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몇 장 읽지도 않았을 때부터 나는 '이 작가에겐 있고 나에겐 없는 것이 대체 뭘까'를 생각해야 했다. 왜 이 작가는 글을 잘 쓰고 나는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어떤것에서 오는 무슨 차이인가. 이 작가에게 있고 나에게 없는 것은 무엇인가, 자꾸 문장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읽었다. 몇 장 읽지 않았을 때 느낀건, 이 작가가 나보다 훨씬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거였다. 가지고 놀 수 있는 단어가 많다. 게다가 그것들을 어떻게 써내야 하는지도 알고. 그래서 문장들이 화려하다.


작가는 자신의 문체가 건조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몇 번이나 '이게 건조하다고? 건조해?' 되물어야 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김 살로메 작가의 문체는 건조하지 '않다'는 거였다. 건조한 문체가 나쁘다거나 혹은 좋아서가 아니라,- 건조한 문체는 나도 참 좋아하고요-, 그러니까 나쁘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이 한 권의 책으로 느낀 김 살로메 작가의 문체는 건조하지가 않다는 거다.



프로이트 역시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인간 과제 중의 하나라고 보았다. 언제나 나보다 타인이 나를 잘 알며, 이웃보다 내가 이웃을 잘 아는 수가 있다고 했다. 스스로 발견하지 못하는 제 마음을 타인이 더 잘 읽는다는 것. 대체로 인간은 자신보다 타인을 분석하는데 탁월하기 때문이다. (p.175)



타인인 나는 이 작가의 문체가 건조하지 않아. 게다가 작가는 지나치게 겸손하다.



평범한 우리말 단어 하나도 제대로 부리지 못하는 건 내 안의 정서가 외국어 낱말처럼 서툴기 때문은 아닐지. 두껍게 언 마음 호수에다 도기로 바람구멍 한 점 내고 싶다. (p.126)





네???????????

나는 몇 장 읽지도 않고 이 작가가 어휘력이 풍부하구나, 생각했고 그래서 '사전을 따로 읽고 들여다보는 건 아닐까' 했는데, 작가는 자신이 '우리말 단어 하나도 제대로 부리지 못'한다고 한다. 음...



에세이라는 장르는 작가에 대해 너무 잘 드러내기 때문에 장점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그대로 에세이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이 책 한 권을 읽고 이 작가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건 말도 안되지만, 이 책 한 권을 읽고 나는 이 작가가 굉장히 욕심이 많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 욕심과 노력은 좋은 글을 쓰는데에 집중되어 있어서 일상의 하나하나 사람들과의 대화들까지 고스란히 글의 소재가 되고 생각의 거리가 되는거다. 매일 일천자의 글쓰기를 했다는 것은 당연히 성실하다 말할 수 있지만 단순히 '성실하다'는 것만이 이 작가의 특징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잘쓰고 싶다는 욕심. 그게 이 작가에겐 굉장히 크고, 그것이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나는 작가를 알지 못하면서 작가의 욕심이 느껴졌는데, 그게 내가 '이 작가는 굉장히 노력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런데 뭔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 책이 만족을 주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계속 생각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던 욕심이 한 게 아닐까 싶었던 거다.


사전을 따로 보는걸까 싶을 정도로 단어도 많이 알고, 책 한 권을 읽어도 꼼꼼하게 읽는가보구나 싶을 정도로 문장도 잘 써내는데, 그런데 단어가 모여 문장을 이루고 문장이 모여 단락을 이루고 단락이 모여 한꼭지를 이룰 때, 그 모든 것들이 과한 느낌을 주는거다. 많은 것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붓는 느낌이랄까. 작가는 자신의 문체가 건조하다 했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건조하게 느끼지 못한건 아마도 그 과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금팔찌, 은팔찌, 진주 팔찌까지 가지고 있는 모든 팔찌를 팔에 껴버린 느낌이랄까. 책장을 넘기면서 사진은 대체 왜 넣은걸까, 없는 편이 더 나앗을텐데, 라는 생각도 했다. 사진이 글의 맥락과 딱히 어울리질 않아 사진을 보면서 어떤 의미로 넣은걸까를 자꾸 멈추어 생각하게 만들었는데, 그래서 책을 읽다가 흐름이 끊겨버리는 것. 중간중간 사진을 삽입한 것 역시 좋은 책, 원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한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었는데, 오늘 다시 생각나 이렇게 페이퍼를 쓰게된 건, 오늘 점심시간에 본 한 편의 다큐 때문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무얼 볼까, 하다가 고른 프로그램이었는데, 아무런 정보도 없어서 다큐인줄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재생시켰다. 음식구경이나 실컷하자, 하고. 내가 본 프로의 주인공은 '크리스티나 토시'라는 쿠키와 파이의 장인이었다.





크리스티나 토시는 학창시절 공부를 엄청 잘해서 늘 A 만 받는 학생이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건 너무 싫었다고 했다. 뭘해야 할까, 뭘 해야 내가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행복할까, 를 고민하다가 그 길로 요리를 배우게 되고 뉴욕으로 가 식당에도 취직하게 됐다는 거다. 요리를 하는 게 너무 좋고 또 뉴욕에서도 요리로 성공하고 싶어서, 취직한 직장에서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 일하면서 디저트도 만들어보고 직원들의 식사도 챙겼다고 했다. 그런 자신에게는 다른 것들을 볼 여유도 없었다고. 가족도 친구도 보이지 않아 외로웠는데, 그 외로움마저 일로써 이겨내자고 생각했다는 거다. 여기까지가 내가 본 30분 정도의 시간동안 나온건데, 나야 '크리스티나 토시'라는 이름을 이 프로를 보며 처음 알게된 거지만, 그녀는 엄청 유명한 파티쉐인것 같았다.



최근에 '노력'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멋진가,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데 기초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일기까지 일본어로 쓸 수 있게된 친구 생각을 오래 했고, 이 다큐를 보면서 '이렇게 하고자 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은 정말이지 얼마나 근사한가 생각했다. 그러다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

》까지 생각하게 된것. 최근에 읽으면서 '작가가 진짜 노력하는구나', '머릿속에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엄청나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터다. 게다가 엄청 열심히 살고 있어!!


크리스티나 토시는 턱까지 다크가 내려와도 쿠키를 굽고 파이를 만드는 게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런 사람이 성공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나 노력을 하는데 성공은 당연한 보상이 아닌가. 그래서 이렇게 노력하는 파티쉐, 친구, 작가를 보고나니 자연스레 내가 나를 돌아보게 되는 거다.



나는 무슨 노력을 했지?



아무리 물어도 내가 노력한 게 없는 거다. 크리스티나 토시처럼 오래, 계속, 끊임없이 하는 게 도대체 나는 뭐가 있지? 천재도 아닌데 노력도 안하면 어떡하지? 글 쓰는 게 삶의 낙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건 뭐가 있지? 한 권의 책을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읽지도 않고 사전을 펼쳐놓고 단어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하는 게 뭐지? 요가도 고작 일주일에 두 세번밖에 안가는데 실력이 늘 수가 있나? 머리서기 마흔다섯에 하겠다고 했지만, 쉰에는 될까? 모르겠다. 매번 다이어트 하겠다고 설레발 치는 건 뭐지? 그건 매번 실패하기 때문이 아닌가? 난 대체 어디에, 무엇을 노력하지? 나는 너무 막 사는게 아닌가? 내가 오래, 끊임없이, 계속 하고 있는 것, 쉬고 싶은데고 계속 하는 게 뭐지?



앗!


나는 그렇게 묻고 또 물었는데 답할 수 있는 게 '회사 다니기' 밖에 없는 거다. 맙소사...그렇다면 내가 이 일이 좋아서, 기뻐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우앙 - 오늘도 회사 가네~ 넘나 신나는 것. 울라울라 울라울라~'


이래서 하는건가? 노노. 아침에 눈뜰 때마다,


'도대체 이 지겨운 짓을 언제 그만둘 수 있나' 만 생각하는 거다.



