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 콜!론!타!이!
















콜론타이는 성적 욕망의 자연스러운 성격을 인정하는데, 전제로 가져오는 것이 베벨의 성적 욕구에 대한 사상이다.



베벨은 『여성과 사회주의』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이 가진 모든 자연적 충동(Naturtrieb)가운데,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식욕을 제외한다면 성적 충동(Geschlechtstrieb)이 가장 강력하다. 종족보존의 충동은 "삶을 향한 의지"의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 이 충동은 정상적으로 발달한 익나존재라면 누구에게나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를 충족시키는 것이 신체적 정신적 복지를 위해 불가결하다." 베벨은 성욕을 죄악시하는 기독교 교회의 전통에 맞서 그것의 자연스러운 성격을 인정했다. (p.248-249)



콜론타이에 앞서 이 책에 실린 베벨에 대해서도 읽었었지만, 이 부분을 읽고서야 갑자기


베벨? 성적자유? 그렇다면..... 그 암소??


이렇게 떠올리게 되었는데, 오래전에 내가 페이퍼로 베벨이 암소의 교미장면 보고 여자사람친구와 나눴던 대화를 올린 게 생각난거다. 그거 베벨 아니었나? 그래서 그걸 확인하려고 하는데, 대체 그 책이 어떤 책이었는지 생각이 안나. 자본주의 넣어서 검색하고 경제 넣어서 검색하고 베벨 넣어서 검색하다가, 아아, 드디어 찾았다. 이 책의 이 구절이었다.






사춘기 시절 이야기를 하시니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생각나는데요. 베블런이 10대 중반 농장에서 자라던 시절에 동네 친구인 여자아이와 함께 소떼를 돌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황소 한 마리와 암소 한 마리가 갑자기 격렬한 사랑을 나누는 광경을 보고 마음이 뜨거워졌나 봅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동네 여자친구에게 ˝저걸 보니 한번 해보고 싶어지지 않니?˝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여자친구가 ˝하고 싶으면 해. 저거 너희 집 소잖아.˝ 라고 대답했다고 하네요. 이게 좌절이라면 좌절인데, 이런 실패를 겪으면서 후에 반성하고 분발해서 여성편력을 쌓아가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소스타인 베블런, p,340)





하하하하하하하하 베벨이 아니라 베블런이었구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베벨, 베블럿, 뭐 헷갈릴만하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니 그러니까 성적욕망 자연스러운 것..이런 거 얘기하니까 갑자기 소 생각 났잖아.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고 싶으면 해, 저거 너희 집 소잖아.



물론, 소랑 하면 안됩니다, 베블런이여... 베벨도 마찬가지. 그냥 인간 남자들아, 소랑 하면 안된다. 소는 너에게 동의를 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케?

소를 강간하지 마시오.

모든 동물을 강간하지 마시오.



어제, 최근에 인기였던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의 짧은 영상을 보았다.

극중 송가경(전혜진)은 재벌집 며느리인데, 시어머니의 종처럼 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그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남편인 오진우(지승현)와 이혼을 하게 되는데, 당장 시어머니의 집에서 나오니 갈 데가 없는거라. 남편은 자신이 가끔 들렀던 집에 그녀를 데려가서는 당분간 여기서 지내라고 말했다. 이 집에는 나와 가끔 일 봐주는 도우미 아주머니만 들어올 수 있었다, 라고 하면서. 송가경은 남편에게 '집을 구할때까지만' 여기 있겠다고 한다. 그러자 남편은 '내가 나갈테니 너가 여기서 지내' 라고 말한다. 불행과 고통이 가득한 결혼생활을 둘이 함께 살았던지라, 송가경은 남편에게 '너에게 위자료 받을 생각 없다'고 말하는데, 남편은 이것은 처음부터 너 주고 싶어서 산 거였고, 이만큼은 하게 해달라, 고 말하는 거다. 그렇게 모든 살림이 갖춰진 좋은 아파트를 송가경은 남편으로부터 받는다.


물론 송가경이 그간 살아온 그 종같은, 노예 같은 삶에 있어서 그 집 하나로 퉁쳐질 수 있겠느냐마는, 위자료는 그녀를 종처럼 부렸던 시어머니에게 받을 것이고, 그간 자신을 물질적으로 지원해줬던 남편에게 또 이렇게 집을 받게 되다니, 와, 역시 부자란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자 남자라면 집을 사두고서 '어차피 너 주려고 샀어'가 되는 거였냐.... 대박...... 나는 내 돈으로 작은, 아주 작은 집을 사두었고, 그마저도 대출금 갚느라 허덕였었는데... 인생......


왜 나에게는 부자 남친이 없었나. 어째서 나는 간신히 자기 입에 풀칠 할 수 있는 남자들과만 연애했나. 그것은, 나 역시 그러한 사람이기 때문인가. 물질적으로 풍부한 사람이 물질적으로 나를 지원해준다는 것은 대체 어떤 기분일까.


일전에 칠봉이와 연애하던 시절에 칠봉이는 가끔 주식투자를 했는데, 어느 날은 크게 이익을 봤다며, '너 이제 고생은 그만하고 쓰고 싶은 글이나 쓰면서 살아' 라고 했었더랬다. 그 달콤한 말에 취한지 며칠도 안되어 칠봉이는 크게 손해를 봤다며, '너 계속 회사 다니면서 돈 벌어야겠다' 라고 했었지... 이것이 현실의 연애 아니던가. 대체 경제적 지원이란 무엇인가, 그게 가능하긴 한것인가. 내 살아생전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인가... 엥겔스가 마르크스에게 그러했듯이.....




절친한 친구이자 그 이상이었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상적 동료이자 혁명동지였고, 문필가와 스폰서의 관계였다. 엥겔스는 매우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스폰서여서 마르크스의 저술과 사상, 혁명이론의 확립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쏟아 부었을 뿐 아니라, 혁명이론의 확산에 누를 끼칠만한 마르크스의 약점들이 적대세력에 의해 이용되지 않도록 온몸을 던져 희생했다. 마르크스에 대한 엥겔스의 희생적인 태도는 오랫동안 일종의 '불가사의'로서, 또는 '혁명적 동지애'로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지만, 엥겔스를 마르크스 사상의 성실한 스폰서로 이해한다면 그렇게 불가사의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엥겔스는 자신의 꿈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직접 수행할 수 없었던 작업을 마르크스에게 위임했고 마르크스가 그것을 잘 해내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격려했으며, 대화와 조언뿐 아니라 독촉도 하고, 적대세력을 제거해주기도 했다. (p.184)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지는 않았어도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후원했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알정도로 유명한 일인데, 어제 이 책을 읽으면서 아 또 진심 부러웠다. 나도 누군가 후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가족들 역시 돌보고 후원했으며, 심지어 마르크스가 가사도우미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입적하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대체..뭐하는 인물이여... 돈도 엥겔스가 줘, 가사도우미랑 아이 낳고 책임도 안져... (절레절레)


물질적인 지원도 지원이지만, 적대세력을 제거해주기까지 하다니... 와... 이건 진짜 짱이잖아. 적대세력은 어떻게 제거했지? 아무튼 적대세력 제거라니, 너무 대단한 것이다. 대체 이렇게 적대세력까지 제거해줄 사람이 세상에 어디있나. 내 주변에는 나를 대신해 나의 적대세력을 물리쳐줄 사람이 누가 있나... 없다. 나는 혼자다. 나는 오로지 나 혼자 싸워야해.



