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 급하게 읽어내야 할 책의 분량이 좀 많아서 이 책을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읽고 있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 마치면 바로 이 책 시작해야지 했는데, 어제 단발머리 님 서재에서 이 책의 인용문 보고 급 읽고싶어져서, 그 밤에 이 책을 펼쳤다. 물론 얼마 못가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자야했지만.
이 책 읽기 시작하는데 와- 왜이렇게 좋지? 처음 읽을 때보다 더 좋은것 같다. 특히, 프롤로그의 첫문장.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p.21
아아, 너무 좋지 않은가. 진짜 너무 좋은거다. 이 책의 첫문장이 이렇게 좋았었나? 왜 내가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었지?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애나 칭이 하는 것이 산책이란다. 크- 아마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산책하는 사람은 많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는 것은 애나 칭만의 고유한 것일테다. 버섯을 발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운이 좋다'고 표현하는 것 말이다.
간혹 뒷산이든 어디든 산에 오를 때면 버섯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송이버섯은 아니고, 이름도 모르는 버섯들이긴 한데, 나무 밑둥에서 혹은 나무 중간에서 빼꼼 올라오고 있는 버섯들. 어떤 것들은 지극히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데, 언젠가는 온 가족이 다함께 산을 갔다 화려한 버섯을 발견하고 오, 저거 따먹으면 안되겠지? 화려한 건 독버섯이라잖아? 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내 말에 이렇게 답하셨다.
"저거 따 먹으면 너 뿅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실 버섯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편이다 보니, 산에서 버섯을 발견했다고 해서 한 번도 그걸 따먹어 본 적은 없다. 지금도 내가 아는 건, 화려한 버섯은 독버섯.. 정도랄까.
어쨌든 이 문장 너무 좋아서, 당연히 저자가 던진 가벼운 물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실 굳이 다른 사람의 답을 듣기보다는 자신이 산책하고 버섯을 발견하는 걸 기쁨으로 생각한다는 거에 더 중점을 둔 문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물었으니 대답하는 것이 인지상정.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
이 문장을 보자마자 내가 떠올린 건 요가였다. 삶이 엉망이 되어간다는 느낌은 내가 자주 받는 느낌은 아니다. 그러나 느껴보지 못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때, 내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요가였다. 요가를 한 번 해보자, 등록해보자.
2017년 이었다. 마음이 너무나 힘들고도 힘들었다. 꼼짝도 하기 싫었고 이대로 내가 바닥으로 가라앉는게 느껴졌다. 보통 우울이 찾아오거나 한다면 내가 나를 좀 다독이는 편이고 또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끄는 걸 스스로 잘 해내는 편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데 이 때는 그게 안되고 하염없이 밑으로 밑으로 떨어지기만 했다. 아, 이러다가 내가 정말 망가지겠다, 나 이대로는 안될것 같은데, 이대로 큰일나겠어, 아 나를 어떡하지, 하면서 생각해낸 방법은 운동을 시작하자는 거였다. 강제로 시작하지 않으면 내가 완전히 부서져버릴 것 같았다. 일대일로 헬쓰를 시작해볼까, 아니면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요가를 시작해볼까.
그전까지의 나는 돈을 내고 운동을 하는 것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운동이라는 건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 돈을 내는게 무슨 소용이람, 그건 돈을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않아, 나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내가 해낼 수 있는 거라굳!! 이렇게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그 때는, 너무나 하염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 때는, 내 혼자의 힘으로 나 스스로의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도움을 받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해, 지금은 도움이 없이 일어설 수가 없다, 라는 생각을 고민을 거듭하다 요가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헬쓰와 요가중 요가로 선택한 건, 그 때까지만해도 요가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내가, 요가를 단순히 마음 수양, 명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자. 누군가의 도움으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시작하자. 그렇게 집 근처의 요가센터로 찾아갔다. 상담을 받아보니 다소 비싼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데 들러가며 요금을 비교할 의지 같은 건 코딱지만큼도 없던 터라, 아 몰라 그냥 여기로 해, 하고 나는 등록을 하고 그렇게 처음, 요가수업을 받았다. 내 마음이 좀 다스려진다면 좋겠다. 가만히 눈을 감고 고요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요가에서 일어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요가는 그런게 아니었다.
