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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행복은 희망의 다른 이름일까요, 만족의 다른 이름일까요.
목요일 10시부터 1시까지의 3시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무엇으로 가득찼던 것일까요.
사형수 윤수와 자살을 시도하는 유정의 만남이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유정이 자살을 꿈꾸는 것은 과거의 상처때문입니다. 그 상처 자체보다도 더 큰 것은 배신감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엄마에게 다가갔을때 어머니는 오히려 그녀의 뺨을 때립니다. 위로하고 감싸주고 쓰다듬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부와 명예라는 다른 이름으로 인해 상처를 받습니다. 아니죠. 어머니도 겁을 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감당 못할 그 무엇. 영화는 유정이 엄마를 용서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윤수는 어렸을 적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눈이 먼 남동생과 함께 노숙생활을 시작합니다. 유정의 애국가를 듣고 힘을 얻곤했던 동생은 어느 겨울날 숨을 거둡니다. 윤수는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흔들리고 짧은 것인지를 깨우칩니다. 다시는 사랑 같은 것 못할 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가스배달을 하던 시절, 미용실 아가씨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찾아온 위기는 아내의 자궁외 임신. 수술비조차 마련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그래서 결국 한탕 하려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살인으로 이어집니다. 왜, 칼을 들었는지조차 모르게 말입니다. 동료의 죄까지 모두 뒤집어쓴채 사형만을 기다립니다. 이때 윤수의 칼에 쓰러졌던 파출부 아주머니의 엄마가 찾아옵니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편히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하고 싶다며 말입니다.
영화는 용서를 말하고 있는듯합니다.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조차 용서를 베푸는 사람들. 용서를 받고 용서를 하는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의 문을 서로에게 열어주며 비로소 용서라는 온기가 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복했을 겁니다.
그 행복은 과거를 씻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때문일까요.
이들의 행복이 조금은 낯설어 보입니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던 사람들이 살고싶다는 소망을 간직한 것은 오로지 삶이 살아갈만한 희망을 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 지금 당장 너무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행복지수. 경제강대국 보다는 못산다고 생각하는 동남아 국가들이 훨씬 높죠. 그 행복감은 윤수와 유정의 행복과 같은 행복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어디서 찾아온 것일까요.
옆 사람의 손을 살며시 잡아보죠. 한번쯤 안아보는 건 어떨까요. 행복하십니까.