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20만 부 에디션, 양장)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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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브링리는 형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감을 겪으며 <뉴요커>지의 일을 그만뒀다. 그가 다시 일을 하기로 마음 먹은 곳은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잡고 방문했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 넓은 미술관에서 매일 다른 구역에 대한 경비일을 맡으며 숱한 예술 작품들 앞에 물끄러미 서보고 한참 들여다보면서 작품들로부터 감동을 받고 그 작품의 뒷이야기들을 공부해가며 그는 매일매일을 차곡차곡 형에 대한 그리움을 쌓아가고 애도한다. 미술관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을 다양한 작품들과 함께 보내며 어떤 날은 그동안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작품에 크게 감탄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너무 오랜 시간 작품들과 함께 해서 예술이 가치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악기관, 이집트관, 현대미술, 무기와 갑옷 전시관등 그는 이곳에서 다양한 작품들과 함께 인간 문화 역사에 대한 이해를 원하는데, 그건 결국 형의 죽음을 그리고 자신의 상실감을 받아들이며 이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방법인 것이다.


나는 언제나 예술에 제대로 감동받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가지고 태어나는 감각일 수도 있을테지만, 어릴 때부터 예술 작품에 노출되는 환경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 나에게는 예술적 감각이라는 것은 뒤늦게 훈련한다고 터득되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내 스스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찾아가 물끄러미 그림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아직도 대다수의 작품을 보며 크게 감동을 받지 못하고,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우울하거나 스트레스가 가득할 때 그림을 보고 위로받기도 한다는데, 나는 아직 그림으로부터 위로를 받는 사람은 되지 못한다. 물론, 가끔은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나도 어떤 그림들에는 크게 감동을 받기도 하는데, 어느 여름날 예술의 전당에서 본 샤갈의 그림이 그랬고, 뉴욕의 큰 미술관들 사이에서 작게 존재하고 있던 갤러리에서 본 클림트의 그림에서 그랬다. 그것들이 준 감동이 위로인지 기쁨인지 정확하게 짚어낼 순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사실이다. 내게는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 예술이 사람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메트로폴리탄의 그 많은 작품들은 페트릭 브링리에게 장미였다. 


우리에게는 빵이 필요하고 장미가 필요하다.

패트릭 브링리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일하며 급여를 받고 있으니 큰 돈은 아니어도 그에게 필요한 빵은 먹을 수 있었을 것이며, 위대한 예술작품들 사이를 거닐며 들여다보고 생각하고 감탄하며 그에게 필요한 장미도 충분했다. 그러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패트릭 브링리에게 단순히 빵과 장미만 준 건 아니었다. 그는 짧게는 몇십년전부터 길게는 몇백년 전의 작품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박물관에서 '과거를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장소인 박물관들(p.850)'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는데, 박물관 본연의 그 일이야말로 그에게 형을 충분히 그리워해도 된다고, 애도해도 된다고 대신 말해주는 것 같지 않았을까. 박물관이 예술품들을 기억하게 해줬다면, 그런 상징적 장소에서 패트릭 브링리는 형을 기억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박물관이 작품을 품고 오래오래 유지되듯이, 그러면서 많은 방문객들을 받았듯이, 패트릭 브링리도 형을 품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그래도 된다는 위로와 격려를 받은게 아닌가.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패트릭 브링리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가장 크게 얻은건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경비일을 하며 묵묵하게 서 있는 순간마다 말을 걸어주던 관람객들, 혹은 위대한 그림 앞에서 모사하던 예술가 지망생들, 그에게 이 모든 작품들이 정말로 진짜가 맞냐고 묻는 관광객들. 그리고 그와 함께 교대를 하거나 함께 일하던 다른 경비원들. 몇백명이나 되는 동료 경비원들의 이름을 익히며 그들 개인의 역사를 듣고 또 자신의 역사를 말하면서 친근함을 유지하면서 패트릭 브링리는 앞으로의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힘을 받는다. 사람에겐 빵도 필요하고 장미도 필요하지만, 빵과 장미를 건네는 건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형을 잃은 상실감으로 그가 지금 이곳에 흘러왔다면, 그로부터 5년후 그는 이곳에 다니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새로 태어난 아들도 맞이하게 된다. 누군가는 이 세상을 떠나서 기억속에 남겨지지만 누군가는 새로이 찾아와 그의 삶을 더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애도의 시간들을 보내다가 그는 이제 누군가를 새로이 돌봐야 하는 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삶은 이렇게 지속된다. 생은 이렇게 순환한다.



이제는 더 이상 처음 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했을 대처럼 단순한 목표만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살아나가야 할 삶이 있다. -p.269



박물관에서 십년간 일을 하면서 그 사이에 패트릭 브링리에게는 딸도 생긴다. 아이 둘과 함께 활기찬 삶을 살면서 그는 십년간 일했던 박물관에 작별을 고한다. 그간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그의 새로운 소식을 축하해주고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그는 지금 이곳을 나간다고 해서 이들과 영영 작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곳, 각자의 역사를 가진 대단한 사람들이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곳에 그는 자주 들를 것이다. 작품을 지키는 사람이 아닌 작품을 관람하는 사람이 되어 방문할 것이고,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서도 방문할 것이다. 


처음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그의 애도가 진행되는 것은 수많은 예술 작품 때문에 그리고 그의 예술을 느끼는 감각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구나, 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에게 그의 애도가 가능해지고 여전히 살아나가야 할 삶을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사람 때문에 가능해진다는 생각을 한다. 그가 몇백명의 이름을 전부 외우고 있던 이 미술관에서 나가 새로이 선택한 직업은, 맨하튼 시내를 가이드해주는 일이다. 결국, 이 도시를 낯설어하는 사람에게 이 도시를 설명해주는 일을 그가 하고자 한다. 그는 예술 때문에 박물관에 갔을지는 모르나, 그리고 도시를 샅샅이 보고 싶어 가이드를 선택했을지 모르나, 그의 내면 저 깊은 곳에서는 이미 자신에게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8년전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방문했었다. 책을 읽노라니 내가 방문했던 그 때 그곳에 패트릭 브링리가 일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전시실에서 저 전시실로 옮겨가며 나는 많은 경비원들을 보았는데, 그들중 한 명은 패트릭 이었을 수 있겠구나. 패트릭이 아닌 경비원들도 모두 저마다의 역사를 가진 사람이었겠지. 나는 일자리로써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생각한다. 박물관은 내가 작품을 보러 가는 곳 그 이상은 아니었는데, 패트릭 브링리는 그곳에서 일하면서 만나게 되는 동료 경비원들이 너무나 다양한 삶을 살아온 개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소위 비숙련직의 큰 장점은 엄청나게 다양한 기술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한다는 점이다. 화이트칼라 직종은 비슷한 교육을 받고 관심도 비슷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동료들이 어느 정도 비슷한 재능과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경비원의 세계에는 이런 문제가 없다. 메트가 새로운경비를 고용할 때면 기본적으로 ‘와서 면접보세요‘라는 내용의 짧고도 명료한 광고를 낸다(예전에는 《뉴욕타임스》, 요즘은 온라인에). 경비 담당 부서에서 찾는 사람은 이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강한 사람이고 그들은 이 일에 적합한 다양하고도 방대한 인력풀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 P183


덕분에 나는 일자리로써의 박물관을 생각해보고 직업으로써의 경비원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곳에서 찾는 일꾼이 특별한 기술을 요하는게 아니라면, 게다가 패트릭 브링리의 말대로라면 그들의 출신나라도 다양한데,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그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강한 사람이 되어, 그곳에서 다른 동료들과 목례를 나누면서 끝나면 바에 가 맥주도 한 잔 하면서, 그리고 대부분의 낮시간은 작품들 앞을 서성거리면서 일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적지 않은 시간을 패트릭 브링리처럼 어떤 그림의 역사에 대한 문헌이나 책을 찾아 읽으며 지식을 쌓고, 혹여라도 질문하는 관람객들에게 아는 것들을 답해주면서, 웅장한 예술작품들 앞에서 가끔은 벅차하는 그런 일을, 내가 직업으로써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애도가 일어나고 다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욕을 다지게 한 이 장소에서 일하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떤 감정을 갖게 되고 어떤 의욕을 다지게 될까. 그곳은 나에게 어떤 장소가 될까? 내가 받게 되는 것이 무엇이든, 필연적으로 빵과 장미를 얻게 될 것은 틀림이 없다. 물론, 사람도.



