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 결정되었습니다. 알라딘에서는 문학동네와 함께 수상작가 김진규씨의 인터뷰를 최초로 공개합니다. 중학생 딸을 둔 주부이자 작년 10월 이전에는 소설을 써 본적이 없다는 작가와 지난 해 <캐비닛>으로 제 12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김언수 작가와의 '고요하고 낯선'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고요하고 낯선 화단
제 13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달을 먹다>의 작가 김진규 인터뷰 (진행 : 김언수)
이 소설을 읽고 내가 처음 한 일은 동네 이발소로 머리를 깎으러 간 것이었다. 갑자기 단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 아주 단정한 모습으로 만나러 가는 거야.’ 이발소를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나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그러니 이 소설은 내게 이발 충동을 불러일으킨 최초의 소설인 셈이다.
“어떻게 깎아드릴까요?” 시골 이발사가 물었다.
“최대한 단정하게 보이도록 깎아주세요.” 내가 말했다.
“짧게 깎아달라는 말씀인가요?”
“네? 그게 그런 뜻인가요?”
“그럼요.” 시골 이발사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네, 그럼, 그렇게.”
이발이 끝났을 때 나는 하사관 스타일의 군인이 되어 있었다. ‘아니 아저씨. 그래도 이 스타일은 정말, 너무해요’ 항변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시골 이발사가 “아주 단정하죠?” 하고 흡족한 듯 물었기에 그냥 꾸벅 인사를 하고 이발소를 나왔다. ‘이게 단정한 게 맞을 거야. 내가 단정함에 대해서 뭘 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인생 자체가 단정치 못한 내가, 게다가 단정하게 살아보자는 결심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왜 갑자기 단정해지고 싶어졌을까. 그것은 아마 이 소설의 작가가 가지고 있을 저수지 바닥 같은 적요가 두려웠기 때문일 거다. 저수지 바닥. 그것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그린 작가의 이미지였다. 그것은 또한 소설 속에 나오는 ‘너무 말이 없기로 작정한’ 묘연과 닮아 있다. 사대부가의 며느리로 한평생을 살면서 그 누구에게도 심중을 토해놓지 않았던 그토록 무서운 침묵. 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사람들이 항상 두려웠다. 인터뷰어로서 나의 임무는 한 번도 동요한 적 없는 고요한 저수지 바닥을 흔들어 부유하는 갖가지 먼지들과 그 동안 쌓였던 퇴적물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일 텐데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헤어스타일마저 하사관이다. 아이, 정말.
문학동네 회의실로 들어선 그녀의 얼굴은 중학생 딸을 가진 엄마라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동안이었다. 그러나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단단해 보였고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모습은 단호해 보이기까지 했다. 인터뷰를 위해 문학동네 회의실에 단둘만 남았을 때 나는 약간 떨고 있었다. 아마 그녀도 약간은 떨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몇 개의 싱거운 농담과 건조한 질문을 던졌고 그녀는 단답형의 몇 마디 말을 내뱉었다. 서먹서먹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나는 그녀에게 최대한 양해를 구하고 맥주 두 캔을 마셨다. 그리고 겉으로는 씩씩해 보이지만 사실 기분장애환자여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굉장히 떤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러자 그녀는 처음으로 경계를 풀고 나를 향해 따뜻하게 웃어주면서 자신에게 우울증 병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녀가 나에게 보여준 웃음이 고마웠다. 문을 열고 상대방을 따뜻하게 받아주는 그런 웃음이 나는 항상 고맙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엔 우울증으로 아주 힘든 시절들이 있었죠.”
―혹시 앤드류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이라는 책 읽어보셨어요? 저는 그 책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어머! 『한낮의 우울』은 제 바이블이에요. 그처럼 많은 줄을 그어가며 읽은 책은 여태 없었어요. 거의 외우도록 읽었죠. 그리고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책을 꼭 추천했어요.”
나도 그랬다. 나도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고 지금까지 정서적으로 위험해 보이는(?) 네 명의 사람에게 그 책을 선물했다. 그 책은 내게 책이라는 것이 의학적인 측면에서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 최초의 책이었다.
“책 속에서 우울증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의 사연들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어요. 어떻게 내 맘을 이렇게 잘 표현할까. 어떻게 내 맘과 이렇게 똑같을까.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나와 같은 이유로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만 아픈 게 아니라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어요.”
―혹시 겪으셨던 우울증 삽화 중에 하나만 들려주실 수 있나요?
