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관리하는데도 나름 각자의 방법과 규칙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작가의 컬렉션을 모아두기도 했을테고,
누구는 좋아하는 작품만 특별히 한칸에 모셔두기도 했을테고.
나도 이번에 책장을 정리하면서 새롭게 한칸을 마련했으니, 그것은 바로
'저자 친필 사인본 컬렉션' 칸이다.
- 사인 받은 순서대로 정렬해 보았다. 모아두니 뿌듯하기도 하고, 또 아쉽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간 많은 저자분들을 만났는데, 부끄럽다고 책도 내밀지 못했고 나도 독자인데 (ㅠㅠ) 독자분들을 위한 사인본만 받았던 것도 아쉽고. 잃어버렸거나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책들도 생각나고 ..
(한강의 사인본은 무척 좋아했는데, 누군가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고 있어요 ㅠ_ㅠ)
무엇보다, 작가분이 돌아가셔서 이제는 사인본이 될 수 없는 책들을 보는 아쉬움도 있고.
사인같은 거 다 부질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모아두고 보니 어쩐지 지난 날들이 후회로 점철...아..
이제는 좋아하지 않게 된 작가들도 있지만 (많지만)
그래도 다 한 시절이고, 한줄기 추억이니 사진으로 남겨봅니다 :)
2007년 국제 도서전에서 받았던 박완서 선생님 사인.
기력이 없으셔서 오래 앉아 사인을 할 수가 없으시다며, 댁에서 미리 사인을 다 해오시고,
독자들의 손만 잡아주셨다.
그 따뜻한 손의 느낌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다. 이젠 받을 수 없어 더 의미 있는.
김영하. 랄랄라 하우스에는 특별히 고양이를 그린다고 했던 것 같다.
지금은 개정판이 나왔는데, 이건 당시 초판.
박민규. 작고 정성스러운 글씨로 꾹꾹 눌러쓰던 모습이 기억난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슈퍼스타'라고 적어주나보다.
<사람 풍경>을 읽고 저자와의 만남을 찾아가 받았던 사인.
최규석의 사인은 이렇게 생겼다. 본인의 얼굴. 모과라는 닉네임.
이름은 위에 있어서 사인에서 잘렸다. 상상마당에서 있었던 <대한민국 원주민> 저자와의 만남.
김규항. 뭔가 사인하기 싫어 포스다! 합정동 벼레별씨에서 있었던 저자행사에서.
<예수전>을 읽고 생각한 바가 많아 찾아갔었다.
이건 아무도 안궁금할, 나에게만 소중한.
대학시절 은사님 책 가제본 마지막 검토 도와드리고 받았던 사인.
알라딘에 입사 후 첫 사인! 김연수 저자행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하던 기억.
사인 받으려고 <세상의 끝 여자친구>를들고 수줍게 서있던 기억.
그것이 첫마음이렷다. ㅎㅎ
이병률. 사인과 글씨가 본인을 닮았다. 푸른 만년필 잉크톤마저.
저자행사 담당이 아니라 수줍게 독자로 찾아가 구석에서 들었던 <하늘의 맨살> 낭독회장에서
다들 계절을 이야기하는데, 마종기 시인은 장소를 이야기한다.
아마도 다른 곳에 오래 머무른 영향인 것 같다.
소중하게 인연이 닿았던 김이설 작가님께서 고맙게도 <환영>을 보내주시며
내가 고마운데, 본인이 고맙다고 써주셨다.
그리고 가장 최근 직접 받은 사인. 이승우 <지상의 노래> 북콘서트에서.
나는 왜 <지상의 노래> 한권만 들고 갔던가. 생의 이면은, 생의 이면은!!
그리고 마지막! 직접 받은 사인이 아니라 <시옷의 세계> 선착순 친필 사인본을 구매한 것.
나는 이 사인이 좋다. 참 좋다. '소원이 도착하는 계절입니다' 라는 문구도 그렇고
쓸쓸하게 그네를 타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도 그렇고.
(사인본 버전이 다 조금씩 다르다고 하니 또 궁금하고 흥미롭기도!)
사인본을 정리하다보니, 당시의 수줍던 내가 생각나고
그 때 XX 작가님 뵀을 때 왜 사인 하나 받지 않았던가, 하는 아쉬움부터
사인본 위시리스트 같은 걸 만들고, 하나씩 클리어해볼까,
바로 그 아랫칸에 위시리스트 칸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까지..
암튼, 정작 모아보니 아무 의미없다, 고 했던 말과는 달리 꽤 의미있는 매개구나, 싶고.
앞으론 좀더 열심히 쫓아다녀볼까, 싶기도 하고. 네. 뭐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