물질적인 후원 너무 부럽다. 물론 적대세력 제거도 너무 부럽고. 그러나 내가 일전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보고도 얘기했듯이, 후원만 받고 사는 것으로 인생에 만족하고 있으면 안된다. 물질적 지원은 누구나 받을 수 없는, 아주 운 좋은 케이스의 일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내 평생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반드시 명심해야 해. 아나스타샤가 반드시 자신의 일을 찾아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레이만 보고 있으면 안돼. 사랑이란 감정도 있다 없어지기도 하고 또 대상이 옮겨지기도 한다. 돈이란 것 역시 있다가 없어지기도 해. 칠봉이를 봐라. 오늘은 나더러 글만 쓰라고 해놓고 다음날엔 나더러 돈벌라고 하잖아? 우리는 타인의 지원을 받는다면 감사하며 잘 받아야겠지만, 그러나 내가 독립적으로 돈을 벌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레이가 옷장에 옷 가득 쌓아두고 아무거나 골라 입어, 라고 하면 오 땡큐 하고 골라입으면 즐겁겠지만, 그러나 내가 내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어느날 그레이가 다른 여자에게 옷을 선물할지도 모르고 그레이가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 그레이가 사기를 당해서 돈이 없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내게 있는 것은 오직 그레이의 지원 뿐이었다면, 나 역시 그레이랑 같이 진창으로 빠지는 것이여. 내가 그레이에게 구속되지 않고, 그레이가 나를 쥐고 휘두를 힘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레이에게 권력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 돈을 벌어야 한다, 아나스타샤여... 그래서 그레이가 빡치게 하면, 두려움 없이, 겁냄 없이, 이 새끼야 헤어지자, 하고 뒤돌아 뚜벅뚜벅 힘차게 걸어나올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 말고는 다른 사람을 믿어서는 안된다. 돈을 믿어서도 안돼.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고 사람은 누구나 변심할 수 있어. 인간은 불완전하며 불안정한 존재이므로 지원 받는 것에서 만족해 이대로 스톱하지 말고, 자기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돈을 벌자!! 내가 쓸 돈은 내가 벌고, 저축도 하고!!!!!!!!!! 그레이 따위 애초에 나에게 없어도 내가 먹고살 수 있도록!!!!!!!!!!!!!!!!!!! 그러다 물심양면 지원해줄게 하는 그레이가 나타나면 즐겁게 지원을 받되, 내가 내 돈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여. 능력이 있어야 한다. 외국어를 하자, 외국어를!!



외국어..

나의 풀지 못할 숙제.... 쓰읍-




어제는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물심양면 지원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읽으면서 개부러웠다. 하아- 나는 책 5만원어치 사면서 중고 하나 끼워넣으려고 애쓰고(마일리지 2천점), 쿠폰 쓰려고 하는데, 며칠전에 한 박스 샀으니까 오늘 한 박스 사고 싶은 거 꾹 참고 여기서 한 권, 저기서 한 권... 이렇게 주문하는데, 그런데 엥겔스같은 친구 있으면, 지승현 같은 전남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장바구니 다 털어줄게, 할 수 있을텐데........ 나한테 악플달리면 다 제거해주고...........  하아- 그렇제만 엥겔스는 죽었고 송가경도 지승현의 지원을 계속 받는 대신 사라지는 걸 택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가야할 곳, 추구해야 할 것은, 내 스스로 당당히 내 능력을 발휘해 돈을 버는 것이야.




내가 믿을 건 나 뿐이다!!!!!


나는 오늘 내가 번 돈으로 짜장면을 사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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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론타이..아 콜론타이여... 진짜 세상 멋지다. 아 콜론타이. 콜론타이 부분이 유독 양이 많아, 마지막으로 읽을 차례였는데 으으, 내가 읽을 수 있을 것인가... 걱정했지만, 아아, 세상 흥분되는 멋진 콜론타이여서 막 엄청 의욕 생겨서 읽었다. 와. 세상 멋진 콜론타이야... 이 책,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읽으면서 더 알고 싶어진 작가가 생기긴 했지만, 아아, 콜론타이가 그중 으뜸이다. 최고다. 짱이다. 자, 우리 콜론타이가 얼마나 멋진지, 내가 왜 흥분했는지, 차근차근 보도록 하자.




콜론타이는 러시아어 외에 독일어, 영어, 스웨덴어 등 여러 언어로 활발하게 글을 썼기에 그녀의 글은 일찍부터 러시아 바깥에 알려졌다. 그런 데다 귀족출신인 그녀는 볼셰비키 혁명 직후 유일한 여성각료였고, 열일곱살 연하의 농민출신 동료 각료 드이벤코(Pravel Dybenko, 1889-1938)와 결혼했다가 헤어졌으며,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 반대와 노동자 반대파 활동으로 레닌과 정면으로 대립하였고, 그 후 세계 최초의 여성대사가 된 것 등등으로 수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킨 '뉴스메이커'의 한 사람이었다. 소련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었던 그녀의 삶과 활동의 다양한 면모를 살피는 글들은 그녀의 생존 당시부터 발표되었다.

그러한 콜론타이의 여러 모습 가운데 변함없이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성 혁명의 제창자, 부르주아 가족의 비판자이자 새로운 도덕의 제창자로서의 면모였다. (p.227)



자기 자신이 귀족 출신이면서 부르주아를 비판하는 쪽에 선 사람이 콜론타이다. 내가 할 줄 아는 언어는 나의 모국어가 유일한데, 콜론타이는 독일어, 영어, 스웨덴어를 했단다. 나중에는 노르웨이에 외교대사로도 가있게 된다. 와. 그렇게 외국어를 하게 되니 그녀의 글이 러시아 바깥에 알려지는 건 너무 당연한 거 아닐까. 나도 외국어를 익힌다면 독서공감...이 외국에 알려지게 될까?


(미안합니다)


여러분, 외국어를 공부합시다. 외국어를 공부하세요. (일단 나부터...)



콜론타이는 여성주의를 거부하고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여성문제'를 말했다. 그러나 그녀가 거부한 것은 좁은 의미의 여성주의, 곧 참정권운동 위주의 여성주의였지 여성의 해방을 위한 노력 자체는 결코 아니었다. 콜론타이는 여성의 지위나 상태, 여성의 삶이 사회경제 체제의 변화에 의해 자동적으로 변화된다는 결정론적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실제로는 여성문제의 독자적 성격을 인식하고 있었다. (p.241)



그녀는 스스로를 여성주의자라 칭하지도 않았고 또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여성문제를 보았기 때문에 여성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사회, 노동자 대우가 바뀌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라고 해서 여성문제를 인식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인식하게 되었지. 그렇게 그녀는 「신여성」(Novaia Zhenshchina)이라는 글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는 문학작품속 여성인물들을 살펴보고 쓴 글이라 한다.



'신여성'이란 종래의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지배체제를 거부하고 독립적인 삶을 선택하는 여성이다. "신여성이란 누구인가? …… 이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전적으로 새로운 '다섯 번째' 유형의 여주인공들로서 삶에 대한 독립적 요구를 가지고 자신의 개성을 주장하며, 국가, 가족, 사회 내 여성의 보편적 예속에 맞서서 저항하며 여성이라는 성의 대표자로서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여주인공들이다. 점점 더 자주 이 유형을 결정짓는 존재로 등장하고 있는 이는 독신녀들이다. …… 독신녀는 이 같은 예속적 역할을 하기를 그쳤고 더 이상 남자의 반영물이기를 그만두었다. 그녀는 일반적 인간적 관심사로 가득한 독특한 내적 세계를 가지고 있으며, 내적으로 독립적이고 외적으로 자립적이다." (p.241-242)



아아, 독신녀 만세다. 내적으로 독립적이고 외적으로 자립적인 것도 그렇지만, 남자의 반영물이기를 그만두고자 하는 여성에 대해 살펴보고 알고 글로 써내다니. 그녀가 살펴본 독신녀, 신여성은 지금의 비혼을 외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과 같구나. 언제나 최전방에서 깨닫고 몸소 행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시대의 가장 젊은 여성들이었고.



콜론타이가 말하는 신여성에 대해 좀 더 들어보자.



