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삶이 될 때 - 아무도 모르는 병에 걸린 스물다섯 젊은 의사의 생존 실화
데이비드 파젠바움 지음, 박종성 옮김 / 더난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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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팀의 쿼터백을 하고있던 '데이비드 파젠바움'은 암으로 엄마를 잃고 암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한다.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의대공부에 매진하는데, 2년의 석사과정도 8개월에 끝낼만큼 스스로가 집중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어릴적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진단을 받았는데 이는 어떤 일에서 다른 일로 옮기는 일에는 방해가 됐지만, 하나의 일에 집중하는 것은 그 누구보다 잘해낼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신체적으로 혹은 선천적으로 풋볼을 잘하게끔 태어나진 않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집중력과 노력으로 풋볼팀의 쿼터백을 할 수 있었던 것. 그 집중력이 이제는 의대 공부로 옮아간 것이었다.


의학공부를 하며 이제는 취미로만 풋볼을 하던 그에게 '캐슬만병'이라는 희귀병이 찾아온다. 세계적으로 발병한 환자가 2만명 미만인 '고아병'으로써 이 병에 대해 충분한 치료방법이 나오지 않았던 터라, 그는 캐슬만병의 권위자를 찾아가 치료를 받지만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야만 했다. 온 몸이 부어오르고 의식도 희미해지면서 곧 죽겠구나, 하는 시점에서 그는 간신히 살아나지만 그러나 이 병은 재발하고 그렇게 다섯차례에 걸쳐 그를 죽음앞으로 데리고 간다.


데이비드는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의 마지막을 충격적으로 그리고 슬프게 기억하고 있다. 병들어 약해졌던 모습. 데이비드는 자신이 병들어 약해지고 신체의 곳곳이 망가져있는 모습을 사랑하는 '케이틀린'에게 보여주기를 거부한다. 병실에 찾아온 그녀를 애써 만나지 않는다. 그는 쿼터백이었던 건강한 자신의 모습을 그녀가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곧 죽어갈 약한 모습으로 그녀가 기억하기를 원치 않았던 거다. 그렇게 두번째 발병에도 그녀를 만나기를 거부하면서 그는 고통스러워 한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삶을 그녀와 함께 하고 싶다, 그런데 이런 지금의 모습을 보일 수 없다.



내가 처음 이 책, 《희망이 삶이 될 때》를 읽으려고 한 것, 그리고 읽으면서 기대했던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 이별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는 한 사람의 '희망'이었다.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고 내 삶이 끝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인간에게 누구나 죽음은 찾아오는 법. 그 때 내가 과연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박경리'의 토지에서 '용이 아내'가 죽음을 앞두고 발악하던 모습은, 어쩌면 나의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고 나는 늘 생각하고 있다. 거부하고 싶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나의 죽음. 그렇게 나는 이 책이 나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그리고 죽음으로써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삶에 대한 희망적인 태도 혹은 위로를 줄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데이비드가 약혼녀 케이틀린을 병상에서 만나기를 거부하고 그러나 그녀와 함께 살기를 꿈꾸는 것들이 아마도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었던 것 같다. 굳이 표현하자면, 나는 '고작 그런것들'만 이 책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모습에게 내 병든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닐까, 나는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같은 당연한 욕망을 직시하고 공감하게 했지만, 데이비드 파젠바움은 이 책에서 '너 고작 그것만 생각했지? 다른 걸 보여줄게' 라고 하고 있다.



처음 엄마를 잃은 아직 어린 데이비드 파젠바움은, 이런 슬픔을 다른 사람들도 겪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부모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AMF(Ailing Mothers & Fathers 아픈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공동체를 만든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또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자원봉사단체. 이 단체는 점점 커져서 각 대학마다 지점도 생겨나고 뉴스에도 소개가 되며 회원수가 많아진다.



자신의 슬픔을 그저 자신의 슬픔을 돌보는데에만 쓰지 않고 '그렇다면 이렇게 슬픈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텐데' 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그들을 위해 뭔가 해보자' 라고 행동으로 옮기다니. 이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사람은 분명 많겠지만 어떻게 그들을 위해 뭔가 하자는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가 있을까. 이건 정말 특별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같은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생각조차 못했을텐데.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이 처음 부분에서 약간의 거부반응이 들었다. 데이비드가 너무 '특별'하고 '대단'하게 보여서. 그러니까 이 책을 써내는 작가가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좀 더 '잘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나 나는 점점 더 데이비드의 삶의 방향, 방식, 그가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매혹됐다. 얼마전에 기사에서 본 '실패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얼핏 기억나는 것만 떠올려보자면, '매사에 부정적이고', '호기심이 없고', '늘 비슷한 자들과 어울린다'는 게 있었다. 데이비드는 이 모든 것에서 정확히 반대되는 지점에 놓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앓고 있는 '캐슬만병'에 지지 않고자 한다. 한 번으로 완치가 된 게 아니라 재발하고 다시 또 재발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 병에 대해 잘 알고자 한다. 알려져있는 모든 논문들을 읽고 알려져있는 모든 치료방법을 검토한 후, 치료방법 자체, 치료약 자체가 너무 적다고 생각한 그는, 이에 대해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그건 자기 자신을 살리는 방법임과 동시에 이 병을 앓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방법이었다. 그는 그렇게 이 병에 대한 네트워크, CDCN(캐슬만병네트워크)를 만든다. 그는 확실히 이 병에 대해 알고 이 병의 치료법을 찾고 싶었다. 그간 캐슬만병에 대해 관심이 있고 연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을 모조리 찾아 이메일을 뿌린다. 그들과 함께 세미나를 열고 제약회사를 찾아가 자신들을 지원해주기를 요구한다. 그는 계속해서 연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또 캐슬만병이 재발했을 때, 그는 알려진 치료약들로 자기가 낫지 않았던 바, 자기가 그간 논문을 보고 혈액샘플을 보고 생각했던 다른 약을 써보고자 한다. 처음엔 역시 재발했으나 그 다음에 써본 약으로 그는 다섯번째까지 재발한 뒤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방법이 모든 캐슬만병의 환자에게 다 통하는 건 아니었다. 캐슬만병을 앓던 다른 환자들, 그러나 알려진 방법만으로 치료가 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투여하는 약을 투여했을 때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었다. 그러니 또다른 방법이 나와야했다. 그가 하는 연구라는 것도 없던 약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나와있는 약중에 그리고 다른 병을 치료하는 약중에서 여기에도 어떤 효과로 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들을 생각해내는 거다. 그가 기존에 캐슬만병에 대해 처방되었던 약이 아닌 새로운 다른 약을 자신에게 직접 투약해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 약 자체가 세상에 없던 약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캐슬만병에 대해 다른 약이 다른 식으로 또 치료의 가능성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병에 걸리고 낫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생각하고 행하라'는 삶의 모토가 생겼음을 밝힌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아팠을 때 더 강하게 확신한 것일뿐, 그의 기본 삶의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다시 실패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 언급하자면 매사에 부정적이라 '안되는 핑계'만 찾는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얘기. 그러나 이걸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아무것도 가진 자원이 없는 사람이 생각만 한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전에 생각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게끔 몸의 건강을 신경써서 돌봐야 하고, 생각해서 꺼낼 수 있는 방안이 나오려면 지식도 충분해야 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들었던 사람이 더 많은 것들을 머리에 넣을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생각하는 건, 그런 지식을 전혀 가지지 못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그 양과 질에서도 확실히 다를 것이다.



