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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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혜는 돌연 채식을 선언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육식을 하지 않기로 선언한다. 같은말인 것 같지만, '채식을 하겠어'와 '육식을 하지 않겠어'는 뉘앙스가 좀 다르다고 생각하고, 이 책의 제목이 채식주의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보다는 육식을 금하는 것에 더 방점을 둔 제목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적당한 제목은 생각이 안난다. 비육식주의자, 로는 영혜의 선언과 태도를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다. 적합하지 않다. 결국 영혜가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곧게 서있는 나무가 되고자 했던걸 보면, 육식을 금하는 것에서 나무가 되고 싶어한 그 지점에 이르기까지를 채식주의자,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영혜의 남편은 애초에 영혜를 특별히 사랑해서 결혼한 것도 아니었고, 자신은 직장에 나가서 점심과 대부분의 저녁을 해결하고 오니 영혜의 비육식 선언이 딱히 어려울 것은 없었다. 아침 한끼 식사를 채식으로 한다한들 크게 불만을 가질 것이 무언가. 그러나 다른 채식주의자들과 영혜는 다르다. 그녀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가끔 상반신을 노출하고 사람들앞에 선다. 거기에 어떤 거리낌이 없다. 회사에서 부부동반 간부모임이 있었을 때, 그녀의 이상함은 부끄러울 정도다. 차려진 좋은 음식들을 거부하기,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에 섞이지 못하기. 이건 사회인으로서의 영혜 남편을 난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은 삶의 방식을 그리고 태도를 선택한 영혜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영혜 남편은 자신의 힘으로는 아내를 자신과 같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만들 수가 없어 처갓댁 식구들의 도움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영혜의 아버지는 영혜의 입을 벌려 강제로 고기를 입에 넣고 제 뜻대로 되지 않자 영혜의 뺨을 세차게 날린다. 영혜는 제 입에 강제로 고기가 들어가자 뱉어내고 칼로 손목을 긋는다. 남편과의 이혼은 당연한 수순이다.


인혜는 화장품가게를 운영하며 경제적 책임을 지고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는 아이에 대한 돌봄도 모두 제몫으로 갖고 있다. 일요일만이라도, 자기가 부탁한 때만이라도 남편이 아이와 시간을 좀 보내기를 바라지만, 남편은 예술을 한답시고 아내의 바람을 무시한다. 돈도 안벌고 아이도 돌보지 않으면서 해내는 예술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그런 그가 처제인 영혜에게 아직도 몽고반점이 남아있다는 얘기를 듣고 침체되어있던 예술적 영감을 받아 처제의 벗은 몸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비디오로 촬영하며 작품을 완성해나간다. 옷 벗기를 더 편하게 생각했던 영혜는 이 일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잘못된건지에 대한 인식 같은건 없이 벗으라면 벗고 누우라면 눕고 외려 자신의 벗은 몸에 그려진 꽃 그림을 좋아한다. 그런 처제를 촬영하며 처제에 대한 성욕을 품고 인혜의 남편은 '오늘은 아이를 좀 봐달라'는 말에도 안된다 바쁘다를 연발한다. 밤 아홉시에 돌아와 옆집에서 아이를 찾아온 남편은 아내가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다섯살 아이 잠들었으니 자신은 또 나갔다 오겠다고 말을 한다. 인혜는 하는수없이 가게문을 닫고 아이가 잇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한숨, 체념.. 그런 인혜가 통 연락없는 영혜의 집에 음식을 들고 찾아갔을 때, 그때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영혜가 온 몸에 꽃으로 페인팅을 하고 격렬한 섹스를 하는 비디오테입을 보게 된다. 몇차례의 섹스 후 인혜의 남편은, 처제인 영혜의 옆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인혜는 정신병동에 신고한다. 여기 환자가 두 명 있어요.


그러나 남편은 정상인으로 판명되어 병원 바깥으로 나가게 되고 영혜는 오랜 입원을 하게된다. 병원에 있는 영혜를 들여다보고 병원비를 감당하는 것은, 오로지 언니 인혜의 몫이다. 정신병자인 딸을 더이상 부모는 들여다보지 않고 남동생 부부도 외면하며 애초에 영혜의 남편은 영혜를 떠나버리지 않았는가. 인혜의 남편도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알 수 없다. 인혜는 돈을 벌어 생활비도 해야 하고 동생의 병원비도 감당해야 하고 아버지 없이 혼자 자신의 아이를 돌봐야하며 가끔 동생을 보러 병원에 반찬을 싸들고 대중교통을 타고 찾아가기도 해야한다.



영어로 번역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외국인들이 읽고, 첫문장에서부터 영혜의 남편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맞다. 영혜의 남편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인혜의 남편 역시 마찬가지. 아내의 동생에게 욕정을 품는 것도 그렇지만, 그전에 이미 아내에게 경제적 책임을 지우고 노동 없이 예술한답시고 한량처럼 사는 것도 꼴보기 싫은데, 그런 주제에 아이 돌봄노동까지 나몰라라 하는 것은 그가 좋은 남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인혜의 남편도 영혜의 남편도 둘 모두, 아내에 대한 특별한 사랑은 없었다. 영혜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처형같았으면 좋았을거라 생각하고 인혜의 남편은 처제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이 좋지 않은 남자들인 둘 모두 장인어른에 대해서라면 더 안좋은 남자라고 생각을 한다.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강압적인 남자. 영혜의 고기에 대한 혐오는 영혜 본인이 꿈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그에 앞서 그 꿈을 꾸게 만든 그보다 더 오래된 기억들이 있다. 자신을 물었던 개를 학대하며 잡아 먹었던 일, 그 후로 계속 가슴 안에 뭔가 막힌 것 같아 도저히 브래지어도 할 수 없는 채로 살아왔다. 시간이 지나도 그 답답함은 나아지지 않았다. 영혜의 아버지는 영혜를 학대했고, 영혜 앞에서 영혜보다 더 약한 짐승을 학대햇고 또 그 학대를 보여주었으며 그 고기를 먹음으로써 그 학대에 참여하게 했다. 결혼후 만난 남편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아내를 못마땅해 한다. 언니의 남편은 그녀에게 예술을 하자고 해놓고 섹스를 한다. 그녀가 정신병동에서 모든 음식을 거부하고 빼빼 마르게 되기까지, 거기에는 가부장적인 문화와 남성들의 폭력이 있었다. 그 폭력이 직접적인 그녀를 향한 것이든 혹은 다른 존재를 향한 것이든. 그런 환경에서 사실 제대로 된 삶을 살아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아주 많은 여성들이 그 삶을 버티어냈다. 인혜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아버지와 그런 남편을 삶에서 계속 가지고 나가면서도 돈을 벌고 아이를 돌보는 것처럼. 대부분의 여성들은 미치지 않고서 버티어낸다. 그러니 내가 욕할 것은 가부장제이며 폭력이며 권력이며 억압일것이다. 그런데,



