ' 세계 ' 로 향할 수 있는 등용을 통과하지 못하고 말았다. 단지 그의 문학적 재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무엇이 이들을 미쳐버리게 만든 것인가?
소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 7인의 미치광이 ' 이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려는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상징적으로 가리키고 있다. 언듯 제목만 봐서는 이 소설에는 단 일곱 명만 등장하는 걸로 알기 쉬운데 다양한 인물들이 부수적으로 등장하며 전반적으로 독자들의 눈에 자주 띄는 인물이라고는 주인공 에르도사인과 점성술사 그리고 전직 창녀인 이폴리타뿐이다.
언급된 세 명의 등장인물들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 , ,
소설 주인공인 에르도사인은 설탕 회사에 다니다가 몰래 회사 공금을 횡령한 적이 있는 범죄자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불안과 과대 망상이 머릿속에 넘나드는 정신이 불안정한 발명가로 그려지고 있다.
점성술사는 ' 7인의 미치광이 ' 의 핵심 인물이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서 에르도사인과 그 밖의 인물들(이들도 ' 미치광이 ' 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을 자신의 계획에 동참하도록 끌어 모은다.
결국 아를트의 소설에서 나오는 인물들을 대놓고 말하자면 ' 미친 놈 ' , ' 또라이 ' 들이다.
제정신이 아닌 소위 미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정상인이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하기 마련인 것처럼 소설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는 망상과 불안에 휩싸인 인물들의 독백과 미친 사람들끼리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 소설을 읽게 되면 처음에는 이야기 읽기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읽는데 무척 난감했다. 독서모임 선정 도서가 아니었다면 읽다가 도중에 포기하고 집어던져 버렸을 것이다. 소설 시작부터 나오는 인물들이 무엇 때문에 미쳐버렸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은근히 난해한 작품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 미치광이 ' 로 만든 것일까?
세계의 모든 사상들이 넘쳐났던 근대 아르헨티나
갑작스런 사회적 변화로 인해서 새로운 사상들이 소개되면 대중과 지식인들은 그 사상들을 무분별하게 수용하게 되는데 <7인의 미치광이>에서 그려지고 있는 근대화가 성립되고 있었던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의 모습이 그러했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 초에 에스파냐로부터 독립을 함으로써 공화국으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세기 말, 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유럽 대륙의 자본들만 아르헨티나에 유입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각국에서 전파되고 있었던 다양한 사상들도 홍수의 범람하듯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근대화가 이루고 있었던 이 시기의 아르헨티나는 화려한 번영을 누렸지만 국내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예전보다 대량적 실업과 공황으로부터 야기된 범죄는 날로 늘어만갔고 아르헨티나 대중과 지식인들은 수없이 넘쳐 흐르는 이데올로기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다양한 사상들을 지나치게 수용하게 된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기존의 사상적 내용을 제멋대로 왜곡하여 받아들였으며 정치 권력자들은 이데올로기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다. 이렇다보니 국내 정치마저도 조금씩 불안정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7인의 미치광이>에 등장하는 연금술사는 근대적 사상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아르헨티나 지식인을 상징하고 있다. 연금술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혁명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 장면에서는 20세기 초 아르헨티나에서 유행했던 당시 사상들을 확인할 수 있다.
# 1 미래주의 (Futurism)
" 수많은 대중들을 이끌어나가고 그들에게 과학에 기초한 미래상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그런 훌륭하고 멋지고 강철 같은 의지력을 갖춘 사람을 창조해 내는 것, 생각만 해도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입니까? 사회혁명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이겁니다. "
(중략)
" 앞으로 우리는 과학 지식으로 무장한 황태자를 만들어낸 겁니다.
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댕길 수 있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오히려 에디슨이나 포드 같은 인물일 겁니다. "
- 로베르토 아를트 <7인의 미치광이> p 58 -
움베르토 보초니 <도시의 폭동> 1910~1911년 작
연금술사는 산업과 과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회를 ' 산업주의 ' 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예술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미래주의를 연상시킨다. 미래주의자들은 과거의 전통과 아카데믹한 공식에 반기를 들고 무엇보다도 ' 과학 ' 으로 대표되는 기계문명의 약동감을 찬미하였는데 연금술사는 혁명을 통해서 ' 산업의 시대 ' 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 2 파시즘 (Fascism)
베니토 무솔리니 (1883~1945)
과거의 전통에서 벗어나 기계로 가득찬 현대문명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미래주의는 주목할만 하지만 전쟁에 대한 과격한 찬양은 무솔리니의 파시즘과 결합되었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재미있게도 연금술사는 아예 노골적으로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찬양하고 있다.