데이비드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었고 그에 맞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그걸 알고 있다. 그동안 자신의 삶이 여기에서 활용되고자 그런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것을. 물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와 환경이 갖추어져있다고 해서 모두가 자신의 병으로부터 나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의지와 환경 그리고 운까지. 모든 것들이 다 맞물려서 그는 지금에 이를 수 있었을 것이다. 노력하면 돼, 노력하면 너도 잘 살 수 있어, 라는 건 너무나 무책임한 말이지만, 그러나 굳건한 의지와 또 차곡차곡 지식과 건강을 쌓을 수 있었던 성실함을 갖추고 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확실히 더 높다.




데이비드의 그런 삶의 태도를 보는 것이 좋았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그가 여전히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남들보다 특출나게 더 가진 것들이 있다고 생각되어지고 또 운도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고, 나는 그런 삶의 태도가 무척 좋다. 사람은 보고싶은 대로만 본다고 하는데, 어쩌면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데이비드 파젠바움의 그런 태도를 보고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같은 처지에 놓인다고 하고 또 생각했으면 행한다고 했을 때, 데이비드 처럼 이렇게나 넓고 깊게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의대학생이었고, 여러번의 재발을 겪으며 의대 조교수까지 될만큼 의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으니,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나와는 또 접근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고. 그러나 그의 그런 삶의 태도만큼은, 기꺼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데이비드는 처음 자신의 병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도 싫었고 또 케이틀린에게 병든 모습을 보이고 싶어하지도 않았지만, 결국 그녀에게 청혼하고 결혼한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낸 약으로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의 국내 제목에서는 '희망'을 강조했고 저자도 희망에 대해 얘기하지만, 나는 그보다는 문제 해결에의 의지가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케이틀린을 거부한 것은 당시의 내가 상상해낼수 있는 최선의 우선순위 배정 방식에 따른 것이었노라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녀가 나를 생명력 넘치는 건강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일이었다고.
나는 그 상상력이 매우 빈곤한 것이었음을 이제 알고 있다. 우선순위를 배정할 때 최선은 나 자신이 얼마나 약해져 있는지를 그대로 그녀 앞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 P165

중병의 발병과 회복은 내게 ‘정상적‘인 삶이 대단히 비싼 것이라는 놀라운 진실을 가르쳐줬다. 어떻게든 정상에 가까운 삶을 재구축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내가 그동안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에 실제로 얼마나 큰 비용이 드는지 절감했다. 이를테면 병원을 오가지 않는 삶 같은 것. - P172

돌아보면 그때까지 내 삶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이 내게 이 병과 맞설 수 있는 준비를 시킨 것 같다. 아직 전문의가 아닌 내겐 질병 치료 경험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도구가 있었다. 강박에 가까운 노동윤리, 근면성이 있었다. AMF 를 설립해봤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뭔가를 구축할 때 필요한 계획성과 완성해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P212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내 삶은 더 좋은 것이 됐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됐다. 그녀 또한 나와 같은 생각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4차 재발을 겪는 동안 병상을 지키는 케이틀린을 보면서 더이상은 그녀와 함게하는 미래를 꿈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어떤 결단을 내릴 수도 없었다. 나는 너무나 절실하게 케이틀린과 결혼하고 싶었다. 그녀 또한 그걸 원한다는 걸 알고 잇었다. 그렇지만 그건 그녀에게 너무나 큰 부담을 지우는 일이 아닌가? 몇 년전에 처음 사귀기 시작할 때의 남자, 별 걱정거리 없이 자신의 미래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듯 보이는 건강한 쿼터백과 지금 삶을 함께하려고 하는 남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이다. 매일매일 죽음과 싸우는 중병 환자가 바로 나였다. 게다가 성공 보장이 없는 일을 추진하고 있는 과학자이기도 했다. 청혼할 각오가 되어있는 것만큼이나 마음 한쪽에선 그녀와 겨별하고 그녀를 내 곁에서 떼어놓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 - P234

그렇게 하면 케이틀린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보다 안정되고 예측 가능하고 편한 삶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었다. - P235