나는 영혜를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괴로웠다. 그게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가장 괴로워한점이다. 읽는 내내 내가 괴로운것은, 이 자매의 남편들도 한심하고 특히나 아버지는 정말 죽일놈인데, 그런데 영혜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되는거다. 이런 세상에서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린 영혜를, 아니, 뭐 어때, 내가 내 벗은 가슴에 햇볕좀 쬐겠다는데, 그게 뭐 그렇게 미친 일이야, 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그녀가 내 가까운 사람일까봐 무섭다. 내가 언니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그래 네가 미치지 않을 도리가 없지, 라며 그녀를 그냥 놔둘 수 있을까? 나 역시도 정신병원에 그녀를 입원시키지 않았을까? 고기를 안먹겠다는 영혜에게 억지로 입을 벌려 고기를 쑤셔넣는 아버지는 분명 폭력적이고 잘못되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말릴 사람이다. 그러나 영혜가 될 순 없을 뿐더러 영혜를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을 것 같은거다. 왜 안되나, 왜 영혜처럼 살면 안되나, 라고 생각을 하려다가도 영혜야 그러면 안돼,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건 내가 현실에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것일까, 하면서도 나 역시 아주 많은 부분에서 이미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일것이다. 나는 아시아에서 태어난 중년의 여성인데, 나의 이 정체성은 어떤 지점에서 분명한 약자이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또 약자가 아니기도 하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고, 모두 나랑 같은 방식으로 사는건 아니라고 아무리 수없이 되뇌어도, 그런데 영혜는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누군가를 '비정상' 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괜찮은 것인가? 이게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영혜를 비정상이라고, 내가, 생각해도 되는거야? 이 지점이 괴로웠다. 결국 그녀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이 있었을텐데, 그런데 그걸 버티어내지 못한 사람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나는, 온당한가? 옳은가? 괜찮은가? 라는 생각이 수도없이 드니까 미치겠는거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영혜로부터 튕겨져나오고, 이제 이 모든 것을 감당하는 인혜에게로 옮겨진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의사에게 표했던 재발에 대한 우려는 단지 표면적인 이유이며, 영혜를 가까이 둔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는 것을. 그애가 상기시키는 모든 것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을. 사실은, 그애를 은밀히 미워했다는 것을. 이 진창의 삶을 그녀에게 남겨두고 혼자서 경계 저편으로 건너간 동생의 정신을, 그 무책임을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을. -p.208



인혜의 삶도 힘들다. 혼자 아이를 돌보고 경제적인 것도 해결해야 하는 삶이 무겁다. 남편은 처제랑 섹스하고 도망가서 어디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물론 볼 생각도 없지만, 아이가 앞으로 자라서 제 아비가 한 일에 듣게 될텐데, 그걸 생각해도 무섭다. 이 삶이 버거워서 죽고 싶기도 하다. 죽으려고 산에 들어갔다가 죽지 못하고 나왔는데, 어린 아들을 보노라면 내가 어떻게 이 어린 것을 두고 죽을 생각을 했나 싶다. 어쩌면, 어쩌면 죽는게 삶의 모든 고통으로부터 탈출하는 길일텐데. 아이 아빠는 어차피 책임 지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잖아. 예술 하고 싶다고 예술하고 욕정 느낀다고 처제랑 섹스하고 아이 돌보기는 남일이었고. 그런데 왜 인혜는 그렇게 할 수 없나. 게다가 부모도 남편도 모두 외면한 영혜를  놓을 수도 없다. 영혜조차도 영혜를 놓았는데, 그런데 왜 언니는 영혜를 놓지 못해 삶이 더 괴로운가. 죽음은 정말 답일지도 모르는데. 모든 음식을 끊고 나무가 되고자 했던 영혜를 어쩌면 그냥 두는 것이 영혜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건 아니었을까. 고기를 안먹는 것도 제뜻대로 실천하기 어려운데, 옷을 벗고 다니는 것도 자기 뜻대로 안되는데, 죽는것만큼은 자기 뜻대로 하게 두어야 하는게 아니었을까, 인혜는 생각한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나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니 인혜는, 영혜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보고 있기 힘들고, 영혜가 시들어가는 것을 죽어가는 것을 그대로 둘 수가 없다. 영혜를 이 삶에 붙들어봤자 그것이 영혜를 행복하게 하는게 아닌데도 인혜는 영혜를 붙들고 있다. 나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살 수 없는데도 기어코 붙들고서, 그런데 너 혼자 그렇게 경계를 넘어 가버리면 그 뒷수습은 누가 지냐며 원망한다. 나는 영혜를 원망한다. 



나는 영혜를 원망하고 

나는 영혜를 원망해서, 괴롭다.