그런 내가 직장생활을 20년 가까이 하고 있는 건..나는 내가 먹고 살아야 할 돈을 내가 마련해야 하기 때문인 것이다. 나 먹여살려달라고 누구에게 의지하기도 싫고 부탁하기도 싫어. 그렇지만 먹고싶고 마시고 싶다. 그러면 어째야 하나. 돈이 있어야 한다. 돈은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가진 게 없으니까... 애초에 돈이 없으니까 누군가의 밑에서 누군가가 출근하라는 시간에 출근하면서 꾸역꾸역 일을 해야해. 이것은 노력이 아니다. 나의 살고자하는 의지가 넘나 강해서 이어져온 것....


살아야 한다.

어떻게?

가급적이면 즐겁게!

뭘 해야 즐거워?

먹고 마셔야 즐겁다!!



이래서 끈질기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 내가 내 의지로, 내 행복을 위해 꾸준히 하는 건 뭐가 있나... 물론 책 읽고 글 쓰기가 있지만, 그걸로 무슨 성공을 한다거나 할 수도 없어. 나는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을 읽으면서 '나는 소설가는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씁슬하게 계속 해야 했다. 이렇게 노력하지 않는 내가 무슨 소설가람... 이렇게 된 것.


성공은 뭐지?

성공하기 위해 그럼 나는 무슨 노력을 해야하지?

음..

딱히 성공을 안하면 되지 않나?

그러면 노력하지 않아도 되잖아?




막 이렇게 의식의 흐름이 제멋대로 왔다갔다 하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티나 토시..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에너지를 받고 그렇게 미친듯이 쿠키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었나요... 나도 쿠키 만들어 볼까요? (네?)



일단 주말에 집에서 소떡소떡이나 만들어 먹어봐야겠다.




어떤 사안 앞에서 그것이 잘못되어 가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진실하다면 제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겉 물결이 역류한다고 물길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본질의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묵묵히 흐른다. 그 깊은 속은 결코 역류를 허락하지 않는다. (p.68)

쓰는 말의 틀에 따라 품격이 달라진다. 맘은 그렇지 않은데 자꾸 상대가 오해하거나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해싿면 그것은 말을 잘못 부린 탓이다. 돌팔매질이 들어간 말보다는 봄바람 같은 상쾌함이 깃든 말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그런 이의 말은 나이테가 늘어나도 말의 심지가 훼손되지 않으룬더러 부드럽고 따뜻하기만 하다.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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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2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무슨 개똥소리냐 싶으시겠으나, 포기하면 편하더라구요. 하지만 다락방님은 포기하지 마세요. 뭐든지. 뭐든지 나 혼자 편할테다....

다락방 2018-08-24 15:12   좋아요 0 | URL
이게 무슨 개똥소리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주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나도 포기할거지롱. 같이 편하자~~~~~~~~~~~~~~~~~~

syo 2018-08-24 15:28   좋아요 0 | URL
훠이~~ 훠어어이~~
포기는 나의 것. 나만의 포기.

다락방 2018-08-24 16:08   좋아요 0 | URL
날 두고 혼자 가지 말란 말예요. 엉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같이가요 포기의 길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18-08-24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이 문장 말이예요.

아무리 물어도 내가 노력한 게 없는 거다.

너무 맘에 와 닿아요. 제가 무엇을 얼마나 못 하는지를 따질것도 없이 그냥... 전 게을러서 ㅠㅠ
같이 가요, 포기의 길로.... 저도 데려가세요~~~

다락방 2018-08-24 22:16   좋아요 0 | URL
ㅎㅎ 포기하면 편해질텐데, 그 길이 분명 편한길일텐데, 저는 가만 생각해보니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몇 가지가 있어요. 그것들을 포기하지 말자고, 단발머리님의 포기하자는 댓글을 읽고 오히려 다짐하게 됐어요. 이상하게 의욕적이 되는 밤이에요. 아마 하루키를 다 읽어서, 마지막에 큰맘 먹고 헤어진 아내(유즈)에게 묻고 싶은 걸 묻는 걸 읽어서 그런가봐요, 단발머리님. 헤헷.

카알벨루치 2018-08-24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론은 소떡소떡 ㅋㅋㅋㅋㅋ우아 정말 락방락방 다락방님입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18-08-24 22:17   좋아요 1 | URL
소스를 미리 만들어두는 게 좋다고 해서 제가 지금 막 소스를 만들었는데 맛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두근두근... 소떡소떡한 토요일 되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8-10-28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8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8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9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철학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얻는 학문이라면, 혹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 라고 답하는 건, 우리가 철학자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다는 걸 의미한다. 철학자는 그냥 사람이고, 알려진 수많은 철학자들의 성별이 남자인데, 그들 모두 그냥...'남자'였다. 철학자라는 타이틀은 보기 좋지만 듣기에도 좋지만, 그냥 남자였어.

















헤겔을 처음 접하는 나로서 이 책은 아주 적절한 선택이었다. 만화라는 특성상 글과 그림으로 헤겔의 [역사철학강의]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주어서, 입문자에게 적합하다. 읽는데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힘주어 읽다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도 되고 또 재미있다. 물론, 힘주어 읽어야 한다는 게 포인트다. 그냥 설렁설렁 넘겨서는 이 역시 이해하기 힘들 것. 

이 책으로 접해서 다행이었던 게, 중간중간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에서 헤겔이 한 말은 무엇이었는지 인용되었는데, 그 인용문만으로 보자면 나는 아마 이 책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화에서 풀어줬기 때문에 아, 이게 이런 뜻이구나 하는거지. 무슨 글을 그렇게 어렵게 써놨던지. 에휴.. 풀어 놓으면 다 우리가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인데 다들 그렇게나 어렵게 쓴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 도전하지 않더라도 이 만화책으로 다른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천천히 조금씩 알도록 해봐야겠다.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 빌려놨는데, 아마 읽지 못하고 돌려주게 될 것 같다. 헤겔 한 권 읽는데 일주일 걸렸고, 헤겔 읽고 나면 일 년은 쉬어야 될 것 같은 이 기분...




역사 철학에 대해 강의를 하고 학생들로부터 질문도 받고 명성도 있었던 헤겔이지만, 자신의 집 가사도우미를 임신시킨다. 자신의 집 가사도우미로 하여금 애낳게 했다는 것만 언급되어 사실 그들 사이에 무슨 로맨스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이것이 로맨스였을 것 같진 않고(고용인과 피고용인 아닌가!), 게다가 설사 그것이 로맨스였다한들 하하하하, 헤겔은 아이와 아이 어머니에 대해 곁에 있는 아버지나 남편이 되어주지는 않았다. 물론 세상의 쓰레기같은 많은 코피노들처럼 헤겔이 싸튀충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양육비는 주었고 모르는 척하진 않았으니까. 그러나 헤겔은 그렇게 가사도우미와 아들을 저기에 둔 채로, 다른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산다. 아아, 남자여... 왜 가사도우미를 그냥 두지 않나요. 그녀에게 욕망을 느껴서 관계를 맺었다면, 맺기 전에 쌍방 동의 했나요? 그렇다면 낳은 아이를 왜 엄마에게 맡기고 양육비만 주었나요, 왜때문에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고 살았나요?


헤겔이 가사도우미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거나, 그녀를 그저 성적 대상으로만 보았거나, 신분의 차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뭐가 됐든 그러면 안되는 건데 그렇게 했다. 그렇게 헤겔의 첫번째 아들은 아버지랑 같이 살지 않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아들이어야 했지.


남자여.

헤겔, 그냥 남자로구나.

역사란 무엇인가, 그 역사는 그렇다면 왜 그렇게 진행되었는가, 우리는 거기에서 무얼 알 수 있는가, 정신은 역사를 이루는 힘이련가... 같은 거 백날 천날 떠들었지만 집에 가서 가사도우미 임신 시켰지.


남자의 인생이여...