삼십년간 행복을 연구해온 서은국 교수는 자신의 책 [행복의 기원]에서 우리의 원시적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음식과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행복을 따로 연구해온 건 아니지만, 나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음식과 사람이라는 것에 적극 동의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면 거기에 더해 아름다운 작품들도 가득하다. 결국 우리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만한 곳으로 움직이게 되어있다. 패트릭 브링리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형을 애도하고 삶을 계속해나가기 위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닿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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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02-04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야 왜케 잘 썼어?
이 인간 왜 잘 썼지? 리뷰대회 있나?? 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5-02-04 11:4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리뷰대회에서 똑 떨어진 리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나는 원래 좀 잘 쓰지 않았나요? 흠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5-02-04 11:51   좋아요 0 | URL
어쩐지🤣🤣🤣👏👏👏
 
기억의 몫
장성욱 지음 / 득수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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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드라마 <지금 거신 전화는> 을 보았다.

주인공은 대통령실 대변인 '백사언(유연석)' 과 대통령실 수어 통역사 '홍희주(채수빈)'인데 서로 비밀을 감추고 있다가 그것을 알게 된 후에도 사랑한다, 는 로맨스가 주를 이룬다. 그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과 또 주인공들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 복수에 대한 욕망이 펼쳐진다.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는데,

백사언의 개인적인 일까지 돕는 회사 후배 중에 '박도재(최우진)' 행정관도 비밀을 숨기고 있었고 복수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시절 형을 잃은 슬픔과 상처로 가해자이며 살인자인 '그'의 옆에서 언제나 복수의 날을 기다리고 살고 있었는데, 가해자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이고자 시도까지 하고난 후에야, 자신이 알고 있는 이 가해자가 '진짜 가해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거다. 오히려 자신이 진짜 가해자를 도와 무고한 사람을 망치려고 했다는 걸 알게 되고 괴로워한다. 그 때 그가 그런 말을 한다. "복수 하나만을 바라며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지금까지 뭘한거지?"


자, 책 얘기를 해보자.

서른한 살 '박선용'은 어느날 유튜브 방송을 통해 자신의 팔목에 난 상처들을 보이며 중학교 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음을 드러낸다. 가해자에 대한 사항들을 특정함으로써 그의 구독자와 팬들은 가해자의 신상을 털어내고, 가해자의 사진까지도 공개된다. 눈을 가렸다고 해도 가해자의 지인이라면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상황. 가해자 '임영빈'은 대기업에 다니고 있고 얼굴도 잘생기고 곧 교사와 결혼까지 앞둔 상황에서 갑자기 이 일이 터지자 당황한다. 결혼식 사회를 봐주기로 했던 친구가 손절하고 회사에서는 나가라고 한다. 게다가 갑자기 집에 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얻어맞기까지 한다. 


임영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앞부분을 읽노라면 중학교시절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자신에 대한 기억이 없고 피해자에 대한 기억 역시 없기 때문에 '어쩌면 아닌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닐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이 사람의 일상이 천천히 파괴되어 버리는게 과연 온당한가? 라는 생각을 할무렵, 그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유명 배우인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는, 그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름아닌 엄마가 그 일을 수습했던 사람이었다. 엄마는 아들인 영빈을 위해, 영빈의 미래를 위해, 그 일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빈에게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말한다. 그건 잘못한 게 아니라 실수였을 뿐이라고. 그 일은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그 일을 수습하고 또 아무 영향이 없기를 바란건, 그것을 잘못이 아니라 실수라 말한 건, 그 일이 배우인 자신에 대한 타격을 우려한데에서 나온게 정녕, 아니란 말인가?



박선용은 학창 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고, 가해자의 엄마가 내민 돈으로 컴퓨터를 사서 줄곧 방안에서 게임만 했다고 했다. 그게 지금 건물까지 살 정도로 유명한 프로게이머로 만들어 준거라고 말한다. 가해자는 금수저였다. 외모와 경제력 그리고 곧 결혼하게 될 예비신부까지 부족한게 하나도 없는 사람. 박선용을 응원하는 아주 많은 남자들이 이 서사에 열을 올리며 가해자 임영빈을 처단하길 원한다. 박선용에게 일어났던 일은 자신들이 지금도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자기들이 겪었고 또 지금도 겪고 있는 일들이기도 하다. 잘생기지도 못했어 돈도 없어 여자도 없어 취직도 못하고 있어, 그런데 어떻게 학창시절 남 때린 새끼는 모든걸 다 가졌지? 저런 새끼는 내가 응징해야 해! 라며 피해자의 편이 되어 가해자를 응징하고자 한다. 이것은 정의 구현인가? 이것은 잘못된 걸 바로잡는 길인가? 저 사람의 복수를 내가 대신 해주는 것은, 어쨌든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는 일이니 괜찮은것인가?


박선용이 학교폭력 피해자였던 사실을 고백했던건 유튜브 방송의 구독자를 늘리기 위함도 있었고, 제대로 된 사과를 받고 싶기도 해서였다. 이 일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 임영빈은 박선용에게 사과하고자 한다. 이걸 제대로 수습해야 직장도 친구도 그리고 약혼자 까지도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테니까. 그는 박선용에게 '미안해' 라고 수없이 말하지만, 그러나 그는 뭐가 미안한지 모른다. 왜냐하면, 전혀 기억에 없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않으면 더 큰 폭력을 당했고, 손목이 담뱃불로 지져지고, 배며 정강이를 얻어맞기 수차례에 이르렀고, 정말로 나는 쓸모없는 놈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했던 피해자의 삶은 그런 상태로 지금까지 쭉 이어졌는데, 그러니까 유명해지자고 결심해지게 된 계기가 학교폭력 피해 때문이었는데,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날 알게 되면, 가해자인 그 놈도 어딘가에서 자기 잘못을 자꾸 떠올리고 뉘우치고 있겠지, 했었는데, 막상 내 앞에 나타난 가해자 새끼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기억이 없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너무도 두렵기만 했는데, 걸을 때면 뒤에서 저새끼가 따라오는 건 아닐까 하고 두려웠는데, 그런데 저 새끼는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괴롭지 않았다고? 양심에 찔리지 않았다고? 죄책감도 없었다고? 아예 깡그리 잊고 살았다고? 저 얼굴로, 저 스펙으로, 저런 여자친구까지 가지면서 잘 살고 있었다고?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나는 지금까지 뭘한거지?


내 삶은 그걸 잊기 위해 몸부림치고 여전히 무섭고 떨리고 그러니 나만큼 너도, 라는 생각으로 이어져온 삶인데, 그런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어? 어떻게 그래?



"나는 언제나 네가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어. 그리고 유명해질수록 그러기르 더 바랐지. 어떤 이유에서건 나를 보며 불편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어. 겨우 그 정도가 내가 생각한 복수였던 거야. 그런데 너한테는 이게 다 기억조차 못 하는 일이라니." -p.229


박선용은 그로부터 사과를 받고 그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그를 용서하고 그 과정을 방송하면서 분노했던 구독자들도 달래려고 했다. 그렇게 진행될거라고 생각했고 계획했다. 그러면 다 좋아지는 거였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가해자가 가해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것. 이 일은 박선용의 계획을 변경시킨다. 어떻게 기억하지 못해? 나는 평생 어쩔 수 없이 시달리며 살았는데? 박선용은 기억하지 못하고 앵무새처럼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임영빈에게 그렇다면, 앞으로라도 평생 기억하도록 만들기로 한다. 가해자였던 임영빈에게 남은건 앞으로 피해자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삶이 남았지만, 박선용에게는 어떤 삶이 남게됐을까. 거기에 대해서는 책의 결말이므로 피하기로 하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 두 삶 모두 평온하게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여기에는 피해와 가해자 둘만 있었던게 아니다.

왜 귀한 집 아들에게 피해를 입혔냐며 오히려 피해자인 손자를 질책했던 할머니가 있었고, 피해자의 곁에는 없었던 부모들도 부재함으로써 영향을 미쳤다. 그 가난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함이, 그로 하여금 가해자에게는 괴롭혀도 되는 아이로 만들었다.