그런데 계시라는 것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계시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다. 갑자기 IQ가 엄청나게 좋아지면서 찾아오는 마법의 순간이 아니다. 계시는 우리가 이미 준비하고 있는 것들,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들로부터 온다. 심지어는 그런 노력들이 있은 지 긴 시간이 흐른 후에 오기도 한다. 그건 마치 풋볼이 강화시켰던 내 인내력과 근육으로 인해 발병 초기 내가 생명을 지킬 수 있었던 것과 같다(그것들이 그런 식으로 사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계시는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나타나긴 하지만 우리가 이미 행한 노력들의 결과로서 또는 그 결과물을 들고 나타나는 것이다.- P280

케이틀린은 내 힘과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녀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서 내게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내가 실험실에 나가지 않을 때 우리는 아파트에서 같이 일할 수 있었다.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몇 시간마다 한 번씩 쉬면서 그녀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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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1-1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락방님 드디어 읽으셨군요! 저도 백퍼 공감합니다. 삶의 자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지지 않는 투지, 이런게 도식적인 게 아니라 정말 살아 있는 느낌. 그리고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의 해피엔딩이 저는 너무 좋았어요.

다락방 2020-01-17 13:59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삶에 자세에 대해 감탄했지만 독서란 것에도 다시 한번 감탄했어요. 책 읽는 건 이렇게나 좋구나, 지식적인 면으로도 그렇지만 감동면에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를 볼 수 있는 수단으로 책만큼 좋은 게 어디있단 말인가요. 저자의 삶에 태도는 제가 갖고하 나는 것이라 아주 좋은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훗.

2020-01-17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0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0-01-18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원래 ‘불굴의 의지‘ 이런 거에 많이 약하거든요. 작심삼일이 안 되는 사람이라서요 ㅠㅠ 근데 소개해 주신 이 책의 이야기는 정말 소설같은데 소설보다 더한 감동을 주네요. 인용해 주신 구절 읽어보니 구구절절 너무 안타깝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하는데,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막 전해지고 그러더라구요.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인생이라면 진정한 의미의 성공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하게 되구요.
잘 읽고 갑니다, 다락방님! 이 페이퍼는 아래에 ‘한나 아렌트‘ 페이퍼 다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페이퍼예요^^

다락방 2020-01-20 10:07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저도 처음엔 저자가 너무 특별한 사람인 것 같아서 거부반응 들었다가 점점 저자의 말과 행동에 함께 힘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이런식의 삶에 대한 자세, 삶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는 제가 정말이지 좋아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게 살고 싶어요. 물론 저자는 여러가지로 많은 것들이 갖춰진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 삶에 대한 태도 만큼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게 아니었나 해요.

단발머리님, 우리 문제 해결에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갑시다. 잘 지내보자구요!!

2020-01-20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20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리모 같은 소리
레나트 클라인 지음, 이민경 옮김 / 봄알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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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책 읽기를 거듭할수록 나는 급진주의 페미니즘에 내가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고 느낀다. 어쨌든 가야할 방향은 그곳이구나, 궁극적으로는 거기에 닿아야 여성의 권리를 위한 것이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한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도덕 코르셋'을 벗어야 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성애부부의 의뢰인 여성, 난자 공여자, 생모에 이르기까지 세 여성 모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침해와 해를 입히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하는 대리모를 없애자는 '레나트 클라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있다. 그러나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많은 여성들이 '불쌍한 게이남성들에게 안된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대리모 반대 보다는 규제 쪽의 손을 들어준다.



나는 2014년 대리모 우호 회담의 티타임에서 대리모로 인해 여성과 아동에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동의했지만 착석 종이 울릴 때쯤 곧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엾은 게이 남성들이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해치는 데 대한 긴장감과 겁, 특히 이 경우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 두려움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겁은 많은 사회 정의 쟁점들과 결부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용감하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p.116)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 사람에게 그것이 부적절한 것이라면 안된다고 말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이 게이에게 향한 것일 경우, '게이 혐오'로 비춰질까 우려되어 차마 안된다는 말을 하지도 못한다. 레나트 클라인은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겁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대리모가 해외나 국내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이것이 얼마나 잘 혹은 잘못 진행되는, 확실한 것은 대리모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를 어른의 재산으로 상정해서 사고판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한다는 것이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 프레이저, 대리모 연구 조사 보고서, 2016, p.3)



대리모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시종일관 강한 어조로 얘기해주는 것이 나는 무척 좋았다. 자연스레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 생각도 났다(이 책에서도 몇 번 드워킨을 언급한다). 여성의 몸을, 정신을, 다시말해 여성의 인권 자체를 침해하려는 시도에 대해 안된다는 말을 할 때는 그것이 착할 필요도 없고 부드러울 필요도 없다. 나는 안드레아 드워킨과 캐서린 맥키넌이 강한 어조로 포르노를 반대했듯, 레나트 클라인이 강한 어조로 대리모를 반대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결국 여성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은 이런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강한 목소리가 아닌가 싶다.




대리모라는 부적절한 이름으로 칭해지는 이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 아홉달 동안 아이를 품고 낳는다. 상업적 대리모에서 생모는 의뢰인 부부보다 항상 더 낮은 사호경제적 계층에 위치하고 또한 대게 더 ‘낮은‘ 인종적 위계상에 위치한다. 인종과 계급 문제가 한데 얽힌 것이다. 우리는 (흰 피부의) 최고경영자가 (어두운 피부를 가진)청소부의 아이를 낳아주는 경우를 아직 보지 못했다.- P20