작가는 이 작품을 다 쓴 후에 이 연작들에 대해 '고통 3부작'이란 파일명으로 저장해두었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나는 작가가 말하는 고통이 무얼까 생각했다. 죽음조차 뜻대로 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고통일까, 남들과 다르게 살면 혐오를 받는 삶에 대한 고통일까, 현실에서 버텨내기 힘든데에서 오는 고통일까, 이 모든것일까. 그런데 나는, 나 스스로 어느 정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어느 정도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영혜를 , 이 책의 영혜 아닌 사람들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고통스럽다. 나 역시도 정상성에 기대어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점이 고통스럽다. 누군가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괴롭다. 작가가 지정한 파일명처럼, 이 책은 그래서 내게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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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4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1-15 0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4-11-1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혜가 부러웠어요. 억압과 폭력에 저항하니까요. 저는 용기가 없어서 못해요ㅜㅜ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는 자기 만족을 위해, 자기 뜻대로 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 짓을 하잖아요. 다락방 님 말씀처럼 정상성에 기대어 사는 거… 모두가 그런 거 같아요.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내 뜻대로 너가 했으면 하는 마음. 언제쯤 그 마음이 사라질까요.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볼 수 있을까요ㅜㅜ 아버지, 남편, 형부… 가부장의 모습들을 보니 클레어 키건의 소설 <푸른 들판을 걷다> 속 소설들이 생각났어요.

꼬마요정 2024-11-17 17:50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잘못 적었어요. 영혜는 용기가 아닌데… 멀 잘못 먹었나봐요. 읽을 때 처음엔 용기라고 생각했고 뒤로 갈수록 용기가 아니라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만큼 무너졌기 때문이라 생각해놓고 또 다 까먹고 이럽니다. 급 딴 거 하다가 화들짝 밤에 무슨 짓을 했지? 하고 들어왔네요ㅠㅠ 뇌가… 시냅스들이… 끊기나봐요. 힝

다락방 2024-11-19 07:49   좋아요 1 | URL
저는 읽다보니 영혜가 죽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제 마음대로 죽을 수라도 있게 해줘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영혜의 입장이 되어보기보다는 언니인 인혜의 입장이 되어서, 본인의 뜻이 어떻다한들 그 사람을 기어코 살려내려고 하고 싶을 것 같아요. 인혜가 했던것처럼요. 그게 맞는걸까 아닌걸까 고민도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살게 두고 싶은.. 그것은 현실에서 부담과 고통으로 다가오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다보면 어김없이 영혜가 원망스럽더라고요. 언니 좀 괴롭히지마, 하고요 ㅠㅠ

단발머리 2024-11-1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는내내 이 책이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 한강은 그만... 라고 결심했던 순간들이 다 기억나네요. 저도 다락방님과 비슷한 감상인데 저는 그걸 어떻게 적어야할지도 모르겠더라구요.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작품이기는 한데....
아, 괴롭다... 를 저도 연타로...

다락방 2024-11-19 07:52   좋아요 1 | URL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단발머리 님. 제 선택이 인혜랑 다를 것 같지 않아서 괴로웠고요, 그런데 그게 옳은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라서 괴로웠거요. 저는 읽고나서 [미 비포 유]의 윌도 생각났어요. 죽음을 원하는 당사자인 윌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거 아닌가 하면서도, 그러나 그걸 정말 막아내고 싶었던 가족들의 생각도 그렇고요. 그런데 지금 사는 내 삶이 내것이 아닌 것 같고 영 버텨낼 자신이 없다면.. 어휴, 정말이지 여러가지로 고통스러운 독서였어요. 제가 고통스러운 지점은 상당 부분이, 거의 대부분이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인혜의 입장이 되어있기 때문일 겁니다. 괴로웠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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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어서 쿠폰 사용용으로 참 좋은데
여동생은 내게 ‘언니 이거 망고 50프로만 들어갔어. 나머지 죄다 설탕인 거 알고 있지?‘ 라고 말했다.
왜, 뭐, 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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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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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가끔 과거를 떠올리며 후회하고 부끄러워한다. 

그것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아주 어린 시절이기도 하고 대학생 때이기도 하며 삼십대 이기도 하다. 내가 했던 말 혹은 내가 하지 않았던 말, 내가 했던 행동 혹은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떠올리며, 내가 그 때 왜그랬을까, 하고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데 혼자 부끄러워하고 혼자 안타까워한다. 어떤 일-혹은 말-에 대해서는 누가 혹여라도 알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크게 부끄럽다. 어떤건 심지어 죄를 지었다는 생각도 든다. 내 인생에서 그 일을 드러내어 버리고 싶다고, 도려내 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는 일이 더러 있다. 나에게, 내 인생에 그 일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일이 없는 편이 내 인생을 좀 더 깨끗하게 만들었을텐데. 그런 한편, 그러나 나에게 그렇게 감추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내가 했던 일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내가 성장한 것도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 일로 인해서, 내가 욕하는 바로 그 일을 내가 하는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인생에 확신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내가 남들을 비난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 역시도 비난당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만약 내가 이런 일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 를 묻는다면, 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젊은 시절보다 나이 들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건, 비록 나쁜일이었어도 내가 그 일을 겪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었다. 나는 그 일로 인해 평생을 수시로 고통스러워하지만, 그러나 그 일이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내가, 그런 일을 벌일 수도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내가 그것과 아주 비슷한 삶, 솔직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 사실이 나를 허물어뜨렸다. 하지만 나는 종종 그 일이 나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로 겸손해지면 그렇게 될 수 있다. 나는 살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성장하거나 더 비통해지거나,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의 결과로 나는 더 성장했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아내는 그런 사실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일어났고, 그 일은 내게 일어났다. -p.355



