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인생이 연극이라면 지금 나는 2막을 꿈꾸고 있다. 지금까지의 1막은 잘 짜여진, 또는 정해진 각본대로 충실하게 따른 정통연기를 보여준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첫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2막은 그 첫장을 즉흥연기로 시작한다. 아무런 각본도 없이 극의 전개가 어떻게 진행될지도 모르는 즉흥연기 말이다. 아마 나의 인생 후반기는 지금 이 즉흥연기가 어떻게 진행될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내가 생각한대로 흘러만 간다면 더할 나위업겠지만 지금의 나의 심정은 그야말로 두려움 뿐이다.

망망대해 정말 보이는 모든 곳이 바다뿐인 곳에서 홀로 나룻배를 타고 있는 기분. 지금 내 앞에는 이정표라고는 없다. 물론 나침반도 갖고 있지 않다. 이 배가 어디로 흘러 갈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노를 젓고 있는 이 순간만큼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비록 나의 나룻배가 그 목표점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겁난다. 두렵다. 그러나 2막은 펼쳐질 것이다. 각본대로 사는 삶은 더 이상 싫다. 안온한 삶이 주는 마약과 같은 쾌락에서 벗어나 내 몸이 진짜로 몸부림칠 그런 기쁨을 위해 노를 저을 것이다.

부디 나에게 용기를 주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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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come-lately 2004-06-25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piano避我路 2004-06-2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과에 관계없이 하루살이님의 용기 있는 결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이제 인생의 2막을 준비해야 하는데... 실루엣 조차도 느낄 수 없는 제 모습... 두려운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두려움은 실패에 대한 부담감에서 오는 것이겠죠.
제가 가끔씩 되뇌이는 말입니다.
"부채가 자산인 것 처럼, 실패도 자산이다." 용기 내세요.

하루살이 2004-06-2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 용기 충천. 님들의 글로 힘을 얻습니다. 백수로 한 2년 살아야 할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 기회에 일일일식(一日一食)을 하면서 수행자의 모습처럼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아무래도 전 생활비를 아껴야 하겠기에 ㅋㅋㅋ) 2년후엔 또 얼마나 많은 풍랑을 만날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만이라도 즐겁게 살 수 있었으면 그리고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님들도 힘내세요.

icaru 2004-06-26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뱃머리를 바꾸셨나 보네요~~!! 잘은 모르지만... 멋지십니다...대단한 용기가 따라줘야 했었을듯 헌데...말이죠!!!
 

요즘 통 모기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잡니다. 문장군이라는 말대로 정말 용맹스러운 그의 날갯짓에 제 몸은 너무 괴롭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피를 빨러 오는 놈. 잠자리에 눕는게 두려울 지경입니다.

하지만 어젯밤.

자리에 눕는 순간 눈이 먼듯한 느낌이 듭니다. 창문 사이로 둥근 달이 떠 있더군요. 얼른 달력을 들춰봅니다. 내일이 보름이더군요. 원래 잠자리에 들때면 항상 라디오를 켜 놓거나 CD를 들으며 잠을 청했는데 오늘은 그냥 눕습니다. 오직 정적만이 흐릅니다. 다른 때 같으면 밖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기겁을 하며 라디오 볼륨을 높였을텐데 왜 이리 조용한지... 보름달은 사람들에게 아는듯 모르는 듯 영향을 끼치는가 봅니다.

시간도 정지하는듯. 그러나 달은 흐르고 있었습니다. 점점 오른쪽으로 움직이던 달이 이내 건물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달빛은 아직 제 창가에 남아있습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아주 오래전 오대산서 눈빛을 반사하던 그 달빛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도시에서 느끼는 이런 적막감과 황홀한 빛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추석이나 설때 보는 커다란 달보다도 오히려 더 다정다감합니다. 우수나 외로움, 고독 따위가 생겨나지도 않습니다. 마치 득도한 마냥 몰아의 경지에 있는것 마냥 공중부양한 것 마냥 삼매에 들어있는 것 마냥 그런 것 마냥. 이대로 눈이 멀어도 좋을 것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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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건국자에게 영향을 미친 정치철학자 제임스 해링턴의 저서 <오케아나oceana>중

 

바른 정부의 달성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은 두명의 욕심쟁이 소녀가 하나의 케이크를 가르고 있는 이야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논하였다. 그러므로, 일을 두 부분으로 나눈다는 규칙을 세워 놓고, 한명의 소녀에게는 케이크를 자르게 하고, 또 한명의 소녀에게는 먼저 원하는 쪽을 고르게 한다면 탐욕의 본질을 바꾸지 않고도 바른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 반대입장의 적대하는 이해관계를 통해서 좋은 동기의 결여를 보완하는 정책이라고...