‘선택‘은 내가 (그럴 힘만 있다면) 기꺼이 금지하고 싶은 단어다. 나는 선택이란 말은 두 가지 좋은 것 가운데서만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예로는 ˝초콜릿 케이크와 레몬 타르트중에 뭐 먹을래?˝가 있다. 이렇게 쓸 때에만 양 선택지의 결과가 모두 끔찍한 상황에서 선택이라는 단어를 즉시 제거할 수 있다. 코카인에 심하게 중독된 상태에서 돈이 절실하고 집이 없으며 지지를 구할 만한 곳도 막막한 가운데 성매매를 계속하기로 ‘선택하는‘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는 가장 어렵고 불운한 결정이다. 마찬가지로, 남편을 포함한 당신의 가족이 불임이라는 이유로 당신을 비난하고 따돌리는 가운데 여성을 대리모로 착취하기를 ‘선택하는‘것은 ‘선택‘이 아니다. 이 역시 가장 어렵고 불운한 결정이다.- P31

우리는 이런 결정을 내린 여성들을 절대로 비난해서는 안 된다. 다만 여성이 결정을 내리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이를 ‘선택‘이라고 부르는 행위를 그만두어야 한다. 이 결정 이후 일어나는 일들로 대부분의 여성은 심각한 해를 입게 되지만, 그것으로 탐욕적인 성착취 및 재생산 산업은 반드시 제 배를 채운다.- P32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직 모체로부터만 유전된다. 매들린 비크먼이 말했다시피, ˝당신이 받는 미토콘드리아는 모체로부터만 올 수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당신은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리모에 대입했을 때 이 때의 ‘어머니‘는 난자 ‘공여자‘이고 ‘모체‘는 이 세포를 발달시키는 생모다. 정자 공여자들은 착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당신의 중요성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몸을 부정하고 유전자만 찾아대는 이들을 한 번 더 입다물게 할 증거는 인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리모 연구자 실라 사라바난에 따르면, 고대 인도 아유르베다 문화에서 ˝출산과 수유는 어머니에서 아이로 핏줄을 이어주는 행위로서, 아이들은 이에 빚을 지고 있는 자신의 삶 내내 어머니를 보살피고 존경을 표해야 한다˝(pers.com. June 2017).- P37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낳으려는 이들이 ‘절박하게‘ 가정을 이루고 싶어하며 아이를 향한 그들의 갈망이 ‘자연적으로‘는 채워질 수 없는 ‘가슴 아픈‘ 현실에 대해서만 끝도 없이 이야기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이가 용인하고 때로 지지하는 것은 아이를 선불 상품으로 상정한 작본일 뿐이고 이를 가질 자격은 그만큼 부유한 이들에게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 문제에서 신생아는 말이 없다. 이들의 삶은 제왕절개를 거쳐 ‘인큐베이터‘와 같은 포궁에서 꺼내지고 난 뒤부터 시작되는 빈 서판과도 같다. 이를 어린이로 그리고 어른으로 길러낼 이들은 의뢰인 부부다.
부끄럽게도 이는 성인 혹은 모부 중신적 관점으로, 신생아의 기본 인권을 무시한다. 대리모는 단순히 순진한 신자유주의적 환상일뿐 아니라 누군가의 배아를 임신하는 문제를 ‘일‘로 바라보는 것이다.- P49

대리모가 해외나 국내 어디에서 이루어지든, 이것이 얼마나 잘 혹은 잘못 진행되는, 확실한 것은 대리모라는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하는 일은 아이를 어른의 재산으로 상정해서 사고판다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절박하게 원한다는 것이 그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조 프레이저, 대리모 연구 조사 보고서, 2016, p.3)- P52

˝내가 나를 위해서 이걸 선택하겠는가? 당신이 이 세상에 나온 이유가 그저 부끄러움을 모르는 수표 덩어리라면 분명 당신도 모욕적이라 느낄 것이다.˝ (대리모를 통해 출생한 ‘제시카 컨‘, 뉴욕포스트)- P55

˝그렇다. 나는 화가 났고,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이는 수치이며 끔찍한 경험이다. 우리 모두에게 엄청나게 더러운 짓이다. 자신을 정확히 어딘가로 보내버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 것 같나? 당신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의견을 갖게 되리라는 걸 알아야 한다.˝ (대리모를 통해 출생한 ‘브라이언‘)- P55

‘선택‘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사회 전체가 자신의 안녕을 해쳐서라도 타인을 우선시하는 여성을 대우한다면 이것을 ‘선택‘, 자유 의지, ‘행위자성‘이라 부를 수 있을까?- P70

모든 종류의 경제적, 사회적 차별로 인해 고통받는, 권리가 박탈되고 문맹인 수많은 여성의 어깨에 얹힌 빈곤이 덜어져야 하지만 이는 대리모나 성매매와 같이 여성의 신체를 팔거나 대여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아기의 인신매매 혹은 판매가 소수의 여성과 그 가족을 빈곤으로부터 끌어낼 윤리적인 방법이 되어서도 안 된다.- P74

대리모가 윤리적일 수 있다는 주장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바로 임신 내내 관여하는 우생학의 존재다.
영국 맨체스터의 프리메이사 헬스 사에서 발명한 IONA테스트 혹은 스위스 게노마 사가 개발한 트랜퀼리티 같은 비침습적 산전 검사(NIPTs)의 활용이 늘어나면서부터, 모든 임신부는 다운증후군이나 다른 염색체 이상뿐 아니라 태아 성 감별 검사도 함께 받았다. 산전 검사는 임신 10주까지 가능하다. 유전자 이상이 감지되었을 때 진행되는 유일한 ‘해법‘은 임신중단인데, 국제 메타 분석이 경고하기로 이 중 92.2퍼센트가 여아를 대상으로 ‘선택‘된다(Achtelik 2015, p.58)
심지어 대리모가 되는 데 동의한 여성들은 이 문제에서 ‘선택‘을 더 적게 한다. 아이 구입자들은 ‘완벽한‘ 아이를 원하고, 이미 정자와 ‘공여된‘혹은 구입된 난자들은 유전자 결함을 진단받는다(허용된 곳에서는 성별도). - P84

