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매달 10일 정도부터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를 읽기 시작한다.

10일이 되기 전까지는 읽고 싶은 책을 실컷 읽어주고, 10일부터 본격적으로 여성주의 책을 읽고 마치자,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오늘 출근길부터 이 책, '다나카 미쓰'의 [생명의 여자들에게: 엉망인 여성해방론]을 시작했는데,

제일 처음 <한국어판 서문>부터 턱, 막혀버리고 말았다. 아, 이 책, 읽기 만만찮겠네. 무엇보다 읽기 싫어하는 혹은 불쾌해하는 혹은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겠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부터가 매끄럽게 읽히지 않고 음, 당황스러웠거든. 자, 그러니까 서문에서 나를 이런 구절을 본것이다.



'여자다움으로 살아간다면 나는 나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이 온몸에서 끓어올랐습니다. 남녀 구별 없이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내면서, 저는 '이게 바로 나야'라고 여기는 내 자신과 만나고 싶었습니다.

'싫은 남자가 내 엉덩이를 만지지 않았으면' 하는 나, '좋은 남자가 만지고 싶어 하는 엉덩이를 갖고'싶은 나. 내가 싫어하는 남자가 내 엉덩이를 만지면 안 된다는 것은 여성들의 공통된 분노에서 나온 것이기에 운동의 대의가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만져 줬으면 싶은 쪽은 말하자면 개인의 욕망입니다. 대의와 욕망-이 두 가지가 비슷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여자들이 나와 함께 들고 일어났습니다. -p.5-6



음.. 싫어하는 남자가 내 엉덩이를 만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는 일단 적극 동의. 그런데 '좋은 남자가 만지고 싶어 하는 엉덩이를 갖고 싶은' 것 역시 적극적 동의인가? 여기에서 턱, 하고 걸려버리는거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어떤 남자도 내 엉덩이를 만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는 참인가? 나는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아니, 나는 좋은 남자여도 내 엉덩이 만지는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라고 나는 생각하는가? 질문을 여러개 더 던져보아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 엉덩이가 내가 좋아하는 남자에게는 매력적이기를 원한다는 답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니 '다나카 미쓰'의 저 구절이 거짓은 아니고 잘못됐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데 되게 불편한거다. 저 문장이 너무너무 불편해. 사실이라며, 참이라며, 그러니까 대의와 욕망이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은데, 내 안의 모순 우리 안의 모순을 우리가 인지한다고 해도, 그래도 저 문장이 왜이렇게 불편한걸까. 다나카 미쓰가 '지나치게' 솔직한걸까? 그런 지나친 솔직함에 내가 불편한건가? 지나친 솔직함에 당황스러운건가? 내 안의 깊은 욕망을 표현해버려서 불편한건가? 너무 직설적이라 불편한건가? 음.. 그런데 나는 그게 아닌것 같은거다. 그러니까 나는 '좋은 남자가 만지고 싶어하는 엉덩이를 갖고 싶은 나'라는 문장 자체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불편하다. 이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문장의 적나라함에서 오는가 혹은 나 자신의 모순을 인정하기 싫음에서 오는가. 아니 그건 또 아닌 것 같은거다. 이 문장은 불편함이 있다. 그런데 그건 내가 솔직하지 못함에서 오는 불편함이 아니다. 다른 불편함이다. 그렇다면 그 다른 불편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라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그것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떠올린 건 '에바 일루즈' 였다. 에바 일루즈가 이 남녀관계 욕망에 대한 모순.. 을 말하지 않았었나. 



그리고 나는 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불안한가] 에서 이런 구절을 보게 된다.

















로이피(미국의 여성 작가로 뉴욕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기도 한다)는 『뉴요커』The New Yorker 지에 실린 대프니 머킨의 말을 인용한다. "남성과 여성의 평등, 심지어 겉보기뿐인 평등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지만, 언제나 섹스 자극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로이피가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더더욱 흘려들을 수 없는 노골적인 불평, 곧 평등이 섹스 욕구를 퇴색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남녀의 평등은 그다지 섹시하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평등을 존중하는 섹스는 협상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번거로운 절차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반면교사로 삼은 남자는 적극적이며 직접적으로 섹스를 주도하는 법을 배웠다. 그러니까 여성은 자신감에 넘치며 게임이라도 벌이듯 유려하게 접근하는 남성성을 갈망한다. -p.81-82



평등은 원래부터 혼란스럽다. 평등을 기본 전제로 깔면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끊임없는 갈등이 불거진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평등이 불안함과 애매함을 낳는 원인이라 말할 수 있다. 불평등을 편안하게 여기게 만드는 두 번째 측면은 권력관계를 보호관계로 바꿔주며, '자연스러운' 상호의존성과 강한 감정적 접착성을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반대로 평등은 어떤 의무감도 낳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의 욕구와 권리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상대방과 갈등을 빚도록 조장한다. 불평등이 지닌 세 번째 편안한 측면은 역할 문제를 놓고 서로 협상을 벌이지 않아도 좋다는 점이다. 이로써 관계 당사자들은 좀 더 자발적이고 직접적인 감정을 가짐으로써 골치 썩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즐겨 보는 드라마 시나리오가 그려내는 사회적 역할을 보라. 고민하고 자시고 할것 없이 그저 감당하기만 하면 되는 역할이지 않은가. -p.82-83



아, 뭔가 손에 잡힐 것 같지만 잡히지 않는 느낌이다. 내가 원하는 답이 여기에 있기를 바랐지만 정확한 답이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방향에서 내가 저 문장을 불편해했는지는 알 것 같다. 에바 일루즈의 문장들을 읽고나니 내 안의 모순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만져지길 원하는 엉덩이를 갖고 싶다'는 그 '욕망'은 욕망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만, 그러나 그 욕망 자체가 순수하게 내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이 온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태어나기를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엉덩이가 만져지길 원한다'고 태어나진 않았다는 거다. 이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그 욕망은 나에게 세뇌된 것이라는 거다. 이 거대한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에 살기 때문에 때로는 내 엉덩이가 누군가에게는 만져지길 원한다는 욕망이 생기는 것이지, 애초에 그것이 내가 내 모순에 직면할만큼 본질적 욕망은 아니라는 거다. 


