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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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다 재밌는 인권 이야기라는 부제는 사실 좀 애매한 표현이다. 읽기는 무지무지, 느무느무 재밌게 읽었지만 인권이라는 주제가 재밌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제는 아주 불편하고 또 불편했다. 우리의 현실이지만 외면하고 싶은 거였다. 내 몸의 상처였지만 치료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기에 그냥 진통제 한 알 삼키고 고개를 돌려버리고 싶은 거였다. 안다. 그런다고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인권이라는 주제는 내게 그랬다.
영화를 통해 그 불편한 진실, 인권에 대한 얘기를 저자는 무척 편안하게, 재미있게, 소탈하게 펼치고 있다. 객관적인 시선이지만 야단을 치진 않는다. 넘어서지 못하는 진실 앞에선 본인도 과감하게 부족함을 드러낸다. 감성과 이성 그리고 지성을 다해 읽을 책이었다. 그렇게 읽고 느꼈으면 자연스럽게 반성도 했을 테다. 그러고 나면 이제 제대로 배워서 내 사고를 바꾸고 현실에서도 이를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동서고금의 영화를 통해, 간혹은 책을 통해 우리의 인권이 어떻게 변해왔고 현재 주소가 어떤지를 보여주고 있다. 고발성이 짙은 영화도 있고 민감한 주제를 다룬 영화도 있고 문제작도 있다. 실제로 이런 주제들을 갖고 우리가 토론(!)을 한다면 몇 마디 오고가지 않아 곧바로 싸움이 날 주제들이다. 그러기에 쉽게 다수 앞에서 꺼내기 힘든 주제들이다. 그런 민감한 주제들을 영화를 통해 논리적으로 때론 감성적으로 풀어내 다 읽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그렇다고 저자의 논리나 생각, 결론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백분 이해는 간다. 못 본 영화들은 다 챙겨봐야 할 것이고 못 읽은 책들도 읽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눈 돌렸던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아이들의 인권을, 성소수자의 인권을, 폭력 앞에 휘둘리는 여성의 인권을, 장애인의 인권을, 노동자의 인권을, 종교와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검열과 표현의 자유를, 인종차별의 문제를, 제노싸이드의 문제를 영화를 통해 논한다.
결론은 내 자리에서 내 능력에 있는 인권을 최대한 지켜내고 혼자서 힘들면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며 지켜야할 인권들이라는 것이다. 책 한 권 읽는다고 그 동안 외면했던 인권을 위해 운동가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외면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아무리 불편해도 인권을 위해서라면 말을 꺼내고 행동을 하고 내 생각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아직도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정말 너무나 좋은 책이다. 몰라서 잘못하고 있는, 알면서도 안 하고 있는 이들까지도 모두 인권의 품안으로 이끌 수 있는 정말 감사한 책이다. 인권, 그건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지켜야하지 않는가. 재수가 좋아서, 머리가 좋아서, 환경이 좋아서 그동안 내가 문제없이 내 인권을 주장했다면, 이젠 타인들의 인권에도 관심을 갖고 지켜주어야 할 때이다. 모두가 같은 인간이니까.

‘우주보다 더 귀한 것이 한 사람의 생명입니다. 죽음은 당사자에게 우주의 소멸과 같습니다. (…) 내 것, 네 것 할 것 없이 인류라는 거대한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은 똑같이 고귀한 것입니다. 생명의 귀중함을 인식하는 것은 인권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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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8-11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왤케 오랜만이십니까?
잘 지내시는지요? 휴가는 다녀 오셨습니까?^^

진달래 2010-08-13 15:41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반갑습니다. ^^ 올만이에요~
 
