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 열린책들 |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의 팬이 된다는 건 축복이자 저주라고 쓴 적이 있다. 내 경우는 폴 오스터가 그러하다. 누군가처럼 10년에 한번 신작을 발표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게는 여전히 (그의 작품 개수가) 부족하다. 따라서 오스터의 최신작 <어둠 속의 남자>를 읽는 것은 기쁘지만 슬픈 일.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또 그 다음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테니까.
그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겹쳐 있다. 9.11 이후 남은 자들의 하루와, 불면의 밤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떠올려낸 폐허의 세계... 이야기의 중간 부분이 약간은 갑작스런 파국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폴 오스터가 이제 완전히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음을-자신의 이야기 세계를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작가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의 노년, 완숙한 폴 오스터의 작품 세계를 만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필독. |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 비채 |
새로운 재능을 만나는 건 언제나 신나는 일. 올해 국내 일본소설 편집자들이 가장 주목했다는 작가 모리미 토미히코는 그야말로 '새로운 재능'이라는 호칭에 100% 어울리는 작가다. "지금은 이렇게 생겨먹은 나지만, 날 때부터 이 모양 이 꼴은 아니었다는 말을 우선 해두고 싶다."는 해괴한 선언으로 출발하는 이 소설은 시종일관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대화와 줄거리로 구성된다. 그러니까 이 작가의 작품은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둘 중의 하나. 오쿠다 히데오나 이사카 고타로, 온다 리쿠보다 소구하는 폭은 좁을지 모르지만, 일단 좋아하게 된 사람은 떠올리기만 해도 피식 웃음을 짓게 만들 작가다.
이 작가의 키워드는 교토, 청춘의 사랑과 우정. 어리벙벙한 대학생과 그의 사랑을 받는-어여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엉뚱한 아가씨가 등장, 돌고 돌며 반복되는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의 폭을 무한히(!) 넓혀간다. 혹자에 따라 '괴상'하다고도 여길 수 있는 특유의 문체도 매우 인상적. 한마디로 재기발랄(음, 음울찌질일지도;;;), 새로운 일본 작가를 만나보고 싶다면 강추.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에 이어,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태양의 탑> 등의 작품이 연달아 국내에 소개되었다. |
맛의 달인 100 카리야 테츠 지음 / 대원씨아이 |
드디어 100권째를 돌파한 만화 <맛의 달인>. 여느 음식 만화처럼 <맛의 달인> 역시 대결 구도로 구성되지만(완벽한 메뉴 vs 최고의 메뉴), 대결의 승패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사연과 갈등, 화해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 만화를 무려 100권이 나오도록 계속 사서 모으게 한 것은 나아갈수록 무르익어가는 캐릭터와 특유의 개그 감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감한 시대적 현안-광우병, 첨가물, 포경 금지, 쌀 수입 개방 문제 등-을 정면으로 다룰 뿐 아니라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 점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한일 문제에 대해 놀랍도록 정치적으로 공정한 시각을 보여준 점도 일조. 주인공들이 결혼한 이후 이야기 전개가 다소 늘어지고 각종 에피소드가 지나치게 반복되는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훌륭한, 의미있는 만화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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