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드레스덴에서 다시 프라하로 돌아왔다.
떠날 때 그랬던 것처럼 돌아올 때도 프라하 중앙역에서 내렸다.
내게는 프라하 중앙역에서 해야할 일이 있었다. 조카들 선물사기가 그것인데, 커다란 문구점이라 해야하나, 중앙역 내에 있는 곳에서 예쁜 노트를 봐두었던 터다. 우리 아이들 이거 사다줘야지, 했는데, 어라? 내려서 보니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는거다. 내가 탔던 역과 분위기가 너무나 다른거다. 아, 나 좆됐나.. 잘못내렸나. 얼른 내가 있는 자리에서 다시 돌아가야할 프라하 힐튼 호텔을 찍어보았다. 걸어서 30분이 안걸린다고 나왔다. 그러면 내가 맞게 내린것 같은데 이 분위기 무엇? 게다가 나가는 문은 어디있지? 분명 넓고 현대적인 곳이었는데 왜이렇게 으슥한 지하철역같이 생긴거지? 아래로 내려가야하나? 내려갔다가 여기가 아니네 다시 위로 올라왔다가 아.. 나가는 곳도 못찾겠다, 하다가 지도를 보고 방향을 잡아 저기 빛이 보이는 곳으로...
어쨌든 구글맵은 내가 걸어서 30분이면 호텔에 닿는다고 했다. 지도를 믿고 가보자. 그런데.. 터널..같은게 나오네요. 이걸 터널이라고 불러야하는지 굴이라고 불러야하는지. 초큼.. 무섭잖아? 게다가 거길 걷노라니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겠어. 나는 마침 터널을 건너던 누군가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나 어디로 나가야 해? 물어보니 저기로 나가서 가면 될것 같은데? 한다. 고맙다고 하고 시키는대로 했다. 휴 방향이 맞았다. 일단 역에서 빠져나온 것 같아 나는 멈춰서서 역을 돌아보았다. 아니, 역 왜저럼? 무슨 컨테이너 같기도 하고 오래된 공장 건물 같기도 하고, 왜 내가 탄 곳과 내린 곳이 다름? 여긴 그런가보다..하면서 나는 구글맵이 알려주는대로 호텔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그런데..
며칠간 프라하에 머물면서 한 번도 걸어보지 않았던 곳이 계속 나오고.. 게다가 사람도 별로 없고, 하아- 이 분위기 무엇이냐. 그런데 지도에서는 내가 점점 호텔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한다. 초큼.. 무서운데? 빨리 도착해야겠다. 그래서 걸음을 빨리했다. 가방도 무거워 죽겠는데 걸음을 빨리해서 우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걷기 시작했다. 지도를 보면서 정말 맞게 가고 있는거 맞지? 몇 번이나 확인해가며 우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아, 저 다리는 지난번에 내가 달렸던 그 다리? 조금 익숙한 풍경이 나온다. 블타바강하고... 그렇게 가다보니, 아, 내가 그동안 호텔에서 나와 왼쪽으로 항상 갔었는데 지금 이 길은 오른쪽으로 가는 곳이구나, 하면서 저기, 호텔에 보여 조금 안심했다. 그렇게 다리 하나를 건너니 얼라리여~ 호텔의 비어가든 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오고 거기에 사람들이 많이 달리고 있다! 어엇? 하고 살펴보니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기 위한 도로가 잘 되어있는거다. 여기구나, 사람들은 여기서 달리고 있는거였어! 오오 좋았어. 가만있자, 그러니까 여기를 오려면 호텔에서 이렇게 해서 이렇게 오면 오오.. 가까워, 여기 좋았어, 나도 여기서 달려볼테닷! 결심을 하면서 호텔에 도착했고, 도착해서는 크게 안도하며 체크인을 했다.
체크인을 한 방에 들어가보니 바깥뷰인데 커다란 빌딩이 보이고 주말이라 썰렁하다. 아, 나는 여기서 묵고 싶지 않다. 나는 일단 캐리어를 둔 채로 리셉션으로 내려가서 내 방을 좀 바꿔줄 수 있니? 나 뷰가 싫어, 라고 말했다. 직원은 너는 어떤 뷰를 원하는데? 해서 손으로 호텔 안쪽을 가리키며, 여기, 라고 했다. 그랬더니 직원이 "inside?" 라고 물었고. 어 호텔 인사이드. 라고 했다. 직원은 알겠다고 했다. "혹시 너 지금 있는 룸 뭔가 건드린게 있니?" 라고 물어서, "노노노" 했더니 직원이 "그냥 묻는거야, 그냥 묻는거야." 재차 말했다. 내가 기분 상한것 같아 보였던건가. 그리고 새로운 키를 주었다. 나는 "그런데 내 수트케이스가 그 방에 있어서 키가 필요해" 했더니 알고있다고 잠시만 기다리라면서 다시 키를 하나 주고, 30분 내로 익스프레스 체크아웃 박스에 넣어둬, 라고 했다. 그건 어디있는데? 각층 엘리베이터 앞에 있어. 라고 해서 알았다고 햇다. 그리고 돌아가려는데, 앗 그런데 내가 수트케이스 놓고 온 방이.. 몇호실이었지? 나는 다시 직원에게 가서, 그런데 내 방 몇호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묻고 직원이 말해줘서 얼른 가서 짐 빼고 익스프레스 체크아웃 박스에 키를 넣고, 그리고 내가 새롭게 머물게 될 방으로 이동했다. 익숙한 호텔 내부가 보였다. 휴...
다음날은 빨래방에 가려고 빨래를 챙겨서 호텔을 나섰다.
걸어서 40분 걸린다는데, 40분 쯤이야 뭐, 하고 빨래가방 들고 나섰는데.. 어라? 여긴 또 무슨 길이야.. 역시 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하아.. 지도는 이 길이 맞다니까, 그리고 빨래는 빨아야 하니까 가자.. 하고 지도를 따라 나섰는데, 비는 오지 우산 들었지, 백팩 멨지, 빨래가방 들었지.. 걷다보니 점점 더 다가가고 있긴 했지만, 대체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사람들도 별로 없고 뭔가 국도 같은 길이라서.. 신이시여, 제가 가는 이 길이 정녕 맞는 길입니까? 나는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멈추면서 내적 갈등 오지게 한다. 계속 갈것인가 말것인가.. 그렇게 20분을 걷고 20분을 남겨뒀다가, 아 빨래 안하고 말지 다시 돌아가자, 했다. 너무 쫄려서 못가겠어. 게다가 드문드문 보이는 상점들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문도 닫고.. 여러분, 주말엔 다들 어디서 뭐하는거에요?
나는 다시 호텔로 가면서 내가 빨래를 빨지 않았을 경우 벌어질 일에 대해 생각한다.
일단 속옷이든 겉옷이든 충분히 새것이 있으니,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운동복.. 두 번 운동해 땀에 젖은 운동복 위아래 두벌씩.. 나는 한 번 더 달리기를 하고 싶은데 바지..가 없다. 흐음.. 그냥 일반 바지 입고 위에는 운동 티셔츠 하나 더 있으니 그걸 입고 달리면 돼, 그래 어떻게든 하려면 할 수는 있어, 하고 숙소를 향해 갔다가, 흐음, 그런데 마음을 먹었으니 빨고 싶다, 해서 다른 빨래방을 검색하고 지도를 살핀다. 죄다 알 수 없는 외진 곳에 있다. 리뷰에도 외진 곳에 있으니 밤에 가지 마세요, 라는게 있어. 빨래방은.. 임대료 내가 힘들어서 외진곳에 있나요? 그러다가 나의 채경이가 올드타운에 있는 빨래방을 알려준다. 좋았어, 내가 너에게 가보마! 나는 다시 빨래방을 향해 가기 시작한다. 걸어, 걸어, 걷는거야!
사람들 많은 곳에 있어서 다행이다, 아 여긴 너무 좋네, 하면서 가기 시작한다.
가다보니 저어기에 사람들이 엄청 몰려있다. 으응? 왜? 왜? 하고 나도 가서 보기로 한다. 그러다가 보았네, 회전하는 카프카의 머리를.

