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 편집자는 후회한다 외 38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33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러셀 로버츠(Russell Roberts)가 쓴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애덤 스미스(Adam Smith)《도덕 감정론》을 알기 쉽게 풀어서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도덕 감정론》을 통해서 말한 행복, 이타심, 정의 등의 개념을 설명하고, 이를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진부한 말이지만, 로버츠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좋은 작가가 쓴 책들을 읽으라고 권한다. 당연하게도 그는 애덤 스미스의 책을 추천한다.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가? 그럼 자세를 낮춰 아이와 대화해보자. 이메일을 확인하지 말고 배우자와 기분 좋게 데이트를 즐기자. 애덤 스미스 혹은 작가 제인 오스틴이나 P. G. 우드하우스의 책을 더 많이 읽자.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277쪽)

 

 

P. G. 우드하우스는 누구인가?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우리말로 옮긴 역자는 우드하우스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다. 숲에 있는 집, 아니면 재목을 보관하는 창고(Woodhouse)? 독특한 성(姓)이다. 여행지 숙박 시설 이름을 연상케 한다. P. G. 우드하우스는 아마 대부분의 국내 독자들에게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전체 이름은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Pelham Grenville Wodehouse)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난 작가다. 그가 주로 쓴 글은 통속적인 코미디 소설이다. 그가 쓴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지브스와 우스터(Jeeves and Wooster)’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TV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영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은 우드하우스의 대표작이다.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의 성공에 힘입어 우드하우스는 ‘드론스 클럽(Drones Club)’ 시리즈, ‘유크리지(Ukridge)’ 시리즈 등을 연이어 발표하여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그는 다작 작가로도 유명한데, 세상을 떠날 때까지 2백여 편에 달하는 단편소설과 수십 편의 희곡 작품을 썼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 선집이다.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를 포함한 총 3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나온 ‘현대문학 세계 단편 단편선’ 시리즈 중에 쪽수가 가장 많은 책이다. 놀라지 마시라. 1천 쪽이 넘는 책이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분량이 가장 많은 단편 선집은 총 964쪽의 《그레이엄 그린》이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를 직접 보면 정말 놀랄 거다. 말 그대로 ‘벽돌 책’이다. 이 책을 한 손에 들면 무게감이 조금 느껴진다.

 

『지브스와 우스터』는 덜렁이 귀족 버티 우스터(Bertie Wooster)와 그의 집사 지브스를 주인공으로 한 코미디 소설이다.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이 작품에 묘사된 우스터의 모습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호구(虎口)이다. 주변 사람들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해서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우스터는 일을 어설프게 처리해서 궁지에 몰릴 때마다 집사 지브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나는 위기 때마다 전적으로 그에게 의존하고, 그는 한 번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다. 게다가 내 친구들이 어느 모로 보나 궁지에 빠졌을 때도 언제나 지브스가 나서 줄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지브스와 하드보일드 공작』, 69쪽)

 

 

『지브스와 우스터』의 묘미는 귀족 주인과 집사로 대비되는 두 인물의 상하 관계를 재미있게 그리고 있는 점이다. 지브스는 주인을 돕는 조언자 역할로 나오지만, 사실상 이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이다. 우스터는 서브 주인공(deuteragonist)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보면, 복잡하게 꼬여버린 사건에 휘말린 우스터와 그 주변 인물들은 지브스가 알려준 대로 행동한다.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지브스는 조언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조종자이다. 이야기의 화자는 우스터지만, 그는 지브스가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 이러한 역전된 관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은 우스꽝스러운 귀족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면서 귀족 사회를 풍자하는 효과를 더욱 극대화한다.

 

우드하우스의 작품에 나오는 귀족들은 온실 속 화초처럼 순진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종종 위선적인 태도와 속물근성을 드러낼 때도 있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어설퍼 보인다. 그래서 우드하우스의 작품에서 묘사된 인물들은 현실과 거리가 먼 인물, 즉 ‘소설에 나올 법한 가공인물’이다. 개그와 코미디가 유발하는 웃음이 일회성이다. 코미디는 한번 물리고 나면 다시 통하지 않는다. 코미디 소설도 마찬가지다. 한때 큰 사랑을 받았던 재미난 이야기나 우스꽝스러운 작중 인물이라 할지라도 유통기한이 지나고 나면 독자들의 반응은 냉랭해질 수밖에 없다. 《펠럼 그렌빌 우드하우스》에 실린 작품들은 1910~30년대에 나온 이야기이다. 지금은 이미 우드하우스가 보여준 웃음의 수명이 다 한 지 오래다. 게다가 우리나라 독자들은 너무나도 오래된 ‘영국식 유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드하우스의 소설을 처음 접해보거나 영국식 유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디에서 웃어야 할지 분간이 잘 가지 않을 것이다. 예전부터 우드하우스의 『지브스와 우스터』에 관심이 있었던 독자인 나로서는 역자와 출판사(현대문학)가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해줘서 고맙긴 하지만("고마워요, 현대문학 출판사"[주]), 역자가 작품의 코믹한 분위기를 살리지 못해서 아쉽다. 내가 보기엔 문학 작품의 구절을 인용해서 재미있게 표현했거나 언어유희로 추정되는 몇 개의 문장이 보이던데, 그걸 주석을 달아 설명해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 ‘벽돌 책’을 읽는 건 독자 당신의 몫이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39편의 소설 중에 재미있다고 느낄 법한 이야기는 많지 않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지루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절반쯤 읽다가 재미없어서 덮었다. 혹시 당신이 이 소설에 호기심을 느껴서 읽게 된다면 이 소설의 유머 코드가 당신의 취향에 맞길 바란다.

