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하나는 거짓말 (니트 에디션) (3종 중 1종 랜덤)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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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어쩌다가 친구에게 우리 집의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가정사를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의 반응이 나는 정말 의외였는데 "너는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이제야 하니? 그렇게 오랫동안 우리가 친하게 지냈는데 어쩜 한번도 표를 낸 적이 없니?"라며 정말 진정으로 서운해 하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부터의 절친이었고, 아주 오랜 시간을 서로의 집을 오가며 지낸 사이였기도 했다. 내가 나의 가정사를 얘기하지 않았던 건 어린 마음에 부끄러웠기 때문이었고, 어느 날 얘기 끝에 말했던 건 그저 그 가정사가 더 이상 나의 부끄러움이 아닌 그저 흔하디 흔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저 담담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친구의 서운함이 나는 더 충격이었고 더 서운했었다. 그러냐고 웃고 말았지만 내 맘속에선 왜 친구라고 해서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말해야 하지? 말하지 않은 게 이상한거야?라고 생각했던 듯..... 


  소설을 읽다 보면 이렇게 잊혀진 오래된 기억들이 소환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상처와 아픔 들을 읽다 보면 그것들이 나의 생의 어느 한 순간과 만나는 것이다. 그러면 소설이 그냥 내 얘기가 된다. 공감의 깊이가 달라진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속의 아이들은 모두 혼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들을 지나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아물기 힘든 그런 상처와 고통들. 아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고통을 내려놓는 길을 찾아간다. 그것은 소설 속 지우를 통해 표현된다.


...지우는 '다 죽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결국 그 마음을 내려놓은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본 것> 마지막 화는 바로 그런 마음을 담아 끝낸 거였다. 그런데 삶은 지우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우가 누군가를 살리는 이야기를 쓴 순간 삶은 가차없이 지우에게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데려가버렸다. -215쪽


  삶은 늘 우리를 배신하다. 하지만 지우는 공들여서 그린 새 그림에 누군가가 다가와서 "개를 참 잘 그렸네"라고 얘기할 때 좌절이 아니라 "그렇죠? 개가 참 잘 생겼죠?.... 그러니 이리 와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 이 개가 얼마나 잘 생겼는지."(232쪽) 이렇게 지우는 삶이 나를 배신하는 순간을 견디고 버티고 건너가는 힘을 배운다.(이럴 때 배운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소설 속 아이들이 처한 고통은 어쩌면 말함으로써 더 힘들어지고 고통스러워지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때로 사람들은 말을 해야 알지라고 친밀을 빌미로 고백을 강요한다. 최고는 부모가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또는 설명하고 싶지 않은 고통들은 세상에 널려있다. 내가 나의 고통을 입으로 내놓는 자체가 상처이고 고통인.... 그냥이라는 말 속에는 그 깊은 상처가 숨어있다. 그럴 때 그냥이 뭐냐고 캐묻고 닥달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 된다. 그냥이라는 말을 받아주고 그저 손잡아주는 그런 순간도 필요한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의 순간을 버텨가는 힘을 찾아낸다. 사랑하는 이와의 순간들을 기억하고, 새로운 애정의 대상을 찾고...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로써 충분하다. 지우 이모의 "가족밖에 믿을게 없어"라는 말은 지극히 공허하지만, 지우가 선일씨에게서 "나는 너랑 살게 돼 기쁘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은 충분한 순간이다. 


  소리와 채운의 상처와 고통도 끝나지 않을 것이지만 삶의 어느 순간 순간에 그것을 안아줄 누군가가 또는 시간들이 다가올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또는 캐묻지 않고 그냥 그랬어. 그냥 힘들고 아팠어라는 말의 무게를 안아줄 수 있는 누군가가... 그것이 지우가 기르던 도마뱀이던, 채운이 함께 했던 개 뭉치든, 아니면 소리의 아빠든... 그렇게 우리는 늘 그냥 그랬어라는 말의 무게를 알아 줄 존재를 갈구한다. 그리고 그런 존재는 언제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와의 대화를 소환한 오늘.

어쩌면 그 때 친구의 서운했던 마음에 "00아 내가 너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말하지 않았던게 아니야. 네가 아니라 누구에게도 그냥 말하고 싶지 않았어. 그걸 생각하는 내가 싫고,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나는 더 싫었던거 같아. 그런데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너에게 아무 말도 안했을 것 같아. 그냥 그랬어."라고 말할수 있을듯하다. 나이가 든 너는 어쩌면 그래 그런 마음도 있어라고 해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똑같이 나이가 든 나는 그렇지?라고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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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5-02-26 0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나이가 들어 늙어서야
말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섭섭해하지 않고 물 흐르는대로 그냥 흘러 갑니다.
어릴때나 젊었을 땐 그런 것들이 왜 그리 섭섭하고 소외당한다고 느꼈을까요!
이제는 너무 말해주는 사람이 부담스러워요 ㅠㅠ

이 책, 호불호가 나눠져 읽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바람돌이 2025-02-26 22:47   좋아요 1 | URL
이제는 넘 말해주는 사람이 부담스럽다는 그 말이 팍 와닿습니다. ㅎㅎ 저도 그래요.
사실 개인사들 대부분은 우리가 몰라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게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더라구요. ㅎㅎ

이 책은 호불호가 나뉜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저는 호쪽이지만요. 이 책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사실 너무 뻔한 이야기이고 그것에 대한 결말도 어쩌면 너무 뻔한 이야기일수도 있어요. 이런 이야기 너무 많지 않나하는.... 하지만 저는 그 뻔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방식이 너무 맘에 들더라구요. 아이들이 시를 쓰고 동물들에 마음을 쏟는 그 순간순간들이 너무 공감이 갔어요.

금방 읽으니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거 같아요.

희선 2025-02-26 0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한 친구여도 말하기 어려운 게 있을 듯합니다 소설에서 비밀을 말했다는 말을 보면 그런 거 꼭 말해야 해 하고 생각할 때 많아요 비밀을 나누는 친구가 그렇게 좋은 걸지... 비밀을 말하면 더는 비밀이 아닌데... 다른 사람한테 말할 수 없는 것도 있지요 누군가한테 말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있기는 하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5-02-26 22:49   좋아요 1 | URL
소설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비밀을 직접적으로 털어놓지 않습니다. 그저 그러려니 하며 서로 보듬어줄뿐.... 그 보듬어주는 방식도 너무 서툴지만 그래서 더 진심으로 느껴지기도 했구요.
말씀하신대로 어떤 것들은 말해서 편해지는 것도 있겠지만 말하지 않음을 알아주는 것도 우리가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일거 같아요.

새파랑 2025-02-26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숨기고픈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건 좋은거 같아요. 인생에 그것보다 값진 보물이 있을까요?

니트에디션 표지가 예쁘네요~!! 페넬로페님 말씀 보니 호불호가 좀 있나봅니다~~

바람돌이 2025-02-26 22:51   좋아요 1 | URL
어린 시절엔 왜 그렇게 숨기고 싶은게 많았을까요? 나이가 들수록 사실 그거 다 별거 아냐 가벼워지는듯도 합니다. 한없이 가벼워져서 더 좋은 친구인거 같기도 해요. ^^

페넬로페님 말씀처럼 호불호가 갈릴수 있는게 너무 뻔한 이야기라서요. 어쩌면 청소년소설로 봐도 될듯요. 하지만 저는 그 뻔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방식이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