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들려줘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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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 제목은 [이야기를 들려줘요] 이고, 제목처럼 책 안에서는 '이야기를 들려줘요' 라는 대사가 많이 나온다. 올리브는 코비드 이후 이 마을에 이제 거주하기로 했다는 작가 루시 바턴을 불러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고 또 루시 역시 올리브에게 자신이 보거나 경험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들의 만남은 처음부터 호감적인 것도 아니었고 때로 삐끗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가끔 만나 자신의 삶에 혹은 타인의 삶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는 일은 계속된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기록되지 않은 삶과 그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계속된다.

밥은 좋은 친구 루시를 만나 늘 이야기를 한다. 함께 산책하면서 그들의 근황을 나누고 일에 대한 얘기도 나눈다. 사실 밥이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는 것도 친구인 루시만 안다. 이 나이에 이런 우정이라니, 감사하면서, 아내에게는 속이는 일을 우정인 루시에게는 말한다. 그러나 우정을 가장한 사랑임을 밥은 깨닫고 있고 루시 역시 마찬가지. 그리고 별 관계없는 제삼자의 눈에도 이들은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게 보인다. 어쨌든, 그들도 이야기를 한다.


뿐만 아니다. 모두 이야기를 한다.

밥이 누구를 만나든 그리고 루시를 만나든 그들은 상대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말하고 또 상대 역시 그래, 무슨 일이 있었어, 얘기해봐, 라고 한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한다는 건, 즉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에게 일어난 일, 내 주변인에게 일어난 일 혹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까지. 이야기를 들려줘, 라는 요구가 없어도 우리가 타인과 섞여 살아가면서 하는 일이 그거다. 그게 전부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들어주는 일.


그래서 이 책은 초반에 좀 작위적으로 읽힌다. 굳이 이렇게 이야기를 들려줘, 라는 말을 할 필요가 있나, 굳이 이러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나, 하면서 내심 좀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되는거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것이 꼭 필요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동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을 읽어왔다면 마주쳤을 사람들이 이 책 안에 있다. 올리브도, 밥도, 루시도, 이저벨도 이 책안에 있다. 주인공으로서의 그들이 자신의 말들을 그동안 해왔다해도, 우리는 그들을 다 알 수 없다. 자신의 말을 하는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도 책 안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생각하고 그들이 말하는 것만 듣는게 아닌, 다른 사람이 보는 그들에 대한 것도 알게 되는거다. 어떤 사건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이 책안에서 더 잘 알게 된다. 그러니까 단순히 이 사건이 슬프다, 라는 식의 결론이 나는게 아니라, 아 그것이 이 사람에게 이런 식의 생각을 줬고 그것을 이렇게 받아들였구나, 하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은 이런식으로 이어진것이구나, 다른 사람들과 그래서 이렇게 연결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더 알게 되는거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냐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너에게 그리고 너가 나에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그런데 꼭 마주한 너와 내가 아니어도 우리의 삶은 연결되어 있다. 어떤 이는 특별히 운이 좋고 어떤 이는 다른 사람들의 죄를 먹는 사람이 되어 그들의 옆에 있게 된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쉽게 잊혀지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삶에 소중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되는데, 그렇다해도 우리가 마주한 순간 그리고 마주하지 않은 순간까지도 우리는 서로의 의미가 어떤 식으로든 되고 있는 것이다. 


상처가 있다. 그리고 죄가 있다. 그걸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상처와, 죄와, 악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옆을 지키는 사람이 있고 한걸음 떨어져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시간을 견뎌온 그 사람의 삶을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부둥켜안는 사람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늙어가고 어떤 식으로든 상실이 일어나는 것이 자명한 이치이다. 상실은, 나이가 들었다고 덜 아파지는게 아니다. 고통을 견뎌오며 살아왔던 삶, 그러나 어느 순간 더이상은 버티지 못해 끝내버리고자 하는 삶이 있고, 이것은 분명 아프지만 나는 괜찮을거야, 하고 이를 악무는 상실에 대한 견딤이 있는데, 그게 이들의 이야기들 속에 다 들어있어서, 사소한 일에도 자꾸만 눈물이 고인다. 일전에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을 읽으면서, 아, 진짜 이 작가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하는거지, 했는데, 이번에도 그렇다.


그러니까 올리브는, 매일 이저벨에게 신문을 읽어준다. 그런데 이저벨의 딸이 이저벨을 자신의 집 근처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이 이별을 받아들이기 위해 올리브는 애를 쓴다. 아흔살이 넘은 올리브지만, 이저벨과의 헤어짐이, 이제 더이상 신문을 읽어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힘이 든다. 작별인사를 하러 가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저벨이 떠나는 날, 이저벨로부터 연락이 왔다.


"올리브, 내가 싫다고 했어요. 마침내 내가 말했어요. 애들이 이런저런 양식에 서명할 때 내가 그냥 '나는 안 가' 하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애들이 믿지 않는다는 눈치였고, 결국 내가 아르준에게 나가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리고 에이미에게 말했어요. '잘 들어, 에이미. 네가 나를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 거 알아. 하지만 메인은 내 집이야. 네가 아기였을 때부터 내 집이었어. 남편하고 함께 지낸 내 집이었고, 그리고 지금은 여기가-심지어 요양원이라 해도-내 집이야. 내겐 다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올리브라는 친구가 있어. 에이미. 나는 안 가. " -p.271~272



이 부분을 읽다가 카페에서 눈물이 터졌다. 나는 언제나 손수건을 준비하고 다니기 때문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책에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한 일은, 사람들의 삶과 관계와 그것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때로는 그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들을 포기하기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 섹스로도 나타난다. 이 섹스가, 마거릿의 입을 빌자면, "섹스가내겐 에너지를 주는데, 당신은 재우네." - P244 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하는 순간 사랑을 멈추게 될 수도 있다. 진정한 우정에 감사하다가 폭발할 것 같은 자신의 사랑을 감당해야 하는 밥에게, 짐은 이렇게 충고한다.



"이 글을 읽었던 게 잊히지 않는데 오래전에 읽은 거지만-그 글에서 유명한 영화감독이 말했어. 대화보다 더 섹시한 건 없다. 나는 늘 그걸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너와 루시가 하는 게 그거야-대화를 하지. 좋아, 이제 잘 들어, 보비.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마. 그런 대화는 하지마. 그렇게 하면, 서로 마음을 고백하기 시작하면, 토끼처럼 섹스를 하게 될 테고, 너희의 세상 전체가 무너져내릴 거야. 마거릿이 그것 때문에 죽게 될지도 모르고, 심지어 윌리엄도 죽게 될지 몰라. 그러니 하지 마, 보비. 그럴 만한 가치가 없어. 그러지 마."

"알고 있어. 하지만 그녀를 원해, 지미. 오, 맙소사."

"이겨내야 해.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내 말 새겨들어. 내가 유경험자야. 그리고 너를 아는데, 너는 그 사실을 끌어안고 살 수 없을 거야. 아주 어렵겠지만, 그녀를 계속 사랑하면서 살 수는 있어. 하지만 그녀를 안으면, 그런 너로는 살 수없을 거야. 너는 밥 버지스야. 나는 너를 알아." - P433-434



중요한 건 이거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거, 그리고 그중에 아주 많은 부분들이 기록되지 못하고 있다는 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그걸 알고, 그래서 그걸 해준다. 수없이 등장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주며, 그래서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았으나 사실 그 안에 곪아있던 상처에 대해서 꺼내놓고 말을 해준다.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정말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런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삶은 나쁜 삶이었나? 우리는 한 사람에 대해 어떤 것도 함부로 말할 수 없으며, 그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기록되지 않고 말하여지지 않은 삶에 대해서 들여다보고 그것을 꺼내준 것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한 일이다. 내 삶을 사느라 들여다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을 이 책이 해내는데, 그건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가능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았던 삶들이, 그리고 부서진 사람들이 여기 있고, 그것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 그게 자꾸 눈물이 나서, 나는 [바닷가의 루시]를 읽을 때 그러햇던 것처럼, 또다시 묻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하나요?



"아니. 그건 악이 아니야, 래리 부서진 사람들이지. 부서진사람이 되는 것과 악이 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 혹시 네가 그걸 모른다면 말이다. 그리고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부서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거야. 내가 네게 이걸 말해주는 이유는, 너는 그런 부서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살면서 운이 아주 좋았기 때문이야."  -p.429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먼저 읽은 친구가 있다는 것 때문에 기뻤다. 하, 이 슬픔과 안도의 오락가락하는 감정들을 친구는 벌써 겪었던거겠지? 그리고 또 외로웠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삶을,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져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또 해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전작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전작할거다!!