루시는 아주아주 가난한 어린 시절을 살았고 가족들과 다정하지도 않았다. 이례적으로 혼자 대학을 가고 도시로 나왔는데, 거기서 루시가 경험한 모든것들은 어린 시절과 다른 새로운 것이었고, 그리고 그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주는 건 그 당시 연애 상대이며 나중에 남편이 된 윌리엄이 한 일이었다. 윌리엄과 결혼했지만 윌리엄은 바람을 피웠고 이 일은 루시를 상심하게 한다. 윌리엄과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재혼해 살다가 그의 죽음으로 인해 혼자가 되었다. 글을 쓰며 가끔 전남편 윌리엄을 만나고 또 성인이 된 두 딸들을 만나 함께 쇼핑도 하고 밥을 먹고 지내는 일상 가운데 팬데믹이 일어난다. 윌리엄 역시 세번째 결혼도 이혼으로 끝나 혼자인데, 그는 루시에게 함께 뉴욕을 떠나있자고 말한다. 그들은 바닷가 앞의 집을 마련해 함께 둘이 살면서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과 새로 친구가 되기도 하고 이 격리는 언제 끝날까 고민하기도 하며 가끔은 가족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틈틈이 루시는 자신의 과거에 자신에게 있던 일을 떠올리고 지금 자신의 딸들에게 당면한 문제들을 떠올린다. 인종차별에 관한 뉴스를 보고 새로운 사람에게 우정을 느끼면서 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그녀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은 팬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지만, 그러나 그녀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재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그 사이사이 우리에겐 상실이 있을 것이며 다정함과 비난도 있을 것이다.

루시가 겪은 것도 다른 사람들이 겪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런 것들이었다. 누군가를 잃었고 이에 괴로워했으며 누군가를 새로이 알게 되어 이에 기뻐했다. 정말 기뻐, 도 루시가 한 말이지만 슬픔에 운 것도 루시가 한 일이다. 루시를 다독여주는 다정한 말도 루시가 들은 말이지만 루시가 이기적이라는 혹독한 말도 역시 루시가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것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루시라는 한 개인의 인생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이 이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 크고 작은 역사들과 역시나 크고 작은 희극과 비극으로 이루어져있고, 조금 더 나이들면 그보다 젊은 시절에 대한 안타까움과 후회를 수시로 맞닥뜨리게 되고,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르면서 상실을 겪기도 한다는 것. 루시의 인생은 사실 어느 지점에서 특별할 게 없는 보편적인 것이었고 그것이 나와 그리고 다른 독자들과 같은 것이어서 어찌보면 별 거 아닌 것 같은 이 책에 크게 감응하게 된다. 나는 몇 번 울 것 같았고 몇 번안도했는데, 그래서 재차 이런 생각을 하게된거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대체 이걸 어떻게 한거지?



그게 바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계속 읽을 수밖에 없게 하는 지점인 것 같다. 특별하고 자극적으로 쓰는게 아닌데도 등장 인물들과 같은 감정의 흐름을 갖게 하는 것.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거리두기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가능한 것 같다.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에 대해 공감할 수도 있고 사랑할 수도 있고 또 어떤 관계를 응원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작가가 등장인물에 대한 과도한 편들기나 애정표현이 없어서 그 점이 소설 읽는 나에게는 너무나 좋다. 이야기를 써나가고 풀어나가는 건 작가지만, 작가의 과도한 끼어들기가 그녀의 소설에는 없다. 후추랑 소금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조차도 몰랐던 지독한 가난이 책에 나오지만, 그 가난을 비극으로 과시하는 것도 하지 않는다. 불행이 등장인물들에게 있었어도 그것이 독자에겐 소비가 아니다. 그건 그 자체로 그 인물의 삶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도 루시가 가난한 시절을 보내온 지금은 성공한 작가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 불행에 대한 연민이 이 책을 읽는 감상이 되진 않는다. 



나의 인생이 그러하듯 루시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 지금의 루시에게 일어나는 -노화를 포함한- 일들은 그저 인생이다. 하루하루가 켜켜이 쌓여서 지금이 된 인생. 어제를 보내고 또 내일을 살게될 인생. 이렇게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할 수 없는 그런 인생. 설사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의 미래를 그렸든 그대로 진행되지는 않을 그런 인생. 그러고보니 이렇게 되었네, 하는 그런 인생. 회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기쁨만 있는 것도 아닌 인생. 어느 시점에서는 내가 경험해봤기 때문에 너에게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게 되는, 그런 인생. 그 인생은 여전히 진행중이라서, 그 다음 이야기가 나는 궁금해진다. 어느 시점에서 누구를 만나 어떤 관계를 만들고 또 어떤 일을 맞닥뜨리며 고통스러워하고 힘들어하고 또 기쁘다고 말할 수 있게 될지, 인생의 어느 시점에 누군가와 함께하게 될지, 나는 루시의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고 싶다. 그런 한편, 딸의 나이가 마흔이 되는 시점에서도 루시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니, 그 점이 참 짜릿하다. 올리브 키터리지도 일흔둘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기도 했는데, 우리가 계속해서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게 언제든 뜻밖의 관계와 뜻밖의 기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말해주어서 너무나 좋다.


잠깐 언급되는 올리브 키터리지는 이제 몸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저벨에게 매일 신문의 1면부터 끝면까지 읽어준다고 한다. 좀 더 젊은 시절의 올리브에 대해 생각하노라면, 그럴 줄은 몰랐는데. 중년의 올리브는 좀 표독스러운 것 같았는데 나이들면서 올리브 역시 뾰족한 면들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 같다. 어느 시점에서는 2월의 햇살에 감탄하기도 하니까. 그런 거, 좀 좋지 않나. 그러니까 이런거, 이런게 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잘하는 일이다. 올리브가 2월의 햇살을 좋아했던 거, 이런거, 루시는 야구장으로 저녁놀이 지는 걸 바라보며 좋아했었다. 이런 거, 이런 걸 아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라서 너무 좋다. 결국 인생에 대해 깊고 내밀하게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려면 이런 것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거 아닌가. 햇살과 노을 같은거 말이다. 그걸 보는 걸로 그치는게 아니라 가끔은 그걸 보고 감탄하는 거. 