이들은 사랑을 할 능력이 있고 자신의 내면에서 원할 때는 사랑에 정열을 불태우기도 하지만, 결코 사랑에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며 학문이건 사회주의 선전선동이건 자신의 일을 하며 거친 운명에 당당하게 맞서는 여성들이다. (p.242)




아아..이것은 내가 아닌가. 나를 말하는 게 아닌가. 나다, 나야! 1920년대에 콜론타이가 내 얘기를 하고 있다. 나를 보고 있었어!! 꺅 >.<

나야, 나. 자신의 내면에서 원할 때는 사랑에 정열을 불태우기도 하지만, 이라니. 맞다, 내가 그렇다! 내가 원할 때는 세상 뜨거운 여자가 되어 사랑에 정열을 불태우지. 사랑과 정열을 그대에게!! 그렇지만 사랑에 결코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나니까..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세상 중요하다. 학문이건 .... 거친 운명에 당당하게 맞서는 여성들... 이라니. 나다! 이렇게 몇 개월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있지 않나. 나다, 콜론타이가 신여성이라고 칭하는 건 나야!! 물론 콜론타이가 생각하는 여성보다는 내가 좀.. 나이가 많긴 하겠지만. 그래도 나다!!




그런 콜론타이가 직접 소설을 쓰기도 했다. 이 책에는 그녀가 쓴 소설들의 줄거리가 간략하게 나와있는데, 와, 너무나 흥미진진한 거다. 너무 읽고 싶어! 그래서 검색해보았다.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있는지. 목차를 살펴보니, 이 책이 소개한 제목과는 달랐지만, 줄거리를 읽어보니 이 책에 언급됐던, 내가 읽고 싶었던 작품들이 실려있다. 사겠어!

내가 사고자 하는 건 《위대한 사랑》이다. 아아, 얼마나 재미있을까. 어제 책 주문했는데 오늘 또 주문해야겠네. 그래야 휴가 때 읽지. 아아아아. 언제나 지금 당장 가장 읽고 싶은 책은 집에 없는 책... -0-



















이 책에 언급된 소설의 줄거리 소개하는 중에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바로 이 구절.




결국 바실리사는 남편이 상대 여성인 니나를 사랑하고 있고 니나도 남편에게 감정적으로 절대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 후 남편을 떠난다. 자기는 남편 없이도 살 수 있지만 니나에게는 그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p.253)




아아, 나는 저런 마음이 뭔지 너무 잘 알겠고, 그래서 콜론타이가 쓴 소설이 너무 궁금해지는 것이다. 저런 등장인물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그런 소설을 쓴 것이다, 콜론타이는!! 멋져... ♡.♡

이렇게 사람 흥분시키는 콜론타이를 알게 되다니, 이 책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읽기를 너무 잘한 것 같다. ㅠㅠ




콜론타이는 신여성을 관찰하고 그들의 특징을 글로 써냈지만, 자기 자신이 그 젊은 여성과는 달랐다는 것을 안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는 것. 오슬로 주재 러시아 대사로 임명되었을 때 그녀는 그것이 자신이 혼자 한 일이 아니라 여성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걸 보여준 거라고 말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했다면 이를 본디 가능하게 해준 것은 나의 개인적 자질이 아니다. 나의 성취는 차라리, 여성도 결국은 이미 보편적 인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 상징일 뿐이다. (p.273)



그리고 위에 언급한것처럼, 자신의 한계를 밝히며 새로운 세대에게 희망을 건다.



콜론타이는 미래를 향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는 구세대 여성이어서 구식 낭만적 사랑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였으며 이 때문에 무익하게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한 적도 많았으나 젊은 세대의 새로운 여성들은 이 한계를 넘어서서 일과 사랑을 조화롭게 결합시키며,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p.273)



콜론타이 한 개인으로 이루어낸 것이 대단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말한다. 많이 알고 익히는 사람일수록 내가 얼마나 모르는가를 알게 되는 것처럼, 하고자 한 게 많았던 사람일수록 자신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알게되는 것 같다. 콜론타이는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다 했지만, 와, 내가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콜론타이는 진짜 세상 멋지다. 이 책 읽으면서 가장 멋있고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다. 얼른 그녀가 쓴 소설을 읽고 싶다. 아아 너무 근사해 진짜 ㅠㅠ 콜론타이, 진짜 내 타입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이 책에 대한 페이퍼 쓰면서 엥겔스 얘기도 하려고 했는데(따로 쓰겠다는 얘기다), 콜론타이에게 그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 페이퍼는 오로지 콜론타이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걸로 하겠다. 엣헴.



콜론타이 만세 만세 만만세!!


혁명 직후 러시아에서는 성매매가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는데, 그녀는 여성들이 직업적으로 성매매를 하기보다는 생계 보완을 위해 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라고 보았다. 콜론타이는 성매매로 인해 성병이 퍼지고, 성매매는 공산주의의 도덕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매춘에 반대하는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그녀가 성매매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이란 기본적으로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 있었다. - P249

그녀는 나아가 이 젊은 소녀의 절박한 경제적 처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충족시키고 쾌락을 누리고자한 자기 남편에게 적대감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자매들」소개 中- P257

그녀가 보기에 여성들 사이에는 적대감이 생길 이유가 없었다. 책임이 있다면 성매매 여성이 아니라 가난에 있는 것이며, 이를 이용하는 남성에게 있는 것이다. -「자매들」소개 中- P257

이처럼 『일벌의 사랑』에 수록된 세 작품에서 주요 여성 등장인물들은 모두 남성에 대한 사랑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동지애를 추구하며, 사랑에서 자신의 경쟁자였던 다른 여성에 대해서도 결국 질투심 대신 연대 의식을 느끼고 협력할 것을 다짐한다. 노동계급에 속하는 그녀들은 어려운 사정을 다른 여성동료에게 터놓고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며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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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 내가 믿을 건 나 뿐
    from 마지막 키스 2019-07-30 12:11 
    콜론타이는 성적 욕망의 자연스러운 성격을 인정하는데, 전제로 가져오는 것이 베벨의 성적 욕구에 대한 사상이다. 베벨은 『여성과 사회주의』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이 가진 모든 자연적 충동(Naturtrieb)가운데,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식욕을 제외한다면 성적 충동(Geschlechtstrieb)이 가장 강력하다. 종족보존의 충동은 "삶을 향한 의지"의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 이 충동은 정상적으로 발달한 익나존재라면 누구에게나 깊숙이 뿌리내리고
 
 
단발머리 2019-07-3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콜론타이 챕터 2쪽 읽다가 책에 물이 조금 묻은 관계로 (책 읽는 곳이 식탁ㅠㅠ) 현재 수선 중에 있습니다.
다락방님의 콜론타이 애정이 저희집까지 그대로 전해지네요.

콜론타이가 말했던, 콜론타이가 예언했던 신여성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시대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아닐까 싶어요.
경제적 독립과 인식의 변화가 신여성들의 확산을 가능케 한 것 같아요.
물론 그 바탕에는 콜론타이와 같은 천재 여성들의 용기와 결단이 있겠지만요.
축하드립니다, 다락방님~~~~~
다락방님이야말로 콜론타이 예언의 실현 그 자체에요. 콜론타이 만세, 만만세!!

다락방 2019-07-30 12:39   좋아요 0 | URL
콜론타이 책 질렀다가 취소했어요. 베티 프리단 책하고 같이 주문하려고요. 진짜 인생 만세야. 콜론타이를 알게 되다니. 아아, 똑똑하고 멋진 여성을 알게 되었을 때 흥분하는 거 너무 좋아요. 온 몸에서 에너지가 나옵니다. 오늘은 짜장면 곱백 먹을거에요. 빠샤!


책읽기는 너무 좋아요, 단발머리님. 몰랐던 거 알게 되는 것도 좋고 읽고난 후에 여러가지 생각들로 뻗어갈 수 있어서 좋고요. 게다가 같은 책을 읽으면 이렇게 대화도 할 수 있어요. 책을 사랑하고 독후활동을 사랑하고 단발머리님을 사랑합니다. 만세!!

