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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부모와 자식들의 이야기"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작가의 나이를 의심할 것이다. 아니, 이 만화가 77년생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그러나 작가는 인터뷰에서,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가 100% 실화라고 단언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60~70년대로 돌아간듯한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사실 아주 특별하지는 않다. 무능하고 폭력적인 아버지와 묵묵히 세월을 참아낸 어머니, 공부를 잘해 온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라는 장남과 그 뒷바라지를 해야 했던 세 딸들... 그런 집안의 막내로 자란 만화가는 자신의 가족들을 취재,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다. 단편단편, 작은 웃음, 약간의 그리움을 자아내는 이 만화책을 내맘대로 좋은 책으로 꼽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바로 다음의 단 한 장면 때문이다.
이제 늙어버린 엄마는 옥수수를 먹으며 처녀적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준다. 재종오빠의 친구 하나가 자신에게 호감을 지녀, 학교 정자나무 아래로 불러냈던 이야기. 그 자리에 나갔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아이구 동네에 말이라도 나모 우짤라꼬!" 손사래치며 나가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엄마에게 아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려다 멈칫한다.
'그 남자 안 본 대신
나 같은 아들을 낳았으니
더 잘된 거 아니냐고 농담을 하려다 그만뒀다.
50년을 하루도 빼지 않고
아파서 죽을 것 같으면 기어서라도
아침밥을 지었던 삶을 긍정할 만큼
내가 괜찮은 아들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설사 엄마가 긍정하더라도
난 그것을 믿을 자신도 염치도 없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세상 모든 자식들의 마음이란 게. 직접 되어보지 않고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게 부모의 마음이라지만, 세상 모든 아들 딸들의 마음 역시 모두 같다. 언제나 늘, 부족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늘 너무 늦게,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깨닫는다. 지하철에서 저 장면을 읽으면서 울컥, 눈물이 솟았던 건, 아마도 그런 세상 모든 자식의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새내기 주부의 서재에는.."
어제 저녁 이리저리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니 '서재가 당신을 말한다'라는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글의 내용처럼 오랜 세월 바뀌어온 주인의 관심사와 취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서재는?'..기사를 읽고, 바로 내 뒷쪽을 쓰윽 훑어보았더니, 서재라 하기엔 어설픈 책장에 좋아하는 책, 읽다 만 책, 만날 읽어야지 생각만 하는 두껍고 폼나는 책들이 조금은 뒤죽박죽 꼽혀 있다.
어릴 적 TV 드라마 속 회장님 댁에서나 존재하는 걸로만 알았던 '서재'. 어찌나 그럴 듯해 보였는지 언제인가부터는 나도 그들만의 전유물같았던 그 '서재'란 방을 하나 만들어서 고급 책장에 좋은 책들을 꽉꽉 채워놓으리라 다짐까지도 했었고 지금도 그 희망은 여전하다.
결혼을 하면서 가진 책들의 일부만 데려왔으니 현재의 나의 서재는 완성된 '나만의 이야기책'은 아니었지만, 읽던 당시의 느낌과 그 나름의 배움들을 기억해 내며 한 권 한 권 둘러보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느 덧 책장 한 켠에는 8개월 남짓한 '대한민국 아줌마'로서의 나의 시간들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얻고 사서 모아 둔 요리책, 육아책, 재테크 책이 꽤나 꼽혀가고 있었던 거다.
밥 먹고 사는 거 별거 아니더라고 큰 소리 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나물이네 밥상 2>.
평소 먹는 걸 워낙 좋아하는 지라 대충 어떤 음식에 모가 들어가겠거니 짐작 정도는 하더라도 막상 만들어 보려면 막막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럴 때마다 친정엄니한테 전화해서 요리법을 물어볼 때처럼 계량 스푼 없이도 쉽게 쉽게 뚝딱 먹을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해내게 해 준 고마운 책이다. 그 중에서도 '비빔 만두', '낙지 볶음', '비지 찌개', '로스트 포크' 는 하기도 쉽고, 맛도 그럴 듯 해서 우쭐해 했던 요리들이기도 하다.
주중엔 바쁘단 핑계로 대충 때우게 되지만 주말에는 요리책들을 뒤져 이것 저것 만들어서 실컷 먹고 나면 정말이지 행복한 기분에 마구 빠져들게 해 주니 나같이 단순한 이들에겐 요리책은 '행복책'이기도 하다.