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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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선생님의 글은 뭘 읽어도 일단 기본적으로 재미나 문학성이 보장 되니 간혹 스토리나 이념에 공감이 가지 않더라도 또는 진한 감동이 없더라도 언제나 반갑다. 더구나 요즘 책들이 그 어떤 것도 주지 못하는데 질렸을 땐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없다.
일단 <강남몽>, 재밌다. 각기 개성을 지닌 여러 인물들의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를 포함한 삶의 스펙트럼을 통해 여러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가 급작스럽게 참혹한 전쟁을 겪었듯, 어느 날 벼락부자가 엄청나게 생겼듯, 우리나라가 발전(?), 변화해온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야기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져버린 삼풍백화점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강남의 요지에 자리해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럭셔리의 대명사였던 백화점이 무너져 수천 명의 희생자가 생겼다. 그 수천 명 가운데 몇 명의 삶을 대표 격으로 잡아 이야기가 이어진다. 정치와 요정과 관련된 사람들, 조폭과 사업, 전쟁 전후 애국심이나 독립운동과는 별개로 기득권을 차지한 사람들, 늘 낮은 자리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던 사람들 등등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삶의 모습들이다.
하나 아쉬웠던 건, 김진 등 일제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역사성을 위주로 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스토리텔링의 면에서는 너무 전형적이면서 약간 지루했던 부분이다. 또 하나, 삼풍백화점이 무조건적으로 향락과 퇴폐로 질타당할 때, 그곳이 그저 삶이었고 일상이었던 사람들의 삶을, 의외의 시선으로 잡아냈던 정이현의 작품과 비교가 되어서 이 작품이 너무 정형화된, 우리가 그러리라고 생각했던 방향으로만 너무 흘러버려 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글은 황석영이기에 또 가능한 글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만이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글, 그가 했기에 괜찮은 이야기가 아닌가.
어쨌든 읽어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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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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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꽤 근사한 환상소설을 만났다. 한때 판타지에 미쳐서 판타지 영화만 본 적도 있었지만 근래엔 사실 판타지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그게 다 나이가 든 증거라니, 그 말이 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을 잡을 때 재미가 없으면 어쩌나 슬쩍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자마자 괜한 기우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는 먼(사실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물론 이 세계의 연장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리 동떨어진 것도 아니다. 
백신을 찾아내지 못하는 바이러스의 출몰, 점점 더 늦게 결혼하고 아이도 늦게 갖게 되어 생기는 늦둥이들의 홀로서기, 환경 파괴로 인해 빙하가 되어버린 지상 세계, 현실세계보다 가상세계에 더 집착하게 되는 사람들… 더불어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경제와 정치가 결탁해 만든 권력이 장악한 세상은 지하에 새로운, 관리 가능하고 통제가 가능한 시안을 만든다. 자연이 배제된, 인공의 자연(!)만이 존재하는 세상, 얼마나 끔찍한가. 어쩌면 정말 우리에게 그런 세상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정말 미래가 그렇게 될 것 같은 느낌을 갖고 계속 이 책을 읽었다. 
시안에서 늦둥이로 기숙사에서 홀로 사는 미마는 시험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약을 구하러 난민촌으로 갔다가 뜻밖의 만남을 갖게 된다. 그 세상에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실제 물고기를 얻은 것이다. 친구인 부건과 다흡과 함께 알게 된 ‘싱커’와 신아마존 세상… 가상으로 존재하는 신아마존에서 아이들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식물과 동물에 싱크해 그들이 느끼는 걸 똑같이 느끼며 또 다른 세상을 살게 된다.        

