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엄마에게 처음이자 유일한, 순전한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태어난 것도 엄마를 기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아빠와 결혼했다는 일종의 증거물이었고, 배운 대로 사는 삶이 낳은 예상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프라납 삼촌은 달랐다. 삼촌은 엄마의 삶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이고 기쁨이었다. (-「지옥 천국」, 줌파 라히리, p.85)




'순전한 기쁨'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려고 했었다. '순전한 기쁨'이라니 대뜸 '줌파 라히리'의 「지옥 천국」이 떠올랐고, 당연한듯 프라납 삼촌이 떠올랐다. 화자의 엄마가 프라납 삼촌을 좋아하는 이야기라,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한나 아렌트'의 전기와는 매우 결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다른 건 아니었다. 줌파 라히리가 말하는 '순전한 기쁨'이 대부분의 사람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것에서 벗어난 다른 것에서 온다고 했을 때, 나 역시 지옥 천국의 엄마처럼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에서 그것을 찾는다는 생각을 했으니까. 어쨌든 그래서 지옥 천국의 인용문을 가져오려고 찾았는데, 아 이 미친 기억력의 왜곡이여... '순전한'은 기쁨에 붙은 수식어가 아니라 '행복'에 붙은 수식어였네. 나는 어제 내내 '순전한 기쁨'이야, 이건 순전한 기쁨이지, 줌파 라히리가 말한 바로 그거야, 했는데 아아, 순전한 행복 이었어...



마침 오늘 아침에 읽기 시작한 책에서도 얼라리여, '순전한 기쁨'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아니, 이것이 뭔일이래. 어제 하루종일 '순전한 기쁨'을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 전혀 다른 책에서 만나는 순전한 기쁨 이라니. 순전한 기쁨 이라는 워딩 자체가 그렇게 흔한 워딩이 아닌데, 계속 생각하는 것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삶이라니. 일전에 나는 내가 소설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냥 문학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포용하는 문학적인 삶...


아, 다시 말하지만 그러나, 줌파 라히리는 프라납 삼촌에게서 얻은 것이 순전한 '기쁨'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나의 기억력은 왜곡되었어..




어제 동료랑 점심을 먹는데 어떤 얘기 끝에 동료가 '매일 만나는 것도 아닌데 만날 때 꼭 붙어있고 싶다'며 애인에 대한 얘기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겠지만 이 동료에게도 애인은 매우 중요하고 애인은 언제나 우선순위이다. 그러니 그토록 사랑하는 애인과 만나는 횟수는 항상 자기 바람보다 못미칠 것이고 그렇게 만나면 한시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을것이며,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동료는 내게 한것이었다. 나는 하루종일 붙어있는 건 아무리 사랑해도 내게는 힘든일이며, 각자 좀 떨어져서 혼자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게 행복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혼자 있는 게 행복하다면, 나는 그게 섞여 있는 사람인거다. 어쨌든 이 동료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것은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퇴근길에 책을 읽었다.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알로이스 프린츠'의 《한나 아렌트》전기였다. 한나 아렌트라면 악의 평범성 이라든가 하이데거 정도로 그 유명세만 알던 터라 이번 기회에 읽어보자, 하고 빌려온 참이었다. 마침 표지를 보니 그렇게 어렵게 쓰여져 있을 것 같지도 않아. 게다가 이번달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에서도 언급되지 않던가.



















근데 이 책을 읽는 게 너무 좋은 거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 내가 가진 지식은 전무한 상황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가 태어나고 공부하고 연인을 만나고 스승을 뛰어넘는 철학자가 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거다. 한나 아렌트는 특별히 여성주의를 염두에 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여성주의를 무시하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참정권에도 관심이 없었으니. 그녀의 그런 점이 어떤 남자들에게는 더 어필했던 것 같고.



한 다과모임에서 그녀느 역시 야스퍼스에게서 공부를 하고 있는 베노 폰 비제를 알게 되었다. 그는 훗날 문예학자로서 이름을 얻게 된다.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심지어는 결혼 얘기까지 있었다. 세 살 위인 폰 비제는 한나에게 매혹되었다. 특히 그녀의 눈에서 풍기는 '암시적인 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훗날 비망록에서 "그 눈을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두 번 다시 헤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움이 일었다"고 회상한다. 그에게는 한나가 '여성 참정권론자'가 되려고 하지 않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p.61)



1964년 10월 28일, 한나 아렌트의 모습이 독일 제2방송ZDF에 나왔다. "인물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권터 가우스가 그녀를 인터뷰했다. 가우스는 대담이 시작될 때 그녀가 이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첫 번째 여성이라고 말하며, 여성 해방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한나는 여성 해방 문제에 있어서 자신은 개인적으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왔을 뿐이에요." (p.241)



굉장히 지명도 있는 사람이었던만큼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고 여성주의를 주장해주는 사람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내가 개인적으로 갖고 있긴 하지만, 그녀가 특별히 여성주의를 염두에 두고 산 게 아니라도 남성들만 나왔던 프로그램에 '여성으로서' 나오게 된다는 것, 자신을 가르쳤던 스승보다 더 유명해졌다는 것등은 다른 여성들로 하여금 충분히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기사를 쓰고 나서는 수많은 유대인들로부터 공격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무너지거나 자기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던 것도 역시 마찬가지.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것에 목소리를 낸것도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했다'고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여성을 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충분히 다른 여성에게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보여진다. 물론 한나 아렌트가 살아있고 이런 나의 글을 본다면 '아니, 여성주의랑 엮지 말라니까 왜 니 맘대로 엮고있어!'할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한 여성이 사회적으로 당당히 목소리를 내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유명해지고 힘을 갖게 되는 것은 다른 여성들에게 너무 좋은 본보기가 된다고 생각하는 바, 한나 아렌트가 '난 여성주의에 아무 역할도 안했어' 라고 해도 계속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나 아렌트가 제일 처음 만난 연인이 '하이데거'인만큼 하이데거 얘기를 안할 수가 없고, 하이데거 애기를 할라치면 일단 빡이 치는 건 또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인것이야...

한나 아렌트는 1906년에 태어났고 매우 총명해서 어릴 적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에도 이른 나이에 대학에 진학했다. 한나는 학생으로 하이데거는 교수로 처음 만나게 되는데 그 때 하이데거의 나이가 35세. 하이데거가 1889년생이니 둘의 나이차이는 17년이고 그러니까 그 때 한나의 나이는 18세였던 거다. 씨부럴. 한나가 하이데거를 만나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학교에 들어가긴 했지만, 이 총명하고 젊고 아름다운 한나에게 35세 중년남 하이데거는 반해버리고 마는 것이야. 그래서 지가 먼저 편지를 쓰고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둘 사이의 나이차이도 빡치지만,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도 빡치지만, 그당시 하이데거는 유부남이었다. 아내와 아들들도 있었다고. 그러면서 뻔뻔하게 어떻게 18세 여성에게 사랑한다고 고백을 할 수가 있지? 정말이지 ... 어처구니가 없다.



하이데거는 기혼자였고 두 아들의 아버지였다. 처음부트 그는 한나에게 자신의 결혼과 경력을 위태롭게 하고 싶지 않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한나는 이 게임 규칙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려고 온갖 궁리를 짜내는 게임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창문을 열어놓는다거나 램프를 켜놓는 것과 같은 비밀 신호를 정했다. 두 연인은 비밀이 들키면 어쩌나 늘 불안했다. (p.50)


그는 편지에서 그녀만큼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는 이는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 한나는 그의 좋은 정령이며, 그녀는 그의 사상에 영감을 주었다. 훗날 그는 그녀가 없었더라면 『존재와 시간』을 쓸 수 없었으리라고 고백한다.

한나는 예속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녀는 "내 사랑으로 인해 당신이 더 힘들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묵묵히 순종하며 그의 은밀한 지시에 따랐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는 선생이었고 그녀는 제자였다. (p.55)




한나도 하이데거를 사랑해서 둘은 사랑하지만, 하이데거는 한나를 자신의 지적인 '동반자'로 보기 보다는 보조자 취급을 했다. 너는 내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똑똑한 여성이지만, 너 스스로 혼자 설만큼 똑똑한 건 아니야, 정도의 느낌이랄까. 나중에 한나가 하이데거보다 더 유명해지고난 뒤에도 한나의 작업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는 게 합의되어 있었다.



한나는 자신이 하이데거의 수호자이며, 그의 정신적 균형과 철학적 작업의 수호자임을 느꼈다. 그녀의 말에서 위대한 마법사 하이데거에 대한 옛 경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하이데거의 '컨디션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고, 그가 마련해준 귀빈석에 앉아 그의 강연도 들었으며 강연 내용에도 감탄했다. 그녀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는 물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나가 언제나 '마치 글을 한 줄도 쓰지 않았고, 앞으로도 쓰지 않을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두 사람의 암묵적 합의였다. (p.157)


한나와 하이데거가 동시에 싫어지는 일은, 하이데거의 아내를 만나 친해지려고 했던 일이다. 한나는 '하인리히 블뤼허'랑 결혼해 사이좋게 오래 살았지만, 하이데거를 인생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가 나치당에 들어갔었다는 사실 때문에 끝내 괴로워하면서도 그러나 하이데거랑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어했다. 하이데거는 자신과 한나의 오래전 관계를 아내에게 말했는데, 아니, 어느 아내가 자신의 남편과 사랑했던 여자를 다정하고 친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미국에 정착해 살면서 독일에 방문할 때면 하이데거를 찾아가는 한나를 하이데거의 아내가 반가이 맞을 리 없다. 하이데거와 한나 둘만 있게 두지 않으려 하고 질투하며 표독스럽게 구는데, 이에 한나는 너무 짜증을 내는 거다. 누가 나를 다정하게 대하지 않으면 짜증나는 건 모두에게 마찬가지겠지만, 아니, 그 아내가 어떻게 친절하게 한나를 대하냐고. 이 둘을 소개시킨 하이데거는 대체 뭐하는 놈이야... 삼십대 중반의 유부남 주제에 18세 제자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더니, 나중엔 '나 한나랑 사랑하는 사이였어' 이러면서 아내에게 소개해.. 철학은 뭡니까?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뭐죠?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대체 하이데거라는 이 '남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었던거야? 철학이 뭔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철학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왜 때문에 아내에게 자신이 젊은 시절 바람폈던 여자를 소개시켜주고 사이가 좋기를 바라는가... 삶을 쥐뿔도 모르는데?