그리고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어 수정란이 만들어지면 배아로부터 세포 하나를 떼어내 착상 전 유전자 진단(PGD)을 시행해 ‘품질 검사‘를 실시한다. ‘결함 없는‘ 배아만 대리모의 포궁으로 주입될 수 있다. 산전 검사나 초음파는 몇 번이고 계속되고 임신중단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면 임신부는 이에 따라아먄 한다. 계약이 이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강압이라고 부른다. 대리모를 윤리적이라고 부를 여지를 박탈하기 위함이다.- P85

대리모를 통해서 태어난 이들이 자신의 연원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는지가 연구된 바 없다.- P105

어떤 부유한 개인들이 어째서 다른 가난한 이들-그리고 오로지 여성들-에게 사랑이나 돈을 이유로 아이를 기르고 낳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느냐는 것이다. - P115

나는 2014년 대리모 우호 회담의 티타임에서 대리모로 인해 여성과 아동에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동의했지만 착석 종이 울릴 때쯤 곧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엾은 게이 남성들이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해치는 데 대한 긴장감과 겁, 특히 이 경우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 두려움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겁은 많은 사회 정의 쟁점들과 결부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용감하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P116

대리모 폐지를 위한 국제협약이라는 아이디어는 정말이지 신나는 발전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전 세계 페미니스트 개인과 집단이 대리모라는 폭력으로부터 여성과 아이의 인권과 존엄을 지키고자 함께 움직이리라는 데 엄청난 희망을 갖는다.- P120

대리모였던 알레한드라 무뇨스와 퍼트리샤 포스터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번식자 여성이라는 계급이 있는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여자아이에게 최선인가? 이는 여자아이의 자존감에 얼마큼 해로운가? 만약 해롭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인가? (…) 재생산을 산업화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자본주의라는 물레방아는 정말로 모든 것을 가루 낼 수 있는 것인가? 무엇을 팔고 혹은 살 수 있는지에 어떤 제한이란 것이 과연 존재는 하는가?˝- P139

대리모는 아이를 사랑 혹은 돈을 이유로 그를 기른 생모로부터 떼어놓는 행위이며 어떤 ‘동의‘나 ‘선택‘을 들먹인다 해도 이것은 여성의 신체완전성에 대한 침해다.- P155

우리는 법적 분쟁이나 의료 비용을 치르는 과정에서 아기 구입자들이 항상 대리모보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P168

(로마에서 열린 국제)회의 때 읽은 결의안에서 서명인들은 다음을 지적했다.


˝우리는 ‘삶이라는 경이로운 선물‘과 개인의 자유라는 수사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자 한다. 대리모는 사실상 희생과 유기를 만들어내며 어머니와 아이를 비인간화한다. 모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여성의 신체에 통제를 가하고 그 결과로서 아이의 생명을 사적 재산으로 만드는 개인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로 이어질 수 없다.-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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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1-0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불쌍하기에 다른 누군가의 희생과 눈물, 그들 몸의 일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이 가능하군요.
더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 뿐이에요 ㅠㅠ

다락방 2020-01-08 16:25   좋아요 0 | URL
‘내가 강하게 원하기 때문에‘, ‘저사람이 원하기 때문에‘로 여성의 몸을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 끔찍하죠. 그러면서 그것이 대리모 여성들의 ‘선택‘이었다고 말해요. ‘선택‘이란 단어는 여기에서 저자가 지적했듯이 이럴 때 쓰는 용어가 아닌데 말예요. 이 ‘선택‘이란 단어 때문에 [페이드 포]도 생각났어요. 우리의 처지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결정하게 된 것에 과연 ‘선택‘이란 단어가 적합한것일까요?

역시나 좋은 독서였습니다, 단발머리님.

Jeanne_Hebuterne 2020-01-12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원하는 게이 남성들은 가엽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자들은 가엽지 않다는 말인지, 제발 돈으로 이것저것 다 사재기 좀 그만 했음 좋겠어요.

다락방 2020-01-13 09:20   좋아요 0 | URL
‘게이 혐오‘란 말을 듣기 싫어서 그러는 것도 큰 것 같아요. 혐오자 낙인 찍히기 싫어 여성의 몸을 팔아대는 꼴이죠. 아 정말 너무 끔찍합니다 ㅠㅠ
 
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
베키 매스터먼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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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59세의 여자 '브리짓'이 주인공. 그녀는 FBI요원으로 활동하다 은퇴했고, 재혼남 남편에게는 자신이 조직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숨겼다. 범죄자들을 많이 만나는 그녀의 상황(그녀의 세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前)남편이 떠났기에 지금의 남편도 그렇게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진 채 실제 자신이 했던 일을 감추었던 것. 상처는 깊었고 사랑을 잃을까 두려웠으나,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늘상 함께하는 사람에게도 솔직하게 보일 수 없다는 것은, 둘 모두에게 고통이다.



그녀를 닮고 싶고 그녀의 뒤를 잇고 싶었던 현재 FBI 요원 '콜먼'은 FBI가 잡아들인 연쇄살인범의 자백이 거짓일거라 의심하고, 이에 이미 은퇴한 브리짓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브리짓과 콜먼 모두 연쇄살인범을 의심하고 증거를 찾아내지만, 그녀들 주변의 모든 남자들, 똑똑하고 경력도 있고 신뢰도 가졌던 그 모든 남자들은 누구도 그녀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들은 위험한 상황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소설의 첫시작부터가 59세의 브리짓이 젊은 남자 범죄자와 싸우는 장면이다. 아직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기 전, 마구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브리짓, 싸워서 이겨버렷! 그리고 이 싸움은 내 기대이상으로 브리짓의 승리가 된다.




