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홍콩영화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후배녀석을 만났다. 특히 주성치라면 입에 침을 튀겨가며, 또는 손이 부르터라 자판을 두들기며 이야기해대는 그 녀석이 류승완 얘기와 성룡 얘기를 하다 어느새 홍콩 느와르를 거쳐 영웅본색 이야기까지 흘러갔다. 오우삼에 대한 그의 애정만큼의 크기를 나 또한 가지고 있기에 현재 할리우드에서의 그의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머리속에선 성냥개비를 꼬아 문 주윤발의 모습이 떠올랐다.

롱코트를 휘날리며 선글라스를 끼고서 총알 사이로 초연히 걸어가는 남자. 그는 자제보다는 분노를, 희망보다는 좌절을 알고 있기에 친근해진 영웅이다. 그의 모습에선 언제나 푸른 빛이 감돈다. 선글라스 뒤에선 그의 눈물방울을 볼 수 있을듯 하며, 롱코트에는 수많은 상처를 감추고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오우삼처럼 할리우드로 날아가버린 주윤발은 이제 푸른 빛을 잃고 회색빛을 띠고 있다. 분노보다는 자제할 줄 아는 동양의 신비감을 가진 남자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방탄승>의 모습은 바로 그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주윤발은 영원한 영웅본색의 영웅이요, 첩혈쌍웅의 쌍웅이다. 그의 슬픔을 가득 안은 미소는 절대 잊혀지지 않을 아름다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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