“한동안 미친 듯이 전자오락실을 드나들었어요. 거기서 테트리스니, 1945니, 갤러그니, 틀린그림찾기니, 보글보글이니 하는 게임들을 했어요. 그중에선 틀린그림찾기가 제일 재미있어요. 동전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죠. (웃음) 이상하게도 정신을 빼놓을 만큼 시끄러운 그곳이 아주 편안했어요. 한 일 년 정도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돈 주면서 가라고 해도 못 가겠지만.”
앤드류 솔로몬에 따르면 우울은 사랑의 결여상태다. 우울증은 자신과 타인과 일과 생활에서 사랑이 사라져버린 삶이며, 그 무엇에서도 기쁨을 얻지 못하는 무의미함과 황폐함으로 가득 찬 쓸쓸한 내면이다. 그리고 건강한 삶을 회복할 에너지를 상실한 상태를 뜻한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끝없이 반복되는 생활에 대한 무의미한 감정과 외로움이다. 그러므로 우울증 환자에게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프로작이나 리튬 같은 약이 아니라 황폐해진 내면을 다독거려줄 사랑이다.
그런데 우울증 환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공포는 누군가에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은 사실 굉장하다. 그들은 열렬하게 외롭지만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뜨겁게 사랑을 갈구하면서 동시에 사랑으로부터 맹렬하게 도망가는 것. 이 모순적인 삶을 그들은 견뎌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광대가 되어 살며, 어떤 사람은 광인이 되어 떠돈다. 그러나 침묵하는 자는 이해받을 수 없고 광대는 오해받으며 광인은 배제되므로, 이 소설 속에서 얽히고설킨 많은 관계들처럼 문 앞에서의 머뭇거림은 죽음까지 지속되고 오해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다. 중증 우울증 환자였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속 인물들이 우울증에 감염되어 있듯이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도 그렇다. 침묵하는 묘연과 김희우에게서, 사람들의 온갖 비웃음과 모멸 속에 광대로 살아가는 류호에게서, 광인으로 떠도는 여문과 향이에게서 나는 우울이라는 비극적인 병을 본다. 그래서 아마 작가는 이 소설의 인물들 중에 누구와 닮은 것 같냐는 나의 질문에 모두와 조금씩 닮아 있다고 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원래 이 소설을 쓸 때 제목은 ‘푼’이었어요. 푼은 아주 적은 양을 의미하는 거잖아요. 저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항상 푼 단위만큼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오해와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거고 항상 외로운 거죠. 소설 속에서 향이는 여문이 자신을 사랑하는지를 모르죠. 여문은 향이가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둘은 그렇게 모르는 채로 죽어갑니다.”
―속내를 잘 안 드러내는 스타일이시죠?
“네, 말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그럼 인터뷰 어떻게 하죠? (웃음)
“사실 저는 말을 잘 못하는 편이라 상대방에게 아무리 화가 나도 할말을 또박또박 다 하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리는 타입이에요. 답답함이 습관이 되어 있죠. 그런데 편지를 쓰거나 글을 쓰면 이상하게 내용이 점점 독해져요. 걱정입니다.”
―저랑 정반대군요. 저는 글을 쓰면 유순해지는데 말을 하면 독설이 되거든요.
―문학동네소설상으로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셔서 작가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독자들은 작가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또 뭐 하고 살았는지 이런 걸 더 궁금해하더라고요. 사실은 소설을 읽다보니까 제가 더 궁금해진 거지만.
“경기도 오산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어요. 아주 시골이었죠.”
―소설을 보면 한옥에서 자랐을 것 같은데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엄청난 한옥은 절대 아니고요. (웃음) 아주 작은 한옥이었어요. 지붕도 낮고, 덩달아 담도 낮고, 작은 뜰이 있는 시골 한옥이었죠. 문을 열면 바로 흙길이 있고, 그 앞에 논이 있는 그런 집 말이에요. 집 주위로 국화가 아주 많아서 사람들이 우리 집을 ‘국화집’이라고 불렀대요. 그런데 어쩐지 제가 자라면서부터는 그 많던 국화들이 다 사라지고 그 자리에 채송화며 나팔꽃 같은 풀꽃들이 자라기 시작했어요.”
―소설에 보면 발뒤꿈치로 밟아 누룩을 만들고 명주천으로 닦은 풀잎에 이슬을 모아서 만든 국화주가 나오던데 정말 한잔 얻어먹고 싶은 술이었어요. 그런데 이런 게 다 연유가 있는 거군요.
“그런데 저는 사실 술을 못 마셔요. 국화주를 담가본 적도 없고요.”
―엥?