이 책의 뒷면에는 헤겔에게 영향을 미쳤던 몇 명의 철학자들에 대해 짧게 언급이 되어있다. 아아, 그리고 나는 거기에서 너무나 유명한 이름 '쇼펜하우어'를 만난다.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는데, 나는 이런 글을 읽는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천재성과 독창성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곧 자신의 진가를 알아보고 자신의 철학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쇼펜하우어는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할 것을 고집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그의 강의는 외면당하고, 사람들은 헤겔 강의에 몰려들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자존심은 형편없이 망가졌고, 그의 철학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쇼펜하우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철학을 밥벌이 수단으로 타락시키는 헤겔이라는 '협잡꾼'에게 속은 것이라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심은 쇼펜하우어의 일방적인 것이었습니다. 헤겔은 이미 최고의 철학자로서 그의 능력과 탁월함을, 헤겔 자신은 물론이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책속에서




아아, 쇼펜하우어의 이 열폭 ... 열등감 폭발 어쩔 것이야. 철학을 연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철학을 알려주고자 하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자신보다 소위 '더 잘나가는' 헤겔을 보고 너무 열등감 폭발해서 '협잡꾼' 이라 부르는 사람, 헤겔의 강의를 듣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하는 사람..아, 그냥... 그냥 남자야...... 열등감 폭발하는 남자.... 그냥 그뿐이야. 뭐 별다를 게 없어. 천재성? 그거 그냥 자기가 자기를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잖아. 꼭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만, 정말 많이 아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법인데, 내가 아는 거 이렇게나 많아 천재적인데 이런 나를 몰라주는 새럼들 어리석은 새럼들........ 어리석은 새럼들이 헤겔만 좋아해, 그 협잡꾼을... 이러다니 너무 그냥... 너무 남자잖아.... 쩝....... 쇼펜하우어, 그 유명한 이름, 그러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던 나는 이렇게 그의 열등감 폭발을 보며 아, 걍 남자구나... 한다. 걍 남자여.



(앗, 소나기가 내린다!)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고등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린제이 로한)은 학교의 인기많은 여자애(레이첼 맥아담스)의 인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살 빠지는 식품'이라며 스낵을 건넨다. 학교의 퀸카는 자꾸 자기가 살이 찌는 것 같아서, 그럴 때마다 불안한 마음에 그 스낵을 먹는데, 그런데도 살이 빠지기는 커녕 자꾸 살이 찌기만 해서 미칠것 같은 기분이 된다. 주인공은 그 스낵을 자신이 건넸지만, 그러나 이내 깨닫게 된다.



'아, 쟤가 살찐다고 해서 내가 날씬해지는 게 아니구나' 



이게 진리다. 남을 깔아뭉갠다고 해서 내가 높아지지 않는다. 내가 좋은 사람이기 위해서, 내가 잘난 사람이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잘나고 나 스스로 돋보여야 한다. 나 스스로 빛나야 한다. 빛나고 돋보이는 사람은, '나 빛난단 말이야!' 소리지르지 않아도, 어떻게든 빛나기 마련, 사람들은 그런 사람의 빛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이 고등학생은 그걸 깨달았다. 십대의 고등학생도 깨달은 걸 쇼펜하우어는 몰랐다. 그걸 몰라서 자기보다 인기 많은 헤겔을 협잡꾼... 이라 불렀지. 인생이여... 아아, 어리석음이여.

철학이란 무엇인가, 열등감이란 무엇인가, 어리석음이란 무엇인가, 인기란 무엇인가....



쇼펜하우어 님.

고딩도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뚱뚱해진다고 해서 내가 날씬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님도 얼른 깨달으삼..



생각해봤는데 이거 시리즈 다 사야겠다.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도서관 책장에서 꺼내자마자 막 재채기 했어. 제가 먼지 알러지가 있습니다. ㅠㅠ

변증법 때문에 이 책 빌렸는데, 거의 마지막에 변증법 얘기도 나와서 너무 좋았다. 친구가 '이제 원숭이를 읽을 시간!' 이라고 했지만, 아... 내 머리는 쉬기를 원해... 나는 쉬겠네 그림을 걸지 않은 작은 미술관처럼. (응?)






일요일이 가고 있다. 벌써 저녁 여섯시라니. 오전에는 조카들이랑 [토이스토리4] 보고 울었다 ㅠㅠ

이제 남은 시간을 책읽으며 고요히 보내야지. 커피랑 빵이랑 과자도 좀 먹고.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도 마저 읽고, [성의 변증법]도 좀 읽고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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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9-06-23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시리즈 탐나는데요. 저도 읽어볼게요. 토이스토리가 그렇게 감동적이에요? 어른들을 위한 만화라더니. 전 저녁으로 즉석떡볶이를 먹었더니 속이 뒤집어지네요. ㅡㅡ 주말 마무리 잘 하세요. ^^

다락방 2019-06-23 18:51   좋아요 0 | URL
토이스토리 저도 처음 봤는데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겠더라고요. 1편부터 3편까지 저도 안봤거든요. 안보고 4편 봐도 충분히 좋았어요!

블랑카 님도 속 빨리 편해지시기를 바라고 ㅜㅜ 주말 저녁 마무리 잘하세요! :)

단발머리 2019-06-23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 헤겔도 그랬군요. 헤겔도, 헤겔조차도. 헤겔 너마저...
하긴 ‘원숭이 권하는 친구‘에게서 들었던 ‘마르크스 너마저...‘도 흥미진진했죠.
한결같아요, 남자들은...... 변함이 없어. 시대를 초월한 한결같음.

다락방님 이제 남은 시간 계획 너무 좋은대요. 나도 따라하고 싶어요~~~
커피랑 빵이랑 과자를 먹고,
요가책 페이퍼 마저 쓰고, [성의 변증법]도 좀 읽어야지^^

syo 2019-06-23 21:39   좋아요 0 | URL
🐵?? 🐒?!

단발머리 2019-06-23 21:48   좋아요 0 | URL
그 이야기 써주세요.
마르크스가.. 아내가 친정에서 데리고 온 가정부와의 사이에서..
아... 다락방님 서재에 좀 안 어울릴수도 있겠네요... 😞

syo 2019-06-23 21:4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도 그 글 보시고 댓글 다셨던 것 같아요 🙄

단발머리 2019-06-23 22:01   좋아요 0 | URL
아하하~~~ 그랬었나요?
syo님 기억력 엄청 좋네요.
그렇게 암기력이 좋으셔서... 샤샤샥!!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부럽당!

다락방 2019-06-24 13:22   좋아요 0 | URL
마르크스는 뭐였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기억이 안나지만 뭐 어쨌든 마르크스고 걍 남자인거죠. 하늘 아래 대단한 남자는 없는 것 같아요. 다른 남자도 없거요.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비연 2019-06-24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걍 남자 ㅎㅎㅎㅎ 웃프네요..ㅜ

다락방 2019-06-24 13:22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루속히 ‘다른 남자도 있다‘는 기대를 저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건 갖다 버려야 돼요. 남자는 걍 남자일뿐...
 
나는 여기에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해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다시 읽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뭐라고? 해마다 다시 읽는다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레미제라블을 읽었었다. 친구 한 명은 '피천득'의 <인연>을 해다마 다시 읽었다고 했다. 해마다 다시 읽는 책 혹은 작품이 있다는 건 너무 근사하잖아? 나의 경우에는 간혹 '줌파 라히리'를 다시 읽고 《올리브 키터리지》를 다시 읽기도 했지만, '해마다' 읽는 책이라면, 역시나 유일하게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일곱번째 파도》뿐이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매해 다시 읽고 있다. '에미'와 '레오'의 이메일로만 구성된 이 단순한 소설이, 그러나 놀랍게도 읽을 때마다 번번이 다른 느낌을 가져다준다. 나는 에미의 모든 감정이 그리고 레오의 모든 감정까지도 책을 통해 전해지는 게 너무나 좋다. 어떤 날은 에미가 되었다가 어떤 날은 레오가 되었다가 한다.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 《우아한 연인》에서 '케이트'는 무인도에 가져갈 책으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꼽는다. 이에 '팅커'는 서점에 가 그 책을 사서 읽는다. 팅커는 케이트를 좋아했지... 그렇게 월든을 읽게된 팅커는, 월든이 너무 좋아 그 뒤로 바지 뒷주머니에 늘상 넣고 다닌다. 그렇게 금융맨인 팅커는 소로 같은 삶을 향해 나아간다.



