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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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젊은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충고를 해주는 사람은 없다며 심장을 오려내는 듯한 카운슬링의 흔적을 담아낸 책이다. 10대의 학생들과 20대의 백수들은 물론이거니와 40대 이상의 어른들이 모두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나같이 어정쩡하게 30대로 아직 방황을 완전히 정리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어른처럼 무엇인가 충고를 해줄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도 책은 유효하다.

카운셀링의 요지는 한마디로 '너, 그렇게 질질 짜대지 마라. 외롭다고 힘들다고 넋두리 하지 마라. 진정 네가 한번이라도 제대로 무엇인가를 시도하고 행동해본 적 있는냐. 지금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네가 하고싶은 일, 또는 해야만 하는 일에 남들보다 딱 2배만큼만 열심히 해봐라. 그리고 나서도 외롭고 힘든지 지켜보라'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 또는 직장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옮기려는 사람들, 꿈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때문에 좌절하고 만 사람들, 왕따 당할까 두려워하는 사람들 모두 김형태에게 매를 맞는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은 걱정만 태산이다. 그 일을 시작할 수 있는 단 한발도 내딛지 않는다. 화가가 되고 싶다면 하루에 한장씩 그림을 그려라. 음악을 하고 싶다면 아마도 하루에 한곡씩 작곡을 해야 할련가? 아무튼 그는 남들보다 2배만큼만 더 노력하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에 딱 2배만 노력해도 티가 날것이란다.

설령 세상이 그대를 좌절케 만들었다고 할지라도-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업자를 양산하는 체제와 같은- 세상을 향해 분노 하지 말란다. 그렇게 분노만 하고 있는대야 바뀌는게 무엇이겠는냐는 거다. 실력을 키워서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가 세상을 바꾸란다. 비록 개개인은 나약하지만 그 개인개인이 모두 실력가로 등장한다면 세상은 당연히 바뀌어 갈 것임을 확신한다.

어떻게 보면 현실과 타협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는 결코 현실주의자가 아니다. 꿈을 잃어비리지 말고 그것을 키워가기 위해선 뼈를 가는 아픔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세상을 향해 소리치지 말고 칼을 갈란다. 썩어빠진 뿌리를 잘라낼 칼을 갈란다. 1년 2년의 계획이 아니라 10년 20년 계획을 세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란다. 그러면 분명 자신은 보검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프다. 굉장히 아프다. 나약하고 게으른 타성에 젖어있던 나를 향해 칼을 쑤셔대는 것 같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고 하고 싶어하는 일에 대해 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하고 계획했던가? 세상만을 탓하고 조급해하고 안될거라 생각하고 한걸음도 내딛지 않았던 나, 미몽에서 벗어나게 만든 일갈이다. 세상엔 정말로 쓰디쓴 충고가 필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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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10-03 0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답니다~!

'너, 그렇게 질질 짜대지 마라. 외롭다고 힘들다고 넋두리 하지 마라. "

이 대목 읽고...송수권의 '산문에 기대어'라는 시가 생각나...한 수절 읊고 갑니다...

"새 중에는 울지 못하는 새가 있다. 얼마나 바보스럽고 멍청한가? 어떤 풍경 속에서 깊이 걸리지 못하고 울지 못한다면 얼마나 삭막한 생리 것인가? 대체로 습성이 강한 독수리 같은 놈은 잘 울지 못한다. 제딴엔 가장 영리한 것 같지만 이따금 우뚝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나르시즘의 천치요. 바보같이 보인다. 아마 이 시대를 살면서 울지 못한 놈처럼 불행한 놈도 없을 것이다. (중략) 그러나 지리산 뻐국새 이 놈은 걸려도 깊이 걸려서 거대한 산맥을 뿌리째 걸고 넘어진다. (중략) 울어도 참새처럼 찔찔거리지 말고 깊이 울어라....