물론,

지금 내가 가진 모든 욕망은 이 사회에서 태어나 살아가기 때문에 만들어진 욕망인 것이 맞다. 만약 내가 화성에서 태어났다면, 무인도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의 욕망과는 완전히 다른 욕망을 가지게 됐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남자에게 만져지길 원하는 엉덩이를 갖고싶어 한다는 것, 그 욕망만 나에게 주입된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거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건 '그건 애초부터 내 욕망인 것은 아니었다고!' 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가진 대부분의 욕망은 이 환경에서 자라면서 주입되거나 만들어진 것이다. 나도 안다. 그런데 저 문장에서 불편한 것은, 그 욕망을 내 안의 모순, 그러니까 대의와 욕망의 대립.. 으로만 보는게 옳은가, 우리에겐 이런 대의와 욕망이 함께 있다, 고 하는데서 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잘 설명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직 이 책을 몇 페이지 읽지 않았지만, 지금을 사는 여자들은, 내 욕망이 내 대의와 대립한다, 는 것에서 더 나아가있는데, 그 욕망의 원인 조차도 알고 있는데, 이 책, [생명의 여자들에게]는 욕망과 대의의 인정만 말하고 있는것인가, 에서 오는 것이다. 내 엉덩이가 누군가에게는 만져지기를 원해, 를 인정하는 데에서 끝나면 안되는데, 그런데 그 욕망은 왜 있는거지? 를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면 결국 닿게 되는 지점은 '어떤 남자가 내 엉덩이를 만지길 원하는 나의 욕망은 정말 내 것인가?' 일텐데, 이 서문만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은거다. 



아직 초반이니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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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1-11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심정 뭔 심정인지 알 거 같은데.... 내 엉덩이는 내가 만지고 싶다고 세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11-12 08:57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오늘 하루 우리는 자신의 엉덩이를 만지면서 힘차게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11-1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적으로 섹시해 보이길 원하는 욕망이 있긴 있는데 그게 어디까지 세뇌된 것인지를 정확히 판별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여자들은 일단 “남에게 섹시해보이는 엉덩이”보다는 “달리기 좋은 기능성 엉덩이”에 더 집중하는 노력을 해야만 조금은 그 세뇌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용… 다락방님이 왜 불편하신지 그 혼란 너무 공감가고요.

다락방 2024-11-12 08:57   좋아요 1 | URL
섹시한 여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는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섹시해지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이 따라와야 할 것 같아요. 만약 섹시한 여성이 가치있는 여성인것처럼 매스컴이 다루지 않았다면, 이 자본주의가 조장하지 않았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섹시한 엉덩이를 꿈꿨을 것인가.. 그런데 이 욕망에 대한 것을 ‘싫은 놈이 만지는 건 싫다‘랑 같이 놓으니 너무 걸리적거리는거에요. 하여간 계속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출근길에도 좀 읽었는데요, 음, 현재까지는... 보부아르 제2의 성 읽었으면 이 책을 굳이...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합니다. 흠흠.

건수하 2024-11-11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금 다른 면에서 혼란스러운데...

(제가 아직 읽기 시작하지 않아서, 다락방님이 인용하신 부분만 본다면)

싫은 남자가 만진다면 허락받지 않고 만지는 것일테고
좋은 남자는... 허락의 의미는 차치하고 좋은 남자가 ‘만지고 싶을만한‘ 엉덩이를 ‘만드는 것‘만 다루는 것인가요?

이걸 어떻게 한 번에 얘기할 수가 있는지... @_@

(어제 운동했더니 엉덩이가 아파서 괴로운 자 - 누가 만지길 바라진 않고, 건강해질 것 같아서 + 꽉 끼던 바지가 덜 껴서 보람을 느낍니다)

다락방 2024-11-12 08:55   좋아요 0 | URL
제가 어제 건수하 님 댓글을 읽고 곰곰 생각해봤는데요, 제가 저 문장에서 불편했고 그래서 그걸 찾으려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서 나름 제 나름의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건수하 님 댓글 읽고나니 어쩌면 제 불편함도 바로 그것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싫은 남자가 만지는 건 싫다‘는 것과 ‘만지고 싶을만한 엉덩이를 갖고싶다‘는 것이 한문장에 있는 거요. 거기에서 오는 이상한 불균형 이라고 해야할까요. 그게 한 문장에 있어서 불편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어제 필라테스에서 운동이를 조져줬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잠이 다 안오더라고요. 저는 건강해지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나쁜 자세를 바로 잡기 위해서 엉덩이를 집중적으로 운동했어요. 제가 자세가 나빠서 여러가지로 나쁜 증상들이 나타나버리는 바람에.. 하아- 젊은 여성들이 바른 자세를 갖고 운동 열심히 하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저처럼 나이 들어서 자세 고치고 균형 찾으려면 너무 힘들고 오래걸려요 흑흑 ㅠㅠ

단발머리 2024-11-12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다락방님 문장 읽으면서 오히려.....
예쁜 엉덩이를 만지고 싶은 나...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다르게도 표현할 수 있는데요. 예쁜 손을 만지고 싶은 나.에 대해서요.
그걸 섹슈얼리티의 영역에 묶을 수 있는지, 아니면 섹슈얼리티가 그 모든 걸 포함하는 건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일단 책을 좀 읽어보고 정리해봐야할 거 같아요.

전, 띠지를 풀어놓았습니다. 헤헤.

다락방 2024-11-13 09:29   좋아요 1 | URL
저는 오늘 출근길에도 이 책을 읽었는데요, 음, 매끄럽게 읽히는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많은 독자들의 경우에는 상당히 불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조금 더 읽고 또 생각나는게 있다면 정리해서 올려볼게요. 단발머리 님도 읽고 감상 남겨주세요!