무섭다. 인풋은 인간의 이기심, 탐욕, 비천함인데 아웃풋은 올바른 결과, 공익의 달성이라니.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경제가 아닌 정치적인 밑바탕에서 굴러가고 있음을, 그 위악성을 살펴볼 수 있다. 이기심, 탐욕을 개인마다 확장했을 때 오히려 잘 굴러가는 제도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자본주의라는 제도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대부분 인정한다면 그것의 보완은 경제적 측면보다도 오히려 정치적 측면이 더 절실할 지도 모르겠다. 정치적이라기 보다는 철학이라고 해야할까?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그대로 드러내 공익을 창출해내는 마법보다는 인간의 자제심이 빛을 발하는 투명한 거울이 낫지 않을까?

자본주의가 꼭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면 천사가 날아다니는 사회를 꿈꾸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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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벌어지는 농구시합. 아직 입사이후로 우승을 한번도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준우승 2번에 3등 2번. 올해도 여전히 연습경기 한번 못하고 나간다. 다른 팀들은 몇번씩 경기장을 빌려 손발을 맞추는데... 그래도 올핸 다행인 것이 젊은피가 한명 수혈되었다는 것. 하지만 다른 팀들은 젊은피들로 구성되어있다. 우리 팀의 평균나이는 40줄에 가까우니.

아무튼 결전의 날. 예선 2경기를 가뿐히 통과했다. 그래도 우린 역량있는 팀 아닌가? 그런데 아뿔싸, 나의 몸이 이상 신호가 왔다. 교통사고 후유증. 허리가 뽀개질듯 아프다. 8강전선 쉬었다. 나의 믿음대로 4강까지 진출.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4강팀은 아무리 약체라 하더라도 만만히 볼 수 없는 팀 아닌가? 뛰고 싶었지만 몸이 허락지 않는다. 전반이 끝나고 후반 중반에 가면서 우리 팀이 뒤처지기 시작한다.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다. 몸은 아프지만 마음은 오히려 펄펄 날아다니고 있다. 결국 선수교체. 코트로 뛰어간다. 실은 뛰어가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꼭 우승하고 싶다고... 그러나 나의 허리는 받쳐주지 못한다. 점프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아프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뛰었다. 정말 말 그대로 부상투혼이다. 그러나 끝끝내 우리팀은 패배했다. 마음이 아프다. 몸도 아프다. 마음은 나의 욕심때문이요, 육체는 그 욕심을 쫓아가지 못하니 너무너무 아프다.

부상투혼에 박수치지 마라. 부상자는 그저 얌전히 있어라. 재활에 신경쓰라. 부상자의 투혼은 결코 나의 사기도 동지의 사기도 끌어올리지 못한다. 그저 부상투혼이라는 말만 번지르하다. 투혼은 몸을 갉아먹는다. 다음날 병원으로 직행이다. 골반이 틀어져 있단다. 몇개월의 치료는 불가피할듯하다.

제발 제발 부상투혼자들을 욕해라.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는자들일 뿐이다. 자신의 상황을 파악못하고 그저 욕심대로 행하는 못난이들이다. 게다가 자신만이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오만으로 가득찬 자일 뿐이다. 부상자는 벤치에 누워라. 남아있는 자들에게 기회를 줘라. 재기를 기다려라. 마음을 다스리라. 오만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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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홍콩영화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후배녀석을 만났다. 특히 주성치라면 입에 침을 튀겨가며, 또는 손이 부르터라 자판을 두들기며 이야기해대는 그 녀석이 류승완 얘기와 성룡 얘기를 하다 어느새 홍콩 느와르를 거쳐 영웅본색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오우삼에 대한 그의 애정만큼의 크기를 나 또한 가지고 있기에 현재 할리우드에서의 그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머리속에선 성냥개비를 꼬아 문 주윤발의 모습이 떠올랐다.

롱코트를 휘날리며 선글라스를 끼고서 총알 사이로 초연히 걸어가는 남자. 그는 자제보다는 분노를, 희망보다는 좌절을 알고 있기에 친근해진 영웅이다. 그의 모습에선 언제나 푸른 빛이 감돈다. 선글라스 뒤에선 그의 눈물방울을 볼 수 있을듯 하며, 롱코트에는 수많은 상처를 감추고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오우삼처럼 할리우드로 날아가버린 주윤발은 이제 푸른 빛을 잃고 회색빛을 띠고 있다. 분노보다는 자제할 줄 아는 동양의 신비감을 가진 남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방탄승>의 모습은 바로 그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주윤발은 영원한 영웅본색의 영웅이요, 첩혈쌍웅의 쌍웅이다. 그의 슬픔을 가득 안은 미소는 절대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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