" 이 사회엔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소. 딴 사람들은 몰라도 적어도 그들만은 내 말을 믿을 거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소? 내 구상을 조금 더 소상히 밝혀 볼 테니 한번 들어봐요. 미래의 사회는 크게 두 계급으로 나누어질 거요. 두 계급은 당연히 극과 극의 성격을 지니게 되겠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 계급의 지적 수준은 30세기 정도 차이가 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절대적인 무지 속에서 살게 될 거요. "
- p 196 -
" 그렇소. 우리 인간이 상상하는 건 시간이 지나면 모두 실현될 수 있소. 이탈리아에선 무솔리니가 종교교육을 의무화하지 않았소? 대중의 지지를 받는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는 실례요. 좀 더 알기 쉽게 얘기할까?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간에 대중들이 믿게만 만들면 뭐든 못 할 일이 없다오. 결국 문제는 대중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을 수 있느냐 하는 거지. "
- p 198~199 -
파시즘은 인간평등을 부인하며 인간불평등의 사실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하나의 이상으로서 불평등을 확신하는 경향을 보인다. 소수 엘리트가 지배하는 정치는 폭력과 전쟁을 신념으로 인간생활의 전국면을 통제하는 전체주의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대중들을 선동하기 위해서는 국가 내 모든 매스미디어를 독점하여 여론을 조작하기에 이른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서 비밀조직을 결성하기로 계획을 꾸미는데 결국에는 국가를 통제할 수 있는 권력독점적인 특정 세력을 만든다는 것이다.
# 3 자본주의 (Capitalism)
돈을 최고로 여기는 자본주의에서는 대중들로 하여금 소비하고 싶은 욕망과 남에게 뭔가를 과시하고 싶은 허영심을 부추기고 있는 폐해를 낳기 마련이다. 게다가 재화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른 경제적 수준으로 부르주아와 프폴레타리아라는 양립의 계급을 형성하게 되고 빈부 격차의 문제는 물론이고 이윤 획득에 눈이 먼 비도덕적인 범죄도 발생하게 된다.
에르도사인은 수많은 비용의 회사 공금을 비밀리에 빼돌렸음에도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횡령한 돈들은 엉뚱한 곳에서 남발되어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쓴 돈이 400페소로 불어난 걸 알았을 때 그는 놀라 기절할 뻔했다. 정신이 나갔던 건지 아니면 귀신에 홀렸던 건지, 에르도사인은 마치 그 돈을 탕진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였던 것처럼 엉뚱한 데만 골라 돈을 써댔다. 예를 들어 별로 먹고 싶지도 않은 과자를 사거나, 또 구경 한번 못 해본게 요리나 거북이 수프, 개구리 튀김 요리를 사 먹고 다녔다. 잘 차려입은 부자들만 가는 화려한 식당에 들어가 생전 처음 보는 비싼 술과 포도주를 마시기도 했다. 이처럼 별 생각 없이 먹고 마시는데 돈을 다 쓰다 보니 정작 내의나 구두, 넥타이 같은 생필품에는 신경 쓸 틈조차 없었다.
- p 51 -
생각 없이 무분별하게 돈을 소비하는 에르도사인은 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또 다시 회사 공금을 몰래 빼돌리는 범죄의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에르도사인의 부인 이폴리타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폐해에 시달리는 심각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
이폴리타에게도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헛된 공상과 과거 부유한 집안에서 일해야했던 하녀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꿈을 자주 꾸게 되는데 그녀는 자신이 속한 프롤레타리아 세계에 대해서 심한 질투와 좌절감을 느끼는 동시에 정반대의 세계인 부르주아 세계를 동경하고 있다.
냄비, 화로, 깨끗한 나무 천장, 욕실의 거울, 그리고 빨간 전등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겐 영원히 다가갈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였다. (중략)
소녀들의 예쁜 몸을 감싸고 있던 가벼운 옷감과 그 위에 수놓인 자수, 그리고 리본 ... 자신이 똑같은 돈을 주고 산다 해도 그건 저 아이들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일 것만 같았다. 이처럼 자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과 잠시나마 함께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중략)
정말로 평생 하녀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제 평생을 하녀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운명에 맞서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옥죄고 있는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 p 324 -
광기의 시대를 정확히 예견하다
로베르토 아를트는 <7인의 미치광이>의 후속편격으로 1931년에는 <화염 방사기>(원제: Los Ianzallamas) 를 발표한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드려는 일곱 명의 미치광이들의 밑도 끝도 없는 여정의 결과는 속편인 <화염 방사기>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후속편은 국내에서 번역 소개되지 않았다. 점성술사가 바라는 미래의 사회는 결국에는 현실적으로 실현이 불가능할 유토피아일뿐이다. 자신들이 꿈꾸왔던 사회가 공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나서야 더 미쳐버리는건 아닌지 소설의 결말이 무척 궁금하기만 하다.