도대체 왜, 도대체 그게 어떤 책이길레 케이트는 그걸 무인도에 가져간다 한걸까. 그리고 왜, 팅커는 그 책을 늘 주머니에 꽂고 다닌걸까. 그책은 왜 그들 모두에게 인생의 책인것인가.

그렇게 나는 너무너무너무너무 궁금해서 월든을 샀다.


















그러나 어디, 샀다고 다 읽으란 법 있는가...(네?)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내 책장에 고이 잠들고 있었다. 지난 주 까지는...

아니 글쎄, 지난 주에 만난 친구가, 월든을 매해 다시 읽는다는 게 아닌가.

뭐라고? 매해 다시 읽는다고? 월든을? 왜?

친구는 내게 '너가 읽는다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아' 라고 했지만, 나의 다정한 친구가 매해 읽는 책이라니, 너무나 궁금해진 나는, 책장 속에서 오래 자고 있던 이 책을 꺼내왔다. 그리고 읽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끝까지 읽자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며 읽었다. 왜 포기하고 싶었느냐?


재미없다.


정말 재미없다.


진짜 재미없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재미없다.



우아한 연인의 '케이트'가 월든을 무인도에 가져간다고 했는데, 그건 '에이모 토울스'가 쓴 케이트 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월든이 케이트의 인생책인건, 에이모 토울스가 케이트를 썼기 때문이다.. 두 유 노 왓 아이 민?



이 책이 왜 재미없냐면,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을 사 그것에 뚝딱뚝딱 살을 붙이고, 그 곳에서 2년을 산다. 채소를 키우고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먹으면서 2년을 산다. 오로지 그 2년간의 기록인데, 거기에 스토리가 있을 게 무언가. 그는 해와 달과 자연의 소리, 자신을 찾는 야생동물들과 온갖 식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 책 한 권에 적어두었다. 그 틈틈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 공부, 독서, 정부에 대해 이야기하긴 하지만, 그것들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그저 한 남자가 호숫가에서 욕심 없이 조용히 먹고 사는 이야기.



그래서 연신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떻게 호숫가에 언 얼음을 가지고, 자신의 집에 찾아든 야생동물을 가지고 이렇게 긴 글을 써낼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니라, 그저 자연속에 녹아 들어있는데, 어떻게 이걸로 이토록 긴 글이 가능한가. 마지막 꼭지는 '봄'인데, 어떻게 '봄'이란 걸로 몇 장의 글이 나올 수 있는가 말이다. 그저 자연에 대한 얘기여서 눈 앞에 초록초록한 숲이 보이는 듯했고, 새들이 지저귀는 듯했고, 호숫가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바로 내가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여름에는 며칠간 여기에 가보아도 좋겠네,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나 거기에 소로가 있다면 싫을 것 같았다. 소로..너무 식탐 없는 사람. 우리가 많이 먹기 때문에 노동을 빡시게 하고 있는 거다, 라는 너무나 맞는 말 하는 사람. 당연한 게 아닌가. 내가 스테이크에 와인을 먹고 싶다면 그걸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벌어야 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노동이 필요하다. 소로는 말한다. 우리가 간소하게 먹고 산다면 노동에 그렇게 힘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맞다, 맞는말이다. 소로는 한마디로 '쾌락'에 연연해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쾌락주의자.... 인생.....Orz




인생에서 가장 가치 없는 노년기에 자유를 누리기 위해 인생 최고의 순간인 젊음을 돈 버는 데 허비하는 모습을 보면, 노후에 영국으로 돌아와 시인으로 여생을 보내기 위해 돈을 벌러 인도로 건너간 영국인이 생각난다. 그는 인도로 갈 게 아니라 즉시 자기 집 다락방에 올라가 시를 써야 했다. 수백만의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뭐요? 아니, 그럼 우리가 건설한 철도가 쓸모가 없다는 말이오?" 하고 놀라 소리친다면 나는 '비교적' 쓸모가 있다고 대답하리라. 즉, 이보다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형제로서 하는 말인데, 당신이 땅파기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는 데 시간을 썼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p.63)




자연의 풍경과 그 안에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것으로 이 두꺼운 책을 쓰다니,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이걸 썼지? 연신 감탄했다. (재미는 없지만.) 만약 나였다면 숲에서 머무는 것만으로 글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숲은 온통 초록빛이다, 이름 모를 새가 운다, 볕이 뜨겁다... 정도가 내가 쓸 수 있는 전부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소로는 쓰고 또 쓰고 계속 쓰고 많이 썼다. (재미 없지만.)



읽다가 느낀 건 소로가 딱히 다정한 사람이나 친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뭐랄까. 사람들이 좀 싫어할 것 같아. 그건 자기가 고집하는 바 그대로를 실천하는 사람의 올곧은 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비판은 정당하고 자신의 생각은 옳다는 것에서 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육식을 하지 말자고 하면서 그러나 사냥은 최고의 스포츠라고 하면... 먹는 건 안되는데 죽이는 것은 괜찮은가...동물을 죽이는 것은 안되지만 자연을 가장 잘 알기에는 사냥만한 게 없다고 하니,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그래도 뭔가 좀 갸웃하게 되는 면이 있다. 마지막에 해설 읽어보니 30세에 이미 틀니를 했다고 하던데, 결국 이빨 안좋아서 육식 안하기가 더 쉬웠던 거 아니야? 뭐 이런 삐딱한 생각도 들고(소로 아저씨 미안!).. 킁킁.

물론 사람이 자신이 말하는 바를 다 지킬 수도 없고, 양가적인 면을 언제나 가질 수 있으며, 자기 안의 모순도 수없이 맞닥뜨린다. 그러니 '육식하지 말라며 왜 사냥꾼이 되라고 해?' 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안다.

나 역시 '텀블러 들고 다닌다며 비행기는 왜 타' 라는 질문을 받으면 할 말 없고요...



그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부분이 상당히 있었다. 그건 알지만, 딱히 내가 좋아할 사람 같지도 않고 나랑 친할 사람도 아닌 것 같아. 아마 같은 시기에 살았다면 소로는 나 싫어했을 것 같아. 알라디너였다면 공개적으로 나를 깠을 것 같다. 그여자는 그렇게 많이 먹어서는 안된다...........(  ")



마지막에 <작품해설> 읽어보면 소로가 딱히..음..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읽는 월든은 소로의 입장에서만 쓰여진 거니까. 작품해설 읽다가, 나는 이런 부분을 만난다.



오늘날 대중은 소로를 생태계 보존에 관심을 기울인 환경보호주의자로 여기지만 당시에는 그런 인식도 없었다. 오히려 소로는 일행과 함께 잡은 물고기를 요리하기 위해 불을 지피면서 주변의 잡목을 제거하지 않아(화폐 가치로 2000달러가 넘는) 300 에이커에 달하는 콩코드 삼림 을 태운 부주의한 인물로 악명이 높았다. 소로는 이웃들에게 적절하게 사과도 하지 않았고 이웃들은 불탄 삼림이 회복된 뒤에도 한동안 그 사건을 잊지 않았다. 소로는 다소 오만하고 냉담하고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작품해설, p.417-418)




네????????????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빵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물고기 요리하다가 삼림 다 불태웠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월든 읽는 동안 그 내용 1도 안나온다. 삼림 불태운 건 얘기 절대 안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람은 이렇게 어떻게든 자기 포장을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물고기 요리한다고 삼림 태워놓고 사과도 안했대.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월든 두꺼운 책인데 거기에 진짜 이 내용 1도 안나온다. 삼림 다 불태우다니, 참나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연이 아저씨한테 잘했잖아요. 근데 왜그랬어요, 왜, 왜.........



