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역학을 믿으려면 분자를 믿어야 한다.

 

(윌리엄 크로퍼, 위대한 물리학자 3에서, 105)





내게 천사를 보여 달라. 그러면 천사를 그릴 것이다.” 이 말을 남긴 프랑스의 화가 쿠르베(Courbet)는 대상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회화의 중요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또는 성서에 묘사된 성인과 천사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눈에 비친 현실을 그렸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는 원자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명했다. 원자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다. 마흐는 어떤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게 해주는 관찰과 실험을 중요하게 여겼다. 원자론자들은 마흐의 견해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 원자의 존재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세등등한 마흐는 원자론자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으리라. “내게 원자를 보여 달라. 그러면 원자론을 믿을 것이다.”





















* 데이비드 린들리, 이덕환 옮김 볼츠만의 원자: 물리학에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논쟁(승산, 2003)


* [절판] 윌리엄 크로퍼 위대한 물리학자 3: 패러데이의 전자기학과 볼츠만의 통계 역학》 (사이언스북스, 2007)



 


마흐를 필두로 한 실증주의자들의 공세에 원자론자들은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마흐와 같은 출신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은 원자론을 부정하는 학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과의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수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통계와 확률을 이용해서 운동하는 원자의 이동 방향과 상태를 알아내려고 했다. 볼츠만의 견해에 따르면 기체는 다수의 분자로 이루어졌다. 그는 통계적인 방식을 이용해 기체 속 분자의 성질을 설명하는 기체운동론을 주장했다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맥스웰(Maxwell)을 포함한 선대의 과학자들이 기체운동론을 논의한 적이 있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볼츠만이었다기체운동론은 통계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의 등장을 알리는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물론 통계의 중요성을 주목한 볼츠만의 획기적인 발상 역시 원자와 분자의 세계를 믿지 못한 동료 과학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마흐도 그렇고, 당시 과학자들은 관찰과 실험을 거쳐 원자론이 명백한 이론인지 아닌지 검증하고 싶어 했다.


볼츠만은 실증주의자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원자론과 기체운동론과 관련된 연구에 매진했다. 하지만 진전이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그를 괴롭히던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 우울증을 견디지 못한 볼츠만은 1906년에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다가 호텔 방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볼츠만이 자살하기 일 년 전인 1905년에 스위스 특허청 직원이 총 다섯 편의 논문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 논문 중에 물 위에 떠 있는 꽃가루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현상에서 나나타는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을 다룬 것이 있었다. 브라운 운동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스위스 특허청 직원은 분자의 움직임을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문은 볼츠만의 원자론에 힘을 실어주는 중요한 문헌이었다. 안타깝게도 볼츠만은 이 논문을 알지 못했다. 


재미있는 점은 스위스 특허청 직원이 좋아한 철학자가 마흐였다. 그 직원의 이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다. 아인슈타인은 191512월에 논리실증주의의 발전을 주도한 독일의 철학자 모리츠 슐릭(Moritz Schlick)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공부한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마흐의 인식론이 특수상대성이론의 탄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 김현철 강력의 탄생: 하늘에서 찾은 입자로 원자핵의 비밀을 풀다(계단, 2021)




원자핵 속에 있는 입자들을 결합시키는 힘인 강력이 발견되기까지 나온 과학자들의 업적을 보여준 강력의 탄생에 볼츠만이 잠깐 나온다.



 볼츠만은 시대를 한참이나 앞선 과학자였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않던 원자론을 주장했다. 그 이듬해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던 에른스트 마흐가 빈 대학에 왔다. 볼츠만의 원자론을 따르는 사람들과 마흐를 추종하는 실증주의자들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23)



나는 강력의 탄생서평에서 볼츠만을 시대를 앞선 과학자로 평가한 저자의 견해를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자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한다. 볼츠만은 시대를 앞선 과학자였다. 물론 볼츠만이 원자론을 주장했다고 해서 시대를 앞선 과학자로 평가하는 건 아니다. 볼츠만이 위대한 과학자인 이유는 통계와 확률을 동원해 미시적인 원자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미시 세계에 접근하기 위해 수학을 이용한 볼츠만의 발상은 당대 물리학자들이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희한한 것이었다(《볼츠만의 원자》 80쪽).


볼츠만의 원자위대한 물리학자 3: 패러데이의 전자기학과 볼츠만의 통계 역학은 볼츠만의 삶과 업적, 그리고 통계 역학을 소개한 책이다. 그런데 볼츠만의 원자에 오자가 있다. 정오표를 남긴다.



* 27쪽: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케인스


[] 케임브리지 대학생 시절에 케인스(Keynes)는 철학 수업을 청강한 적이 있다. 케인스 전기(두 권으로 된 번역본이 있는데, 이 책의 부제는 경제학자 · 철학자 · 정치가)를 집필한 경제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철학자로서의 케인스의 면모를 주목했다. 케인스는 마르크스(Marx)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한 1883년에 태어났고, 1902년에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그는 20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 53쪽: 부루크너 브루크너(Anton Bruckner)


* 100쪽: 호이겐스 하위헌스(Huygens)


* 114헨리 캐빈디쉬 헨리 캐번디쉬(Henry Cavendish)


* 134내장암 대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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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21-08-0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빅뱅 이후 38만 년, 자유전자와 원자핵이 만나 원자들이 형성되는 장면을 읽고 있는데 볼츠만의 이야기를 읽으니 마음이 편치가 않네요. 영면하셨기를. 언제나처럼 리뷰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21-08-03 21:36   좋아요 1 | URL
볼츠만이 우울증으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오래 살아서 더 많은 업적을 남겼을 거고, 지금쯤 누구나 기억하는 과학자로 알려졌을 겁니다.

새파랑 2021-09-10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9월 당선 축하드립니다~!!

mini74 2021-09-1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09-1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서니데이 2021-09-10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21-09-10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이하라 2021-09-10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초딩 2021-09-1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페이퍼 당선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