한나는 그녀가 짜증낸다고 너무 신경질적이라고 남편에게 편지 보내면서, 하이데거의 정치적 과오들도 뒤에서 아내가 조종한거였다고 쓴다. 하아- 아내가 조종했다는 것이 팩트인지도 모르겠지만, 설사 그렇다해도 아내가 그러라고 했다고 나치당에 들어간 게 뭐 아무 잘못 없는 게 되는가.. 자신의 머리로 판단 못하는부분?


나는 한나 아렌트가 참 좋아졌는데, 저 부분에서만큼은 진짜 딥빡이 온다. 아니, 아내의 입장이 되어보면 말이다, 한나가 집에 딱 왔어. 그러면 " 꺅 >.< 너무 좋아, 반가워요, 남편의 전 내연녀, 내집처럼 편히 머물러요~" 이게 되는가? 쯧쯧...

물론 저거 가능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자기가 화낼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든 자기중심적인지라 자기 기분, 자기 상황이 먼저지. 한나는 자기 기분에 충실했던 거야...




인상적인 건 남편 '하인리히'와의 관계였다. 뉴욕으로 건너가서 하인리히는 거기에서 일자리를 구해 강의를 하는데, 한나는 주중에 남편과 떨어져야 할 일이 많다. 여행을 비롯해서 강연 초청까지 여기저기 막 다녀야 하는, 역마살 낀 삶을 살고 있는 것. 실질적으로 남편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거다. 그럼에도 그녀는 당신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한다. 지금 내 옆에 껌딱지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어도, 나는 여기 비행기 타고 먼 곳에 와있고 당신은 거기, 아주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내 옆에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하는 삶이라니. 이 지점이 아까 말한 회사 동료와는 전혀 다른 지점이고 또 나랑은 같은 지점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까 반드시 육체적 물리적으로 내 옆에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사람의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가 함께하고 내 영혼에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이 한나가 아주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28년동안 함께 살았어. 그가 없는 삶은 생각할 수 없어." (p.248)



그녀는 열정적으로 사유하는 것을 즐겼다. 메리 매카시는 한나가 일찍이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을 본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마치 자기 자신도 잊은 듯이 꼼짝도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눈을 감고 있을 때도 있고 눈을 뜨고 있을 때도 있었다. 방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나 까치발로 살금살금 그녀 곁을 지나가야 했다. 한나는 은거할 수 있는 그런 국면이 필요했다. 그녀에게는 그다음 다시 대중 속으로 들어가 토론하는 일도 그만큼 중요했다.

그런 식으로 고요히 생각하는 국면이 지난 다음에 그녀가 말을 거는 최초의 사람은 대부분 하인리히 블뤼허였다. 그와의 대화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과 같았다. (p.279)




한나는 사유하는 사람이었다. 사유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대화를 할수밖에 없다. 사유란 무릇 그런 것이니까. 그런 그녀가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아닌 타인. 이것은 얼마나 고맙고 또 다행한 존재인가. 24시간 365일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니어도, 각자가 서로 떨어져있더라도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다니, 너무 좋지 않은가. 그건 하인리히에게도 또 한나에게도 서로가 자신과의 대화를 연장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사람은 생애 그렇게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거라고 보인다.




한나 아렌트에 대해 얘기하면서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유대인 학살 당시 나치였던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한다. 그당시 현재의 법률로 그를 처벌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고, 또한 그녀는 아이히만이 그저 어리숙한 한 남자였다는 것에 당황한다. 그럼으로써 악의 평범성을 주장하게 되는데, 한나 아렌트가 생각하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고 그것으로 사유하면서 말과 행동을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열정적이라, 아 그녀가 자꾸 위로 쑥쑥 올라갈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는 좀 길지만 인용해보겠다.




덴마크 정부는 독일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고집스럽게 거부했고, 유대인 별 표시를 받아들이라는 요구에 대해 덴마크왕은 자신이 그 별을 다는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식으로 '저변이 더 확대된' 저항은 놀라운 효과가 있었다. 독일의 지휘관들은 기이할 정도로 양보를 하며 어쩔 줄 몰라 했고, 베를린에서 오는 지시들을 무시하고 믿지 않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그들의 "냉혹함"은 "햇볕 속의 버터처럼 녹아버렸다." 이렇게 부드러워지는 것이 바로 한나 아렌트가 이미 전체주의에 대한 책에서 기술한 전체주의 체제의 한 속성을 시사한다. 그런 식의 체제는 아무리 살인적이고 파괴적이라 하더라도, 어떤 단호하고 연대적인 저항이 나타나면 대단히 쉽게 내부적으로 와해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본질이 기이할 정도로 아무런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무실체성을 한나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영혼 없는 괴물로 내세우는 데 반대한다. 그를 그런 식으로 악마화한다면, 비록 악마적인 위대함이라 할지라도 그에게 적합하지 않은 어떤 위대성을 부여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악마화는 사람들이 아무런 대항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내맡겨져 있는 검은 세력과 관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일깨운다. 이 외견상의 어두운 세력 뒤에는 사람들이 어떤 대항 행동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대단히 현실적인 조직이 숨어 있었다. 사람들이 힘을 합헤 공동으로 사태를 이끌어가는 것은 명령과 복종과 무책임에 근거를 둔 모든 테러 체제보다 언제나 영향력이 크고 또 "깊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아이히만을 "어릿광대"라고 불렀고 그가 체현한 악을 "평범"하다고 했던 것이다. (p.233-234)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를 괴물로 보지 않고 평범하게 봤다는 것, 게다가 유대인 학살을 돕는 유대인이 있었다고 쓴 것 때문에 한나는 유대인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는다. 그녀와 친한 사람들조차도 그녀를 비난한다. 그녀가 나치의 악을 극소화 시키고 있다는 것.

한나의 강의는 매우 유명하고 교수로서 이름도 높아 대학마다 그녀를 교수로 모시려 하고 그녀의 강의를 들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머무르는 미국에서 너무 비난을 받아 매스컴의 초대에는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고도 여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녀로부터 악의 평범성 때문에 등을 돌렸는데, 그녀가 언제나 스승이라고 생각했던 '카를 야스퍼스'는 그녀의 말을 지지하고 또한 남편 '하인리히'도 그녀 편이다. 단지 편으로써 편이 아닌, 그 말을 이해해주는 것. 나는 이런 지점들이 그녀가 인생에서 가진 행운이라고 보여진다.


악의 평범성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한나 아렌트가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겠다. 사실 그건 지금 적용해도 틀린 말이 아니고. 강남역 살인사건에 있어서 가해자가 과연 '괴물'이어서, 그가 '근본 악'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일을 저지른걸까? 그가 다른 남성들과는 매우 다른 사람이었나? 악의 평범성은, 이런 부분에서도 적용되는 거 아닐까?



그러나 내가 그 당시의 유대인이었다면 나는 한나 아렌트의 편에 섰을까? 한나 아렌트의 손을 들어주었을까? 잘 모르겠다. 나치로부터 고통을 받았던 유대인의 입장에서 '그 악이 특별했던 게 아니야, 평범했던 거야, 그를 영웅화 시키지마'라는 말을, '아 맞다 그렇지' 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의 나라면 한나 아렌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언지 알겠는데, 그 당시에 그 피해자속의 나였다면 나 역시도 한나 아렌트를 비난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자, 다시 순전한 기쁨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순전한 기쁨을 느꼈다.

한나 아렌트의 탄생과 삶 전반에 걸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정말 기뻤다. 기뻤다는 단어가 책의 내용상으로 적절하진 않겠지만, 한 권의 책을 읽고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는 것, 한 위대한 여성에 대해 알게 됐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책을 읽는다는 게 너무 기뻤던 거다. 책 너무 좋다. 책을 한 권 읽음으로써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는 또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이 기분. 내가 조금 더 달라지 기분, 책을 읽기 전보다 뭔가 더 채워진 기분. 나는 이것이 너무 기뻤다. 너무 짜릿했다. 이것은 짜릿하고도 순전한 기쁨이야. 어제 퇴근길에 순전한 기쁨이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그러나 회사 동료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순전한 기쁨은 자기만의 몫이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늘 붙어있고 싶은 마음, 그래서 붙어 있을 때 행복한 그 마음은 누군들 모를까. 그러나 굳이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나는 이런 게 더 기쁜거다. 심지어 최고의 기쁨이야. 우선순위의 기쁨이다. 그러니까 좀전과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좀 전보다 내가 더 채워진 것 같은 이 순간, 책을 읽는 이 순간,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에 대해 감동하고 생각하고 돌이켜보는 이 순간. 이 순전한 기쁨이라니! 이걸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 책과도 대화를 하게 되지만 나와도 대화를 하게 된다. 나는 이런 순간이 순수하게 너무나 기쁜 것이다. 순전한 기쁨!!



기쁨도 각자의 몫이고 행복의 기준도 저마다 다른 것이고 그러니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들어 멋대로 조언해서는 안되지만, 그렇지만... 나는 사람들아, 책을 읽어라! 하고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것이다. 누가 오지랖 떠는 거 보는 거 세상 싫지만, 그래서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렇지만... 여러분, 책은 읽어야 해! 책은 나 자신과 풍부한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얼마나 좋은지 몰라. 삶이 충만해진다고!!




한나 아렌트는 제일 처음 하이데거를 선생으로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지만, 어느 순간 스승을 앞지르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나는 이것도 너무나 너무나 좋다. 이런 실재한 여성을 책으로 만날 수 있다니, 아 진짜 너무 좋지 않은가. 나는 한나 아렌트를 더 읽어봐야겠다.

지금 기분으로는 이 책을 읽은 게 너무 기뻐서 책장 한 칸을 온통 한나 아렌트로 채우고 싶다.






















아, 아침부터 페이퍼를 너무 열정적으로 썼더니 출출하네. 백설기 뜯어먹고 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오레오도 있고 귤도 있고 백설기도 있고 커피도 있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책 만세!