˝경찰 가족이었어요. 아빠와 남동생은 시 경찰이었고, 여동생은 CIA에 있었죠. 여동생인 애리얼과 나도 어렸을 때는 바비 인형을 잘 갖고 놀았는데, 파티에 가는 대신 켄을 약물 중독 혐의로 체포하곤 했어요.˝
콜먼은 웃음을 터뜨렸다. 내 이야기를 농담으로 들은 듯했다.- P198

˝…최대의 선은 진실을 감추는 것이라던데요.˝
˝재미있네요. 맥스 비어봄을 잘 아나 봐요.˝- P312

꼴이 더 우스워지기 전에 마침내 택시가 도착했고 두 사람 모두 내가 택시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었다. 기사는 나를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 나는 호텔까지 가는 동안 지나는 모든 모퉁이를 헤아리며, 부디 택시 기사가 암살범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정말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으로 다소 슬프졌다. 기사가 우회전을 해야 할 때에 하지 않을 경우 곧장 택시에서 뛰어 내릴 요량으로 나는 차 문의 손잡이를 점검했다.
기사는 무사히 나를 호텔 앞에 내려주었고 난 누구의 도움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P317

전날 밤에 쏟아낸 자기 연민의 잔여물 위를 뒹굴며 뷔페에서 가져온 것을 먹는 동안 나는 한 주의 날씨를 알려주는 날씨 채널을 켰다(더움, 더움, 더움, 비, 비, 더움, 비).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내 삶이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것일지 생각했다.- P319

˝데이비드 바이스가 당신에 대해 또 뭐라고 했는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당신을 만나고 난 뒤에는 자신도 모르게 꿈을 꾸게 된다고 하더군.˝- P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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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19-12-13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았어요~ 브리짓과 그녀의 남편이 책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도 좋아보였구요. 저희 남편도 책은 읽는데 저랑 선호하는 분야가 달라서 같이 책 이야기 하는 일은 없고, 집에 쌓이는 책만 늘어갈 뿐이네요. ㅎ 연애할 때는 하루키도 좋아한댔으면서..

다락방 2019-12-15 12:00   좋아요 1 | URL
훌쩍 나이를 먹은 후에도 좋은 사람, 다정한 사람을 만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전 참 좋아보이더라고요. 게다가 브리짓은 직업도 직업이지만 스스로 강한 여자라는 것도 너무 좋았고요. 누군가에게 꿈꾸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 닮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건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일인데, 그런 강한 여자라는 게 참 좋았어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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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기다림'이란 화두에 끌린다. 길고 긴 기다림과 목적지에 닿겠다는 그 마음은 언제나 나를 건드린다. 그런 면에서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좋았다. SF 라는 장르를 빌어서도 충분히 경력단절 여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는 걸 드러내준 <관내분실>도 좋았다. 전체적으로 우주적 상상력이 풍부한 따뜻한 작가의 글이었다. 그 따뜻함은 최은영의 소설과 결을 같이한다. 그러나,


특별할 게 없다. 앞에서부터 내리 세 편의 단편을 읽노라니 모두 주는 느낌이 비슷해, 아 다른 단편 역시 그러하겠구나, 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단편들을 모아둔 이 단편집 한 권의 분위기는 우주적 상상력이 풍부한 따뜻한 글 정도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나는 '문목하' 작가도 동시에 떠올렸는데, 내게는 김초엽 보다는 문목하, 로 정리될 수 있겠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는 북마크를 하나도 붙이지 않았다. 문장면에서는 인상적인 부분이 전혀 없었다는 말.



어찌되었든 나는 SF 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국내 여자 작가들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문목하, 김초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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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9-12-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딱 다락방님이 느낀 거의 그대로여서 중반까지 읽고 덮어둔 상태입니다. 큰 재미를 못 본지라 이 책에 대한 다수의 열광이 살짝 갸우뚱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sf 를 몰라서 그른가 싶기도 하고 그랬음요.

다락방 2019-12-08 19:55   좋아요 0 | URL
sf를 모르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이야기의 진행, 하고자 하는 이야기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는 중에 책 읽는 다른 친구와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의 감상도 저랑 같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저도 좀 갸우뚱 했습니다. 치니님은 중간에 덮으셨네요. ㅎㅎ 관내분실은 읽으세요 치니님. 그건 좋아요!

blanca 2020-01-2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지금 이 책 이북 결제 직전인데 읽을까요, 말까요. 냉정하게 얘기해 주세요.

다락방 2020-01-20 17:32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은 읽으셔도 좋을겁니다. 아마 근사한 리뷰를 써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랑 다르게 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요.
 
나의 페미니즘 공부법 - 도쿄대에서 우에노 지즈코에게 싸우는 법을 배우다
하루카 요코 지음, 지비원 옮김 / 메멘토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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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하루카 요코'는 방송활동을 하면서 더 잘 싸우기 위해 도쿄대학원에 가 공부를 시작한다. 도쿄대가 목적이었다기 보다는 언제나 싸움에서 이기는듯 보이는 '우에노 지즈코' 교수로부터 배우는 것이 목적이었다. 뭔가 아닌 것 같을 때 싸움으로 상대를 이기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 공부를 해서 싸우는 법을 배우자, 라는 게 하루카 요코가 바라는 바였는데, 하루카 요코는 자신이 바라던 것 이상을 배움으로써 얻게된 것 같다.


표지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나는 이제 더이상 페미니즘 에세이를 읽고 싶지 않아서 뒤로 제쳐뒀던 책인데, 페미니즘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이 책 안에 있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다. 와, 하루카 요코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직업활동을 하던 중에 젠더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다시 대학에 들어가고, 교육을 마치고 나서는 아는 분께 '우에노 지즈코 교수님께 배우게 해달라' 고 말씀드려서 도쿄대학원 사회학 과정을 청강하게 된다.