가해자의 엄마도 이 상황을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아들이 한 일이 잘못이라는 걸 인정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면, 아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시켰다면, 그러면 그 후에 박선용의 삶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임영빈의 삶도 마찬가지. 그러나 가해자의 엄마는 가해자에게 그 일은 단순한 '실수'라고 말함으로써 제대로 된 도덕으로부터, 교육으로부터 멀어졌다. 피해자에게는 삶 내내 지독한 기억을 주었고 가해자에게는 기억 자체를 없애주었다. 폭력이 발생하는 지점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주변이 있다.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한 건, 혹시 나에게도 내가 기억못하는 어떤 가해가 있는건 아닐까? 하는 거였다. 이렇게 새까맣게 잊었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다른 사람을 때린 기억을 잊을 수 있나? 다른 사람의 손목에 담뱃불로 지진 게, 잊혀질만한 일이야?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안됐는데,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나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국민학교 때는 전교에서 인기있었던 아이와 한 반이었는데, 그 아이가 왕따를 주도한 적이 있다. 왕따 당한 아이를 어떤 이유로 왕따 시키려고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인기있는 아이 주변엔 늘 친구들이 많았고 이 아이에겐 많지 않았다. 나는 그런데 이 친구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이 친구랑 놀았다.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도 놀았다. 이름도 기억한다.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그 당시에 그 아이랑 노는 내 심정은 '왕따는 나쁜거야, 너의 뜻대로 되지 않겠어!' 같은 거창한 건 아니었고, 그냥 이 친구가 좋아서였다. 나는 좋은데? 이런거. 그래서 처음엔 눈에 띄지 않게 놀아야지 했다가, 그냥 나중엔 대놓고 놀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왕따를 당하거나 하진 않았다. 전교에서 인기 있는 아이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는 나대로 또 졸라 강해가지고... 그 아이가 나를 왕따시키자고 했으면 내가 굳이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내 주변으로 무리가 형성되었을 거다. 


중학교 때도 그랬다.

친구 몇 명이 '쟤랑 놀지 말자'고 했다. 그러면서 눈에 띄게 그 아이를 따돌리려고 했다. 그 때는 따돌림 당하는 아이를 그렇게까지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눈에 띄게 다같이 한 사람을 무시하는 건 할 짓이 못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냥 걔랑 놀았다. '쟤랑 놀지 말자' 고 말했던 애는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아이였고 나랑 너무 친해지고 싶다고 편지를 자주 보내는 아이였는데, 그래서 나도 그 아이에게 잘해줘야지 마음 먹었었는데, 그런데 다른 아이를 그렇게 무시하는 건 너무 별로지 않나. 그러니까 만약, 내가 누군가를 싫어해서 일대일로 상대를 미워하고 무시할 수는 있지만, 그런데 무리들 틈에서 다같이 한 명을 무시하는 건 너무.. 비겁하잖아? 그래서 그냥 그 말 듣자마자 보란듯이 따돌림 당하는 아이 옆에 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도했던 아이가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나를 가리키며 "락방이 때문에 따돌림도 못시켜" 라고 말했더랬다. 

나는 어른이 된 지금도 그렇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 곁에 아무도 없는 건 정말 바라지 않는다. 그 사람의 주변에 그 사람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누구나 자기 편은 있어야 한다. 나는 나보다 약한 사람과는 싸울 의지가 전혀 없다. 그 싸움은 시작하지 않는다. 애초에 한쪽이 더 약하다면, 그건 싸움이 성립되지 않는다. 일방적인 괴롭힘이지.


그러니까 학교폭력, 왕따 같은 단어를 접하고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이 두 개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저 기억들은 오래전의 것이고 (보진 않았지만) <더 글로리>같은 폭력은 그 당시에 내 주변엔 없었다. 어쩌면 있었는데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던건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내 기억속에는 피해자인 나도 없지만 가해자인 나도 없다는 것. 그런데 장성욱의 이 책을 읽다보니, 기억이란 어차피 왜곡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나 역시 나에게 나쁜 걸 잊은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러다가도 세차게 고개를 젓는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나는 후회하는, 후회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게는 후회되는 일들이 많다.

그건 나라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 선택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에게 그 일이 당시에 괴로웠을 거라는 데에서 오는 것들이다. 내가 그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그 때 그렇게 말하면 안되는 거였는데.. 같은 것들. 여전히, 아직도 나는 어떤 기억들이 불쑥 떠오를 때면 괴롭다. 내가 그런 말과 행동을 했던 사람이라는 게 너무너무 괴롭다. 상대의 손목에 담뱃불을 지지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분명 어느 때의 나는 상대에게 괴로움을 주기도 했던 사람이다. 지금 기억하고자 하면 딱히 떠오르는 건 없지만, 이건 불쑥불쑥 예기치않게 찾아오곤 한다. 아, 그 때 그랬지, 아 씨발 왜그랬지 ㅠㅠ 막 이렇게 되어버려. 그런 기억들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다고 그럴때마다 생각한다. 너무너무 괴롭다. 그런데 어떻게 상대에게 발길질을 하고 담뱃불로 지진 걸 새까맣게 잊을 수가 있지? 이게 어떻게 그렇지? 말이 되나? 나였다면, 내가 가해자였다면 나는 제대로 된 직장생활도 못했을 것 같다. 상담 받으러 다녀야했을 것 같아. 아마 수시로 내 머리를 쥐어뜯었을 텐데. 아 씨발 나는 쓰레기야.. 이러면서 괴로워하면서 대인기피증 까지 생겼을 것 같은데. 그런데 어떻게 그걸 .. 잊고 잘 살 수 있지? 마치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하다 못해 박연진도 문동은에게 자신이 가해한 사실은 알고 있었잖아? 그걸 잊었다고 말한 가해자 앞에서 피해자인 나는 뭘 느껴야하지? 충동적으로 용서의 계획을 복수의 계획으로 바꾼 것은, 인간이라는 부조리하고 불완전한 존재에게 너무나 당연한 수순 아니었나.



오늘 출근길에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마지막 부분을 읽는데 갑자기 추워졌다. 몸이 떨릴만큼 추워졌다.

학교폭력의 가해자이며 피해자인 이들의 삶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부터 앞으로까지 행복학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추워졌다.

이런 식의 끝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러나 이런 식의 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그동안 왜 살아온걸까? 뭐한거지? 라는 생각이 한 편에 들었다면, 다른 한 편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지? 가 마땅히 따라오는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한다.



사족인데,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문종필 문학 평론가의 발문은 별로였다.

무엇보다 '박선용'을 '박신용' 이라고 내내 잘못 기재했다.

한 번의 오타가 아니라 발문 끝까지 내내 그런다. 

주인공의 이름을 잘 못 기재하다니, 책을 제대로 읽은 건 맞아? 라는 의문이 들어서 발문 전체가 별로로 느껴졌고, 어떻게 편집자도 잡아내지 못한채 책에 실렸을까? 작가에게 미안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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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5-01-15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은 언제부터 그렇게 멋있었죠?”
“태어날 때부터…”

잠자냥 2025-01-15 11:16   좋아요 2 | URL
˝독셔괭은 언제부터 그렇게 간지러웠쬬?˝
˝태어날 때부터....˝

다락방 2025-01-15 11:16   좋아요 1 | URL
하아- 뭔 글만 쓰면 자기 잘난척이 나와버리니 이거야말로 큰일입니다. 하아-

독서괭 2025-01-15 11:39   좋아요 0 | URL
아니 진짜 초등다락방… 아니 국민다락방 시절부터 너무 멋있어서 이 대사가 생각났어요.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ㅋㅋ 말이 쉽지 그 분위기에서 왕따 당하는 아이 옆에 서는 게 쉽지 않지요. 역시 다락방님과 친구가 되는 건 복이다 복 큰복!! 잠자냥님 좋겠다!!

다락방 2025-01-15 12:00   좋아요 1 | URL
음 그런데 일진들이 왕따 시키고 그러는 분위기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만약 드라마나 책에서처럼 그런 무서운 애들이 학교폭력 하는거였다면 저도 다를 바 없었겠죠. 제가 경험한 건 다 평범한 애들이 평범한 애들한테 한거라 저렇게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진짜 멋지려면 일진한테 대들어야 멋진건데.... 저 때만 하더라도 일진은 딱히 없었어요. 고등학교때는 좀 있었지만... 그 때는 같은 학급내에 학교폭력은 없었고요. 일진이었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겁니다..

잠자냥 2025-01-15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은 언제부터 그렇게 잘먹었죠?”
“태어날 때부터…”

다락방 2025-01-15 11:17   좋아요 2 | URL
그래도 어릴 때는 엄마가 ˝쟤는 왜 먹어도 살이 안찌지?˝ 했었습니다.... 그랬었습니다.......(먼 산)

2025-01-20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소한 일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 전승희 옮김 / 강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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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은,

정찰을 위해 이곳에 머무른다지만 민간인에게도 가차 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각별히 조심하자고 서로에게 일렀다. 그들의 눈에 띄면 안돼, 우리는 숨어서 은밀히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었다.