덧붙임) 바로 위에 링크한 《한나 아렌트의 말》사려고 했는데 내가 이미 사둔 책이란다... 네??????????? 나는 기억에 없는데?????????? 그러면 내 책장에 이 책이 있단 말이야????????????? ㅜㅜ




마르타는 편물공장에서 일거리를 맡아왔다. 67세의 나이로 낯선 세계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거의 집에 머물면서 한나와 하인리히를 위해 살림을 했다. - P109

알프레드 케이진은 한나가 친구들 사이에 끼친 첫 번째 영향을 이렇게 회상한다. ˝내가 40대 후반의 그녀를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매력적이고 정열적인 유대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상냥하고 재치 있고 혀가 매서운 만큼이나 여성적이었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교양이 있었다. 새로운 우정에 매혹되면 그녀의 유대인 용모와 칼칼한 목소리는 명상에 잠긴 듯한 다정함으로 변했다. […] 그녀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왜냐하면 그녀의 새로운 고향과 영문학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억양과 열정과 마찬가지로 그녀 자신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P122

야스퍼스가 하이데거를 ‘순수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다면 그녀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정말 인격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하이데거가 무너진 후 처음 쓴 글 「휴머니즘에 관하여」도 그녀는 좋게 보지 않았다. ˝문명을 욕하고 존재Sein를 y자[Seyn]로 쓰면서 토트나우베르크에서 살았던 삶은 사실 쥐구멍 속으로 숨는 것과 같아요. 그렇게 숨어든 건 순례를 하듯 자신을 찾아와 경탄을 표하는 사람들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P125

한나는 뉴욕에서 충만한 삶을 살았다. 요구 사항이 많은 직업을 갖고 있었고, 마음에 담고 있는 책을 썼으며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러나 한나의 어머니는 그렇다고 할 수 없었다. 마르타 아렌트에게 미국은 영영 낯선 존재였다. 그녀는 95번가의 가구 딸린 방에서 은둔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사위를 잘 이해하지 못햇다. 하인리히는 여러 직업을 전전한 끝에 다시 재야학자로 살아갔다. 그는 독자적인 철학적 구상으로 전 서구 사상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지고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 밖에도 그는 한나가 책을 쓰는 데 자극과 조언을 주는 대화 상대자였다.-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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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20-01-15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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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1-15 14:26   좋아요 1 | URL
아이고 별말씀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매우 좋아하고 있다)

잠자냥 2020-01-15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 아렌트는 하이데거와의 그 *빻은* 관계 때문에 이상하게 손이 안 가더라고요. 그래도 더 읽어봐야겠지요. ㅎㅎ
(똑똑한 사람이 어쩌다 그런 사랑을;; 음..)
우리가 읽은 <나 시몬 베유>의 시몬 베유는 다락방 님이 페이퍼에서 구구절절 쓰신 바로 그 지점 때문에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주장을 비판했지요. 저는 ‘악의 평범성‘도 공감하지만, 시몬 베유의 비판도 이해가 가요. 암튼 두 여성 다 멋지긴 합니다. ㅎㅎ

그나저나 하이데거 이야기 하시면서 흥분하셨나봐요. ㅋㅋㅋ아렌트 관련 네 번째 인용문에서 ˝한나는 예쏙적이라고 할 정도로 그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p.55) 예쏙적 ㅋㅋㅋㅋㅋㅋ 너무 예속되었다고 생각하셨나봐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1-15 14:38   좋아요 1 | URL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와 사랑에 빠지고 또 그것을 평생에 걸쳐 가져간건(심지어 중간에 그가 그녀로부터도 비난당할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너무 어릴 때 만난 첫사랑 혹은 첫남자 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하이데거가 더 싫고요. 제 경우에도 제 첫사랑을 잊는데 되게 오래 걸렸거든요. 그나마 나중에는 다른 시각으로 그 일을 바라볼 수도 있게 되었고요(그건 사랑이 아니었어요). 한나 아렌트에게 어릴 적에 만난 스승이자 남자인 하이데거는 너무 강한 사람이었고 잊지 못할 사람이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한나 아렌트가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란 생각을 안해볼 수가 없어요. 그랬다면 한나 아렌트도 사랑에 빠진 그 당시라면 몰라도, 나중에는 하이데거와 하이데거와의 관계 그리고 하이데거 아내와의 관계도 다르게 볼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뭐, 이건 지금의 제 생각이지만 말입니다.

시몬 베유는 보부아르와도 선을 그었는데 한나 아렌트를 비판했군요. 너무 멋지지 않습니까? 뭐랄까. 멋진 여성이 다른 멋진 여성을 비판하는 게 너무 멋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부아르, 시몬 베유, 한나 아렌트. 각자 자기 주장을 가지고 멋져서 너무 좋아요. 세상에 멋진 여자가 많아서 좋군요. 물론 아직 충분하진 않습니다. 더 나와야 해요, 더!


하이데거 너무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너무 싫어. 하여간 철학한다는 남자들은 죄다 별로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저 [나, 시몬 베유]는 안읽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연 2020-01-16 07:50   좋아요 0 | URL
[나, 시몬 베유]를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의 그 유명한 악의 평범성을 비판하는 걸 읽으면서, 시몬 베유라는 사람 대단하구나 했어요. 자기만의 경험을 토대로 사상을 발전시키고 (꼭 사상이라고 지칭할 필요도 없지만) 그에 기인하여 다른 사람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건전한 상황인 것 같다. 시몬 베유와 한나 아렌트가 다 훌륭해보기에 하는 지점이었죠. ..

그나저나 한나 아렌트가 하이데거에게 푹 빠져 산 건... 아쉬운 일이지만, 그 심정에 대해 뭐라 말할 순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라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게 마련인지라. 하이데거가.. 나쁜 넘인거죠. 흥. (라고 비난의 화살을 하이데거에게 확 돌려버린다)..

아 아침부터 졸린데 이 글 읽고 깼어요. 요즘 넘 피곤해서 책이 잘 안 읽혀지는 게 넘 괴롭구나 생각하며 출근했거든요. 책만 읽으며 살 순 없겠죠.. 먹기도 해야 하고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직장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출근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피곤할 수밖에 없고.. 그러려면 책 읽을 시간이 줄 수 밖에 없고.. 악의 순환고리에요. 쩝.

다락방 2020-01-16 08:15   좋아요 1 | URL
제가 시몬 베유 책을 세 권을 사서 그 중에 두 권을 읽고 한 권을 팔았거든요. 근데 그 한 권이 바로 [나, 시몬 베유] 였어요. 하아. 어제 잠자냥 님의 댓글과 오늘 비연 님의 이 댓글을 읽으니 제가 무슨짓을 한건지..너무 후회가 밀려오네요. 안그래도 새책 팔면서 팔까말까 엄청 망설였는데... 팔지말걸. 저 너무 악의 평범성 비판한 부분 읽고 싶고요... 그렇다면 저는 정가에 사서 중고가로 팔고 다시 정가에 사야 하는걸까요? 슬픔 ㅠㅠ 그렇지만 너무 읽고 싶네요. 제가 왜 팔았을까요? ㅠㅠ


저도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의 관계에서는 하이데거가 나쁜놈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뻔뻔한 새끼에요. 나이도 훌쩍 많은 유부남이 어디 어린 여학생에게 사랑한다고 껄떡댑니까? 그러면서 들키지 않으려고 숨겨가며 만나고. 진짜 제일 싫어요. 나쁜 새끼...

저도 회사 안다니고 책만 읽으면 얼마나 신날까 생각하는데... 그런데 회사를 안다니면 책을 또 어떻게 사죠 ㅠㅠ
인생이란 게 이런건가 봅니다. 하나를 취하기 위해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는 것...
인생....

비연님, 오늘도 화이팅요! ㅠㅠ

잠자냥 2020-01-16 11:13   좋아요 0 | URL
ㅎㅎ 댓글 달고 보니 제가 한나 아렌트를 비난(?)한 거 같군요. ㅋㅋㅋㅋ 아니 왜 그런 남자를 만나! 하면서요.물론 하이데거가 나쁜 노....옴이지요. 에휴. 거기에는 덧붙일 말도 없어요.

다락방님 그 책을 그렇게 팔아버리셨군요!
그럴 땐 도서관을 이용하시는 거예욧....
전 시몬 베유가 아렌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보기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지적하는 점이 정말 당차 보였습니다. ㅎㅎㅎ 근데 또 그게 그냥 비난이 아니라 말이 되니까 더 멋진!

다락방 2020-01-16 11:34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제가 도서관도 검색해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도서관에 없더군요..
앗. 해가 바뀌었으니 신청해야겠어요!!

(잠시후) 희망도서 신청하고 왔어요! 그런데 한나 아렌트 비판하는 부분 너무 멋있어서 결국 구매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무슨짓을 한것인가 내가 ㅠㅠ
 















'로버트 브린자'는 남자 작가이다. 전편인 《얼음에 갇힌 여자》에서 주인공인 '에리카' 형사를 통해 여성 피해자들에게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아, 이 작가는 세상을 두루 보려고 하는구나, 노력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고 연대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 남자 형사들로부터 따돌림 당하지만 고집스럽게 제 역할을 해내려는 에리카의 모습을 나는 무척 좋게 봤더랬다. 남자 작가라고 다들 그렇게 여성혐오적인 작품만 쓰란 법은 없지, 어떤 남자들은 성평등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수도 있는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남자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고 로버트 브린자는 성평등의 손을 들어주는 사람, 최소한 그러려고 노력하는 작가라고 나는 판단한 것이다.



지금 읽고 있는 《나이트 스토커》에서는 남자들이 피해자가 된다. 어쩌면 게이일지도 몰라 게이혐오에 촛점을 맞춰 수사중이다. 에리카가 맡은 사건의 시체를 부검하는 법의학자는 '아이작'이라는 남성인데 이 남자 역시 게이다. 에리카와 사이 좋게 지내면서 서로의 고민들을 말하기도 하고 함께 자주 저녁 식사도 한다. 그 날도 아이작은 에리카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에리카는 곱게 차려입고 아이작을 방문했다. 긴 여름 드레스와 맵시 있는 머리, 대롱대롱 매달린 은제 귀걸이(p.137) 차림으로. '맵시 있는 머리'라는게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에리카가 평소의 출근하는 차림이 아닌, 여느 날과는 다른 '꾸민' 옷차림으로 아이작을 방문한거다. 그런 모습에 아이작은 놀라고 감탄한다.



