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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충주라는 지방엔 달래강이라고 있는데, 달래강은 어떻게 해서 달래강인가 하믄 옛날에 이제 아들 하나, 딸 하나 오뉘를 두고 살다가서, 부모 두 분이 다 돌아가시니까 두 오뉘가 살며 농사를 져 먹으며 사는데, 원 이짝에 있었는지 저짝에 있었는지 그거는 모르는데, 달래강을 건너가 농사를 짓다 보니까 소낙비가 오니까 달래강 물이 많아졌어. 과년한 오빠하구 과년한 동생하고 둘이 밭을 매, 농사를 짓다가 그래 되니까 옷을 벗구서 강을 건너오다 보니까, 그만 참 (이야기를 망설이며, 조사자의 눈치를 보면서) 저어 마음에 그러니까 남자가 여자를 벗은 걸 보니까 그 자지가 일어서니까, 그만, "야 이놈 너 일어설 때 일어설 일이지, 이런데 일어서는 법이 어디 있느냐?" 하고 낫을 가지고 일하러 갔다가 낫으로 제 부자질 뚝 자르고,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어. 그러니까 그 동생이 하는 말이, "날 보고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하고 자꾸 울고 앉았어. 그래서 통곡을 하다 그 동생도 그만 오빠가 죽은 데서 그만 죽었대. 그래 달래나 보지 달래나 보지 그랬다 해서 그래 달래강이라 이름을 지었어.
(<달래강 유래>, 『한국구비문학대계』, 3-1, 96면; 강등학 외,『한국 구비문학의 이해』, 월인, 2002, 145~146면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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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여느 시골 마을에 가면 '달래고개'가 하나쯤 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우리 동네에도 작은 언덕배기를 일컬어 '달래고개'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달래가 많이 나서 달래고개려니 했던 이 고개가 그와는 전연 다른 전설이 있음을 안 것은 대학 4학년 구비문학 강의에서였다. 그때 이 전설을 듣고 약간의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이 전설은 우리나라 전역의 많은 지방에서 전해진다. 이런 종류의 전설을 광포전설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달래고개> 전설과 함께 <장자못> 전설, <아기장수> 전설, <오뉘힘내기> 전설 등이 있다. 개인적 추측으로는 이 <달래고개> 전설이 가능 광포하지 않은가 한다.
한국에서 전해지는 설화 중에 이 <달래고개> 전설은 '드물게 근친상간 모티프'를 가지고 있는 전설이다. 이런 드문 모티프를 가진 전설이 전국적으로 광포하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은 또한 아이러니하다. 인용한 것은 <달래고개>의 변형으로 고개가 강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비슷하다. <달래고개> 전설에서는 부모를 잃은 두 오누이가 고개 중턱의 작은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이렇게 장소와 상황만이 약간이 변용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대동소이하다.
이 전설에 대해 학자들은 "욕망과 윤리의 갈등으로 빚어진 오라비의 자살과, 그 죽음 앞에서 발해지는 누이의 절규는 윤리보다 선행하는 생명에 대한 긍정을 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과 실존문제에 대한 인간적 물음이 집약되는 부분"이라고 평한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해석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 전설이 내게 오랫동안 기억되는 이유로는 부족할 것 같다. 혹자들이 생각하듯 근친상간 모티프에 대한 천박한 흥미만도 아니다. 이 전설을 알게 된 이후로 '달래고개'를 생각할 수록 두 오누이의 비극적 삶이 길게 슬퍼진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비극들이 곳곳에서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과 실존문제"에까지 이르면 더욱 그러할 것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반인간적이며 반생명적이 문제들도 아직 여전히 '달래고개'를 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달래나 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