읽느라 고되고 피곤했다. 재미없는데 끝까지 읽는 거 넘나 힘든 일. 다 읽고 책장을 덮으니 이내 다시 책을 시작하기가 힘들더라. 다음 독서까지 약간 텀이 필요했어. 어제 이 책을 다 읽고 다음 책으로 뭐 읽을까, 하다가 좀 쉬고 싶어지길래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다만 소설을 읽겠다! 했어. 그래서 오늘 아침엔 소설 책을 가지고 나왔는데, 더럽게 무거워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잘못 골랐나 싶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무거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출근하느라 기운빠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왜케 무겁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거운 책 들고 읽느라 출근길 고생한 나에게 옥수수크림소보로 빵을 주었다. 어제 남동생이 나 먹으라고 사놓고 갔는데 그거 들고 와서 먹었지롱.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집에서 내려온 커피도 있지롱.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무튼 나는 이제 월든 읽었다. 뭔가 월든 안읽은 거 마음의 짐 같은 .. 그런 느낌이었는데, 그 짐을 덜었노라..




문득, 내가 소설을 쓴다면 내 소설 속 주인공의 최애작가 혹은 최애소설은 뭐로 하지? 생각하게 됐다. 에이모 토울스는 케이트를 통해 월든을 얘기했는데, 나는 내 등장인물에게 인생 책으로 도대체 뭘 정해주지? 새벽 세시를 너무 편애하는 거 세상사람 다 아니까 그거 하면 너무.. 거시기하고.............. 뭐해주지? 뭐해주지? 아아 고민이 깊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인데 두 젊은이가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돈이 없는 젊은이는 여행하는 동안 선원 일도 하고 농사일도 거들어서 여비를 마려했고 다른 한 명은 주머니에 환어음을 갖고 있었다. 둘 중 하나는 일을 하지 않았으므로 두 젊은이가 ‘서로 돕는‘ 여행의 동반자로 오래가지 못했으리라는 점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들은 여행에서 첫 번째 시련이 닥치자마자 헤어졌으리라. 앞서 말한 대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오늘 당장 길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이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떠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므로 한참 뒤에야 출발하게 된다.- P83

집을 짓는 일과 콩밭 일구는 일을 동시에 하는 바람에 일이 끊이질 않아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일이 끝나면 독서를 하게 되리라는 희망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나는 일을 하는 짬짬이 여행에 관한 가벼운 책을 한두 권 읽었다. 그러고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져서 진실을 추구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어놓고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자책했다.- P115

문학은 최고의 유물이다. 문학은 그 어떤 형태의 예술보다도 우리와 친근한 동시에 보편적이며, 삶 자체에 가장 근접한 예술이다. 문학은 어떤 언어로도 번역될 수 있으며, 우리는 문학작품을 눈으로 읽을 뿐만 아니라 소리 내어 읽기도 한다.- P117

책은 우리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지 설명해 주고 새로운 기적을 보여준다. 또한 이 시대에 언급하기 어려운 말들이 다른 어디에선가 이미 언급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인들 역시 우리를 혼란스럽고 난감하고 좌절하게 하는 문제들을 똑같이 겪었고,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언어를 통해 혹은 자신의 삶을 통해 해답을 제시했다. - P123

숲 속에서 처음 맞는 여름에 나는 책을 읽지 않고 콩밭을 일구었다. 아니, 종종 이보다 훨씬 고차원적인 일을 했다.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어떤 일에도 절대 양보하기 어려운 소중한 시간이 있었다. 나는 여백이 많은 삶을 소중히 여긴다. 여름날 아침이면 늘 하던 대로 몸을 정갈하게 씻고, 해 뜰 때부터 정오까지 햇빛이 가득 쏟아지는 문지방에 앉아 소나무와 히커리, 옻나무에 둘러싸인 채 방해받지 않고 홀로 정적 속에서 몽상에 빠진다. 그러다가 서쪽으로 난 창문으로 해가 떨어지거나 멀리 도로에서 행인의 마차 소리가 들리면 비로소 시간이 흘렀음을 깨닫곤 했다. 그런 계절이면 나의 정신은 밤새 옥수수가 쑥쑥 자라듯 성장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어떤 육체노동보다도 즐겁다.- P126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을의 도움을 받는 일은 수치스럽게 여기면서, 정직하지 못한 방법을 동원해서 생활을 꾸려나가는 것은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정직한 삶은 도움을 받는 것보다 더 치욕스러운 일이다. 정원에 세이지 같은 약초를 가꾸듯이 가난을 경작하자. 옷이든 친구든 새로운 것을 장만하려고 애쓰지 말자. 낡은 옷을 고쳐 입자. 오랜 친구에게로 돌아가자.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옷은 팔아버리고 우리의 생각을 간직하자. 우리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음을 신은 알아주리라. 온종일 거미처럼 다락방에 갇혀 있어도 스스로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면 세상은 마찬가지로 광활하게 느껴진다. -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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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6-2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월든> 너무나도 재미없어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던 책입니다. 다 읽고 나서도 별다른 감흥이 안 느껴졌고요. 소로 저 사람, 내가 싫어하는 유형이야.... 이런 생각도 했었고요.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 암튼 누군가에게는 고전이고, 인류의 고전일....(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책은 좀 부풀려진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음.

다락방 2019-06-21 09:55   좋아요 0 | URL
아아, 반갑습니다, 잠자냥 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정말 끝까지 읽느라 고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으면서 소로 이 사람 내가 좋아할 사람은 아니다, 이 사람도 나를 안좋아할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ㅎㅎ 저 역시 이렇게나 고전이 될 이유 같은 건 없었다고 보여지지만, 또 어떤 면에서 사람들이 좋아하고 영향을 받는지도 알겠더라고요.

저는 월든 호숫가 근처에 사는 친구 있으면 좋겠다, 여름에 휴가 가고 싶다, 생각했지만 ‘근데 그 사람이 소로이면 싫다‘ 이랬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19-06-21 10:02   좋아요 0 | URL
아마 그때 책 다 읽고 소로 얼굴 찾아보고 와 정말 고집스럽게 생겼다;; 이런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 소로가 강요하는 삶이 너무 싫더라고요;; 읽는 내내 ‘알았다고, 당신이나 그렇게 살라고!‘ 막 이런 반감이 들더라는 ㅋㅋㅋㅋㅋ 월든 호숫가 근처도 안 가고 싶어요. 저는 ㅋㅋㅋㅋㅋㅋ

그때 이렇게 감상문 남겼었네요. ㅋㅋㅋ

-난 소로우의 문체랄까, 고답적인 말투도 별로였다. 무엇보다도 책 곳곳에서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단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평가하는 소로우의 시선이 불편했다. 마치 그들은 바보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투의 시선이랄까. 소로우 당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에 남들이 의문을 제기하는 게 싫었듯이 그저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의 삶도 당신만의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락방 2019-06-21 10:1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잠자냥 님.
읽는 내내 계속 그렇게 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비난하죠. 자기 오두막 방문했다가 먹을 거 별로 없고 그래서 속히 떠나는 자들까지 흉보잖아요. 싫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자기가 추구하는 바대로 살고 자연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쾌락과 멀어진 삶을 사는 사람이라 한 백살까지 산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마흔네살까지 살다 죽었다고 해서 너무 깜짝 놀랐어요.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운명이란 정녕 정해져있는 것인가, 죽음은 어떻게 사는가와는 관계없이 찾아오는가...라는 철학적인 질문도 해보고요... (이상한 의식의 흐름)


저는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보는 거는 되게 좋았거든요? 근데 소로의 월든이 재미도 없고 별로인거에요. 그래서 어떤 차이가 있나 곰곰 생각해봤는데,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도시에서 사는 자신의 삶을 힘겹게 느꼈을지언정 그렇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이 없죠. 게다가 아주 잘 해먹고 살아요. 저는 이 쪽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혼자서 맛있는 거 잘 해먹고 사는 사람. 저는 아무래도 이 쪽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6-2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다락방님 이 페이퍼랑 잠자냥님과의 댓글대화 읽고 나서 이 책이 읽고 싶은 나는...누구일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놀라운 페이퍼여라!
분명 재미없다고 썼는데
이 책이 읽고싶다능!!!

다락방 2019-06-21 11:49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님은 이 책이 좋으실 수도 있어요! 저야 워낙 쾌락주의자라... 킁.

단발머리님 읽고 감상 써주세요. 단발머리님 에게서는 얼마나 근사한 페이퍼가 나올까 벌써부터 기대돼요! >.<
읽으실거면, 단발머리님, 제가 읽은 책 보내드릴까요? (초롱초롱)

단발머리 2019-06-21 12:25   좋아요 0 | URL
진짜요?!? 완전 완전 좋아요!!!
(초롱초롱 반짝반짝 @@)
제가 함 읽어보겠습니다용!!!