나는 일본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도쿄대라는 곳이 어느만큼의 위치인지를 몰랐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니 도쿄대의 학생들은 엄청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인것 같고, 일단 '도쿄대' 라고 하면 '공부하는 자들'로 알려진 그런 곳인가 보았다. 하루카 요코는 그런 도쿄대학원에 들어가 첫 수업부터 헤매개 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는 학생들의 단어도 그렇고, 게다가 공부할 문헌이라고 준 것도 외국어마냥 어렵기만 하다. 1년간 읽어야할 문헌의 수도 어마어마한데 하루카 요코는 그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그 전 2년간의 문헌까지도 읽는다. 어차피 영어는 못하니까, 하며 영어 문헌은 제껴두려 했건만, 여기 학생들은 다 그 영어문헌도 읽고 있고 읽어야한다고 해서, 아, 그 어려운 영어 문헌까지 죄다 복사해서 그녀는 미친듯이 읽는다. 방송활동을 하면서 낮에는 대학원에 다니고, 그리고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그녀는 자정부터 아침 여섯시까지 커피를 쏟아 부어가며 공부한다. 와.. 진짜 완전 공부 뽐뿌 엄청 온다. 그래, 이렇게 공부해야해, 이렇게 공부하는 데 안될게 뭐람! 정말이지 감탄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한 공부였으니 아마도 그렇게 열정을 불사를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떻게 자정부터 여섯시까지 공부하나요... 밤부터 아침까지 나는 잠이 쏟아질텐데.. 게다가 여섯시간 내리 공부라니..


결국 하루카 요코는 그렇게 3년을 공부하고나서는 다른 대학에 젠더론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가는 경지에 이른다. 이 공부가 너무 어렵고 대단해서, 그러니까 나 역시 이들이 공부한 문헌이나 주제만 봐도 머릿속에 물음표 천개 되어버리는 바람에, 이정도 과정을 마치면 다른 사람 가르치기에도 무리가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여기에도 몇 번 언급했었지만,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 학생이었을 때, 공부를 마음껏 해도 좋았을 때 공부하지 않았던 나를 너무나 후회하고, 지금이라도 열심히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이 강하게 있는데, 그렇게 방통대 편입해봤지만 반학기 다니고 자퇴했고...그래서 역시 나는 안돼, 이러다가 최근에 여성학 공부를 하고 싶어서 또 몸이 꿈틀댄다. 주기적으로 대학원을 가면 어떨까, 대학 청강은 어떨까를 역시 고민하고 있는데, 그러다가도 경제적인 이유와 육체적인 이유로 이내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 등록금 어쩔것이여.. 그리고 내가 공부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학교 다니다가 쌍코피 나진 않을까... 안되는 이유들을 떠올리며, '그래 이렇게 부지런히 책을 읽자'하게 되는데, 이렇게 공부하는 여성의 책을 읽으니 공부 욕망 너무 솟아버려. 나랑 같은 욕망을 가지고 똑같이 번번이 포기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 다행이다. 이럴 때 마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말을 건다. 친구는 나랑 같은 욕망과 같은 바람을 가지고 그리고 우리는 같이 포기하면서 서로 응원한다. 친구여...



공부하는 여성, 그리고 공부하면서 더 성장하고 앞으로 쭉 뻗어나가는 여성을 보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일은, 그런 의미에서는 매우 유익한 독서였다. 공부 욕망 자극하는 건 진짜 너무 좋잖아?


그렇지만 이 책은 1999년에 쓰여진만큼, 낡았다. 시대에 뒤떨어졌다. 그 유명한 우에노 지즈코의 가르침을 받고, 그 어마어마한 도쿄대학에서 젠더론 강의를 들어도, 그래서 많은 부분에 있어서는 페미니즘을 앞서 이끌 수 있다 하더라도, 구석구석 낡았음을 어찌할 수 없다.


하루카 요코는 '싫다고 말할 수 있으면 성희롱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하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싫다고 얘기함으로써 일자리를 잃게 되면, 그건 성희롱이라는 거다. 정말이지 머릿속에 물음표 천개 돌아다니는 그런 발언이 아닌가. 싫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해도 성희롱이다. 그것이 성희롱이 아닌 건 아니다. 게다가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예고도 없이 내 앞에서 자기 고추를 꺼내놓는 남자라고? 그새낀 범죄자새끼다. 감옥에 집어 쳐넣어야 한다. 어딜 함부로 그 더럽고 징그러운 고추를 내밀어. 진짜 남자들 너무 고추부심 있는데, 그거 왜있지? 그렇게 함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고추를 까는 새끼들의 고추는 잘라서 믹서기에 넣고 갈아버리고 싶다. 그래야 안까고 다니지. 회의를 하다가 가슴께를 더듬는다고? 어처구니가 없네. 다 성희롱이다. 미친놈이잖아? 회의를 하다가 왜 여자 가슴을 더듬어, 미친새끼가?


게다가 지금도 그렇겠지만, 이 시대의 일본도 낡았다. 프로그램에 출연시킬 사람이 열여섯의 가슴 큰 여자여야만 인정받는다. 제일 가치가 높다. 아니, 열여섯의 학생에게 가슴큰지를 확인하는 게, 말이 되냐. 하루카 요코는 그런 일터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책상 위에는 아름답게 찍은 프로필 사진이 놓여 있었다. 꽤 예뻐 보인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남자가 물었다.

"몇 살이야?"

"열여섯 살이에요."

"가슴은?"

"커요."

"음, 괜찮은 것 같은데? 한번 출연시켜 보자고."

출연이 결정되었다.

남자는 얼굴과 나이와 물건 크기로 일을 따내는 게 아니니까 능력을 갈고닦는다. (p.59)



이런 환경에서 일하다보니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지고 논쟁에서 이기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것이겠지만, 아, 정말이지 일본 방송계는, 저 때가 아무리 2000년 전이라 해도 낡았고 후졌구나. 그러나 일본이 그때보다 지금 더 나아졌을까? 저거 너무 끔찍하잖아. 열여섯의 가슴 크기를 물어본다는 거. 진짜 .. 후아-



게다가 출연자에게 거짓말을 시킨다. 그리고 그것이 일자리라 어쩔 수 없었을테지만, 하루카 요코는 자신의 신념과는 반대로 시키는대로 대답하고. 이 부분 읽으면서 우리나라 연예인들도 시키는대로 대답하는 지점이 있을까? 싶었다. 방송이 이정도로 무너지고 망가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뭐, 지금 딱히 좋은 방송인 것도 아니지만.



