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서.탐:
서울 청년 서한용 씨의 서재를 탐(구)하다.
서한용[주1]은 어느 서 씨일까? 우리나라의 성씨로 사용되는 서는 ‘徐(천천히 할)’, ‘西(서녘)’다. 그중에 ‘徐’가 제일 많다고 한다. 얼추 서한용의 성씨는 ‘徐’일 것이다. 하지만 글을 즐겨 쓰는 서 씨의 평소 습관을 봐서는 성씨는 ‘書(글)’다. 본관은 장서(藏書) 서 씨다.
황금연휴 두 번째 날은 서 씨의 집에 묵었다. 서 씨의 초대를 받았을 때 엄청나게 기대했다. 서 씨의 서재에 책이 엄청나게 많겠지. 책장에 어떤 책들이 있을지 매우 궁금했다.
서 씨의 서재는 두 개의 방으로 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침실이다. 부럽다. 책을 많이 보관하려면 방 한 개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서 씨의 별명을 ‘서울의 최해성(cyrus)’이라고 붙여줬다. 그런데 서 씨의 서재를 보고 난 후 내가 그를 제대로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서재를 보면 서재 주인의 독서 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서한용의 독서 편력을 간단한 도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서한용 =
cyrus
+ 대구 장르문학 전문 책방 <환상 문학> 책방지기 [주2]
+ 홍 향기(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의 프론트우먼)
+ 레샥매냐, 헤르메스(서울 독서 모임 <달의 궁전>의 두 개의 기둥,
알라딘 서재의 달인)
+ <담담책방> 책방지기
‘간단한 도식’이라고 했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분의 독서 편력을 생각하면, ‘속이 꽉 찬 남자’ 서 씨의 방은 ‘책이 꽉 찬 서재’다. 그의 독서 편력 점수는 99.9이다. 책 사랑도 99.9.
당연히 서 씨의 서재에 내가 산 책들이 많이 보였다. 침실 옆 베란다에 DC 코믹스 《배트맨》이 있었다. <환상 문학> 책방지기가 왜 거기 계셔요? <환상 문학>에 가면 DC 코믹스 시리즈와 각종 그래픽노블도 있다. 서 씨는 번역본을 읽다가 미심쩍은 문장을 만나면 번역본의 원서를 사서 본다고 했다. 그에게 홍 향기 님의 향기가 나네? 매일 토요일 오전이면 향기 님은 원서를 같이 읽자고 옆에서 독촉한다.
* 폴 오스터, 황보석 옮김, 《달의 궁전》 (열린책들, 2000년)
<달의 궁전>(달궁)은 폴 오스터의 소설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10여년 전 <달궁>을 결성한 회원들이 폴 오스터의 소설을 아주 좋아한다. 그분들의 영향을 받아 나도 폴 오스터의 소설 몇 권을 샀긴 했는데‥… 읽은 책이 한 권도 없다. 베란다에 폴 오스터의 책으로 쌓인 ‘책 탑’을 발견했다. 서 씨, 너! <달궁> 도도독, 아니 동료가 돼라!
<달궁>의 두 기둥 레삭매냐 님과 헤르메스 님은 국내외 작가들의 소설을 많이 읽은 분들이다. 레샥매냐님은 알라딘 마을에 활발히 활동하는 사실은 알라딘 마을 주민이라면 잘 아실 것이다. 헤르메스 님은 <일글책>의 향기 님처럼 미스터리를 좋아하며 추리, 판타지, SF 등의 장르문학에도 박식하다. 헤르메스 님도 예전에 알라딘 마을에서 훌륭한 서평을 많이 남기셨다. 리뷰 대회 이벤트에 많이 열던 시절에 거의 1등에 입상할 정도로 글을 잘 쓰신 분이다. 헤르메스 님 때문에 나는 항상 리뷰 대회 2등에 머물렀다. 헤르메스 님이라면 <환상 문학>에 꼭 한 번 오셔야 할 텐데.
서 씨는 ‘요섹남’이다. 서 씨는 음식을 만들면서 감상할 음악을 골랐다. 그가 선곡한 곡은 빌 에반스의 재즈 연주곡이었다. <담담책방> 책방지기는 항상 책방을 열 때 빌 에반스의 연주곡을 자주 들려줬다. 서 씨가 만든 음식은 등심 고기가 가득한 덮밥이었다. 싱겁지도 않고, 너무 강하지 않는 덮밥 소스가 내 혀를 기분 좋게 해줬다.
서 씨는 나와 반대로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술을 아예 입에 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나처럼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나를 위해서 맥주와 막걸리를 준비했다. 그리고 칵테일까지 만들어줬다. 서 씨가 만든 칵테일은 시중에 파는 하이볼 맛과 비슷했다. 하이볼은 칵테일의 일종이다. 술 안 좋아하는 사람이 나보다 칵테일을 잘 만들다니. 서 씨의 반전 매력을 발견했다.
서 씨의 서재에 내가 다 아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향수병이 일어났다. 가수 이센스(E SENS)를 좋아하는 서 씨의 서재 속에 나의 독서 편력에 큰 영향을 준 애서가들의 에센스(essence)가 있다. 서 씨의 서재는 ‘북 스테이’하기에 아주 좋다.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
[주1] 서한용 씨는 2022년 6월 4일 강남에서 처음 만났다.
<오랜만에 쓴 서울 일기> 2022년 6월 6일
https://blog.aladin.co.kr/haesung/13656740
[주2] <환상 문학> 첫 방문 후기
<대구 최초의 장르문학 서점> 2023년 4월 3일
https://blog.aladin.co.kr/haesung/14478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