하루살이 2004-10-03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새처럼 울지도 않아야 하고 독수리처럼 눈물을 모르고 살아서도 안되고...
눈물 한방울도 이렇게 어렵게 흘려야 하는 삶이라니...
그래서 더 소중하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카트린 M의 성생활
카트린 밀레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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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제일 먼저 드는 느낌은 정말일까? 라는 것이다. 미술잡지의 편집장인 카트린 밀레라는 실존인물의 실제 성생활에 대한 사적인 보고서 형식의 이 수필(?)은 그야말로 놀라움 그 자체이다. 학창시절 몰래 읽던 성에 대한 금서들보다도 더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묘사들, 그런데 묘하게도 성적인 흥분을 계속해서 자아내는 것은 아니었다. 담담한 필체로 써 내려가는 것이 그냥 일상생활을 묘사하는 수준이어서 이 저자가 도대체 자신이 무슨 글을 쓰고 있는지 알고서 글을 쓴것일까 라는 의문마저 들 정도다.

하지만 또 신기한 것은 마냥 쉽게 읽혀들것 같던 책이 생각보단 그렇게 술술 읽히지 않을 뿐더러 계속되는 성적묘사 탓인지는 몰라도 읽는 내 자신도 점차 이런 묘사들에 담담해져 간다는 것이다.

아무튼 파르투즈라는, 스와핑을 넘어서 많은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난교파티를 젊은 나이부터 행해온 저자의 성적 모험기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그런데 이런 모험기가 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냐 생각해보면 그녀에게선 성행위에 대한 어떤 이미지의 왜곡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것은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행위들 속에 감추어진 여러가지 굴레들에 대한 고찰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에 있는 것같다.

나는 어떤 고정관념에 매여 있지 않았고,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도달해야 할 이상을 설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어떤 금기도 없는 사람, 유별나게 억제를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하였고, 나로서는 그런 규정을 마다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41쪽)

즉 성행위란 그저 즐거움을 위한 것이지 그것에 어떤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순결에 대한, 정조에 대한 금기가 있을 수 없으며, 성행위에 도달하기 위한 어떤 과정들, 즉 사랑해야 한다는, 따라서 연애라는 과정을 필요로 하지도 않은 것이다. 즉 섹스는 섹스일뿐이다. 그것이 어떤 과장된 이미지나 의미를 갖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 자체가 본래 가지고 있는 쾌락만을 쫓을 뿐이다.

세상에는 아주 강력한 금기들을 깨뜨리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어떤 금기를 깨뜨리려 하기보다는 내 파트너를 선별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했다. 다시 말해서, 상대의 수가 몇명이든, 상대의 성별이 무엇이든, 상대의 육체적, 정신적 특성이 어떠하든, 나는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221쪽)

그 쾌락을 쫓는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어떤 차별도 두지 않는 정신. 실은 저자에 대해서 제일 감탄해 마지않는 부분이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도 없는 쾌락에 대한 추구, 그리고 그것의 실현과정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자유분방한 의지.

나는 남이 하고 싶은대로 하게 내버려 두면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한다.(287쪽)

그 거침없는 삶의 행방은 무엇으로 끝을 맺을 것인가? 내가 살아가면서 제약받는 수많은 것들. 이렇게 행동해서는 안되지라고 주어진 그 수많은 무언의 약속들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충실히 지켜만 왔을뿐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타당한지 한번쯤 돌이켜 보았을때 우리가 맞이해야 하는 벌거벗은 순간들, 아마 나는 그 나체의 순간을 이겨내지 못해 그저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갈지 모르겠다. 온 몸에 두껍고 거추장한 몇겹의 옷을 걸치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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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8-31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모처럼...즐겨찾기 해 놓은 님들의 서재를 돌다가... 스텔라 님 서재에서 시인 김정환에 대한 글을 보았답니다.

스텔라 님이 문학학교에서 그 분한테 습작 강의를 들었던 추억에 대해 써놓은 글이었어요..그땐 한창 찌는 듯한 여름이었는데, 런닝 셔츠 바람에 수업을 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모든 것에 스스럼이 없고, 도무지 창피란 걸 모르는 양반 같았다고요..

나중에 강의 중에 당신의 차림새에 관해서 잠시 언급을 이렇게 하셨대요.. "여러분 보시기에 내 차림이 꽤 이상할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도 예전엔 부끄러움이 꽤 먾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격을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의 모멸감을 겪게 되면 더 이상의 부끄러움은 없어집니다."라고요...

허걱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말을 하다가 이리됐네요....너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것도...정신적인 이상징후이기도 합니다만...

아...근데..책 표지가 바뀌었네요....제가 이 책을 읽을 당시는 말그대로 카뜨린 엠의 성생활이라는 글씨 자체를 가지고 디자인을 한터라.... 지하철 안에서 들고 있기...되게 뻘쭘한 책이었더랬는데..