그 날도 잘 숨었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개가, 우리와 함께 있던 개가 짖었다. 조용히 하라고 우리 모두 일렀지만 그러나 개가 짖었다. 아마도 개는 다른 이의 기척을 들은 것 같았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나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발견했다. 그들은 군복을 입고 있었고 우리에게 총을 겨누었다. 우리는 아니라고, 살려달라고, 우리는 군인이 아니라고, 그저 이곳에서 쉬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알아들었다고 달랐을까. 그들은 총을 쐈다. 내 아버지를 향해, 내 오빠를 향해, 내 삼촌을 향해. 그리고는 나를 그들의 차로 끌고 갔다.

나는 왜 살려두는걸까. 아직 채 어른이 되지 않아서? 아니면 여자라서? 나는 내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서 맞딱드리고 이제 내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어차피 죽음은 곧 내게도 올 것 같았다. 어쩌면 죽는게 더 나은걸까. 나는 무력하게 그들의 차에 들어갔고 그들의 요새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한 후 장교로 보이는 사람은 다른 병사들 앞에서 나의 옷을 찢었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그리고 남자 병사들이 가득한 곳에서 나는 옷이 찢겨진 채로 덜덜 떨어야했다. 이곳은 사막 위이고 모래들은 뜨겁게 타오르는데, 나는 떨었다. 이내 다른 병사 한 명이 호수를 연결했고 그 호수를 통해 나오는 물을, 장교는 내게 향했다. 물줄기가 내게 쏟아졌다. 나는 발가벗겨진 채로 병사들 앞에서 고스란히 내게 쏟아지는 물을 맞았다. 그들중 몇몇은 키득대며 웃었다. 이내 장교는 병사 한 명에게 뭐라 소리를 질렀고 그러자 그 병사는 달려갔다 와서는 장교에게 뭔가 건넸다. 장교는 그걸 내게 던졌다. 비누였다. 장교는 자신의 몸짓으로 내게 말했다. 비누로 씻으라고, 내 가슴에, 내 다리에, 비누 거품을 내라고 말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남성들의 눈길 속에서 나는 수치를 무릅쓰고 그가 시키는대로 비누칠을 했다. 장교와 그의 병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나는 거품을 냈다. 장교는 다시 손으로 막고 있던 호수의 물을 내게 쏟았다. 내 몸의 비누는 헹궈지고 있었다. 그가 옷을 찢은 이유가 강간이 아니라 몸을 씻는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했을까. 씻기를 마치자 병사들이 옷을 가져왔고 나는 누구의 옷인지 모를 셔츠와 바지를 입고 그들이 이끄는대로 어딘가에 갇혔다. 병사 한 명이 보초를 섰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일어날 법하다고 모두가 추측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아까 내 아버지와, 오빠와, 삼촌과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보초를 선 병사는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는 거였을까. 그것이 나의 안전이 아닌 것에는 틀림없다. 그가 지키는 건 나의 탈출일것이다. 병사들 몇이 차례대로 들어와 나를 강간했다. 비명을 지르고 악을 써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장교가 돌아왔고 나는 장교에게 뛰어가 당신의 부하들이 나를 강간했다고 울면서 얘기했다. 그는 내 옷을 찢었지만 강간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강간 만큼은, 살인을 저지를지언정, 강간만큼은 하지 않으려는 사람일런지도 모른다. 장교는 나를 끌고가 병사들 앞에 세웠다. 그리고 몇 마디 말을 했고 이내 분위기는 엄숙해졌다. 그리고 그가 끌고간 곳은 아까 내가 갇혔던 곳이 아니었다. 병사들이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 이동식 침대가 설치된 곳은 장교의 숙소였다. 내 침대가 장교의 침대 조금 옆에 마련되었다. 나는 옆으로 누워 숨을 죽였다. 여전히 나는 두려웠다. 그가 병사들의 강간으로부터 나를 지켜내려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오늘 가족을 잃었던 일과, 병사들 앞에서 몸을 씻었던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이제 눈물도 마른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 될까. 나는 살 수 있을까. 이대로 사는 건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나를 어떻게 하려는 걸까. 여기서 일을 시키려는 걸까. 장교가 나를 여기 재운걸 봐서는 더이상의 강간은 없는 거 아닐까. 그는 나를 여기에 두고 갈까. 그들은 나를 죽이려는걸까. 그들은 내게 일을 시키려는 걸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나를 마을로 데려다주지 않을까. 아직까지 살려뒀다는 건, 앞으로도 살려두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데 내가 사는 건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어떻게 될까. 내 삶은 그리고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옆에 누운 장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어딘가 아픈걸까. 어딘가 불편한걸까. 지금은 몇시인걸까. 나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잠을 이루지 못하던 장교가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가 내 침대로 왔다. 내 옆에 누웠다. 내가 크게 착각했다. 그는 나를 병사들의 강간으로부터 지키려던게 아니었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내 앞에서 총을 쏜 사람인데, 나에게 수치를 안겨준 사람인데. 그제야 나는 내가 살고싶어서 어떻게든 선해하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우리 말을 모르잖아, 아마도 내 가족들이 남자니까 두려웠나봐, 그는 나에게 수치를 주기 위해 비누를 던진게 아니야, 그는 아마 더러운 걸 못참는 사람인가봐, 그는 강간은 나쁜거라고 생각하나봐, 이 모든 선해가 나의 억지였다. 다른 남자들의 강간으로부터 나를 떼놓은 장교는 자신을 위해서는 나를 떼놓지 않았다. 그는 내가 비명을 지르자 자신의 손으로 내 입을 막았고, 그 밤, 나를 몇차례나 강간했다. 내가 어느 오두막에 갇혀도 강간을 당하는구나. 희망은 없구나. 나에게 미래는 있을까. 

날이 밝았다. 내 몸도 마음도 지쳤다. 나는 다시 끌려나와 처음 갇혔던 오두막에 갇혔다. 장교는 차를 타고 나갔고, 그러자 또 병사들의 강간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도 불쑥 이렇게 죽는걸까, 생각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장교가 돌아왔다. 나는 다시 장교에게 울며 소리쳤다. 나를 이제 그만 놔달라고, 당신의 병사들은 나를 강간한다고, 제발 나를 놔달라고 울며 소리쳤다. 장교는 병사들에게 무언가 지시했고 그러자 한 병사가 큰 삽을 들고 나왔다. 뭐지? 왜지? 장교와 병사들은 삽을 들고 나를 계속 끌고갔다. 어딘가에 멈췄을 때, 장교는 병사에게 또 무언가 지시했고, 그러자 병사는 가져온 삽으로 모래를 파내기 시작했다. 서서히, 사람 한 명 들어갈 구덩이가 파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아! 날 저기에 넣으려는 거구나, 날 저기에 묻으려는 거구나. 안돼. 나는 살고싶다. 나는 살고싶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나를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총소리가 들렸다. 내가 저기 저 구덩이에 묻히기 전에, 암흑이 찾아왔다. 나는 더이상 이곳에 없었다,



로 진행되는 리뷰를 쓰려고 했었다.

이 책의 1부를 읽으면서 그랬다.

유독 깔끔한 장교가 자신이 하는 일에 명분을 갖고자 최선을 다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자신의 몸 씻기를 멈추지 않는, 그래서 포로로 잡아온 소녀를 벗겨 비누칠을 시키는 걸 보면서, 그런데 그녀의 말은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나 역시 듣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민간인을 죽이고, 자신의 곪아가는 상처를 들여다보고, 자신의 몸을 씻는 장교를 보지만, 그러나 무방비하게 끌려온 소녀에 대해서는 내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녀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그러니 그 소녀의 이야기를 내가 리뷰로 적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병사들에게도 그리고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고 독자로서 희망을 가졌던 장교에게도 강간을 당하고 이내 죽음까지 당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삶이, 그렇게 스러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가진 이야기를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로 그리고 더이상의 이야기는 할 수 없는채로 이렇게 끝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써보겠다고 생각했다. 내 리뷰는 소녀의 이야기여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갈등이 없는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자라는 것 하나 빼고는 그녀와 공통점을 가지지 않았다. 그녀는 전장에 있었고, 군인들을 피해 다니는 사람이었고, 눈 앞에서 함께 있던 성인 남성들이 총에 맞아 죽는 걸 봤으니까. 나는 그런결 경험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내가 써도 될까. 그녀는 갇혔고 수치를 느껴야했고 강간을 당했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감히 내가 써도 될까, 라고 갈등했다. 그런데, 이대로 소녀를 그대로 묻어두는 건 세상이 해서는 안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진 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그녀의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다. 이야기없이 사라지는 여자는 더이상 두고볼 수가 없다, 고. 그런데,


2부를 읽으면서 아, 내가 오만했구나 생각했다. 