요리 외에 또 다른 관심사가 된 '재테크'에 관한 책들은 요리책처럼 쉽지도 만만치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사회 초년병 시절에는 꾸준히 보던 경제신문과 몇 권 읽은 재테크 책이 큰 도움이 되서 용어 개념 정리도 어느 정도 되었었고 청약부금이며 종신보험이며 필요하다는 것들은 이것 저것 들어놓곤 했었다. 그런데 어째 나이들면서 점점 그 쪽에는 큰 관심이 없어 언제부턴가 '재무 테크놀로지'는 다른 사람 얘기인 듯 그저 수동적인 적금, 펀드 정도나 하는 정도였다.
결혼하고 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진(?) 입장에 서 보니 책임감이 막중해져 개념부터 다시 세워보자며 예전에 읽다 말았던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도 다시 들추어 보고, 며칠 전부터는 '신혼 3년 재테크 평생을 좌우한다'를 보면서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머리 속으로 그려보고 있다.
표지부터 '짠돌이 카페' 얘기를 운운하길래, 이거 영 나와는 적성이 맞지 않는 '남한테 빌붙기'나 '자린고비되기' 등의 처세술이 등장하면 어쩌나 약간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무일푼에서 시작한, 그저 나같이 평범한 주부들이 어떻게 해서 집을 마련했고, 경매에 성공했는지의 실제 경험담들을 가계부까지 공개해 가며 세세하게 안내해 주고 있었다.
하도 억억하는 세상이다 보니, 그네들의 성공을 푼돈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부익부'가 아닌 '빈'에서 철저한 노력으로 '작은 부자'가 된 그이들은 누구보다도 대단하다. 무엇보다도 부의 축적에 모든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재테크에서도 부부가 얼마나 서로 합심해서 노력하는가가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가슴 찡한 이야기들도 담아 내고 있어 딱딱한 기술만을 알려주는 경제서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더욱 마음에 든다.
너무도 큰 부는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이지만, 주위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아줌마들이 이루어낸 이 '작은 부'는 참으로 눈물겹고, 그 실행 방법부터가 팍팍 와 닿으니 나같은 재테크 초보들에게는 무엇보다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 줄 것이다.
훗날 나의 많은 세월과 관심사들을 드러낼 서재에 어떤 책들이 얼마나 꼽혀있게 될런지 모르겠지만, 요리와 재테크 이 두 방면에서 고수가 되어보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으니 이 분야 서적들도 꽤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만 같다. 다만 이 두 방면의 독서에서는 앎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행동력과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불면의 밤을 헤쳐가다"
이번 장마철은 유난히 힘겹다. 굳이 비가 오지 않더라도 그렇다. 일조량 때문일까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북향으로 창이 나 있어서 여름 오후 4시만 되어도 형광등을 켜야 하는 자취방에서조차 별로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아마도 작년 이맘때에 힘들었던 상황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가, 한 해가 흘러 비슷한 기후가 되자 머릿속의 기억까지 깨워 놓은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주중에는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껏 우울해하며 허우적댈 틈은 없었다. 직장인의 양심에 비추어서도 '차라리' 책을 읽다가 잠드는 게 훨씬 나았으므로, 간만에 아주 그냥 마음껏 빠져들었다. 책의 효용은 여러 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집중해서 넋을 놓게 하는' 역설적인 능력만큼 마술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행복한 밤들이었다.
<로드>는 전율스럽다기보다는 성실하게 쌓여진 스산함을 느끼게 하는 미국 스타일의 걸작이었다. 생각보다 담담하게 읽었다. 절망의 롤러코스터 같은 걸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 읽고 나서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작품이 문학사에 족적을 남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류 문학이 하드보일드 스타일과 제대로 손잡은 멋진 사례. '질질 짜는 쇼 따위는 포커 페이스 밑에다가 숨기란 말이야, 이 풋사과 같은 놈.'(누구? 최근의 폴 오스터? ㅎㅎ)
(그런데 이런 걸 정말 많은 사람들이 즐기나? 이상할 정도로 너무 많이 팔린다는 염려(?)를 지울 수 없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같은 걸 기대한 분들에게는 큰일인데...)
<슬픈 미나마타>는 의외의 일격이었다. 미나마타 병이라는 센세이션에 전혀 매몰되지 않은 진짜 인간 스케치다. 서서히 부서져가는 어촌의 분위기, 결국 삶에 섞여들면서 느리게 진행되는 절망과 함께 일종의 권태까지 품게 되는 그 모습을 절묘하게 잡아냈다. 공장 부지로 매립되어 버린 바다를 고향으로 갖고 있는 나도 그 느낌을 대강 안다. 어느새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이다. 소설과 르뽀의 중간에서 춤추고 있는 이 묘한 작품은 그 미묘한 변화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잡아냈다. 마루야마 겐지의 최근 행보에 실망했었는데, 그가 보여주었던 건조한 뜨거움 같은 것을 꽤 오랫만에 만난 것 같다.