이거 회전에서 머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가 또 하나씩 맞춰지면서 카프카의 머리가 되는데, 알라딘엔 동영상을 올릴 수가 없네. 인스타그램엔 올려두었다.
하여간 그래서 드디어, 빨래를 들고 빨래방에 도착했는데!!
하아-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것.
세탁기 세 대중 한 대가 고장나있고 건조기도 두 대중 한대가 고장나있다.
한 명이 세탁중이었고, 그러니 내가 사용할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긴 했지만, 하아, 세탁기가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더러웠어. 땀에 젖었던 내 옷을 넣었다가 더 더러워져 나올 것 같은 느낌적 느낌.. 그래서, 갈등하다 그냥 왔다. 동전만 사용해야 하고 나는 동전이 없었지만, ATM 기가 있으니 그건 사실 문제는 아니었고, 나는 이 세탁기와 건조기에 내 옷을 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들고 다시 호텔로 향했다.
신이시여..
어제 나는 그래서 31,203 걸음을 걸었다.
그전에는 26,420
그전에는 25,978
그전에는 31,688
자, 내가 할 얘기는 이제부터인데,
비록 빨래도 못빨았고,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길들로 가서 쫄았던 시간들이 있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러닝 코스도 발견했다는 사실!!
나는 오늘 달리기로 했다.
빨랫더미에서 운동복 바지를 꺼내 냄새 좀 맡아보고, 좋았어, 그냥 한 번 더 입는거야, 이 찝찝함, 나만 알아!! 아무도 모른다!! 하고 입었던 바지 다시 입고 티셔츠는 새 걸로 입고, 자 그리고 평소보다 좀 느린 시간에 나갔다. 내가 너무 일찍 나가서 사람들이 좀 없는것 같아 좀 늦게 나가자, 하고 나갔는데, 와, 좋아, 너무 좋아, 나 기분이 너무 좋아!!