시에나 2024-11-1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 책이 초반부에 으잉? 하는게 좀 있죠. 게다가 글이 어찌나 산만한지.ㅋㅋㅋㅋ 이 말 했다 저 말했다.ㅋㅋㅋㅋㅋ

한 중반 넘어가야, 다나카미쓰가 뭘 말하려는지 알듯말듯한데 그럼에도 저도 한 두번 읽은 후에야 파악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중간중간은 확실히 제2의성 요약본 같은 부분도 꽤 많고요. 문제의식이 비슷한 지점이 있어요. 그리고 이 책은 70년대 일본 좌파운동의 한복판에서 쓰여진 거라, 그때 일본의 적군파 같은 사건을 모르면 이해가 안되는게 많더라고요. 여성해방운동하는 여자들과 좌파운동 남성 혁명가(?)들의 이상한 결탁, 공의존 관계 같은걸 계속 비판하는 책이라서...

대의와 욕망의 대립을 큰 축으로 볼 수는 있으나, 이 책은 그 욕망에 담겨 있는 어두움 자체를 더 파고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그 욕망이 내것이 아니었으나 내것처럼 되어버렸고 여자들이 그걸 알면서도 왜 못 버리는가, 또 자아를 그부분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까지...? 그리고 여자들의 취약함이나 비겁함까지 엄청 후비파들어가고요. 그런데 반전은 그 부분을 긍정하라는데까지 이른다는 것이고요.

하여간 70년대 래디컬페미니즘이라, 엄청나게 새로운 내용은 없는데, 동북아 버전의 페미니즘 책이라는 점에서, 일본 민족주의나 학생운동과 한국 상황에서 통하는 부분들...? 그런 점에서 의미가 깊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10월의 책 버섯.. 다 읽고 계십니까? 완독하신 분들도 계시고 여전히 읽는 분들도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튼 다들 화이팅 입니다. 저는 다 읽고 이 페이퍼 등록 후에 리뷰도 등록할 참입니다. 참.. 부지런한 다락방인 것입니다. ㅎㅎ


11월에 우리 함께 읽을 책은 '다나카 미쓰'의 [생명의 여자들에게] 입니다.

사실 이 책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짐작조차 못하겠지만, 우리 함께 읽어보십시다.















12월은 '마리아 미즈'의 [마을과 세계] 입니다.
















그 후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자, 여러분 어쨌든 계속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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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0-31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1월의 저 책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다락방 2024-10-31 14:01   좋아요 5 | URL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진행하면서 제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다양한 분야-여성대상폭력, 성매매, 자본주의, 가사노동, 환경 등등-의 책을 읽자고 생각해서 책을 선정하는데, 저 책의 존재를 아는 순간 그러고보니 일본 여성학자의 글은 다같이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일본의 여성학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얘기를 하는지 한 번 들어보자, 하고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단발머리 2024-11-02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해서 자랑하려고 했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 바로 밑에 11월의 책 ㅋㅋㅋㅋㅋㅋㅋㅋ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한 템포 쉬고 들어갈게요! 만세만세 만만세! (후련해서 업됐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11-04 09:07   좋아요 1 | URL
저도 11월의 책은 준비되었지만 일단 10일 까지는 읽고 싶은 책 좀 마음껏 읽어보려고 합니다.
완독하신 거 축하드리고요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잠깐 쉬면서 읽고 싶은 책 좀 읽읍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 달에 급하게 읽어내야 할 책의 분량이 좀 많아서 이 책을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읽고 있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권 마치면 바로 이 책 시작해야지 했는데, 어제 단발머리 님 서재에서 이 책의 인용문 보고 급 읽고싶어져서, 그 밤에 이 책을 펼쳤다. 물론 얼마 못가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자야했지만.


이 책 읽기 시작하는데 와- 왜이렇게 좋지? 처음 읽을 때보다 더 좋은것 같다. 특히, 프롤로그의 첫문장.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 -p.21



아아, 너무 좋지 않은가. 진짜 너무 좋은거다. 이 책의 첫문장이 이렇게 좋았었나? 왜 내가 전혀 기억을 못하고 있었지?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애나 칭이 하는 것이 산책이란다. 크- 아마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산책하는 사람은 많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다음,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는 것은 애나 칭만의 고유한 것일테다. 버섯을 발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운이 좋다'고 표현하는 것 말이다. 


간혹 뒷산이든 어디든 산에 오를 때면 버섯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송이버섯은 아니고, 이름도 모르는 버섯들이긴 한데, 나무 밑둥에서 혹은 나무 중간에서 빼꼼 올라오고 있는 버섯들. 어떤 것들은 지극히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는데, 언젠가는 온 가족이 다함께 산을 갔다 화려한 버섯을 발견하고 오, 저거 따먹으면 안되겠지? 화려한 건 독버섯이라잖아? 라고 말했더니, 엄마는 내 말에 이렇게 답하셨다.


"저거 따 먹으면 너 뿅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사실 버섯에 대한 지식은 전무한 편이다 보니, 산에서 버섯을 발견했다고 해서 한 번도 그걸 따먹어 본 적은 없다. 지금도 내가 아는 건, 화려한 버섯은 독버섯.. 정도랄까. 


어쨌든 이 문장 너무 좋아서, 당연히 저자가 던진 가벼운 물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사실 굳이 다른 사람의 답을 듣기보다는 자신이 산책하고 버섯을 발견하는 걸 기쁨으로 생각한다는 거에 더 중점을 둔 문장이긴 하지만, 그래도 물었으니 대답하는 것이 인지상정.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나는 무엇을 하는가?


이 문장을 보자마자 내가 떠올린 건 요가였다. 삶이 엉망이 되어간다는 느낌은 내가 자주 받는 느낌은 아니다. 그러나 느껴보지 못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 때, 내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 요가였다. 요가를 한 번 해보자, 등록해보자.


2017년 이었다. 마음이 너무나 힘들고도 힘들었다. 꼼짝도 하기 싫었고 이대로 내가 바닥으로 가라앉는게 느껴졌다. 보통 우울이 찾아오거나 한다면 내가 나를 좀 다독이는 편이고 또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끄는 걸 스스로 잘 해내는 편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데 이 때는 그게 안되고 하염없이 밑으로 밑으로 떨어지기만 했다. 아, 이러다가 내가 정말 망가지겠다, 나 이대로는 안될것 같은데, 이대로 큰일나겠어, 아 나를 어떡하지, 하면서 생각해낸 방법은 운동을 시작하자는 거였다. 강제로 시작하지 않으면 내가 완전히 부서져버릴 것 같았다. 일대일로 헬쓰를 시작해볼까, 아니면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요가를 시작해볼까. 