그들은 친구였고, 그게 다였다. 그들은 인생 후반기에 이런 우정이 찾아와준 것에 감사할 만큼 나이가 들었고, 마거릿과 윌리엄도 두 사람의 우정을 고맙게 생각했다.
동반자들에게 정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기면서그들의 삶이 훨씬 수월해진 것이다.
밥과 루시는 실제로 안 시간보다 서로를 훨씬 더 오래 알고 지낸 듯 느꼈다. - P45

우리는 삶이 우리의 통제 안에 있기를 바라지만,
전적으로 그럴 수는 없다. 불가피하게 우리보다 앞서 존재한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 P48

그들은 거의 네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해는 이미 졌고, 밥은 배가 고팠다. 하지만 그는 또한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아주 깊은 상실감과 사랑으로 채워진 사람이었고,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이제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 하지만그녀는 팬이었고, 그녀가 방안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그는 그녀를 자기 삶 속에 둘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그녀에게 같이 집으로 가서 저녁을먹자고 말했을 때 그녀는 "아니, 밥. 마거릿에게 무례를 범하고 싶지 않아. 그녀는 내가 코비드에 걸렸다고 생각할지도모르고, 그냥음, 고마워. 하지만 안 갈래" 하고 말했다. - P116

밥은 루시를 흘끗 보았고, 그녀가 어떤 생각에 깊이 잠겨있다고 느꼈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는데, 평소보다 더느리게 말했다. "밥, 들어봐요. 오래전에, 어렸을 때 어떤 책을 읽었는데 거기 흑백 소묘가 수록돼 있었어요. 그러니 아마 일종의 우화집이었겠죠. 기억하는 건 한 남자의 그림이전부인데, 나이를 좀 먹은 남자였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허리가 조금씩 더 굽었어요.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그가 하는 일이 사람들의 죄를 먹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나는평생 그걸 잊지 않고 있었어요. 올리브가 어제 내게해준 이야기가 죄를 먹는 사람에 대한 것이었어요." - P144

이 시점에 밥과 아내의 관계는 그 성격이 모호하고 아리송했다. 그녀는 그를 안아주었는가? 그는 그녀를 안아주었는가? 솔직히 그렇게 자주는 아니었다. 그들은 친밀한 관계를유지했지만, 밥은 마거릿이 예전만큼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밥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여전히 이따금 친밀한 관계를 가졌지만, 그것이 끝나면마거릿은 밥을 잠시만 끌어안았고, 밥이 잠든 사이 그녀는일어났다. 그녀는 오랫동안 이것에 대해 농담했다. "섹스가 내겐 에너지를 주는데, 당신은 재우네." - P244

하지만 서로를 포옹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아니, 그들은 더이상 그렇게 많이 포옹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밥이 캐서린 캐스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를 감싼 그녀의 두 팔을 느낄 수 있는 것. 그는 그런 순간들이 그저 고마웠다.
이런 일들은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는 것 같다. 노인들에대해, 노인들이 다른 사람의 손길을 얼마나 고마워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해셀벡 부인만 해도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피부에 닿는 인간의 손길 없이 어떻게 살까? 샬린 비버는 어떻고? 사람들은 그것 없이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손길이나 포옹의 부재가 어떤 타격을 주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아주 많은사람들에게 부재하다. - P244

그가 말했다. "당신과 함께 있어서 좋아요. 루시. 당신은 내게 음, 뭐랄까, 삶으로부터의 휴식을 주는군요."
"죄를 먹는 것으로부터의 휴식."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주 뿌듯한데요." 그리고 그녀가 덧붙였다. "나도 정확히 똑같이 느껴요. 다만 나는 죄를 먹지는 않죠." - P261

"아니. 그건 악이 아니야, 래리 부서진 사람들이지. 부서진사람이 되는 것과 악이 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 혹시 네가 그걸 모른다면 말이다. 그리고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부서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거야. 내가 네게 이걸 말해주는 이유는, 너는 그런 부서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살면서 운이 아주좋았기 때문이야." - P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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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6-07-0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원서 읽고있거든요! 저도 첨엔 루시와 올리브를 마주하게 한 게 좀 적위적이지 않나 했는데 읽을수록 점점 더 좋더라구요. 정말 스트라우트 어쩔거예요!!

다락방 2026-07-06 12:41   좋아요 1 | URL
제가 [바닷가의 루시] 읽고 쓴 리뷰를 봐도 자꾸 눈물이 난다고 했더라고요. 그런데 이 책 읽으면서도 그랬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가만가만하게.. 독자의 감정을 쥐락펴락 하는걸까요. 정말 대단합니다. 게다가 늙어가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부재한 것들에 대해서도 너무 잘 살려줘서(포옹!) 정말 정말 좋았어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진짜 만세만세만만세 입니다!! >.<

단발머리 2026-07-07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 읽으면서 저도 이 책 읽었던 시간들이 떠오르더라구요.

예전이라면.... (저 이미 늙었나요?ㅋㅋㅋㅋ) 저는 밥의 다른 선택을 지지했을거 같아요. 마가릿을 떠나 새로운 사랑을 완성하는 거요. 이 사람이 진짜 내 영혼의 단짝이다. 그런 거요. 근데 밥의 형 말을 읽는데, 이런 선택이 반드시 루시를 덜 사랑해서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의 선택도 충분히 용감한 거라는 거. 물론 그런 선택을 했을 때의 아픔과 고통은 온전히 밥의 것이겠지만요.
저도 이 책 참 좋았어요. 애잔했던 순간 순간이 기억나요.

다락방 2026-07-07 08:53   좋아요 0 | URL
밥의 형 말대로, 루시를 안지 않았기 때문에 루시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형이 해준 말이 진짜 좋았어요. 그리고 밥이 래리한테 해준 부서진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요. 부서진 사람들에 대한 부분이 원서로는 어떻게 표현되어있을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밥의 선택, 루시를 안지 않는것, 은 용감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더불어 마가릿의 곁에 있기로 한 것이기도 하지요. ‘

이제 The Things We Never Say 시작했습니다! 앞에 조금 읽었는데, 이건 루시와 올리브가 안나오는건가요????? 그나저나 번역본이 없어서 낭패입니다. 하하하하하.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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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아직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 책이 어떻게 시작하는지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 같다.

대학 교수인 '도이치'는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에 아내, 딸과 함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고, 후식으로 마시게 된 차tea 티백 꼬리표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한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p.19


책 속에 나온 이 구절의 번역은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p.44


이다.


티백 꼬리표의 이 구절에는 괴테가 한 말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괴테 연구자의 일인자로 일본에서 잘 알려진 도이치인 만큼, 이 구절의 출처가 어디냐는 딸의 물음에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라고 짐작해 말해주지만, 그 때부터 도이치는 이 말을 정말 괴테가 했는지, 그렇다면 어디에서 했는지 궁금해져 알고싶어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괴테 관련 책들을 훑어보고, 또 자기가 썼던 괴테 관련 연구서도 찾아보지만, 이 구절의 출처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아는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혹시 괴테가 했다는 이 말을 아느냐, 안다면 출처를 알려달라 고 요청한다. 도착하는 답신들 중에서 그 구절의 출처를 정확히 밝혀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 말 괴테가 할법한 말이네, 라는 답을 들었다. 결국 그는 이 구절의 정확한 출처를 알지 못한채, 티비 방송에 나가서 괴테가 한 말이라며 이 구절을 말해버리고, 그리고는 정확한 출처를 모른다는 학자적 양심에 괴로워한다.



제목이 자기계발서 같아서 읽을 생각도 안했던 책인데, 나중에 이 책이 소설이라는 걸 알게 됐고, 아 소설이구나 하면서도 딱히 읽고싶어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금희가 한 유튜브 프로그램에 나와 이 책 얘기를 하면서, 괴테를 향한 집착에 시달리는 이 주인공을 매력적이라고 하는거다. 당시 다른 패널들은 '집착 너무 싫어!' 하고 끔찍하게 여겼지만, 나는 이금희의 그 말이, 이 책을 읽은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이었으므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냥 들으면 집착하는 남자, 집착하는 인간 에서 훅, 비호감이 오지만, 그러나 이금희가 이 책을 읽고 그 집착을 좋다고 말했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그러니까 그 맥락을 안다면 나 역시도 이금희의 말에 동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니 역시나 단순하게 '집착하는 사람 싫어'로 말할 수는 없었다. 책 속에서 괴테를 향한 연구를 계속해온 사람인만큼, 자신이 알지 못하는 괴테의 어떤 말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그리고 그것의 출처를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그 집착은, 학자의 지적 욕망과 또 학자의 양심에서 온 것이었다. 막상 뱉어놓고도 이것은 출처를 모르는데, 하고 괴로워하는 지점에서는 그야말로, 모름지기 학자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거다. 무언가를 알고 싶고, 그래서 알고 싶은 걸 알기 위해 책을 뒤져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그 집착을, 나는 싫어하지 않았다. 나는 이금희의 그 '좋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게다가 나 역시 정말 이 문장이 괴테로부터 온것인지, 그렇다면 그 출처가 어디인지 같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어서 빨리 출처가 나오기를 혹은 그것이 괴테로부터 온 것은 아니었다, 라는 말이라도 나오기를 바랐다. 끝내 찾지 못하다가 티백 회사에 전화를 걸고, 명언 사이트도 들어가보고, 그러다 결국 독일로 넘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집착이었지만, 그렇게해서 답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지 않은가!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었던 건 두 가지였다.


첫번째는 학자 가족이다.

도이치의 장인 어른 역시 연구하고 논문을 쓰며 대학교수였던 사람이고, 그는 자신의 딸을 제자에게 소개시켜주어 그들이 결혼을 하게 된거다. 그런 도이치와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딸 역시 대학원생이고 논문을 써서는 할아버지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학자 가족, 지식인 가족은 사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었으므로, 나는 항상 이런 이야기가 인상깊고, 또 그들의 생활에 대해 상상해보게 된다. 그것은 어떤 삶일까. 자라면서 공부 못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을까?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처럼, 부모가 외국어로 된 서적을 읽고, 하루중 어느 한 때는 다같이 모여 책을 읽기도 하고, 다른 연구생들을 지원하기도 하는 그런 삶속에서, 소년은 자연스레 음악 공부를 아무때고 하곤 했다. 그런 삶은 내가 살아본 적 없는 삶이어서 궁금했고, 내가 책 읽고 글쓰는 어른이 된만큼 어쩌면 내 자식에게 공부하는 어른의 모습을 실생활에서 보여줄 수도 있었을테지만, 그런데 자식이 없다.