"이야, 내 앞에 선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누구시죠?" (p.137)



자, 아이작의 감탄은 타당하다. 우리가 영화에서 종종 보던 장면은 어떤가. 한껏 꾸민 차림으로 데이트를 하려고 하면 남자들이 항상 그런 여자에게 감탄하지 않는가. 꾸민다는 것은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음을 의미한다.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고, 이 자리에 신경쓰고 나왔다는 걸 티내고 싶고. 그래, 이런 마음이 왜 없겠는가. 그렇게 차려입을 수 있고, 차려입은 만큼 내가 차려입었다는 걸, 신경썼다는 걸 상대로부터 듣고 싶은 마음도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니 아이작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감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에리카의 반응은 어떤가.




"내가 평소에는 창녀처럼 입고 다녔다는 말투 같군요." 그녀는 말했다. (p.137)



나는 에리카의 이 반응에 너무 놀랐다.

자, 생각해보자.

내가 오늘 데이트가 있다. 그래서 평소와는 다르게 좀 신경써서 옷을 차려입었다. 머리도 신경 쓰고 옷도 신경쓰고 평소에 하지 않던 귀걸이도 했다. 그렇게 상대와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한거다. 그렇게 차려입었더니 상대는 평소의 내 차림도 아는 터라 내 모습을 보고 우와, 하고 감탄할 수 있다.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상대가 내게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칭찬했을 때 내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은 어떤걸까?



일단 칭찬을 들었으니 '고맙다'고 반응할 수 있겠다. 에리카와 아이작은 일터에서 만난 사이이고 그러면서도 사적으로 가끔 사이좋게 식사하는 사이이니 '하하 고마워' 정도로 감사를 표현할 수도 있다. 혹은 위의 에리카의 반응처럼 무심히 넘기려는 듯, 평소에 내가 어땠길래 그래? 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려고 했다면, 나였다면, 그리고 내 주변의 다른 보통의 여자들이었다면,



내가 평소에는 어땠다고 그래?

내가 평소에는 날나리 같았어?

내가 평소에는 양아치 같았다는거야, 지금?

내가 평소에는 천박했어? 어?

내가 평소에는 거지같았니?

내가 평소에는 초라했어?

내가 평소엔 야하게 입고 다녔어?



뭐 이런 식의 반응들이 나올 수 있다. 날나리, 양아치, 거지(딱히 거지를 말할 것 같진 않지만)등등. 또 다른 단어들을 넣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상대에게 '내가 평소에 창녀같았나 보지?' 라는 말은 안할거다. 세상 어느 여자가 자신을 칭찬하는 남자에게 반응하면서 '나 창녀같았나보지? 나 창녀로 생각했나보네' 라는 반응을 보이는가. 어느 여자가 창녀라는 워딩을 입밖에 내는가. 친근한 사람과의 대화에서.


직장에서 만난 사이도, 친구 사이도, 연인 사이라도,

나 창녀같아? 라는 말은 대체 어느 여자가 한단 말인가. 하아.



나는 저 워딩에서 남자 작가의 한계를 느꼈다. 전(前)작에서 소수자의 삶, 여성들이 직장에서 무시당하는 삶, 피해자에게 연대하는 여성을 실컷 보여주려고 노력한 작가였지만, 그러나 그가 남자임은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저기서 왜 창녀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가. 우아함의 반대로 여자들은 창녀를 생각하지 않는다. 고상함의 반대, 아름다움의 반대, 지적인 것의 상대어로 여자들은 창녀를 떠올리지 않는다고. 우아하다는 칭찬에 평소에 창녀로 봤냐는 대답은 정말이지, 남자 머리에서만 나올 수 있는 거다. 맹세코 나의 경우 단 한 번도, 나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칭찬하는 상대에게 '왜? 나 평소에 창녀같았어?' 라고 되물은 적이 없다. 우아함의 상대어로 바로 창녀를 들이밀다니. 대체 이게 어디에서 튀어나오는 상식이야, 어디서 튀어나오는 대응이야. 우아함의 상대어로 창녀를 바로 끌어올 수 있는 거, 아무리 주인공이 여자라지만, 그런 여자의 입을 빌어 '창녀'를 언급하다니. 너무 성녀와 창녀 이분법이 머릿속에 박혀있는 거 아닌가.


나는, 우리는, 여자들은,

성녀와 창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우아할 수도 있고 덜 우아할 수도 있고 초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아한 것의 상대어가 창녀같다는 생각은, 우리는, 여자로 살아오면서 하지 않는다.

내가 여성인 친구들을 만나 '와 오늘 옷 되게 잘받는다' 라는 말을 한다거나, '머리 잘랐어? 잘 어울려'라는 말을 한다거나, 뭐 기타등등 어떤 칭찬을 할 때 그 누구도 '나 평소에 창녀같았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대체 머릿속이 어떤 구조로 되어있으면 저기서 우아하다는 칭찬에 창녀로 받아치냐. 이건 진짜 남자 작가라서 그런거야.



남자들에게 창녀는 뭘까.

창녀가 뭡니까, 남자들이여.

도대체 남자들은 창녀를 뭐라고 생각하길래 머릿속에서 창녀를 지워내지 못하고 아무때나 구분도 못하고 튀어나와버려.

진짜 .. 하아-

좆같은 새끼들 진짜.



그러니까 아무리 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보여주려고 해도, 공평한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이번 책에서는 승진하고 싶어하는 에리카를 보여주는데, 그러니까 야망 있는 에리카. 그럼에도 어쩔 수없이 뿌리박힌 여성혐오가 그 안에 있는 것 같다. 세상 어느 여자가 저기서 저렇게 말하냐고.


"내가 평소에는 창녀처럼 입고 다녔다는 말투 같군요."



대체 저게 무슨 말이야. 심지어 에리카는 전작에서 우리가 창녀의 죽음이든 창녀가 아닌 사람의 죽음이든 평등하고 똑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열변했잖아.




"오늘까지는 앤드리아 더글러스-브라운의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신문과 인터넷 사이트, 텔레비전 뉴스에 앤드리아 사진이 도배됐고, 국가적 양심의 문제로까지 번졌죠. 그렇습니다, 앤드리아가 특권을 누렸던 건 사실입니다. 반면 타티아나 이바노바, 미르카 브라토바, 카톨리나 토도로바와 아이비 노리스는 어떤가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험한 삶을 살았을까요? 아닐겁니다. 상황이 달랐다면, 그들도 앤드리아처럼 윤택한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내가 구태여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매일같이 행해지는 대로 이들을 계급화하지는 말자고요. 이 다섯 사람 모두 끔찍하게 살해됐어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겁에 질려 죽어 갔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등하고, 똑같은 피해자이며, 공정한 시선으로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p.355)




머릿속에 졸라 창녀창녀창녀창녀 있는건가봐. 하아. 재미있게 읽다가 아, 이것이 바로 남자 작가의 한계로구나, 생각했다. 남자란 어쩔 수가 없어. 머릿속에서 창녀를 지워낼 수 없는건가봐. 우아함에 바로 창녀로 받아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나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말, 내 여자친구들로부터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말. 그 말을 '로버트 루인자'가 에리카의 입을 통해 한다. 정말이지, 실망 대실망이다. 하아.



우아함의 상대어는 창녀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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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0-01-09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서재의 달인 등극 축하드리며 새해복많이 받으셔요^^

다락방 2020-01-10 09: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0-01-09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10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언제나 인간에게 관심이 많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상대가 하는 얘기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는 일은, 내가 스스로 원해서 하는 일이다. 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 혼자 분석하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대체로 그게 잘 맞는다. 내가 아주 관심있게 상대를 알려고 하고 들여다보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을 좋아한다. 세상을 더럽히고 망치고 악을 칠하려는 것이 인간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런 인간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고 선을 덧칠하려는 것도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은 어쩌면 불완전한, 불안정한 마음이란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마음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지만,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그토록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마음이란 무엇인가, 자꾸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고은' 의 『마음 실험실』을 읽고자한것은 바로 그때문이다.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마음을 더 잘안다면 인간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 마음을 알고 싶고 인간을 알고 싶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나를 알고 싶었다. 다른 인간들을 알고 불완전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나는 나를 지금보다 좀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이고은은 이 책에서 감각, 삶, 시간,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 감각과 삶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에서라면야 그저 책장을 넘기는 게 전부라고 해도 좋을만큼 익히 아는 이야기였지만, 시간과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3,4부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두 눈 부릅뜨고 읽어가며 북마크를 엄청나게 붙였다. 그렇다면 그것이 내가 모르는 신비한 이야기들로 가득했는가, 앎으로 가득했는가, 라고 물으면 '아니오'다. 아니.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다 알고 있는 것들이 거기에 다시 이론적으로 설명되어 있을 뿐이었고, 그것을 연구와 실험을 근거로 얘기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묘하게도 위로가 되었다. 사실 이 책에 나온 실험들은 굳이 실험을 해야할까 싶을 정도로 내가 익히 아는 것들인데,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알았냐? 내 삶이 주는 경험에서 알기도 했고, 소설이 다 알려주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렇게 실험해서 아는 것들을 소설을 읽으면 다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이 실험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다. 이 실험은 행해져야 했다. 그리고 이렇게 실험 결과로써 나타나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데에는 여러 방법을 사용해볼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이유를 우리는 소설이 알려줘서 알기도 하지만, 이렇게 이별에 관한 실험을 통해서 알기도 한다.