잠자냥 2019-06-21 12:49   좋아요 0 | URL
읽고 꼭 말해주세요. 소로랑 친구 하고 싶은지 아닌지 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6-21 12:54   좋아요 0 | URL
두 분 댓글로 짐작키는 일단 제 스타일의 남자는 아닌 듯 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좋아하고 말고는 본인 마음이지만 잠자냥님 말씀처럼 부풀려진 면이 있을까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요. 다락방님의, 생선 요리한다고 산에 불내고 사과 안 했다는 이야기 보면... 호감형은 아닌듯 하고요^^

다락방 2019-06-21 13:5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제가 택배로 보내드릴게요. 딱~ 기다리고 계세요! 슝-

단발머리 2019-06-21 13:54   좋아요 1 | URL
이야호~~!!!!!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신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랑 2019-06-21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과 자주 읽고 싶은 책은 별개인 것 같아요. 영화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자주 볼수록 더 좋은 영화도 있지만요 어떤 영화는 정말 좋은데 또 보기에는 버겁더라구요.
저의 경우에는 라라랜드, 위플래쉬, 버드맨이 좋았는데 또 보긴 힘들었어요. 반면에 포레스트 검프, 쇼생크탈출은 봐도 봐도 좋구요.
책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좋은 책이라고 평가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다락방 2019-06-23 17:06   좋아요 0 | URL
방랑님!
제가 며칠전에 갑자기 라라랜드를 다시 보고싶어지더라고요. 혼밥하면서 보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아아, 재밌다 재밌다, 하면서 라라랜드를 다시 보았어요. 아, 아직 끝까지 보지는 않았지만요.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 보고싶어지는 것과 좋은 것은 또 다른 것 같아요. 얼마전에는 멜리사 맥카시 주연의 [스파이]를 다시 보는데 또 너무 재밌잖아요? 으악 너무 재미있다! 이러면서 다시 봤어요. 반면에 [사이드웨이]같은 건 참 좋았어서 다시 봐야지, 마음 먹었었지만 다시 보게 되진 않더라고요. 또 언젠가는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요. 좋은 책, 좋은 영화.. 모두 감상하는 자의 몫인 것 같아요. 누가 뭐래도 저에게 뭔가 울림을 준다면 그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대작이 아니라도 말이지요.

감은빛 2019-06-2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금까지 접한 월든에 대한 글이나 이야기 중에 가장 재밌어요! 역시 다락방님!

제 생각에는 재미있는 책과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책은 다른 것 같고, 다시 읽게 되는 책은 객관적인 재미나 감동과는 달리 특정한 개성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다락방 2019-06-23 17: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 책이나 영화가 갖는 특정한 개성, 그것 때문에 어떤 책이 누군가에게는 형편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책이 되기도 하고 그래요. 제 경우 새벽 세시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뻔한 로맨스 소설일테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게 좋아요. 저한테만 좋은 작품. 그거면 된 것 같아요. 후훗.

비연 2019-06-22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월든은 별로였는데... ㅡ.ㅡ;;;

다락방 2019-06-23 17:07   좋아요 0 | URL
아니, 이렇게나 별로인 사람이 많은데 왜때문에 고전으로 평가받는 걸까요? ㅎㅎ
 

꿈을 꿨다.

꿈속의 나에겐 남자친구가 있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어떤 대화중이었는데, 남자친구는 내게 멍청하고 성격도 나쁘다고 뭐라고 했다. 우리가 무슨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남자친구에게 나는 멍청하고 성격나쁜 게 아니고, 니 말이 틀린 거라고 대꾸했는데, 그러자 남자친구는 내게 물었다.


"너 생리할 때 됐지?"


남자친구다 보니 내 생리주기 정도는 알 수 있었던 걸까. 공교롭게도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러자 남자친구는 내게


"거봐. 그러니까 멍청하고 성격도 나쁘지. 여자들은 생리할 때 성격 나빠지잖아. 나 아니면 누가 너 이해하냐."


이러는 게 아닌가. 나는 그 말을 듣고난 후,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래, 천천히 보면서 생각했다.


'이런 새끼를 왜 사귀고 있지?'



그러나 그에게 그만만나자고 말하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새벽이었다. 다시 잠들기까지 뒤척이면서, 대체 이런 맥락 없는 뜬금 없는 꿈을 왜 꾼거지? 아무 메세지도 없는 꿈을? 기분만 나쁘잖아? 하다가, 아아, 캣콜링 때문이구나, 했다. 그렇다. 나는 자기 전에 '이소호'의 시집 《캣콜링》을 읽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를 읽으며 빡쳐했던 것이다.




마시면 문득 그리운




소호 뭐해? 다른 사람들한테 아직 내 이야기 안 했지? 나중에 우리 여행 갈래. 이 말을 하려고 전화한 건 아니고 그냥 오늘 너무 슬퍼. 같이 있어 주면 안 돼? 나 있는 곳으로 올래? 여기 연남동이거든 택시 타면 금방이야. 이상하게 술 마시니까 네 생각이 나네. 그냥 너 같은 여자랑 사귀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런 생각. 아니다. 우리는 남들처럼 그렇게 유치하게 만나지 말자. 그냥 좋으면 좋은 대로. 나는 소호가 쿨해서 좋아. 예술하는 여자들은 보통 여자들이랑 다르잖아. 자유롭잖아. 얽매어 있는 거 싫어하지 나처럼. 그러니까 구속하지 말자. 마음이 서로 맞는다는 게 중요한 거잖아. 그냥 이렇게 만나서 술 먹고 더 맞으면 자고 그러자. 야. 우리가 무슨 사이냐니. 그게 뭐가 중요해. 너나 나나 나이 먹을 만큼 먹었잖아. 도대체 네가 생각하는 연애의 기준이 대체 뭔데? 남녀가 정기적으로 만나 놀고 먹고 자고. 그거 우리 지금 하고 있는 거잖아. 꼭 연인끼리만 그런 걸 해야 해? 난 아직도 네가 뭐가 불만인지 모르겠어. 여자들은 정말 이상하지. 멀쩡히 잘 만나다 꼭 이러더래. 됐어 기분 다 망쳤어. 너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볼 줄 몰라.






















아아..이런 시를 읽고 자가지고 꿈에 더러운 남자친구 있었네. 에라이-

어휴 입으로 손으로 똥싸는 놈들..



캣콜링 시집의 첫장을 펼치면, 서문인 듯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쟤는 분명 지옥에 갈 거야.

우릴 슬프게 했으니까.


2018년 12월

이소호




이 첫장이 너무 좋아서, 나는 지옥에 갈 사람들의 명단을 언제까지고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를 슬프게 한 사람들, 이 시간에도 우리를 슬프게할만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해서 단호하게 쟤는 분명 지옥에 갈거야, 라고 말하고 싶었다. 지옥에 가라. 당신들은 지옥에 가야해. 왜냐하면, 우리를 슬프게 했으니까. 나를, 내 친구를, 내 이웃을, 내 주변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슬프게한 사람들, 지옥에 가야해.


지옥, 이라고 하니까 며칠 전에 본 영화 《아이 엠 마더》가 생각난다.





원제는 <Pepprmint> 인데 왜 우리나라 와서 아이 엠 마더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강하다..뭐 이런 거 할라고 한건가.



'라일리'는 눈 앞에서 남편과 아이가 다른 사람의 손에 살해되는 걸 목격하게 된다. 범인을 보았고, 그래서 누가 범인인지 지목했지만, 부패한 경찰과 판사는 오히려 그녀를 정신병동에 가두려 한다. 나쁜 짓을 한 놈에게 벌을 줄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니, 자기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피해자인 자기 편이 되어주려 하지도 않다니. 그녀는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그래서 그녀 스스로 악을 응징하고 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남편과 딸을 잃고 5년이 지난 후, 그녀는 아주 강한 여자가 되어서 관련자들을 죽이고 다니기 시작한다. 남편과 딸을 쏘았던 놈들과, 그걸 지시한 배후와, 판결에서 그들을 풀어준 판사까지.