‘처음에는 장님처럼 더듬거렸다. 정보는 쉼 없이 주어지나 그것을 의미화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독하지는 않았다. 반려수의 감각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마는 태아처럼 그 탯줄에 자신을 완전히 맡겼다. 그러자 차츰 나아졌다. 아마존은 전혀 다른 세계가 되었다. (...) 동물을 움직이는 것은 감정이다. 공포, 흥분, 호기심, 정념과 같은.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자 반려수는 그 감정의 흐름을 따라 움직인 것이다. 감정 동조와 의지 동조는 기계적인 메커니즘과는 무관했고 하나의 육체에 두 영혼이 공존하는 것과 비슷했다. 이렇게 미마는 점점 더 아마존에서 살아가는 생물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들의 세상이 안전할까. 비밀리에 싱크를 하는 아이들과 이를 알게 되어 이마저 통제하려는 권력 사이에 전투가 발생한다. 아이들은 난민촌으로 들어가, 진실을 숨기는 통제 세력과의 전투를 준비해온 사람들과 힘을 합친다. 안정적으로 돌아가던 시안의 중앙시스템이 오류를 일으키며 기온 변화를 일으키고 상상도 못했던 곰쥐떼의 습격으로 시안은 위기를 맞는다. 
얼어붙은 지상의 세계보다 어쩌면 시안의 통제된 가짜 해가 더 안전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의 절벽에서 단 한번 느낀 진짜 태양은 아이들에게 가짜 세상의 안락함보다 새로운 모험의 세계로 향한 문을 열어준다. 
요즘 세상,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고 수많은 해답의 문을 열어주는 흥미로운 소설이다. 정말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고 재밌게 읽었다. 아이들에게 가짜와 진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게 해줄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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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한 개비의 시간 - 제3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문진영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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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책이 읽기 싫었다. 아니, 읽고 싶었는데 뭘 읽어도 재미가 없어서 그냥 미적거리기만 했다. 그런데 이 책, 딱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여느 때보다 더 길고 춥던 겨울이 지나길 기다리며 막연히 창밖으로 초여름 장맛비가 지나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랬는데 딱 그런 때, 그런 느낌의 책이었다. 
전쟁 세대, 베이비붐 세대, 가두데모 386세대, 난 알아요 세대 그리고 이제 88만원 세대... 그냥 떠오르는 대로 시대를 거친 청춘 세대를 떠올려 보았는데 이 세대들엔 항상 빠질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청춘의 특성은 항상 방황했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로 들어가기엔 아직 준비가 안 된, 또는 기성세대가 받아주지 않아, 아직도 학생, 또는 취업준비생으로 지내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 가운데, 예전 세대에선 나름 자유를 갈구하며 또는 예술을 하겠다며 자칭, 타칭 아웃사이더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많은 젊은이들이 그 경계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딱히 일자리라고, 딱히 사랑이라고, 딱히 우정이라고 이름 붙이기 뭣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비가 내릴 때마다 담배를 피우고, 우산을 쓰거나 또는 쓰지 않거나 길을 걷고, 옥탑방이나 반지하에서 삶 아닌 삶을 살고 있다. 누구는 산으로 가고 싶어하고 또 누구는 세계일주를 하고 싶어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편의점에서 카페에서 일상을 이어간다. 그저 그런 삶이 이어진다. 
이 작가의 대단한 점은,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비판한다거나 일상을 비극화시키거나 각각의 청춘이 방황하는 것을 영웅화시키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있을 뿐이다. 수다스럽지도 않고 부산스럽지도 않다. 세련된 필치로 무덤덤한 삶을 그린다. 청춘의 방황이 소란스럽지 않게 오히려 청량감이 느껴질 정도로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나는 줄곧 아무것도 하지 않아왔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내가, 무언가를 위해 살고 있다거나 살아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죽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부끄럽다.’ 

이러한 청춘도 이 세상에서 그 존재의 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그것이 ‘너무나 시원했고, 평화로웠고, 모든 게 있었’던 편의점이어도 좋은 세상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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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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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도 있고 긴박감도 있고 독특하기도 하고 스토리가 인간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소재나 주제는, 이해는 가도 공감은 어려웠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렇게 긴 장편을 순식간에, 정말 재밌게 읽었지만 계속 마음 한구석에 의문이 들었으니까. 그런 의문을 갖고도 흥미롭게 읽었으니 장, 단점이 모두 공존했던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구에게 사랑받고, 누구를 사랑했을까요? 사람들은 어떤 일로 이 사람에게 감사를 표했을까요?” 

그게 누구든, 어떻게 죽었든, 그게 자살이든 교통사고든 살인이든 무조건 사람이 죽은 장소를 찾아 나름의 방식으로 애도를 하는 시즈토와 병을 앓고 있는 시즈토의 엄마, 사귀던 남자와 헤어졌으나 아이를 가진 여동생 그리고 그녀를 보살피는 사촌, 이 모두를 말도 없이 지켜보고 있는 아버지 등의 가족 그리고 시즈토와 얽히는 사람들의 과거, 현재가 이런 저런 모습으로 드러나면서 얘기는 점점 더 긴박해지고 흥미로워진다. 
또한 이들이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잔잔하게 마음을 파고 들면서 뭔가를 자꾸 기대하고 바라고 희망하게 되기도 했다. 
어찌 됐든, ‘나’가 아닌, ‘우리 가족’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애도하는 시즈토는 나 같은 범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사람이 있어 이 세상은 어쩌면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지도 모른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사람들… 우리 모두는 어느 날 태어났다가 어느 날 죽는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누군가는 감사를 표했을까. 그걸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면… 누군가가 애도해준다면… 태어나서 존재했던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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