작가가 하고 있었다. 작가가 소녀의 삶을, 소녀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2부의 다른 화자가 사반세기 전에 일어났던 강간 살인 사건을 알게되었고 하필 그녀가 살해당한 날이 내가 태어난 날짜와 같네, 하면서 그 사건을 면밀히 살피기로 한거다. 그 장소에 가보자, 그 일을 아는 사람들에게 들어보자, 그녀는 자신이 가서는 안되는 위험한 지역으로 차를 끌고 간다. 몇 번의 검문을 거치면서 두려워하고, 그러면서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일을 파보려고 한다. 살해당한 소녀의 사망일이 내가 태어난 날짜와 같다는 사소한 이유로 그녀는 목숨을 담보로 이동하고 또 이동하는거다. 


그러나 그녀가 확인할 수 있었던 건, 25년전의 상황과 지금이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 25년전 소녀가 살았던 세상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는 것. 

25년전 소녀가 움직임마다 두려워했듯이, 지금 움직이는 그녀도 움직임마다 두려워해야 했다.

25년전 소녀가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눈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았듯이, 지금 그녀도 자신을 향해 총을 겨눈 사람들과 말이 통하지 않았다.



이 책은 문학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준다.

25년이라는 간극을 한 자리에서 보게 해주고, 숨겨진 이야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현재의 상황을 보여주고 이미 사라진 사람을 끝없이 기린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쓰고자 했던 소녀의 이야기를, 굳이 내가 할 필요가 없게끔, 이 책이 저 혼자 다 하고 있었다.

이 책은 내가 왜 문학을 읽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문학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었다.


그 기사는 그 소녀의 이야기를 안 다루었기 때문에 총체적인 진실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 P92

그건 장애물에 대한 공포에서 생긴 공포라는 장애물이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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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01-0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아직도 멀었나봐요. 아직도 기대를 갖고 있나 봐요.
나는 그 밤에, 장교의 숙소에서 장교가 인간처럼 행동하기를 바랬나봐요ㅠㅠㅠㅠ 내가 바보네요.....

이 책 읽고 싶은데 이렇게 심장이 벌렁거려서 가능할까 모르겠어요.

다락방 2025-01-10 07:59   좋아요 1 | URL
이게 처음에 장교가 주인공으로 나오기 때문에 장교의 행동을 자꾸 선해하고 싶어집니다. 작가의 말을 읽다보면 가해자에 동화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정말 잘 쓰여진 소설입니다. 강간에 대한 잔인한 묘사나 이런게 나오지는 않기 때문에 심장이 그렇게 벌렁거리지는 않을 것 같고요, 그렇지만 읽고나면 아프기 때문에.......... 저는 문학작품으로서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지만, 그런데 아프긴 할거니까...... 선택은 단발머리 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러나 놓치기엔 너무나 훌륭한 작품입니다!!

달자 2025-01-11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다락방님 ㅠㅠ 전 어쩌면 다락방님이 이 책을 읽고 후기를 써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몰러요..: 정말 딱 다락방님과 같은 페이지에 같은 생각을 하며 읽었어요.. 근데 전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 머릿 속이 하얘지더라구요. 후기를, 내 감상을 남기고 싶었는데 동시에 아무 글자도 못쓰겠더라구요… 다락방님은 어쩜 읽고 생각한 대로 글을 쓰시나요 멋져 넘 멋져

다락방 2025-01-14 11:35   좋아요 1 | URL
안그래도 이 책 읽고 달자 님 리뷰를 다시 읽었거든요. 그랬더니 그 리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더 확- 오더라고요.
정말 좋은 책이었어요, 달자 님. 사실 저도 어떻게 리뷰를 써야할지 몰라서 이정도의 글이 나왔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정말 정말 이 책이 좋은 책이며 모두들 읽어봣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마을과 세계 - 에코페미니스트 마리아 미즈의 삶과 시대 계명대학교 여성학연구소 전환의 시대와 젠더 번역총서 1
마리아 미즈 지음, 안숙영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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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미즈가 젊은 시절 인도에 가서 공부하고 그래서 제3세계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알고 보고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마리아 미즈 개인에게도 그리고 마리아 미즈의 책을 읽을 전 세계의 독자들을 위해서도 다행한 일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세계의 수많은 학자들과 학생들과 만나 연대하며 자본주의에 맞서려 했던 것도, 또 필연적으로 반다나 시바와 이어지게 된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그녀에게 찾아온 숱한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그녀가 사랑으로 인해 시야가 확장됐다고 생각하고 그 확장된 시야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니, 그건 마리아 미즈 고유의 능력이다. 그 사랑 이후에 딱히 연애 이야기나 남자 이야기도 없어서 평생 싱글로 살았는가, 라고 생각할 무렵 지나가듯 '남편'의 존재가 언급되는데, 어? 결혼했었어? 그런데 왜 그 이야기가 없지? 하며 신기했다. 어떻게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기록을 쓰면서 이렇게 지나가듯 남편을 언급할 수 있을까. 내가 놓친걸까 설마, 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연애와 결혼 혹은 사랑 자체가 그녀라는 사람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은 아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외로움은 찾아오고, 그래서 나중에 함께 살기는 했지만, 그전까지는 남편과 아내이면서도 계속 다른 나라에 살면서 방학 때 만나고 그랬던거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그동안 만나온 다른 세계의 독립적인 여자들 때문에 가능했던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네덜란드 여성들이 왜 항상 남자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싱글이든 기혼이든 이혼했든 그들은 늘 남성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고향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서구 여성보다 훨씬 독립적이다. (한 아프리카 여성의 보고 중) -p.219


매 꼭지 마리아 미즈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들이 놀랍고 감탄스러웠는데, 생명공학에 대해서는 좀 더 듣고 싶었다. 


인공 수정은 불임 부부가 임신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위대한 업적으로 찬사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술이 인간 생명의 산업적 상업적 생산에 수문을 열 것임을 인식했다. 생명공학 산업에서 여성은 원재료, 즉 난세포와 자궁의 단순한 공급자('대리모')로 격하했다.

흐로닝언에서 미국 기자이자 작가인 지너 코리아는 '재생산 매춘'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여성들은 매춘을 통해 자신의 질을 남성들에게 팔거나 임대했다. 그들은 이제 '대리모'로서 자궁을 임대 또는 판매한다(Corea, 1984). 또한 그녀는 모든 경우의 수를 처음으로 실험한 대상은 소였다고 보고했다. 이는 수의사가 불임인 소의 임신을 돕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 기술로 송아지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의 생산성 증가와 관련한 것이었다. 이 기술로 자연의 순환을 쉽게 무시할 수 있었다. 지너 코리아가 "처음에는 소, 다음에는 당신"이라고 지적했듯이 말이다. -p.229



나는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존재한 문제-비자발적 무자녀-를 기술 혁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기를 지금도 거부한다. 몇 가지 선택만 예로 들더라도 인간은 좋은 이웃 관계를 통해 친족이나 혈연으로 이어지거나 그렇지 않은 아동의 입양과 같이, 불임에 창의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왔다. 친자녀르르 갖고자 하는 욕구는 자본주의 핵가족에 존재하는 일종의 재산(財產)사고를 반영한다. 새로운 생명공학 및 제약 산업이 이득 증가를 기대하며 아이를 '갖고자'하는 욕구를 강하게 뒷받침했다. -p.230



그러므로 마리아 미즈는 파이어스톤에 반대한다. 반자본주의, 반가부장제를 주장하는 그녀의 책들도 너무 좋았지만, 인공 수정과 비자발적 무자녀에 대한 이야기, 파이어스톤에 반대하는 이야기도 좀 길게 그리고 더 자세히 써준 책이 있다면 좋겠다. 그거 너무 읽고 싶은데!



남편인 사랄에 대한 이야기중 벵골에서는 남자들을 교육시켰지만 여자들은 배우지 못했던 것에 대해 언급한다.


사랄은 교육, 특히 아들에 대한 교육에 큰 가치를 두는 콜카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보냈다. 그는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는지 점검했다. 당시 벵골에서 딸은 결혼할 것이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  -p.202


위 이야기에서 영화 [굿모닝 맨하탄] 생각이 났다. 영화 속에서 남편도 그리고 아이들도 다 영어를 할 줄 아는데, 주인공인 여자만 영어를 하지 못한다. 자기들만 교육 받아 영어를 할 수 있었으면서, 그러나 영어를 하지 못하는 아내를 비웃는 남편이라니. 딥빡이 오는데, 그런 그녀가 조카 결혼식 때문에 뉴욕에 가게 되고, 거기에 머무르면서 영어를 못해 참담한 기분을 느끼게 되자, 짧게나마 영어 연수를 받으러 다니는거다. 결국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조카의 결혼식에서 당당하게 영어로 축사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이모로부터 축사를 듣고 싶다는 조카에게 여자의 남편은 '그녀는 영어를 못한다'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데, 그러나 여자는 공개적으로 영어로 축하를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사실 배우게 한 것도 아니면서 배우지 못한다고 무시하는 남편하고 계속 남편과 아내로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의문인데, 영화에서 여자는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말하진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자신의 가정을 유지하며 잘 살기를 보여준달까.