공쟝쟝 2019-08-03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한 콜론타이, 그를 알아보는 다락방님! 그녀의 글들을 몰아 읽고 있는 나!! ㅋㅋ 아 뜨거움이 전해져용~~~ ☺️☺️

공쟝쟝 2019-08-0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론타이 좋아하시니 락방님께 추천하고 싶은 인물 1 조선의 콜론타이 ‘허정숙’ ㅡ 제가 작년에 강연들었는 데 진짜 걸출한 혁명가구요, 볼셰비크 당원이었던 김알렉산드라도 한번 검색해보셔요!! ㅋㅋ 조선의 사회주의자 여성들 진짜 멋집니다.
그리고 이 책에도 잠깐 나오는데요, 콜론타이와 함께 사회주의 여성정책 만들었던 ‘이네사 아르만드’요. 밀에게 헤리엇이 있었다면 레닌에겐 아르만드가 있었다죠. 물론 여러모로 지워져버린 여성이지만. 콜론타이 좋아해주셔서 제가 다 감사하네요. 전 사회주의 여성혁명가들을 정말 존경하고 좋아했더랍니당💪
 















'존 스튜어트 밀'에 대한 부분을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읽었다. 이 책에 실린 저자들중 몇 안되는 남성인데, 그를 다룬 꼭지의 앞부분에는 그가 '빅토리아 시대 여성운동의 절정기를 이끈 지도자' 라고 되어있다. 그가 썼다는 책 《자유론》과 《여성의 종속》은 물론 일찍부터 사두었지만, 다른 많은 책들이 그러한 것처럼 아직 읽지는 않았...으니 이 책으로 예습을 해보자. 그러니까, 밀은 여성의 종속을 왜 썼고, 어떻게 쓸 수 있었으며, 어쩌다가 여성운동의 절정기를 이끈 지도자가 되었나. 남성이란 성별로서.


페미니스트를 지지하거나 혹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남성들이 있어왔다는 걸 알고 또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성'으로 태어나서 온전하게, '스스로'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은 가능한가. 밀이 다른 남성들과는 달리 이렇게 여성운동에 앞장설 수 있었던 동력은 어디 있었을까. 이 책을 읽노라면 그가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본젹적으로 여성의 종속을 써낼 수 있었던 것은 '해리엇 테일러'라는 여성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언급된다. 오, 나는 그가 여성의 종속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가 그걸 써내는 배경에 다른 '여성'이 있었던 줄은 몰랐던 터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1830년 스물다섯 살의 밀은 존 테일러의 부인인 스물세 살의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 1807-~58) 를 만나 첫눈에 "깊고 강한 감정, 투철하고 직관적인 지성, 그리고 남달리 명상적이고 시적인 성품을 가진 여성"임을 알아본다. 밀과 해리엇의 우정은 이십 년 동안 유지되었고, 결국 존 테일러가 죽은 지 2년이 흐른 1851년에 (밀의 가족의 반대를 감수한 채)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생활은 1858년 해리엇의 죽음으로 마감된다. 이듬해 밀은 해리엇과 함께 저술해왔고 마지막 교정까지 함께 보려고 준비해두었던 원고를 정리해서 발표하는데, 이것이 『자유론』이다. 이 책의 첫머리에서 밀은 영혼의 반려자였던 해리엇을 기리며 "진리와 정의에 대한 높은 식견과 고매한 감정으로 나를 한없이 감화시켰던 사람, 칭찬 한마디로 나를 무척이나 기쁘게 해주었던 사람, 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녀의 영감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그런 글을 나와 같이 쓴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 함께했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그 비통했던 순간을 그리며 나의 친구이자 아내였던 바로 그 사람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애정 어린 헌사를 남긴다. (p.89-90)



자유론을 먼저 쓰고 나중에 여성의 종속을 쓰게 되는데, 그러니까 그는 스물다섯에 알게된 여성과 깊은 우정을 유지하면서 생각과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는 거다. 그가 저런 헌사를 남길만큼 그녀의 영향력이 대단했던 바, 물론 밀이 원래 가진 여성에 대한 생각이 있었겠지만, 그것이 해리엇과의 대화들로 인해 팡팡 터지면서 화악 열린 것 같다. 밀은 그러니까 지금도 찾아보기 힘든, 보기 드문 개념남이지만, 그 혼자 스스로 개념남이 되었다기 보다는 단단한 조력자가 있었던 셈.




여성참정권을 핵심적인 의제로 삼고 밀고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여성의 종속』이 생생하게 웅변하는 바, 평등이 인간의 자유로운 삶에 필수적이라는 평생의 신념에서 나왔다. 이는 걸출한 여성 해리엇을 흠모한 영민한 청년 밀의 순수한 열정에서 싹텄고, 사회개혁이 진정으로 자유를 향유할 줄 아는 평등한 개인들에 의해 완성될 수밖에 없으리라고 믿으면서 그녀와 함께 『자유론』을 집필했던 원숙한 사상가 밀의 통찰에서 발전되어 온 것이다. 1860년대 말 영국의 여성참정권운동은 밀의 자유주의 사상 그리고 그것의 완성에 영감의 원천을 제공한 해리엇 테일러라는 탁월한 여성에게 철학적 원리를 빚진 셈이다. (p.93)




밀의 여성의 종속, 자유론에 대한 내용도 궁금해졌지만 해리엇과의 관계가 너무 흥미로웠다. 혹시 이것만 다룬 책이 따로 있을까? 해리엇이 지성을 가진 여성이었다는 것도 흥미롭고 다른 남자의 아내였다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밀이 그런 여성임을 알아보았다는 것도 그렇고. 그가 해리엇을 한눈에 알아보았는데 그것이 지성이나 감성 때문이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지성과 감성에 반하는 사람들을 보는 게 너무 좋다. 지성과 감성에 반하는 사람들은, 그 지성과 감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그렇게 변화될 수 있다는 것도 뜻한다. 밀이 그런 사람이었기에 해리엇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더 쭉쭉 뻗어나갈 수 있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은 다른 보통의 남자들이었다면, 해리엇 백명하고 우정을 지속해봤자 자기 사고의 테두리안에 머물렀을 것이다. 뭐, 그런 남자라면 해리엇이 우정을 지속할 리도 없었겠지만.



해리엇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20년이나 밀과 우정을 지속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남편인 자신이 아니라 다른 남자와 생각과 사상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의견을 교환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해리엇은 남편이 있으면서 다른 남자와 우정을 지속하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역시나 값싼 호기심인걸까? 나는 이들이 그 우정을 지속했던 그 시간동안 닥쳐왔을 감정의 변화가 너무 궁금하고 그 얘기들을 들어보고 싶다. 아울러 그 시간동안 유지했던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그들은 이십년동안 '우정'을 지속했다 말하지만, 해리엇의 남편이 죽고나서는 결혼을 하잖아. 결혼은 십년도 채 안돼 해리엇의 사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밀이 자유론에 그런 어마어마한 헌사를 쓸만큼, 그렇게나 지성을 나누는 우정(혹은 사랑)관계를 가진 사람의 마음 상태는 어떤 것이었을지도 궁금하다. 나는 지성을 나누는 파트너가 섹스 파트너 구하기보다 이천배쯤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이겠지만, 내 경우에는 섹스 없이 살아도 삶에 별 지장은 없지만 지성을 나누는 파트너가 없으면 너무 외로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밀은 나름의 행복을 충실히 쌓으면서 살았던 게 아닐까.... 라고 혼자 너무 멀리 나가고 있나.......