그전까지의 나는 돈을 내고 운동을 하는 것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운동이라는 건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 돈을 내는게 무슨 소용이람, 그건 돈을 낭비하는 것에 지나지않아, 나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내가 해낼 수 있는 거라굳!! 이렇게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그 때는, 너무나 하염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던 그 때는, 내 혼자의 힘으로 나 스스로의 의지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도움을 받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해, 지금은 도움이 없이 일어설 수가 없다, 라는 생각을 고민을 거듭하다 요가를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헬쓰와 요가중 요가로 선택한 건, 그 때까지만해도 요가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내가, 요가를 단순히 마음 수양, 명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자. 누군가의 도움으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시작하자. 그렇게 집 근처의 요가센터로 찾아갔다. 상담을 받아보니 다소 비싼감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데 들러가며 요금을 비교할 의지 같은 건 코딱지만큼도 없던 터라, 아 몰라 그냥 여기로 해, 하고 나는 등록을 하고 그렇게 처음, 요가수업을 받았다. 내 마음이 좀 다스려진다면 좋겠다. 가만히 눈을 감고 고요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요가에서 일어날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요가는 그런게 아니었다.

아니, 요가가 그런게 맞는데, 그런데 그게 그게 아니었다.


처음 요가 수업에서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선생님의 지시에 맞추어 팔을 들어올리고 엎드리고 주저앉고 몸을 접고 뒤로 펼쳐가면서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빈야사'를 따라할 때, 와,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나 에너지 따위 전혀 존재할 수 없었다. 그 모든 동작들, 살면서 일상에서는 결코 해보지 못했던 그 모든 동작들을 따라하느라 온 몸에서 땀이 비오듯 흘렀고 입에서는 연신 아이구야~ 아이구야~ 하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한시간을 정말이지 불살라 버려서 아.. 나 이대로 괜찮은가.. 하게 되었는데, 내가 너무 힘들어하자 수업을 마친 후 옆자리 수련생이 


"첫날부터 빡센거 들으셨어요"


하시더라. 아아... 이런게 .. 요가인가요? .......



그 날 집에 가서 진짜 양푼에 밥을 잔뜩 비벼먹고 엄마를 붙잡고 세상에 엄마, 이런게 어디있어? 하며 하소연을 늘어놓고 다음날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근육통에 시달렸다. 요가가 단순히 스트레칭과 명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람들 모두를 줄세워서 어깨를 붙잡고 흔들면서 말해주고 싶다. 그게 그게 아니라니까? 너 빈야사 한 번 따라해볼래? 덕분에,


나는 끌어올려졌다. 밑바닥에서 철푸덕 젖은 휴지처럼 늘어져있다가, 끌어올려졌다. 끌어올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비크람 수업, 아쉬탕가 수업에서도 나는 비오듯 땀을 흘렸고 내 안의 노폐물들이 더러운 냄새들을 풍겼고 극심한 근육통에 시달리면서, 나는 그런 내 몸을 가지고 다니느라 에너지를 발휘해야 했다. 내 몸이 탈탈 털린다고 생각했지만, 그런데 또 땀을 흘리고 근육통에 시달리다보면 에너지가 샘솟기도 했다. 새로 시작한 요가의 동작들을 신기해하고 근육통에 몸부림치면서 어느순간 나는 다시 땅에 두 발을 단단히 딛고 있었다. 



어제 인스타에서 한 요기의 짧은 영상을 보게 됐다. 헬쓰도 하고 다른 운동들도 한다고 했던 그 요기는, 그런데 요가를 시작하고 너무 좋다고 했다. 헬쓰장에 가면 덤벨이라는 기구를 들어올리는데, 요가는 내 몸 안의 덤벨을 들어올리는 일인 것 같다고. ㅋ ㅑ -



애나 칭의 물음,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해, 나는 요가를 했다고 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나는 기꺼이 요가를 권하고 싶다. 작은 매트, 그 위에서만 펼쳐지는 그 일련의 행위들이 엉망이 되어간 삶을 어느 정도 정렬해줄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요가가 아직 힘들고 멀게 느껴진다면, 애나 칭이 했던 그것, 산책을 권하고 싶다. 이제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버섯을 발견하면서 걸을 수도 있겠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움직이는 것은 도움이 된다. 산책이든 요가든, 그리고 빵을 굽든.  반죽을 치대고 그 반죽의 감촉을 손으로 느끼고 반죽의 향을 느끼고 그것이 빵이 되어 나오는 순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삶이 엉망이 되는 느낌은 조금 잡아나갈 수 있다. 밑바닥에 널브러져 있다가 다시 끌어올려질 수 있다. 몸을 움직여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 그것이 버섯이든 매트 위로 떨어지는 땀이든 완성되어 나오는 빵이든, 그것은 엉망이 된 삶을 다듬어준다.


애나 칭의 저 첫문장이 너무 좋았다. 물어주어서 좋았다. 새삼 내가 앞으로 또 찾아오게 될지도 그 어떤 나락의 순간에, 끌어올릴 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인지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를 단단하게 다지는 일이다. 


너무너무 좋은 첫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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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4-10-23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첫 문장 정말 좋았어요. 저도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무조건 걷던 사람이라. 독버섯 밖에 발견하지 못했지만^^

다락방 2024-10-23 09:20   좋아요 1 | URL
악 저 문장 좋았다고 하시다니, 너무나 반갑습니다, 햇살과함께 님! 저 문장이 어제따라 정말 너무너무 좋더라고요. 저에게도도 걷는게 좀 더 기분을 나아지게 하는 한 방법이긴 해요. 그동안 버섯에 대해서는 딱히 관심이 없었지만요. 후훗.

바람돌이 2024-10-23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에 이어 다락방님도...
첫 문장에 저는 감흥이 다락방님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읽어보고싶네요.

다락방 2024-10-24 07:55   좋아요 1 | URL
네, 아직 몇장 안 읽었지만 이 책 참 좋아요, 바람돌이 님. 후훗.