그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보며 나도 수시로 감탄한다.

어떻게 이러지, 어떻게 한거지, 아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정말이지 너무 좋다. 너무너무 좋다. 읽다가 수시로 친구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고 싶었는데, 그러니까 '어쩜 이렇게 좋지' 하고, 그런데 아무에게도 그런 말을 하진 않았다. 계속 혼자서만, 좋다, 좋다, 했다. 



(바닷가의 루시, 너무 좋아서 원서로 읽어보고 싶어졌다.

원서 같이 읽기 진행..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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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4-11-07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어머., 저도 다락방님 리뷰 읽으며 넘 공감돼서 이랬잖아요.
정말 어찌보면 진짜 특별하지 않은 인생, 특별할 것 없는 한 순간들을 어찌 그리 잘 녹여내는지 감탄하게 되는데 이런점이 스트라우트의 매력인거 같아요.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리뷰 넘 잼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 그래서 에이미와 이저벨 빌려다 놨잖아요
다음엔 버지스 형제..
저 버지스 씨가 또 넘 궁금해지더라구요 ^^

다락방 2024-11-07 10:53   좋아요 1 | URL
으하하하 저는 에이미와 이저벨도 읽었고 버지스 형제도 읽었지롱요~ 으하하하하하하하. 번역된 건 다 읽었고 번역되지 않은건 읽지 못했습니다.. 아 너무 좋아요 진짜 ㅠㅠ

은하수 2024-11-07 11:38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요 두 권만 읽음 됩니다요~~~
또 얼마나 좋을까 싶어
두근두근~~~
근데 스트라우트 책 다 읽어버림 아쉬워서 어쩌죠????

다락방 2024-11-07 11:50   좋아요 1 | URL
작가님이 계속 소설을 써주시길 기다려봐야겠죠. 후훗. 제발 오래오래 살아서 계속계속 써주셨으면.. ㅠㅠ

잠자냥 2024-11-07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한테 문자 안 보낸 거 칭찬해요.👏👏👏🤣🤣🤣

다락방 2024-11-07 14:08   좋아요 0 | URL
흥 칫! 😒

독서괭 2024-11-07 14: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작이군요. 너무 좋습니다!
저도 루시 시리즈 얼마 전 시작해서 내이름은루시바턴 읽고 이제 무엇이든가능하다 절반쯤 읽었는데 참 좋더라고요~ 아 이걸 이렇게 풀어내나!! 이 인물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며 넘나 흥미롭게 읽게 됩니다. 스트라우트 짱이예요😍

다락방 2024-11-07 14:49   좋아요 3 | URL
진짜 읽으면서 좋다고 몇 번이나 감탄했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라서 결국 그녀의 작품에서 팬데믹을 만나게 되기도 하네요. 하아- 진짜 너무 좋습니다, 독서괭 님. 루시 를 이 이야기에서 만나니 더 좋은데, 독서괭 님, 얼른 무엇이든 가능하다 끝내고 오, 윌리엄 까지 갔다가 바닷가의 루시로 오세요, 얼른!!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24-11-07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시의 글도 좋지만 다락방님의 이 리뷰도 참 좋네요.

다른 건 모르겠고, 현재까지(오늘까지) 제가 스트라우트의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이 작품임을 다시 한 번 밝혀드리오몈ㅋㅋㅋㅋ
제가 오늘 읽은 스트라우트의 작품 속에서 두 사람이 만났거든요. 올리브랑 루시요. 너무 신기한 거 있죠. 올리브랑 루시가 진짜 존재했던 사람처럼 느껴져요. 막 나도 루시를 만나고 싶고요.

다락방 2024-11-08 07:48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님, 이 책 정말 좋네요. 단발머리 님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이 작품이라고 하시는게 이해될만큼 참 좋습니다. 저도 어제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올해의 책은 이 책인가‘ 라고 생각했어요. 아 정말 좋았습니다.
그래서 원서를 꺼내왔어요. 사실 사두고 읽지는 못할 것 같았는데 어제 집에 가서 원서를 꺼내서 두 페이지... 봤습니다. 번역서를 옆에 두고 천천히 읽어봐야겠어요. 아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새로 나온 원서 말이지요. 망고 님과 단발머리 님이 급박하게 구매하셨던 그 원서.. 저도 어제 주문 넣었습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니, 스트라우트 어떻게 이렇게 하죠, 정말? 감동 ㅠㅠ 감탄 ㅠㅠ
 
어쩌다 100km - 50대 신문기자의 트레일 러닝 이야기
임재영 지음 / 한그루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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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이 1만큼 생긴다면 내 세계는 10 이상 확장되는 것 같다.
세상에, 나는 그냥 천천히 달리기를 시작했을 뿐인데, 세상에는 산을 달리다못해 사막까지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니까?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역시 걷기 를 시작하고나서 몽블랑 트레일러닝까지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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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11-07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막까지 갈 기세!!🤣🤣

다락방 2024-11-07 09:03   좋아요 0 | URL
아뇨 사막에 가진 않을거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음.. 아마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모르겠다 미래는 예측불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출근길 지하철 -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
박경석.정창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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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권이 제대로 보장되지도 못한 존재들과 그들의 시위를 비문명적이라 말하며 매달 9백만원 이상의 월급을 받아가는 국회의원 이준석이 공존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 

심지어 그 국회의원은 국민들이 뽑았다. 누군가는 그 사람이 월급 구백만원 받아도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거지. 박경석이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서 한 행동이 뭔데? 같이 지하철 타고 출근해보자는 거였잖아. 이준석은 심지어 그것을 자신이 길에 소변보는 행위에 비유한다. 