결혼할 여자에게 영어는 필요없고, 그러나 남자에게는 옥스퍼드도 케임브리지도 허락되는 세상이라니. 징그럽다. 이게 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때문이다.


마리아 미즈 진짜 엄청 열심히 살았다.

공부하러 인도로 가고 가르치러 네덜란드 가고 연대하러 미국 가고. 머릿속에 어떤 답이 떠오르면 그걸 말로만 내뱉는게 아니라, 실제 자신의 행동으로 그 말을 바로 증명해버리는 사람. 진짜 너무나 대단하고, 심지어 아파서 집에서 쉬게 되었을 때에도 이웃 아이들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정말이지 살아생전 자기 자신을 불살랐던 것 같다. 연대하고 조직하고 행동했던 마리아 미즈의 모든 책들이 번역되어 나왔으면 좋겠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도 비슷한 공포의 경험을 했다. 패전한 독일군은 동쪽으로 후퇴하면서 ‘적‘이 손댈 수 없도록 모든 것을 파괴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군마를 죽여 가죽을 벗겼고(가죽은 여전히 유용했다) 그 사체를 마을로 끌고 가 V-1 로켓이 들판에 남긴 구덩이에 버렸다. 전쟁이 끝난 후 놀랍도록 따뜻하던 1945년 봄 동물 사체가 썩는 지독한 냄새가 피어나는 풍경 전체를 오염시켰다. 이것은 내가 전쟁 중에 경험한 최악의 잔학 행위였다. - P65

그런데 이런 일이 저절로 일어났을까? 어머니는 가만히 앉아 "삶은 어떻게든 계속될 거야"라고 혼잣말만 하지 않았다. 또한 기독교인 농부의 아내지만 "주님께서 베풀어주시겠지!"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 살기 위해 자연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삶은 계속되어야 했다. 그것이 어머니의 소망, 열정, 철학이었고 그녀에게 용기와 활력을 주었다. - P69

나는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 방법론과 인도의 농민 반란에 관한) 첫 글과 책을 독일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썼고 영어권 출판사에서 이를 출간했다. 인도 농촌 여성의 자급 생산에 관한 내 연구 결과의 경우 영어로는 나왔지만 현재까지도 독일어로는 출판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찍부터 영어권에 이름을 알렸고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그리고 물론 인도로 초청을 받았으며, 인도에서는 박사 학위를 마친 뒤 정기적으로 방학을 보냈다. - P192

비가시 경제는 주류 경제학자들이 숨기고 무시하는 다양한 층위의 노동으로 구성된다. 혹은 자연에서 비롯한 새산과 같은 자유재로 정의한다. 이런 층위는 ‘수면‘ 위의 경제, 즉 공식 부문의 화폐나 자본 경제와 근접성에 따라 아래서 위로 정렬한다. - P193

사실 나는 결혼을 원치 않았다. 페미니스트로서 나는 결혼을 함정이라고 생각했다. 사랄도 생각이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혼인 신고 없이도 관계를 유지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고, 이는 우리의 관계까 장거리로 제한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아내로서 인도로 영구 이주하거나 인도에서 의존적 아내로 살기 위해 독일의 유급 일자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정치적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나라로 이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만일 그랬다면 친구들이 제국주의 국가에서 왔다고 나를 비난했을 것이다. 나는 서구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그들의 억눌린 증오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고 이를 매일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결혼 후에도 독일에 머물며 1년에 한두 번 사랄만 방문하기로 한 이유였다. 사랄 또한 인도를 떠나 독일로 이주하기를 원치 않았다. - P202

사랄은 교육, 특히 아들에 대한 교육에 큰 가치를 두는 콜카타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고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보냈다. 그는 매우 엄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진전을 보이고 있는지 점검했다. 당시 벵골에서 딸은 결혼할 것이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지 못했다. 나중에 사랄은 "내 아들 한 명은 케임브리지에 보내고 다른 한 명은 옥스퍼드에 보낼 거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인용하곤 했다. - P202

그는 흥미로운 지적 활동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유럽 언어를 배우자는 생각을 떠올렸고, 우연히 독일문화원 콜카타 분원에서 열리는 6개월짜리 독일어 강좌 광고를 접했다. 사랄은 이 강좌에 등록해 퇴근 후 저녁에 3년간 독일어를 배웠다. 그 뒤 독일 연방정부 장학금을 받아 독일어 교사가 되기 위한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수혜 조건 중 푸네 독일무화원의 강좌 3개월 수강이 있었다. 1963년 그는 내가 맡은 첫 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그가 받은 장학금에는 독일문화원 뮌헨 본원의 독일어 교사들을 위한 심화 과정도 포함되었다. 1966년 여름 그곳에서 그는 시험에 합격하고 하이데라바드 독일문화원의 독일어 교사직에 부임했다. - P203

나는 네덜란드 여성들이 왜 항상 남자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싱글이든 기혼이든 이혼했든 그들은 늘 남성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고향에서 이렇게 하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서구 여성보다 훨씬 독립적이다. (한 아프리카 여성의 보고 중) - P219

나는 1976년 결혼한 이후 남편을 여름방학 때나 그가 나를 보기 위해 인도에서 네덜란드로 왔을 때만 만났다. 때때로 혼자 모래 언덕을 따라 돌아다니거나 해변을 산책하면서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자묺ㅆ다. 어느 시점엔가 나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매우 외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사회과학연구소는 내가 독일에서 누리던 종신 교수직을 주는 것을 고려조차 않고 있었다.
1981년 계약기 끝나자마자 독일로 돌아가 쾰른응용과학대학교에 복직하기로 결정했다. 비록 사회과학연구소에 세계 최고의 여성학 프로그램을 구축해놓고 떠나기가 아쉬웠지만 말이다. 1982년에는 남편이 하이데라바드 독일문화원의 보수가 좋은 교사직을 그만두고 독일로 와 나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쾰른에서 같이 살고 있다. - P226

인공 수정은 불임 부부가 임신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인류‘의 위대한 업적으로 찬사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술이 인간 생명의 산업적 상업적 생산에 수문을 열 것임을 인식했다. 생명공학 산업에서 여성은 원재료, 즉 난세포와 자궁의 단순한 공급자(‘대리모‘)로 격하했다.
흐로닝언에서 미국 기자이자 작가인 지너 코리아는 ‘재생산 매춘‘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여성들은 매춘을 통해 자신의 질을 남성들에게 팔거나 임대했다. 그들은 이제 ‘대리모‘로서 자궁을 임대 또는 판매한다(Corea, 1984). 또한 그녀는 모든 경우의 수를 처음으로 실험한 대상은 소였다고 보고했다. 이는 수의사가 불임인 소의 임신을 돕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이 기술로 송아지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모두 자본주의의 생산성 증가와 관련한 것이었다. 이 기술로 자연의 순환을 쉽게 무시할 수 있었다. 지너 코리아가 "처음에는 소, 다음에는 당신"이라고 지적했듯이 말이다. - P229

나는 인류 역사의 시초부터 존재한 문제-비자발적 무자녀-를 기술 혁신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믿기를 지금도 거부한다. 몇 가지 선택만 예로 들더라도 인간은 좋은 이웃 관계를 통해 친족이나 혈연으로 이어지거나 그렇지 않은 아동의 입양과 같이, 불임에 창의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왔다. 친자녀르르 갖고자 하는 욕구는 자본주의 핵가족에 존재하는 일종의 재산(財產)사고를 반영한다. 새로운 생명공학 및 제약 산업이 이득 증가를 기대하며 아이를 ‘갖고자‘하는 욕구를 강하게 뒷받침했다. - P230

어떤 동성애자 여성들은 재생산 기술을 통해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녀를 갖고 싶은 소망을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랐다(그러면 가부장적 기술에 의존핟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파리다 아크테르, 인도의 요츠나 굽타(Jyotsna Gupta), 나는 소위 제3세계의 인구 통제 방법과 재생산 기술에 사용하는 방법 사이에 이미 존재하는, 인종 차별과의 연관성을 지적했다. 인도와 방글라데시 같은 국가에서는 여성이 가능한 한 적은 수의 자녀를 가져야 하는 반면 서구 국가의 백인 여성은 이 기술을 이용해 더 많은 자녀를 낳아야 한다. 제약 회사는 이 두 가지 모두에서 막대한 이익을 기대했다. - P230