이고은이 들려준 이별에 관한 실험 중에는 '자이가르닉 효과'라는 게 있다. 한그룹에는 과제를 마치게 하고 한그룹에게는 과제를 미처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끝맺게 했더니 시간이 흐른 후에 과제를 미처 마치지 못한 그룹이 그 과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더 상세하게 기억했다는 것. 이를 통해 우리는 헤어진 사람 때문에 슬픈 이유는 완료하지 못한 관계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거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별에 대입하면,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헤어진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연인과 헤어지는 사건을 마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파투 난 것과 같은 강도로 받아들인다. 과제를 수행하다가 중지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만 것처럼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삶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환되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연애가 갑자기 끝나버리자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하는 것이다. (p.160)



위의 구절은 나를 오래 생각하게 했다. 정말 그런가. 내가 정말 그것을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이토록 오래 고통스러워하는것인가.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적부터 숙제를 매우 잘해가는 학생이었다. 집에 가면 일단 숙제부터 해야 했다. 국민학교 내내 방학숙제 조차도 밀려서 하거나 개학을 앞두고 부랴부랴 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미리미리 해두었고,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인 '밀린 일기 몰아쓰기' 같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해야 할 것을 미뤄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숙제는 해야 했고, 시간에 맞춰 등교하고 출근해야 하는 사람. 그러니 '이런 성격'의 나에게 '미처 해해내지 못한 숙제'처럼, 이별은 느껴졌던 걸까.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이 숙제를 앞으로 영영 끝내지 못할것인가.



상실에 대해서는 이고은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준다. 과외가 끊기고 돈이 없어 허덕이는데, 과외학생의 아버지가 퇴직금이라며 30만원을 보내준거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워서 그 돈을 찾아 봉투에 넣고 책에 꽂았는데, 그날 학교를 갔다가 그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 때의 상실감은 그 돈을 얻게 되었을 때의 기쁨보다 더 컸다고.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등치될 수 없는 크기라는 얘기를 한다.



얻는 것의 반대말은 정말 잃는 것일까. '얻다'와 '잃다', 이둘의 강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등치되지 않는다. 동일한 척도 상의 양수와 음수 개념이 아닌 것 같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안도보다는 불안이 훨신 세게 느껴지고, 이해보다는 오해가, 사랑보다는 원망이 훨씬 더 깊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크게 와 닿는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때를 떠올리면 속이 쓰리다. (p.160)



나는 위의 문장에서 '줄리언 반스'가 말한 상실을 떠올렸다. 정확히 이런 말을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책에서 한 적이 있다.





전에는 함께였던 적이 없는 두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해보라. 어떤 때는 최초로 수소 기구와 열기구를 견인줄로 함께 묶었던 것과 비슷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추락한 다음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탄 다음 추락하는 것, 당신은 둘 중 어느쪽이 낫겠는가? 그러나 어떤 때는 일이 잘 돌아가서 새로운 뭔가가 이루어지고, 그렇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p.109)








내가 좋아하는 마음의 상태에 대해 이 책의 3,4부에 몽땅 나와있다. 기다림, 이별, 짝사랑, 질투, 사랑 까지.




질투에 대해서라면 내가 몹시 괴로워한 적이 있다. 평소 무심한 사람이라고 나는 나를 정의했었지만, 나 역시 어떤 확신을 갖고 싶을 때가 있었고 그것이 몹시 필요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질투는, 그렇게 되지 못했을 때, 확신이 흐트러짐을 느꼈을 때 발생한다. 상대의 관심이 오롯하게 나에게만 집중되지 않는다 느꼈을 때, 질투는 발생한다. 왜 당신은 나만 보는 게 아니라 곁눈질을 하는가. 나는 그 사랑을 잃을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이 싹트는 걸 느꼈고, 그것이 몹시 괴로웠다. 너무 힘들어서 땅으로 꺼져버리고만 싶었다. 나를 좀 어떻게 해달라고, 이 괴로운 감정에서 나를 좀 꺼내달라고 상대의 어깨를 붙잡고 애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이고은은 이 책에서 질투라는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도 얘기해준다.



질투심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에 미루어 짐작해보면, 질투심은 위협을 느낄 때 유발되는 마음이다. 질투는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버리거나 현재 유지되고 있는 관계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마음이다. 우리에게 질투의 마음이 발달한 건 관계의 위기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알아차리고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나와 내 파트너의 유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인 것이다. (p.218)



질투는 존재감에 위기를 느낄 때 생기는 정서다. 그 사람에게서 돌연 가벼워질지도 모르는 내 존재감, 그 불안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관계에서 질투심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상처다.
돌아보면 내 마음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건 그 사람이 관심보였던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그 대상이 받는 혜택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건 오직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던 그 사람의 마음, 나를 불안에 빠뜨리는 것조차 인식 못했던 그 사람의 무지함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p.219)



내가 질투한 그 순간, 나는 온전히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에 비해 상대는 나에게 좀처럼 질투란 감정을 보이지 않았는데, 바꿔말하면 나는 그로 하여금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나도 알고 상대도 아는 것. 나는 이고은이 말한 질투에 대해 읽다가, 이승우가 말한 질투를 생각한다. 이승우의 책을 읽다가도 나는, 내 안에 있었던 그 어마어마한 크기의 질투에 대해, 그 질투로 인한 고통에 대해 떠올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질투하는 사람은 결코 실체를 보지 못한다. 그는 자세히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실은 다른 것, 엉뚱한 것을 보고 있다(왜냐하면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없는 것, 들여다보면 안 되는 것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지나치게 배율이 높은 자기 내부의 현미경을 통해 영석이 본 것은 선희가 아니었다. 그러나 영석은 자기가 보고 있는 사람이 선희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심지어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른다. 질투하는 사람이 질투하는 대상은 실체가 아니라 그, 또는 그녀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러나 허상이기 때문에 꿈쩍하지 않고,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에 외부존재의 조종을 받지 않는다. 허상은 견고하다. 그는 불안이 현실화된 것에 좌절하고, 어쩔 줄 몰라서 소리 지르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운다. (사랑의 생애, 이승우, p.232)




이승우는 질투를 열등감에 다름 아니라 말한다. 나는 이승우가 말하는 질투에 공감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갖고 있기에 생기는 열등감, 그리고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눈을 돌리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고 '내가' 느꼈다면, 그것이 열등감에서 비롯한 질투로 이어지는 것일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가지지 못했는데 저 사람은 가졌구나' 라는 느낌이, 애초에 왜 생겼을까. 비교하지 않아도 좋았을 것을 왜 비교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나의 상대가 나만 온전히 보는 게 아니라는 걸 내가 알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사랑이 내게 온전히 오지 않았다. 어? 이 사람의 사랑에 나는 확신을 못하겠네? 왜? 저사람 때문에. 저 사람은 뭐가 있지? 왜 저기에 있고 이 사람의 관심을 받지?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기다림'에 관한 것이었다. 이고은은 마시멜로 실험과 그 후속실험에 대해 얘기하며(삶의 실험실 中),



마시멜로를 그대로 올려둔 조건에서는 평균 6분 정도를 기다렸지만, 덮개로 덮어두자 11분 넘게 기다렸다. 재미있는 생각을 하라고 지시받는 아이들은 평균 13분 정도를 기다렸고, 기다리느 다음에 받을 두 개의 마시멜로를 생각하라고 지시받은 아이들은 4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 이는 15분이라는 긴 시간을 참게 한 인내심이 타고난 능력이라기보다, 주위를 분산시키기 위해 다른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또는 '터득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였다. (p.63)



라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다른 것에 집중하면 그 기다림을 좀 더 유연하게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터득했느냐' ,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



이 후속실험을 하게된 계기는 처음 마시멜로 실험을 할 때 아이들이 보여준 행동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 기다린 아이는 눈을 가리거나 머리를 팔에 대고 엎드려 있었다. 어떤 아이는 식탁에서 등을 돌렸다. 또 노래를 부르거나, 손장난을 치거나, 식탁 미틍로 기어들어가거나, 잠을 청하는 아이도 있었다. (p.62)



이고은은, 기다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주의를 전환시켰을 때 기다림의 시간도 단축됐고, 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때보다 이유를 정확히 알 때 기다림을 짧게 느꼈다. 그래서 두 경우가 함께 효과를 발휘한 조건(주의 전환/기다림 이유 알고)에 놓인 참가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짧게 느낀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주의를 전환하는 쪽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아는 쪽이 더 오래 기다렸다는 점이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상태에서 비교했을 때 주의 전환을 했느냐, 안했느냐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제공했느냐, 아니냐에 따른 시간 차이가 더 컸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더 오랜 시간을 흔쾌히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시간은 아주 작은 요건 하나만 있어도 큰 변화가 생긴다. (p.180)



우리 삶이 기다림의 연속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기다림의 연속을 고통스럽다고만 여기며 살지 않는다. 기다리는 목적이 분명하고, 언젠가 이 기다림은 끝나고야 만다는 믿음이 있으면 마음의 시간은 짧아지기도 한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기도 한다. (p.184)



나는 삶의 목표가 구체적인 쪽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편이 우리가 행동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유리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있으려면 목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구체적인 목표를 알아야 방향을 정할 수 있다. 내가 가는 목표, 내가 가는 방향을 잘 알고 있다면, 나는 기다림 역시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기다린지 안다면, 그 기다림은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 스스로 기다림에만 나를 쏟아 넣는 게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주의를 전환할 다른 것이 있다면, 그 기다림의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유의미한 것들로 채워나가면서, 그 유의미한 것들로 나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면서, 내 기다림 자체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소설로 나에게 필요한 모든 걸 얻는다고 생각한다. 소설이 내게 주는 게 무척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로 그걸 얻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소설로 그게 잘 얻어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이렇게 실험을 통하여 마음에 대해 알려주는 책을 읽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기다림에 대해, 질투에 대해, 사랑에 대해 어떻게든 각자 다른 방법으로 알 수 있게 될테니까. 나는 소설이 주는 이야기나 문장을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매만지는 편인데, 어떤 이들에게는 이고은의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같다. 이고은은 쓸모없는 마음, 필요없는 마음의 상태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책의 뒷표지에 보면'다정한 인지심리학자 이고은' 이라고 적혀있는데, 정말이지 다정하다, 이고은은. 마음에 대해서라면, 다정한 사람의 글을 읽는 쪽이 아무래도 낫지 않을까. 다정하지 않은 사람 쪽보다는.





