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페데리치는 이 책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마녀사냥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항의하지 않는 것을 원망하고 있다. 분연히 맞서 싸워야 하는데 왜 다들 가만있는거죠? 라고 울부짖는다. 


나는 페데리치의 이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건 내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고 생각하는 다른 한심한 논리들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었던 거다. 어떤 성범죄 사안에 대해서 '여성단체들은 대체 뭐하느냐' 라는 장엄한 꾸짖음 같은 것이었달까. 실상 여성단체를 포함한 여성 개인들이 자신들이 힘닿는 데에서 발언하고 행동하고 있었는데도 자기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너넨 뭐하는거야, 이럴 때 나서야지' 하는 일을 목격하게 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니 눈앞에 안보이면 없는거냐? 니 눈앞에는 왜 안보일까? 다 너같은 놈만 있기 때문이다, 라고 답해주고 싶은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페데리치가 그런 생각을 혹은 행동을 한다고? 페데리치의 전작들을 읽어오고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그런데 설마 페미니스트들이 마녀사냥에 대해 항의하지 않는다고? 그건 페데리치가 못봤다고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라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나는 실제로 페미니스트들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마녀사냥에 항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아프리카의 마녀사냥이 여성에게 위협이 되고 고통을 부여하며 여성의 신체와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데도 페미니스트들은 이에 맞서서 목소리를 높이거나 힘을 모으지 않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우리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누군가는 이 이슈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전쟁, 전 지구적 부채, 환경 같은 더 광범위한 정치 사안들로부터 부차적인 문제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프리카 사람들은 후진적이라는 식민주의적 이미지를 더 확산시키게 될까 봐 이 주제를 다루기를 주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이러한 박해를 분석한 사람들은 대부분 언론인과 학자들이었고, 이는 분석의 탈정치화로 귀결되었다. 대개 설명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작성되어 있고, 고발당한 그 많은 사람이 감내해야 했던 끔찍한 사태에 분노를 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내가 읽은 문헌 중에서도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마녀사냥 피해자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쓰인 것이나 이 학살에 대한 국내외 기관의 무관심에 항의하는 것을 찾기는 어려웠다. 대부분의 인류학적 분석은 이 새로운 마녀사냥이 전통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근대성’이 유발하는 과제들을 아프리카인들이 해결하려는 방식임을 입증하는 데만 천착하고 있다. -p.151



페데리치가 추측하는 이유도 있지만 누군가의 말을 가져온 것도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후진적이라는 식민주의적 이미지를 더 확산시키게 될까봐 주저'한다는 이유. 이 이유는 말이 된다. 그러니까 이 이유가 합당하다, 합리적이라서 말이 된다는 게 아니라, 이 이유로 여성이 죽어가는 걸 내버려둘 수 있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다는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걸 지향하고 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만, 그 중에 또 숱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기도 한다. 보이고자 하는 면이 너무 강해 무조건 '더 약자'의 편에 서려고 하고, 그것이 자신의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더 약자'는 어떤 기준이냐는 것이며, 그렇다면 그 사람이 생각하는 '덜 약자'는 뒤로 밀려도 되냐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이미지가 더 나빠질까봐 죽어가는 여성들에 대해 눈 돌리는 것, 그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인가? 나는 여성의 몸을 아기 낳는 도구로 사용하는 대리모 찬성론자들이 생각났다. 







나는 2014년 대리모 우호 회담의 티타임에서 대리모로 인해 여성과 아동에게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 어떤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동의했지만 착석 종이 울릴 때쯤 곧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가엾은 게이 남성들이 아이를 그토록 원하는데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해치는 데 대한 긴장감과 겁, 특히 이 경우 우리 사회에 너무나 만연한 동성애 혐오로 보일 수 있다는 이 두려움은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겁은 많은 사회 정의 쟁점들과 결부된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용감하게 '안 된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p.116)






왜 게이들은 가여운가.


동성애 혐오자로 여겨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여성의 신체를 착취하는 것에 대해 침묵하게 만든다. 장애인 혐오로 보일까봐 여성의 신체를 착취하는 것에 대해 침묵하게 만들고,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걸로 보일까봐 여성의 공간을 차지하는 일에 등을 돌리고, 가난을 혐오하는 걸로 보일까봐 여성의 편을 드는 것을 주저하고, 인종차별하는 걸로 보일까봐 여성에 대한 폭력에 눈을 감고 …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한다는 것도 안다. 나는 그게 징글징글하다. 내가 혐오자로 불리는 것이 두려워서, 혐오자로 보이는 것이 두려워서 어떤 폭력에 입을 다무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인권은 줄세우기가 아니고 약자는 누가 더 약자인가 경쟁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떤 경우에 '너는 나중에'라고 말하게 되는 일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고, 나는 그런 경우에 여성에게 나중에를 말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왜 여성은 자꾸만 나중에가 될까. 왜 다른 어떤 사안이 끼어들면 그 다음이 될까.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기를' 거부하는 쪽을 택하겠다고 생각한다. 종종, 혐오자로 불리우는 것을 각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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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8-16 08: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엾은 게이 남성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페미니스트한테 페미니스트라면서 왜 ㅇㅇ은 안챙겨? ㅇㅇ은? ㅇㅇ도 같은 약자잖아? 하는 거에 신물나요 거 좀 들이밀지좀 마쇼 여혐하는 티라도 내지 말든지