지성을 가진 여성을 알아본 것처럼, 밀은, 우정에 대해서도 인지한다. 어쩌면 이런 것들을 인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고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했던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밀이 그리는 이상적인 부부관계는 "높은 수준의 능력과 소질을 비슷하게 갖추고 그 생각과 지향하는 목표가 똑같은 두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 일정 정도 비교 우위를 지닌 까닭에 서로를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특혜를 누릴 뿐 아니라 자기 발전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지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도받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는 상태이다. (p.104)



밀이 꿈꾸는 이상적인 결혼생활은 자유로운 두 영혼이 결합하여 서로에게 배우고 서로 발전하도록 보살피는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잠자리에서부터 재산관리에 이르는 결혼생활의 모든 국면에서 일방적인 권력행사에 위한 억압, 복종, 희생이 추방되고 상호합의를 기반으로 한 신뢰, 배려, 호혜가 통용되는 관계를 추구한다. 이렇게 완벽한 평생의 반려자와 맺는 관계는 아마 최고 수준의 우정일 것이다. (p.106-107)




이렇게 우정과 평생의 반려, 그리고 결혼까지 그는 오래 생각하고 들여다본 것 같지만 '비혼 여성에 대해 철저하게 무심하다(p.108)'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밀이 19세기에 여성의 참정권을 주장한 이상, 그에게 완벽한 개념남이 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밀은 아마 자신이 가진 한도 내에서 생각할 수 있는 한껏 생각하고 할 수 있는 한껏 말했을 것이다. 그는 애초에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남자였고, 그래서 해리엇을 만나 열릴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것, 남편과 아내 역시 그런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가장 좋은 반려가 어떤 건지도 알았지만, 그러나 비혼에 대해서는 무심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걸까. 우리는 누구나 자기가 관심을 가진 분야에 대해서만 열렬히 생각하게 될거다. 밀의 주변에 해리엇이 있어서 밀이 자유론과 여성의 종속을 저술하고 참정권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면, 그가 좀 더 나아가기 위해서, 그러니까 비혼에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아마도 또 그의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비혼 여성이 있어야 했을 수도 있다. 아, 비혼 여성은 그런 삶을 살고 있어? 하고 그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가 '더' 개념남이 되기 위해서는 또다른 조력자가 필요했던게 아닐까. 우리가 볼 수 있는 데까지 보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더라도 분명 부족하고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가급적 오류를 잡아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오류도 있으니까.



밀의 비혼 여성에 대한 관심의 한계, 여성관의 한계 같은 걸 잡아낼 수 있는 것도 그 시기를 지난 후에야 가능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때문에 밀은 '후대의 비평가들에게 표적이 되었(p.109)'다는데, 후대의 비평가들이 할 일이 바로 그런 거 아닐까. 앞서 나왔던 생각들의 오류를 잡아내고 보완해서 앞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



밀에 대한 부분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밀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본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삶이 즐거움의 연속은 아니었겠지만, 그가 존경하는 여성이 있었다는 것, 그녀가 그의 생각과 사상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된 건 이 책을 읽으며 얻은 큰 수확이다.


메리 울스턴트래프트, 존 스튜어트 밀, 시몬 드 보부아르, 베티 프리단,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을 읽었고 아우구스트 베벨, 프리드리히 엥겔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뤼스 이리가라이, 주디스 버틀러가 남았다.





그가 말한 자유는 남성과 여성을 아우르는 ‘인간‘의 자유였다. 밀은 법조항 속에서 ‘사람‘으로 통용되던 단어인 ‘man‘을 중립적인 단어 ‘person‘으로 교체할 것을 주장했다. ‘인간‘이라 써놓고 ‘남성‘으로 읽는 구습을 정면에서 비판한 드문 남성지식인이었다.- P88

밀은 세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고전어, 역사, 문학, 철학, 경제학을 배웠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일종의 영재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는 당연히 밀 개인의 놀라운 재능에 대한 주석이지만, 나아가 밀의 시대가 누렸던 비옥한 지적 풍토를 암시한다.- P88

유망한 저술가들과 토론회를 주도하면서 런던 지식인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무렵, 밀은 심한 신경쇠약을 앓게 된다. 이때 무기력과 우울을 문학의 힘으로 극복했다는 일화는 『자서전』의 가장 유명한 대목 중 하나인데, 그는 이 시기가 인생 최대의 위기였으며 문학을 통해 ‘감정‘에 눈뜨지 못했더라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없었으리라고 술회한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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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2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 멋쟁이... 밀 잘 써... <자유론> 밀나좋음...

다락방 2019-07-26 12:43   좋아요 0 | URL
나 자유론 있지롱~~~~ ㅋㅋㅋㅋㅋ

syo 2019-07-26 13:05   좋아요 0 | URL
읽었나요? 읽었나요? 읽었나요?

다락방 2019-07-26 13:36   좋아요 0 | URL
안읽었다!!!!!!!!!!!!!!!!!!!!!!!!!!!!!왜!!!!!!!!!!!!!!!!!!!!!!!!!!!!!!!!!!!!!!!!!!(내가 안읽고 내가 분노한다)

잠자냥 2019-07-26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존 스튜어트 밀에게 저런 별과도 같은 존재가 있었군요. 처음 알게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도 늘 읽기만 해야지 했던 밀의 <자유론>과 <여성의 종속>을 이 참에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감사한 포스팅.

그나저나 지성 파트너가 섹스 파트너 구하기보다 이천배쯤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다락방 님 말씀에 저도 이천배 동감합니다! (혼자 너무 멀리 나간 이야기 늘 그렇듯 재밌어요 ㅋㅋㅋㅋㅋ)

그럼 즐거운 불금토일 되시길.

다락방 2019-07-26 16:43   좋아요 1 | URL
우앙. 제가 긴 포스팅을 한 보람이 느껴지는 댓글이네요.

저도 밀에 대해 알게된 게 너무 재미있고 좋았어요. 책을 읽는 일은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몰랐던 것을 알게 되잖아요. 저도 사두었지만 안읽은 책을 일단 어디있나 찾아봐야겠어요. 하하하하. 분명히 자유론 샀는데... 아하하하. 아닌가? 모르겠다. ㅋㅋㅋㅋㅋ

저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다 보니까 자꾸 멀리 멀리 가게 되는데, 이렇듯 재미있게 읽어주시니 기쁩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글쓰기는 계속됩니다.


잠자냥 님도 즐거운 불금토일 되세요. 우리는 곧 또 만납시다. 잠자냥 님의 글로 그리고 제 글로.
:)

공쟝쟝 2019-08-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론은 실제로 해리엇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ㅠㅠ 아 그런 여성들 진짜 천지 삐까리겠죠?? 맴찢....
밀과 해리엇의 ‘여성의 종속’ 이 될때까지 !!!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감정을 갖게될지는 그 책을 읽기 전까지 아무도 모른다. 소문난 고전이라고 해서 그 책을 읽고 감동받으리란 법도 없고, 뻔한 구절이 가득한 책이라 해서 당연히 실망하리라는 법도 없다. 사람을 만나도 마찬가지...라고 쓰려다가 또 쓸데없이 길어질까 이쯤하고.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읽는대신 단발머리 님 방식대로, 원하는 사람들을 먼저 골라 읽기 시작했다.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시몬 드 보부아르를 읽었고, 오늘 아침엔 베티 프리단을 시작했다.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1921~2006)은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 1934~)과 더불어 1960년대 이후 미국 여성운동을 이끈 가장 유명한 지도자로 손꼽힌다. 프리단이 이 역할을 맡게 된 것은 1963년에 출간된 『여성성 신화』가 불러일으킨 엄청난 성공과 반향에 힘입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 쏟아진 엄청난 관심과 열광적 평가는 짧은 지면에 다 소개할 수 없을 정도다. 앨빈 토플러는 이 책을 일컬어 역사의 방아쇠를 당긴 책이라 격찬했는데, 역사의 방아쇠까지는 아닌지 몰라도 여성운동에서 한 새로운 단게의 출발을 알린 책인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미국 근대 여성주의의 가장 중요한 전화점이 되어주었다고 평가되기도 하고 1960년대 후반에 일어난 서구 여성주의 운동 (이른바 여성주의 제2의 물결)을 이끌어낸 기폭제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프리단이 2006년 2월 사망했을 때 『뉴욕타임스』지의 부고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하였다. "여성주의의 십자군 용사이자 1963년 현대 여성운동을 작열시킨 뜨거운 첫 저서 『여성성 신화』의 저자이며, 그 결과 미국과 세계 각국의 사회구조를 영구히 변화시킨 인물인 베티 프리단이 사망했다." (p.315)



메리 울스턴 크래프트도 죽었다. 파이어스톤도 죽었다. 보부아르 역시 마찬가지.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살아있지 않은 저자들을 만나왔는데,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 아침에는, '베티 프리단이 사망했다'는 구절에서 왈칵- 치밀어 올랐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심지어 나는 베티 프리단의 책은 읽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왜 그녀가 사망했다는 구절에서 왈칵했을까. 모르겠다. 나는 가만, 처음으로 돌아가 그녀의 태어난 날과 사망한 날을 다시 보았다. 얼만큼을 살다간 것인가.