타이레놀은 상실을 경험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일시적으로 줄여주는 효과를 낸다. 주위를 둘러보면 신체적으로 별 문제가 없는데도 진통제를 자주 먹느 ㄴ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런 편이다. 가방엔 항상 두통약이 들어 있다. 혹시 정신적 고통, 즉 마음 고생을 감당하려고 몸이 미리 진통제를 원하는 건 아닐까. 진심으로 약효가 잘 발휘해주길 바란다. 누군가가 던지는 비수를 맞아도 좀 덜 아프거나 빨리 나으려고 미리 연고칠을 해두는 것이니 말이다.- P36

신체적 고통을 떠올릴 때 가장 활성화된 영역은 우리 몸의 감각을 인식하는 데 관여하는 체성감각피질somatosensory cortex 이었다. 반면에 정신적 고통을 떠올릴 경우에는 분위기와 정서 또는 다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관여하는 배내측 전전두엽피질dorsomedial prefrontal cortex이 더 활성화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적 고통을 떠올리면 그때의 감정이나 분위기도 쉽게 떠올린다. 마치 그때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신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그때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올리지 못하거나 이미 잊은 경우가 많다.- P37

우리 뇌는 복잡한 사고,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힘을 들어야 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은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우리가 가진 회고절정기의 경험과 사고방식으로 앞으로의 긴 세월을 살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특성을 대변이라도 하듯 사람들은 35세 전후를 기점으로 더 이상 새로운 장르의 음악에 감동받지 못한다고 한다. 순간 마음에 드는 음악을 들어도 그때뿐이고 반복해 들어보려 애쓰지 않고 기억도 잘 못하게 된다. 점점 게을러지는 뇌는 새로운 음악이 요구하는 새로운 정보와 감성, 새로운 사고 패턴을 밀어내기 바쁘다. 더 먹기엔 배가 부르다는 듯 우리 마음은 새로운 음악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마음의 노화는 새로운 음악을 들을 만한 감성이 무뎌지는 것과 같은 의미인지도 모른다.- P49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운이 좋은 사람들을 살펴보면 유사한 특성이 있는데, 매사에 신중하고 들뜨지 않는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하다. 세상일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편이다. 나쁜 일이 생겨도 시비를 가리지 않는다. 나쁜 일을 겪으면 지금 당장은 기분이 나쁘지만, 해결하겠다는 자세로 이내 돌아선다.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쩌겠냐는 생각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대안을 찾는 것이 이들의 기본적인 태도다. 역술가들에 의하면 이런 사람들은 점을 쳐보면 대체로 좋은 운수가 나온다고 한다.- P89

반면 매사에 운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고집이 말도 못하게 세다. 귀를 닫고 마음을 닫고 있어서다. 나쁜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은 없이 주로 남 탓을 한다. 자신의 성장 배경이, 부모가, 환경이 나빴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성찰할 힘이 있을 리 만무하다. 어떤 점괘가 나와도 나쁘게 해석 하기에 당연히 운이 좋을 수가 없다. 점괘는 우리의 마음을 거울처럼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P89

얻는 것의 반대말은 정말 잃는 것일까. ‘얻다‘와 ‘잃다‘, 이둘의 강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등치되지 않는다. 동일한 척도 상의 양수와 음수 개념이 아닌 것 같다. 기쁨보다는 슬픔이, 안도보다는 불안이 훨신 세게 느껴지고, 이해보다는 오해가, 사랑보다는 원망이 훨씬 더 깊게 느껴지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무엇인가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더 크게 와 닿는다. 긴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아직 그때를 떠올리면 속이 쓰리다.- P160

좋았고 행복했던 순간들만 기억하며 살면 좋을 텐데 우리 마음은 그보다 아팠던 순간을 잊지 못하도록 만들어졌다. 실수나 아픔을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생존에 필요한 강력한 안전장치다. 뇌는 잃는다는 것을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식한다. 즉ㅇ, 인간이 가진 소유 효과나 손실 혐오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가진 마음 자체가 아니라 이런 상황을 너무 과민하게 받아들이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 하지 않을 때 생긴다.
인간의 욕심 많고 이기적인 본성이 소유 효과나 손실 혐오의 마음으로 드러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나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의 삶과 생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이유 있는 마음이기도 하다.- P170

주의를 전환시켰을 때 기다림의 시간도 단축됐고, 왜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는 때보다 이유를 정확히 알 때 기다림을 짧게 느꼈다. 그래서 두 경우가 함께 효과를 발휘한 조건(주의 전환/기다림 이유 알고)에 놓인 참가자들이 기다리는 시간을 가장 짧게 느낀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알게 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주의를 전환하는 쪽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아는 쪽이 더 오래 기다렸다는 점이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한 상태에서 비교했을 때 주의 전환을 했느냐, 안했느냐보다 기다리는 이유를 제공했느냐, 아니냐에 따른 시간 차이가 더 컸다. 내가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더 오랜 시간을 흔쾌히 기다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마음의 시간은 아주 작은 요건 하나만 있어도 큰 변화가 생긴다.- P180

우리 삶이 기다림의 연속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기다림의 연속을 고통스럽다고만 여기며 살지 않는다. 기다리는 목적이 분명하고, 언젠가 이 기다림은 끝나고야 만다는 믿음이 있으면 마음의 시간은 짧아지기도 한다. 우리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기도 한다.- P184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사실 놀랍도록 자기중심적인 마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마음에도 그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다. 사랑으로 인한 갈등과 아픔도 마찬가지다. 사랑할 때 나를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변심도 아니고, 그 사람과의 다툼도 아니다. 나를 괴롭히는 건 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기대하는 내 마음일 때가 많다. 상대방이 내 기대에 어긋나는 순간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P192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확신하는 비율도 덩달아 커졌다. 연인이 함께한 시간이 오래될수록 스스로 상대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연구는 연인이 사귄 시간의 길이와 상대에 대한 정확한 예측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밝혔다.
더 오랜 시간 함께했다고 해서 상대를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착각이다. 상대가 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사실은 그저 오해일지 모른다. 같이 사랑했어도 같은 사랑을 한 건 아니다.- P196

인간은 자신이 놓인 상황이나 상태에 따라 외부 자극을 다르게 지각한다. 예컨대 경쟁 상황에 놓였을 때 마음은 상대의 얼굴을 훨씬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인상으로 기억해버린다. 또 두려워하는 대상은 실제 거리보다 더 가까이 있다고 인식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진심으로 잘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결코 인정받기 어렵다거나, 내 아이가 아무래도 천재인 것 같은데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다. 인간의 지각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 P202

생각해보면 이별은 사건이라기보다는 사고다. 시간이 흘러 사고가 수습될수록 길이 덜 힘들어진다. 나는 연구 결과를 열심히 분석해보다가, 일주일 이내에 이별을 겪은 몇몇 학생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필 강의실에 오는 길이 이리 멀고도 험난해서.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시간이 지나면 차츰 완만하고 가까워지겠지만.- P203

연애는 기대만큼 짜릿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이별도 예상만큼 아프지 않을 수 있다. 이 원리는 나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대형 사건들을 저평가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때는 죽을 만큼 좋았거나 죽을 것처럼 아팠지만 어느덧 이불킥을 하게 되는 시간이 예상보다 빨리 올 수 있음을 안다면, 내 마음을 갉아 먹는 걱정과 근심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P205

자이가르닉 효과를 이별에 대입하면, 완료하지 못한 관계로 인해 헤어진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연인과 헤어지는 사건을 마치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중간에 파투 난 것과 같은 강도로 받아들인다. 과제를 수행하다가 중지되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만 것처럼 미완성된 숙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게다가 삶이 예상치 못한 쪽으로 전환되면 그 방향으로 마음을 돌리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연애가 갑자기 끝나버리자 마음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겨워하는 것이다.- P207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자이가르닉 효과를 극대화 하거나 극적으로 해결해버리는 놀라운 자극이 있는데, 바로 돈이다.
과제를 완료하지 못했더라도 보상으로 지급하기로 했던 돈을 지급하면 중단한 과제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과제를 완료했지만 돈이 지급되는 시기를 늦추었더니 수행한 과제를 놀랍도록 명확하게 기억했다.
혹시 이별에 대한 마음이 남달리 괴롭다고 느끼거나 아픔이 오래간다 싶으면 애인에게 선물을 사주느라 긁었던 카드 할부금이 남았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할부금을 모두 해결하고 나면 어느새 마음도 괜찮아져있을 테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기를. 우리 마음 기능이 그렇듯 마음은 늘 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P208

질투심에 관한 여러 연구 결과에 미루어 짐작해보면, 질투심은 위협을 느낄 때 유발되는 마음이다. 질투는 내 파트너가 나를 떠나버리거나 현재 유지되고 있는 관계가 망가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마음이다. 우리에게 질투의 마음이 발달한 건 관계의 위기를 예민하고 날카롭게 알아차리고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다. 나와 내 파트너의 유대를 지키기 위한 마음인 것이다.- P218

질투는 존재감에 위기를 느낄 때 생기는 정서다. 그 사람에게서 돌연 가벼워질지도 모르는 내 존재감, 그 불안이 고통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관계에서 질투심을 느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상처다.
돌아보면 내 마음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건 그 사람이 관심보였던 어떤 대상이 아니었다. 그 대상이 받는 혜택이 부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도 아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건 오직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보이던 그 사람의 마음, 나를 불안에 빠뜨리는 것조차 인식 못했던 그 사람의 무지함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다.- P219

질투심을 느끼던 내 마음을 내가 더 잘 이해했더라면 그때 그 사람과의 관계가 달라졌을까. 우리 마음의 기능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저급한 건 더욱 아닌데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순간이 정말 많다.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알아가는 마음들이 차츰 늘어간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P220

맥락적 차원에서 바라보면 불륜은 실패한 관계가 초래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은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다. 사람은 한 인간으로서 관심과 인정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불행히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이것을 받지 못하면 결핍된 욕구를 채워줄 다른 사람을 또는 다른 사랑을 자연스럽게 찾게 된다.- P229

어떤 ‘사건‘을 개인 탓으로만 돌리기보다 그 일이 벌어진 이유를 반 발짝 떨어져 객관적인 눈으로 살펴보는 일은, 사건의 본질로 들어가는 길목을 열어주는 일이 될것이다.- P231

그 사람을 알고 난 이후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알고 싶어서 답답하다가 알 길이 있어도 불안했다. 단 한 번이라도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기억해주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마음이란 게 생기는 거지 붙잡는다고 오는 건 아니어서 진심으로 막막했다.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는 나를 흔든 적이 없는데 나는 삶 전체가 휘청거렸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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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20-01-07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학교 내내 방학숙제 조차도 밀려서 하거나 개학을 앞두고 부랴부랴 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미리미리 해두었고, 드라마에서 종종 나오는 장면인 ‘밀린 일기 몰아쓰기‘ 같은 것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대단하십니다.
저는 국민학생 6년 내내 ‘밀린 일기 몰아쓰기‘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다락방 2020-01-08 08:23   좋아요 0 | URL
저는 일기 밀려서 쓰려면 그게 더 스트레스 일것 같은데 말입니다. ㅎㅎ
저는 그 때의 습관 탓인지 지금까지도 엄청 일기를 써요. 이렇게 알라딘에 글 쓰고 네이버에도 일기 쓰고 종이 다이어리에도 일기를 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20-01-08 14:24   좋아요 0 | URL
오, 아주 좋고 바람직한 습관입니다. 부럽습니다.
 