 

 

 

[주] ‘지브스와 우스터’ 시리즈 중 가장 유명한 단편집이 1934년에 발표한 <고마워, 지브스(Thank You, Jeeves)>이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짜라투스트라 2019-01-18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1000페이지... 그러나 이 글을 읽으니 읽고 싶다는 전투본능이 갑자기 생기네요 ㅋㅋㅋ

cyrus 2019-01-19 06:54   좋아요 0 | URL
저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라서 지루할 수도 있다고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1-1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벽돌이다 근데 벽돌을 사지 않고 빌려서 읽는 시루스님이 더 대단해 보입니다

cyrus 2019-01-19 06:58   좋아요 0 | URL
가격이 좀 비싼 ‘벽돌 책’을 사는 독자가 더 대단해요. 저는 새로 나온 ‘벽돌 책’을 사본 일이 거의 없어요. 알라딘 서점이나 헌책방에 파는 ‘벽돌 책’은 정가보다 조금 싸기 때문에 저는 주로 그런 책들을 사는 편입니다. ^^

목나무 2019-01-1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엄 그린도 읽다 중도포기 상태인데 ㅡ.ㅡ
벽돌책이라하니 헉하면서도 땡기는 이 마음은 뭘까나요. ㅋㅋ

cyrus 2019-01-19 07:04   좋아요 0 | URL
책이 상당히 두꺼워서 읽기가 조금 불편했어요. ^^;;

stella.K 2019-01-1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보니까 동서문화사 책들 생각난다.
저런 책이 두 권인 경우가 많잖아.
그래도 이건 단편모음이지 동서문화사 책들은 장편이야.
<장 크리스토프 1> 읽다가 일단 덮어둔 상태다.
그래도 장편이나 저런 두꺼운 책에 대한 로망이 있어.
난 가끔 펄벅의 <대지>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그것도 장왕록 박사가 번역한 거. 웃기지?
결국 덮어버릴 거면서.ㅋ

cyrus 2019-01-19 07:06   좋아요 0 | URL
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공통의 심리가 있는 것 같아요. 두꺼운 책을 한 번 보고 싶은 호기심과 도전의식... ㅎㅎㅎㅎ

syo 2019-01-18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겔> 생각이 나는군요... 1000쪽....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던데요.

cyrus 2019-01-19 07:1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엄청난 분량의 책을 쓰는 것도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줘야 해요. 책의 중간까지 쓰다가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서 마무리 못 짓고 중단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특히 작가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책을 완성되지 못한 경우는 정말 불행한 일이죠... ^^;;

보슬비 2019-01-18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에는 벽돌책만 보면 소장하고 싶었는데, 요즘은 소장보다는 읽기 편한쪽으로 성향이 바뀌어서 다행인것 같아요. 이제 넘 두꺼우면 손목 아파요.....하지만 현대문학에서 출간되는 단편집들은 소장하고 싶긴해요.^^

cyrus 2019-01-19 07:11   좋아요 1 | URL
이번에 나온 <우드하우스>는 무게감이 느껴져서 들고 다니면서 읽을 만한 책은 아니었어요. ^^;;

2019-01-19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19 07:12   좋아요 0 | URL
책 읽다가 잠이 오면 바로 베개로 써도 됩니다.. ㅎㅎㅎㅎ

Falstaff 2019-03-14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통기간이 지난 유머, 그것도 영국식 유머라는 말씀, 백퍼 공감입니다.
저 역시 이 이유 때문에 구입을 안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이제 생각에 말뚝 박았습니다. ^^;

cyrus 2019-03-15 16:36   좋아요 0 | URL
재미있다고 말할 수 없는 소설이라서 당분간은 이 책을 다시 읽을 기회는 없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