이 대회(유전자 및 재생산 기술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목적은 기술에 대한 우리의 저항이 여성으로 서 재생산 기술에 반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동식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런 유전자 기술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경로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 P231

나를 비롯해 많은 여성이 여전히 자신에게 묻는다. 만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면 왜 착취, 억압, 차별, 구타 학대, 강간을 당하는가? - P258

개인이 그 혹은 그녀 고유의, 삶에 대한 주권을 되찾을 어떤 가능성도 남겨두지 않은 채 소수의 최상위 엘리트에게 세계인의 일상생활을 직접, 깊이 좌우하는 권력을 주면 필연적으로 전체주의가 된다. - P293

우리가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유일한 대안은 폭력과 전쟁에 굴복하고 제한 없는 상품 생산과 자본 축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종교의 신은 자본 정확히 말하면 가부장적 자본이다. 이 신은 보이지 않고(그렇다고들 말한다) 불멸하고 전지전능하고 편재하며 영원히 성장해야 한다. 그는 삶의 근원이며 이 기업 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대만큼 분명했던 적은 없다(Mies, 2005a 참고).
이 신은 교회-은행과 기업 본사-는 물론이고 신학자와 성직자도 거느린다. 바로 경제학자, 과학자, 기술 관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은행가이다. 그들은 이윤을 남기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한다. 이 종교도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신조에 기초하는데, 우리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새빨간 거짓말일지라도 모든 사람이 믿어야 하는, 돈과 이윤의 무제한 증가라는 신조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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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도 2024-12-30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리아 미즈 덕분에 페미니즘은 운동(행동) 이론이라는 것을 격하게 깨달은 사람입니다. (남성) 이론가들이 페미니즘을 ‘공부‘ 중이라고 하면 비웃고 무시하는 이유도 그 행동 부분 때문이라는 걸 알았어요. 비겁하고 찌질한 인간들...
굿모닝 맨하탄 영화 소개 감사해요. 꼭 봐야겠어요. 왜 이혼하지 않는가에 대한 답은 강한 추측이 일긴 하는데 영화 보고 시원하게 궁금증을 풀어야겠어요. ^^

다락방 2024-12-31 09:31   좋아요 1 | URL
자도 님, 정말 그렇습니다. 페미니즘은 행동이지요. 사실 뭐가 됐든 다 행동으로 말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말만으로는 뭔들 못하겠어요. 행동으로 옮긴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닌데 마리아 미즈는 말과 행동을 동시에 가는 사람이었어요. 정말 참으로 열심히 사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같은 책 써주어 정말 너무나 좋고요. 반다나 시바와 만나는 건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굿모닝 맨하탄 영화 보시면 감상 들려주세요!

자도 2025-01-09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봤어요! ott에 없어서 dvd를 샀네요. 음... 제가 추측한 것보다 훨씬 만듦새가 좋은 영화더군요. 웰메이드라고 마냥 몽글몽글함에만 호소한 것도 아니고 여성을 관습 도덕에 가두기 위해 신파스런 감상주의를 동원하지도 않았어요. 있을 법한 작은 사건으로 인물이 있을 법한 고민에 빠지더군요. 놀람. 인도영화의 여성인물 감수성에 깜놀. 영화를 위해 변호하자면 상업영화는 결국 그 사회의 보편 도덕률 안에서 움직이니 인물 설정에서 안전한 바운더리를 설정할 수밖에 없었겠다 싶구요. 그런데 설득력 있게 꼼꼼히 설정해서 놀랐다고나 할까... 뭐. 이 영화의 한계라면 시집 가서 팔자 핀 무산자 비지식인 계층 출신 여성이 중년에 짧은 일탈(영어 로맨스 새로운 소속감 정체성)을 통해 자아존중감을 회복하는 플롯의 비현실성과 판타지성이라고 하겠는데.... 근데 그게 뭐 어때...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보다 백 배 나은데 싶기도 하고... 그랬습니닷.

다락방 2025-01-10 08:03   좋아요 1 | URL
저는 뉴욕에 처음 도착해 커피 사마실 때 그 때 막 당황하잖아요. 사람들의 불친절과 알아 듣지 못하는 낯선 언어와... 그리고 절망하는 것들이 정말 실감나더라고요. 그런 한편, 그런데 그 영어가 저렇게 짧은 기간 연수 받는다고 된다고?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사람들 어학연수 한 달 가는거... 그게 다 공부가 되니까 그만큼 가는거겠죠?
자도 님, 이 영화가 매디슨카운티의 다리보다 백 배 낫다는 말씀에 천 번 공감합니다!! ㅋㅋㅋㅋㅋ
하여간 남편하고 헤어지는건 아니지만 이제 영어도 할 줄 알고 자신이 배워서 뭔가 해냈다는 자부심도 있으니 그 가족 안에서의 위치와 관계도 조금 달라지겠죠? 하여간 배워야 합니다!!

자도 2025-01-10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이혼 안 한게 느무 맘에 들었는데 그 이유가 설정상 이혼까지 할 포인트도 없었지만은(저 정도면 ‘남의 편‘ 치고 준수하지 않나...) 무엇보다...
여자는 배워야 한다! 는 강한 동기를 심어줬다는 것입니다!!! 그 프랑스 남자랑 잘 되는 건 판타지고 주체성 상실이고 그렇지 않습니까? 최악은 매디슨카운티지만(그건 잘 되지도 않잖아. 끝이 뭐야 이게.) 여자는 이쁘다고 접근하는 남자와 잘 되어서는 안 됩니다. 친절하면 답니까? 어디서 공개장소에서 이쁘다고 발표를 해. 신성한 배움의 자리에서. 그리고 여자가 클라이맥스에서 연설하고 끝나는 거 대찬성입니다. 배운 거 과시하고 주변인을 각성시킨다. 완전 좋아.

다락방 2025-01-10 09:29   좋아요 1 | URL
저도 그 프랑스 남자랑 잘되는 건 영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내 옆의 나쁜놈 버리고 좋은놈 찾아간다는 것 같은, 그러니까 일종의 남성의 여성구원서사 같거든요. 이 남자 아니면 저 남자라도 있어야 되나? 라는 생각을 심어주는 것 같아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공개석상에서 무시한 남편이 너무 싫어서 에잇, 갖다버려! 이런 마음이 되었던 겁니다. ㅎㅎ
그렇지만 마지막에 영어로 발표하고 주변인 각성에 스스로의 배움에 대한 성취감까지, 그것이 저도 너무 좋습니다. 그건 분명히 그녀를 그리고 주변인들을 변화시킬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남편도 변화하겠죠? 아내를 그리고 아마도 다른 여자들까지 달리 보게 되는(가능성을 품은 개인들) 긍정적 효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만, 에, 또 그렇지 않은 남자들도 많으니까.. 아무튼 자도 님도 재미있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무려 dvd 까지 사셨는데 재미 없으면 낭패였을텐데 말이죠. 후훗.

자도 님, 다른 얘기인데, 혹시 산드라 블럭과 맬리사 맥카시 주연의 <히트> 라는 영화 보셨나요? 안보셨다면, 이것도 추천합니다!! (갑분영화추천 ㅋ)

자도 2025-01-1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감사합니다. 또 열심히 구해서 보겠습니다. 히트!

