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쯤 갑자기 팔다리에 힘이 빠진다는 느낌이 팍 들었다.
딱히 아픈건 아니고, 걷는 데도 별 문제 없이 계단을 오르는게 좀 힘들다는 느낌 정도.
"아 정말 요새 운동을 못했더니 이젠 근육이 다 빠지나봐." 이러면서 남편과 코로나도 좀 잠잠해지니 헬스장을 다시 다니자는 얘기를 하며 운동 노래를 불렀으나 3월은 바쁜 달이다보니 지나가고, 4월부터는 오래전부터 고질병이던 어깨 회전근개열 치료를 위해 정형외과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헬스장은 좀 쉬라는 의사의 충고에 그럼 어깨치료 3개월정도하고 끝나면 헬스장 가자 이러고 있었다.
그리고 4월 말에 코로나에 걸렸고, 일주일 격리 치료 후에 출근했는데 코로나 휴유증인지 너무 피곤해서 미치겠는거다.
집앞 내과에 영양제라도 맞아야겠다라고 갔다가 의사선생님께 "아 요즘 팔다리에 힘이 너무 빠지는데 이건 왜일까요? 그냥 운동부족일까요?"라며 증상을 얘기했더니 간단하게 혈액검사를 한번 해보잔다.
다음 날 결과 보러 갔더니
간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고, 그것보다 더 심각한건 근육효소 수치란게 140정도가 정상인데 9700이란다.
의사선생님이 내일 아침도 아니고 지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병원 외래 지금 안되는데요 하니까 응급실로 무조건 가라고....
그렇게 나의 병명을 알기 위한 병원의 과순례가 시작되었다.
온갖 내과를 전전하다가 결국 마지막 신경과에서 각종 검사후 결국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근육염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보다 정확한 병명을 위해 대학병원에 입원해 MRI촬영과 조직검사까지 하고 지금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병명이 나오면서 직장은 2개월 병가를 내놓은 상태이고....
아니 그런데 도대체 나한테 근육이 어디있다고? 다 살인데 말이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거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제대로 아파본적이 없었고, 체력과 건강은 은근 자신있어했던것들이 어이없고,
그동안 참 내 몸을 함부로 사용했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지난 3년간 유독 스트레스가 심했던 직장도 떠오르고....
하여튼 아프고 돌아보니 모든 것이 후회일따름이다.
그럼 뭐하나?
어쨌든 병은 생겼고, 치료는 힘든 병이라 그러고, 심해지지 않기 위해 엄청 노력해야 하고.....
결국 내가 나의 아픈 몸에 적응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3월쯤에 집에서 쭈그려 앉아 뭘 꺼내고 일어서다가 균형을 못잡아서 그대로 뒤로 꽈당 넘어지며 뒷머리를 찍은 적이 있었다.
어찌나 큰 소리가 나고 심하게 찍었던지 방안에 있던 딸이 뛰어나왔고, 나는 누워서 너무 아파서 아 사람이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때는 나의 운동부족때문에 허벅지 힘이 딸려서 이랬다고 생각하니 그냥 기가 차하면서 웃을 수 있었다.
머리에 커다랗게 난 혹을 만지면서.,....
나의 병을 알고 난 이후 어제 저녁 1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안에 있는 사람이 나온다고 잠시 비키던 남편에게 살짝 밀렸는데 그대로 뒤로 넘어져 머리까지 박았다.
예전이라면 그저 살짝 비틀거릴 정도의 충격이었는데 힘이없는 나의 허벅지는 그걸 못견디고 그대로 뒤로 넘어가버린 것이다.
순간 아픈 것보다도 눈물이 쏟아졌다.
내 몸이 나의 통제를 벗어나는 경험.
어쩌면 나는 이런 상태의 현재의 몸에 죽을때까지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끊임없이 조심해야 하는 상황을 예측하고 경계하고 살아야 한다는 느낌....
뭐 이런것들이 한순간 나를 무너지게 했던것 같다.
조금 많이 울었다.
사는건 언제나 예측불허이고, 그것이 좋은 쪽이기보다는 나쁜 쪽인 경우가 더 많은게 우리 삶이고, 아 그러니까 그게 결국 살아간다는것이라는걸 그래 인정해야지....
아직까지 정밀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어느정도로 심각한지, 아니면 관리 가능한 상태인지도 알 지 못하고,
본격적인 치료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는건 언제나 계속되어지고, 계속되어야 한다.
언제나 살면서 나는 이정도면 난 괜찮지, 그래 난 괜찮은 사람이야 이런 말을 늘 달고 살던 나였는데
이제는 그 말의 내용이 조금 더 디테일해져야 할게다.
아프고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나의 몸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그리고 일상을 회복하는 것, 아픈 만큼 내 몸에 배려를 함께 주는 것.
이제는 아픈 나를 사랑하자 뭐 그런 생각들을 열심히 우겨넣고 있다.
요즘은 어른이 되고 난 이후 가장 모범스런 생활을 하고 있다.
10시~11시 사이에는 무조건 잠자러 가기. 하루에 8시간-9시간의 잠 무조건 확보
빨리 못걸으니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집앞 공원 산책
하루 3끼 꼬박꼬박 골고루 잘 챙겨먹기.
그리고 술도 끊고, 커피는 하루 반잔만 허용.
아 그러고 보니 진짜 새나라의 어린이같은 어른이 되고 있구나.
다만 재밌는 것들은 모두 내가 포기한 것들에 있어 유일하게 남은 즐거움은 책밖에 없는 상태이다.
그래도 책이 남아 다행이라며 그동안 온갖 뒤숭숭함에 손에서 놓았던 책을 다시 잡아야지 그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