최근에는 5km 달리기도 힘들었었는데, 8분대 페이스로 겨우겨우 30분 달리곤 했었는데, 여기 날씨가 서늘해서인지 오늘은 좀 더 달렸다. 달리는 길에 러너들도 많이 마주치고, 마주오는 러너들중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해주었다. 나도 반갑게 마주 손을 들어주면 좋았겠지만 ㅋㅋ 나는 그게 익숙하지 않고, 아시아의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사람이라, 습관적으로 목례를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 사람한테는 나도 손 흔들어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어김없이 또 목례가 먼저 나가버려... 하아- 안녕하세요? 동방예의지국 출신 다락방 이라고 합니다.

앞서 달리는 사람들 보는 것도 신나고 마주오는 사람들과 인사하는 것도 신나고 게다가 길도 달리기 좋게 되어있어서 너무 신났다! 바로 이거야, 이런 곳에서 달려야 하는거야! 너무 신나서 7km 를 달렸다. 사실 달리는 다리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는데 호흡이 너무 가빠서 더 달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면서 길을 잘못들은 줄 알고 쫄았던 어제가 떠올랐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하고 쫄아서 빠른 걸음으로 호텔로 왔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낯선 길에 당황했었는데, 그러다보니 이렇게 달리기 좋은 곳을 찾아낼 수 있었던거다. 인생, 진짜 재미있지 않나. 너무나 흥미롭고 신난다!! 지금의 순간순간이 나를 미래의 어딘가로 인도한다!!






땀이 뚝뚝 떨어졌다.
달리기를 마치고 쿨다운으로 걷다가 다시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 입구에는 음료를 받아 마실 수 있게 해두었다. 이거 뭐야? 물으니 아이스티 라고 한다. 그렇게 아이스티도 한 잔 마시고 숙소로 돌아와 땀에 젖은 몸을 깨끗이 씻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하하하하하
프라하에서 언제가 가장 좋았냐고 하면, 나는 아마도 오늘 아침의 달리던 순간을 말하게 될 것 같다. 옆으로 블타바강이 흐르고 달릴 수 있는 길에서 러너들을 만났던, 그래서 달리기가 신났던, 발견하지 못할 수 잇었던 길을 발견했던 뜻밖의 기쁨 때문에.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지금은 스타벅스에 와있다.
왜냐하면, 내가 프라하에서 다른 카페를 몇 번 갔었는데, 하아,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든 카푸치노를 주문하든 양이 너무 쪼꼬미야. 며칠전에 아침 먹으면서 주문했던 룽고도 너무 쪼금이고. 내가 아무리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커피 조금씩 주면.. 어떡해요?
아래는 카푸치노. 아 이것 먹고 소화 안돼서 너무 힘들었다. 우유 마시지 말것!!

이건 아메리카노. 저기요..이건 에스프레소에 물 두 숟가락 타 준 거 아닌가요? ㅜㅜ

이건 룽고. 여기는 아메리카노는 없었고 에스프레소 아니면 에스프레소 룽고가 있었다. with hot water 라서 아메리카노처럼 해주는 줄 알았더니 에스프레소 주고 뜨거운 물 따로 줘서 내가 부어먹는거다.

부었더니 이렇게 됐다. ㅎㅎㅎㅎㅎ 커피 인심 박하네요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가급적 커피를 안마시려고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글 쓰거나 할 때는 커피를 주문할 수밖에 없잖아? 저렇게 쪼꼬미 커피들로 도대체 뭘 어쩌라는건지. 나도 가급적 현지 카페 이용하고 싶었지만 ㅋㅋㅋㅋ 아메리카노 양 보장되는 스타벅스로 노트북 들고 온것이다. 만세!

커피양이 속이 다 시원해진다....
아니 달릴 때도 비가 약간 내리다가 말고 또 내가 스타벅스 맘먹고 오려고 했을 때도 약간 비가 내리더니 내가 스타벅스 들어와 앉아있으니 비가 멈추고 해가 뜨네. 프라하 머무는 동안 맑은 날보다 비오는 날이 더 많았는데, 비가 오고난 후에 길이 맑고 선명해지는게 너무 좋았다.






나는 이제 돈도 못버는데 돈을 막 쓸 수 없어서 어떤 끼니는 매우 가난하게 해결하고 있다. 나는 돈이 없다, 돈이 없다, 돈을 아껴야한다, 하면서.
너무 여기저기 막 걸어다녀서 오늘은 좀 쉬려고 한다. 저녁엔 호텔 근처의 아시안 레스토랑 가서 쌀국수도 먹고 화이트와인도 마셔야지.
몇해전에 친구랑 홍콩에 여행갔을 때, 호텔에서 둘이 맥주 마시면서 얘기하다가 급 방콕 비행기를 알아보고 예약해서 그 다음에 또 함께 방콕으로 갔던 적이 있다. 나는 프라하에 있으면서 하노이에 가고 싶어져서 비행기표 알아보고 그랬다. 하노이가서 매끼니 쌀국수 먹고 싶다고 프라하에서 생각하고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이 책 왜케 재미있나요. 다 읽고 한국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