많은 여성들에게 읽히고 자극을 준 책, 여성주의의 기폭제가 된 책을 쓰기 위해서 베티 프리단은 의문을 가졌고, 설문조사를 했고, 집필을 했다. 그렇게 열정적 삶을 살아서 업적을 남긴 사람이지만, 결국은 죽었다. 죽는다는 것은 인간이 결국 닿게 되는 종착지일텐데, 문득 '인생은 무엇인가', '왜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는 거다. 우리는 결국 죽을텐데, 왜이렇게 살고 있을까. 세상이 뒤죽박죽이고, 어어 이 세상 이상해, 그렇다면 이상한 이유가 뭘까?, 내 생각엔 이래서 이런것 같아, 라는 치열한 사고를 거쳐 세상에 알렸건만, 죽었다.


좋은 작품을 쓰고 위대한 일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더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변방에서 책을 읽으며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나라고 해서 일찍 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가됐든 사람은 태어났고 태어난 이상 죽게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인데, 새삼, 어떤 삶을 살든 죽어야 한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픈 거다.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우리는 왜 죽어야할까.




태어났고 태어난 이상 살아가고, 그리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한 과정을 겪어내야 하는거라면, 그 과정을 어떻게 살아야할지는 자기의 몫일 것이다.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동안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내가 죽더라도 내 뒤에 살아갈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삶의 절대가치 혹은 상대적 가치를 평가하는 건 누구의 몫일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하나의 위대한 저작을 냈다고 해서 평생을 위대한 사람으로 살다 죽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백래시』에서도 베티 프리단이 오히려 페미니즘에 역행하는 책을 쓰기도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게다가 동시대에 인기를 끌었던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질투했다는 얘기도. 인간은 태어난 이상 죽어야하고, 그 개인으로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복잡한 감정들에 휩싸여있다. 어마어마한 저작을 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어깨힘 뽝주고 살아가도 됐을텐데, 아마도 더한 것, 더 높은 것을 바랐던 것일까. 책을 쓰기 전에는 그 책이 이렇게나 큰 반향을 일으킬지 몰랐을 것이고, 그 어마어마한 책을 써낸 뒤에는 더 높은 곳에 닿고 싶다는 바람이 생길지도 몰랐겠지. 인생은 아주 많이, '이럴 줄은 몰랐어' 를 내뱉으며 살게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어제 엄마랑 노화에 대해 얘기를 나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둘이 시장에 가면서 엄마의 팔에 핀 검버섯을 보았다. 검버섯은 손에도 있었다.



엄마, 나도 곧 그 검버섯이 내 몸에 깔리겠지.

응.

나 벌써 시작된 것 같아.

누구나 그래. 신경쓰지마. 늙으면 검버섯 생기는 건 당연한거야.



나는 늙어가고 죽음에 이르겠지. 나도 그냥 한 명의 인간일 뿐이니까. 다른 사람과 똑같은.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베티 프리단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는 책을 쓰지는 못할거다. 내가 살면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그리고 내 온전한 행복을 위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내가 바라는대로 살 수 있을까?



죽기 전에 『여성성 신화』는 읽어야겠다. 검색해보니 2018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남편인 칼은 부인의 활동을 격려하고 적지 않게 지원해주기도 했지만 지적이고 독립적인 부인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기 시작했고, 의견 마찰이 있을 때는 부인을 구타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결혼관계는 결국 1969년 이혼으로 끝났다. 칼은 얼마 후 가정적인 여성과 재혼해서 아주 만족스러워했으며, 베티와 같이 지적인 여성은 존중하기는 해야 할 테지만 그러한 여성과 결혼할 것은 아니라고 극구 주장하기도 했다. (p.320)



맙소사.. 베티 프리단의 남편도 아내를 때렸다니. 세상에 아내를 때리지 않는 남자가 있기는 한건가요? 그리고 왜, 남자들은 지적인 여자를 싫어하는가.. 왜 지적인 여자랑 결혼하기 싫어하는가. 나는 이거 너무 이상하다. 사람들이 대부분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나? 토요일에 남동생 부부랑 저녁 식사 하면서 '애인에게 용납 안되는 한가지' 화제가 나왔는데, 나는 '멍청한 남자는 질색팔색' 이라고 했단 말이야? 누구나 다 멍청한 사람 만나기 싫어하는 거 아닌가? 왜 남자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여자를 기를 쓰고 싫어하지? 그런데 대부분 다 자기보다 똑똑할 수밖에 없는데.. 아아, 모를 일이다.




남동생 부부와 바깥에서 저녁을 먹고 2차로는 남동생 부부의 집으로 갔다. 텔레비젼을 틀어서 보며 술을 마시다가, 채널을 돌리고 잠깐 무슨 밥상 차리는 프로를 보게 되었다. 프로그램 제목은 생각이 안나는데, 여자가 지역 특산물로 밥을 차려내고 있었다. 닭장 육수로 떡국을 끓이고, 보쌈을 준비하고, 토하(새우)젓을 준비해 상을 차려냈다. 차려진 상에 밥을 먹기 위해 남자 셋이 몰려들었다. 한 명은 남편인것 같고 다른 두 명은 모르겠는데, 일단 준비과정부터 여자 혼자 하는 걸 봤던 터라 몹시 기괴한 장면. 나는 한마디 하려다가, 아아 지금 분위기 좋은데 걍 입닫고 있자, 괜히 남동생 부부 앞에서 욕하지 말자, 하고 있었단 말야? 그런데 남자가 '토하에서는 특유의 향이 난다' 고 하는 거다. 여자는 '그게 싫지 않지?' 하는데 남자가 대답을 안해..아아, 나는 나를 참을 수 없었다.



"차려주는대로 쳐먹기나 하지, 가만히 앉아서 밥상 받는 주제에 말이 많어 개새끼가."



남동생은 "누나가 뭐라고 할 줄 알았다" 면서, "저거 여자가 혼자 차렸고 치우는 것도 여자 혼자 치울 거 아냐"며 거들었다. 으으...



자, 다시 베티 프리단으로 돌아가면,




한동안 이런 생활을 하던 여성들이 표현할 수 없는 심적 고통과 고뇌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잔디밭 깔린 좋은 집과 가구, 온갖 가전제품, 착한 아이들이 있고 사이좋은 이웃들과 환한 얼굴로 담소하며 유행따라 멋진 옷을 갖춰 입고 취미생활까지 하며 사는 여자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감적이 격해져 울거나 집을 뛰쳐나가 거리를 헤매거나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신체적으로도 징후가 나타나 손과 팔에 큰 물집이 생겨 터져 피가 흐르기도 했다(세척제 문제가 아님). 이런 문제를 안은 여성들은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으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들이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성적 요구를 하고 이를 통해 "살이 있음을 느끼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인들은 성적 동물이 되어갔고 남편들은 부인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여자들이 어머니로서의 존재 확인을 위해 끊임없이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 것도 이 현상의 특징이었다. (p.337-338)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정확히 이 부분에 해당하는 구절이 나오는 소설, 『마담 보바리』 생각이 났다. 보바리 부인도 자기 안에 그 감정 때문에 교회를 찾아가지만, 너에게 부족한 건 없고 그런건 다른 가난한 여자들이나 갖는 감정이다, 라는 말을 듣게 되지.