독서괭 2024-10-23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도 삶이 엉망일 때(체력은 바닥을 치고 남편과 관계도 나빠지고 등등) 달리기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요가가 참 좋다고 하던데(특히 다락방님이 ㅋㅋ <무엇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가> 저자도 요가 예찬하더라고요) 저도 언젠가..^^
버섯 책 의외로(?) 명문장으로 시작하는군요? 뭔가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기에 의외입니다 ㅎ

다락방 2024-10-24 08:02   좋아요 1 | URL
다른 어려운 책들을 너무 많이 접해봐서인지 버섯 책은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쩌면 제가 한 번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읽고 계신 다른 분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잘 읽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두려움없이 시작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뭔가, 뭐랄까, 색다른 내용과 전개라서 너무 좋아요!

몸을 움직이는 것은 더 나은 마음 상태를 만드는데 분명 도움을 주는것 같아요. 어차피 그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독서괭 님 댓글 읽으니 달리고 싶네요. 이번주는 아직 달리지를 못해서요. 아.. 시간은 왜이렇게 빠르게 흐르는건지.. 오늘이 금요일 같은데 목요일이라 초큼 슬프지만, 그래도 내일 금요일이니까 다시 즐거워해야겠어요. ㅋㅋ

자목련 2024-10-23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첫 문장이네요 👍

다락방 2024-10-24 08:03   좋아요 0 | URL
저 처음 읽을 때도 저 문장을 좋은 문장으로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이번에는 너무 좋네요!! >.<

단발머리 2024-10-23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첫 문장 좋았거든요. 와아~~ 하면서 딱 끌어당기는...
근데 저는 그 방점이 어디에 찍혔냐면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였어요. 제게는 산책도 아니고(사실이 그렇습니다) 버섯도 아니었어요(송이버섯 맛 모르는 사람)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우리가 사는 삶이 그럴 때가 있잖아요. 어쩌면 계속 그럴지도 모르구요. 하나 해결되나 싶으면 그 다음 파도가 밀려오고...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그럴 때 도망가고 싶고 막 원망도 되고 싫은 마음 뿐이지만, 그렇다는 걸 안다는 게... 전 그게 좋더라구요. 삶은 자주, 엉망이 되지... 하면서요. 전 그랬어요 ㅎㅎㅎ 그래도 그럴 때 산책을, 요가를 한다는 건 참 좋은 거 같아요. 곧... 돈을 내며 운동을 배워봐야겠다 싶어요.

다락방 2024-10-24 08:06   좋아요 2 | URL
맞아요. 삶이 엉망이 되어가는 건 누구나에게 찾아오는 순간들이지만, 그런데 내가 삶이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건 아닌 것 같아요. 내 스스로가 삶이 엉망이 되어간다는 걸 인지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것을 끌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테고요. 그런데 그걸 자각하지 못하면 계속 그 안에서 허우적댈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자꾸만 나 자신을 그리고 내 주변을 돌아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겠네요.
다른 얘기지만, 저는 책을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내 삶이 엉망이 되어가는지 어떤건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첫문장을 만났다면, 그들중 누구 하나라도 ‘어?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가만...... 어..... 지금 내가 그런건가?‘ 하게 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책 읽는 건 참 좋아요, 단발머리 님. 그 좋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잇다는 것도 너무나 좋고요.
 

달이면 달마다 찾아오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9월 도서 완독한 분이 별로 보이질 않네요? 얘들아.. 다들 어디간거야.. 책 읽어.......



자,

10월의 도서는  '애나 칭' 의 [세계 끝의 버섯] 입니다.

분량으로보나 내용으로보나 만만치 않습니다. 가급적 빨리 펼쳐보시는 게 완독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정말 재미있고 유익할 거에요. 

여러분 화이팅!!

















11월, '다나카 미쓰', [생명의 여자들에게:엉망인 여성해방론]














12월, '마리아 미즈' , [마을과 세계]















여러분, 힘냅시다.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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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함께 2024-09-3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빠샤!!

다락방 2024-09-30 23:06   좋아요 0 | URL
홧튕!!

단발머리 2024-10-0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책 아직도 읽고 있는 중이고요. 곧 버섯 들어갑니다. 두꺼워보여서 빨리 시작해야 할듯........

다락방 2024-10-03 00:19   좋아요 1 | URL
10월에 저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서 이제 재미있는 책 읽기는 좀 멈춰야 할 것 같아요. 버섯, 빨리 들어가야지, 양이 장난 아닙니다요. 어휴..
 

'클레어 맥킨토시'의 소설 [나는 너를 본다]에는 자매가 등장한다.

언니는 동생이 당한 강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동생이 그 일로 아플까봐, 트라우마에 시달릴까봐, 자신이 더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나 동생이 강간범에 대해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걸 알고 혼란스러워한다. 왜, 그 놈을 잡아야지, 그 놈을 잡아 족쳐야지, 어째서 너는 그 일이 있는데도 마치 없는것처럼 살아가려는거야. 이 일로 사이좋은 자매는 수시로 긴장감을 형성하는데, 시간이 흐른 후에 비로소 언니는 우리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범죄자를 쫓으려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인생에 더 기쁜 일들을 떠올리며 그 일을 잊고 싶어한다는 것을.


소설의 이 부분에서 내가 크게 놀랐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강간 생존자에 대해 책 속 언니와 같은 생각을 늘 가졌던 사람이다. 강간 피해에 대해 누구나 트라우마를 가질 것이고 그걸로 인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계속 갖고 갈것이라고. 그런데 누군가는 그 일이 마치 내게 없었던 일인것처럼 잊고 살아가고자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거다. 범죄자를 잡아서 그 일에 대한 벌을 내리는 것보다 그런 일이 일어난 적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것을 택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나는 여전히 강간범을 잡아 족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로 나와는 다른 사람들, 그냥 없던 것처럼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잊지 못하고 어떻게든 응징하고 싶어한다면 내 안에 분노가 있겠지만, 그저 잊고 살고자 한다면 가슴 속에 분노는 달고 살지 않을 수 있겠구나.