1940년대에 전쟁 포로로 잡혀가 철로를 건설해야 했던 연합군 포로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에게는 먹을 것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잠도, 휴식도 주어지지 않았다. 말라리아, 각기병등 각종 질병에 노출되어 점차로 죽어갔지만, 그러나 일본군은 그들을 계속해서 학대하며 노동하기를 강요했다. 장교이며 의사였던 '도리고 에번스'가 전쟁 전에 살았던 삶, 그리고 이 포로로 지냈던 삶, 전쟁 이후의 삶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것도 그리고 전쟁 포로의 삶에 대한 것도 읽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 책장은 아주 느리게 넘어갔다. 전쟁에 대한 글을 읽노라면, 대체 전쟁을 왜 하는걸까 하는 의문만 이백번쯤 들곤 한다. 신념이란 무엇인가. 어째서 가능하지 않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모질게 고문하고 학대할 수 있는 것일까, 에 대한 생각도 해본다. 인생이란 무엇인고 인간이란 무엇일까. 


도리고 에번스는 오래 전에 헤어진 고모부를 휴가중에 찾아가게 된다. 그 때 그는 이십대의 청년이었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 '엘라'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모부의 아내에게 빠져버리게 된다. 고모부의 아내라면 고모여야 하겠지만, 고모가 죽고난 후 고모부가 재혼한 여자였다. '에이미'. 그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군에 있으면서 휴가를 주면 엘라를 찾아가는 대신 에이미를 찾아간다. 인생이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일까, 를 생각하면서 읽다가 어쩔 수 없이 생각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왜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빠질까. 왜 이미 결혼해 남편이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빠질까.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그러니까 결혼을 약속한 사람에 대한 내 선택이, 결혼할 상대를 고른 내 선택이 잘못이고 실수였을까. 왜 지금 이 사람을 좀 더 빨리 만나지 못했을까 왜 이렇게 모든 걸 바꾸기엔 좀 늦어버린 시점에 이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났을까. 내가 당신을 사랑할 거였다면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그런 상태에 있으면서 나를 찾아온걸까. 인생이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도리고 에번스는 분명 엘라를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결혼할 생각까지 햇었는데, 에이미를 알게된 후에는 엘라에 대한 감정들이 시들어진다.




예전에는 아름답고 이국적으로 보이던 얼굴이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지루하게 보였다. 처음엔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검은 눈이 지금은 암소처럼 경솔하게 남을 믿어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그래도 자꾸 생각이 났기 때문에 점점 더 심한 자기혐오에 빠졌다. 그래서 새로이 결심을 다지고 그녀의 품에, 그녀와의 대화, 그녀의 두려움과 농담과 이야기에 자신을 던졌다 이런 친밀함이 궁극적으로 에이미 멀베이니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짓눌러주면 좋을 텐데. ( p.143-144)



아, 너무 싫다. 자신이 흠뻑 빠진 여자를 잊기 위해, 기억을 짓누르기 위해 지금 이 여자에게 충실하력 억지 노력을 해야 하는 상황. 엘라가 그걸 모를까. 내가 엘라였으면 그걸 모를까. 내가 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간절하게 바라보는 것을 내가 모를까. 그럴 때의 내가 당신에게 그냥 그 사람에게 가, 당신이 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잖아,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러나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결코 다른 사람에게 보내기 싫으면 그렇게 다른 곳으로 향하는 시선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걸까.



놀랍게도, 아주 놀랍게도, 엘라는 단 하나의 거짓말로 그에게 평생 복수를 했다. 그것은 이 소설의 끝에 나오는 것이고, 나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아,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사랑 때문에 어떤 것까지 할 수 있는가. 인간은 집착 때문에 어떤 행동까지 할 수 있는가. 나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거짓말을, 엘라가 했다. 나라면 하지 않았을 거짓말이지만, 그러나 그 거짓말을 한 엘라를 욕할 수가 없다. 그것이 그 때 엘라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도리고를 제옆에 두기 위한 최선의 방법. 





호주의 산불에 대한 소식으로 답답한데, 이 책에서도 호주 산불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야기의 배경이 호주인데 도리고의 아내가 머물고 있는 집에 산불이 나는 것. 도리고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출발한다. 책장을 덮고 생각했다.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연이란 무엇이고 운명이란 무엇일까. 뉴스에서도 볼 수 있는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어째서 나는 소설 속에서도 그대로 만나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런 우연은 도대체 왜 일어나는 것인가.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사이라면, 지금 호주에서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물을 수 있을텐데. 괜찮은건지, 거기에서 당신은 괜찮은건지. 




책의 모든 내용들이 힘들어서, 책을 읽는 게 힘들었고, 그래서 이 책을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다. 빨리 읽고 다른 걸 읽고 싶었다. 전쟁도 싫고 너무나 원하는데 가질 수 없어 힘들어하는 것도 싫고, 고문과 학대도 싫고 폭력도 싫고 외로움도 고독도 싫었다. 이 모든게 다 있는 이 책을 빨리 읽어버리고 싶었다. 나중에 나오는 산불 이야기도 싫고 거짓말도 싫었다. 다 싫었다.



그는 죽지 않았고, 그녀도 아직 죽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p.506)


그것으로 충분한가.

정말 그런가.






힘들어요. 여자가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다는 게.- P105

어떡해. 그녀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을 정말 원해.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꼴사납게 보일 정도로 저 사람을 원해.- P167

처음부터 알았어. 그가 말했다. 그애가 처음 날 만나러 왔을 때부터.
문장과 문장 사이로 몇 마일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자동차가 한없이 펼쳐져 덜컹거리는 암흑 속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그녀는 생각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키스에게서 새오나오는 슬픔뿐이었다. 그 슬픔이 세상을 텅 비워버리는 것 같았다. - P196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외로웠고, 자식들과 함께 있을 때도 외로웠고, 수술실에서도 외로웠다. 그가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의학 모임, 스포츠 모임, 자선단체, 참전군인 단체에서도 외로웠고, 수많은 전쟁포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연설할 때도 외로웠다. 기운이 다 빠져버린 공허가 그를 에워쌌다. 뚫을 수 없는 공허가 사교성 좋기로 유명한 이 남자를 감싸고 있었다. 그는 벌써 다른 세상에 가서 살고 있는 듯했다. 한없는 꿈 또는 끝나지 않는 악몽을 풀었다 되감기를 영원히 반복하면서. 꿈과 악몽중 어느 쪾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는 거기서 영원히 탈출할 수 없을 터였다. 그는 다시 불을 켤 수 없게 된 등대였다.- P482

그렇게 그와 엘라 사이에 경험이라는 공모가 자라났다. 아이들을 기르는 것, 현실적이고도 다정하게 서로를 뒷받침해주는 것, 함께 보낸 세월, 수십 년 동안 쌓인 두 사람만의 대화와 친밀한 관계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사소한 일들, 그러니까 잠에서 깨었을 때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체취와 아이가 아플 때 상대의 떨리는 숨소리, 서로가 앓은 병, 슬픔과 관심, 서로 기대하지도 않고 말해본 적도 없는 애정 같은 것들, 이 모든 것이 사랑보다 더 중요하고 더 확실하며 더 강하게 두 사람을 묶어주는 것 같았다.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엘라에게 묶여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도리고 에번스는 무엇보다 완전하고 확실한 고독을 느꼈다.- P489

그에게 편지를 쓰거나 전화를 걸기 직전까지 갈 때마다 그녀의 앞에 커다란 장애물이 나타났다. 한 번도 그녀를 찾지 않고, 약속과 달리 전쟁이 끝난 뒤 그녀를 다시 찾아오지 않은 그가 그녀를 거절할 것이라는 장애물. 이제는 두 사람의 처지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유명한 도리고 에번스가 되어 계속 유명해지는 중이었지만, 그녀는 아래로 자꾸만 가라앉는 하찮은 사람이었다.- P505

그는 죽지 않았고, 그녀도 아직 죽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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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을 자고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책을 가지고 동네 스벅으로 갔다. 어제 혼자 있었던 시간이 충분치 못하기도 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오늘도 역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들고 스벅으로 가 초코크루아상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켜놓고 책을 펼쳐들었다. 내가 앉은 자리는 출입문 옆자리어서 사람들이 계속 이동하는 게 느껴졌고 스벅 안에는 사람들도 많아 좀 소란스러웠다. 나는 이어폰을 꽂고는 내 폰에서 가사가 없는 음악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내 폰에는 Sergei Trofanov 가 있어서 그것을 재생해 두었다. 처음에는 가사가 없는데도 음악이 들려서 잠깐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잇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집중력이 꽤 좋은 사람이다. 책을 읽다 잠시 멈췄을 때는 그 앨범이 전체곡을 다 재생한 후에 멈춰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앗, 언제부터 음악이 안나왔지? 음악이 안나오는지도 모를 정도로 책에 집중해 읽었다. 나의 이런 점은 정말이지 짱이다. 집중을 어쩌면 이렇게 잘할까? 최고 멋진 것 같아. 나는 내가 집중을 잘하는 것을 알고, 집중을 잘하기 때문에 사실 대부분의 문제들에 대하여 답을 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집중해서 생각하면 답을 찾을 수 있어, 라고 스스로 믿는 편이다. 