두번째는, 사실 이게 더 중요한데,

괴테의 쓸모는 무엇인가, 하는 거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괴테를 연구하는 것의 쓸모는 무엇인가,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괴테를 그렇게나 깊이 연구하는 쓸모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것을 생각했다. 그것이 궁금했다. 도이치가 알고 싶어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그리고 독일까지 날아가는 과정 모두 이해할 수 있다. 만약 같은 입장이었다면 나 역시 그렇게 대응했을 거다. 그런데, 굳이 왜 그래야 하는가이다. 이건 그것이 쓸모 없다고 말하려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인간에게는 빵만 필요한게 아니다. 장미도 필요하다. 안다. 인간에게는 밥만 필요한게 아니라, 노래도 필요하고 그림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안단 말이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다양해서 어떤 사람은 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어떤 사람들은 밥을 먹고 또 서핑을 하러 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숲속의 벌레를 연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루종일 춤을 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괴테를, 버지니아 울프를, 셰익스피어를 연구한다. 그러니까, 왜, 왜 연구하느냔 말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지젝을, 아감벤을 연구하느냐 말이다. 왜 그토록이나 깊게 연구하느냐고. 평생을 읽고 쓰면서 한 학자에 대해 혹은 하나의 학문에 대해 왜 그토록 깊이 연구하고 몰두하느냐 말이다. 그것의 쓸모는 어디있느냐 말이다. 괴테를 연구하면, 괴테를 아주 깊게 연구해서 괴테가 한 모든 말들을 알고 또 그 말들의 출처를 알고 있다면, 그것이 인생에 어떤 도움을 주느냔 말이지. 물론, 같이 연구하는 사람들과 풍부한 대화를 할 수 있다. 세미나 같은 공식적 만남에서도 그렇지만, 사적인 대화속에서도 서로 의견을 나누고 지식을 나누면서 풍부하고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다. 풍부하고 깊은 지적인 대화는,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며 사실 꽤 좋다. 나를 채우는 느낌. 그렇다면, 이것 때문에, 괴테를 그토록이나 깊게 연구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깊은 기쁨을 느끼기위해, 충만함을 느끼기 위해 누군가는 버지니아 울프를 연구하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걸까? 나는 이게 궁금한거다. 다시 한번 노파심에 말하지만, 그것이 쓸모없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하려는 말은 그게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굳이, 왜 인간은, 그토록 지적으로 가려고 하느냐, 그것이 궁금하다는 거다. 그렇게까지 지적이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는데, 굳이, 왜? 나는 그게 궁금한거다. 그 답을 듣고 싶고 찾고 싶고 알고 싶다. 그것이 쓸모 없어서가 아니라, 그 쓸모가 어디에 있는지, 그게 궁금한거다. 



그것은 이 책의 작가 스즈키 유이가 이 책을 쓴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2001년 생의 이 젊은 일본 작가 스즈키 유이는, 연간 1,000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이라는데, 도대체 왜 그토록 많은 책을 읽고 또 이렇게 괴테의(그리고 다른 학자들의) 말을 잔뜩 인용한 이 책을 기어코 써냈는가 말이다. 



인간, 참 신기하지 않은가. 

인간, 참 신비롭지 않은가.



내가 이 책을 읽고 괴테 연구의 쓸모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결국 그 답을 알아내지 못했어도, 이런 의문을 가진 것만으로도 역시 책읽기는 좋다는 생각을 했다. 책읽기를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계속해서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바로 당장 답을 얻지는 못해도, 언젠가 어느 순간에 답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계속 읽어야한다. 



그나저나 도이치는 책 속에서 일본의 괴테 연구 일인자라는데, 나도 일인자 같은거 하고 싶다. 과연 무엇으로 하게 될까. 뭐가 됐든 하고 싶다.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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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06-21 22: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책 읽고 독후감을 썼는데요, 앞으로 그 상 받은 책은 안 읽기로 했습니다.

다락방 2026-06-21 22:5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이 책도 상찬이 과하더라고요. 딱히 재미도 없었고요..

blanca 2026-06-22 10:06   좋아요 0 | URL
저는 일본 서점대상과 나오키상을 따라 읽기로 했습니다.

다락방 2026-06-22 10:17   좋아요 0 | URL
이거 완전 베스트셀러고 남들 다 읽는 것 같았는데, 그 현상 자체가 만들어진걸까요. 이 책이 왜 베스트셀러인지, 왜 책 좀 읽는다는 평론가들이 극찬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잠자냥 2026-06-22 11:00   좋아요 0 | URL
폴스타프 님 그 책은.. 혹시 헌치백? ㅋㅋㅋ

Falstaff 2026-06-22 11:54   좋아요 1 | URL
넵! 헌치백 포함 세 권 중에 두권 폭망, 한권 미달. 팔자소관입니다. ㅋㅋㅋ

단발머리 2026-06-2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언가를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 너머에도... 인간 본연의 존재 증명과 인정 투쟁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궁금증의 해소를 위해 쏟아내는 그 에너지가 자신의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궁금한 게 적어지면 혹은 없어지면, 세상 모든 일에 심드렁해지면, 늙은거라 하잖아요. 살아 있고, 살고 싶은 마음의 표현 중 하나가 이금희씨가 말했던 ‘집착‘으로 표현된 거 같아요.

이 책이 소설인지 몰랐어요 ㅎㅎ 저도 오늘 하나 알고 갑니다^^

다락방 2026-06-22 10:22   좋아요 1 | URL
인간이란 무엇인가, 정작 저도 인간이면서 여전히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얼마전에 ‘Why am I here‘ 라는 질문을 마주했는데, 그 답을 알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왜 내가 여기에 있는가를 찾아가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결국 모든 학문은 철학으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blanca 2026-06-2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초창기에 구입해서 저는 완독하지 못했어요. 독자에 대한 소구력을 지니는 지점을 저는 찾지 못하고 일부만 읽어서 뭐라 말할 처지는 못되지만, 다락방님의 진지하고 좋은 리뷰 잘 읽고, 이런 내용이었구나, 하고 갑니다.

다락방 2026-06-22 10:18   좋아요 0 | URL
저는 주인공 도이치가 결국 그 출처를 찾아내는지가 너무나 궁금해서요, 그래서 끝까지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말(?)이 마음에 들었어요. 오호라, 이걸 이렇게 풀어낼 수 있구나, 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거기까지.. 딱히 재미는 없었습니다. 음.. 제가 생각하기에, 이 책 보다 제 리뷰가 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흠흠. (먼 산)

잠자냥 2026-06-22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길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이 페이퍼 보고 그 후로.... 저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괴테가 정말 저런 말을 했나 싶어서 저런 말이 나올 법한 작품들.......
베르테르, 수업시대, 편력시대, 친화력, 시와 진실, 괴테와의 대화 등등 찾아봤는데....
괜히 찾아봄 안 나오잖아! 제길.....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생각엔 왠지 저거 일본 특유의 그 짜깁기 책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원서를 2차 가공하는 그런 책에서 괴테를 인용하면서 저자가 제멋대로 바꾼 문장을 읽은 게 아닌가 싶기도.

저 문장만 보면 포춘쿠키 안에 들어가 있는 문장 같기도 ㅋㅋㅋㅋ

독서괭 2026-06-22 12:00   좋아요 2 | URL
집착냥….
카라바조 부터 알아봤다..

잠자냥 2026-06-22 12:09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착 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 이 페이퍼 어제 오후에 봤는데.... 사실 글도 다 안 읽고, 좋아요도 안 누르고 댓글도 안 달고 찾아보기 시작... 내가 기어이 찾아보고 말리라~!! ㅋㅋㅋㅋㅋㅋㅋ 이 페이퍼만 안 읽었어도 내가 어제 칸트 다 읽을 수 있었는데.....-_- ㅋㅋㅋㅋㅋㅋ

제길........ 아무튼 베르테르, 친화력,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중 하나에서 뽑아서 일본 저자가 멋대로 번역한 문구 아닐까 (나 혼자) 생각하기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06-22 12:53   좋아요 1 | URL
소설에서 괴테전문가가 못 찾을 정도면 진짜 없는 거 아닐까요 ㅋㅋㅋ 잠자일보 퀴즈대회가 잠자냥이 낸 것만 아니었어도 젤 열심히 풀었을 사람 같으니..

다락방 2026-06-23 08:51   좋아요 1 | URL
이 책을 읽는다면 답을 알 수 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음 힌트를 드리자면, 이 문장의 출처는 괴테의 책은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스포일러가 될 것이므로 여기까지만... 저도 그게 알고 싶어서 이 책을 끝까지 읽었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잠자냥 2026-06-23 10:46   좋아요 1 | URL
우웅... 이제 안 궁금해졌어요. ㅋㅋㅋㅋㅋ
저는 사실 이 책.... 괴테도 싫어하고, 아쿠타가와상 수상작도 (윗분들 말씀처럼) 심드렁해서
영원히 안 읽는다에 천 원 걸 수 있어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6-06-22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쓸모라.. 진짜 사람은 왜 당장 쓸모있지 않은 일에 이렇게 생애를 바치기도 할까요! 저도 궁금해지네요.
다락방님 북플에서는 일인자 많이 하고 계시지 않나요? 여성주의, 잭리처 등ㅎㅎ
저 책 누가 추천하는 걸 봤지만 관심이 별로 안 갔는데 역시 다락방님 글 보니 안 읽어야겠다 싶구만요

다락방 2026-06-23 08:53   좋아요 1 | URL
저는 그 지점이 인간의 신비로운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당장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데도 굳이, 부득이 그것을 한다는 거요. 그러고보면 정말로 인간은 고차원적인 동물이 아닌가 싶고요. 그래서 재미있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살아가는데 딱히 도움되는거 아닌데도 잭 리처를 읽잖아요? 아니다, 이건 도움이 되네요. 즐겁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돼지 목에 사랑
최미래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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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SK하이닉스 주식을 샀다. 너나 할것 없이 주식 얘기를 하고 뉴스에서는 매일 코스피 지수가 나오고, 하이닉스 성과금이 얼마래, 주식이 3백까지 갈거래, 하는 말들 속에, 나만 하이닉스 주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했던 터였다. 그래도 단가가 너무 높은데, 그래도 사도 될까, 망설이다가,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1,688,000원에 두 주를 샀다. 내가 사자마자 주가는 떨어졌고, 내가 바보같이 이걸 왜 샀을까, 나만 SK주식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가졌지만 마이너스 치는 사람이 됐네, 나는 역시 주식으로 돈 벌기는 그른 사람인가봐, 차라리 없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라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너 제일 높을 때 들어갔네, 라고 해서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다시 190만원 대가 되었고, 그래서 나는 40만원 정도의 평가수익을 갖게 되었다. 내가 매도를 해야 40만원이 내 통장에 꽂힐 터였다. 어쨌든 그래도, 나는 노동 없이 40만원이라는 돈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돈이 돈을 버는구나, 했다.


