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기도 전부터 걱정
두근두근두근두근
첫장을 넘기면서부터 이매지님 말씀대로 에미의 매력이 뚝뚝 떨어진다. 맙소사. 어떻게 전편처럼 이렇게 좋을 수 있는걸까? 어떻게 그 모든 설레임과 초조함과 실망과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이어질 수 있을까!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자, 이런 구절들을 보자구!!
시스템 관리자님,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지금 제 처지가 말이 아니에요. 귀사 '이용자'인 레오 라이케씨의 현재 메일 주소가 꼭 필요해요. 정말로요! 라이케씨에게 급히 물어볼 게 세 가지 있거든요. 1)아직 살아 있어요? 2) 아직 보스톤에 있어요? 3) 새로운 이메일 친구가 생겼나요?(중략)
그 사람이 밤마다 보스턴의 싸구려 벨벳 바에 죽치고 있고, 바비인형 뷰티 살롱에나 어울릴 법한 천박한 보스턴 금발 미녀의 실리콘 젖무덤 사이에서 날마다 아침을 맞았다 해도 괜찮아요. 결혼을 세 번 이나 하고, 세 번다 삼란성 세쌍둥이를 낳았다 해도 괜찮아요. 그러나 단 하나만은 용납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른 여자랑 메일로 사랑에 빠져서는 안 돼요. 이것만은 용납할 수 없어요! 그건 단 한 번으로 남아야 해요. 제가 그런대로 탈 없이 밤을 넘기려면 그 사람에게 새 메일 친구가 생기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해요. 제가 있는 곳에 북풍이 끈질기게 불거든요.(pp.10-11)
아, 정말 자지러지게 좋아서 뒤로 넘어갈 뻔 했다. 이런 구절이, 보이는가, 겨우 10페이지에서 나온다니까!! 조금 더 해볼까? 조금 더 흥분해보고 조금 더 미쳐볼까?
이틀 뒤
제목: 이것만 말해줘요......
........당신이 내 메일을
a) 읽지 않고 삭제한다.
b) 읽고 삭제한다.
c) 읽고 보관한다.
d) 아예 받지 못한다.
5시간 뒤
Aw:
c
세상에! 분홍색 박스에 넣다니! 나는 정말 바람직한(!!) 여자가 아닌가!
이정도 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정도 만으로도 이 책이 어떤지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을까.
물론 어떤이들에게는 '전작보다 못한'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결말, 그놈의 결말 때문에! 나로 말하자면, 내가 읽은 후의 결말에 대해 느낀점을 말해보자면,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의 결말이 나는 퍽 마음에 들었다. 이보다 더 마음에 드는 결말은 없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책장을 덮고 나니 마음에 바람이 불었고 먹먹했고 그 여운이 꽤 길었다. 그런 결말 때문에 나는 새벽 세시의 뒷편이 나오는 것이 두려웠다. 실망을 줄까봐, 이렇게 근사한 전작을 망칠까봐.
이 책의 결말은 다 읽고 책장을 덮는 순간 처음 느낀건 '이런 결말도 괜찮네' 정도였다. 그러나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이 결말 좋은데!'로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외출을 하고 친구를 만나 영화를 보고 술을 한잔 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나자 '맙소사, 이 결말 너무 좋잖아!'로 생각이 바뀌어 있었다. 이 책은 여운을 좀처럼 지울 수 없는 책이 아니라 여운이 자꾸 생겨나는 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잠깐 딴 소리(?)를 하자면, 영화 『두번째 사랑』이 '여운이 생겨나는' 영화였는데, 그 영화의 자막이 올라가는 것까지 다 보고 극장을 나왔을 때는 '그다지 별 느낌 없는, 그저 하정우는 멋진' 생각만 들었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나니 그 영화가 계속 생각나는거다. 어엇, 이건 뭐지, 대체 이 영화가 왜 계속 생각이 나지? 그리고 왜 이 영화는 왜 자꾸 좋아지는거지? 하고 말이다. 그러니까 내말은, 여운이 뒤늦게 생겨버리는 그런 것들이 있다, 뭐 그런 말이다.
자, 다시 일곱번째 파도.
굳이, 누군가 굳이 둘중에 어떤 결말이 더 맘에 드는지 대답해 보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새벽 세시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일곱번째 파도』의 결말에 전혀 불만이 없다. 아니, 퍽 좋다. 오늘까지 삼일째, 나는 내내 이 책을 붙들고 여기 펼쳤다가 저기 펼쳤다가 한다. 책장에 넣어두기가 꽤 아쉬운 까닭에.
이 책을 이미 읽은 친구 한명은 내게 '이 작가는 천재인가봐요!'라고 했고 또다른 친구는 '이런 결말도 괜찮네요' 했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 작가는 천재고, 이 결말도 좋다!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사항: 반드시, 반드시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먼저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