내가 이 책의 이 장면에 대해 생각한 건, 이번달 여성주의 같이읽기 책인 [교만의 요새]에서 이 부분을 읽었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들은 강간으로 큰 트라우마를 얻어서 법적 정의에 호소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지만, 또 다른 이들은 직장, 친구들, 치유 과정, 혹은 그저 삶에 몰두하는 일이 법적인 투쟁보다 낫다고 느낀다. -p.150











그래, 맞아, 그렇지. 그런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 그런 사람들도 있다고 했어. 클레어 맥킨토시가 그랬다, 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서 새삼 소설 읽기의 쓸모에 대해 생각했다. 누누이 말해왔지만 나는 책을 재미있어서 읽어왔고 앞으로도 재미있어서 읽을 것이다. 내 독서의 아주 많은 부분은 소설이었다. 사실 전부가 소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었다. 최근 몇 년간 비소설 분야도 좀 더 읽기 시작했지만, 나는 소설만 계속 읽었던 사람이다. 


때로 어떤 영화에서나 혹은 어떤 사람들이 소설을 그리고 소설을 읽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걸 종종 보아왔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언제나 생각해왔다. 소설은, 그 안에 아주 많은 이야기와 생각들을 품고 있고 그걸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걸 읽으면서 독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가져가느냐는 독자에게 달린 것이다. 소설은 한심해, 소설은 유치해, 소설은 시간낭비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불쌍하게도 소설을 읽으면서 아무것도 찾아내지도 가져가지도 못하는 사람들이고. 이거 봐봐, 마사 누스바움이 자신의 책 교만의 요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나는 이미 몇 해전에 소설에서 읽고 알고 있었다니까? 그러고보면 내가 필요한 모든건 대부분 소설에서 얻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내가 필요한 건 모두 소설이 주었다.


그렇다는건, 마사 누스바움도 이미 자신의 책 [시적 정의]에서 말한 바가 있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고 함양된 능력들이 사실 경제학 및 도덕·정치 이론 없이는 불완전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물론 이러한 능력의 함양 없이 추상적 이론은 맹목적인 것이 되기 쉽고, 동기를 부여하는 데 있어서도 무력해지기 쉽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소설 읽기의 경험은 함축적으로 인간의 어떤 활동이 가장 중요한지, 어떻게 다양한 종류의 정치적 활동이 그러한 활동을 뒷받침해주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등에 대한 성찰을 내포한다. 이는 소설이 우리로 하여금 비판적으로 사유하도록 유도한다는 뜻이다.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p.106


소설 읽기는 인간적 가치에 대한 감각을 생생하게 일깨워주며, 우리를 온전한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가치 판단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p.110


소설은 삶의 질을 평가하는 데 필요한 형태의 정보를 제공해주며, 독자로 하여금 평가를 내리는 과정에 참여하도록 이끈다. 그리하여 이는 이후의 양적인 평가에 근거한 단순화된 모델이 형성되어야 할 범위 내에서, 공적인 업무에 적합한 종류의 상상력의 틀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공적인 삶뿐만 아니라 사적인 삶에서도 그러한 평가를 현명하게 하기 위해 필수적인 상상력의 능력을 길러주면서 동시에 그 한 예를 제시한다.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p.119



나는 시적 정의를 쓴 마사 누스바움을 좋아한다. 마사 누스바움의 책이라면 다 읽어보겠다고 다짐했던 건, 그녀의 시적 정의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교만의 요새]에서는 조금 당황스럽다. 처음 '교만'에 대해 설명해주고 결국 여성을 혐오하는 일이 남성들의 교만이란 감정에서 오는 것임을 말해주는 것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바로 이게 마사 누스바움이지, 했다. 그간 읽어온 여성주의 책 번역서들 중에 가장 잘 읽히기도 했고. 

그런데 교만과 교만의 요새-여성들과 젊은 남성들이 일상적으로 학대받는 곳 p.154-에 대한 개념을 말해주는 것도 좋았고 성희롱 만연한 곳이 직업적 환경이 되는걸 짚어준 것도 좋았지만, 그 외에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뒷부분에 숱한 사례들은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겠지만 읽기가 싫더라. 게다가 마지막 결말 부분에 가면 내 불안함과 불만이 전혀 해소되지 않는데, 처음부터 시종일관 사랑을 말했던 마사 누스바움이,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과 대화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네? 정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마사 누스바움은 이렇게 숱한 사례를 직접 경험하고 듣고 알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사랑과 대화로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물론 나 역시 머리로는 안다. 동의한다.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과 깊은 대화를 한다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될 것이고 그 이해를 수반한다면 다른 태도를 기대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너 참 힘들었겠구나, 그렇지만 그건 안되는 거 아니겠니, 하는 식으로 그 다음이 진행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거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개인적으로 복수심을 가지지 말라고 하지만, 그리고 세상엔 마사 누스바움이 말하기 전부터 개인적인 복수심을 버리고 법의 처벌을 바라거나 혹은 위의 소설 속 등장인물처럼 다 잊고 눈 앞의 행복만 보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글쎄, 난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졸라 복수하고 싶고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 새끼들과 대화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화가 된다고 순간적으로 생각할 수도 잇지만 뒤돌아서면 그 놈들은 '내가 반성한 줄 알았지?' 하며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낼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성학대와 강간등의 성범죄를 저지르는 모든 놈들은 악이고, 악은 게으르고 무지함에서 온다. 물론 그건 마사 누스바움이 재차 말했듯이 환경이, 그리고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환경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고. 사랑과 화해라니, 나는 결말 부분에 크게 실망했다. 아아, 내가 원하는 건 이런게 아니야. 쎈언니들의 말이 듣고 싶다! 세상을 파스텔톤 필터 하나 더 가지고 보는 사람의 선한 글이 아니라, 쎈 언니들의 글을 보고 싶다. 성폭력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 등장할 줄 알았고 그래서 교만으로 성폭력을 데려왔을 땐 역시 마사 누스바움이야! 했는데, 막판에 사랑 대화, 이러는데 당황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요. 사실 궁극적으로는 그게 맞겠지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효용이 있을까요? 


미성년자들의 얼굴에 나체사진을 합성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친족들에게 성폭력을 가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여자들을 약먹이고 강간하는 이들에게 글쎄 .. 사랑과 대화가 뭘 어떻게 바꿔줄 수 있을까?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인간이고 구원도 인간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마사 누스바움 님.. 나보다 훨씬 인간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 선한 사람이라서 선하게 보는걸지도... 나는 아마도 마사 누스바움이 그렇게는 되지 말라고 하는, 그런 페미니스트가 될 것 같다. 정희진 쌤이 페니스트라 인정하지 않는, 그런 페미니스트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내가 페미스트가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페미니스트가 아닌 거라고 해도 나는 상관없다. 