주변에는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있다. 그중 압권은 당연하게도 이미 가진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그는 7억의 돈을 투자했고 6억의 평가이익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7억을 투자해야 6억을 버는 것이었다. 나처럼 330만원을 투자하면 40만원의 이익일 보지만, 그러나 6억을 투자하면 7억의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텔레비젼에서도 주식투자를 하는 연예인들 이야기가 곧잘 나온다. 몇해전에 사두고 잊고 있었는데 그게 대박을 쳤대, 1억을 사두고 잊었대. 어떻게하면 1억을 사두고 잊을 수 있을까? 1억을 잊어도 되는 돈이기에 그랬겠지. 나라면, 1억을 사두고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단 1억이 없어서 살 수도 없지만, 1억은 너무 큰 돈이어서 그걸 있는지도 까먹을 수 있는 그런 형편이 아닌 것이다.


최근에 지인을 만나 또 주식 얘기를 하면서 지인 역시 삼성전자로 50만원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껌값이지 뭐, 라고 지인은 말했지만, 그런데 그 주식을 사지 않았다면 그 50만원도 없잖아, 했다. 그러자 지인은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나는 빈곤한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320만원을 투자하면 40만원의 이익을 보고, 7억을 투자하면 6억의 이익을 보는데, 그런데 너무 빈곤해서 아예 주식 투자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에게는 얼마의 이익이 있을까? 당연하게도 없다. 이익을 볼 가능성조차 그에게는 없다. 그러니까 이거다. 부유한 사람은 주식으로 6억을 벌고, 그 밑에 중산층은 주식으로 50만원을 버는데, 그런데 빈곤층은, 취약계층이거나 최저시급을 받아 온 가족이 먹고 살아야 하는 빈곤층은, 주식을 살 수조차 없어서, 그래서 수익은 제로다. 수익이 제로이기만 한게 아니라, 먹고 사는 돈도 부족하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빈부격차가 심한데 더 심해지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모두가 주식한다고 덤벼든다면, 빈부격차는 지금보다 더 심해질 것이다. 아무리 정부에서 주식 투자에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아무리 불장이라고 해도, 아무리 코스피가 오른다고 해도, 아무리 공부 없이 뭘 사도 주식의 이익을 볼 수 있다고 해도, 아무리 주식투자로 이익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 해도,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주식을 할 엄두조차 못내는 빈곤층이 있다. 주식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 주식은 여윳돈으로 하는 거라는데, 주식은 사는거지 파는게 아니라는데, 그런 말들이 아무리 들려와도 자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있다. 여윳돈이 어디있어, 사두고 잊을 수 있는 돈이 어디있어. 그러니 돈이 있는 사람들은 가만히 억대의 돈을 벌고, 없는 사람들은 엄두도 못내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빈부의 격차는 커지고 또 커진다. 있는 사람은 더 많아지고, 조금 있는 사람은 약간 더 많아지는데, 없는 사람은 계속 없다. 차이는 100이었다가 갑자기 5,000이 되어버린다. 시간이 지나면 아마도 30,000이 되고 그보다 더 크게, 또 크게 벌어지겠지. 그렇다면, 모두가 주식을 한다고 할 수 있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척 하는거 아닌가. 내 눈앞의 40만원에 일희일비 하느라, 그동안 나는 4천원의 이익조차 시도해볼 수 없는 사람들을 잊고 지내고 있다. 눈앞에 안보인다고 아니, 보지 않으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소설은 세상에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이야기하고 또 있을법하지 않은 일들을 이야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은 같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란은 것. 대기중에 습기가 너무 많아 금붕어가 지나다닌다는 마술적 리얼리즘 속에서도, 하나의 육체이지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발현될 수 있다는 이야기 속에서도, 마법 지팡이가 없던 물건을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서도, 거기에서도 인간은 사랑을 하고 배신을 하고 높은 계급을 갖고 낮은 계급으로 살면서 행복해하다가 고통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있는 이야기, 있을 법한 이야기들 속에서, 그런데 자신의 목소리를 스스로 낼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데에서, 바로 거기에서 소설은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것이다. 

만약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보기 싫다고 쉽게 눈감아 버릴 것들을, 안보인다고 무시하게 될 것들을, 그러나 소설을 읽음으로써, 아 그들이 거기 있었지, 그들이 내 옆에 있었지 하는 자각을 하게 된다.


최미래가 그리는 소설 속에서 그랬다.

최미래의 이 단편집 [돼지 목에 사랑] 에서는 계속해서 빈곤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처럼 주식으로 40만원의 이익을 본 사람이라면 겪지 않았을 이야기가, 억을 투자해서 억을 벌어들이는 사람이라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이야기가, 최미래의 이야기들 속에 있다. 몸에 남들은 갖지 않은 꼬리를 갖고 있어 숨기고 사랑받지 못하고 위축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면, 돌봐줄 사람도 없고 돈도 없는 미성년자라서, 자신의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집이 필요한 미성년자에게 빌려주는 이야기도 나온다. 돈도 없고 언제나 데이면서도 사랑에 목을 매는 사람이 나오고, 사실은 살(buy) 수도, 살(live)수도 없는 집을 마치 살 것처럼 둘러보는 사람도 나온다. 어떻게든 좀 더 낫게 살아보고자 애를 쓰지만, 그래봤자 거기에서 거기인 이야기들. 왜냐하면, 그들이 빈곤하기 때문이다. 돈을 주고 내 노동과 내 육체를 사지만, 그런데 돈 때문에 그곳을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람들이 빈곤속에 놓여있다. 안되는 줄 아는데, 이건 옳은게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빠져나가야 할 것 같은데, 빠져나갈 수 없는 사람들이 빈곤 속에 있다. 빈곤하지 않다면 그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도 있고 그들의 선택을 한심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그러나 빈곤한 사람들이 몰라서 그 안에 있는게 아니다.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아서, 빠져나가도 갈 데가 없어서 그곳에 있다. 나도 선을 넘기는 싫은데, 그러나 그 선은 도대체 어디일까 좌절하는 사람이 빈곤 속에 있다. 그래서,


빈곤이 말해져야 한다. 

빈곤이 말하여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계속 주식 으로 축제를 벌이겠지. 그 축제들 속에 감히 주식을 할 수조차 없는 사람들을 잊고 살겠지. 

그래서 빈곤이 말해져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군가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살아가고자 할 때, 그렇게 살고 있을때, 그럴때 소설은, 그리고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거봐, 너 또 잊고 있었지? 네 옆에 그들이 있어, 라고. 


빈곤을 전시하는 이야기라면 읽으면서 피로할 수 있다. 아 그만 좀.. 

그러나 빈곤을 말하여주는 이야기라면 다르다. 나는 최미래의 단편들을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빈곤이 말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소설가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소설가 뿐만이 아니다. 소설가도, 인문학자도, 사회학자도, 철학자도, 경제학자도, 정치인도, 연예인도. 이 세상에 무언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빈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만의 축제에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이 세상에 우리만 있는 것처럼 살지 않게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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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5-25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 읽으니 샐리 루니가 생각나네요. 할 말 많은데 지금 밖이라서 일단 좋아요~ 누르고 이따 댓글 달게요. 좋은 글이라, 이 글은 꼭 <이달의 당선작> 되었음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이요.

다락방 2026-05-25 15:50   좋아요 0 | URL
크- 그렇네요. 샐리 루니가 있네요! 아, 정말 노멀 피플은 특히 더 좋은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물론 친구들과의 대화도 그랬죠!). 돈 없는 남자와 돈은 있지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겠지 라는 생각을 가진 여자와의 만남이라뇨. 그 만남은 돌고돌 수밖에 없었겠지요. 어느 순간 도저히 가까워질 수도 없었을테고요. 크- 샐리 루니가 있었어요.

잠자냥 2026-05-25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인간 ㅋㅋㅋㅋㅋ 나 그 트윗 보고 나 없어! ㅋㅋㅋㅋ 달려다 말았는데 달 걸 그랬네 ㅋㅋㅋㅋㅋ 주식은 그래도 저가에 사야하는 거 아닌가요? ㅋㅋㅋㅋ 지금 사면 어떡해! ㅋㅋㅋㅋㅋ 경알못 (경제 알지 못하는 자)도 아는 상식ㅋㅋㅋㅋ) 암튼 나 없어 ㅋㅋㅋㅋ

다락방 2026-05-26 07:45   좋아요 0 | URL
저가에 나는 주식을 몰랐네... 저는 경제도 모르지만 주식도 몰라서 남들 다 사는 저가에서는 주식에 관심조차 없었지 말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래서 남들 벌 때 벌지 못했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여간 저는 두 주 있습니다!

단발머리 2026-05-25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노멀 피플>도 좋아하지만, 그 책보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더 좋아하잖아요ㅋㅋㅋ 거기서도 노멀 피플에서처럼 돈에 대한 이야기가, 아, 그러고 보니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도 그렇네요. 돈이 없는 사람이 느끼는 불편함과 위축되는 마음이 보이잖아요. 서로 좋아하고 있어도 말할 수 없는 부분, 마리앤 같은 경우는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니죠. 돈이 항상 많았기 때문에 돈 없는 사람이 느끼는 마음을 알 리가 없구요. 정확히는 알 수가 없죠. 왜~~ 그냥 말하면 되지. 말하면 되잖아. 이렇게 생각할 거 같아요.