아니, 요가가 그런게 맞는데, 그런데 그게 그게 아니었다.
처음 요가 수업에서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선생님의 지시에 맞추어 팔을 들어올리고 엎드리고 주저앉고 몸을 접고 뒤로 펼쳐가면서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빈야사'를 따라할 때, 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나 에너지 따위 전혀 존재할 수 없었다. 그 모든 동작들, 살면서 일상에서는 결코 해보지 못했던 그 모든 동작들을 따라하느라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 흘렀고 입에서는 연신 아이구야~ 아이구야~ 하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한시간을 정말이지 불살라 버려서 아.. 나 이대로 괜찮은가.. 하게 되었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수업을 마친 후 옆자리 수련생이
"첫날부터 빡센거 들으셨어요"
하시더라. 아아... 이런게 .. 요가인가요? .......
그 날 집에 가서 진짜 양푼에 밥을 잔뜩 비벼먹고 엄마를 붙잡고 세상에 엄마, 이런게 어디있어? 하며 하소연을 늘어놓고 다음날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근육통에 시달렸다. 요가가 단순히 스트레칭과 명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들 모두를 줄세워서 어깨를 붙잡고 흔들면서 말해주고 싶다. 그게 그게 아니라니까? 너 빈야사 한 번 따라해볼래? 덕분에,
나는 끌어올려졌다. 밑바닥에서 철푸덕 젖은 휴지처럼 늘어져있다가, 끌어올려졌다. 끌어올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비크람 수업, 아쉬탕가 수업에서도 나는 비오듯 땀을 흘렸고 내 안의 노폐물들이 더러운 냄새들을 풍겼고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리면서, 나는 그런 내 몸을 가지고 다니느라 에너지를 발휘해야 했다. 내 몸이 탈탈 털린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또 땀을 흘리고 근육통에 시달리다보면 에너지가 샘솟기도 했다. 새로 시작한 요가의 동작들을 신기해하고 근육통에 몸부림치면서 어느순간 나는 다시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있었다.
어제 인스타에서 한 요기의 짧은 영상을 보게 됐다. 헬쓰도 하고 다른 운동들도 한다고 했던 그 요기는, 그런데 요가를 시작하고 너무 좋다고 했다. 헬쓰장에 가면 덤벨이라는 기구를 들어올리는데, 요가는 내 몸 안의 덤벨을 들어올리는 일인 것 같다고. ㅋ ㅑ -
애나 칭의 물음,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 나는 요가를 했다고 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는 기꺼이 요가를 권하고 싶다. 작은 매트, 그 위에서만 펼쳐지는 그 일련의 행위들이 엉망이 되어간 삶을 어느 정도 정렬해줄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요가가 아직 힘들고 멀게 느껴진다면, 애나 칭이 했던 그것, 산책을 권하고 싶다. 이제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버섯을 발견하면서 걸을 수도 있겠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움직이는 것은 도움이 된다. 산책이든 요가든, 그리고 빵을 굽든. 반죽을 치대고 그 반죽의 감촉을 손으로 느끼고 반죽의 향을 느끼고 그것이 빵이 되어 나오는 순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엉망이 되는 느낌은 조금 잡아나갈 수 있다. 밑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다시 끌어올려질 수 있다. 몸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 그것이 버섯이든 매트 위로 떨어지는 땀이든 완성되어 나오는 빵이든, 그것은 엉망이 된 삶을 다듬어준다.
애나 칭의 저 첫문장이 너무 좋았다. 물어주어서 좋았다. 새삼 내가 앞으로 또 찾아오게 될지도 그 어떤 나락의 순간에, 끌어올릴 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인지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를 단단하게 다지는 일이다.
너무너무 좋은 첫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