그래픽 노블 두 권. <재미난 집>은 문학적으로 풍부한 텍스트였고(그야말로 그래픽+노블이다), 여러 종류의 숨겨진 묘사와 비유를 찾느라 즐거운 독서였다.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를 이런 데서 만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게다가 감동적이었고. 반면에 <진과 대니>는 그야말로 '성장만화'였다. 서유기와 TV 시트콤 형식과 자전적인 스토리가 얽히고 설켜 결국 서로 만나는 장면에서는 씁쓸하달까 싸하달까 묘한 기분이 들기까지. 신화와 하급 문화를 차용한 방식은 멋졌고, 게다가 어렵지도 않았다.
아.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도 좋았는데. 이것도 그래픽 노블이라고 해야 되려나...음.
그렇지만 역시 넋놓고 보기에 가장 좋았던 녀석은 <세계대전 Z>. 무슨 '악의 축 리턴즈'도 아니고 갈수록 노골적이어지는 정치색에 나중에는 피식 웃음이 나오기까지 했지만, 어쨌거나 재밌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나름 신선한 발상의 좀비물 같은 걸 마주할 기회는 별로 없으니까.
"불싯, 쎄자르, 이 세상엔 로코코코적인 것은 없어"
섬에 가고 싶었다. 장 그르니에도, 박광수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니 굳이 대자면 위저의 'Island in the Sun' 정도일까? 그냥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땅에 발을 붙이고, 때론 물살을 가르며 움직이고 있음을 내가 인지할 수 있는 한도 한에서, 가장 먼 곳으로. 지금 여기서 나를 묶고 있는 이 고무줄이 어디까지 늘어날 수 있을지 궁금했을까.
그래서 거문도였다. 신지끼의 전설도, 하얀 등대도, 환상적인 트래킹도 내 알바 아니었지만 빈약한 상상력과 졸렬한 검색 실력의 한계였다. 그래서 결국 도착한 곳은 개도. 조율이 맞지 않은 인생은 때론 악보와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선착장에선 하얀 진도개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달리며 <로드>를 읽었고, 배를 타고 나가며 <일방통행로 / 사유이미지>를 읽었다. 코맥 매카시가 그리고 있는 묵시록-창세기는 결국 시작과 끝 사이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삶 그 자체였다. 세상이 망하거나 나쁘거나, 어쨌거나 죽기 전까지는 살아야 하는 것이다. 벤야민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하다는 것은 경악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를 깨달을 수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경악도, 깨달음도 없는 삶은 무엇일까?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뒤늦게 <여행할 권리>를 읽었고, 나는 여전히 “이 것뿐인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한껏 늘어났던 고무줄은 더 큰 반동으로 나를 떠밀어 흔들었으니까. 문득 이런 격언이 떠올랐다. “어제는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고, 오늘은…, 오늘은 이러고 있네.” 세상에 로코코코적인 건 없다지만.
*이번 달의 앨범은 배 위에서, 산 속에서, 적막한 민박집에서도 나를 즐겁게 해주었던 돌아온 James의 <Hey Ma>, 앨범 표지를 꼭 여기에 넣고 싶은, 말도 안 되게 행복해져 돌아 온 Sigur Ros의 <Með suð ? eyrum við spilum endalaust> 정도? 마침내 라이센스 된 Postal Service는 이렇게 노래한다. "그러니 먼 곳을 여행하는 동안 혹시나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듣게 되면 너를 기다리며 노래하는 나를 기억해"
"귀에 울리는 잔향 속에서"
재미있고, 들고 다니면 폼이 나는 것 같다.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돕는다. 그런데 읽다 보면 뽐내기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주말 오전 커피숍과 어울리는 책.
"블루스와 날개 달린 외야수 J.C."는 지금은 품절되어 알라딘에서는 구할 수 없는 판타스틱 6월호에 실린 찰스 부코우스키의 단편. 날개 달린 외야수 J.C.로 꼴찌에서 우승 직전까지 당도한 야구팀과 이 친구를 믿고 일생 일대의 도박을 건 감독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비꼬기와 비아냥 정서를 천형처럼 타고난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아이슬란드어는 독음도 불가능하지만 앨범 제목은 대략 '귀에 울리는 잔향 속에서 우리는 끝없이 연주한다' 정도인 것 같다. 일전에 NME는 Sigur Ros의 이전 앨범을 두고 '천상의 신이 황금의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고 했다는데, 원래 허풍이 심한 매체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그닥 틀린 말 같지도 않다. 이들 앨범 중에서 가장 팝적인데, 말 그대로 듣자마자 심장이 뛸 정도로 놀랍고 아름답다. 오랜만에 만난 성문영씨의 훅(hook)이 있는 해설도 (아마 계속 해오셨겠지만) 반갑고.