통통하게 잘 먹고 사는 볼을 해가지고 과학고등학교와 하버드대학교를 거쳐 좋은 교육을 받아놓고-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장애인들에게 교육이란 얼마나 닿기 어려운 것인지!- 세상에 다른 속도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과학고.. 똑똑한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 아닌가요? 하버드는요? 하버드대학은 알고 있나요? 당신네 대학 졸업한 사람이 세상 부족한 것 없이 살면서 장애인들을 향한 혐오를 조장한다는 사실을? 


박경석의 말대로 다른 속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도 이 책 덕분에 그걸 깨닫게 되긴 했다. 이 나라 모든 초중고교에 무엇보다 과학고등학교에 이 책이 교과서로 쓰였으면 좋겠다. 



국민은행 009901-04-017158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모든 인용문은 전자책 발췌)

그런데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요, 이건 꼭물어봐야죠. 그렇게 당신들 일상이 소중하다면서, 이 사회를 함께 살고 있는 어떤 사람들이 그 일상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거는왜 전혀 문제가 되질 않을까요? 나는 1분이라도 막으면 시민들한테 그렇게나 미안해하는데, 왜 장애인들 그렇게 사는 거에 대해서 미안해하는 사람은 이렇게나 없는 건가. 어떤 장애인들은요, 말 그대로 이동을 할
수가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해왔어요. 학교에갈 수가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해왔죠.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까 노동도 할 수가 없지. 누가 이 무능한 사람들을 고용해서 데려다 쓰겠어. 그러니께네 이 장애인들은 출근길 지하철을 애초에 탈 수도 없고, 탈 일도 없는 거야.
그렇게 사회적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채로 시설에, 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거죠.
출근길 지하철이 1분만 지연돼도 그게 그렇게 문제라면서요. 당신들 일상 전체가 1분 늦어지는 거니까. 그런데 장애인들은 1분이뭐야, 한평생 그 일상을 누릴 수가 없어요.

23년을 외쳐도 그 가장 기본적인 시민의 권리조차 계속 지연이 되고 있는 거야. 고놈의 "좀만 기다려라", "좀만 기다려라"란 말만 맨날들어가면서.
정말이지, 이 사회에서 장애인들 평생의시간은 비장애인들 1분의 시간만큼도 가치가없는 거예요. 진짜 심각하게 불평등한 상황인거지. 그런데도 시민들에게 이런 상황이 전혀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장애인들이 이 사회에서 전혀 쓸모없는존재로 취급받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거라고 봐요.

이게 지하철행동을 통해서 드러난 이 사회의 본질이에요. 쓸모 있는 사람만 시민권열차에 태워가지고 열심히 운반하고, 쓸모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예 무정차하고서 내버려두고 떠나는 거.

그런데 그 와중에 존재감이 어마어마한사람까지 갑자기 등장을 해버리네?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였던 이준석이 대선 끝나고서[2022년 3월] 페이스북에다가 전장연을 공격하기 시작한 거야. 이야! 이런 스피커 큰 사람이 딱 나와가지고 장애인이 차별받는 현실을 본질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하나도 없으면서 대중들이 그냥 시위 방식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부추겨버리면 어떻게 하나.
당연히 이준석 덕에 지하철행동이 어마어마하게 알려지기는 했죠. 이준석이 참전한 이후에 우리 관련된 기사가 엄청나게 급증하기도 했고, 심지어 이준석이랑 JTBC에서 일대일 공개 토론까지 했잖아. 그때 토론 끝나고그 사람이 그러더라고. 대표님은 나한테 고마워하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너희는 내 덕분에 유명해져서 좋은 거 아니냐, 서로 윈윈하자는 조로 말이야. 하하. 이 말 직접 들어봐요. 엄청나게 모멸적이야.

우리가 이준석 덕분에 더유명해지긴 했는데, 역설적으로 정작 우리들목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는 사람들은 더 없어져 버리는 거야.

이준석 같은 사람은요, ‘내용‘을 파편적으로나마 좀 다루더라도 결국에는 이걸 활용해서 자기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자기 정치놀음에 이런 소수자 이슈를 먹잇감으로 삼는 잔재주가 엄청나게 능한 사람인 거야. 그러니 사실들 몇 개를 아주 교묘하게 편집을 해가지고 그냥 막 퍼뜨려 버릴 수도 있는 거지. 이사람은 자신감이 있을 거거든요. 이준석이랑우리랑은 영향력 차이가 어마어마하니까, 사람들이 사실 확인 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그냥 자기가 말하는 대로 믿어버릴 거라는 자신감 말이야.

애초에 장애인들이조금 많이 타기만 해도 대혼돈이 찾아올 정도라면 이건 지하철, 대중교통 시스템 자체에문제가 있는 거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들한테그런 태도를 취한 경찰이 문제인 건데, 그 이야긴 아무도 안 하지.

오세훈 시장이 그렇게 표현을 했는데요,
전장연은 ‘사회적 테러‘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장애인이라는 약자 지위를 이용해서 처벌도 제대로 안 받는다고요. 오세훈 시장에게 분명하게 말을 하고 싶어요. 누군가의 일상을 방해하고 그러는 게 테러라면요, 여태껏 이 국가가 장애인들에게 해온 역사는 그럼 장애인들한테 매 순간 테러였어요. 정말로요, 장애인들에게는 이 사회가 테러 그 자체예요.

노들장애학궁리소라는 데서 활동하는 고병권 선생님께서 지하철행동 50일 차쯤 됐을때, 한 칼럼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과연 장애인들이 죄 없는 시민의 발목을 잡았는가. 오히려 시민들이야말로 장애인들의 발목을잡아온 건 아닌가." 저는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을 해요.