하루살이 2004-09-0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도 아마 복순이 언니 책과 같았나 봅니다. 표지를 들키지 않기 위해 손으로 가리고 읽는라 고생좀 했죠.
그런데 가장 밑바닥의 모멸감이란 무엇일까요?
밑바닥까진 아니더라도 한치의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지키려다 당한 폭력에 치를 떨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가장 밑바닥의 모멸감. 제 인생에 단 한번이라도 그 근처의 경험마저 허락하고 싶지 않습니다.
 
삽 한자루 달랑 들고 건달농부의 농사 일기 1
장진영 지음 / 행복한만화가게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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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의 도달점과 출가의 도달점은 누군가에게는 똑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풍진세상에서 벗어나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 그러나 세상과의 관계를 완전히 차단할수는 없는 삶. 그래서 일단 도시를 떠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아니다. 풍진세상이 아니라 그저 세상에 대한 적응에 실패해 도망간 것일련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이곳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저곳에 대한 동경으로서의 발걸음일 수도 있다. 농촌의 삶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삶의 원초적 생명력과 풍부함을 느낄 수 있을거라는 희망으로, 또는 종교에 귀의함으로써 진정한 자기를 찾고 진리를 이해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서 말이다.

어찌됐든 그 첫발이 조금은 겁나고 확신이 서지 않고 불안하지만, 그래도 그 첫발을 내디디게 한건 한가닥 희망이었을 것이다. 여기 만화를 그리던 사람이 강화도로 이사를 가면서 농사라는 것을 시작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과거의 가르침을 몸소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이다.

그러나 농촌의 삶은 그저 탄탄대로가 아니다. 결코 꿈도 낭만도 환상도 아니다. 가축을 기르는 것도 쌀을 재배하는 것도, 깊은 속 뜻을 가지고 유기농을 시작하는 것도 결코 나의 의지만으로 성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정책에 또는 하늘의 날씨에 모든 것이 한순간 무너져 버릴 수가 있다. 돈을 버는 농사는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저 자급자족의 신선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삶은 오직 외길뿐이겠지만 결코 평범한 이들의 길은 아니다. 그래서 길을 떠나는 것도 새 길을 찾는 것도 쉽지가 않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간 농촌이 꼭 험난한 가시밭길만은 아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힘을 주는 사람들.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 덕에 그곳은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지만 따뜻함을 여전히 지닌 아름다운 곳이 된다.

어렵지만 참을만한 곳. 아니 참을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 그곳을 우리는 끝내 저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얼치기 농부의 고단한 삶이 안쓰러우면서도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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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소가 온다 - 광고는 죽었다
세스 고딘 지음, 이주형 외 옮김 / 재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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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터라 지금까지 기껏해야 2~3권 정도 관련된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아마도 할 수 없이 읽었던 책이었을 테고, 책을 읽고 나서도 전혀 감동 또는 나에게 이로운 어떤 직접적 지식을 가져다 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책이 나에게 어떤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면 분명 관련서적을 찾아 더 읽었을테니 말이다.

마케팅 분야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은 광고라는 것 자체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 그래서 난 그 꽃이 너무나도 싫었다. 대량소비를 부추겨야지만 돌아가는 제도를 위해 치장을 한다는 것은 생리에 맞지 않았다. 물론 마케팅이 꼭 광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래의 모습 이외의 것을 새롭게 만드는, 즉 솔직히 말하면 과대포장의 사기술이 마케팅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분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을 들게 된 이유는, 정말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소개를 듣고 나서다. 발상의 전환은 고리타분한 일상을 딴 세상으로 초대하는 마약(?)과 같은 자극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정말 왠걸? 마케팅 관련 책이라 생각했던 보랏빛 소는 나에겐 불경에 가까운 책이었다. 매체의 변화, 특히 인터넷의 확대는 마케팅에도 철저한 변화를 요구한다. 특히나 매스미디어에 의존했던 기존의 광고 시스템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입소문(이라기 보다는 글소문)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됨으로써 치장보다는 본연의 자기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한 관점이 된 것이다. 즉 가상의 나를 만듬으로써 사람들을 유혹했던 시대에서 진아, 진짜 나를 어떻게 가꾸는냐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시대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남들과 똑같은, 아니 조금은 다른, 즉 젖소이긴 한데 머리가 똑똑하다거나 우유를 조금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거나, 잘 생겼다거나, 몸매가 좋은 개체를 매스미디어를 통해 과장된 모습으로 남들에게 보임으로써 자신을 알리는 것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은 세상이 온 것이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그런 이유, 젖소이긴 한데 보랏빛 소, 공통된 어떤 특성 이외의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그래서 그것이 나일 수 있는 모습을 먼저 갖추었을때 성공은 자연스레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진짜 다른 사람과 구별될 수 있는 나만의 특성을 가지는 것이 보다 중요해진 사회란, 비로소 진아(眞我)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그냥 남들과 무조건 다르기 위한 과장된 모습이라면 과거의 과대포장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자아, 보랏빛 소들이 넘쳐나기를... 그래서 모두가 똑같은 얼굴을 하고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지리한 도시적 삶으로부터 해방되어 광활한 초원을 달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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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5-28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은 차별화...인건가요~~!!