“대신 국화주 빛깔은 아주 좋아해요. 사실 국화과의 꽃들이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특히나 가을엔 웬만하면 국화라고 해도 아주 틀리지 않을 정도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국화주 담그는 방법도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한 번도 담가본 적은 없어요.”
―대가족이었을 것 같은데 가족관계는?
“이남 사녀 중에 막내인데 굉장히 늦둥이에요. 아버지가 쉰 살에 저를 낳았어요. 바로 위의 언니하고 아홉 살 차이가 나고요. 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다니면 시골 어른들이 손녀냐고 항상 물어볼 정도였죠.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는데, 몸이 아프셔서 일찍 퇴임을 했어요. 그후로 아버지는 대서소를 하시면서 소일하셨어요. 아버지가 글씨를 아주 잘 쓰셨거든요. 붓글씨도 잘 쓰시고 펜글씨도 잘 쓰셨죠. 어쨌든 그때부터 가족의 생계는 언니, 오빠들이 책임지게 되었어요.”
―소설을 보면 아버지에 대해 애증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아버지로 인해 항상 그늘이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 늙고 아픈 아버지가 속상했거든요. ‘효’라는 것이 원래 타고나는 건가봐요. 그런 면에서 저는 참 못된 딸이었죠.”
―이 소설 속에는 ‘너는 나로 인해 죽는다’라는 부채의식이 많은 인물에게서 보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위험한 부채의식을 가진 사람을 별로 만나본 적이 없어요. 보통은 ‘너 때문에 내가 못 산다’라는 식 아닌가요?
“아무래도 가족사에서 출발한 것이겠죠. 엄마는 마흔에 저를 낳으시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 하셨어요. 그래서 늘 아프셨죠. 엄마가 아프실 때마다 혹시 나를 낳아서 엄마가 아프게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저희 언니와 오빠들은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었는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일찍 일을 시작했어요. 집에서 저 혼자 누린 호사가 얼마나 큰지 몰라요. 게다가 언니, 오빠들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제 학비를 내야 했어요. 거의 저를 키우다시피 했죠. 저는 사는 게 늘 미안했어요. 엄마가 아픈 것도 미안하고, 언니, 오빠들이 고생하는 것도 미안하고, 공부를 못하는 것도 미안하고, 약하고 비리비리한 것도 미안하고, 상업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멀리 수원까지 가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닌 것도 미안하고, 대학을 졸업했으면 일도 좀 하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한 것도 미안하고, 그리고 결혼한 다음해에 바로 애기 낳고 그뒤부터는 육아에 신경쓴다고, 참……”
―한국외대 이란어과를 나오셨는데, 이란어과를 나온 소설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굉장히 낯선 느낌이 들었어요. 왜 이란어를 전공할 생각을 하셨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떠밀려 들어간 느낌이 들어요. 선지원후시험 제도의 희생양이랄까. 붙고도 남는다, 하는 곳에만 원서를 낼 수 있었으니까요. 안 그러면 담임선생님이 원서를 안 써주셨거든요.”
―그럼 원래는 무슨 과를 가고 싶었나요?
“꼭 가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호기심에 문예창작과를 알아보기는 했어요. 하지만 이런 거 저런 거 따질 형편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대학 시절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시간이었어요. 사실 이슬람세계가 굉장히 매력적이거든요.”
―소설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하셨죠?
“작년 10월부터요.”
―네? 그전에는 쓰신 적이 없고요?
“네. 그전에는 단편소설도 시도 써본 적이 없어요.”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참 억울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보통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 십 년 우울한 문학청년 시절 보내고, 신춘문예 때문에 또 몇 년 우울한 크리스마스 보내고, 그러면서 잔뜩 패배의식에 절어 있다가 겨우 나오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필받아서 한 방에 나오시면…… (웃음)
“우울한 크리스마스요?”
―신춘문예 당선통보가 보통 크리스마스 전에 나거든요.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어요. 그런데 글을 잘 못 썼어요. 중고등학교 때도 별 소질이 없었어요. 작가들을 보면 벌써 중고등학교 때 두각을 나타내잖아요. 그게 아니라도 백일장에서 상을 타오거나 하다못해 국어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거나.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저는 그런 것도 없었어요. 어쩌다가 선생님에게 글을 내면 빨간 펜으로 줄만 잔뜩 그어져서 돌아오곤 했죠. 어릴 때 저희 집 다락에 책이 아주 많았어요. 깨알 같은 작은 글씨에 세로줄로 활판인쇄되어 있는 책들이었는데 법전에서부터 난중일기니 조선왕비열전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한 책들이었죠. 나중에 이사를 할 때 보니까 종이가 부스러질 정도로 낡은 책들이었는데, 구석에 앉아 그 책들을 이해도 못 하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읽으면서 나도 작가가 되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죠. 하지만 글쓰기에는 별로 소질이 없는 것 같아서……”
―그럼 작년 10월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왜 갑자기 소설을, 그것도 단편도 아니고 장편을?