마사 누스바움의 이 책은 선하지만, 나는 좀 실망했다.




매키넌은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간다. 대상화라는 것은 너무나도 편만해 있어서 여성들은 대상화에 둘러싸여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도 거기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매키넌은 "모든 여성들은 물고기가 물속에서 사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성적 대상화 속에 살아간다."라고 기발한 은유를 사용하여 말하는데, 이는 대상화가 여성들을 둘러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바로 그 대상화로부터 양분과 지속성을 끌어내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P41

남성과 여성의 성적 상호 관계에는 애매함과 잠재적 갈등이 따르기는 하지만 몇 가지 오해를 넘어서는 자명한 사실이 분명 존재한다. 섹스가 강요될 때의 인식 속에서 젠더 격차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젠더라는 수렁이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원치않았던 성적인 행위를 남성으로부터 강요받았다고 말하는 많은 여성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극소수의 남성만이 여성에게 강요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여성과 남성을 젠더 이슈로 몰고가는 차이점과 여성과 남성의 섹스 경험에서 나오는 상이점이 보여 주는 사실은 이것이다. 바로 두 가지 분리된 성적 세계, 그의 세계와 그녀의 세계가 다르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에드워드 라우만, Sex in America) - P51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문화는 이러한 문제들을 확대시키면서 여성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너무나도 쉽게 부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인터넷 포르노는 겉보기에도 완전 교환 가능한, 고분고분한 여성을 무수히 재현하고 그 모든 동작과 표현들은 남성의 통제감과 권력 의식을 고양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여성 재현물들에는 여성의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고, 여성은 남성의 바람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존재하며 남성의 사양에 맞춰 제작된 가짜 주체성을 띤다. 이는 분명 ‘진짜 세계‘에 여파를 미친다. 그 규모에 대해 누군가 반박할지라도(그리고 누군가는 어떤 포르노는 페미니스트에게 필요하다 주장한다 해도) 말이다." 인터넷 문화 역시 오랫동안 광고나 포르노 인쇄물 및 다른 매체들 속에서 여성을 묘사해 온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여성을 재현한다. 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는 불안할 정도로 차이가 있다. 인터넷 포르노는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 P53

(계속) 시청자가 완전히 몰두해서 그의 요구에 맞춰 줄 준비가 된, 오로지 재현된 여성만을 바라보는 세계. 오늘날 많은 남성들이 이 세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 P53

교만은 습관적으로 자신이 타인들 위에 있다는 생각과 다른사람들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각을 수반하는 특성이다. 교만에는 많은 형태가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교만의 한 가지 형태만 갖기도 한다. (인종적 교만을 보이는 사람들이라도 계급적 교만은 없을 수 있고, 그 계급적 교만 대신에 인종적 교만에 매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남자들이 미국 내 위계질서 어디에 위치해 있든 간에, 오랜 전통들은 그들에게 여성은 충분히 중요하지 않으니 깔봐도 괜찮다는 젠더적 교만을 공급해 왔다. 교만은 탐욕과 질투 같은 다른 나쁜 성질들에 부추김 당하기도 하는데, 이 다른 성질들이 교만함과 결합하면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유독해진다.
일반적으로 교만은 여성 종속의 근원이다. - P56

흄은 교만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덧붙이는데 일반적으로는 자아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 개인의 성격이나 외모, 재산과 같은 것들이다. 똑같은 성질들을 타인에 대입하거나 타인의 소유물로 상상할 때는 교만이 발현되지 않는다. 게다가 교만은 보통 평범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특유한 것이거나 적어도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려진‘ 것들에 의해 발현된다. 흄이 제시하는 이유는 교만이 대상의 내재적인 면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여기서 요점은 교만이 발생하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당신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 미지의 대상이 모두가 가진 것이라면 당신은 교만을 느끼지 못한다. 흄이 보기에 사회적 판단이란 어떤 경우에서든 내재적이기보다는 상대적인 것이고, 교만의 핵심은한 사람을 다른 사람들 위에 놓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훌륭한 만찬이 차려진 곳에 수백 명의 손님들이 와 있고 그들이 모두 기쁨을 느낄 수는 있으나 오직 그 ‘자리의 주인‘만이 교만을 느끼게 된다. - P60

(계속) 그만이 "자화자찬과 자만심이라는 부가적인 정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P60

남편들은 분명 수백 년 동안자기 부인에 대해 교만을 느껴 왔고, 그 태도 또한 여성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꾸준히 자각하는 것과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여성을 전투에서 승리해 얻을 수 있는 트로피로 여겼던 호메로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우리 역시 ‘트로피와이프‘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여성의 아름다움(혹은 아내다운 미덕)이 그녀를 ‘획득한‘ 남성의 남성성에 위신을 가져다 준다는 교만의 대상으로써 말이다. - P61

감정으로서 교만은 이미 수단화를 수반하고 있으며, 완전한 자율성과 주체성을 거부하는 경향은 물론 대상화마저 동반한다. - P61

그들 상상 속의 경쟁 목표는 사회적 지위를 향하는데,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성공한 다른 남성을 겨냥한다. 일례로, 웹사이트 오토어드밋 (AutoAdmit.com)의 경우 경쟁은 전문적인 영역에서 벌어졌지만 질투는 여성들 자체에게로 꽂혔다. 이 웹사이트는 원래 로스쿨 입학을 조언해 주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가 순식간에 포르노 사이트로 타락했다. 이 사이트에 글을 쓰는 익명의 남학생들이 여성 법학도들의 이름을 대면서 ‘창녀들‘이라고 묘사하며 포르노적인 시나리오들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단순히 높은 성취를 보인 동기들을 창녀라고 묘사함으로써 여성들에 대한 우월성을 선언한 데서 그친 게 아니라, 피해 여성들이실제로 구직을 하는 현실 세계에서도 피해를 입었다는 데에 있다. 잠재적 고용주들이 그 이야기들을 믿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미 오염되어 있었던 것이다. - P79