자, 아래 사진은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지 못한 판사의 집에 찾아가 복수하는 장면이다.






라일리는 가차 없다. 결국 저 판사의 두 손을 책상에 못으로 박아두고 '네가 정의롭지 않아 내가 정의롭겠다' 며, 그녀는 판사를 불태운다. 봐주고 뭐고 없다. 그간 그렇게 잘못된 판단을 얼마나 많이 내렸을까. 가장 정의로워야 할 위치에 있으면서 부패했어? 오케. 죽어.


지옥에 가라.



판결 똥으로 하는 판사들아. 정의가 찾아갈 것이다. 당신들을 응징할 것이다.



그녀는 수십명을 죽였다. 그러나 SNS 에서는 그녀를 응원한다. 경찰이 못하고 판사가 못해준 걸 직접 하는 그녀를 응원한다.



우리를 슬프게 했지?

지옥에 가라.




어제는 다섯 권의 책을 주문했고, 오늘은 세 권의 책을 주문했다.

이건 딱히 지옥에 갈 일은 아니다. 누구도 슬프지 않잖아요?

킁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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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6-19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전에 기사 봤는대요.
보습학원 원장이 10세 여아 소주 먹이고 성폭행했는데, 양손을 눌렀다,는 진술만으로 강간죄 성립이 안 된다고 2심에서 감형되서 징역 3년 선고했다고 하네요. 해당 판사 파면하라고 난리던데... 우리나라 사람들 순하기도 해라, 파면이라니...<아이엠마더> 단체 관람이라도 해야할 판이에요 ㅠㅠ

그 와중에, 이소호 시집은 넘나 이쁘구요...

다락방 2019-06-19 12:46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단발머리님. 그 기사 떠올리면서 쓴 페이퍼에요. 그 판사 앞에도 라일리가 나타나 응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열 살 아이한테 소주를 먹인 것만으로(왜 먹여요 대체..어른한테도 먹이면 안되는데!) 이미 3년은 때렸어야죠. 어떻게 열 살 아이인데 강간죄 성립이 안됩니까. 이게 말이에요 똥이에요. 저도 그 판사 파면하라는 청원에 동의했답니다. 파면이 다 뭡니까, 라일리가 저 판사한테 했듯이 모든 걸 다 날려버려야 해요. 모든걸..

이소호 시집은 어렵더라고요, 단발머리님. 해설을 읽어보니 아, 그래서 이렇게 썼구나 싶지만, 그렇다해도 확 오질 않아서 어려웠어요. 그나마 2장이었나, 저렇게 남자들이 하는 말 그대로 따온 시들은 잘 읽히더라고요.
모르던 시집이었는데 도서관 갔다가 보여서 충동적으로 집어왔어요, 저도. ㅎㅎ
 

지난 주에는 며칠간 병원에 입원을 했다. 살면서 입원은 처음이었고,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섯 권의 책을 준비해갔다(아무것도 안하고 책만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조용히 읽으며 그 시간을 온전히 휴식에 집중하고자 한다면, 나는 1인실에 묵어야 했다. 1인실에 묵으면서, 병원에서 내어주는 밥을 먹으면서, 그리고 가져온 책들을 읽자, 나는 그리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것이던가.

한 달전에 미리 1인실에 입원하겠노라 예약했지만, 병원측에서는 1인실에 빈자리가 없다고 했다.

1인실에 빈자리가 없을 수가 있나? 나는 당황스러웠다. 1인실은... 돈만 있으면 병원에서 얼씨구나 하고 받아주는, 그런 병실이 아니란 말이야? 1인실보다 더 좋은 특실은 자리가 있었지만, 1인실보다 하루에 30만원이나 더 비싸서, '나 돈 좀 써보겠다!' 작정했던 나였어도 차마 특실에 묵을 수는 없었다.


"2인실은요?"

"거기도 자리 없어요."


나는 하는수없이 5인실에 들어가야했다.



5인실도 일반병동과 간호병동이 있다 했다. 간호병동은 하루에 2만원 정도를 더 줘야 하는데, 간호사가 더 많이 배정되어 있고 집중적으로 돌보아주기 때문에 밤에 병실에서 보호자가 함께 자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간호병동으로 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살면서 처음, 입원했다.



5인실이 소란스러우면 어쩌나 했던 염려와 달리, 네 개의 침대가 비어있었고, 오호라, 나는 내가 원하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는데, 당연하게도 창가 옆이었다. 창가 옆에 자리잡고 커튼을 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짐을 꺼냈다. 그리고 이렇게, 가져간 책을 꺼내두었다.






히힛 씐나. 나 포함 사람 두 명이고 그래서 병실 조용해. 창가 옆이라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도 잘 들어와. 굳이 1인실 갈 필요 없겠어. 나는 중간에라도 자리가 나면 1인실로 바꿔달라 요청하였지만, 이정도라면 5인실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빈 병실은 금세 채워졌다. 나 포함 다섯 명의 환자들이 금세 자리를 잡게 되었고, 당연히 보호자들도 따라왔다. 엄마는 수술을 앞둔 나를 두고 안타까운 마음에 쉬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셨고, 혼자 있고 싶은 나는 엄마가 자리를 뜨지 않아 답답했다.


엄마 가, 가, 가란 말이야. 나 혼자 있고 싶어!!



그렇게 발걸음 안떨어지는 엄마를 겨우 돌려보냈건만, 아아, 세상은 정말이지 어쩌면 이렇게나 제멋대로인가요... 혼자이되 혼자가 아니었으니, 병실 안이 시끄러운 거다. 게다가 할머니 한 분은 목청도 너무 크시고 잠시도 수다를 참지 않으시며 게다가 매사가 다 부정적이었다.


흑흑. 1인실 자리나면 당장 옮길거야 ㅠㅠ



나는 초저녁부터 잠을 잤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밤 시간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덕분에 이디스 워튼을, 마이클 코넬리를 읽었는데, 이디스 워튼의 책에다 옮긴이 무슨 짓을 한거냐... 이건 따로 욕해주마... 아무튼,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시간대를 달리하자, 생각했다.

수술 당일날은 그게 쉬웠다. 수술을 하고나자 잠이 쏟아져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으니까. 깨어있는 시간은 곶..통... ㅠㅠ 너무 아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 다음날 부터는 병실의 모든 분들이 한마음 되어 수다를 떨 때(애초에 우리 커튼 걷고 수다떨자! 라고 얘기를 하시더라), 나는 책을 들고 휴게실에 가거나, 병원에서 빠른 회복을 위해서는 걸어야 한다고 해, 복도로 나가 아픈 배를 부여잡고 걸었다.






그리고 중간에 다시 체크했다. 혹시 1인실 자리난 거 아직도 없느냐고. 병원에서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네.... ㅠㅠ



밥 시간... 밥 먹는 시간에는 나도 그 분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다른 분들은 친절하게 어디가 아파서 들어온거냐 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물으셨고 또 본인들의 이야기도 하셨다. 다들 자랑할 것들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아픈 사연들도 갖고 계시더라. 내가 시끄럽다고 했던 할머니 한 분은 모은 돈을 아들이 사업한다고 가져갔다고 했지만, 수술하는 날에도 아들은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퇴원할 때까지 할머니의 아들은 한 번도 오질 않았어. 한 아주머니는 형부의 사연을 말해줬는데, 들으면서 내 마음이 어찌나 아프던지. 본인의 얘기를 마치고나서 아주머니는,



"문을 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시더라. 문을 열기 전에는 그 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고. 저마다 문을 가지고 있지만 그 문을 열면 또 각자의 사정들이 있다고. 나는 아주머니께


"혹시 안나 카레니나 읽어보셨어요?"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안나 카레니나에는 이런 문장이 나와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p.11)



















수술을 마치고나면 두 시간동안 잠을 자서는 안된다. 그런데 잠이 쏟아져. 옆에서 남동생이 계속 머무르며 누나, 자면 안돼, 일어나, 돌봐주었고, 매일 찾아와서는 내 침대 옆에 앉아 자기 일을 하거나 나랑 수다를 떨다 갔다.