저는 자본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북유럽식 사민주의에 대한 환상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스웨덴은 저성장 때문에 소득세 세율을 낮췄다고 하더라구요.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을 제재할 수는 없을테니까요. 더 많이 가지고 싶은 사람은 더 많이 가지되, 덜 가진 사람도 나름의 삶을 행복하게 구성해가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전 생각해요. 그래서 다시 등장하는 기본소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주식은 더 올라갈 거 같기는 해요. 경제는 1도 모르지만.... 그럴거 같아요. 불확실성의 확실함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6-05-26 07:50   좋아요 0 | URL
‘자본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 격차를 줄이는 방향‘이 나아가야 할 방향임은 분명하지만,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해질까요? 말씀하신 북유럽식 사민주의를 어쨌든 시도라도 해보는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러면 분명 또 반발하는 부자들이 있겠지만... 덜 가진 사람도 나름의 삶을 행복하게 구성해가는 사회를 저도 바라고 있습니다. 빈곤해서 따뜻한 물에 샤워도 할 수 없고, 지하에 살고.. 이렇게까지 빈곤에 살게 두지 말고 그보다는 생활을 업그레이드 시켜서 살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부동산 안정화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단 1가구 1주택이 보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가장 사랑하는 존재
뤼카스 레이네벌트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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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의 잘못은 [롤리타]를 읽게될 (남성)독자의 수준을 너무 높이 잡았다는데 있다고 나는 생각해왔다. 롤리타 에 등장하는 성애의 대상 어린아이의 육체에 대한 찬미가 이어지고 그리고 그 소녀를 욕망하는 추잡한 중년 남성 험버트가 나오는데, 험버트는 수시로 롤리타가 얼마나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엇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자신이 미성년자를 성착취함으로써 그 아이의 가능성 무한했던 미래가 어떻게 제약받는지도 보여주고. 그러나 책 뒤편의 해설과 당시의 남성 독자들은 이것을 험버트의 사랑 이야기로 읽었다. 오, 신이시여. 미친.. 나보코프는 필요한 장치들을 마련해두었지만, 그러나 그 장치들은 제대로 독자에게 가 닿지 못했고, 독자들은 언제나 그렇듯 자기 좋을대로 읽어대기 때문에, 이것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었으며, 그동안 다른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했을 이 남성 독자들은, 그러나 미성년자를 향한 육체적 욕망에는 공감했던 것이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 역시 미성년에 대한 중년 남성의 성적 욕망이 다뤄진다고 해서 읽지도 않으려고 했다가, 그러나 몇몇 칭찬하는 감상 글들을 보고 아, 그러나 그런 고통스런 폭력 뒤에 무언가 다른 할 말이 있는가보다 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은 이미 나보코프가 한 것의 반복이었다. 미성년을 향한 추잡한 욕망, 미성년의 육체에 대한 찬미. 그 사이사이 이것이 범죄이고, 그러므로 처벌을 받는 가해자에 대해 언급이 되며, 이 사실이 감춰야 할 것이라는 것을 가해자 역시 알고 있다고 나온다. 그러나 그 욕망을 잠재울 수 없어서 결국 열네살 소녀를 향해 사십구세 남성이 자신의 욕망을 다 실현해버리는데, 흐음. 글쎄다, 나는 잘 모르겠다.


문학이 무엇인가, 라고 한다면 아마 각자가 답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겟지만, 나는 아주 많은 부분, 일상적인 이야기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그러니까 아주 사소한 우리의 보통 삶도 어떻게 벼려진 문장이냐에 따라 찬란하게 읽힐 수 있는 것 말이다. 그렇다고 보면, 뤼카스 레이네벌트는 그것을 아주 잘 해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이지 이 젊은 미성년의 육체가 찬란하거든. 너무나 찬란하고 빛나는 육체인 것이다. 단, 누구의 시선으로 보느냐, 그 육체를 욕망하는 중년 남성의 시선에서 보아서 그렇다. 그녀는 이 중년 남성의 가장 사랑하는 존재이며 찬란히 빛나는 육체이다. 그 육체에 대한 욕망은 아주 뜨거운 것이어서, 그는 매일 조금씩 그녀에게 더 가까워진다. 처음엔 무릎에 앉히고, 그 후엔 포옹하고, 그 다음엔 키스, 그 다음엔.. 그렇게 욕망의 실현이 점점 더 극에 달할수록의 조급함과 흥분이 생생하게 느껴지는데, 그래서 나는 아주 드물게, 이런 생각을 하게된 것이다. 문학이 아름답게 찬란한 문장으로 일상을 그려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굳이 그래야 하는건가, 라는 생각 말이다. 이게, 이렇게 쓸 일인가?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소녀를 이렇게 찬란하게 그려낼 일인가? 열네살 소녀에 대한 욕망을 이렇게 간절하게 보여줄 일인가? 그러자 문학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문학이라서, 그래서 괜찮은 것인가? 난 잘 모르겠다. 섣불리 '안돼!'라고 하지도 못하겠지만, 그런데 '문학에선 다 가능하지' 라고도 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이것이 잘못된 것임을 인지하고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이 가해자에게 어떤 어린 시절이 있었는지도 보여줌으로써, 비뚤어진 욕망과 범죄가 어떻게 대물림 되는 것인지도 보여준다. 수많은 문학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문학이란 것이, 학창 시절 배웠던 것처럼, 해피엔딩의 결말이나 권선징악적 교훈을 가진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잘 모르겠다. 이미 이런 문학이, 그러니까 미성년자의 육체에 대한 찬미 그리고 그에 따른 욕망과 범죄를 다룬 [롤리타]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크게 변주가 없는 이 책이, 굳이, 다시 찬란하고 아름답게 새로운 대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시간이 흘렀고, 지금 이 열네살 소녀의 취약함은 롤리타의 상황과는 다르다. 이 열네살 소녀는 어릴때 오빠가 사고로 죽었고, 엄마는 도망가서 아빠와 또다른 오빠와 셋만 살고 있다. 소녀를 보살펴줄 엄마가 없고, 아빠와 오빠는 소녀를 방치한다. 소녀의 머릿속에는 수시로 히틀러와 프로이트가 찾아와 말을 걸고, 이 소녀는 책을 읽고 팝송을 듣고 머릿속에서 항상 자기 자신과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년이 되고 싶다. 소년이 되고 싶다. 소년들이 가진 갈퀴-고추-를 갖고 싶다. 그리고 마을의 수의사는, 자신에게 갈퀴를 줄 수 있다 말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환경적으로도 취약했지만 정신적으로도 매우 취약한 상황에 놓여있었고, 가해자는 그것을 알면서 이용했다. 이 취약함이 롤리타의 것과 다르지만, 또 그렇다면 얼마나 다른가.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추악한 욕망과 범죄의 대물림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찬란할 일인가, 이렇게 간절할 일인가, 라고 말이다.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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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4-28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롤리타>를 안 읽어봤는데요. 길게 읽지 않아도 알 것 같기도 하고요. 이 책도 읽지 않은 저는, 다락방님의 이 문장 ˝추악한 욕망과 범죄의 대물림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찬란할 일인가, 이렇게 간절할 일인가, 라고 말이다.˝ 쪽으로 쏠립니다.
수의사의 욕망과 궤변이 아름다운 문장과 표현으로 이루어졌다면, 그렇다면 이름값 쫌 하는 좋은 문학상도 척척 하사하는 그 마음들과는 반대쪽이죠.

제가 오늘 아이랑 같이 읽은 지문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이 나왔거든요. 옷을 입지 않은 임금님을 보고 재단사들, 신하들, 마을 사람들이 감탄을 해요, 멋있다고 ㅋㅋㅋㅋㅋㅋ 아이 하나만 ‘임금님은 벌거숭이다!‘라고 말하잖아요. 벌거숭이를 벌거숭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26-04-30 14:00   좋아요 0 | URL
알라딘만 보더라도 올라온 후기는 저 빼고 모두들 극찬하고 있더라고요. 음, 저는 문학을 아주 좋아하고 그래서 저도 모르게 문학에 기대하게 되는 지점도 있지만, 그런데 아름답다는 것으로 문학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용인할 수 있는가.. 라면 잘 모르겠어요. 안된다고 단호히 말하기도 좀 그렇고 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고 말이지요. 저는 이 책이 오독의 가능성이 너무 클 것 같습니다. 모든 책은 오독의 가능성을 품지만, 이건 정말 저 좋을대로 오독해서 받아들이고자 하는 남자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알라딘에 올라온 평 중에도 ‘사랑에 나이는 있다‘ 라는 게 있던데, 이걸 사랑으로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저는 좀 아니라고 보거든요.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은 피해자 쪽이지만, 하여간 좀 난감한 책이었습니다.

잠자냥 2026-04-30 14:20   좋아요 0 | URL
출판사 무료 제공 도서 읽고 쓴 리뷰들이라서…..🤣

다락방 2026-04-30 14:21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지 않습니다... 안좋은 책에 별 줘야 되니까..... 으.....

망고 2026-04-29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가해자에게 너무 이입한 간절하고 찬란한 문장. 읽으면 불쾌할 것 같아요😭

다락방 2026-04-30 14:00   좋아요 0 | URL
이게 아무리 이것이 범죄라고 수시로 밝히고 있어도, 뭔가 가해자의 변명을 대신해주는 느낌이 들어요. 사랑이 아니라 폭력인데, 가해자가 자꾸 사랑사랑 하니까.. 좀 거시기합니다..

책읽는나무 2026-04-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어보니 저도 만약 이 소설을 읽는다면 저 또한 다락방 님과 비슷한 고민과 생각이 들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이걸 문학이란 포장으로 용납해야 할 스토리인 것인지….소설을 읽다가 이런 문제와 맞닿을 때 정말 고민스러워질 때가 많더군요.