“단편을 쓸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근데 도저히 진행이 안 되더군요. 남편이 언젠가 그런 말을 했어요. 제가 매일 책만 붙들고 사니까, 쏟아내지 않고 그렇게 계속 구겨넣기만 하면 미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정말 그랬나봐요. 할말이 많아서 단편으로는 부족했다, 뭐 그런. 그리고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한 건, 표면장력의 끝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 방울만 더 얹으면 바로 터질 것 같은 위태로움을 제 안에서 느꼈던 거죠.”
―저는 틈틈이 쓰는 장편소설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쩐지 장편소설은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휘몰아쳐서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한 아이의 엄마이고 또 주부이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썼을까 궁금했습니다.
“말 그대로 대중없이 써요. 아침에도 쓰고, 밤에도 쓰고, 설거지 끝내고 쓰고, 드라마 보다가도 쓰고, 정말 틈나는 대로 써요. 가끔 컴퓨터를 한 번도 못 켜는 날도 있거든요. 그런 날에는 주로 수첩에다 정리를 해두지요. 아무래도 남편과 딸에게 피해가 좀 있었을 거예요. 대중없이 틈나는 대로 쓴다지만 그 틈을 일부러 만들기도 했으니까요.”
―소설에는 조선시대 풍속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으셨던가봐요?
“예전부터 그런 군내나는 책들을 좋아했어요. 체질이죠. 고등학교를 수원에서 다녔는데 정조가 세운 화성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거든요. 게다가 국사선생님이 얼마나 재미있고 좋으셨는지 역사에 대한 관심이 그때 많이 생겼어요. 그리고 『조선의 뒷골목 풍경』이라는 책 이후로 기죽지 않으면서 읽을 수 있는 역사 관련 책들이 굉장히 많이 쏟아져나왔어요. 그 한 권, 한 권이 다 소설의 자료가 되었지요.”
―조선시대를 소설의 시대적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다면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조선시대라 하면 온갖 제약과 규약이 여러모로 가해졌던 시대 아니겠어요? 신분의 차이만 해도 그렇고 후기 쪽으로 접어들면 남녀의 차별도 갈수록 심해지니까요. 그러니 그 시대 사람들은 사회에서 학습된 방식으로 살아야 했겠죠. 당연히 차마 하지 못한 말이며 감히 하지 못한 행동들이 많았겠죠. 그 시대에 비한다면 오늘날은 훨씬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소통이라는 측면에선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아요. 소통의 부재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예나 지금이나 별다를 게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옛 시절을 빌려왔죠. 그래서 사실 처음에 이 소설을 쓸 때는 퓨전을 생각했어요.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넘나들며 양쪽을 다 아우르는 소설을 쓸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어쭙잖은 시도가 되어버렸죠. 한쪽에도 충실하지 못하면서 양쪽을 다 품는다는 건 말이 안 됐으니까요. 그래서 수정하는 데 어마어마한 시간을 들여야 했어요. 이중의 고통이었죠.”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 작가는 묘연과 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묘연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도 자주 받았고요.
“네, 아무래도.”
―묘연을 빼고 나면 누구와 가장 많이 닮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여기 나오는 인물들 모두와 조금씩 닮아 있겠죠. (웃음) 그런데 굳이 꼽으라면 후인과 설희를 반반씩 닮은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한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자식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후인 같은 여자에게 깊게 동의해줄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후인의 삶을 끝까지 따라갈 수 없었죠.”
―누군가는 소설이 그 시대의 도덕과 싸우는 일이라고 하던데요. 그러니까 후인에게 조금 더……
“그런 면에서 제가 좀 소심한가봐요. CCTV를 놓고 시민의 안전과 사생활 보호가 첨예하게 대립하면 저는 안전 쪽에 손을 들어주는 편이거든요. 그 말은 제 인물이 도덕과 금기의 경계에 서 있다면 저는 아마 도덕을 선택할 거라는 뜻이겠죠. 이거 어째 동문서답의 느낌이 오는데요?”
―독자들에게 『달을 먹다』가 의미하는 바를 들려주신다면?
“이해와 오해 사이의 간격이라고 하면 될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진실을 가지고 살아가죠. 한 가지 사실을 놓고도 입장과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 누구도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이 될 수는 없는 거거든요. 저는 그 진실의 개별성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영향받은 작가가 있었다면 누구를 꼽고 싶습니까?