혼자만 사는 세상도 아닌데 고집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옹졸함이 되고 타협을 모른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쉽게 바보취급 당하곤 하지만, 가끔 이런 고집들이 승리를 가져오는 때도 있는 법이다. 비록 그 승리가 영원하진 않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 보위(David Bowie)가 'Heroes'에서 노래한 것처럼 - 그것이 단 하루일망정, 그들은 '영웅이 될 수도' 있는 거다. / ... / 그리고 이 모두가 작은 경이이다. 적어도 이전의 시규어 로스를 아는 사람에게는 그럴 것이다.
"애증의 공간, 화장실에 관하여"
재래식 화장실에 빠져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적이 있다. 그럭저럭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사실은 어릴 때 화장실에 빠진 적이 있어요.'라고 고백하면, 그 반응이 가지각색이다. 얼굴에 놀라움을 가득 표하며 "아니, 어떻게 살았대요 거기서?" 정도의 반응은 너무나 고맙다. 고마워서 두 손을 덥썩 잡고 냉면이라도 한 그릇 대접하고 싶다. 대부분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으며 "정말요?"라고 되묻는다. 하지만 그 순간 돌연, 나와 그의 물리적 거리는 10cm 이상 벌어진다. 마음이 미어진다. 이제부터 그의 마음 속 한 구석에서 나란 사람은 *뚜깐에 빠졌다가 간신히 살아난 여자, 정도에 그칠 것이다.
중국 당대문학 걸작선 두번째 책 <화장실에 관하여>에는 몇 편의 중,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제목이자 표제작 '화장실에 관하여'는 뒷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애환을 그려낸 작품이다. 모든 사건 사고의 배경에는 뒷간만큼이나 뒤숭숭한 중국 역사의 고비고비가 스미어져 나온다.
십칠 년 전, 양하이링이 후이하이루에서 바지를 적셨을 때, 나는 상점에 뛰어 들어가 판매원에게 애걸했다. 간신히 화장실 사용 허락을 받은 나는 쏜살같이 뛰어나와 그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해 나는 열여덟 살이었고, 현장에 있던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양하이링에게 무척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당시의 혼란스런 장면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주위를 둘러싼 구경꾼들이 수군거렸고 양하이링은 얼굴을 감싸쥐고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114p)
몇 년 후, 양하이링은 당시의 장면을 회상하고는 한마디 내뱉었다.
"그때는 정말 죽고 싶었어!" (115p)
작업장 주임은 양하이링을 무슨 희한한 동물 보듯 당황하며 말했다.
"하이링, 못 알아보겠네. 사람이 완전히 변했어. 옛날엔 아무리 고민이 있어도 말 못 하고 속으로 삭히더니 말야. 난 그땐 벙어린 줄 알았어. 그해 상하이에 갔을 때......"
양하이링은 얼굴이 완전히 붉어졌다가 하얘지더니, 다시 퍼렇게 변했다. 작업장 사무실에는 정적이 찾아들었고 사람들은 긴장했다. 주임이 갑자기 폭소를 터뜨리자 모두들 웃었고 양하이링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따라 웃었다. 모두 눈치 빠르게 인사를 했고, 미소를 지은 채 공장 문을 나선 양하이링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 귀신같은 곳에 다시는 오나봐라."
울적한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126p)
쑤퉁, 하진, 비페이위. 경제 뿐 아니라 문학에서도 중국의 상승세를 무시할 수 없다. 얼마 전 문학MD께서는 '중국문학 추천전'이라는 이벤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뭐든 트렌드가 되겠다 싶으면 삐딱선을 타는 심보 탓에, 중국 문학이라고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이후 통 외면한 것이 사실. 갑자기 '중국풍(風)'이 불었는지, 이번 달 들어 읽은 중국 문학책만 4권. 쑤퉁은 선방이었고, 비페이위는 반짝거리는 잠재력이 돋보였다. 내친 김에 고전까지? 하는 마음에 손에 잡은 것은 <명심보감>. 마음을 다스리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무엇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