다락방 2026-04-30 14:02   좋아요 1 | URL
작가는 충분히 문학성을 가진 사람이고 잘 쓸 수 있는 사람인데, 그런데 왜 하필 이 이야기를 하고자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가에게도 의도하는 바가 있었겠지만, 저는 그것이 잘못 해석될 여지가 너무 클 것 같다고 생각됐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이런 소재를 참 싫어하기도 하고요. 읽는 내내 수시로 ‘이 책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잘 모르겠습니다.

blanca 2026-04-2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타> 완전 동의해요. 이거 읽었다 하면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보고 심지어 나보코프까지 비정상적 성적 취향을 가졌다 여기는데 절대 아니잖아요. 정말 아무도 못 이를 경지에 이른 작가 같아요. 섣불리 건드려서도 함부로 얘기해서도 안되는 소재 아닐까 싶어요. 제대로 여과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만들어버리면 뭔가 어설퍼지고 오히려 문제작이 되는 것 같아요. 다락방님 혹시 <정욕> 기억나세요? 잘 썼는데, 거기에 나온 소아 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참 불편했던.... 지금 그 작가의 다른 책을 읽고 있는데 이거 관련도 한번 써야 할 것 같아요.

다락방 2026-04-30 14:07   좋아요 1 | URL
저는 롤리타 읽기 전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읽으면서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었거든요. 필요한 장치를 다 해두었고, 궁극적으로 그 책을 읽으면 ‘아동대상 성폭력은 아동이 취약한 환경에서 일어나며 피해자의 미래를 망가뜨린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책 뒤의 해설을 보거나 당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것을 세상 비극적인 사랑으로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험버트의 슬픈 사랑... 그래서 아, 나보코프가 거기까진 몰랐구나, 남성 독자의 수준이 이렇게까지 낮을 줄 몰랐구나, 생각했어요. 그게 정말 치명적 잘못이다... 나보코프여, 당신이 잘못하셨습니다...

[정욕]은 롤리타와 같은 소재를 다른 방식으로 얘기하는데, 그런데 그게 되게 불편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욕은 오히려 소아성애의 변명을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소아성애를 범죄로 보는게 아니라, 이상성욕으로 인정하는 뉘앙스여서, 저는 그래서 정욕이 싫었습니다. 다른 이상 성욕(이를테면 물에 관련된 것이 책에 등장했죠)과 아동성애를 같이 보는 것 같아서요. 으.. 정말 별로였어요.

잠자냥 2026-04-29 14: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네 살의 육체에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이군요...;

지난주인가 이혼숙려캠프에 나온 커플 중(이혼하려고 나온 커플) 나이 차이 열두 살인가 나는 부부가 있었거든요? 남자는 40대였나? 여자는 20대 후반인가. 암튼.... 애들이 벌서 셋인데 큰 애 나이를 계산하다 보니 너무 이상한 거예요. 아니. 여자가 열아홉에 애를 낳은 건데.... 여기서부터 동공지진(여기서 패널들도 약간 의아해하기 시작).... 알고 보니 성인인 남자가(당시 30대) 고3 학생을 임신시켜서 결혼한 부부였어요. 이 커플의 문제가 더 뭐냐면, 무려 학교에서 교직원(행정직)이었던 남자가!!! 여학생을 꼬셔서 임신시키고는 결혼한 거였다는 거죠. 결혼했으니까 만사 오케이입니까?! 헐.... 이 미친놈이 마치 자기가 능력자인 냥 웃으면서 말하는 꼬라지도 가관이었지만 함께 나온 다른 부부의 남자(이 남자도 중년)가 말하길 자기 딸이 열아홉에 성인하고 임신해서 결혼해도 별 문제 없을 거 같다고 대답. 헐............................

대다수 성인 남자들은 미성년자에게 그러는 게 범죄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락방 2026-04-30 14:11   좋아요 0 | URL
미성년자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고, 소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그리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까지도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에서 가해자의 시선으로 읽는 것이 오독의 여지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편하더라고요. 이게, 문학이란 이름으로 이렇게 다루어지는 것이 맞는가, 하는..

잠자냥 님 댓글에 나온 케이스는 그 결혼한 당사자도 징그럽지만, 가능하다고 말한 중년 남성도 징그럽네요. 그 남성은 자신의 딸을 여성으로 생각하는게 아닌가 싶어요. 대한민국의 아주 많은 남자들은 딸을 여자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래전에 인터넷 게시글에서 읽었는데요, 약수터에 같이 갔다가 허리돌리기 운동기구 하는 (아마도)여섯살 딸아이를 보고, 딸아이의 아빠가 ‘오 나중에 허리 잘 돌리겠네‘ 이래서 아내가 완전 기겁을 해가지고, 왜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화를 냈다는 글을 봤거든요. 미친것 같아요. 그게 할 말이에요? 그 왜 유명한 남자 유튜버가 자기 두살짜리 딸 무릎에 앉히면서 방송한 것도 있잖아요. 자기 딸 낳아서 무릎에 앉히면 기분이 너무 좋다, 술집 가는거랑 차원이 다르다고... 정확한 워딩은 아마 다르겠지만 그런 뉘앙스여서 트윗에서도 한창 시끄럽고 그랬었어요. 남자들은 절반 이상 죽이고 시작해야 될 것 같아요.

잠자냥 2026-04-30 14:27   좋아요 0 | URL
그 이혼하겠다고 나온 부부도.. 결국 아내 쪽이 눈물 흘리면서 하는 말이 내 학창 시절/이십 대가 다 사라졌다고.
친구들은 학교 가고 취업하고 이러는데 자기는..... 서장훈이 지팔지꼰이라고 했는데.... 지팔지꼰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 남자가 미성년을 꼬시지 않았다면 그 여성은 대학도 가고 사회 생활도 하고 성인이 되어 연애하다 결혼했겠지요. 이십 대 내내 집안에만 갇혀서 애 낳고 사는 게 아나라....... 아 이 여자는 그와중에 남편이 생활비도 잘 안 줘서 쿠팡 알바도 하더라고요 ㅋㅋ

다락방 2026-04-30 14:39   좋아요 1 | URL
미성년자에게 지팔지꼰 이라고 하는건 좀 잘못된 지적이라고 보여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게 맞지만, 그런데 미성년자였잖아요. 미성년자는 아직 판단에 미숙함이 있다고 해서 미성년자인 거 아닌가요? 전 예전에 배우 이지아가 (서태지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고 했다고 아주 사람들이 쥐잡듯이 잡는거 보고 그것도 끔찍했어요. 이지아 십대때 서태지랑 사귀고 결혼했는데, 미성년자의 결정에 대해서 니 결정에 대해 니가 책임져야지 그걸 후회한다고 하냐고 지적하는걸 보고, 왜 인간들은 특히 여자 미성년자에게 이토록이나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많은가 싶더라고요. 미성년자니까 그 서른살 남자의 꼬임에 넘어갔죠. 그 서른살 남자가 지금의 저를 꼬셔봐요, 제가 넘어가나. 저한테 쌍욕만 디지게 먹고 사라지겠죠. 저는 중년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미성년자가 지금와 돌이켜보니 후회스러웠던건 너무 당연한 것 같아요. (그 프로 보지 않고 쓴 댓글입니다)

하여간 미성년자 꼬신 사람들은 너무 한심하고 못났고 너무 빡치고 그냥 지들끼리 나라 만들어서 살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 나라에 미성년자는 존재하지 않게 하고 말이지요. 어디서 성인 유혹할 능력은 안되니까 미성년자 꼬신 주제에 아오 빡쳐 ㅠㅠ

잠자냥 2026-04-30 15:00   좋아요 0 | URL
저도 좀 거기 패널들 반응이 범죄를 범죄라 말하지 않아서 답답했습니다... -_-

그 남자 딱 봐도.... 외모 체격 직업 등등... 20대 여성이나 30대 또래 여성이 절대 안 만나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아.
프로그램엔 그들이 처음 만날 당시 사진이 나오거든요? 근데 그 사진 보고 제가 너무 격분해서 한 말.
˝저 새끼 저거 딱 봐도 미성년자 아닌 여자들은 절대 안 만나줄 인간이니까 애들 꼬셨네...˝

다락방 2026-04-30 15:03   좋아요 0 | URL
패널들은 범죄를 범죄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애초에 주의를 받은 것일까요? 어떠한 경우에도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라고 말이지요. 미성년자들이 성인 만나면서 또래보다 돈도 더 잘쓰고 더 어른스러운 모습에 끌릴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빕스만 데려가도 감동한다고 하니까 ㅠㅠ 그 점이 성인이 미성년자 꼬시는 못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은 돈으로 충분히 여자를 꼬실 수 있다!! 이런 미친놈들이 진짜 다 때려눕히고 싶어요. ㅠㅠ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6월
평점 :
품절


"어떤 진실은 어떤 고통은 반드시 그 사람이 말하고 싶어하는 속도로 말하고 싶어하는 분량만큼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애란이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문학이란 말하는 이에 특화된 것이라며 바로 저렇게 말했다. 소설가이니만큼 문학에 대해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그런데 저 문장이 특히 좋아서 나는 김애란의 책을 부랴부랴 사서 읽었다. 그렇다면 김애란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나는 그것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하는 것도 역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김애란의 작품을 통해서 나를 만났다. 더 정확히는 모순된 나, 내적 갈등에 휩싸이는 나, 를 본 것이다. 그리고 결코 '선하지 않은' 나를 말이다.