수술 다음날에는 친구가 찾아왔다. 나는 병원 1층의 밥집과 커피숍으로 친구를 데려가 오랜만에 한참 수다를 떨었다. 친구가 나 주겠다며 과일과 빵을 사왔는데, 으으, 크림가득한 빵을 나는 당장 먹을 수가 없어 눈물을 흘립니다...


퇴원 후에는 집 근처까지 찾아와준 친구를 만났다. 네시간 이상을 정신없이 수다 떨었는데, 콜드브루 를 마시던 친구와 자몽허니블랙티를 마시던 나는 박준과 이제니를 얘기하고, 성의 변증법을 얘기했다. 각자의 실패한 연애에 대한 얘기부터 버지니아 울프 전집까지.

아,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사는 게 좋은 사람. 이래야 행복한 사람이야! 나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친구가 필요해!





결국 나는 5인실에 입원하고 5인실에서 퇴원을 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발길 떨어지지 않던 우리 엄마, 수술실에 나를 들여보내면서 펑펑 울던 엄마는, 다음날 부터는 '나 안가도 되지?' 전화 한통 하시고는 오지 않으시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매일 들르던 남동생에게도 '야, 걔 혼자 있고 싶어해, 가지마' 이러시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 처음엔 집에 가지를 못하더니, 이제는 오지를 않더라?" 하니 엄마 빵터져서 웃으셨다. ㅋㅋㅋㅋㅋ



오롯이 혼자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조용히 있고 싶었기 때문에 5인실에 있었던 것은 불편했지만,

그러나 그 안에서 입원한 다른 분들이 다 너무 친절하셔서 짜증냈던 내가 좀 미안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는 모두 "잘 하고 와요, 잘 될거야." 하며 인사해주셨고, 밥을 먹을 때면 '반찬 가져온 것좀 줄까요?" 챙겨주셨고, 잠이 들라치면 커튼을 쳐주셨다. 수술 후 걷는 운동을 시작할 때는 '젊어서 회복이 빠르네', 다들 감탄하시고, 할머니는 '저렇게 꼿꼿하고 예쁜 사람이 여긴 왜 와있어' 하셨다. 퇴원할 때는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나와 배웅해주셨다. 건강하게 지내라며.


유독 목소리 크고 늘상 수다인 할머니에게 짜증이 났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할머니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외로우셨겠다, 너무. 누구든 붙잡고 얘기를 하셔야 했겠어.





출근을 했다. 미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소포가 도착했다.

소포를 뜯어보니 그 안에는 늘 사야지 마음먹었던 라벤더 오일과 tea, 그리고 아프지 말라는, 쾌유를 바란다는 간단한 내용이 적힌 카드가 있었다. 그 두 줄이 마음에 와 박혔다.





어제 자기 전에 라벤더 오일을 살짝 손에 덜어 귀 뒤와 목에 조금 발라주었다. 라벤더 오일은 숙면을 도와준다고 했다. 내가 몰랐기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이 떠올랐다. 몇 해전 여름에, 그 때 우리가 함께이던 그 밤에, 그 때 내가 오일을 알고 또 가지고 있었다면, 오일을 발라줄 수 있었을 텐데. 몰라서 하지 못했네. 몰라서 하지 못했던 게 너무 아쉬웠다. 다음에, 다음에 가능하면 그 때는 내가 라벤더 오일을 준비해갈게. 그리고 자기 전에 발라줄게, 숙면을 취하도록. 왜냐하면 나는 코를 고니까.. (응?)




회복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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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6-18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빠른 쾌유 바랍니다...

다락방 2019-06-18 14: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 빨리 낫고 있는 것 같아요. 훗.

설해목 2019-06-1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10월 충수염젤제 수술을 한 저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ㅎㅎㅎ
저 역시 5인실에서 아주 기냥 시끌벅적하게 지내다 퇴원했었거든요. ㅋㅋ
수술 잘 하고 무사히 퇴원하신 거 축하드려요.
당분간은 그래도 몸조리 잘해야 하니까 늘 조심조심하셔요~ ^^

다락방 2019-06-18 14:03   좋아요 1 | URL
5인실 너무 시끄럽고 ㅋㅋㅋ 그것은 그러나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있을 때는 혼자 조용히 있지 못해 짜증났었는데, 돌이켜보니 같은 병실 분들 다 너무 친절하고 다정하셨어요.

조심조심 회복에 집중해야지요. 감사합니다!

transient-guest 2019-06-18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반 창가의 책까지는 낭만적인 그런데 그 다음부턴 숨이 좀 막히는 듯한 병원에서의 시간이었어요 꼭 회복 잘 하시길

다락방 2019-06-18 14:03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창가에 책을 꺼내놓을 때까지만 해도 혼자 독서나 실컷하자며 좋아라 했었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저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지라 제 생각대로만 굴러가지 않았네요. 하핫.
네, 회복에 집중할게요. 감사해요!

psyche 2019-06-1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수술에 입원이시라니... 몸이 다 회복될때까지 꼭 무리하지 마세요. 빨리 좋아지시길!

다락방 2019-06-18 14:04   좋아요 0 | URL
네, 얼른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부지런히 걸었고 이제는 부지런히 먹고 부지런히 잘거에요. 감사해요!

잠자냥 2019-06-1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조리 잘 하시고요! 회복도 잘 하시고요~ 그나저나 역시 포스팅은 회사에서 제맛이죠? ㅋㅋㅋ

다락방 2019-06-18 14:04   좋아요 0 | URL
아니, 어떻게 아셨습니까. 포스팅은 역시 회사에서 하는 게 제 맛! 회사는 제 작업실입니다. 포스팅을 위한 작업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9-06-18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8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방랑 2019-06-18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 페이퍼에서 다락방님이 병원에 입원한다면 책을 잔뜩 싸가서 읽고 싶다고 하신 것 같은데...
실현된건가요..ㅜㅠㅠ
몸조리 잘 하시고 무리하지 마세요.
병원이 아니라 해변가에서 카페에서 건강하게 책 읽으시길!

다락방 2019-06-18 14:05   좋아요 0 | URL
네, 그러합니다. 책 잔뜩 싸들고 가서 읽었답니다. 물론 다 읽지는 못했지만... 아주 오래전에 사두고도 안읽었던 책들 위주로 가져갔어요. 읽고 처분하려고요. 후훗.

네, 다음에는 카페에서 책 읽는 사진을 인증할 수 있도록 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9-06-18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수술 경과는 좋으신지요.
빨리 회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좋은하루되세요.^^

다락방 2019-06-18 15:05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 수술도 잘 되었고 회복도 빠르게 되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2019-06-18 2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19 1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9-06-1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술도 잘 되고 회복도 빠르시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다락방님을 너무 잘 아는 다락방님 어머님을, 저는 좋아합니다.
입원하고 수술하는 건 별로지만
그 와중에도 5권의 책언덕 멋져요.
다음 작품 기대할께요^^

다락방 2019-06-19 12:16   좋아요 0 | URL
어떤 때에는 엄마가 저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때에는 어쩌면 이렇게 나를 모를까 싶기도 해요. 그러나 이건 누군들 그렇겠지요. 저라고 저를 다 알 순 없듯이 말입니다.

성의 변증법은 병원에서 몇 번이나 시도했다가 포기했어요. 퇴원하고 나서 다시 읽기 시작했고요.

단발머리님이 써주시는 글, 페이퍼든 리뷰든 읽는 거 너무 좋아요. 그 시간을 좋아합니다. 우리 부지런히 읽고 씁시다. 화이팅!

감은빛 2019-06-2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른 회복을 바랍니다!
다락방님은 원체 건강하시니 금방 회복되시리라 믿어요.

돈이 있어도 자리가 없어서 1인실을 이용하지 못했다니!
그렇군요. 저도 병원 입원실을 떠올리면 늘 6인실, 8인실 등이 생각납니다.
그 와중에서도 열심히 책을 읽으셔서 다행이에요.

다락방 2019-06-21 09:4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감은빛 님.
정말 저 건강한가봐요. 회복이 빨리 되고 있습니다.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