그 사이트는 심지어 어떻게 하면 해당 여성의 이름이 명시된 위조된 이야기를 구글 첫 페이지에 띄울 수 있는지 조언하기도 했다. 이 사이트는 강의실 내에 긴장을 조성했을 뿐 아니라(익명의 게시물을 올린 이들은 여성들의 이름과 신체적 특징까지도 알고 있었다.) 실제적인 위해를 가하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예일대학교에서 높은 성취를 보였던 두 여성은 명예훼손 및 감정적 피해로 가해자들을 고소했다. 인터넷의 익명성은 큰 장벽이었다. 연루된 많은 이들 중 세명의 남성들만이 추적되었고, 소송에 제기된 이름들은 다 가명이었다. 결국에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그 조건은 밝혀지지 않았다. - P79

많은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표현이든 승낙을 받아야 하는게 성적 열정을 삭힐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성적인 친밀감에 대한 의사 표현만큼 개인의 자율성을 드러내는 표현이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 P141

모든 주가 법정 강간으로서 미성년자와의 성관계를 금하는데, 그러한 성관계는 ‘좋다‘는 말이 있든 없든 그 자체로 위법이다. - P143

어떤 여성들은 강간으로 큰 트라우마를 얻어서 법적 정의에 호소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지만, 또 다른 이들은 직장, 친구들, 치유 과정, 혹은 그저 삶에 몰두하는 일이 법적인 투쟁보다 낫다고 느낀다. - P150

선한 남성들은 악한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종종 충격을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악인을 붙들고 말하는 것 외에 다른 방도를 전혀 모르고, 설상가상으로 그런 대화는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많은 경우, 이러면서 생각 없이 고발자의 이름을 발설한다.) 좋은 의도를 가진 남성들이 주저하는 것을 보면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유명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최선의 인간들은 확신을 잃었고, 최악의 인간들은 강렬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 P157

일터에서의 성희롱은 즉 착취적인 권력의 사용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성희롱을 어떻게 이론화하더라도 결국 성희롱은 권력 남용이다. 교만에 대한 분석대로 법정이 인식해 온 성희롱의 두 종류는 ‘대가성‘과 ‘적대적인 환경‘이다. 둘 다 비대칭적인 권력을 수반한다. ‘대가성‘ 괴롭힘에서 원고는 성적인 최후통첩을 받는다. ‘적대적인 환경‘에서는 성적 관계에 대한 압박이 얽혀 있든 업무 관계에서 보다 확산되어 있는 성애화가 얽혀 있든 간에, 원치 않는 무언가를 견뎌 내야 한다는 압박이 퍼져 있다. 두 경우 모두 여성이 실제 덫에 걸리기 전까지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우리는 알 수없다. 그녀는 폭력적인 상황을 견딘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녀의 고용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 P180

상술한 요인들을 검토하면서 고서치 판사는 성희롱을 비롯한 여러 차별에 있어서 첫 번째 요인이 되는 독자성의 중요도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고용주를 상대로 한 성희롱 건에서 승소하기 위해 고용주가 모든 여성을 혹은 대부분의 여성을 괴롭혔다는 사실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차별에 있어 자신의 성별이 주요한 요인이었다는 것, 똑같은 상황에 놓인 남성이라면 그런 식으로 대우받지 않았으리라는 것만을 드러내면 된다. 그녀와 고서치 판사는 자기 앞에 놓인 사실 관계들을 본다. 그 사실 관계들은 딱 보기에도 실질적으로도 단도직입적이다. - P194

교육과 사법 판단 모두에 있어서 술과 관련해 주의가 필요한또 다른 문제는 의식을 잃은 사람 혹은 그 직전 단계의 사람과의 섹스는 폭행이라는 의식이다. 이는 적극적 동의라는 기준에 대해 내가주장해 온 것으로,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있다 - P206

그의 수많은 농담처럼 그것이 농담이었다는사실 자체가 그에 대해 많은 것을 폭로한다. - P230

일단 유명해지면 많은 것들이 유명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돌아간다. - P276

어린 미식축구 선수들은 범죄를 저지르기 좋은 대학 스포츠 프로그램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들의 교만은 그들이 특별하다고 독려하는 다년간의 사회적 훈련과 그 교만을 더욱 악화시키는 선발 과정에 의해 증폭됐다. 그들에게 타인은 온전한 실재가 아니다. 특히나 여성은 실재하지 않는, 자신들의 자부심을 높여 주는 소품 같은 존재일 뿐이다. 윈스턴의 룸메이트인 캐셔가 잘 알지도 못하는 여성들과의 섹스 장면을 종종 영상으로 찍어서 공유했다고 했을 때,
"그건 미식축구 선수들이라면 해도 되는 그런 일"이었던 것이다.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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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9-24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390쪽에 대한 긴 답변 잘 들었습니다.
이 책은... 누스바움 언니의 얼굴처럼 너무 선했던 거 같아요. 저는 누스바움 언니 팔뚝(근육) 같은 책이길 바랐는데... 또르륵...

독서괭 2024-09-24 18:27   좋아요 0 | URL
응? 팔뚝 사진 찾아봐야겠네요 ㅋㅋ

다락방 2024-09-25 07:47   좋아요 0 | URL
네 다 맞는 말이고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해결해가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런데 그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부터 좀 착하긴 했어요. 반복적으로 착한 남자도 있다, 좋은 남자도 있다.. 라고 말하면서 모두 끌어안고 가려는 포용력과 선함...
첫부분은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 오타도 넘나 많아요..

독서괭 2024-09-24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잠자냥님이 지적하신 부분 다락방님도 같은 걸 느끼셨나보군요. 너무 착한 누스바움 언니…
전 지금 함달달도 막 밀리고 있어서 큰일입니다 ㅜㅜ

다락방 2024-09-25 07:48   좋아요 1 | URL
독서괭 님, 천천히 천천히 진행하시길 바랍니다.
이 책은 그간 여성주의 책들에 비하면 아주 잘 읽힙니다. 그러니 한 번 손에 잡으면 술술 읽게 되실거에요. 힘내세요 독서괭 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