선하지 않은 나, 는 나에 대한 것이면서 동시에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기도 할것이다. 정확히는 중산층에 속한 사람들 혹은 중산층 근처에서 맴도는 사람들 말이다. 대표적으로 나에 대해 얘기하자면, 나의 경우는 내가 번 돈으로 여행을 갈 수 있고 공부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내가 번 돈으로 강남에 집을 살 수 없고 명품백을 살 수 없으며 일류 호텔에 숙박할 수도 없다. 내 주변엔 대부분 나랑 비슷한 경제적 형편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고만고만한 사정을 가지고 늘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얼마전에 친구를 만난 나는, 그 친구에게  대출 받아 집을 사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대한민국에서 지금껏 살아보니, 전세를 살다가는 삶이 업그레이드 되기 힘들더라, 2년있다 전세보증금으로 다시 전세를 구하려면 집값이 올라 내가 살 집은 다운그레이드가 된다, 대출 싫다고 돈 모아서 집 사려고 하면 그건 어림도 없는 소리다, 집값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팍팍 올라버린다, 그러니 대출을 받아서 일단 대출금을 갚아 나가면, 더이상 계약 기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게다가 운이 좋으면 내가 있는 대출 다 갚은 후에 내 집값은 오를 수도 있지 않냐, 는 것이 내가 말한 취지였다. 친구 역시 요즘 집을 사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대출을 끼고 사는것 말이다. 


주변에는 집을 산 친구도 있고 그리고 집을 산 친구를 시기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니가, 나랑 형편이 비슷한 걸로 생각했는데 어떻게 니가, 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정말 있다. 다른 사람의 기쁜 일에 같이 기뻐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다른 사람들의 슬픈 일에는 진심으로 공감도 해줄 수 있고 위로도 해줄 수 있지만, 좋은 일에 축하는 조금 다른 얘기다. 나랑 비슷한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나보다 조금 더 나아가는 것 같다 싶으면, 그걸 받아들이기가 힘든거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돈에 관련된 것이다. 집, 차, 연봉. 



누군가 '잘 산다'는 것의 의미는 대체적으로 돈에 관련된 것이다. 부족함 없이 잘 산다, 여유롭게 잘 산다는 말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 잘 사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거나 그리고 그 잘 사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고 그렇기 때문에 잘 살지 못하는 것을 감추고 싶어한다.


이 책 속의 첫번째 단편 <홈 파티> 가 바로 그 '자랑'과 '감춤'에 대한 얘기다. 비슷한 경제적 형편과 문화적 자본을 가진 자들이 정기적으로 함께 밥을 먹으면서 값비싼 찻잔을 자랑하지만, 그런데 못사는 사람들이 집도 없고 차도 없으면서 왜 명품백을 가지고 있을까, 한심하게 여기며 험담한다. 이때 그 집에 초대받은 가난한 연극 배우는, 그것은 자신의 가난을 감추고 싶어서가 아니겠느냐는 말을 한다. 사실 나는, 명품백을 가지고자 하는 이유가 감추고 싶어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이 시선이 신선했다. 그리고 그것이 맞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가지고 다니면서 드러낼 수 있는 소품으로 가방만한 게 어디있을까. 그것은 과시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감춤이 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이 작품 <홈 파티>는, '이디스 워튼'의 <징구>를 생각나게 한다.


<숲속 작은 집>은 내가 가장 안타깝게 그리고 가장 찔리게 읽은 작품이다. 주인공 부부는 동남아의 근사한 숙박업소를 예약해 거기에 한달간 머무르는데, 거기에서 메이드에게 팁을 주는 문제로 신경을 쓴다. 이만큼은 적을까 혹은 많을까, 그렇게 팁을 두고 갔더니 방이 더 깨끗해지는 걸 보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돈 줬다고 더 신경쓰냐, 하는 실망감까지. 신경써줘 고맙다고 신경써달라고 돈을 준거지만, 그런데 돈을 줬다고 신경 쓰다니, 하면서 실망하는 인간이 바로 나 아닌가. 나는 이 작품에서 '모순된 나'를 만났다. 나는 자본주의가 사회악이라고 생각하고, 자본주의만 뿌리 뽑아도 세상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한편, 내가 돈 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자본주의에 가장 길들여져 있는게 또 내가 아닌가 말이다. 돈 쓰는 일은 나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가. 돈 좀 더 쓰고 좋은 비행기 타자, 돈 좀 더 쓰고 좋은 호텔 가자고 내가 나에게 얼마나 많이 말하는가. 그리고 백화점에 가 결제를 할 때 신나거든. 이렇게 돈 쓰는 걸 좋아하는 내가, 그런데 자본주의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나란 인간은 얼마나 모순적이란 말인가. 게다가 이 작품속에서 아내는 호텔 메이드를 '메이드라고 부르지 말자'고 남편에게 제안한다. 그건 어쩐지 좀 아닌 것 같으니, 우리라도 그렇게 부르지 말자는 거다. 남편은 그렇다면 뭐라 부르냐, 묻고,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한 아내는,


-그냥 '청소해주시는 분'은 어때? -p.79


라고 말한다. 이내 남편은 풋, 하고 웃어버리는데,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그건 너무 설명적인데다가 비경제적이고 음, 이런 얘기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살짝 기만적인 느낌마저 들어" -p.79


나는 아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지만, 그러나 메이드를 '청소해주시는 분'이라고 부르자는 것에 기만적인 느낌이 든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어떤 호칭은 그리고 어떤 지칭은 멸칭이기도 하지만, 그걸 가리는 것이 때때로 기만이기도 한 것은 사실이지 않나. 남편은 '섹스를 섹스라 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이 떠오른다'(p.80) 고 하는데, 나 역시 그랬다. 메이드라 부르지 말고 '청소해주시는 분'이라고 부르자는 아내의 말은, 내게는 기만적으로 느껴졌고, 좀 더 솔직해지자면, 물론 그 안에 다른 사람을 멸시하지 않고자 하는 의도가 있기는 하겠으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나'가 있는 것 같은거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나라고 없을까? 사실 내가 누군가를 어떻게 부르고 혹은 어떻게 지칭하는지에 과연, '깨어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없었을까? 나는 순수하게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바꾸거나 금지하려고 한걸까? 



<좋은 이웃> 에서도 역시 나를 만났다. 화자는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한 사람이 자기보다 더 경제적 형편이 낫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기분이 몹시 나빠지는데, 가끔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누군가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졌을 때, 이를테면 더 좋은 집에 산다거나 더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됐을때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나는 김애란의 이 책을 읽으면서 김애란이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 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것은 소설이고 문학이니 뜻하는 바가 있을테니 말이다. 김애란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 책을 읽은 독자인 나로서는, 사람들은 그렇게 선하지 않다, 는 것이었다. 쿨한 사람은 없고 쿨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것처럼, 선한 사람은 없고 선하게 보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는거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사람중의 하나이고. 


사실 가장 많이 나에 대해 떠올린 건, SNS 에서 누군가를 보며 그 사람의 경제적 능력에 대해 떠올렸던 나다. 그러니까 러시아였나 폴란드였나, 어디 사람인지 모르겠는데 삼십대 초반의 여성이 도심 한가운데 높은 곳, 거실에서는 통유리로 도시 뷰가 보이는 집에 사는 거다. 그녀는 그 집에서 살면서 피부 관리를 받으러 가거나 늘 여행을 다녔다. 나는 이십년이상 일했지만 저런 집은 감히 꿈도 못꾸는데, 내가 앞으로 이십년이상 더 일해도 저런 집에 살지는 못할텐데, 그런데 도시뷰는 내가 얼마나 꿈꿔오던 곳이던가!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젊은 나이에 저게 가능했을까, 하면서 공간과 돈에 대해 생각했던 내가, 이 책에서 자꾸 보였다. 이것은 이상하다, 부조리하다, 왜 열심히 돈 버는 나는 저런 집에 못살고,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아 보이)는 저 사람은 저런 집에 살까.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얼마나 부조리한지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나. 그러면서도 자본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그 안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내가 또 있지 않은가. 그런 한편, 전세 기간이 되어 다시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지금 가진 돈으로 같은 수준의 집을 전세로 얻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하던 지인도 생각났다. 왜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하는데 살 집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나. 역시 자본주의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 라고 생각하다가도 어김없이 그 안에서 즐기고 있는 나를 만나는 거다. 그리고 그런 내가, 김애란의 책에서 보였던 거다. 여기에는 그녀의 과시가, 그리고 그 부(rich)로 인한 다른 어떤 것의 감춤이 있었고, 드러난 부를 보고 부러워하는 (나의)질투가 있다.


오, 신이시여..



나는 모순된 나를 만나는 것이 괴롭다. 몹시 괴롭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모순된 나를 자꾸 보게 된다.

김애란은 문학이 하는 일은 화자가 말하고 싶은 속도로 말하고 싶은 분량만큼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무언가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천천히 세상을 바꾼다, 라고 했다. 김애란이 문학에 대해 하는 말에 동의한다. 그 말은 다 맞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꾸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혹은 '삶'을 읽으면서, 결국은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 문학이 하는 일인 것 같다. 나는 모순된 나를 만나고, 그리고 괴롭다. 김애란이 보여준 어떤 이들의 민낯이, 그런데 가끔 나의 민낯이기도 해서 수치스럽다. 활자로 나의 수치를 들여다보게 하는 일이 문학이 하는 일인 것 같다. 그러니까 문학이 하는 많은 일들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나는 김애란의 이 작품들 속에서 과시하는 이도 그리고 질투하는 이도, 그리고 선한척 하는 이조차도 이해하지 못할 인물이 없었다. 그래서, 수치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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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26-04-22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사랑스러우십니다. 그게 쉽나요~

다락방 2026-04-22 12:43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나이에 사랑스럽다니, 역시 저는 짱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04-22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모순된 나’를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많이 발견한 것 같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듯..... 저는 모순된 나를 찾지 못해서 고통의 읽깈ㅋㅋㅋㅋㅋㅋㅋ

메이드를 ‘청소해주시는 분‘이라고 부르는 거.. 전 진짜 남편한테 공감했어요. 너무 기만적임.. ㅋㅋㅋㅋㅋㅋㅋㅋ 청소해주시는 분 운운할 때 실제로 제가 책 읽다가 현웃터짐ㅋㅋㅋㅋ 아니 왜 섹스를 섹스라고 못 하느냐고! ㅋㅋㅋㅋㅋㅋ 전 제가 남편이었으면 아마 끝까지 메이드라고 불렀을 걸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님이 지적하신 것처럼 김애란이 말하고자 한 게 바로 그거, 인간은 선하지 않다... 같은데 그래서 저는 이 책 읽으면서 답답했던 거 같아요. 그래 알았어, 근데 그래서 뭐 어쩌자고! 이런 심정. 근데 다락방 님도 거기 동의하신다고요? “선한 사람은 없고 선하게 보이고자 하는 사람은 있다” 저는 그래도 사람은 치졸하고 못났어도 선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이건 인간 혐오자인 저랑 인간 사랑자인 다락방 님 의견이 갈리네요?! 신기방기 ㅋㅋㅋ

다락방 2026-04-22 13:12   좋아요 1 | URL
저는 메이드를 ‘청소해주시는 분‘ 이라고 부르자에서 진짜 모순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기만이라고 생각했고요. 이거야말로 ‘선하게 보이고 싶은 나‘의 대표적 모습이 아닌가 싶었고요. 오히려 멸칭이 아닌 메이드를 멸칭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메이드를 그냥 직업적 지칭으로 생각하고 부르면 되는데, 그걸 오히려 더 약자라고 생각해버린 것 같고요. 그래서 기만으로 느껴지고 그 말이 더 싫었던 것 같아요.