그리고 그 남편 말인데... 이게 애매해요. 계속 통역을 해주던 걸로 봐서 자상하다고 착각할 수 있는 남자거든요. 일어나서 ˝내 부인 영어 못해.˝ 발표도 무시가 아니라 디펜스 쳐준 거일 수 있거든요. 근데 이게 남성 가부장 지 관점에서 배려란 말입니다. 근데 우리 샤시가 ˝니가 나 학원 보내줬어봐. 니 통역이 뭐 필요하니? 나도 너만큼 브레인이라는 게 있다. 봐봐라.˝ 이렇게 행동으로(!) 보여줬어요!!! 아유 속 시원해. 아유. 체증 내려가. 그리고 남편 반성하는 눈빛 봐서 꼴통은 아니더라구요. 꼴통들은 거기서 삐져야 됩니다. 지 배려 몰라줬다구. (현실 남자들 이렇다. 진짜다.)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
김지원 지음 / 유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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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 식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 나는 한가로이 텔레비젼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 영화의 도입부를 보게 됐는데, 영화에서는 여자 등장인물이 남자 주인공인 킬러에게 사건을 의뢰하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내게 보이는 건 남자 주인공의 얼굴과 여자 주인공의 가슴이었다. 화면의 앞부분은 여자 주인공의 살짝 드러난 가슴 그 뒤에 남자주인공의 얼굴인건데, 영화의 흐름으로는 남자주인공이 여자등장인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았지만, 그걸 빙자해 시선을 여자의 가슴에 고정시키려는 게 느껴졌다. 그게 너무 불쾌했다. 보다말고 이 장면에서 내가 느끼는 불쾌함에 대해 설명해줄 책이 있지 않을까, 싶어 나는 영화보기를 멈추고 내 책장 앞으로 가 섰다. 지금의 내 기분을 적절하게 표현해준 어떤 책이 내 책장 안에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책을 아마도 미리 사두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거다. 그렇게 꺼낸 책은 '박정자'의 [시선은 권력이다] 였고 바로 그 자리에서 읽기 시작했다. 책은 내가 기대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생각하지 못했던 참신한 내용이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또 생각해보지 못한 다른 관점을 보여주어 밑줄도 그어가면서 읽었다. 기대한 걸 얻진 못했지만 얻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걸 얻었던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가 저자의 생각에 온전히 동의하는 일이 얼마나 될까? 어느 정도 공감하더라도 또 어느 부분에서는 나랑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이건 좀 아닌데, 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는게 독서가 아닌가. 그런데 '김지원'의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에 있어서라면, 나는 독자로서 저자의 생각에 백프로 동의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김지원의 말은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김지원은 책의 효용에 대해 얘기한다. 우리나라 독서량이 매우 적다고 하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읽기 자체와 멀어진 것은 아니며, 오히려 SNS나 유튜브, 인터넷의 기사등을 통해 읽기 자체는 더 늘었다는 사실부터 얘기한다. 그런데 독자가 읽기를 원하는 건 양질의 글이라는 당연한 사실도. 대충 훑고 읽다 말게 되는 이유는 수없이 만나게 되는 텍스트들이 모두 이 글과 저 글의 짜집기이며 그로 인해 글이 담고 있는 정보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거다. 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지만, 거기에 정말로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진짜 정보는 얼마나 되는가. 정보 면에서도 그리고 지식 면에서도 저자가 연구하고 조사하고 깊이 생각한 책만한 것을 따를 것은 없다고 얘기하는거다. 원천적 정보, 정확한 정보가 거기, 책에 있다고. 책이야말로 정보의 순도가 높다고 말이다.


그뿐인가. 책은 지식을 얻는 최고의 수단이며 심지어 읽는 동안 광고에 눈을 뺏기지 않아도 된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하나를 얻으려고 펼쳤다가 곁가지로 뻗어가는 수많은 다른 것들을 얻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단순히 하나의 현상을 보고 그치는게 아니라 왜, 어째서를 더 파고 들어가게 만드는 것은 책이라야 가능하다. 그렇게 책에 대한 예찬에 이어 그 책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의 서문과 그 책들이 잘 정리되어 있는 도서관까지. 알고자 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우리가 책을 도구로 삼는다면 언제나 그 이상을 가져가게 될거라는 거다.


여기 어디 틀림이 있을까. 나는 이 모든 책에 대한 말들에 동의한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에 대해 답을 구하고 싶다면, 그 때도 역시 책으로 향하면 된다. 그러면 책은 나를 원하는 답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그보다 더 멀리 데려가기도 한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길로 나를 데려가기도 한다. 


저자의 책에 대한 의견에 모두 동의하면서 나는 꼭 한가지를 더하고 싶다.

그건 책속에 '이야기'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다. SNS 를 통해 보여지는 단편적인 정보와 혹은 단편적 이미지들을 통해 우리는 그 게시물을 올린 사람의 인생에 대해 멋대로 추측하게 된다. 그들의 행복과 불행 가난과 부유함을 순식간에 판단하게 되는거다. 그 사진 뒤에 그 사람의 기분과 행동이 있고 나아가 삶이 있다는 것까지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책에는 그 뒤에 있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루이스 어드리크'의 [사랑의 묘약]에서는 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나서 고통스러워하며 무얼할까 고민하다 감자껍질을 벗기고 또 벗기는 여자가 나온다. 어떤 사람은 감자 껍질을 벗긴다는 단순한 행위에 남편이 떠난 후의 고통을 담았다는 것을, 그 이야기를 책이 들려줄 수 있는 거다. 책에는 이야기가 있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이 장애인의 지하철 시위에 대해 비문명적이라 말했다는 자극적 기사가 나오면 그에 호응하며 역시 시위에 참여한 장애인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덧대진다. 그러나 '박경석'의 [출근길 지하철]을 읽으면, 그 지하철 시위를 하기 전까지 장애인들이 얼마나 오래 수많은 방식으로 싸워왔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신경 쓰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도. 기사의 타이틀만 보고 비난하기는 쉽고 우리는 몰랐을 때 혐오하기 쉽다. 그러나 행위자의 행동 이면에 그 사람 고유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소식까지 인터넷의 수많은 기사 오려붙이기 혹은 요약하기가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리가 '왜'를 더 알고 싶다면 책을 펼쳐야 한다. 누군가의 생각없는 혐오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을 펼쳐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눈앞에 보이는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의 뒤에 숨겨진 그 사람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른 무엇이 아닌 책이 들려줄 수 있다. 그게 사람들이 '굳이' 책을 쓰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자 하는 이유일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나는 우리나라 독서 인구가 적은 이유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책을 일단 펼쳐서 읽으면, 그래서 그 안에 담긴 정보와 지식과 무엇보다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다음 책을 그리고 또 다음 책을 자꾸 찾아서 읽게될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몰라서 그렇지, 일단 책이라는 문을 열어 그 안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한 권이 두 권이 되고 두 권이 열두권이 되는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정보와 지식 그리고 이야기에 더해, 답을 구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 때문에도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책장 가득 다 읽지도 못하면서 가득가득 책을 쌓아두는 건, 언제든 내가 가진 물음에 기꺼이 답해줄 수 있는 어떤 책들이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나의 이 의문에 답해줄 책이 내 책장에 있을 것 같은데? 하고 책장 앞에 서서 책등을 살피곤한다. 그렇게 책을 꺼내어 답을 찾을 때도 있지만 답을 찾지 못할 때 조차도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게 가능해진다. 하나를 알고자 하면 조건없이 심지어 광고도 없이 그보다 많은 걸 내어주는게 책이다. 김지원은 내내 그 얘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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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2-23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다...
책을 마구 쌓아둘 핑계로 아주 좋아!!!!!!! ㅋㅋㅋㅋㅋ
락방아 근데 이 글 서체가 평소랑 좀 다르구나?! 작업실 출근 안 함?!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12-23 10:57   좋아요 2 | URL
작업실 출근 햇습니다!! 이 서체가 더 좋은것 같아요. 노안에게 좋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24-12-23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4-12-23 1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한민국 온 국민 독서장려위원회 회장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저도 서체 보고나서 약간 놀라서, 어? 라고.... 말했답니다. 노안은 슬프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12-23 11:40   좋아요 1 | URL
대한민국은 나를 국민독서장려위원회 회장으로 모시고 연봉 일억 맞춰줘라! 그러면 내가 이 회사 퇴사한다!! ㅋㅋㅋㅋㅋ

2024-12-23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4-12-23 11:44   좋아요 0 | URL
관용차 필요없다! 연봉만 일억으로
맞춰줘라! 맞춰줘라! 맞춰줘라!!! 🔥🔥🔥

감은빛 2024-12-24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북플로 이 글을 읽으니 다른 분들이 서체 언급을 하시는 걸 이해하지 못 하는군요. 나중에 웹으로 다시 들어와봐야 겠군요.

저는 사실 이런 류의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뻔히 다 알만한 이야기라고 미리 생각해버리거든요. 뭔가 일부러 가르치려고 하는 책들. 이건 몰랐지 라는 느낌의 책들엔 잘 손이 가지 않아요. 이 책도 제목만 봤으면 절대 관심이 생기지 않았을텐데 다락방님의 글을 읽으니 궁금하네요.

다락방 2024-12-26 07:57   좋아요 0 | URL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저도 읽기를 즐겨하지 않지만 그래도 또 읽다보면 그 안에 내가 모르는 얘기들이 나오기도 하고, 당연해서 오히려 무시했던 것들을 다시 새겨주기도 해서 저는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책이든 읽고나면 반드시 얻어가는게 있는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