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8월의 마지막 날이자 월요일. 줌파 라히리의 소설로 다가오는 가을을 대비할까 싶어져 출근길에 읽을 책으로 『이름뒤에 숨은 사랑』을 선택했다. 집앞에서 버스를 탔는데 버스 안에서는 책을 잘 못읽고, 잠실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탔는데, 음 좀 피곤하다. 살짝 눈을 감고 종합운동장 쯤에서 눈을 뜨고 책장을 펼쳤다.
그런데 몇장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강남역이다.
회사에 도착.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일할 준비를 마치는데 으윽, 아침부터 모든 일이 꼬이고 문제가 발생한다. 하루종일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일에 허덕이고, 대응하고, 그 와중에 청첩장을 보낼테니 주소를 대라는 친구에게 주소까지 알려주고, 하루 일을 다 마치고 퇴근하려고 하니 기진맥진 그리고 우울함이 찾아온다. 제기랄.
도저히 줌파 라히리의 책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이걸 읽을 수 없다. 나는 무언가 다른 읽을게 필요하다, 다른거. 팍팍 넘어가고 흥분되는 다른 거.
그래서 사무실 내 자리의 책상 옆(읽지 않은 책을 스무권쯤 쌓아두었다)과 뒷자리의 프린터 책상(거기에도 역시 읽지 않은 내 책들이 여섯권쯤 쌓여있다)을 둘러보았다. 뭘 읽지, 뭘 읽지? 퇴근길에 읽어야 하는데. 그러다 눈에 띈 책.
뱀파이어 이야기라니 흥미진진하겠지? 나 지금 엄청 열받고 짜증나고 우울한데 이 정도면 되겠지?
회사동료와 갈비탕을 먹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몇장 꺼내 읽었는데, 오옷 맘에 든다. "옛날 옛날에 거인이 살고 있었단다."로 시작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부터 재미있다. 집앞에서 남동생을 불러내어 탕수육과 맥주를 마시며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허접한지 수다를 떨고 집에 돌아가서 이 책을 조금 더 읽어 보았다. 윽, 재밌다. 한편의 뻔한 영화로 그려지지만, 그 영화가 재미있는 영화라면 나쁘지 않다. 게다가 제법 긴장도 된다. 결국 밤에 잘 때는 살짝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은 1일.
벼르고 별렀다가 신한카드 싸이트에 들어가서 6프로 할인을 받으며 마구 질러야 하는 날.
그런데 위에도 썼던것 처럼 사무실에도 이미 스무권 이상의 읽지 못한 책이 쌓여있고, 집에는....말해 무엇하랴. 문학동네 이벤트로 받은 열권, 생일선물로 받은 열세권의 책들, 친구에게 그냥(?)받은 몇권, 그러면서도 참지 못해 질렀던 여섯권쯤이 죄다 8월달에......그래서 이번달 1일은 그냥 꾹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
지만...그래도 자꾸만 자꾸만 지르고 싶다. 이런 책들.
열두시간만 버티자, 열두시간만. 열두시간만 잘 버티면 나는 이번달에 지르지 않고 잘 넘어갈 수 있다.
God, save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