저도 마케팅에 관심 전무한데.... 먹고 살려다 보니..관심을 아니 가질 수 없는 사정에 봉착했습죠... 아직은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책을 억지로 접하는 건 싫어서요... 그래서... 남들이 말하는 제대로 된 마케팅 책...한 권도 읽은 적 없는데...

님 객관적으로 이 책 추천하고 싶은가요?

하루살이 2004-05-28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했던 것보다 꽤 괜찮은 책입니다. 제가 읽은 것들 중(많진 않지만)에서는 탁월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마케팅 책도 일종의 실용서라고 한다면, 역시 실용서로서의 한계는 분명 있습니다. 내가 직접 부딪혀 보고 깨져보지 않는 이상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죠. 그래도 분명 장점은 있습니다. 타깃을 최대한 좁힌다는 것, 스니저나 어얼리 어댑터 등에 집중한다는 것 등등. 가장 안전한 길이 가장 위험한 길이다는 명제는 일상에서도 가끔씩 챙겨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icaru 2004-05-28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장바구니에 추가요....!!!

2004-06-17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간의 빛
강운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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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결정적 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찰나의 빛이 선사하는. 똑같은 풍경이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빛의 성격이 달라져 똑같은 감응을 일으키지 않듯이 말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면(정말 아무 것도 모르지만) 그 빛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특히 디지털이 아닌 필름을 들고서 찍을 때면 한번의 셔터를 누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기 강운구라는 작가가 어렵게 어렵게 눌러온 셔터의 흔적들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책이 있습니다. 메밀꽃의 하얀 색에, 저물어 가는 분홍빛에, 버들강아지의 황토빛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의 눈은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 자체로 바라보고, 그의 사진 또한 어떠한 의지도 갖지 않기에 사물의 본질마저 꿰뚫는 듯 합니다. 아니, 오히려 관조적인 그 시선에 보는 이의 마음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의 시선이 어떤 필터도 갖고 있지 않음은 그의 글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이력으로 삼기 위하여 꼭대기나 탐하는 사람들을 서양에서는 '피크 베거 '(산정 구걸꾼)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이 산 저 산에 그런 거지가 많다. (P51)

난 정말로 순수하게 자연을 좋아해 산을 올랐는지 돌아보게 만듭니다. 어떤 산을 올랐다는 명함을 내민다거나 몇시간만에 올랐다는 자랑을 위해 올랐었는지, 내가 진정 그 산을 사랑했는지 반성하도록 만듭니다. 순수함은 그래서 아름다운가 봅니다. 그의 사진과 글의 순수함이 자꾸 저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순박한 메밀밭을, 메밀밭 그 자체의 아름다움으로서보다는 한 소설의 무대로서 바라보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봉평 아닌 다른 곳의 메밀밭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은 그저 보통 메밀밭일 뿐이다. (P129)

알려졌다는 것은 어찌보면 검증되었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행을 자주 할 수 없기에 실패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것이 유명한 곳들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 또한 어찌보면 관광지 안내 책자의, 또는 영화 속의, 소설 속의 감정을 그대로 베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감정을 베껴내지 않고 진정한 그 아름다움을 만나기 위해선 우연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빛이 흘러가서 만드는 그 시간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나와 그 어떤 대상의 만남. 겉치례를 털어낸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아름다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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