다락방 2023-08-16 09:00   좋아요 3 | URL
은오님, 저도 그거 너무 싫어요. 페미니스트한테 바라는 게 뭐 그리 많은가요. 페미니스트는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들한테 이것 저것 요구할거면 그냥 자기들이 하면 되잖아요. 아주 웃기고들 있어요. 남한테 외주 주지 말고 자기가 지향하는 바는 자기가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는겁니다. 어우 빡쳐.

건수하 2023-08-16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존중은 하겠지만 양보는.. 각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노력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락방님 글 읽으며 의지를 다집니다.

다락방 2023-08-16 12:03   좋아요 1 | URL
저는 보이고 싶어하는 스스로의 욕망만 잘 다스려도 덜 혼란스러울 거란 생각을 합니다만, 그렇다고 싸움이 줄어들 것 같진 않아요. 각자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다를테니까요. 저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걸 위해 행동하고자 합니다.

열심히 읽고 씁시다, 수하 님! 빠샤!!

독서괭 2023-08-16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적 올바름 신경쓰다가 막상 해야할 말도 다 못하는!! 그런 일이 허다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 뭣이 중헌디? 마녀사냥에 대해 써주신 그런 이유로 제대로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저도 놀라웠어요. 참 어렵습니다.

다락방 2023-08-16 14:25   좋아요 2 | URL
정치적 올바름은 마땅히 지향해야 할 것이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은 그릇된 판단을 내리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옳다고 믿는 바를 바라보며 행동하기를 멈추지 않도록 해야겠어요. 독서괭 님 말씀대로, 뭣이 중헌디?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3-08-16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일어나는 일 어느 하나도 한가지의 원인으로 일어나는건 없고 그 사이사이에 얽혀있는 수많은 관계들 때문에 복잡하게 보이면서 거기서 자신의 정치적 위치나 나에게 필요한거 좋은거 이런거 생각하다보면 진짜 올바른게 뭔지 못찾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요.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아주 복잡해보이지만 또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한데 인간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욕망들이 그 올바름을 가리고 있다고 싶고요.

다락방 2023-08-16 16:33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 나는 내 기준이 있다고 생각해도, 그런데 그게 정말 누구에게나 옳을것인가 라고 하면 그렇지도 않을테고요. 며칠전에 이나영 주연의 <박하경 여행기> 보는데, 거기서 이나영이 그러더라고요. ˝그게 민주주의다˝ 라고요. 시끄러운 게 민주주의라고, 조용한 게 더 무서운 거라고요. 다양한 사람이 살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 그로 인한 충돌은 너무 당연하겠지요. 그렇다고 생각하고 알고 있으면서도 제 기준과 충돌되는 의견을 보면 또 가슴 답답해지고 그렇네요.

달자 2023-08-16 2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깊은 탐구와 공부 없이, 어디서 대충 들어본 소위 ‘진보적‘인 사안에 대해 오케이 오케이 하는 분위기 아 정말 너무 뭔지 알고 싫어요... 프랑스에서도 고학력, 중산층(이거나 그 이상)의 소위 진보의 젊은 Bobo족들 너무 많고... 더 나아가서 피씨한 사람이 ‘쿨‘한 거기 때문에 자잘한 차별에 분노하기 보단 더 큰 대의를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 이런 주의로 흘러가는 거 정말 많죠. 자신들은 절대로 차별받을 일 없는 문제 - 이를테면 성차별이나 인종차별-는 지방방송이니 끄고, 더 큰 대의를 위해 다같이 집중하자, 이런 주의....

다락방 2023-08-17 09:06   좋아요 2 | URL
맞아요, 달자 님. 자기 생각 없이 진보적으로 보이고 싶고 피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누군가의 혹은 어딘가의 편에 서는 건 실제로 다른 식으로 타인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는 것 같아요. 여성인권은 특히나 대의에 눌려버리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여성인권이 대의인데 말입니다. 아오 ㅠㅠ

감은빛 2023-08-1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가 더 강한지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남들에게 올바른 사람인것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것과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

이를테면 4대강 사업이 홍수를 예방한다고 주장했던 학자는
정말로 그렇게 믿은 걸까요?
아니면 돈과 권력에 굴복한 것일까요?
아니면 권력자들의 편인것처럼 보이고 싶어서 였을까요?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가 안전하다고, 먹어도 된다고 말하는 인간은
정말로 그렇게 믿는 걸까요?
남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고 믿어주길 바라는 것일까요?

가끔 저는 저들이 정말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