저도 잠자냥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래서 뭐?‘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문제 제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뒤가 잘 안보이고요. 그런데 어쩌면 그 뒤는 독자의 몫일지도 모르겟고요. 그래서 저도 별 다섯을 줄 수는 없는 책이었어요. 그리고 이 책에서 신형철이 김애란을 사회학자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그 사회학 이라는 부분에서는 김애란이 그런 면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그쪽으로는 역시 황정은이 최고이구나, 라고 생각했고요.

저는 ‘선하고자 하는 나‘가 인간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잠자냥 님 댓글 읽고나니, 선한 사람... 이 없진 않은것 같고요. 저는 선한 사람이 아니지만, 그런데 선한 사람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 그런데 선하기만한 사람은 없지 않나, 라고 또 한편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선한 일을 한 사람, 선한 사람이라고 알려진 사람도, 어딘가의 누구에게는 또 끔찍한 사람일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선한 사람은 존재하긴 할것입니다. 구체적 예가 떠오르진 않지만 말이죠. 선한 사람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독서괭 2026-04-26 12:10   좋아요 1 | URL
와 두분 평이 갈리는 지점이 재밌어요!! 근데 모순이 없는 사람이라니 잠자냥.. 역시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인 거야

잠자냥 2026-04-22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수하는 직접 읽으시오. 🤣

다락방 2026-04-22 13:57   좋아요 0 | URL
건수하는 직접 읽으시오 2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4-23 00:56   좋아요 0 | URL
????? 🙄

잠자냥 2026-04-23 08:35   좋아요 0 | URL
다락방 1등 알림 페이퍼에 “김애란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고 건수하 님이 댓글 단 줄 아뢰오~

건수하 2026-04-23 08:43   좋아요 0 | URL
아 여긴 댓글 안 달았는데 여기 갑자기 있길래…. 근데 안 읽고 싶어서 고민인 거였어요… 😂

잠자냥 2026-04-23 08:56   좋아요 0 | URL
그냥 읽지 마시오.🤣

건수하 2026-04-23 09:16   좋아요 0 | URL
엊그제 회사 도서관 반납에 있는거 두고왔는데 오늘 가보니 대출중.. 일단 밀리에서 다운로드했는데 밀린 책들 많음 ㅎㅎ

잠자냥 2026-04-23 09:56   좋아요 0 | URL
저도 밀리에서 읽었습니다. 밀리에서 읽기 좋은 책.....(아주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6-04-22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내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난 듯한 느낌이 들어 참 불편했었어요.
그래서 계속 곰곰 생각을 많이 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근데 계속 소설이 떠올라 잊혀지지 않는다면 이건 내게 있어 가장 좋은 소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죠. 그래서 저는 별 다섯!^^
(그래도 제겐 <비행운>이랑 <바깥은 여름>이 좀 더 좋았기도 했습니다만.^^)
작가의 다른 소설들을 쭉 읽고나니…김애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우리네들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저는 주거공간 부분이 참 많이 와 닿았었는데 다락방 님의 리뷰에서도 구체적으로 잘 표현된 부분들이 많아 완전 공감했네요.ㅋㅋ
그리고 특히나 선한 사람의 정의 부분에서 시선이 오래 머무네요. 다락방 님의 정의가 어쩌면 김애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과 비슷할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구요. 저도 선한 사람일지라도 내면 속엔 자신도 모르는 어떤 계산된 마음, 그리고 악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스릴러물을 너무 읽고 있는 탓일지도?ㅋㅋㅋ)
어쩌면 살아온 인생의 무게가 저절로 교양과 매너를 장착하게 되었고, 또 어쩌면 자제력이란 게 훈련되어졌기 때문에 선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나는 선행이랍시고 베푼 행동이나 말이 분명 상대방에겐 폭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긴합니다. 제가 실제로 그런 일을 겪어 당황한 적 있었거든요. 약자에겐 그 선행이 결코 선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하더라구요. 소설을 읽으면서 지난 내 모습과 현재의 모습 모두 다 비춰져 참 부끄럽고 난감했었고 속 편하지 않았는데 이런 소설이 또 많이 나와야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지난 번 댓글에서 황정은 작가님도 언급해주셨는데 황작가님 같은 사람도 분명 있어야 하고, 다른 작가들도 여러 다른 요소와 각도로 ‘사회학자‘라고 불리는 소설가들이 많이 배출되고 소설도 많이 나왔음 좋겠어요.
리뷰 너무 좋아서 좋아요. 더 많이 누르고 싶은데 한 번만 눌렀네요.ㅋㅋㅋ

다락방 2026-04-23 15:56   좋아요 1 | URL
책나무 님, 저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선한 동기를 가지고 한 행동이 과연 선한 결과를 불러오는가, 선한 결과를 불러오지 않았다면 그것은 선하다고 볼 수 있나. 이건 되게 복잡한 문제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선한 행동을 많이, 아주 많이 할 수 있지만, 그러나 선한 사람이냐, 라고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망설여지게 되는것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는 선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선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인간에게 선한 마음이 있는 것은 또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인간의 선한 마음이라는 것은, 측은지심일 때, 나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만 발휘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요. 이 책 속에서 화자들은 여행갈 경제적 여유가 있고 또 메이드에게 팁을 줄만큼의 여유도 되지만, 그러나 그에 기대하는 바를 가지고 있고, 또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장애있는 아이를 가르치는 나, 에 심취해있지만, 막상 그 아이네가 집 사서 이사간다고 했을때 어쩐지 속이 상한 내가 있고요.

학원에서 일하던 제 친구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학원 학부모들도 얘기하다보면 임대주택 아이들을 무시한다고요. 그런 현실의 반영이 김애란 책에 다 녹아있는 것 같았어요. 나보다 월등히 잘 살면 질투나 시기할 엄두도 못내지만, 나랑 비슷한 줄 알았다가 나보다 조금 더 잘사는 것 같으면 마구 질투하고 시기하는 약한 인간들을 그대로 녹여냈달까요.

사실 저는 김애란의 이 책 보다는 김애란의 인터뷰가 더 좋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문학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열심히 글을 써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단발머리 2026-04-23 20: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괴롭게 하고, 부끄럽게 하고, 따뜻한 순간을 기억나게 하는 게 문학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읽는다고 모두 다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다락방님이 괴롭다고 쓰신 이 글이, 오히려 소설과 문학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 인간을 얼마나 더 인간답게 하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소설을 읽기 전에는 항상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해요. 점프하기 전에 약간 긴장되는 그건 순간이구요. 특히 한국 소설은 더요.

다락방 2026-04-24 22:59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 님의 댓글을 읽다보니, 역시 가장 중요한 일은 독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가 자, 이런 이야기야, 하고 펼쳐주면, 그 이야기를 읽고나서 그 뒤는, 독자가 생각하고 행동할 몫인거죠. 그리고 모든 독자에게 같은 종류의 자극을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누군가 엉엉 울었던 작품이 저에게는 아무 감정도 주지 않을 수 있고요. 그러나 모두를 울리지 않으면 또 어떻습니까. 누군가에게, 그것이 단 한 명이라도 어떤 영향을 미쳤다면, 또 그정도라도 문학은 제대로 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나 싶어요.
저는 김애란을 좋아한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는데, 문학에 대해 말하는 김애란은 좋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소설을 써주어서 정말 좋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은, 문학에 대한 어떤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쓰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런데 막상 저는 문학에 대한 신념..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네요. 흐음..

얼음장수 2026-04-2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 읽는 내내 찜찜한 마음이었는데 비슷한 이유였던 것 같아요.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도, 누군가를 구김없는 마음으로 축하해 주는 것도, 좋은 이웃이 되고 좋은 손님인 되는 것도 일정 수준의 자본이 있어야 한다는 처절한 모순과 역설이네요. 시집과 소설을 읽고 주식 어플을 확인하고, 주식 방송을 보고 나서 영화를 보고, 매일이 매순간이 모순인 것 같습니다.

다락방 2026-04-28 20:27   좋아요 0 | URL
오, 얼음장수 님도 비슷한 마음이셨군요. 말씀하신대로 정말 그렇습니다. 어떤게 옳은 것인지 그리고 어떤게 더 정의에 가까운지, 사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또 행동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제가 실제 삶에서 취하는 행동은 자본에 찌들어서 그걸 즐기는 나인 것이지요. 그걸 볼 때마다 제가 지향하는 바와 제가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보통의 인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소설이 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모순적이지 않게 살고 싶은데, 매순간 모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