누구는 출근길 지하철에 오르지도 못하고 있는데, 그 폭력을 묵인하고서 자기 혼자 그냥 꾸역꾸역 올라타서 출근을 하는 게 정말로 그렇게나 마냥 당당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버티면서 싸우는 거, 당연히 많이 외롭지요. 차별받는 사람들이 저항하는 존재가 된다는 변화의 과정은 숙명처럼 외로울 수밖에 없는 거더라고. 외로움이 뼈에 사무칠정도야.

시위 방식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욕을 들어먹어도요, 우리 시위에 공감한다는 응답[61퍼센트]마저도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보다는 한참 높아요,
하하.

지금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타봐요. 그때 우리 욕하던 연령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가득 차 있어요.

이 능력주의 사회에선 경쟁에서 탈락하는 순간 사실은 지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예요.

시설에 가둬두는 게 제일 정당화되는 사람들은 보통 사회가 의사 표시를 직접적으로 잘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는 발달장애인들인데요, 그 사람 의사를 다른 사람들이 잘 못 알아먹으면, 그 사람은 자유를 포기해도 된다고 봐야 하는 건가요?

탈시설 반대한다는 이준석이도 내가 당신은 다섯 명이랑 한 방에서 살고 싶냐 물어보니까 대답을 어정쩡하게 하드만. 자기도 그렇게 살기 싫은 거거든.

중증장애인들은 존재 자체가 지역사회에 나와서 살 수 없는 게 아니고요, 지역사회가 조건을 갖출 생각도 안 하면서 중증장애인들의 존재를 그렇게 낙인찍고 있을 뿐인 거예요. 사회가 문제인 걸 자꾸 장애인 개인들 존재의 문제로 바꿔버리면 안 되는 거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생산성 자체가, 능력주의나 비장애중심주의 자체가 문제인 건데, 그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하고, 나도 그래도 능력 있어요, 이런 데서 머문거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인종차별주의로 인해 커다란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 ‘시의적절한‘ 직접행동을 벌여본 적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기다려라!’라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기다려라‘라는 말은모든 흑인들이 귀가 닳도록 들어온 말입니다.
‘기다려라!‘라는 말은 거의 언제나 ‘안 돼‘를의미했습니다."( -마틴 루서 킹의 편지 재인용)

요새는 우리가 지하철행동이나 버스행동으로 유명해졌으니까, 우리가 계속 그 투쟁 방식만 사용한 줄 아는 사람도 많더라고. 그런데 아니에요. 돌이켜 보면 우리는 2001년 이동권 투쟁 때 선로에 내려가서 지하철 막고 싸우기도 했지만은, 그이후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많은 전법을 써가면서 직접행동을 해왔죠. 직접행동에서 어떤방식을 활용할 건가에는 맨날 똑같이 정해진답이란 게 없는 거거든. 그러니께네 투쟁을할 때는 언제나 정세를 열심히 읽어야 하고, 상황을 잘 읽어서 그때그때 다르게 판단을 해야 돼요. 지금은 어떤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 집중해야 하는지, 당장 뭐에 맞서 싸울것인지도 열심히 고민을 해야 하고

실제로 이준석이가 그렇게 사실 왜곡해가지고 합리적으로 잘 포장해다가 전장연 직접행동 공격해대니까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그러자마자 전장연에 대한 혐오 발언이 대중들사이에서 압도적으로 증가를 했어요.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윤석열에게 항의하다가 끌려가신 신민기란 분께서 고맙게도 이걸 트위터에다가(그때는 ‘익명의 데이터 분석가‘라는이름으로) 딱 데이터 분석 해서 올려주기도했잖아. 그거 보니까 실제로 이준석이 나타나자마자 혐오 발언이 급증했더라고. 특히 ‘에펨코리아‘ 같은 데서. 이거뿐인가? 내내 절 따라다니면서 스토킹하는 사람도 생겨나고, "너도 지하철 막지 않냐"면서 제가 가는 길 앞을막는 사람도 생겨나고. 전장연 사무실 직접와서 불 질러버리겠다고 하는 사람도 나타나고, 전장연 유튜브 영상에 "히틀러 나치가 장애인 학살 프로그램 T4 참 잘했다, 우리도 T4 같은 거 도입해야 한다" 같은 댓글도 마구달리고,

우리 전장연의 유진우라는 장애인 활동가는요, "너 다리 병신이니까, 이제 팔도 부러뜨려 줄까?" 이런 말까지 들었어요.

이렇게 성공해서 뿌듯하긴 했는데, 당장바뀌는 건 또 없데요? 그 와중에 얼마 안 있어서 또 발산역에서 장애인 한 분이 리프트 타고 내려가다가 추락해가지고 돌아가신 거야.
정말로 화가 많이 났죠. 우리 이야기 진작에 들었으면 그렇게 안 됐을 텐데. 그래서 일단 싸워야 되니까 서울시청으로 갔어. 아니, 근데 원래 거기 점거 안 하려고 했는데, 막 싸우다 보니까는 우리도 모르게 시청을 점거를 해버렸네? 그런데 뭐, 점거를 해도 효과가 없는거예요. 시청은 진짜 별로 신경도 안 쓰더라고.

이렇게 단식을 할 때는요, 그렇게 싸워도 관심도 못 받으면 그냥 놔두는 것보다 주위에서 막 싸워주는 것도 필요하거든요. 내가 정말로 죽겠다 싶었는지, 동지들이 시의회에서 이명박이가 시정 질문 응답할 때 기습시위도 하고, 결정적으로 나 단식 31일째 되는 날에 시청역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서 엄청 빡세게 싸웠어요. 2001년에 처음 철로 점거할 때하고는 수준이 달랐죠. 일흔여섯 명이 연행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빡세게 싸워서였는지, 서울시도 나 단식 38일째 되는 날에 딱 발표를 해버리더라고. 우리랑 협상하는 모양새로 보이기 싫었는지, 그냥 일방적으로다가 그러긴 했지만, 하하. 어쨌거나 2004년도까지 지하철 엘리베이터 설치하겠다, 저상버스 도입하겠다 한 거지.