아, 내가 잘난척 하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니고 ㅋㅋㅋㅋ (정말?) 어쨌든 정신차려보니 나는 세시간이나 꼼짝않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더라. 남아있는 커피는 차가워져 있었다. 크... 집에 가자. 뒤에 몇 장을 남겨두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기 전에 마트에 들러 와인 세 병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작가 '로버트 브린자'는 1979년의 남성이다. 책의 처음에 피해자의 입장에서 글이 쓰여져서 읽기가 좀 힘들었다. 잡히는 사람, 죽음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좀 쓰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공포가 전해져와서 몹시 괴롭단 말이다. 그러나 주인공 '에리카' 경감이 나오면서부터 이 책은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어졌다. 사건을 추리하고 수사하는 과정 자체는 다른 수사물과 별다를 바가 없지만, 범인을 잡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일(업무)로서 마주한 에리카의 주변 일들을 보여줌에 있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위산업의 큰 손인 남자의 둘째 딸이 살해된채로 발견되고 이 사건으로 인해 언론이 시끄러워진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압박을 느끼던 '마쉬 총경'은 이 사건을 얼른 제대로 해결하고 싶어서 능력있는 경감인 '에리카'를 자신의 서로 불러온다. 에리카는 얼마전에 범인 체포과정에서 동료 경감이자 남편을 잃고 일에서 손을 떼고 있었던 터다. 그런 그녀가 이 살인사건으로 복직한 것. 그녀는 특유의 직감으로 이 사건을 수사해가지만, 그전에 수사를 진행했던 남자 경감도 그녀를 대놓고 무시하고 피해자의 가족들도 남자경감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한다. 그녀가 유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추측은 신뢰를 받지 못하는데, 새삼 그녀가 경감이라는 지위까지 오는동안 얼마나 많은 편견에 시달렸을까를 생각하니 암담해졌다. 그 모든 과정들을 겪고 여기까지 왔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경감인데도 편견 앞에 자꾸 절망하고 뒤로 쳐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가자 하는 건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가. 게다가 그녀를 도와주는 여자 형사도 나오고, 사회문화 전반에 형성된 여성혐오나 비하에 마주쳤을 때 이 여자 형사들은 대놓고 맞선다. 또한 매춘부의 죽음이 재벌딸의 죽음과 다르게 다루어 지는 것에도 불만을 품은 에리카는, 그 모두가 똑같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계속 알리고자 한다. 그녀가 살인자의 표적이 된 후에 동료 여자경찰의 집에 며칠 머무르는 장면에서는 동료 여자경찰이 다른 여성과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작가는 끊임없이 널린 편견들을 보여주고 그것들에 맞서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에리카'는 피해자들에게 연대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고, 그래서 진심으로 살인범을 잡고 싶어한다. 자신의 업적을 하나 더 쌓고 싶다는 바람이 아닌, 누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꼭 잡을게, 하는 것. 에리카 경감에게는 피해자에 대한 연대가 있었던 거다. 그게 그녀의 열정에 더 불을 지피고 남들보다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든다.



팀원들에게 인사를 건넨 에리카는 홀로 수사본부에 남아 화이트보드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녀의 눈길이 유독 앤드리아의 사진에 오래 머물렀다. 

"넌 겨우 스물셋이었어. 앞날이 창창했다고." (p.72)


바로 이 연대가 그녀가 외로운 가운데에서도, 경찰서의 다른 경찰들과 피해자 가족들마저 자기를 배척하는 가운데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총경님, '우리가'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네, 제가 연락도 없이 총경님 집 앞에 찾아와서 이러는 거, 정신 나간 짓이란 거 압니다. 하지만 제가 미친년 취급받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어요. 제가 못 참겠는 건 말입니다, 이 여자애들한테 일어난 일이에요. 아무런 노력도 안 해 보고, 오늘 밤에 발 뻗고 주무실 수 있겠어요? 우리가 처음 경찰이 됐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그땐 힘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결정을 내릴 권한이 있잖아요. 충분히 있잖습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총경님한테요. 젠장, 수색에 드는 비용은 저한테 청구하세요. 인사 위원회에 회부해서 저를 해고하셔도 돼요, 지금 그딴 건 아무 상관 없어요. 하지만 이것 좀 보세요, 보시라고요!"

에리카는 사진을 다시 마쉬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만해!"

마쉬는 큰 소리로 외치고는 현관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p.268)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의 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고 지휘권도 빼앗겨 버린 그녀는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걸 견뎌내면서 수사를 계속하다니... 불법체류자인 여성, 홈리스 여성의 말을 경찰서의 누구도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라며 믿어주려 하지 않았을 때, 에리카는 그들의 말을 '믿는다'. 아마도 자신 역시 사실을 말해도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경험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오늘까지는 앤드리아 더글러스-브라운의 죽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신문과 인터넷 사이트, 텔레비전 뉴스에 앤드리아 사진이 도배됐고, 국가적 양심의 문제로까지 번졌죠. 그렇습니다, 앤드리아가 특권을 누렸던 건 사실입니다. 반면 타티아나 이바노바, 미르카 브라토바, 카톨리나 토도로바와 아이비 노리스는 어떤가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험한 삶을 살았을까요? 아닐겁니다. 상황이 달랐다면, 그들도 앤드리아처럼 윤택한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내가 구태여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매일같이 행해지는 대로 이들을 계급화하지는 말자고요. 이 다섯 사람 모두 끔찍하게 살해됐어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겁에 질려 죽어 갔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등하고, 똑같은 피해자이며, 공정한 시선으로 주목을 받아야 합니다." (p.355)



에리카가 하는 생각들, 말들이 좋아서 이 책이 시리즈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실 피터슨.. 의 이야기도 좀 더 보고 싶고. 시리즈가 있다고 해도 피터슨의 이야기가 나올까? 그렇지 않을 확률도 있지만, 그래도... 싶어서 검색을 해보니, 오, 에리카 경감의 이야기는 시리즈가 맞았다. 나이쓰~ 내가 시리즈를 찾게 되다니 ㅋㅋㅋㅋ 이 책이 첫번째고, 그 다음책은 바로 이것.

















오오, 이것도 읽어봐야겠다. 피터슨 얘기 좀 더 나오면 좋겠는데.... 정확하게는 피터슨이 부하직원으로서 에리카를 계속 도우면서 뭔가 둘 사이에 특별한 무언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것이 반드시 이성간의 연애감정은 아니더라도, 어떤 단단한 관계. 에리카는 낯선 지역으로 와서 다 새로 만나는 동료들이었으니만큼 누군가와 좀 더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도 좋지 않은가. 데이트하고 섹스를 해도 좋겠지만, 데이트와 섹스와는 거리가 멀고 그저 서로를 신뢰하는 단단한 관계, 그런 관계가 하나쯤 있는 거 참 좋지 않나. 퇴근하고 같이 맥주도 마시고 피자도 먹고 그러는 거. 모스가 이미 전적으로 에리카를 신뢰하기는 하지만, 피터슨과도 그런 관계가 되면 좋겠다...라고 나는 혼자 바란 것이었다. 얼른 다음 시리즈도 읽어봐야지. 



1월달에 월급 타면 사려고 했는데... 지금 이 책 하나만 살까? 아 모르겠다 혼란스럽다.

2020년에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맨날 책 살까말까 고민하면서? 그러다가 결국 사면서? 그렇게 사는걸까?








휴일인 거 너무 좋다. 늦잠도 자고 느즈막히 일어나서 까페로 나가 한낮에 책도 읽을 수 있다니. 아, 이런 거 정말 너무 좋잖아. 나는 한낮에 까페로 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삶을 언제나 꿈꾸고 있다. 너무 좋아. 집중도 세 시간이나 했다구!!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 가운데 수요일에는 휴일이 하루씩 껴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하루를 쉬고 다음날 출근해서 목,금 일하고 다시 토,일 쉬고... 월,화 일하고 수요일 쉬고 목,금 일하고 토요일일요일 쉬고... 환타스틱하지 않은가...



그나저나 이 책 다 읽었으니 이제 다음 책을 뭘 읽어야 하나. 하루키 책 하나 꺼내놨고 배움의 발견도 읽고 싶고 내친김에 추리로 하나 더 읽을까 싶고,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 시작할까..아니 이건 조금 더 있다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소설을 한 권 더 읽어야겠다. 소설 좀 여러권 읽어서 내 안에 이야기로 가득 채운 다음에 다시 페미니즘 도서 읽으면서 으르렁 거려야지. 으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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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be00 2020-01-0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페이퍼 읽으면 순문학과 장르문학 나누는 거 참 부질없구나 싶어요..
집중력 짱 몰입도 짱 (^^)b
2주째 수요일을 쉬니 저희 아이도 매주 수요일 쉬면 학교 잘 다닐수 있겠다고 하네요 ㅎㅎ

다락방 2020-01-02 07:40   좋아요 0 | URL
저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어서 읽지 않기 때문에, 그 구분은 저야말로 참 부질없다 싶어요.
물론 제가 더 좋아하는 작가나 책은 있지만 말입니다.

매주 수요일 쉬면 학생들도 좋아하고 직장인들도 좋아하는데 대체 왜 매주 수요일에 쉬지 않는걸까요?????
ㅎㅎ

공쟝쟝 2020-01-01 2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맹날 수요일에 쉬면 좋겟다! 저도 세시간 집중햇는데 ㅠㅠ 100페이지 읽엇나? 제 2의성 어렵다 ㅠㅠㅠㅠㅠ
앗차차~ 1월 1일이지만 변함없이 오늘의 책을 읽는 사람들 참.. 멋지다..*

다락방 2020-01-02 07:42   좋아요 1 | URL
제2의 성보다는 소설이 같은 시간 집중해도 휘리릭 넘어가지요. 제2의 성은.. 정말 장난 아니에요. 으흐흐흐.
쟝님도 1월1일 세시간 집중해서 책 읽으셨군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 열심히 읽고 쓰며 살아갑시다. 뽜샤!!

2020-01-03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5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