「사실」 하고 그는 엠마 곁으로 되돌아와서는 커다란 사라사 손수건을 이빨로 물어 펴면서 말했다. 「농민들은 정말 불쌍해요」

「그들 말고도 또 있어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물론이지요! 예를 들어서 도시의 노동자들이 그렇죠」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실례지만 말입니다, 내가 아는 불쌍한 가정의 어머니들은, 정숙한 여성들은, 정말이지 거의 성녀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인데 빵 한 조각 없이 헐벗고……」

「하지만 저어……」 하고 그녀는 말을 받았다(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 양쪽 끝이 일그러졌다). 「신부님, 빵은 있어도 여전히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여자들이……」

「겨울에 불이 없는 여자들」하고 신부가 말했다.

「아니! 그런 거야 아무려면 어때요?」

「뭐라고요! 아무려면 어떠냐고요? 내가 보기엔 사람이란 몸 따뜻하고 배불리 먹기만 하면……왜냐하면……결국……」

「아아 어쩌면 좋아. 어쩌면 좋아」 하고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p.167)




인생 뭘까.

인생 왜 사는 걸까.

난 모르겠다..




현대의 생물학자, 사회과학자, 심리분석학자들은 인간적 성장의 요구(need)나 충동(impulse)이 섹스 못지않게 원초적인 인간적 요구이며, 기본적인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1940년대 메국에서 프로이트 이론은 여성의 비정상성, 열등성, 인간적 결함을 설명하는 근거 역할을 했다. 여성은 자신이 남근을 가지지 못한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부터 남근을 부러워하고 남성성을 원하게 된다는 것이야말로 프로이트가 여성에 대해 적용한 기본 관념이었다. 게다가 여성은 본래적 결핍인 남근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남근 선망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자아를 발전시키기 어렵고 본능을 승화시키는 능력도 더 약하다고 프로이트는 보았다. 그는 여성은 남성 성기에 대한 갈망을 자녀에 대한 갈망으로 대체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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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7-22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웠던 보관함에...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를 넣습니다... 곧 구매 예정.

다락방 2019-07-22 11:38   좋아요 0 | URL
술술 빨리 읽히는 책은 아닙니다, 비연님. 저 이번달 안에 이 책 끝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하하하하

비연 2019-07-22 11:41   좋아요 0 | URL
흠.. 그렇다면 전, 완전 굳게 맘먹고 시작해야겠네요 -.-;;;

공쟝쟝 2019-08-03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티프리단 남편 진짜 극혐 ㅋㅋㅋㅋ 그런 여상과 결혼 하지 말라닠ㅋㅋㅋㅋ
넷플릭스에서 지금은 내려갔지만 <분노할 때 그녀는 아름답다> She’s Beautiful When She’s Angry 라는 다큐가 있는 데 거기 베티프리단이 나와요~ 우리가 읽었던 수잔브라운 밀러도 나온다지요. 저자들이 나와서 자신의 페미니즘 운동 증언 하는데 너무 반가웠어요. 책에서 now나 witch의 활동 나올때 그 다큐에서 본 기억이 나서 생생했어요. 언제 기회되면 한번 보세요 🔥🔥
 

















철학사 학위를 받은 뒤 교직을 얻기 위해 철학교수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중이던 1929년 6월, 3살 연상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80)를 만났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해 교수자격시험에 1,2등으로 나란히 합격했으며, 당대의 스캔들이었던 2년간의 계약결혼에 들어갔다. 영혼의 정절과 관계의 투명성을 지키며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이 계약의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나 일, 앞으로의 계획, 지난 경험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고 전적으로 상대방과 공유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 이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2년 기간을 약정한 계약결혼이었지만 2년 뒤에 30세까지로 연장하고, 이후로는 종신계약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법적인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각자 애인을 사귀면서 죽을 때까지 계약결혼을 유지하였고, 지적 동반자로서 서로를 인정하였다. 보부아르는 마르세유, 루앙,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12년간 철학 강의를 하였으며,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같은 해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Les temps modernes)지를 창간했다. (p.278)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사이의 계약결혼이야 워낙 유명한 사건이지만, 위의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보부아르는 대체 왜 사르트르와 굳이 계약결혼을 한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영혼의 정절' 과 '관계의 투명성'은 다 뭐람?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이 계약내용인데, 서로 완벽하게 자유로울 거면 굳이 결혼으로 묶이지 않아도 되지 않나. 그들은 서로에게 서로를 만족시키는 가장 큰 중점을 지성에 둔 것 같다. 그들의 계약결혼, 그러니까 그걸 왜 굳이 해야했는지에 대해 궁금해서 '보부아르 결혼' 을 넣고 알라딘에 검색했더니, 이런 책이 나온다.




















교수자격시험에서 1,2위 할정도로 똑똑한 사람들이니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일일테고, 굳이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고 계약결혼을 택한 점, 그리고 서로의 자유로운 생활을 완벽히 인정했다는 점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결혼'을 보이려고 했던 게 가장 큰 것일테다. 그러나 '결혼이 꼭 여러분이 아는 결혼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라는 걸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굳이 결혼이라는 걸 그들 사이에 가져다둘 필요가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저 살림지식총서 한 번 읽어봐야지.



얼마전에 본 영화 《토이스토리4》에서 '보핍'은 한명의 주인에게 지정되어 사랑받는 장난감이 아닌, 철저하게 자유로운 장난감이다. 장난감이라고 말하려니 어딘가 이상하지만, 어쨌든 그러나 보핍은 그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고, '언젠가는 내게도 주인이 나타날거야' 라는 같은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나중에 누군가 자신을 옆에 데리고 다녀줄 어린 주인이 나타날 수도 있고 안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거랑은 전혀 별개로 보핍은 자신의 자유를 누리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산다. 보핍의 태도는 사랑과는 전혀 별개로 '나는 나!' 로 유지되는데, 그러면서 건강한 삶을 사는 게 너무 좋은 거다. 반드시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아야만 그 인생이 가치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는 캐릭터랄까.


'카붐' 캐릭터도 마찬가지. '우디' 가 자기를 소유한 아이를 위해 자기 한 몸 바쳐 충성하고 희생하고자 하고, '개비개비'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자신의 몸을 고쳐서라도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자 애쓰는 캐릭터라면, 카붐도 역시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다. 자기 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하고 친구를 도우려 하고.



나는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삶만이 가치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또 사랑하고 사랑받는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재미있지만, 그러나 그것만이 세상의 전부도 아니며 유일한 것도 아닌 것이다.




나는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항들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삶도 당연히,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높은 지성은 어쩌면 그 지성에 맞는 짝으로는 서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왜 굳이 '계약결혼'이라는 걸 그들 사이에 존재하게 한걸까? 그렇게 해야했던 그들의 동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다른 사람과 연애하고 돌아온 나의 파트너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점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는데, 내 경우에 계약결혼한 상대와 지적 동반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고 서로의 다른 연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것은, 나의 계약결혼 상대를 졸라 사랑하지 않을 때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내 경우엔 결혼을 생각했을 때, 미안한 말이지만, 결혼을 하고자 한 상대를 뜨겁게 사랑하지 않았었다. 사실 사랑 자체와도 좀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상대와 결혼을 하면 어떨까, 라고 혼자 생각해보았던 것.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신경쓰이지 않는 누군가를 둔 채로, 나가서는 언제든 자유롭게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을 했던 거다. 지금이나 그 때나 '가장 좋은 사람과는 연애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아마 이런 사고가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은데,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도 서로의 자유를 인정하며 지성을 존중하는 게 가능했지만, 사실, 사랑..은 딱히 크게 존재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 사람이 사는 모습도 다르고 사랑을 받아들이고 또 행하는 자세도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 만약 졸라 사랑하는 사람하고 계약결혼을 했다면, 서로의 자유로운 연애를 인정하는 걸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그럴거면 뭐하러 나랑 해? 걍 다른 사람이랑 해.