“영향은 무수히 받았죠. 그러면서 제 능력에 절망했고요. 어쨌든 제게 충격을 준 작품들은 분명히 있어요. 우리나라 작가들의 경우, 우선은 최명희의 『혼불』이 그랬고, 제 정서를 들었다 놨다 한 작품은 김훈의 『칼의 노래』죠.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는 학창 시절에 구라에 대한 하나의 교과서가 되어주었고, 단편집으로는 이문구의 『나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하고 김형경의 『단종은 키가 작다』가 인상 깊었어요. 그리고 외국작품으로는 알바니아 작가인 이스마일 카다레의 『부서진 사월』하고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그리고 쥘리앙 그라크의 『시르트의 바닷가』를 들고 싶네요. A.J.크로닌도 말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그의 소설 내용이 기억이 안 나서……”
―작가들에게는 대체로 소설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소설을 들려주신다면?
“독립운동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내 안에 쟁여진 무수한 감정들이 글자 한 자 한 자의 등에 업혀 나로부터 독립을 하는…… 그게 잘되면 만세를 부르는 거구요.”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글 잘 쓰는 작가요. (웃음) 영화를 보면 감독들마다 스타일이라는 게 있잖아요. 드라마도 그렇구요. 그 스타일 때문에 마니아도 생기고 안티도 생기고…… 그런 저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싶어요. 보편적이고 무난해서 편안하기보다는 무언가를 건드려서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스타일.”
―저는 소설가가 21세기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시대에 소설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저는 소설가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개념으로 봅니다. 하지만 될 수 있다면 소비자의 호불호에 휘둘리는 수동적인 작가가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가 눈치를 봐야 할 정도의 주체성을 가진 작가가 되고 싶어요. 물론 그러려면 그만한 힘을 갖춰야겠죠.”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은 대부분 치명적입니다.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하는 식이죠. 원래 사랑이 이렇게 무서운 건가요?
“저는 사랑은 치명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치명적이지 않으면?
“사랑이 아닌 거죠.”
―이렇게 위험한 정서를 가지고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결혼이라든가.
“그것은 생활이겠죠. 사랑이 우리를 흔들고 간 다음에 남아 있는 것. 자신이 가진 성격대로 살아가야 하는……”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으셨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조금 무섭네요. 작년에 어떠셨나요?”
―벌벌 떨었죠. 무섭잖아요. 갑자기 세상에 나가는 거.
“그 기분 정말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인터뷰를 정리하는 며칠 동안 나는 밤마다 그녀의 블로그에 들어가 이것저것을 둘러보고 나왔다. 물론 도둑처럼 살금살금 들어가서 흔적도 없이 나온다. 그녀의 집엔 인형을 껴안고 잠을 자는 왈왈양이라는 앙증맞은 강아지가 있고, 그녀가 키우는 꽃과 새싹채소들이 있고, 전업주부의 하소연과 푸념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꽃기린, 제비꽃, 석류꽃, 능소화 같은 꽃들을 본다. 나는 웰빙과 청결을 삶의 모토로 삼고 있어 더러운 이불에서는 결코 잠을 자지 않고 몸에 좋다면 냄새 지독한 한약도 마다하지 않는 왈왈양의 일기를 읽고, 밥心이라는 폴더 속에서 요리의 실패사들을 읽으면서 ‘음 저 타이밍에 저걸 집어넣으면 확실히 실패하는군’ 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소설에서 건축학까지 두서없이 읽어대는 활자중독자의 독서일기를 읽는다. 블로그 속 그녀의 글들은 센스 만점이다. 그녀는 홈쇼핑에서 만난 상품에게 ‘솔직하게 말해봐, 내가 너로 인해 적어도 상식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묻고,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임금이 월 백육십칠만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잊을 만하면 신문에서 떠들어대는 것에 정부 차원의 음모가 있는 것이 아닐까 갸우뚱거린다. 확실히 그녀의 블로그는 내가 읽은 그녀의 소설과 다르고 내가 만난 그녀와도 다르다.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나는 깔깔거리면서 블로그를 빠져나올 때마다 그녀의 다음 소설은 『365일 반찬 백과의 비극』이나 『웰빙 강아지 왈왈양의 투쟁사』같이 엉뚱하고 기발한 소설일지도 모른다고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 인터뷰 및 정리 : 김언수
1972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2년 진주신문 가을문예공모에 단편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과 「단발장 스트리트」가,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캐비닛>으로 제 1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