이 한 권의 소설로 가지고 광인 이야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없지만 로베르토 아를트는 근대 아르헨티나의 사회적 모순과 수많은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생긴 병리적 현상들이 만들어낸 광기의 시대를 적나라하게 묘사했으며 거기에다가 이로 인해 겪게 될 고국의 미래상을 적확하게 예견하고 있다.
근대 아르헨티나가 겪었던 병리적 현상이란 급격한 변화로 인한 사회적 과정에서 비롯된 정신분열증이다. 특히, 에르도사인과 점성술사는 정신분열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심각한 증상을 보여주고 있다.
에르도사인은 수차례 공금을 횡령하는 사회적 일탈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자신에게 닥치게 될 운명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고능력조차 마비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다보니 에르도사인에게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정서적으로 둔화되어 있으며 죄책감마저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겪고 있는 불행한 삶을 타개할 수 있으며 자신의 존재를 구원할 수 있는 희망적인 삶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유일한 방법에는 자신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발명 실력이다. 에르도사인은 자신이 발명한 ' 구리 장미 ' 가 언젠가는 자신의 삶에 성공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에르도사인이 바라고 있는 ' 희망적인 삶 ' 은 현실접촉이 완전히 상실된 나머지 생기게 된 잘못된 신념에 불과하다.
자신 스스로 ' 미치광이의 매니저 ' 로 자처하는 연금술사의 정신상태 역시 심각하다. 그는 열변을 토하면서 자신이 계획한 미래의 청사진을 그럴싸하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온갖 이데올로기가 범벅이 된 혼란스럽고 비합리적인 공상일뿐이다. 자본과 산업의 시대를 주창하면서도 때로는 파시스트, 사회주의자처럼 말하다가 간혹 군군주의자로 변신하기도 한다. 점성술사는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초인이야말로 진정한 세계의 지배자라고 말하고 있는데 프리드리히 니체의 위버맨쉬(Übermensch) 사상마저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하면 위대한 사람이라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소설 속 미친 점성술사의 예언(?)은 로베르토 아를트가 세상을 떠난 지 4년 뒤에 그의 고국에서 실현되었다.
후안 페론 (1895~1974)
1946년, 후안 페론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9년 동안 독재정치를 단행하였다. 그는 언론 ·보도의 자유를 탄압하였으며 강력한 중앙집중화된 정부와 권위주의로 상징되는 ' 페론주의(Peronismo) ' 을 탄생시켰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서 외국인 소유의 자본 회사들을 국유화시키고 공업화 정책을 추진했지만 오늘날에는 아르헨티나의 경제적 쇠퇴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페론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파시스트였으며 페론 역시 무솔리니를 동경했음을 알 수 있듯이 페론주의를 파시즘의 일종으로 정의내리기도 한다.
여전히 아르헨티나 국민들 사이에는 후안 페론과 그의 영부인 에바 페론(에비타)를 아르헨티나의 영웅으로 신적인 존재로 기억하고 있다. 독재정치로 인한 반발로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를 피해 잠깐 망명의 시기도 있었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망명한 영웅을 그리워하였다. 결국 영웅은 국민들의 기대에 힙입어 망명한지 1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재집권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후안 페론의 업적에 대해서 서로 엇갈린 평가로 나뉘어져 있지만 집권 당시 막강한 권력을 앞세워 독재정권 체제를 유지했다는 점에서는 후세의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로베르토 아를트가 아르헨티나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했다고해서 그의 문학이 평가받아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르헨티나 특유의 파시즘인 페론주의가 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근대화로 상징되는 사상의 쓰나미을 목격한 아르헨티나 대중과 지식인들은 국민적 좌절감, 심리적 열등감이 크게 작용했다. 이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경제적 혼란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게 되었으며 이로 인한 계급적 불균형은 대중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민주화의 기반을 잠식시켰으며 대신 국가를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지배자의 등장을 열망하였다.
로베르토 아를트는 기성 문단을 주름 잡았던 동시대 아르헨티나 작가와는 다르게 썩어 곪은채 무관심으로 방치되고 있었던 고국의 암울한 사회적 실상, 결국에는 정신분열증을 야기할 정도로 극도로 혼란스러원 광기의 시대를 초래하게 될 사회적 원인을 그가 유일하게, 그것도 정확히 포착해낸 것뿐이다. 이 점이야말로 로베르토 아를트의 문학을 오늘날 재평가해야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P.S>
국내에서 이 작가의 인증샷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것은 <7인의 미치광이> 이 책 한 권뿐이다. 인증샷을 찾기 위해서 내가 즐겨찾는 몇 개의 국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작가 이름을 검색해봤는데 아를트의 인증샷 그리고 작가에 대한 세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수준과 모습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