이건 자유연애 상대가 되어도 마찬가지. 내 상대가 '나는 지적 동반자인 사람과 계약결혼해 살고 있어, 나의 연애는 자유로워' 라고 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연애상대가 되고 싶지 않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어떤 생각을 하고 그 결혼에 임한건지 너무 궁금하다. 이렇게 궁금한 건 값싼 호기심일까?



어제는 누군가의 결혼이 궁금하다는 것이 값싼 호기심은 아닐까, 자꾸 생각해보게 됐다. 호기심과 관심은 어디에서 갈리는걸까. 나는 애정어린 상대에게 관심이 많고, 많은 것들이 궁금해져서 묻고 싶다. 퇴근 후에는 무얼 하며 지내는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무엇인지, 책의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는지, 어떨 때 행복함을 느끼는지, 전완근은 있는지.. (응?) 그런 것들이 궁금해 조잘조잘 묻고 싶은데, 만약 내가 관심있는 상대가 계약결혼을 했다면, 그걸 왜 했는지 묻는 건 실례일까 아닐까. 이것은 호기심인가 애정인가. 그것은 어디에서 어떻게 갈리는가.




상반기 결산 같은 건 하지 않고 넘어가긴 했지만, 만약 올 한 해를 정리하게 된다면, 가장 인상깊었던 비문학 도서로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모임에서 진행했던 《여자는 인질이다》가 될것이다. 그 책에서도 언급됐고, 파이어스톤의 《성의 변증법》에서도 언급됐던 것처럼, 여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여성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우리는 연애와 결혼이 결국 억압적인 것이라는 것에 닿게 되는 것 같다. 강제된 연애, 결혼의 압박. 《제2의 성》을 1권 밖에 못읽었지만, 다 읽게 되면 역시 보부아르도 그런 결론에 대해 말하는가 보다.




3부 「정당화」에서 보부아르는 이러한 억압적 상황에 대한 여성들 스스로의 자기 정당화 방식들을 다룬다. 그동안 여성의 본질적 태도인 것처럼 간주되어왔던 나르시시즘, 연애와 사랑으로의 도피 그리고 신비주의가 기실은 기존의 남성적 질서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반(反)세계'를 형성할 자신이 없는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기존 질서에 공모하여 삶을 이어가기 위해 취하는 태도일 뿐이라는 내용은 남성들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p.288)




보부아르는 자신이 도피성 결혼을 한 게 아니라는 걸 드러내고 싶었던걸까? 그래서 굳이 '계약' '결혼'을 택했던걸까? 계약결혼과 지적동반자, 그리고 자유로운 연애라니. 얼핏 보면 가장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마음적으로는 아주 복잡한 것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것 같지 않은가.


어째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할 것들이, 알아야 할것들이, 알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지는 것 같다. 머리가 터질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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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9-07-1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기하기 어려운 특정 부위가 전완근이었군요! (응?) ㅋㅋㅋㅋ

살림에서 나온 저 작은 책은 사르트르-보부아르의 관계를 나름 잘 정리한 책 같았어요.
근데 저 책만 읽어봐도 아시겠지만 사르트르-보부아르는 계약결혼 뒤에도 내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래서 대체 이 인간들은 왜 이런 짓을 한 것인가..... 그저 한낱 소시민인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더라고요.
심지어 보부아르는 나중에 사르트르가 끊임없이 다른 여자들을 사랑한 것에 고통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고, 게다가 그는 섹스도 형편없었다고까지 말하기도 했죠. 그러니까 대체 왜 그런 결혼을.........;;

둘 다 지적으로는 매우 잘 통하니까 그 방면으로는 내내 교감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결혼(서로를 옭아매는)은 반대하고 싶었기에 ‘계약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글쎄요. 인간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너무 간과한 것 같아요. 지적동반자로서만이 아니라 육체, 정서적으로 교감이 다 잘 되는 상대여야 이상적인 파트너가 아닐까 싶은데.... 서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계약‘이라는 이름 아래 묶인 그들의 결혼도 기존의 결혼만큼이나 참 공허해 보입니다.

다락방 2019-07-19 09:47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생각한 게 바로 그거였어요, 잠자냥 님. 어느 하나만으로 결정되면 안될 것 같은데 지적동반자..라는 것이 계약결혼을 유지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함께 가져가기에 다 괜찮은가.. 가 안될것 같거든요. 결혼이란 제도 자체에 대해 반대하기 때문에 계약결혼을 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 가능한데, 내 파트너는 지적 동반자 그리고 자유로운 연애..라고 하면 ‘왜 굳이??‘ 이렇게 되어버리는 거죠.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지성이라고 하면 당연히 그걸 잘 맞는 파트너를 찾게 되겠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그걸로만 만족하게 두지는 않으니까요.

저도 잠자냥 님처럼, 육체, 정서적 교감이 다 잘되어야 이상적인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파트너라면 굳이 ‘계약‘ 결혼을 했을 것 같진 않고요. 그래서 되게 복잡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계속 ‘굳이 왜?‘ 라고 묻게 되더라고요, 보부아르에게. 그러나 당시에는 분명히 혁명적이었을 것 같고요.

오늘은 안그래도 전자책 맘껏 지르는 날이라고 제가 혼자 정했으니, 마침 저 살림지식총서도 이북으로 있겠다, 질러버리겠어요. 꺅 >.<

단발머리 2019-07-19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교수자격시험 원래 1등은 보부아르이나 보부아르에게 1등을 줄 수 없었던 심사위원들이 오랜기간 공부했고 여러번 떨어졌던 샤르트르에게 1등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샤르트르는 천재죠. 그런 사람을 천재라 하지만 보부아르가 그에 못지 않았음에도 아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계약 결혼으로 인해 더 큰 자유를 누렸던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전, 아직 잘 모르겠더라구요.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거다,라는 로맨스 소설 법칙 같은게 이런 천재들의 사랑에도 해당되는지도 모르겠구요.

다락방 2019-07-19 11:36   좋아요 1 | URL
아니, 1등이 보부아르인데... 아또 그럴법도 하네요. 그 때엔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 같아요.

저는 제2의 성도 읽으면서 ‘보부아르 천재인가, 아는게 어쩜 이렇게 많지!‘ 했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되게 자극이 되고 좋아요. 파이퍼스톤도 그렇고 실비아 페데리치도 그렇고 엄청 똑똑하잖아요. 마리 루티, 레베카 솔닛 모두 다요! 너무 좋아요!


계약 결혼으로 인해 자유를 누가 더 누렸다, 라는 건 사실 제 관심 밖이고요, 저는 그저 애정이란 걸 놓고 봤을 때, 두 명 혹은 여러명과의 관계를 가져가고 있는 거라면, 그 중 어느 하나도 완전히 충족된 건 없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지적동반자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연애를 했다는 건, 그것 자체만으로는 좀 빈 구석, 공허함을 느꼇던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 저 관계를 유지했어도 그것은 얼마만큼의 만족을 가져왔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물론, 한 명으로부터 육체적 정서적 교감을 모두 이루었다 하더라도, 인간 본연의 공허함은 있겠지만요.


저 계약결혼이라는 시도는 당시에 굉장히 대단했을 것 같아요. 음 그치만 분명히 마음 찢어지는 부분이 있었을 것 같고요. 저 살림총서 계약결혼 샀으니까 읽어보겠습니다!!

요즘 너무 이것저것 읽어보려고 시도하고 완독을 못하네요 ㅠㅠ

공쟝쟝 2019-07-2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앙 꽤많이 읽으셨네요. 저는 자유주의 패미니즘까지 읽다 말았는데 ㅠㅠ 비록 주말에도 할일이 많지만 반나절은 비워봐야겄어요~ 오랜만에 페이퍼 써야지 ㅋㅋㅋ!

다락방 2019-07-20 07:26   좋아요 0 | URL
아 저 순서대로 읽는 게 아니어서 저도 조금 읽었어요. 보부아르가 세 꼭지째입니다. 으하하하. 저 많이 남았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