"결혼하고 싶다고 얘기해 주세요."

방송국 측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런 프로그램의 주시청자는 당연히 주부들이다.

"네? 저는 결혼하고 싶지 않은데요."

"그러시면 안 되죠. 하루카 씨에게도 손해잖아요. 모든 주부의 반감을 살 만한 발언은 하지 말아 주세요."

"…."

그렇게 해야만 사랑남을 수 있다는 선택의 문제는 늘 나를 괴롭힌다. 이념과 현실은 부딪치는 대가 많다.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아니라서, "결혼하고 싶어요!"라고 외치는 또래 여성 연예인 가운데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꽤 있다. 물론 이는 연예인에 한정된 현상은 아니다. (p.126-127)



하루카 요코가 위의 부분에서 지적했듯이 이것이 비단 연예인에 한정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일전에 회사 동료도 '나는 사실 연애도 필요없고 혼자가 더 좋은데 친구들 앞에서는 혼자라 외롭다는 포지션을 유지해야 했다, 그래야 하는줄 알았다' 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대부분 그래야 하기 때문에, 반감을 사지 않으려고 자신을 속이는 일이 더러 있지 않은가. 방송가에서 그것은 더 권장되는 것이고...





도쿄대가 대단한 대학이라고 하면 거기에서 유명한 우에노 지즈코 역시 대단한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하루카 요코는 우에노 지즈코를 존경의 시선으로 보고 무슨 말과 행동을 해도 '대단하다'고 칭송한다. 아마도 그녀로부터 배우고 싶었기에 간것이니 그런 태도는 당연히 따라오는 것일테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어느 순간 배움이 쌓이다보면 그런 스승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제자가 나아가야 할 길은 청출어람이 아닌가..



나도 공부하고 싶다고 책읽는 내내 생각했지만, 나도 대학원 가서 좋은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내내 생각했지만, 하루카 요코가 그랬듯이 내가 읽어야할 문헌들이 영어로 가득하고 무슨 막 기호학 구조주의 이런 거 나오면... 아아 역시나 '나도 모르겠다~' 이러고 그냥 뒤로 자빠져버릴 것 같다. 대학원이란 그런곳인가... 나는 아마 포기할거야. 게다가 하루카 요코가 다니는 대학원은 자꾸 발표 시켜... 싫어.......역시 이런 공부법 내 타입이 아니야. 그렇다면 나는 대학원 타입이 아닌건가.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이 알고 싶고 엄청엄청 똑똑해지고 싶은데, 대학원 너무 두려워... 그러면 책읽으면서 고작 이만큼에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 이렇게나 부족한데... 하아-




아무튼 공부뽕 차오르는 독서였다.



(별은 3.5인데 0.5 가지고 내릴까 올릴까 엄청 고민하다가 올리는 걸로 한다... 자비로운 나인 것이다.)


남자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남녀평등 시대라지만 집에 가면 마누라가 제일 무섭다.‘ ‘결국 가정은 여자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저는 이런 식의 패배 선언이 매우 교활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메달을 땄을 때 매스컴이 다들 입을 모아 ‘내조 덕‘이라는 식으로 아내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이 싫습니다. 야구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 진출했을 때 ‘아내가 연예게를 은퇴하고 요리하는 데 힘썼다‘는 미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아내가 요리를 잘해도 실력 없는 선수는 공을 치지 못합니다. 아내가 전업주부이든 아니든 메달을 따지 못하는 선수가 훨씬 많습니다. 왜 아내가 가장 무섭다고 말할까요? 뭔가 찔리는 일을 했거나 아내가 왜 화를 내는지 모를 정도로 둔감해서가 아닐까요? 가정은 결국 여자에게 맡겨야 한다고요? 그건 그저 여자를 추켜세우는 척하면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말 아닌가요?- P11

하지만 나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평범하고 괜찮아 보이는 청년일수록 평범한 상식과 평범한 고정관념에 단단히 매여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평범한 것들이 얼마나 내 삶을 힘들게 했는지를. 이런 의미에서 남자를 고를 때 ‘평범함‘은 결코 좋은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된다. - P141

내가 신인 때 대선배에게 이렇게 말했다.
˝생방송 중에 상대방의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가 이상한지 말할 수 없어서 분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때 선배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뭔가 이상한데 어디가 이상한지 말할 수 없어서 분하다고 말해.˝
아, 그러면 되겠구나 싶었다.
모르니까 쓰지 못하는 게 아니다. 쓰지 않으니까 모르는 채로 있게 된다. 말로 할 수 없는 생각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생각이 말을 하게 만든다. 그래도 말을 할 수 없다면, 말을 할 수 없다고 말하면 된다. 말은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때만 가능성의 싹을 틔운다.- P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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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12-0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뽕’ 효과가 저한테까지 전해지네요. 약간 흥분되면서 약간 의기소침해지고요.
저도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그냥 지나칠 책이 아니었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9-12-03 18:19   좋아요 0 | URL
저 너무 공부뽕 차올라서 미네님 책도 내친김에 읽자, 단발머리님께 땡투하고 장바구니 똭- 넣었다가 참았어요. 다음주에 사려고요. 너무 충동적으로 자꾸 책 사는 것 같아서. 일주일만 참다가 사자, 지금은 소설 한 권 읽자, 하고 넣어뒀습니다. 다음주에 적립금 들어오면 그거 제가 드리는 거에요. 부자 되시라고요. 으하하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