성과라는 건 굉장히 중요하지만요. 곧바로 성과가 나오지 못한게 곧 실패를 의미하는 건 아닌 거예요. 실패라는 거는 오히려 우리가 기획한 직접행동, 그러니께네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우리 목소리를 사회에 알릴 기회 자체를 우리 스스로 날려먹는 거야. 힘들 거다라고 딱 단정 지어버리고서, 그 실행 자체를 시도도 하지 않는 태도 말이야.

그때 내가 이준석이한테 대놓고 말을 했어요. 우리 요구 가지고서 정책적으로 논의를 좀 해보자, 그리고 그 전에 일단 우리보고 비
문명이라고 표현을 해서 비하한 거에 대해서는 좀 사과를 해달라고. 그랬더니 이준석이가 이렇게 답을 하더라고요. "저는 지금 어떤 사람을 두고서 비문명이라고 한 게 아니에요. 그렇게 하시는 행위가 비문명이라고 한 거죠. 제가 여기 나가가지고 노상 방뇨 해봐요. 그런 게 바로 비문명이에요."
이 이야기 듣는데, 갑자기 벙찌더라고. 당연히요, 우리가 한 행동이 비문명이 맞을 수도 있어요. 사실 문명이란 게 마냥 좋은 게 아니잖아. 어차피 장애인들 다 배제하고서 만들어진 게 문명인데, 우리가 이런 거에 맞서 싸우면서 차라리 비문명이 되는 게 좋은 걸 수도 있는 거고. 그런데 이거를 노상 방뇨 따위에 비교를 하나? 그럼 우리가 여태까지 이 문명에 맞서 싸워온 거, 2001년부터 우리 존엄까지 다 버려가면서 저항해온 거는 고작해야 길거리에 오줌 싸는 수준이었던 건가.

노동자들도요, 대부분은자기 이익이랑 직접적으로 상관없어 보이는 노동자 투쟁에는 웬만해서는 참여하지 않아요. 같은 노동자더라도 당장의 자기 생존 문제랑 직결된 거 아니면 서로가 서로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거야. 노동자들끼리도 그 지경인데, 이 사람들이 자기랑 관계없어 보이는 소수자들 싸움에 직접 참여하려 하겠어요? 뭐노동자들 중에 일부 소수자 정체성 가진 사람들은 안 그러겠지만, 이런 사람들은 수적으로보면 사실 소수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요, 그런 사안들을 마주하게 되면 그냥 관객으로만 남아 있으려고 해요. 그게 좋잖아. 피곤할 일도 없고. 관심 생기면 좀 지켜보다가 재미없으면 언제든 관심 꺼버리면 되고.

장애인에 대한 무감각은 진짜 말 그대로 장애인이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서 그런 거예요. 사실은 우리 주변 곳곳에있는데, 완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게 만드니까 아예 신경도 안 쓰게 되는 거지. 감각한다고 해봐야 기껏해야 동정과 시혜를 발휘할 대상쯤으로만 감각하는 거 아닌가?
제가 정확하게 말을 할 수 있는데요, 이런 거는 동정과 시혜 베푸는 사람들한테나 따뜻함의 감각을 줄 뿐이지, 장애인의 존재와 목소리 자체를 감각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고 보면 장애를 입기 전부터 나는 어떤 무감각 상태에 계속 빠져 있었던 건지도 몰라요. 하반신에 찾아온 무감각 말고,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떤 존재들에 대한 무감각 말이야.

나는 부족하나마 현미경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려고 노력을 하면서, 나랑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면서 이 세상에 ‘다른 속도‘라는 것이 있구나, 라는 거를 매일같이 새롭게 깨달아가고 있어요.

소수자들의 투쟁이라는 거는 결국 이 세상에서 제대로 감각되지 않던 존재들을 이 세상이 감각할 수 있게끔 드러내는 과정이잖아.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고, 존엄한 존재라는 거를 재확인하는 과정인 거지. 이 사람들이 딱 하고 이 사회에 드러나게 되면은 이 사회에 통
용되는 기준이라는 게 얼마나 누군가를 배제하고 만들어져 왔는지가 아주 명확하게 보이는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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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4-11-04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다시 봤습니다.. (잘못 복붙하셨나 했...)

중간에 박준석이라는 오타가 보여서 신고하고 정독 갑니다.

다락방 2024-11-04 11:55   좋아요 1 | URL
박준석........... 어쩔;;
수정했습니다. 고맙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4-11-04 17:38   좋아요 1 | URL
이름조차 제대로 알고 싶지 않은 무의식의 반영

다락방 2024-11-04 18:29   좋아요 1 | URL
저능 이준석 진짜 너무 싫어요!!

햇살과함께 2024-11-04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계좌번호 좋아요~ 저도 이 책 빨리 읽어야 하는데요~

다락방 2024-11-05 10:33   좋아요 1 | URL
책의 마지막에 추천의 말이 있거든요. 정보라 작가가 계좌번호를 적어주었습니다!!

단발머리 2024-11-05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소개 들어가서 보고 왔는데, 정보라 작가의 추천사가 절절하네요 ㅠㅠㅠㅠㅠㅠ
한국어 아는 사람이면 이 책 다 읽어달라고........ 저도 찾아서 읽어볼게요!!

다락방 2024-11-05 11:15   좋아요 2 | URL
저는 전자책으로 읽었어요.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어 아는 사람이면 이 책 다 읽어야 하고 이 책은 교과서에 실려야 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