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인간에게 무해한 존재다. 집채보다도 큰 덩치를 자랑하지만 적어도 인간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사납다고 소문난 바다의 폭군 범고래조차도 인간에게는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 백상아리마저 물어 죽이는 포악한 범고래지만 인간을 물어 죽인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오히려 인간을 만나면 신기하고 즐겁다는 듯 반응하며 따라오고, 심지어 상어 같은 종의 위협에서 인간을 지켜주기까지 한다. 해표를 사냥하던 범고래가 해표가 인간의 선박 위로 뛰어 도망가자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동영상 같은 걸 우리는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고래를 사냥하고 죽인다. 쉼 없이 끈질기게 오랫동안. 숱한 고래가 인간의 손에 사냥당했다. 바다에서는 적수가 없는 고래가 콩알만 한 인간들의 손에 착실히 죽어나가 어느덧 절멸 위기에 이른 것이다. 인간은 왜 고래 같은 동물을 죽이려 들까. 이 소설에서 나타난 이유는 고작 고래 몸속의 기름을 얻기 위해서다. 그 기름으로 불을 밝히기 위해서인 것이다. 참으로 이기적인 이유가 아닐 수 없다. 배고픔이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잘난 문명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니. 하긴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굳이 집채만 한 고래를 사냥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배고픔 외에 다른 수많은 이기적인 이유로 고래를 죽이고, 곰을 죽이고, 호랑이를 죽이고, 수많은 지구상의 동물들을 죽이는 것이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종을 이어갈 수 있는 동물은 없다. 결국은 멸종하는 것이다. 도도새처럼. 고래가 한 마리도 살지 않는 바다를 인간은 원하는 것일까. 인간의 끝없는 위협으로부터 동족을 지키기 위해, 바다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하얀 향유고래의 모습이 마치 환경 보호를 위해 헌신한 작가의 생전 모습 같아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자신의 몸이 너덜너덜해지더라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존재가 있어 세상이 이만큼 유지되는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